완벽한 케이크의 맛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혜진 지음, 박혜진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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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맛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와 함꼐 먹었던 그 맛이 완벽했다면 그 맛만은 아닐 것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 내가 너에 대해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

그래서 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을 수도 있고 순간 떠오르는 걸 그냥 내뱉을 수도 있지만 

늘 이야기는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다시 이곳으로 흐르고 이어진다

그 이야기들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더 잘 이해하거나 그 입장에 대해 공명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처받고  마음을 닫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냥 나는 내 생각을 내 감정을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 꼭 전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들은 공간을 이동하면서 상대에게 닿는 순간 다른 의미가 겹쳐진다.

그건  그사람의 감정이나 입장의 문제이니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전달했고 너는 받든 말든 알아서 하라...

이건 대화가 아니고 소통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 그렇게 내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상대에게 가 닿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고 어떻게  스며들지 그건 말을 한 사람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서로 안다는 것 이해한다는 건 쉽지가 않다.

단 한마디 말때문때 삐긋하기도 하고 무슴한 행동이나 늘 하던 버릇들이 그냥 순간 큰 덩이리가 되어 꽉 막아버릴 수도 있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갖는 서먹함을 애써 모른 척하는 것들 모르지만 굳이 물어보거나 맞춰보지 않은 행동들

불편한 가족의 망문에 대한 마음을 조그맣게 내놓는 그 순간

다 알고 있따고 믿었던 가족들의 다른 모습들 그러나 이해되는 알 수 없는 익숙함들 

책속의 이야기들은 

오랜 친구사에에 나못지 않게 상대도 참아내고  그러려니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

익숙해서 서로를 더 몰랐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관계에서도 뭔가 작은 연결점을 찾아낼 수 있음을 소소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관계라는 것이 소통이라는 것이

서로의 속내를 뒤집어 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이 모른 척하기도 하고 해야할 말들을 꿀꺽 삼키기도 하면서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내가 조금 느어서 무뎌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그 지점까지 모두를 아우른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전히 꿀꺽 삼켜야 하는 말의 수만큼 

용기내어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말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건 늘 어렵다

늘 고민해야하고 다시 되돌려봐야 하는 일

나이 먹어서 저절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나이 들억아며 배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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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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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

세상에 많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있다.

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은 아빠를 넘어서야 한다고들 한다.

아빠를 넘어서는 순간 아빠를 극복하는 순간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들은 아빠를 떠나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딸은 언제나 엄마 옆에서 엄마를 돌본다.

멀리 떠난 딸은 다시 돌아온다. (바리데기)

딸이 멀리 떠난 이유는 늘 가족 누군가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눈을 뜨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도 딸이고

자신을 버렸던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먼길을 떠나 자신을 버린 바리데기도 딸이고ㅗ

리어왕을 마지막까지 붇틀고 있던 막내딸도 있다. 

(어쩌면 리어에게는 세 딸이 아니라 두 아들과 딸이 있었을 수도 있다.)

오빠들이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입을 꾸욱 다물고 엉겅퀴로 옷을 지엇던 공주도 있다.

딸이나 여동생들은 언제나 가족을 돌보는 역할이다.

늘 돌보던 딸과 여동생들은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다시 돌본다.

그들을 돌봐주는 건 다시 딸이다.

아들만 있는 집 엄마가 불행하다고 우스개처럼 하는 말은 결국 돌보기만 하고 나를 돌봐줄 딸이 없다는 데서 오는 불행이다.

딸이 엄마에게 친구같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엄마에겐 딸 아닌 누구도 없다는 말이다.

엄마가 딸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딸이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엄마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딸은 가족에게 발목잡히고 가족을 떠날 수 없다.

길을 떠나려는 순간 죄책감이 또 발목을 잡는다

나쁜 년 저만 아는 년이라는 비난을 함께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딸에게는 그런 돌봄의 유전인자가 뼈에 박혀있는 것일까

딸은 그냥 보통의 딸이 되거나 나쁜 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소설 속의 딸들은 나쁜 딸이 되기로 한다.

아버지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 삼각관계에서 누구도 빠질 수 없다. 돈을 버는 내가 도망갈 수도 없고 돌봄을 맡은 엄마가 도망가서도 안된다. 다만 아빠가 죽으면 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런 아빠는 참 오래도 버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모든 돌봄이 끝난 것 처럼 말한다.

나의 돌봄은 나의 인생계획에 없던 일처럼

엄마는 절로 떠나려고 하고 딸은 엄마를 절에 버리기로 하지만

너무나 눈치가 빠른 스님때문에 실패한다.  아니 실패하기로 했다.

엄마는 늘 딸이 멀리 훨훨 날아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딸은 쉽지 않다.

서로 그 마음을 뻔히 알아서 돌봄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두번째 딸은 로맨스 소설을 쓴다

그리고 엄마도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약하고 물러터진 엄마가 아니라 몸에 서 털이나고 몸이 변해서 늑대가 되는 그래서 모든 불의를 해결하고 강해지는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그 이야기안에도 로맨스가 있고 달달하고 나긋나긋한 관계들이 있다.

딸은 엄마를 그냥 엄마로 봤지만 엄마 역시 뭔가 꿈꾸는 소녀였고 여자였고 동시에 길거리에서 잠드는 그냥 아줌마이기도 하다.


세번째 딸은 아픈 엄마를 돌보는 딸이다.

돌봄이 너무 힘들어   변칙을 써서라도 뭔가 지원을 받고자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엄마가 너무 무겁지만 버릴 수도 없다.

코로나때문에 근처 허름한 모텔에서 지내야 하는 일주일이 오히려 휴가처럼 느껴질만큼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부담스럽고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관계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게를 함께 먹는 순간 역시 가족의 일상이 된다.


사회는 발달한다는데 돌봄은 여전히 가족안에 머문다.

가족안에서도 돌봄을 맡는 역할은 늘 정해져 있다.

일이 없어서 수입이 없어서 그래도 니가 가장 편하다고 하니까.. 등등등...

일을 그만 두는 딸과 며느리는 당연히 돌봄의 역할을 해야하고

일을 쉬는 남편과 아들은 다시 일하기 위해 휴지기를 가져야 한다.

물른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누구도 돌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발가벗고 울기만 하는 아기에서 태어나서 저 잘났다고 으스대며 살겠지만 

결국 총기가 떨어지고 노화되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시간은 돌아온다.

사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겪는다.

그렇다면 돌봄 역시 가족에게  사적으로 맡기고 눈을 감을 일은 아니다.


이 문제는 공공의료 공공 복지의 문제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 이미.... 지났다. 


책은 재미있게 술술 넘어가지만 순간 멈칫하는 부분이 꽤 있다.

부모가 나이들어간다고 생각된다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 가까운 이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진다면....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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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 문장 시리즈
류승연 지음 / 유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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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뭔가 쓰려고 했는데 잊어버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가끔 이렇게 기억나지 않은 시간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잊어버린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기도 하지만 가끔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나이듦에 따른 변화같다.

 

어른이라는 건 늙어가는 나이만큼 세상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늘어가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틀린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다.

그가 나를 그와 같기를 바라고 바꾸려 든다면 나 역시 화가 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른은 시간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낭비라고 느껴지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한없이 느리고 주저한 적이 있어서 누군가는 복장터져가며 나를 기다려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 준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가끔 내가 어른인가 고민한다,

어른이 아니라는 생각, 아직은 멀었다는 자괴감은 겸손이 아니다.

그냥 현실 부정이고 피하고 싶은 마음의 변명일 뿐이다.

나는 그냥 여러 가지 부족함이 많은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아니라는 말 뒤로 숨고 싶지 않다.

어른이니까 참아보고 용기내어 말해 보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것 화를 내지만 후회하고 그렇게 되었다고 혼자 위로할 수 있는 것

어른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다르지 않게 뭐든 해봐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늘 용기를 내고 시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른은 완성형이 아니다

여른 역시 성장해 나가는 현재 진행형일 뿐이다.

 

어릴 적 어른은 처음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고 선생님은 처음부터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처음부터... 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걸 알게 되는 건 결국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른이란... 에 대해 생각을 한다.

배려 공감 이해 더불어 사는 삶 등등 좋은 말들 역시 말에 그치지 않은 것

그것을 행동으로 해나가는 것 그것이 어른이다.

말로 배우는 시간은 이미 지나버린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

그들이 어른이다.

어른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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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은 ‘다음’을 가르칩니다 - 건강, 즐거움, 권리, 관계 맺기, 동의, 안전, 다양성, 몸, 감정
이유정 지음 / 마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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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사건을 우리가 알게 되었을까?˝ 청소년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강사가 말을 이었다. ˝이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세상에 단톡방의 상태를 알렸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에게도 그러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박수가 쏟아졌다. 어쩌면 이날 교육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응원받았다고 생각한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폭력이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너 속에 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

자기를 믿을 수 있고 괜찮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어떤 교육에서건 우선이다.

성교육이든 영어나 수학이든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괜찮은 너에게 좀 더 괜찮기 위해 지식을 배우고 인권을 배우고 배려를 배우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알아가는 길을 안내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이 책 꽤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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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차별주의자 - 보통 사람들의 욕망에 숨어든 차별적 시선
라우라 비스뵈크 지음, 장혜경 옮김 / 심플라이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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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차별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게 되는 과정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사회가 주입하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이 내 생각이며 내 근거라고 믿는다.

사실 나는 내 생각을 내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

세상에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없고 그 숫자도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을 선택하고 자기가 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충동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것이 현대적인 생활방식이다.

스스로 원하고 스스로 책임지면서 사회적인 명성까지 얻어야 한다? 이건 개인에게 실로 대단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만연하고 그 성공의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시대다

뭔가 제대로 하지 모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다는 것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제재하는 것도 아닌데 너는 왜 못하니?

실패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시스템이나 사회적인 책임은 빠지고 모든 결과를 개인이 책임져야 할 때 개인은 쉽게 시도하지 못한다. 좋다고 덜컥 덤벼들 수 없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도전도 줄어든다. 안전한 것과 할 수 있는 것 지금 가장 손에 쉽게 쥘 수 있는 것만 볼 수 밖에 없다.

우울증은 규율과 죄가 아닌 책임과 자발성에 기초한 질병이라고 에랭베르는 말했다

규율이 지배했던 사회에서는 복종이 사람을 지치게 했다면 현재 모두가 열정을 가져라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내는 성과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뭔든 할 수 있다. 무한 긍정과 지지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과 실패했다는 것은 개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잘못했다는 결과만 도출된다.

빽빽하게 다이어리를 채우고 sns로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를 드러내고 광고해야 하고 또 그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시대다. 나를 스스로 광고하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몰아붙여 할 일들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는 과정이 계속된다. 잠자리에 들 때면 뭔가 했다는 뿌듯함이 남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뿌듯함은 혼자한 헛짓일 뿐이고 또 그런 사람들을 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가 루저이고 한심하다고 자책하며 나는 뭔가 하며 잠을 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몇 성공한 소수자들이 거봐라 좋아하는 것 열정을 가지고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으냐? 너도 조금만 더 해봐라. 잘 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만 더.. 이러게 부질없는 희망을 뿌리고 있다. 비눗방울처럼 아름답게 둥둥 떠다니지만 결국 내 손에 잡히면 터지고 말 것들을

느려서도 안된다. 머뭇거려서도 안된다. 주저하지 마라. 일단 질러라

그리고 책임은 오롯이 너가 져라

누구와 상의할 수 없고 누구에게 내 문제를 보여줄 수도 없다. 모두가 친구이며 동시에 경쟁자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가 아니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을)좋아하라이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그 일이 내일이다.

 

*젠더

폭력은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남성 특유의 길이다. 폭력의 한 종류는 내적 고통의 외적 표현이다. 가령 소속되고 싶은 갈망이 채워지지 못해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폭력을 휘두른다. 우리 사회의 기대와 규범은 남성들에게 특정한 감정만 허용한다. 분노와 화는 공동체남성 구성원들에게 용인되고 기대되는 정서적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지배적인 여성성 이미지에 따르면 여성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안된다.

폭력은 복수의 한 형태다. 남성들을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것을 되찾기 위해서도 폭력을 사용한다. 권력을 과시하고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사회게 남성에게 거는 기대이며 남성은 그것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연약함과 공감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특성이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 인간의 특성을 외면하라고 배운다. 자신의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 약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남성다움이라고 말한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 건 어린 아이 때뿐이다. 자라면서 여자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배우고 학습 당한다.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슬픔과 절망을 억누르다보면 나중에 아예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남의 아픔을 공감할 수도 없다. 아픔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일은 약한존재가 하는 짓이락 생각하고 손가락질 하다보면 결국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남의 마음도 아파할 수 없게 된다.

 

남성적인 것이 사회의 기본값이라고 배운 여자들도 감정적인 것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하다. 여자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면 안되는 것 적어도 사회생활을 할 때 공적인 자리에서는 드러내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배웠고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 남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 우선되면서 내 안의여성적인 것 아니 사실은 인간적인 것들을 누르게 된다. 참아내고 견디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남의 감정을 무시하고 모른 척 하는 것 그렇게 남자들과 같아지는 것 그것이 이성적인 인간의 태도라고 배우면 결국 타인의 공감이라는 것은 남성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퇴화될 수 밖에 없다.

사회는 그걸 원한다.

각자 느낌은 각자의 것이므로 흘러넘치게 해서 타인이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자기 문제는 자기가 깔끔하게 정리하기를 바라는 것

사회는 점점 각자도생이다.

 

*이주

우리의 공감은 반드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숫자와 관련 있지 않다. 우리의 공감은 오히려 개인에게서 솟구친다. 자기를 그 사건이나 사람에 대입하면서 공감을 한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숫자는 냉정하고 감정이 없다.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관계가 있을 때 우리는 상황을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공감한다. 내가 알던 아이가 주거문제로 고통을 받거나 내 아이의 친구 혹은 어제까지 내 이웃이거나 내가 잘 알던 사람의 고통은 쉽게 공감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알고 있으면 타인이 아니고 타인이 아니면 공감이 훨씬 더 쉽다(반대로 어떤 갈등이 생길 때 의심할 여지 없이 알던 사람 알고 있는 사람을 선한 쪽에 세우기도 한다. 그가 그럴 리 없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잘 안다, 이때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내 반경 안에서 내가 인지하고 있으면 그만일 때도 있다.)

 

취약함을 가질수록 공감은 쉽다. 함께 해도 방해가 되거나 해롭지 않다고 판단 될 때 우리는 타인을 받아들인다.

나를 위해 싸워줄 몇 사람이 있고 슬픈 얼굴의 아이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유리하다. 정서적 충돌이 일어나는 건 받아들임에 매우 편리하고 이롭다. 혹은 정반대로 영웅적인 행동도 이롭다.

 

이주 자체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문제는 이주를 불러온 상황이다.그것이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되는가를 따지는 것 그리고 이주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선의 문제다.

새로 건너온 사람들의 가치는 경제시스템 내부의 생산성으로 평가된다. 국가는 성과가 뛰어난 이주민에게는 문을 활짝 연다. 반대로 인도주의차원의 이주나 가족동반이주 등에는 빗장을 건다.

사회주류계층의 불안이 이주민 타인을 배척한다. ‘가난뱅이 백인의 사고방식이다. 내 몫을 빼앗아 가는 존재로 본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면서 남성들은 시스템의 문제보다 여성이 자기 몫을 빼앗는다고 여기는 것처럼 이주민들이 노동영역을의 결혼기회를 빼앗고 주인인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여기고 차별하고 제재한다. 나보다 당연히 계급이 낮아야 할 존재들이 나를 위협할 때는 공포와 함께 불쾌감과 폭력까지 동반된다. 그들은 없어져야할 존재이고 위험한 존재가 된다. 문명이거나 상류층이 아닌 타인은 야만이며 하류층이며 노예일 뿐이다.

 

*빈부격차

자발적 실업자와 비자발적 실업자

많은 실업자들은 자신은 다른 실업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상황 탓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남들은 자기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는다. 동일시하지 않음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지킨다. 조직이 될 수 없다. 개인의 문제가 되고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 되어버린다. 연대와 품위 그리고 공감의 자리에는 경제적 이해타산이 차지한다. 사회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집단에게 권리를 빼앗는 것은 당연하게 여긴다.

 

상징적 폭력: 일상에서 일어나며 건강한 인간이성에게는 당연히 보이는 권력과 지배의 현상을 말함. 조용하고 잠재의식적이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이 폭력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멸시의 연출방식을 통해 상징적인 차원에서 빈곤이 고착화된다.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여러 가지 장치들 언론 방송 소문이나 잘못된 가치관들 가난하면 게으르다. 뚱뚱한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한다. 실업급여생활자는 사회 기생충이다. 등등

루저와 위너 성과를 내는 자와 성과를 거부하는 자. 두 가지 계급뿐이다. 낙인찍히는 계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연대적 행동을 방해한다. 남과 선을 긋는다면 나는 그 남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차별과 구분은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과 결속을 해친다. 구분과 멸시가 우선시되면 사회 불이익은 정치적 참여가 아닌 도덕적 분노를 낳을 뿐이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중산층의 두려움, 자기 특권을 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 정치 언론 경제의 편 가르기식 언어는 유용한 자와 유용하지 않은 자 돈을 버는 사람과 실업급여를 받는 자 사이의 사회적 위계질서를 강화한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갈까 두려워함과 동시에 그 선을 넘어올 누군가를 경계하고 미워한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자유롭게 시간을 결정하고 시간을 낼 수 있다. 더 효율적이며 내가 자유와 책임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경계가 모호해지면 일의 연속선상에서 삶이 반복될 수 있다. 편리한 기기들의 도움은 우리로 하여금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상사에게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어 자유를 속박당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이면을 가진다.탈경계화는 소통의 자유로움과 무한한 가능과 함께 어디서 언제든 공사를 함께 할 수 밖에 없다.

 

 

*범죄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도 범인이 어느 사회 계층에 속하느냐에 ᄄᆞ라서 도덕적 평 확장하고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나가와 형량은 달라진다.

정의감을 불러내려면 인격화된 피해자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범죄 희생자라고 개인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피해를 호소하는 개인이 있으면 그것은 명백한 범죄다. 대중은 그런 사건에 더 분노하고 관심을 쏟고 자신의 주관적 안전에 더 신경을 쓴다.

상류사회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개별적으로 확인이 불간으하다. 전국으로 파고들고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히는 범죄지만 개별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공정한 세상 가설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의롭기 때문에 뿌린대로 거둔다. 세상은 정의롭고 안전하다. 나만 제대로 행동하면 공정한 결과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끔찍하고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한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그래야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정의로운 규칙이 있다.

나쁜 일은 불운의 탓이거나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잘못된 행동탓이다. 피해를 당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공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회적 특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지위가 낮고 소수인 사람들보다 더 공평한 세상 가설을 믿는다. 가진 지위와 힘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공정한 세상 가설을 더 믿는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게 더 안심이 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다. 개인의 문제로 불행이 생기므로 불행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굳이 세상을 더 공정하고 정의롭게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다만 조심할 뿐이다.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며 탓이다. 그들의 상황을 우리가 개선할 필요는 없다. 이 세계관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더욱 견고하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공감을 떨어뜨린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은 그럴만한 사람이고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일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성범죄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여서은 범죄 피해자로 이름붙여지고 그 모든 원인을 피해자에게 묻는다 그리고 피해자의 행실을 따지고 운없는 한 남성인간의 미래를 걱정한다.

젠더 의식에 맞는 건물설계와 도시계획

어두운 곳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곳을 나쁜 곳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언어의 사용방식은 사고를 구성한다.

마틴이 리사를 성폭행했다. 행위를 한 주체가 드러난다.

리사가 마틴에게 성폭행 당했다. 당한 행위가 더 크게 도드라진다.

리사가 성폭행 당했다. 누가 했는가는 사라졌고 리사만 남는다.

리사는 성폭행 피해자이다. 마틴의 행동이 리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리사가 왜 성폭행을 당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왜라는 질문이 가해자 마틴이 아닌 피해자 리사에게로 향하게 만든다. 우리는 질문을 마틴에게로 돌려야 한다

범죄를 가장 확실히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비

소비결정은 사회적 지위의 표식이다.

소비는 사회 불평등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구매행위와 소비 습관과 소비자의 사회적 위치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비와 여가를 통해 경제적 차이가 상징적으로 번역디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든다

과시의 목적으로 소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겨기 비싸서 대중이 구입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잘 팔리는 물품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상품을 비사다는 이유로 소비한다.

소비는 소속감을 드러낸다. 신분의 한측면이며 내가 그 신분에 소속되었음을 보여준다. 한정판, 래플 제도 등 같은 제품을 소비하는 것은 같은 무리가 되고 동질성을 갖게 한다. 제품은 신분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며 그것을 가졌다는 것은 남부럽지 않은 인맥을 가졌다는 것이고 그들과 같은 집단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개인의 결정은 없다. 그 뒤에는 그 결정을 부추기는 상업의 힘과 문화의 압력이 있다.

유기농 등 환경을 생각하는 좋은 소비라는 것 모유 수유라는 아이를 위한 모성같은 것들은 도덕적인 정언명령이며 시민 가치의 상징이 되었다. 동시에 계급의 우월함을 표현하고 사회 불평등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그것은 모두가 소비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다. 가격도 비싸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은 계급에서만 누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엄마에게 주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소비다.

직접 기른 야채를 먹고 직접 빵을 굽고 페스트푸드를 멀리하는 것

가난한 사람은 그럴 시간도 돈도 없다.

지속가능성 우리의 일상적인 구매 실천이 윤리적 소비 결정의기회로 상품화 된다. 양심적이고 착한 소비라는 것도 하나의 마케팅의 결과다. 계속 새로운 자극을 주어 이미 없는 게 없는 사람드에게 이번에는 친환경 제품 착은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라고 부추긴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은 지구를 구한다는 개인의 목적과 기업매출이라는 두가지를 다 달성시킨다.

관건은 포장과 라벨이다.

유기농 비건 채식음식 공정무역상품 등등 그것은 도덕심을 부추기는 새로운 포장이고 라벨이다.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은 먼저 그럴 능력이 되어야 누릴 수 있다. 남들보다 도덕적인 인성을 갖추자면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내가 버린 쓰레기와 내가다. 그건 도시 빈민들에게 간다. 그리고 그들은 지속가능한 소비를 누릴 여력이 없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무지하다?

안전지대 안에서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다.

정직한 공동체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는 물질적 차이나 교육 수준의 차이가 도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다른 시각을 관용으로 대할 수 있을 때 생겨난다.

 

*관심

우리 사회의 가치 시스템은 외향성의 이상에 젖어있다. 행복하려면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고 자의식이 넘쳐야 하며 매사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삶을 열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고 최대한 자신을 잘 홍보할 수 있는 능력은 노동시장에서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런 상항 탓에 내향적인 사람들이 겪는 불안 심리는 심리적 문제로 포장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마음이 불편하고 낯선 사람과 말 섞기가 불안하면 그건 대인공포즈이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작아지는 느낌이 들면 그건 자신감 결여이고 스스로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면 그건 열등감이다.

네트워크만큼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고 타인의시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많은 곳도 없다. 사람들은 가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더 밝히기 위해 돈을 투자하고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며 제일 강력한 브랜드는 너 자신이다 따위의 조언을 남발한다. 디지털 인기로 다시 투자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설사 상업적인 이익이 없다고 해도 자기 연출만으로도 상당히 달콤하다.

그러나 디지털 관심이라는 이 새로운 화폐를 얻기 위한 경쟁은 고단하고 힘들다. 정보의 도구 만남의 플랫폼 소통과 인정의 수단으로 탄생한 디지털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실제의자아를 넘어서고 심지어 그것을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침몰하고 낙오되어 아무도 모르는 인간이 될 수도 있으며 멸시와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빅브라더가 없어서 슬프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속박당하고 싶은 위험한 충동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만큼 비참하고 외로운 일은 없다 네트워크 속에서는.

 

*정치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함과 명확한 방향을 바라는 우리의 욕망이 있다. 고정관념이 그러하듯이 적개심도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다. 이 무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 동시에 나는 남들과 다르고 싶다. 그들과 같이 엮이고 싶지 않다.

사람은 그렇다.

내가 원하는 무리에 끼고 싶은 동시에 나보다 약하고 열등한 무리에는 절대 끼고 싶지 않다. 그렇게 타인이 되어 배재되고 싶지 않다.

차별은 그렇다.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내가 차별당하고 싶지 않아서 기를 쓰고 차별한다.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떨어지면 세상 모두를 잃는다는 절망감에 차별한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는걸 결사적으로 막기위해 다른 이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따돌린다.

불안에서 내 자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렇다.

 

살면서 누구에게 기댄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나를 아는 사람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 열어 보여준 마음이 언젠가 돌고 돌아 나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진다. 모두가 원치않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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