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이 나오는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듣고 일단 일본판을 먼저보기로 했다.

책을 읽었던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영화를 보면서 다시 되새김질 한다.

책을 읽었을때

왜 이렇게 완벽한 알리바이를 저 물리학자는 다 파헤쳐서 모든 사실을 드러나게 했을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다.

가끔 진실이라는 것이 묻히고 그래서 완벽하게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거 같다.

사실  일반인에게 살인이라는 사실은 혼자 품고 가기엔 너무 크고 힘든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렇게 누군가가 알게되어 스스로 사실을 말하고 세상에 드러내게 되면서 홀가분해지고 어쩌면 거기서 행복과 편안함을 얻기도 할테니까..

용의자 X의 헌신

 

 

 

영화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상대는 알 수 없지만 내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헌신하는 수학자가.. 내내 안타까웠다.

그런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범죄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뫈벽하게 지켜내는 것

그것이었다면 마지막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가 얻을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완벽하게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 죄책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완전범죄를  만들어주고  혹시 있을 양심상의 문제까지 고려해서 새로운 범행까지 저지를 수 밖에 없던 수학자가 안쓰럽다. 안타깝다

그리고 그 사건을 끝까지 끌고 가서 풀어낼 수밖에 없던 물리학자의 심정도 그렇다.

 

과거 회상 장면에서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학생시절 처음 만나던 장면이 있다.

수학풀이에 몰두하던 수학자에게 물리학자가 다가가서 묻는다

이건 이미 증명이 끝난 문제가 아니냐고

그러자 수학자가 답한다.

그 증명이 아릅답지 않아...

그렇다

뭔가가 풀렸다는 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웃여자의 범죄를 덮어주고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시간을 그여자가 어떠한 진실도 알지 못하고 죄의식으로 힘들어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아름다운 것만 보게 하고 아름다운 지금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수학자의 마지막,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증명이었다.

내가 존재했던 이유, 그리고 마지막에 의미있게 떠나려는 것들이 모두 그 여자에게 있었던 수학자였으니 마지막 그 여자가 모든 진실을 알았을때 그렇게 통곡같이 처절한 울음을 뱉았던게 아닐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의 아름다운 증명이 공식들이 허물어지는게 두려웠던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류승범의 석고를 만났다.

일본의 이시가미(이 수학자 이름이 이제 생각났다.. 아 미련하고 아둔하여라..)와는 닮은 듯 다르다

아무렇게나 입은 옷 웅크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걷는 모습

답답하고 고지식하고 주저하는 모습은 같지만 석고쪽이 좀 더 감정이랄까 느낌이 드러난다.

석고의 이야기에는 친구인 물리학자가 없다

대신 형사가 그의 역활까지 다 맡아서 한다.

이미 아는 이야기이고 일본판을 보아서 그런지 한국영화쪽은 조금 감정과잉 표현과잉이 아닐까 싶은 부분들이 느껴진다.

주변부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들도 조금 더 감정적이고 격렬하다.

일본판은 밋밋하다 싶게 조용하고 정리되어 넘어갔다면 한국판은 한판 벌려놓은 기분이다.

경찰서의 사건대책본부(명칭이 맞는지 모르겠지만)에서도 일본은 정말 일본스럽게 사건을 벌여놓고 조용히 지시대로 기민하게 복종하며 움직인다는 느낌이라면 한국에서는 왁자지껄한 시장통스럽기도 하고  상관에게 말대꾸 하는 거라든가 감정의 표현 충돌이 참 많다.

뭐 문화의 차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고 어디가 더 낫고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내 성격상인지 아니면 이미 본것에 대한 가산점인지 몰라도 전자가 내게는 와 닿는다.

(이야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면 우리 영화가 더 친절하고 다이나믹하며 몰입도는 있을거 같기도 하다)

석고의 이야기는 철저히 그의 중심에서 이야기가 풀려간다.

이웃 여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남자

류승범은 일본배우는 잘 표현하지 않은 섬세한 감정의 표현도 보여준다.

화선을 보면서 설레고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이 손끝에서 눈빛에서 잘 나타난다.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이 남자를 신뢰할 수 있겠다던가 이 남자가 지금 사랑하는 구나라던가 더 나아가서 이 남자가 두렵고 낯설다는 느낌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다 알고 보는 거지만  완벽한 석고의 알리바이에 눈물이 났다.

모든것을 내가 안고 내가 되돌아갈 퇴로마저 차단해버리고 앞으로만 나가는 이 남자의 헌신이 마음아팠다.

 

다만 아쉬운것은 책에서 잘 나와있고 일본판에서도 의미있게 보여주는 이시가미. 혹은 석고에게 있어서의 수학이라는 것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

나름 의미있는 대사들은 나왔지만

가령

누구도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만드는 것과 푸는 것 어떤 것이 더 어려운가

보기엔 기하문제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함수문제같은 미묘하게 착각을 일으키게 꼬아놓은 문제들

뭐 그런 대사들이 나오지만

그냥 의미있어보이고 좀 그럴듯한 대사를 그냥 가져다 놓은 느낌이랄까

일본판을 봤을 때 느낀 아하.. 하는 그런건 적었다.

어쩌면 이시가미의 대척점에 놓은 물리학자의팽팽한 누뇌가 빠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이라는 것이 어렵고 난해한 학문이지만

확실한 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답을 향해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잘 증명하고 풀이한 식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런 수학의 난해하지만 아름다운 질서가 드러난 사건이 바로 이 이야기가 이니었을까

내가 사랑하는, 희망이었던 여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 방법이 여러가지지만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 여자가 남은 생을 행복하게 그늘없이 만들고 싶다는 가설을  스스로를 다쳐가며 증명하는 남자의 헌신 그 이야기다.

 

일본판은 이성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한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고

한국판은 감정적으로 건드린다. 세상에는 이런 바보같은 어리석은 그러나 욕할 수만은 없는 사랄ㅇ이 있다고

뭐가 좋은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리라

 

사족...

나중에 아이가 수학이 어렵다고 징징댄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수학이 이렇게 아름답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하지 않을까

나처럼 너무 늦게 알지만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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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문뜩 "봄날은 간다"가 떠올랐다,

거기서 상우가 그랬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 상우가 아직도 그렇게 순수하고 조금 찌질하게 남아있다면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단다."

 

한때 빛나던 것들도 다 낡을 수밖에 없고 지금은 초라하고 낡은 것들도 한때는 빛나던 때가 있었다. 그냥 그렇데 변해가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에 삶이 아닐까

언제나   환하고 새로운걸 찾아가고 싶고 그것이 더 탐나기도 하는 것도 삶이고 인간이기도 하다.

 

영화속 마고는 평범한 인물이다 결혼생활에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같고 가족같은 남편은 든든하게 옆에 있어주고 시가쪽 식구들과도 허물없이 지낼만큼 문제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마고에게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뭔가 다이나믹하고 반짝거리는 것 두근거리는 무언가 설레임이 필요한데 남편과의 생활은 너무나 안정되어있다. 그건 남편의  묵직하고 한결같은 성격 그리고 미래의 유머까지도 준비하는 반듯하고 정돈됨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성격은 닭 하나를 가지고 요리책을 만드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설레임 그 남자가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웃에 있다.

언제나 눈길 닿는 곳에 그가 있고 손을 내밀면 잡을 만한 곳에 그가 있다.

그러니 발랄한 마고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아닐까

유부녀라는 이유로 아직 남편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하지만 그럴 수록 끌리는 마음은 어쩌지 못하고 남편의 한결같음조차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나이든 여자들 젊은 여자들이 거리낌없이 나신을 드러내며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 없다는 말을 할때 참 숙연했다. 익숙한 몸들을 보면서 그렇게 늙고 쳐지고 살찐 몸들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설레게 했을 것이고 탄력있고 팽팽한 젊음이었다는 걸 말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익숙하버린 무심함이 그냥 무심함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한때 아이가 그랬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생활이 뭐가 좋으냐고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야하고 뭔가 다이나믹하게 신나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때 나도 그랬단다.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반복되는 건 견딜 수 없다고

하지만 살아온 시간이 쌓이면서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다이나믹함이라는 것신나고 파란만장하다는 것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그것이 오래되면 멀미만 날 뿐이라는 것 어쩌면 우리가 지금 지리멸렬하게 느끼는 익숙함이나 반복들이 한때는 빛나는 다이나믹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신나는 놀이기구도 때가 되면 조명이 꺼지고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마냥 계속되는 두근거림 신남 흥분이란 건 없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간 심장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결국 마고는 그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take the waltz가 흐르면서 새로운 격정적인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말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심장이 터질만큼 두근거린 사랑도 결국은 일상이 되고 지루해지고 무심해지는 것을

남편의 동생이 말했다.

"누구나 인생에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틈을 메우려고 하진 않는다"

맞는 말이다.

조금 부족한대로 처지는 대로 맘에 안드는 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산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누군가는 또 다수와는 다르게 한사코 그 틈을 메우고 싶고 완벽해지고 싶어하기도 한다.

30년뒤의 약속을 하면서 그때 58세가 된다고 하는 걸 보면 아직 주인공들은 20대라는 뜻

그렇게 팔팔하고 피가 뜨거운 청춘일때는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뭔가 빈틈이 적을 때이고 한두개의 빈틈이라면 기어이 메우고 완성시키고 싶은 욕망이 더 클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 빛나고 신나고 두근거리는 무언가를 찾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것도뭐라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저돌성에 상처받는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렇게 뛰어들어야만 풀리는 사람들은 뛰어들어야 한다. 아무리 붙들고 익숙함 무미건조함의 가치를 이야기해도 알 수 없다.

 

세상에 식지 않은  사랑이 없다고 하고 오히려 그렇게 사랑이 식어서 무덤덤해지면서 깊어지는 정이 더 의미있다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마고가 혼자 탄 놀이기구는 더 이상 다이나믹하지고 신나지도 않다 그냥 어지러울 뿐이다.

어느순간 그 떨림 설레임이 멀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서글프다.

 

봄날은 간다의  영악한 은수는 그걸 알았단다. 지금은 열병처럼 들떠서 서울과 강릉을  마치 집앞슈퍼가듯 달려가는 상우도 언젠가는 지루해지고 덤덤해질거라는 걸.. 그리고 은수도 마고처럼 그런것이 견디기 힘들었던것이 아닐까 왜냐면 이미 겪어봤으니까..

상우는 아직 열정이 식어서 덤덤해지고 무심해지는 걸 모르니까 아직도 저러는 거고

그 상우에게 아직도 어려서 다이나믹한 삶을 사랑을 찾는 모두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

 

영화 중간에 마고와 이웃 남자가 바에서 말로서 섹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마고의 미묘한 표정

그리고 남자의 나즈막한 목소리

그 어떤 영화의 섹스씬보다 더 로멘틱하고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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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좋아해줘서 고마워"

" 너를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

 

첫사랑이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그때의 내가 가장 순수했고 가장 열정적이었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상대가 아름다워서 너무 좋아서 기억하기보다는 그때의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 시절이 각별하게 기억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돌아보면 제일 순수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지독히도 힘들었고 음란했고 지루했던 시간이 첫사랑이지 싶다.

 

교복입은 아이들의 사랑

서로 감정을 몰라서 아니면 모른 척하느라 투닥거리던 시절

그런것들이 참 이쁘다 싶은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이젠 나이 든 어른의 입장에서 보니  그래도 반 꼴찌에게 공부를 시키느라 고생하는 우등생 여학생도 이쁘고  또 하란다고 열심히 하는 남학생도 이쁘고 그 사이에서 한 여학생에게 연정을 품은 나머지 찌질해 보이는 남학생들도 이쁘다

어쩌면 두 주인공이 이루어 지지 않았고 어떤 스킨쉽도 없지만 그래도 슬프지 않고 기분좋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꽤 괜찮다.

세상의 모든 첫사랑이 슬프게 마감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나이에 그냥 순수하게 열정적인 그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조금은 엇갈리고 미워하고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고 그때 그 감정에 충실한 나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것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줬다는 것에 감사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게 진정한 첫사랑의 가치가 아닐까

그래서 두 남녀가 엇갈리면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예전 내가 좋아했던 사람 혹시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시절 그 감정에 충실할 수 있던 걸 감사하고 기분좋게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좋아할때 이것저것 재거나 밀땅도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몰두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니라고 판단되면 기꺼어 보내줄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는 관계가 좋겠다.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기회는 언제든  올 수 있는것이므로

한떄 우리가 좋아했다는 것에 감사하며 돌아설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좋곘다.

누군가 이야기 했듯이 사랑할때가 아니라 헤어져야할때 순수하게 인간답게 헤어질 수 있는 것, 감정을 정리할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면 좋겠다..

이미 나는 지났고 내 아이들은.... ㅠ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더 좋은게 있으랴...

 

중간중간 민망한 "발사"장면이 나오긴 했지만..아이들과 보기에도 괜찮았다.

여기 나오는 남자주인공의 엄마도 대단하다.

아들이나 남편이나  집에만 오면 누드가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게 보통 내공이 아니다 싶다 왜 그 녀석은 집에서는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원...

휴지를 왜 그렇게 빨리 쓸까 하면서 그냥 양이 많은 걸 넣어주는 엄마를 보면서 여기 대만판 시원이 엄마가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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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딸내미가 푹 빠진 드라마 '아름다운 그대에게" 를 보는 뒤에서 몸을 배배 꼬다가 인터넷속을 헤매다가 보게된 영화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남고생들은 달달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데

지금 작은 화면속 고등학생은 불안하고 주저하고 허세부리고 상처받고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유없는 폭력이 나온다.

누군가 한 아이가 심하게 맞고 있고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세 친구가 있었다. 기태 희준 동윤

기태와 동윤은 중학교때부터 친구였고 희준은 고교에 와서 친구가 되었다.

기태는 고교에 와서 짱이 되어 아이들의 주목을 받고 아이들의 시선에 우쭐해한다

누군가의 오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격지심 혹은 친구에 대한 열등감, 질투, 허세.

뭐라고 한마디로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사건이 생겨나고 이러이러한 결과가 생겼다고 딱 단정하기 힘든 영화다.

사실 기태가 참 나쁜 녀석인데 정말 나쁜 녀석인데 어찌보면 가장 약하고 예민한 소년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하고 소통하고 의지하고 서로 위안이 되는 관계가 어쩌면 서로에  대한 가장 허약한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친구잖아."

 

"난 한번도 널 친구라고 생각한 적없어 너만 없으면 돼"

 

어쩌면 화가 나서 내뱉은 말들 내 자존심을 지키려고 내뱉은 말 ,혹은 하지 못한 말들, 침묵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닫게 한다.

마음 알맹이는 누구나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고 말하지 않아도 혹은 내가 반대로 행동하더라도 내 속뜻을 잘 알아주리라 믿는 것

그런데 그게 늘  다른 방향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진다.

내가 정말 누구보다 믿었고 내가 어떤 말을 하던 행동을 하던  내곁에 있을거라고 믿었던 친구에게 우리가 친구였던 적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사실 영화는 내내 뭔가 말하고 궁금하게 만들면서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왜 기태가 죽었는지 동윤이 어떻게 했었는지 희준의 실망은 무엇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세 소년의 우정을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허약한 관계  불안한 모습이 주된 흐름이다.

서로에게 불신을 가지면서도  각각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서로에 대한 관계는 점점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냥 퉁 터놓으면 해결될듯한 문제들이 서로가 자존심을 지키고 진실을 말하지 않고 서로가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음으로서 점점 균열이 가고 마침내 파괴되어버린다.

 

이런 친구사이의 권력관계 혹은 힘에 의한 균형이 비단 남학생들에게만 있는 일일까

어쩌면 영화속 사내녀석들처럼 주먹질을 하고 얼굴이 터지는 일이라면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할테지만 만약 여학생의 일이라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동이나 질시 무시는 더 무시무시할거라는 생각도 든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안으로 곪으면서 속살을 파먹어 가며 썩어갈테니까

 

사람사이의 관계의 연약함은 청소녁기에만 해당되는 문제도 아닐것이다. 누구도 입을 열지않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고 ... 내가 보는 것만 믿으며 상대에 대해 불만만 쌓아가는 건 어른들의 세상에서도 마찬기지로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금을 긋고 더 이상 내 구역으로 들어오기를 원치 않으며 나만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라고 믿어버리며 관게 형성에 콤플렉스나 나약함을 감추며 허세를 부리는 것 그리고 상대의 행동을 찌질하다고 무시해버리는 것 그런 것들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않을까

청소년기에 겪었다고 그 상처가 훈장이 되어 이후 문제들을 면제시켜주지는 않는다 여전히 같은 오해를 하고 같은 상처를 입고 같은 방어벽을 쌓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참 단순하고 유치해서 어쩌면 저렇게 멍청할까 싶은 사람의 마음이 그 속에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걸 배운다.

정말 친한 세친구인데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함께 야구를 하고 몰려다니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친구를 위해 여자친구의 대쉬를 거부할만큼 서로를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되어버렸다. 모두 흩어지고 하나는 죽어버리고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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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 이런 또래의 아이를 두게될 입장에서도 영화가 쉽지 않다.

내 아이가 이 셋중 누군가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나

누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

드러나는 모습과는 다르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입는다

자기 상처가 너무 아프고 커서 남에게 내가 상처를 준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

나는 저를 믿었는데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믿음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기대가 어쩌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런 상처는 친구사이에서도 가족사이에서도 존재한다.

내 아이가 입은 상처 그리고 내 아이가 입힌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내 아이만 감싸고 내 아이의 상처만 들여다 보면서 아이의 상처를 더 크게 키우는 건 아닐까

 

화면이 검어지고 엔딩이 올라가는데 마음이 먹먹하다.

 

 

사족....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꽤 괜찮구나싶다. 건축학개론에서는 그저 순수하고 어눌하기만한 순

            진남을 그렇게 잘 연기하더니 여기서는 순수한 얼굴 비열한 얼굴  무서울만치 위압적인

           얼굴까지 보여준다. 친구들을 엄밀하게 협박하면서 뺨을 때리는  무심한척  야비한 얼굴과

           친구의 무시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까지 참 다양하다.

             꽤 괜찮으 배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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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소녀가 사랑에 빠진다. 어딘가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따뜻하고 심성 고와 보이는 남자에게 관심이 가고 사랑에 빠진다.

둘의 사랑이 조금씩 쌓여가던 중 남자는 망설이다 고백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사실,,, 나는 늑대야

하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소녀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늑대라는 것인데.. 그게 어쨌단 말이야

그리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둘의 사랑은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온전히 둘만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한다.

그러나 동물의 본능을 가진 남자는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죽었다.

그리고 소녀는 여자가 되어 두 아이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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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를 낳았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육아서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고 엄마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만  엄마의 혼란 막막함을 만져주는 위로는 없다

이제 막 스무해 조금 넘게 살아왔고 누구에게 의지할 곳도 없는 엄마로서는 더욱 막막하다

아이가 열이나고 자꾸 보채고 사고를 치고  이유없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도 엄마는 막막하기만하다

게다가 이 아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존재인 늑대아이들

엄마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혹은 닥칠지 모르는 위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결심한다. 아빠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

자연속에서 최대한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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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인가와 떨어진 곳에서 생활은 시작된다.

넉넉하지 않는 형편이라 농작물을 키워서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

여기서도 서툰 엄마는 늘 실패다.

책을 보고 익힌 농사일은  제대로 된 수확물을 내주지 않는다.

책을 보고 익힌 육아가 매번 실수투성이었던것처럼  농사일 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 이웃의 고약해보였던 노인의 혹독한 도움과 이웃의 정으로 마을 사람과 소통하면서 농산물을 아이들을 키워낸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떤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혼자 동동거리고 힘들어했던 엄마는 이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과 단절되지 않은 연결이 아이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간다.

  이렇게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늑대의 본능에도 충실하면서도 인간에 대해 호기심을 썸네일가진다.

큰 딸  유키는 천방지축이던 유년기를 지나고 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점점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른 무리속에 섞여 튀지 않는건  누구와도 비슷해 보이는 것 그걸 원한다

내성적이던 둘째는 쉽게 섞이지 못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늙은 늑대를 만나 자기의 정체성을 깨달아간다.

학교 보다는 산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성장한다.

썸네일

                                                                    

 

천둥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던 날

유키는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성장을 결심하고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엄마를 떠나간다.

아무것도 손에서 놓지 못하던

아니 내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벼랑으로 떨어질것만 같은 연약한 아기들의 손을 놓는 법을 하나(엄마)는 배운다.

어쩌면 아이들은 탯줄을 끊고 나오는 그 순간부터 하나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길 갈망할지도 모른다

다만 엄마는 열달을 함께한 그 시간을 잊지 못하고 한시라도 내가 눈을 돌리면 손을 놓으면 아이가 어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아이가 어느순간 내가 알 수 없는 막연한 눈빛으로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면 엄마는 불안하다.

아이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 이제 내 울타리를 나갈지도 모른다느 것

그런데 그런 분리불안을 아이보다 엄마가 더 겁내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 곁을 떠나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어떤 위험에 빠질지 엄마는 혼자 상상하고 몸서리치고 차마 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도 비오는 날 온 산을 헤메며 아메를 불렀던거 같다.

아직은 여리고 보드라운 내 새끼를 어쩌면 ,,,, 어쩌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이와 함께 애니매이션을... 하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막막한 마음으로 나온다.

남들과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세상에서 혼자의 몸으로 아이들앞에 닥칠지 모르는 모든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하는 엄마

하나가 가졌을 불안과 막막함이 막 온몸으로 느껴지고 하나가 아메를 이제 보내줄때 느꼈을 막막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 그걸 함께 느낀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성장하고 세상에 살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늑대 아이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흐르는 노래가 .. 참 처연하고 촌스러운데 그 가사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영화 보면서 참았던 눈물이 나려고 한다.

조금 상투적이고 촌스러운 그 가사가 바로 영화 내내 막막하게 공감했던 하나의 마음같아서..

 

대사 없는 하나와 늑대 인간의 사랑

커텐이 휘날리던 교실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고백하던 유끼

그 아이르 가렸다 보였다 했던 커텐의 펄럭임

그리고 쓸쓸하지만 단단하게 등을 보이며 산으로 걸어가는 아메의 뒷모습

늘 웃어주던 하나의 코믹하기도 한 표정

참 아름다운 에니매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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