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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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뭐 이런 청춘들이 다 있지?

도데체 이게 뭐야? 영화야? 다큐야? 장난해?

영화를 보는 초반에 내 머리속을 스쳐간 것들이다,

 

 

파리, 로마, 이스탄불, 런던까지…
 전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무일푼 잉여들의 물물교환 유럽 평정기!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호재(24), 하비(22), 현학(20), 휘(20).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잉여로운(?) 20대 보내기를 위해 네 친구들은
 단돈 80만원과 카메라 1대만 들고 무작정 유럽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잉여4’는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물물교환'으로 무료숙식을 제공받아
 1년간 전 유럽을 일주하겠다는 야망과 동시에,
 마지막에는 뮤직비디오를 한편 만들어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 첫발을 내딛는 데…
 
 하지만 처음 계획과 달리 이들을 찾아주는 곳은 한 곳도 없고,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추위를 피해 남쪽인 이탈리아 로마까지 히치하이킹을 떠나게 되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며 히치하이킹을 이어가던 이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터키의 이스탄불, 그들의 마지막 종착역인 영국의 런던까지
 단 한편의 ‘홍보영상’으로 ‘전 유럽 호스텔계의 슈퍼스타’가 된 ‘잉여4’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뮤직비디오 제작… 남은 여행일정은 단 5일.
 
 과연 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이들의 파란만장한 365일간의 여정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잉여: 쓰고 남은 나머지

        어딘가 쓰여야 하는데 쓰일 곳이 없어 남아도는 것

        할일 없다, 쓸일 없다, 필요없다.

        (네이버 어학사전및 지식인 인용)

 

이런 무모한 짓을 실제로 하는 청춘이 있구나

이런 무모한 도전이 통하는 세상이 아직 존재하는구나

어디서 어떤 스펙을 가지고 어떤 경험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의 청년에게  동영상제작을 맡기는 숙박업자들도 대단하고 도 적은 장비 적은 인워너 열악한 환경에서 그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청춘들도  대단하다

도데체???

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영화는 열악한 사운드와 영상에도 몰입도가 대단하고 나중엔 뭉클한 감동까지 남긴다,

그들이 성공해서 뭉클한게 아니다,

결국 계획대로 모든일이 진행되어서도 아니다,

누구나 귓등으로 흘려넘길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꾸역꾸역 해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잉여짓 조차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사실 고난을 겪고 험난한 여정을 겪은 주인공은 나중에 환골탈퇴해서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게 우리가 아는 교훈의 정석이건만 이들은  모든 일을 겪고도 여전히 잉여처럼 여유롭다

이게 나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친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무한도전이다,

 

내가 젊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내가 20대에 이걸 봤다면 질투와 부러움으로 미치고 팔짝 뛰었겠지만 이제 불혹도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서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내 아이가 이런 길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쬐끔 고민하고 등을 멀어줄 준비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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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말은 태어나고 개중엔 죽어가는 것도 있죠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변해가는 말도 있습니다,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아어지고 싶다는 소망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대도해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전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말의 바다

그것은 끝없이 넓지요

사전이란 그 대해에 떠 있는 한척의 배

사람들은 사전이란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기분을 적절히 나타내는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일한 말을 찾는 기적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어서 서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대도해'입니다,

 

 

사전-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말을 규칙적으로 정의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틈을 메우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도구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 말을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말'의 의미가 나와 그가 다를 수 있다, 서로의 말을 짐작하기만 할 뿐 진심을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면서 그 모른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 그것은 말이고 그 말의 쓰임을 알려주는 건 사전이다,

'말"은 내가 경험한 것 만큼 알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의 말을 알고는 있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것이 된다, 마지메가 연서를 쓰고 가규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용기내어 마음을 전하고 난 뒤에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처럼 말이다,

"말'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말들 내 몸을 통해 받아들인 말을 모아서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 - 사랑, 행복, 아이, 꿈 , 지루함, 즐거움, 질서, 식사 등등의 단어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면 어떨까

 

무심코 본 영화는 정말 정말 좋았다,

나는 일본 영화가 좋았다 별거 아닌걸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그 지독함이 좋았고 어떤 클라이막스 없이 그저 작은 떨림으로 이어지는 플롯도 좋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본영화 특성에 사전만들기라는 정말 세심하고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아 사전은 저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모든 것이 기게화가 되고 컴퓨터와 로봇의 작업이 일반적이 되어버린 지금 저렇게 사람의 손끝에서 머리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진중한 엉덩이의 힘으로 완성되는 작업이 있다는 것이 새로운 신기술을 보는 것 이상 경이롭고 황홀했다,

내가 변태스러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극 세심하게 들어가는 작업의 치밀함과 진중함이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인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각각 인물의 섬세함은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더 잘 표현하고 매력적이지만 (꼭 오다기리 조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책 속의 인물은 어딘가 엉성하고 경박하고 비어있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사전을 만드는 세세한 과정은 책을 통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장면들이 왜 그런것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으나 흐름이 매끄러운건 영화쪽이다.

 

마지메의 연서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장면이나  니시오카의  술마신 후의 프로포즈  등을 보면 굳이 말이 아니어도 서로에게 전해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 언어적인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언어가 함께 일때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결국 말을 통해 글을 통해 즉 언어를 통해 두 사람은 각자의 인연과 연결되고 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대도해가 완성되고 그 축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지메군과 아라키선생은 다시 새로운 개정작업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또 이야기한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인 모양이다,

이제는 누구도 뒤져 보지 않아서 서가 한 쪽에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자리만 차지 하고 있을 사전이 이렇게 의미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칠 일이라는 것이 세삼스럽고 이런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드는 그들의 행동이 부럽다,

 

나는 말을 통해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까

그 소통은 나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고 서로에게 닿아서 이어지고 있는 걸까

말이  글이 세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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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통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위와 같은 인용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  폴의 아빠는 아틸라 마르셀이고 폴을 치유해주는 부인이 프루스트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고  폴이 과거의 기억을  꺼집어 내는 낚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차와 마들렌이다.

들은 풍월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멋진 오마주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폴은 쌍둥이같이 닮은 두명의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젊은 연주가상  대회에 늘 내보내지만 이제 서른 두살 그 대회 자격이 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폴은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말을 잃었고 (간혹 말을 하기는 했다) 그저 이모들의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우연히 알게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마담을 만나 독한 차와 마들렌으로 순간 정신을 잃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수면아래에 꼭꼭 넣어두었던 기억을 하나 둘 기억해낸다.

폴이 프루스트 부인을 만나기전 두 이모와 노신사들의 대사에서 얼핏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확실하진 않지만 부모의 죽음을 그렇게 묻어두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지만 지금 현재 어떤 문제도 없으니 굳이 꺼집어 내어 상처가 될 지 모를 문제는 묻어두자고 두 이모는 말한다.

그래서 조금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 평화롭게 살던 폴이었지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자기의 기억속에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모습 그리고 어렴풋한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행 기억앞에서 폴은 흐느껴 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걸 마주하는 것은 몹시 힘들기때문에 누구나 가능하면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지금 이순간 직면하지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어쩌면 마주하기 두려워서 속에 꾸역꾸역 눌러담아두기때문에 쉽게 딱지가 앉지 않고 늘 짓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눌러진 상처나 외면하는 과거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모르기때문에 지금이 편안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나의 온전한 삶이 아닌지도 모른다. 폴처럼 자기의 과거를 모르고 기억을 알지 못해서 늘 무기력하고 어딘가 비어버린 모습이다.

영화에서 폴의 과거는 뮤지컬처럼 경쾌하고 예쁜 색감으로 표현된다.

갓 태어난 폴에게 각자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담아 미래를 예언하고 소원하는 이모들이나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할거라고 한다.

좀 더 자라 해변에서 엄마는 부모에게 강요받은 피아노 대신 다른 삶을 살거라고 하며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불안한 개구리들의 연주와 합창은 아빠와 엄마를 오해하게도 하지만 그것도 폴의 기억이고 과거의 한 부분이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폴의 과거는 꼭 인도영화처럼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며 행복하고 아름답다. 음악도 좋지만 나는 그 색감이 끝내준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억을 찾고 콩쿨에서 멋지게 연주도 해낸 폴은 마지막 프루스트 부인이 떠나기전 남겨준 차를 먹고  이모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는 않지만 폴은 행복하다.

새롭게 알게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자기를 사랑했는지를 알고 꽤 괜찮은 아빠가 된다.

 

꾸역꾸역 눌러담아놓은 기억은 치유가 될 수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나의 내면을 직면하라고 한다. 심리치유가 별것 아니다 내가 나를 용기있게 마주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면 된다,.

과거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나를 돌아보고 마주하면 더이상 그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바라봐 주고 모듬어주고 나면 현재를 살아갈 힘도 생긴다.

상담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보고 그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면서 눌렸던 억압을 해소하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나는 과거를 사는게 아니고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나서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건강하게 살아내야하는게 더 중요한 거라 믿는다.

폴도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고 이제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행복하고  이모들이 혐오하는 중국인 아내와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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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는 물리적 신체적인 접촉도 있고 눈빛 무언의 몸짓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방식 타인에대한 오해등도 있다. 어떤 관습이나 오래 묵은 상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도 폭력이 될 수 있고 나 아니면 상관없다는 방임과 무관심도 폭력이다.

세상 어떤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외딴 바닷가 마을 엄마가 도망가고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도희는 모든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와 할머니만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눈감아주는 마을 사람들 그러다보니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믿어버리고 함부로 대하는 학교 친구들 모두가 폭력이다.

그 마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좌천된 파출소장 영남이 내려온다.

이곳에서는 타인인 영남의 눈에는 도희에게 가하는 다른 모든 사람의 행동이 비정상적이고 그런 오랜 관습과 행동에 익숙해져버린 도희조차  정상이 아니다.

영남의 도희의 상처를 처음으로 들여봐 준 사람이다.

하지만 영남역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너무 커서 밤마다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만큼 피폐한 상태이다.

그러나 직업윤리인지 개인적인 상식과 가치관에서인지는 몰라도 영남은 도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고 마을에 관습처럼 무심해진 폭력에 맞서면서 점점 외로워진다.

영화에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도희가 당하는 물리적인 폭력

나와 다르고 약한 존재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폭력(이주 노동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다르고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태도들( 영남의 취향에 대한 마을 사람들 경찰동기들의 태도들)

그리고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도덕적 법률적인 사소한 위반이나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구습까지 영화  구석구석 너무 폭력적이어서 충격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보는 내내 너무너무 아프다.

영화는 내내 보여지는 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폭력이 오래 노출되고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은 점차 별거 아닌것이 되고 별거 아닌것은 무시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 되면서 남이 당하는 건 나만 아니면 그만이고 내가 당하는 건 무언가 내게 잘못이 있을거라는 죄책감과 무기력으로 되풀이된다.

도희는 폭력이 익숙해져서 너무나 무감하고 당연하다.

도희가 말한다. 아무리 맞아도 춤한번 추고 나면 다 잊을 수 있다고...

그건 극복이 아니고 그냥 덮어두는 것일뿐이고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일뿐이다.

그렇게 피해에 익숙해진 도희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자기는 나쁜 아이니까 맞아야 한다는 자학적인 행동이나 마지막의 반전은 그런 도희를 잘 보여준다. 살기위해서 괴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받고 지지를 받을 경험이 없었던 도희는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 자기를 방어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려한다.

폭력이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지 도희는 온몸으로 모든 행동에서 보여준다.

 

영남은 자신도 혼자 서기 힘들만큼 피폐해졌다.

자기 잘못은 아닌데 대다수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불이익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다름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없는 폐쇄적이고 고지식한 사회에서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힘들다. 밤마다 소주를 벌컥거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점점 그녀가 둘러싼 껍질을 두껴워지기만 한다.

하지만 내 고통에 흔들리는 영남은 내가 힘들고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도 도희에게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아는척 단단한 척 손을 내밀었지만 도희와 함께 할수록 그리고 그녀가 찾아와 흔들릴때도 도희에게 내민 손을 잡아준다.

성숙하고 바르게 서있을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족한 내 도움을 바라는 상대를 보면서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남이 참 아픔답다.

 

살기위해 괴물이 되는 건 도희만이 아니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아픈 어머니에게 가고 싶어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스스로를 위해 순간 괴물이 된다. 살기위해서 내 속에 있던 눌러놓았던 괴물을 꺼내야 하는 순간은 얼마나 또 비참할까... 괴물을 꺼집어 내어 순간을 넘기지만 그 괴물이 다시 사라지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은 비참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철창에 갇힌 노동자의 눈빛이 슬프다.

스스로 괴물처럼 영악하게 굴어  영남을 구해낸  도희도 너무 슬프고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게 없다는 것

자꾸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살기위해서 괴물이  또 될 수도 잆다는 생각과 그러다 영영 괴물이 되어 나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갈등으로 괴물은 무서우면서 슬픈 존재가 된다.

영남도 괴물이 되었었던 도희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순간 깨닫는다.

내가 지금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그 괴믈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리고 나는 괴물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서툴고 불안하지만 둘은 함께한다.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누군가는 살기위해 괴물이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 괴물을 두려워하고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

내가 피하고 방임하면서 괴물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슬프게 발톱을 세우고 있을 거라는 것...

그러다 내가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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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작품은 영화화 되기 참 쉽다는 생각을 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대사들 하지만 그 속에 꽉꽉 들어찬 의미들

휙휙 바뀌는 장면들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하는 매력이 있다.

완득이도 그랬고 이번 우아한 거짓말도 그렇다.

원작을 충분히 살리면서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섬세함도 잘 살렸다.

세 아이의 연기도 좋았고 마지막의 다섯번째 털실 뭉치도 좋았다.

그 뭉치가 누구를 향한것인지 누구를 위로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까지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온통 좋은 것 투성이구나....

 

아줌마들끼리 한번 그리고 아이와 한번 두번을 보았는데 솔직히 울지 못했다.

함께 간 아줌마들이 휴지 한통을 다 쓰면서 울어대는 동안 그저 먹먹하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악착같이 참고 있었던 거같기도 하고 이렇게 허물어질 수 없다는  참 필요없는 자존심인것도 같다.

 

괜찮다는 천지의 거짓말에 모두는 괜찮은 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순 개뻥이다.

내가 낳은 아이라도, 한 배를 타고 난 자매끼리도 그리고 천하에 없는 베프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때문에 독심술을 할 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고 말 뿐이다, 그 짐작조차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괜찮다니까 괜찮을거야.. 괜히 아닌게 아닐까 고민할 필요없지.. 괜히 성가시게 일 만들 필요없어. 정말 힘들면 말하겠지.. 그때 가서 봐줘도 괜찮아. 독립심을 키워야지. 내 삶도 허덕거리는데 누굴 위로하겠어...

잘못된건 아니다. 누구나 내 손톱밑에 상처를 가장 아파한대도 이기적이라 말할 수 없다.

삶이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렇게 팍팍하고 건조하고 하루하루 견디는 힘만 남겨줄 뿐이다.

천지 엄마도 천지의 순진한 표정을 믿었고 만지도 천지나 자기나 별 다르게 없을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화영이 조차 자신을 견뎌내는 천지가 더 강해보여서 더 미웠을 수도 있다.

미라는 제 무게에 허덕이고 있으니 조금 더 무게가 가벼워보이는 천지가 어쩌면 가장 밉고 싫었다는게 이해가 간다.

사실 소설을 보면서 난 미라가 참 싫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자기가 가장 정의롭다는 듯 난 너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니가 거절한거야.. 하는 값싼 자존심을 내세우는 캐릭터였다. 흔히 왕따가 있는 교실에서 내가 아니니까 난 나쁘게 한건 아니까. 난 뭐라고 충고라도 했으니까.. 하고 자기위안 자기 변명에 만족하는 젤 저질스런 계집애처럼 보였다. 화연이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보였고 상처가 보였는데.. 사실 미라의 상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자기 못난 아비때문에 친구에게 그럴 수 있을까는 생각 못했고 (책에서 그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절대 자기는 나쁘지 않다고 믿는 젤 재수없는 기집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죽은 천지못지않게 그리고 화연이 못지 않게 상처가 깊은 아이가 미라였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내가 받은 아픔이 너무 커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었다. 천지가 얼마나 아픈지 몰랐으니까

그저 아직도 철없고  화연이를 견뎌내는 천지가 더 무섭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평범하지만 상처가 더 깊은 아이였다.

미라의 아픈 속을 들여다 봐주는 건 그래도 언니 미란이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만지와는 다르게 엄마처럼 동생을 보듬는 미란이가 있어 미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겠구나 싶어 다행이라 싶었다.

 

영화에서는 책에서보다 만지가 입체적으로 나왔다.

책에서는 동생의 죽음을 알고 싶어하는 언니.

동생과는 다르게 교우관계나 성격도 괜찮고 만사 쿨한 멋진 하지만 조금 냉정한 언니고 딸이란 생각을 했었다. 꽤 괜찮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지도 참 많이 아팠다.

겨우 열여섯 정도 된 아이가 보여주는 쿨한 모습이 아팠다.

쿨하다는 건 좋은 거 아니다.

난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난 거부당하고 싶지않다. 내가 따를 당하는 거 아니구 내가 너희 모두를 따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장 소심하고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저 어린게 얼마나 상처가 깊으면 쿨하게 사는 법을 배웠을까

이상한 친구는 안사귀면 되고 그래서 친구가없으면 혼자 다니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싫은건 안하면 그만이고...

상처가 없는 만큼 관심도 없는 거고 ...

만지도 천지만큼 아프고 힘든 아이인데 그 요령까지도 이미 알아버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같았다. 엄마도 이해해야하고 동생도 보살펴야하고 그래서 내 감정같은 건 이미 박제시켜 버려야 하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있고..

차라리 화연이처럼 극악스럽게 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자기의 약한면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해소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엔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화연인 크게 너무 사악하고 그래서 자기가 다시 공격받고 욕을 먹은 만큼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지는 이미  욕을 먹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지 않은채 자라버려서 그게 마음이 아프다.

 

함께 영화를 본 작은 아이가 그랬다.

천지 언니가 꼭 우리언니같애.

그닥 친구한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도 많고 쿨하고 뭐든 나보다 나은거 같고 잘아는 거 같은게 우리 언니같애.

그래 나도 만지를 보면서 그 생각 했어.

썩 만족할만큼은 아니지만 알아서 잘하는, 그래서 손이 덜 가서 편하다고만 생각했고 가끔 기집애가 냉정하고 깍쟁이같다고 여긴 내딸이 어쩌면 내가 신경 더 쓰는 막둥이보다 더 아픈건 아닐까. 내가 못보고 안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친구문제로 징징거리고 소리치고 아파하는 딸은 뭐라고 조언도 하고 함께 욕도 하면서 견디게 했는데 어떤 문제도 입밖에 내지 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큰 딸을 내가 너무 믿고 둔건 아닐까  싶어졌다.

아직 채 15년도 못산 아이들은 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찌질해도 상관없고  대책없이 굴어도 상관없고  미친듯이 빠지고 상처도 입고 또 돌아서면 좋아라 웃어제끼기도 했으면 좋겠다.  저게 정말 호르몬의 문제가 많구나. 미친 중딩 맞구나 싶게 그렇게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걸 견디는 힘도 내게 있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리라... 하고 도를 닦을 힘도..

 

결론은 영화가 꽤 괜찮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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