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CUT

 

 

꿈도 미래도 모국어도 허락되지 않은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것은,,,

그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문학의 뒤에 숨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일이 아닌가 고민한다고도 했다,

무어가 그리 부끄럽냐고  대놓고 물어보았다면 무어라 대답했을까?

그냥 그렇게 어정쩡하게 미소를 남기고 혼자 또 골똘하게 생각에 빠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큰 이념과 시대적 사명보다 시를 쓰는 일이

사람을 위로하고 마음을 달래주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는 결국 그 모든 일이 부끄럽다고 했다,

"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그런 자신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무엇이든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해져버리고 가벼워진 요즘

매사가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반성을 하고 돌아보는 시인의 이야기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영화는 흑백이어서 좋았고 주인공이 강하늘이어서 좋았고

나즈막히 시를 암송하는 목소리가 또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가 알아서 좋았다,

감독은 어쩌면 한편의 시집을 만들려고 했었던 모양이다,

흑백 화면속에 별과 골목길 고향집 그리고 친한 벗과  설레는 이성의 모습을 시처럼 뿌려놓는다,

다만 인물이 너무 웅장하고 경건하다

제목을 '동주'라고 했다면 우리는 시인 동주가 아니라 인간 동주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계속 어리버리하거나 경건하거나  수줍은 동주만을 보여준다,

참고한 도서인지 모르겠지만 소설 "시인 동주"속의 동주는 잘 웃고  말이 많지는 않지만 자기 의견을 뚜렷하게 드러낼 줄도 알고 앞날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는 인물이었는데

영화속의 '동주'는 너무 수동적이다, 게다가 몽규와의 대비점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몰라도 시인가 운동가라는 뚜렷한 대비가 조금은 상투적이다,

 

책속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

지금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습이 그때 암울한 일제강점기 막바지와 젼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어떤 이상을 위해 개인은 보이지 않게 되고

문리대를 나오면 앞날이 불투명하고 (의전이나 제국대 법대를 선호하고 )

전체의 질서가 개인의 욕구보다 우선시되며 감정보다는 이성이 지배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추어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때와 다를게 없다는 씁쓸한 생각도 들면서 지금 여기 어딘가에도 염치를 알고 부끄러워하며 혼자 끊임없이 참회하는 어떤이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무심히 보는 줄 알았던 아이의 영화평

너무 슬펐어

그리고 마지막 두 사람 약력이 올라갈 때는 눈물이 났어,,

나두 그랬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점점 염치없어지는데 도리어 무심해서  주저해서 부끄럽다고 염치없다고 하는 이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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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19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보셨군요. 어서 봐야겠어요. 윤동주문학관에서의 감흥이 떠오릅니다

푸른희망 2016-02-20 16:52   좋아요 0 | URL
꼭 보셔요..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 지더군요
참 문학관에서 찍은 사진 봤어요..
지금 이 계절엔 너무 쓸쓸할거 같아서 조금 따뜻해지면 가보려구요~~
 

그룹홈 이삭의 집에서 살고 있는 영재는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나이가 들어 나갈 때가 된 것

그러나 영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종교단체에서 장학금을 노리며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엄마는 아빠대신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고 집을 나가버렸다

동생은 아직 어리고  아버지는 언제든 기회를 봐서 동생도 영재가 있는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

영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이삭의 집이 마냥 편한 것도 아니다,

영재는 이미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 알고 누구에게 잘 대해줘야 하는 지를 알고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를 알고

누구나 생각하듯 착한 소년이 아니라 구호품을 팔아넘기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 속에는 그리 악한 사람이 존재 하지 않는다

영재의 아버지는 제외하고

자식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언제든 누구에게든 자식을 떠넘기고 싶어하는 그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짐승도 아직 어린 제 새끼는 돌보는데,,,

영재가 있는 그룹홈 부모들은 글쎄 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속 불편했다,

그들에게 아이를 돌보는 일은 사명감이나 깊은 애정이 아니다,

9 to 5의 직업생활같다,

아이들이 있으니 의무감으로 돌보고 이쁜 짓을 하면 이뻐하고 미운 짓을 하면   그대로 미워한다,

나갈 때가 된 아이들에게는 무심코 부담을 주고

그들에게 아이들을 맡은 일은 그냥 맡은 의무일 뿐이고 아무런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성당의 젊은 신부도 그렇다,

선하고 여려보이는 인상으로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재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하고 돌봐주려고 하지만 그건 종교인으로서 갖는 의무감같다,

신의 사랑과 자비를 배풀어주는 것으로서의 의무이지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나 애정은 아니다, (너무 심했다면 미안하다)

엄마조차 일하지 않고 게으른 남편 대신 애쓰다 허리까지 다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왔다고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다,

누군가를 향해  너  나빠!!!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 구체적인 대상은 모호하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은데 딱 누군가를 꼬집을 수 없다,

그들은 제각각 최선을 다하는데 그게 너무 무섭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거든 너를 위해 희생하고 있거든...

하며 두눈 똑바로 뜨고 억양없이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보는 나도 이렇게 숨이 막히고 힘든데 그들과 살아야 하는 영재는 오죽할까

돌아갈 곳이 없고 어쨌든 살아남아야 하는 영재는

스스로 제 몸을 부풀린다,

황소개구리처럼

계속 몸을  부풀리며 커져간다,

성당에서는 착하고 신앙심 깊은 소년이 되어야 하고

이삭의 집에서는 언제든 무를 굽히고 걸레질을 하고 비위를 맞춘다,

가족은 남보다 미운 존재이고 그룹홈과 성당생활은 그냥 살아가야할 필요한 공간이다

그렇게 영재는 거인이 된다, 원치 않게,,,,

영재도 좋은 소년은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물건을 훔치고 친구들은 그 물건을 팔아주는 대상일 뿐이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누구든 배신할 수 있고 가족도 보지 않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잘못하지 않은 그들을 미워하고 싶은 만큼 이쁜 짓을 하지 않은 영재를 미워할 수 없다.

그냥 괜찮다고 괜찮다고

숨을 쉬라고 편하고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너의 숨을 쉬어보라고 해주고 싶었다,

원치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거인이 되어버린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른들은 가끔 아이들이 얼른 철이 들기를 바란다,

얼른 어른의 말을 잘 알아듣고 한마디를 하면 열마디를 이해하고

모범적인 태도와 학구열로 진도도 선행으로 쭉쭉 뽑아 놓고

나를 이해해주고 위안해주길 바란다,

아이가 나를 넘은 거인이 되길 바라면서 그 거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속에서 거인들이 얼마나 외로울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거인의 몸집에 힘에 감탄 할 뿐이다,

 

가족은 누구보다 짐이고 불행일 수도 있다는 것

공감받지 못한 아이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고 저 혼자 제멋대로 자라버린다는 것

자란다는 것이 이보다 슬플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영재가 잘 클거라도 믿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센척 하거나 비굴해 질 수 있는 영재지만

누구보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챙길줄 알거라 믿는다,

마지막에 그룹홈 아빠의 무심하고 무정한 한마디

"너 자신을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엔 너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많다"

무심하지만 아프지만 사실이다,

영재는 마지막 떠나며 자기의 옷가지를 동생에게 준다,

줄 게 그것밖에 없고 더 해줄 수도 없다,

 

요한은 영리하고 계산적이지만 영재는 한없이 여리다

절실하게 요한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저 영재일 뿐이다,

그 소년의 여린 표정이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내가 할 일은 건투를 빌 뿐이다,

 

최우식이라는 배우를 처음 본 건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을 따라온 내시역이었다,

야리야리한 몸매와 눈웃음으로 극의 감초역활이었고 꽤 귀여웠다,

그냥 그것 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그 눈꼬리를 계속 우울하게 내리고 있다,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한없이 순해보이는 그 눈꼬리가 자꾸 걸려서 계속 보게 된다,

다음 작도 기대되는 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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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가 결국 죽는다는 대단한 스포를 알면서도 보러가게 되는 이야기

그 영화를 보았다.

역사적인 어떤 사실 혹은 세대간의 문제 뭐 이런저런 평이 많지만

내가 본 영화  '사도'는 중년 가장의 비애였다,

 

잠시 딴 소리 하자면

송강호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늘 짠하고 찌질하다,

효자동 이발사

우아한 세계

관상

변호인....

기억나는 이런 작품에서 어떤 사회적 배경이나 문제들을 빼버리고 그냥 한 가정의 가장이고 어떤 아이의 아비로서의 송강호는 늘 고군분투한다,

고지식하게 남의 머리를 깍아주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위해 건달짓을 하고

아들 하나 지키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권력암투에 말려들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려고 세상과 맞장뜨기로 하는

그런 늘 애쓰는 아비였는데 늘 그 아비의 마음이 아들에게 (혹은  딸에게 ) 가 닿지 않거나

너무 늦게 닿거나 그냥 허공에서 허지부지 사라진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다,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래서 정말 애쓰고 애쓰는데 그 마음은 허공에서 스르르 없어진다,

아비는 아들과 통하려고 노력한다,. 잘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매도 들고  모른 척도 하고 모든 걸 하지만  아들에게 닿는건 아비의 마음이 아니라 행동들이고 말들이다,

아비는 열심히 달을 가르키는데 아들은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

근데 아비는 모른다

자기가 달을 보라고 가르키는데 사실 그 굵고 투박한 손가락이 달을 가리고 있다는 걸...

손가락과 달이 보는 위치에 따라서 가려지기도 하고 가리키기도 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장소에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이고 그걸 아들의 자리에서도 그대로 보일거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비는 그렇게 자기 아비에게 배웠으니까...

세상 아비들은 스스로 자식과 소통이 잘 되는 멋진 아빠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자식들은 내 아비가 잔소리가 많고 자기이야기만 하는 꼬장꼬장한 인간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영화도 그렇다,

아비는 밤새 자식을 위해 책을 쓴다,

그런데 자식은 놀기 바쁘고 개나 그리기 바빠서 아비가 만든 책은 저만치 혼자 펼쳐져 있다,

아비는 속이 상한다,

우라질 노무 새끼....

그래도 참는다. 아니 참는다고 믿는다,

나는 많이 참는다,

나는 나랏일때문에 가족을 챙길 수 없다. 한 나라의 왕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면 집안일을 좀 알아서 잘 챙기고 잘 하면 어때서 

나중에 보면 나만 빼고 저희들끼리 꽁꽁 단합해서 나만 소외시킨다, 나만 잘못했다고 한다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만 하고 저누무 자식을 감싸고 또 감싼다

저래서 자식이 망가지는 걸 모르니 내가 나설 수 밖에..

 

영화에는 또 다른 아비가 있다,

그는 나중에 사도세자라고 불린다,

그에게는 아비와의 갈등이 가장 큰 과제이다,

아내는 그저 세손만 끼고 세손 세손... 세손이 우선이다,

나도 가족이다,

나도 힘들고 괴로운데 나만 참으면 된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다 아부지 때문인데 나더러 참으라고 한다,

이게 가족이냐...

도리만 이야기하고 세손을 생각하라고 하고..

나도 내 새끼 귀한 줄 알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야 내 새끼도 있는게 아닌가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내 자식이 내 바짓가랭이를 붙든다

내가 그 아이를 싫어하는게 아니다,

그가 테어난 기쁨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그에게 줄 부채로 만들었다.

나는 그런 아비다, 그런데 나를....

 

두 아비는 참 외롭다, 괴롭다,

아무도 나만 이해해 주지 않는다,

저희들끼리는 이해하고 이해받고 서로 꿍짝이 잘 맞는데 나만 외톨이다,

이건 다.. 저누무 자식때문에... 저누무 노인네 때문에...

아비가 말했다

"왕이라고 언제나 칼의 손잡이를 잡는 경우는 없다 칼 끝을 잡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한다"

아들이 중얼거렸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짧은 한마디가 각각의 마음이다,

서로 통할 수 없는 마음이다,

결국 영조가 외친다,

이건 집안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역사적 비극은 시작된다,

왕가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들을 죽인 아비

아비를 죽게 한 자식

왜 죽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걸 고독한 가장의 외로움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의 비극이라고 하고 싶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고 보는 사람의 관점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읽는 이의 해석이 덧붙여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다른 스토리를 가진다,

역사는 그것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각으로  정의롭기도 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다

역사와 역사 소설이 다르듯 역사와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다르다

사실 이준익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여간 당파싸움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죽음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무언가를 그리려고 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고

역사 속의 어떤 사실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 영화가 되거나 소설이 되면서 무언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보거나 읽은 누군가에 의해 또다른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그냥 이 영화 내내  한 가정의 가장이 생각났고 그 가장의 비루하고 처절한 견디어냄이 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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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읽었다고 봤다고 착각하는 영화나 책이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책은 읽었고 영화도 어디선가 띄엄띄엄 본 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는 지금이  처음이다,

알고 있다고 잘안다고 믿고 있던 작품을 다시 보면서 익숙한 장면들 사이사이에 낯선 장면들을 발견한다. 나의 짐작이 어긋나고 내 기억이 틀렸다는 건  결국 어쨌거나 지금 나는 처음 보는 것이다,

 

마작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는 그곳 손님들이 말하는 유모차를 끌고가는 노파를 우연히도 직접 목격한다,. 그리고 그 유모차 안에 마약도 보물도 돈다발도 아닌 예쁜 처녀 조제를 만난다, 무뚝뚝하고 함부로 말하는 조제는 불구라는 이유로 집안에 갇혀 살면서 주워온 책을 읽고 맛있게 요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연히 그녀의 삶에 끼어들게된 츠네오는 처음 조제를 알아봐 주었다,

그녀가 만든 달걀말이가 맛있다는 것 그녀가 지은 밥이 맛있고 오이절임이 맛있다는 것을 안다

산책을 하고싶고 꽃을 보고 싶고 고양이를 보고싶다는 그녀를 위해 유모차를 개조하고 스피드를 선물하고 세상을 선물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불구여서 더 상처받을거라고 생각하는 할머니는 조제가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츠네오를 오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다시 만난 두사람의 연애가 시작된다,

동정이었을까?

영화내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 못믿을 기억으로는 책도 그랬다,

늘 조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거침없이 말을 뱉는 성격이었으니까

다시 찾아온 츠네오와 밤을 보내고 둘은 함께 산다,

츠네오의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엉없고 자존심상하는 일이었고 누구나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는 끝이 있다. 둘도 안다.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일단은  지금 이순간이 중요하다,

함께 밥을 먹고 밤을 보내고 사랑을 하면서  둘은 다른 연인과 다름 없지만

단 하나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걸 둘 다 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서 서로 각각 안다.

그리고 그 알고 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헤어진다,

츠네오의 고백처럼 도망친 것이지만 누가 츠네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조제 물고기 호랑이가 무슨 관계일까 싶었다,

조제와 츠네오가 함께  본 것들 함께 한 것들이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가장 무서운 것을 함께 보겠다고 결심했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 함께 호랑이를 보고 그리고 둘 사이의 실금을 알아차리고 물고기를 보러간다,

그러나 호랑이는 실물이었지만 물고기는 실제가 아니다,

먼 길을 달려간 수족관은 하필 휴일이었고 그들은 바다를 보고 물고기의 성이라는 모텔에서 이미지로 떠다니는 환상의 물고기를 본다,

이제 츠네오와 헤어지면 조제는 다시 자기가 살던 바다 아래로 돌아가 데굴데굴데굴 굴러다닐거라고.. 조용히 속삭인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왕자와 헤어지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깊은 바닷속에서 살던 퇴화된 다리를 가졌던 조제는 씩씩하게 땅에 적응하고 살아간다,

함께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았다는 기억이 조제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다,

 

츠네오는 조제를 세상밖으로 드러나게 해준 사람이다, 불구라는 이유로 언제나 집안에서만 살수 도 없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퉁명스럽고 거칠게 말을 내뱈고 아무소리나 부끄럼 없이  쏟아내는 것이 방어벽이 될 수 없다, 평생 껍질 속에서 살것인가 세상으로 한걸음 내딛일 것인가 그건 조제의 몫이지만 할머니는 주저했고 츠네오는  당당했다, 어쩌면 츠네오가 아무것도 몰라서  순수하다 못해 아무 생각이 없어서 한 행동이 조제에게는 좋은 기회였고 해방구가 되어 준거 같기도 하다,

니가 나를 세상에 내어 놓았으니 평생을 책임지라고.... 조제는 하지 않는다,

츠네오도 그렇게 얽매이고 싶지 않다,

어쩌면 모든 관계라는 것이 유기적인 것이라 시작이 있으면 마무리도 있어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연인이다,

함께 세상으로 나왔고 세상을 보았고 당당할 수 있었고 그리고 힘을 얻었고 자연스럽게 헤어지고 홀로 선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을 보며 " 후회"라는 것을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순간적인 후회는 있을 것이다,

선택하자마자 후회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흐른후 돌이켜 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츠네오의 울음은 순간적인 선택에 대한 자신없음일 것이다, 아직 후회가 아니다,

후회는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각이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후회이든 아니든 이미 지니간 시간이다,

후회도 내 속 어딘가 추억으로 분류된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것이 아니라고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 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후회를 해도 상관없다,

 

츠네오의 선택 조제의 선택에 언젠가 후회가 스며들것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들의 기억이고 그들의 몫이다,

 

나도 오늘 아침 운동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며 와구와구 군것질을 한 걸 후회하지만 이것역시 나의 선택이고...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시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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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렛

 

"그래서? 그게 중요해?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잘 살아 왔잖아??"

 

극 중 주인공 레이의 연구소 친구의 대사다,

영화의 마지막 몇분을 남겨놓고 레이는  자기가 이들과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한다,

사실 공황장애가 있는 형도 이기적인 여동생도 어쩌면 타인이 아닐까 의심했던 할머니 마저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만 몰랐다는 것.  알고 보니 자기가 타자였다는 것을 마주하고 고민하며

어렵게 연구소 동료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인도출신의 친구는 무심하게 그렇게 내뱉는다,

듣기에 따라 정말 인정머리없고 공감능력 제로에 남의 감정따위는 알아주지 않은 사이코패스거나 냉혈한 같은 소리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레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니 30년 가까이 가족이라고 믿고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나 문제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른 가족들도 레이를 친 가족처럼  만만하게도 여기고 기대기도 하고 편도 들고 무시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게 가족인데,.물론 레이의 충격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등을 쓸어주고 위로해주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어~ 라고 하거나 가족 모두를 모아놓고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원망하고 포용하는 단계를 거치더라도 변하는 건 냉정하게 없다.

 

누군가는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만져주는 위로와 공감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옆에서 가만히 봐주고 기다려주고 괜찮다고 한마디 툭 던지는 위로에 마음이 편하다.

내가 원하는 위로와 공감이 다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위로와 공감도 각각 다르다,

그냥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모른 척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충고하고 조언하고 만져주는 사람은 어렵고 부담스럽고 또 반대의 경우 그건 위로도 공감도 아니고 냉정하고 재수없는 충고일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어느때 원하느냐는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고 나도 가끔 원하는게 다른 수 있다,

 

영화속에서 그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가 다른 모든 인물이나 상황보다 내게  훅 들어왔다.

냉정하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만 어저면 그래서  더운 날 얼음이 가득한 냉수 한 잔을 마시고 난 후의 쨍하게  각성되는 느낌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게 좋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옆에 가만히 앉아 잇어주기만 하는 것

내게 가장 좋은 위로는 그것이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위로도 그것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타인이 볼 때 나는 참 못됐고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나 보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마음

한마디 대사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영화속의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다정하지는 않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의 틀로 바라본다,

레이는 형은 장애가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고 동생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할머니는 그저  낯선 타인이다,. 리사 입장에서도 모리는  난감한 애물단지고 레이는 이기적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할머니지만  조금 잊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맞추어 그의 말과 행동이 그런 이유가 내가 아는 그것때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리고 누구나 내가 가장 참고 있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른 구성원에 비해 가장 정상적인 레이가  어찌 보면 가장 단단하고 견고한 틀을 가지고 있다.형을 돌봐주어야 하고 동생은 안도와주고 할머니는 그 정체가 의심스럽다,. 엄마가 남긴 한마디 " 레이 너만 믿는다" 그 말의 무게 만큼 레이를 누르는 압박감은 가기 가진 틀의 무게였다,

그는 가장 희생적이고 책임감을 느끼고 혼자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고난자다

3000불을 자기를 위해 쓸 수도 없이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책임감과 나의 만족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차라리 내가 가장 힘든데 이것들이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집어던지고 쥐어뜯어가며 싸우면 차라리 마음에 들지 않고 원수가 되더라도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었구나 하고 알텐데 그들은 우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규정하고  보이는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대로만 본다,

가족이 그런 오해가 가장 심한 집단이 아닐까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기가 막힌 오해와 편견에서 가족은 어쩌면 내게 가장 먼 타인이고 나를 가장 모르는 외부인이다,

나는 우리 부모를 아는가? 나는 내 자식을 아는가

그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어떤 성격인지 알 수는 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위로 받기 원하는지 어떻게 공감받기 원하는지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서로 모르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는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로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안을 얻는다,

모리는 엄마의 재봉틀로 치마를 만들고 리사는 우연히도 에어기타에 빠지고 레이는 피규어에 빠져 있다. 각각의 위안은 할머니의 만두를 구심점으로 함께 만나고 서로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마지막무렵  모리의  대회에 참가하는 것  레이가 할머니를 위해 변기를 바꾸어 주는 것  정도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예의를 기반한 배려고 위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영역에 훅 들어오지 않고  바라보고 내가 훅 들어가지 않아도 이기적이라고 뭐라하지 않고 서로의 바운더리 속에서 서로 바라보며  힘들면 손을 내밀고 그때 잡아주는 사람

그냥 든든하게 바라바주는 사람이라는 게 좋은.. 그런 가족을 원했다는 그리고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사람을 원했다...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레이의 동료처럼 시원하게 무심하게 한마디 해주는 것 그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이어서 나는 남들도 그만큼이면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가장 적정선이라고 믿었는데 사람은 제각각의 위로와 공감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하물며 가족이라도...

 

 

 

이 책이 내 울음이 터진 최초의 책임을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잇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거였다. 가족들이 누구나 동구에게 혹훅 들어와서 감정들을 배설했다, 할머니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고 심지어 엄마도 그랬다. 어린 동구에게 가장 약하고 여린 동구에게 훅훅 들어와 감정을 쏟아놓고  아직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멍청하니까 라는 변명으로 훌훌 돌아간다. 동구가 원하는 건 어쩌면 여동생처럼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 봐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 가족은 너무 잔인했다. 물론 이유가 있다. 시어머니의 구박에 서러운 엄마나 중간에서 어쩌지 못하는 엣날 가장 아빠나 시골에서 상경해 모든 것이 낯설지만 두려운 티를 내기 싫고 얕잡아 보이기 싫은 할머니까지  모두 이유는 있다. 가족이니까 이유가 있으니까 이정도는 서로 받아줄 만하니까 서로 훅훅 상대방의 영역으로 시도때도 없이 들어왔다.  가족이니까 뭐든 가능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게 동구에게는 두려움일텐데 그 바보같은 아이는 모든걸 인내하고 자기가 무서운 할머니와 시골에 가겠다고 한다. 바보같이...

 그래서 그 어린 아이가 모든 걸 감당하고 견디며 나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판단을 해야했을까? 그래서 동구는 착한 아이가 되었는가? 누구를 위해서 착한건지....

괜찮다고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말하라고 ... 이정도는 가족끼리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픈 건 아픈거다. 힘든 건 힘든거다,

다른 가족들이 너무 착해빠져서 나중엔 할머니까지 너무 늙고 약해버려서 마냥 마음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화가 났다,

거절 하지 않는 둥구 모든 것을 품어주는 동구의 상처는 왜 아무도 봐주지 않을까 가족이라면서...

가족이어서 서로 함께 뒤엉키고 받아들여지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약한 존재에게는 버거운  무게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가족이라고 모두가 같은 취향과 성향을 가진 건 아니다. 내가 낳아도 다른 아이가 태어나고 형제도 제각각인걸  자꾸 잊어버린다,

배려와 공감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바라는 것으로 해야한다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릴까?

 

간혹 내가 너무 감정이 매마르고  심하게 말하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약한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누군가 훅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가 훅 들어가기도 어렵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가장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게 틀린 것인지 가끔 고민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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