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상대는 가족이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고 동시에 나를 너무 몰라서 외롭다,

 

일찍 죽은 형의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료타네 가족은 부모님 집으로 간다,

아이가 달린 여자와  결혼한 이후  아직 어색한 관계인 모양이다,

그러나 더 어색해 하는 건 아내나 아들보다 료타 자신이다,

어떻게든  하룻밤을 자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궁리하지만 오히려 아내는 담담하다.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음식을 하며 수다를 떤다,

그 수다의 상대는 결혼한 딸이고 남편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고 본인 관심이 없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가 오면 할머니는 깍듯하게 맞이한다,

서로가 예의바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함꼐 음식준비를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쉽게 어울린다. 음식이 모자를까 스시를 주문하고 배달온 오랜 이웃인 스시집 아들과 수다를 떨고 함께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다,

사위는 어색함인지 무사태평인지 식사후 잠들어버리고  아버지와 료타는 둘만 남을까 전전긍긍이고 어머니는 그래도 부자지간에 무언가 대화를 하기를 바라며 자리를 비운다,

그러나 어색하게 피하거나 무의미하게 부딪칠 뿐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지 못한다,

형의 무덤을 다녀오고 아들이 출세해서 뭔가 뻐기가 싶은 어머니의 속물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런 어머니가 귀찮고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죄스러운 아들도 있고  무심하게 엄마의 도움을 당연시 하는 딸이 있고 어색한 가운데서 예의는 다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나누기는 힘든 며느리도 있다,

오후 큰 아들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사내가 찾아온다,

큰 아들이 구해준 그때 물에 빠졌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뭐하는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취직도 안되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위해 내 귀하고 잘난 아들이 죽었다는 걸 부모는 아직도 못견뎌하면서

잔인하게 그 청년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자식은 부모곁은 떠나면서 마음편하게 안도하고 부모는 또 다시 찾아올 자식을 벌써 기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게 상대를 향한 마음은 늘 엇갈리고 같은 물질 같은 성질을 가지면서도 그 부피와 색 냄새가 미묘하게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어려워한다,

그게 가족이다,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은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해보이기도 하고 선해보이기도 하다,

료타도  아내도 그저 부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운 누부부는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막상 마주하면서는 데면데면하다,

 

 

따로 살면서 늘  엄마는 아빠에게 자주  전화 좀 드리라고 했었다, 자주 내려오지는 못해도 전화라도 자주하라고.. 꼭 내가 하라고 하라고 해야 마저 못해나냐고... 늘 잔소리였다

어느순간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전화를 자주하라고 어색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니 엄마는 얼마나 너들  걱정하는지 아느냐,. 늘 니들 생각밖에 없는 엄마인데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줘라,

그냥 흘려들었다,

영화속에서 료타도 늙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그 잔소리를 세삼스러운 표정으로 듣지망 아마 나처럼 흘려들었을 것이다,

자식도 살아가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젊다고 모든 게 다 견딜만한것도 아니고 이제는 젊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내 앞의 삶에 허덕이다보면 지금 이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부모는 가족은 잊히기 마련이다, 마음이 없는게 아니라  여우가 없다, 속을 비워야 무언가가 들어올텐데 이것저것 정리되지도 못한 것들이 뒤죽박죽 속을 꽉 채우고 있다, 그 복잡하고 찌질한 속내를 부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건  그 나름의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 배려가 부모에게는 무심함이고 무관심이고 서운함이다,

조금만 조금만 걸어도 걸어도 둘 사이의 거리를 가까워지지 않는다,

영화속 긴 계단과 언덕길처럼 그렇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보인다,

저 계단 위에 부모가 있고 저 언덕위에 그가 있음을 알지만 그 아득한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하거나 언젠가 다시 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없이 물처럼 흘러가지만

계속 무언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터져봐야 별거 아닌 거라는 걸 알지만 그 갈등의 고조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꼭 내 부모와 나의 관계처럼 예리하게 다가온다,

가족끼리만 아는 지뢰밭이 있고 가족끼리만 아는 지름길이 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안되는 지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해야하는 지점이 어니딘지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된다는 지침같은 것들

이미 익숙해진 가족끼리 모두 알아서 제대로 피하고 모른 척하고 있지만 무심코 본 모습이 드러나거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로 어느 순간 지뢰를 밟아버리거나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버리는 용심을 부릴 때가 있다,

그냥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혹은 이젠 괜찮지 않을까  행여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러나 모든 것을 덮어두고 모른 척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가 잘 안다고 여기는 내 엄마의 섬뜩한 모습 혹은 정신 나간거 같은 모습이 순간 낯설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언제나 벽같은 아버지는 늙고 쪼그라들어가고 있고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는 배우자나 내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내 아들도 언젠가 타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나도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뭘까 한 참을 생각해본다,

가장 가까운 존재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의지 되는 존재

그래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

그냥 내가 아는 걸 인정하고 모르는 건 새롭게 알아가고

또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언제나 화목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웃고 미소짓고 걱정하고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도와준다,

언제나 다독이고 이해하고 배려한다,

우리는 그런 만화를 보고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가족이라고 묶이는 순간 그런 화목함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족이 그런 이상적이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노력하지 않고 이상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가족이라면 따라와야하는 풍경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은 내탓이 아니었고

그건 왠지 죄스러움이기도 했고 불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노력을 필요로 하고 간혹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냥 데면데면할 수도 있고 서로 서운 할 수 도 있고 목청을 올리며 싸울 수도 있고 속물스러움을 나누면서도 그려려니 하고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충고도 하고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누구보다 진심이어야 하는게 오히려 가족이라는 걸

가족속에서 태어나고 또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지 40년이 넘어서 조금씩 알아간다,

가족은 힘이지만 독이다,

잘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이고 내게 든든한 뒷배경이지만 언제 그 힘이 나를 압도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가족관이 꽤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관계든 노력없이 애씀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하루하루 나이들면서 계속 꺠달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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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셋이 나온다고 모든 극이 치정극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사실

남자 하나 여자둘 게다가 부부에 끼어든 한명의 여자

이 관계가 진부하다면 진부하지만 상투적이지 않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당신의 봄은 언제인가요?

 

영화는 내내 여름장면을 보여준다,

여름 밤의 개구리 울음소리

연신 부채질을 하고 조금은 흐트르지게 치맛자락을 걷어 올린 여자들

물안개

짙은 초록으로 덮힌 논들

그 여름속에 봄을 보여준다,

 

병색이 짙어 더 이상 삶에 미련을 보이지 않는 남편을 이해 모델을 구해오고

그 곁에서 다가가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를 지키면서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

생애 마지막 작업을 통해서 진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예술보다는 삶에서 진짜를 찾아내고 자신의 삶을 지켜낸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된 조각가

이들 부부에 끼어들어 인생의 봄을 다시 경험하고 성장하는 여자

 

참 상투적이랄 수 있고 흔한 긴장감 (악인은 악인이라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흔하지만 불쾌한 긴장감)도 있지만 영화는 멋있다

여름을 나타내는 색감 그리고 치맛자락들 논길 물안개  여름밤 다리위의 기다림 등등

소소한 풍경에서 어떤 격정적인 장면 없이 세 사람의 긴장감 불안 그리고 그 속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봄냄새가 화면 가득하다

세 사람 누구도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잠깐 나오는 조연들도 감정을 절제한다,

그 절재되고 한번 접어져 있는 감정선이 무심한 눈빛이나 손짓 몸짓을 통해 텨져나온다고 할까

서로가 자기 감정을 터뜨리는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결대로 만져주는데 그 조용한 순간 감정이 터져나오고 보는 나는 언제 숨을 쉬어야 하나 진장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와 전혀 다르게 말없이 정숙하고 조용한 아내역을 한 김서형과

여기서 처음 보지만 그대로 송이 엄마이고 순수한 여자인 이유영

이 두사람의 연기가 그냥 딱 영화에 맞춤

(그에 비해 남자 주인공은 전형적이랄 수 밖에 없지만 그대로 마지막에서는 잘 어울어졌다)

고즈넉한 여름 저녁

한바탕 열기는 식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뜨거움의 뒷자락같은 영화다

풍경도 고즈넉하고 그 풍경속 사람들도 고즈넉하다,

 

아무 기대없이 보고 눈물이 났던 영화

나의 봄은 언제였던지 한번 생각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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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ILLCUT

 

 

꿈도 미래도 모국어도 허락되지 않은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그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문학의 뒤에 숨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이 아닌가 고민한다고도 했다,

무어가 그리 부끄럽냐고  대놓고 물어보았다면 무어라 대답했을까?

그냥 그렇게 어정쩡하게 미소를 남기고 혼자 또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큰 이념과 시대적 사명보다 시를 쓰는 일이

사람을 위로하고 마음을 달래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결국 그 모든 일이 부끄럽다고 했다,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런 자신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무엇이든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해져버리고 가벼워진 요즘

매사가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반성을 하고 돌아보는 시인의 이야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는 흑백이어서 좋았고 주인공이 강하늘이어서 좋았고

나즈막히 시를 암송하는 목소리가 또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가 알아서 좋았다,

감독은 어쩌면 한편의 시집을 만들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흑백 화면속에 별과 골목길 고향집 그리고 친한 벗과  설레는 이성의 모습을 시처럼 뿌려놓는다,

다만 인물이 너무 웅장하고 경건하다

제목을 '동주'라고 했다면 우리는 시인 동주가 아니라 인간 동주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계속 어리버리하거나 경건하거나  수줍은 동주만을 보여준다,

참고한 도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 "시인 동주"속의 동주는 잘 웃고  말이 많지는 않지만 자기 의견을 뚜렷하게 드러낼 줄도 알고 앞날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는 인물이었는데

영화속의 '동주'는 너무 수동적이다, 게다가 몽규와의 대비점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몰라도 시인가 운동가라는 뚜렷한 대비가 조금은 상투적이다,

 

책속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습이 그때 암울한 일제강점기 막바지와 젼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어떤 이상을 위해 개인은 보이지 않게 되고

문리대를 나오면 앞날이 불투명하고 (의전이나 제국대 법대를 선호하고 )

전체의 질서가 개인의 욕구보다 우선시되며 감정보다는 이성이 지배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추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때와 다를게 없다는 씁쓸한 생각도 들면서 지금 여기 어딘가에도 염치를 알고 부끄러워하며 혼자 끊임없이 참회하는 어떤이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무심히 보는 줄 알았던 아이의 영화평

너무 슬펐어

그리고 마지막 두 사람 약력이 올라갈 때는 눈물이 났어,,

나두 그랬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점점 염치없어지는데 도리어 무심해서  주저해서 부끄럽다고 염치없다고 하는 이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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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1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보셨군요. 어서 봐야겠어요. 윤동주문학관에서의 감흥이 떠오릅니다

푸른희망 2016-02-20 16:52   좋아요 0 | URL
꼭 보셔요..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 지더군요
참 문학관에서 찍은 사진 봤어요..
지금 이 계절엔 너무 쓸쓸할거 같아서 조금 따뜻해지면 가보려구요~~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살고 있는 영재는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나이가 들어 나갈 때가 된 것

그러나 영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종교단체에서 장학금을 노리며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엄마는 아빠대신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고 집을 나가버렸다

동생은 아직 어리고  아버지는 언제든 기회를 봐서 동생도 영재가 있는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영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삭의 집이 마냥 편한 것도 아니다,

영재는 이미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 알고 누구에게 잘 대해줘야 하는 지를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알고

누구나 생각하듯 착한 소년이 아니라 구호품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속에는 그리 악한 사람이 존재 하지 않는다

영재의 아버지는 제외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언제든 누구에게든 자식을 떠넘기고 싶어하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짐승도 아직 어린 제 새끼는 돌보는데,,,

영재가 있는 그룹홈 부모들은 글쎄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속 불편했다,

그들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사명감이나 깊은 애정이 아니다,

9 to 5의 직업생활같다,

아이들이 있으니 의무감으로 돌보고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하고 미운 짓을 하면   그대로 미워한다,

나갈 때가 된 아이들에게는 무심코 부담을 주고

그들에게 아이들을 맡은 일은 그냥 맡은 의무일 뿐이고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성당의 젊은 신부도 그렇다,

선하고 여려보이는 인상으로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하고 돌봐주려고 하지만 그건 종교인으로서 갖는 의무감같다,

신의 사랑과 자비를 배풀어주는 것으로서의 의무이지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나 애정은 아니다, (너무 심했다면 미안하다)

엄마조차 일하지 않고 게으른 남편 대신 애쓰다 허리까지 다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고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다,

누군가를 향해  너  나빠!!!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 구체적인 대상은 모호하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은데 딱 누군가를 꼬집을 수 없다,

그들은 제각각 최선을 다하는데 그게 너무 무섭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거든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거든...

하며 두눈 똑바로 뜨고 억양없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보는 나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힘든데 그들과 살아야 하는 영재는 오죽할까

돌아갈 곳이 없고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는 영재는

스스로 제 몸을 부풀린다,

황소개구리처럼

계속 몸을  부풀리며 커져간다,

성당에서는 착하고 신앙심 깊은 소년이 되어야 하고

이삭의 집에서는 언제든 무를 굽히고 걸레질을 하고 비위를 맞춘다,

가족은 남보다 미운 존재이고 그룹홈과 성당생활은 그냥 살아가야할 필요한 공간이다

그렇게 영재는 거인이 된다, 원치 않게,,,,

영재도 좋은 소년은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물건을 훔치고 친구들은 그 물건을 팔아주는 대상일 뿐이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누구든 배신할 수 있고 가족도 보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잘못하지 않은 그들을 미워하고 싶은 만큼 이쁜 짓을 하지 않은 영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냥 괜찮다고 괜찮다고

숨을 쉬라고 편하고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너의 숨을 쉬어보라고 해주고 싶었다,

원치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거인이 되어버린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이 얼른 철이 들기를 바란다,

얼른 어른의 말을 잘 알아듣고 한마디를 하면 열마디를 이해하고

모범적인 태도와 학구열로 진도도 선행으로 쭉쭉 뽑아 놓고

나를 이해해주고 위안해주길 바란다,

아이가 나를 넘은 거인이 되길 바라면서 그 거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속에서 거인들이 얼마나 외로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거인의 몸집에 힘에 감탄 할 뿐이다,

 

가족은 누구보다 짐이고 불행일 수도 있다는 것

공감받지 못한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고 저 혼자 제멋대로 자라버린다는 것

자란다는 것이 이보다 슬플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영재가 잘 클거라도 믿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센척 하거나 비굴해 질 수 있는 영재지만

누구보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챙길줄 알거라 믿는다,

마지막에 그룹홈 아빠의 무심하고 무정한 한마디

"너 자신을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엔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많다"

무심하지만 아프지만 사실이다,

영재는 마지막 떠나며 자기의 옷가지를 동생에게 준다,

줄 게 그것밖에 없고 더 해줄 수도 없다,

 

요한은 영리하고 계산적이지만 영재는 한없이 여리다

절실하게 요한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영재일 뿐이다,

그 소년의 여린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내가 할 일은 건투를 빌 뿐이다,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을 따라온 내시역이었다,

야리야리한 몸매와 눈웃음으로 극의 감초역활이었고 꽤 귀여웠다,

그냥 그것 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그 눈꼬리를 계속 우울하게 내리고 있다,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한없이 순해보이는 그 눈꼬리가 자꾸 걸려서 계속 보게 된다,

다음 작도 기대되는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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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 결국 죽는다는 대단한 스포를 알면서도 보러가게 되는 이야기

그 영화를 보았다.

역사적인 어떤 사실 혹은 세대간의 문제 뭐 이런저런 평이 많지만

내가 본 영화  '사도'는 중년 가장의 비애였다,

 

잠시 딴 소리 하자면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늘 짠하고 찌질하다,

효자동 이발사

우아한 세계

관상

변호인....

기억나는 이런 작품에서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문제들을 빼버리고 그냥 한 가정의 가장이고 어떤 아이의 아비로서의 송강호는 늘 고군분투한다,

고지식하게 남의 머리를 깍아주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위해 건달짓을 하고

아들 하나 지키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권력암투에 말려들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려고 세상과 맞장뜨기로 하는

그런 늘 애쓰는 아비였는데 늘 그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 가 닿지 않거나

너무 늦게 닿거나 그냥 허공에서 허지부지 사라진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래서 정말 애쓰고 애쓰는데 그 마음은 허공에서 스르르 없어진다,

아비는 아들과 통하려고 노력한다,.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매도 들고  모른 척도 하고 모든 걸 하지만  아들에게 닿는건 아비의 마음이 아니라 행동들이고 말들이다,

아비는 열심히 달을 가르키는데 아들은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근데 아비는 모른다

자기가 달을 보라고 가르키는데 사실 그 굵고 투박한 손가락이 달을 가리고 있다는 걸...

손가락과 달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 가려지기도 하고 가리키기도 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장소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이고 그걸 아들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보일거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비는 그렇게 자기 아비에게 배웠으니까...

세상 아비들은 스스로 자식과 소통이 잘 되는 멋진 아빠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자식들은 내 아비가 잔소리가 많고 자기이야기만 하는 꼬장꼬장한 인간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영화도 그렇다,

아비는 밤새 자식을 위해 책을 쓴다,

그런데 자식은 놀기 바쁘고 개나 그리기 바빠서 아비가 만든 책은 저만치 혼자 펼쳐져 있다,

아비는 속이 상한다,

우라질 노무 새끼....

그래도 참는다. 아니 참는다고 믿는다,

나는 많이 참는다,

나는 나랏일때문에 가족을 챙길 수 없다. 한 나라의 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집안일을 좀 알아서 잘 챙기고 잘 하면 어때서 

나중에 보면 나만 빼고 저희들끼리 꽁꽁 단합해서 나만 소외시킨다, 나만 잘못했다고 한다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만 하고 저누무 자식을 감싸고 또 감싼다

저래서 자식이 망가지는 걸 모르니 내가 나설 수 밖에..

 

영화에는 또 다른 아비가 있다,

그는 나중에 사도세자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아비와의 갈등이 가장 큰 과제이다,

아내는 그저 세손만 끼고 세손 세손... 세손이 우선이다,

나도 가족이다,

나도 힘들고 괴로운데 나만 참으면 된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다 아부지 때문인데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이게 가족이냐...

도리만 이야기하고 세손을 생각하라고 하고..

나도 내 새끼 귀한 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야 내 새끼도 있는게 아닌가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내 자식이 내 바짓가랭이를 붙든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그가 테어난 기쁨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에게 줄 부채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아비다, 그런데 나를....

 

두 아비는 참 외롭다, 괴롭다,

아무도 나만 이해해 주지 않는다,

저희들끼리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서로 꿍짝이 잘 맞는데 나만 외톨이다,

이건 다.. 저누무 자식때문에... 저누무 노인네 때문에...

아비가 말했다

"왕이라고 언제나 칼의 손잡이를 잡는 경우는 없다 칼 끝을 잡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아들이 중얼거렸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짧은 한마디가 각각의 마음이다,

서로 통할 수 없는 마음이다,

결국 영조가 외친다,

이건 집안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적 비극은 시작된다,

왕가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들을 죽인 아비

아비를 죽게 한 자식

왜 죽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걸 고독한 가장의 외로움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의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읽는 이의 해석이 덧붙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스토리를 가진다,

역사는 그것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각으로  정의롭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다

역사와 역사 소설이 다르듯 역사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다르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여간 당파싸움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죽음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고

역사 속의 어떤 사실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영화가 되거나 소설이 되면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거나 읽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른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그냥 이 영화 내내  한 가정의 가장이 생각났고 그 가장의 비루하고 처절한 견디어냄이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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