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건축에 대해 아는 건 없다.

몇몇 건축가의 이름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하고 가치있는 건축물들

그냥 상식적인 이야기들

오늘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에서 거주해야하므로 갖는 내 공간에 대한 관심정도?

 

정기용.. 이라는 건축가도 영화를 통해 첨 알았다.

그가 말하는 건축

공간은 사람이 있는 곳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곳이라는 것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주는 의미 그곳을 이용할 사람들이 꼭 필요료 하는 것

그리고 사회에 가치가 있는 존재여야 하는것

건축에 대한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확실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떤 영화

 

그보다 내게 영화가 끌어당기는 것은 건축가 정기용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정기용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보여주는 담담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보는 내내 뭉클했다.

잘 나오지 않은 목소리 쾡한 눈빛 그리고 조금은 어눌한 걸음걸이속에서도 그는 신념이 있었고 두려움이 없었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길 죽어서 하는 회고전은 너무 슬프지 않느냐고  살아있을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담담하고 조용한 모습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들이 보면서 다시 내 자세를 고치게 하고 옷깃을 여미게한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젊은 날의 모습들과 아들의 모습에서 건축가 정기용이 아니라 인간 정기용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가족이던 정기용을 보면서도 뭉클하다.

세상과 하는 소통을 그는 건축을 통해서 한다.

영화에서 그가 지은 납작 엎드린 숨어있는 집을 보여주는데

집 주인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한 소통이 없었다면 이런 건축물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주고 드러내려는 아름다움이나 웅장함 없이 조용히 위로하고 안아주는 집이라는 것.. 공간이 건축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첨 알았다.

 

어쩌면 영화를 보러간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뭔가 위로를 받고 싶었고 다 괜찮다는 무조건적인 위안을 얻고 싶었던 까닭에 그 집에 더 와닿았고 그 분의 나즉한 목소리가 더 울림이 컸던지도 모르겠다.

세상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한 사람의 작가의 말년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나는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고함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감정에 푹 빠져서 내게 보이는 것만 믿고 보려고 하는건 아닌가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다른것일지라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것 삶의 마지막에 대한 엄숙하고 경건한 예의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통...

그것만 내게 남아있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나는 누구와 소통했노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개봉하고 말이 많긴했다.

여고생과의 섹스신이 과연 타당하고 정당한가..

뭔가 야하고 음흉한 뭔가를 원했던 사람들은 다들 실망하고 돌아섰다는 말도 있고

기대하지 않고 보고는 감동하고 뭔가 뭉클했다는 말도 있고

일단 내가 보고 판단하자.

 

초반 내내 왜 하필 박해일이 노인분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년의 배우를 쓰지는 않더라도 조금 더 나이 든 배우를 노역으로 분장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아직은 젊은 박해일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왠지 이적요가 어색하기만 했다.

차라리 한석규를 노역으로 했더나면 그것도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고 이적요가 은교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떨림  설레임을 느끼고 상상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직 청년의 모습이 아니 어쩌면 덜 성숙한 소년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박해일이 더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육체적으로 나이를 먹어서 늙어버렸지만 아직 불안하고 순수한 청년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적요에게 박해일을 딱이었다.

그가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끈적이지 않았고 그냥 나이만 들었을 뿐 누구나 가지는 사랑에 빠지고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만약 정말 이적요 나이의 배우가 했더라면 미안하지만 조금 추해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은교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은교의 거울을 주워주기위해 위험한 벼랑으로 걸어가고 교복을 말려주는 모습이 참 순수하고 보기 좋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모든것이 변하는 건 아니다.

몸이 늙는다고 해서 생각이 마음이 함께 나이먹어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적요가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소녀를 보면 마음이 설레고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서 치기어린 영웅심리를 내보이기도 하고 그녀가 해주는 건 뭐든 맛있고 좋고 그리고 쉽게 마음을 보일 수 없어서 그 모든 열정을 소설에 쏟아부어 버리는 것 

어쩌면 이적요는 순수하고 치기어린 청년과 함께 배려심있고 나이든 노년이 함께 보기좋게 공존하는 인물인거같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적절하고 추악한 욕정이라고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끼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울 수 없는 관계를 묘사한걸 보면 알 수 있다.

은교도 소설을 읽고 자기가 그렇게 에쁜지 몰랐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적요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 그 소설에 모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제삼자인 정지우의 눈에만 그렇게 추악하고 더럽게 보이는 것이다.

그냥 세상사람의 눈으로 노인이 주책맞고 추잡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치는 것이었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왜 은교가 정지우에게 끌렸을까 내내 의문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은교도 이적요에게 뭐랄까 사랑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인간적인 끌림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다정하고 자상한 할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힐끗보면서 얼굴을 붉히는 조금은 엉뚱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는 할아버지라는 건 알았을 것이다. 자기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도 알고

성공한 소설가라는 레벨에 정지우에게 끌렸나?

아니면 젊다는 것?

왜 그 겨울밤 은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정지우와 섹스를 했는지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관계를 보면서 그리고 그 사이 그 말많았던 대사를 보면서 참 의아해샛다.

아직 불안정하고 모든 것이 서툰 젊음이라 잠시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이해하더라고 은교의 그 행동은 좀 그랬다.

그러나 결국  본인들만 아는 공기의 미묘한 떨림 습기 그런것들을 나중에 깨닫게 되고 그건 누가 말해준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라고..

결국 치기어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 내가 함께 휘몰아칠때 알 수 없었던 그런것들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다시 곱씹어야 알게 되고 보이는 것  그런 은교의 뒤늦은 깨달음도 참 슬펐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목은 은교이지만 어쩌면 주인공은 은교가 아니라 이적요인거같았다.

세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은교가 아니라 이적요이고 정지우와 은교가 양쪽에서 이적요를 자신으로 끌어당기려는 힘겨루기가 아닐까

정지우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같고 존경하고 흠모하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적요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가가 밥하고 빨래하고 뒷바라지 하면서 받들었는데 은교가 나타가 이적요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알수 없는 질투

좀 유치하게 표현하지만 그동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동생이 태어났을때 모두의 관심이 거기에 모여들고 게다가 동생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고 그럴때 느끼는 유치하지만 처절한 질투가 정지우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욕망은 있으나 실력이 없는 정지우는 이적요가 늘 흠모의 대상이면서 질투의 대상이었는데 그 적나라한 내면이 은교가 나타나면서 점점 드러났던게 아니었을까

이적요의 작품을 가지고 은교를 가지고 그러므로서 이적요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아직은 어리고 물정모르는 은교는 그 사이에서 그렇게 엉뚱하게 본의아니게 줄타기를 하고 상처를 입히고

젊음과 나이듬

내가 가질 수 없는 재능에 대한 질투

젊음에 대한 질투

이적요나 정지우는 서로 자기가 가진것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더 집착하면서 싸움을 했던거 같다.

 

 별이 다르다는 걸 알아보는 감수성

연필이 슬프다는 것 발뒤꿈치가 슬프다는 걸 알고 있는 감수성을 생각해본다.

마지막 이적요가 쓸쓸하게 은교에게 인사할때 눈물도 나싸.

그렇게 내 청춘이 뒤늦게 마감했음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꽤 괜찮은 영화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희망 2012-05-1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망이라는 것 그것이 클수록 절망도 깊은 것이다.
욕망은 나이를 먹는다고 많이 가졌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게 슬프다.
 

ㅇㅎㅎㅀㅇㄹㅀ             

 

 

 

 

 

 

 

 

 

 

 

 

 

 

 

 

 

어느 영화평에서 본 글

성인용 건축학개론이라고

 

하긴 닮은 꼴이긴 했다.

남자가 건축가였고 예전에 연인이 헤어졌고 다시 우연히 만났고 다시 불태우고

 

세상에 세상에 이런 찌질한 남자가 다 있나

하긴 여자도 보는 내내 불편하게 찌질하게 굴긴 했다.

내 옆에 두 사람이 있다면 뒤통수를 한대 후려치고 걸죽하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주고 싶을을만큼

사실 두 사람은 잘못이 없을지모른다.

이런걸 예술이라고 만드는 남자는

어쩌면 건축학개론의 그 감독못지 않게 여자에 대해 첫사랑에 대해 그리고 스스롱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랑 헤어진 여자들은 나를 잊지 못한다.

다시 만나면 나로 인해 설설레고 생의 기반이 흔들기고 뭔가 다시 시작하고 싶을 지도 모모른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아직도 먹힌다 정도

내게 어떤 예술적 감흥이나 촉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해석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불륜이고 찌질함의 극치이고 나쁜놈의 극치이다.

사랑이 그리고 추억이 이렇게 추잡스러울수도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참 쌩뚱맞지만 여자는 이쁘고 볼일이다.

   수지든 한가인이든 그렇게 이쁘고 아련하니 첫사랑의 설레임이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팍팍 느껴진다. 누가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싶다.

한편 내가 그만큼 나이 먹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해품달에선 발연기라고 혹평을 들었던 한가인은 여기서는 연기가 된다.

웃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삶에 지치고 고단한 여자의 날이 선 모습이 그리고 무뚝뚝하고 쿨한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수지는 그대로 엣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다

저렇게 이쁘고 발랄한 여자아이에게 왜 좀 더 적극적으로 못 다가갔는지 이해할만하다.

 

2. 엣사랑이 다시 나타난다면..

   이건 왠만한 로맨스에서는 다들 우려먹었을 이야기들 그가 혹은 그녀가 다시 내 앞에 나타 나서 내게 그때의 선택을 다시한번 강요한다면 지금의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그때와 다른 뭔가를 선택하게 될까 아니면 지금과 다름 없는 것을 택할까...

엣사랑이 다시 나타나는 건 그때 못다한 인연을 다시 맺고 싶다는 진부하고 뒤끝이 긴 그 뭔가 가 아니라.. 그때 어설프게 완성하지 못한 마무리를 다시 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뭔가를 산뜻하게 끝맺음을 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작을 할 수가 없다.

그때의 기억이 늘 맴돌아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후회가 남거나 상대에 대한  감정이 찌꺼기들이 남아서 자꾸  신발속 모래처럼 서걱거린다.

사랑이 떠나갈때 연인과 헤어질때 그당시에는 깔끔하게 쿨하게 맺음을 했다고는 해도 한참뒤에 다시 곱씹어보면 늘 뭔가가 어정쩡하다. 완전하게 마무리가 되지 못한 느낌 왠지 화장실에서 뒤를 보고 그냥 나온듯한 그런 느끼마저 들때가 있다. 그때 이런걸 내가 잘못 이해한걸까 그는 내 의도를 오해한게 아닐까.. 등등등  완전히 내 사랑을 연소하지 못한 연인들은 늘 뭔가가 찜찜하게 남는다

그리고 확인하고 싶다. 내가 아직 그에게 매력이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고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단순한 궁금함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 더 클 수도 있겠다. 여전히 내맘을 설레게 할지 아니면 아니 본만도 못한 상황이 될지... 그런 결국 부딪쳐 다시 만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 참 시간이 지나서라도 다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3. 여자는 챰 단순하고 약았다. 파이노로 대학을 왔지만 더 이상하고 싶지 않고 화려하고 환한 서울아이들 틈에서 자격지심과 열등감만 생기다보니 돈 잘버는 직업 남자 잘만나는 직업을 만나서 인생 닫시 리셋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어쨌든 그렇게 꿈은 이루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렇게 제주도에서 정릉으로 강남으로 떠돌던 여자는 마지막으로 제주도로 내려가 정착하기로 한다.

태어나 서른이 넘도록 정릉에 붙박이로 살던 남자는 어느날 그곳을 떠나기로 한다. 내 어머니가 실던곳 내가 태어나 한번도 떠나보지 못했던 그곳을 과감하게 떠나려고 한다.

그러던 중 두 남녀는 만나고 함께 집을 짓는다.

여자가 정착할 집.. 남자가 10년전에 약속했던 그집을 이제 함께 지으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마움속의 응어리들을 정리하고 한켠에 잘 쌓아두기로 한다.

 

4. 영화가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니 두 남녀가 꼭 맺어지는 것만 헤피앤딩일 필요는 없다. 그렇게 제 앞에 놓여진 삶을 살면서 그렇게 제각각 그때의 감정을 완전히 연소하게 잘 담아두는 것 그것도 해피앤딩이다.

둘이 맺어지지 않아서 더 단단해지고 행복할 수 있다.

 

5. 제주도의 집이 참 좋아보였다. 넓은 창으로 바다가 보이고 옛추억들이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집에 안고 들어오면서도 새로운 느낌.. 괜찮았다 다만 창이 넓어서 단열에는 신경써야겠다는 오지랍넓은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샘내는 건 아니다.

 

6. 남주의 친구로 나온 그 배우가 참 맘에 들었다. 늘 나오는 는 남자주인공의에게 충고해주고 위로해주는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그대로가 90년대 중반에 있음직한 모습이다. 옷차림이나 행동하나하나 말투가 참 누군가 아는 사람같이 느껴진다.

 

7. 김동률의 노래가 갑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배우들 그리고 공간이기도 하지만 김동률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게 내가 알기론 거의 데뷔곡일텐데.. 지금 들어도 여전히 가슴 설레게 멋지다.

정재형이나 유희열보다는 김동률이 훨씬 천재가 아닐까 싶다.

 

8. 수지가 모든 남자들의 첫사랑 로망이라면 이제훈은 이제는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순수하고 어설퍼서 더 마음을 애잔하게 하는 첫사랑 그 아이같은 느낌이다. 어디서 저런 배우가 나왔을까

딱 그때 그 당시 누군가를 좋아하던 순진하고 조금은 자존심을 내세우다 스스로 상처받는 그런 청년 그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서연과 헤어지면서 내뱉은 " 꺼져줄래" 그 말이 그에게 참 어울리면서도 슬퍼보였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내가 살고 있는 곳이랑 씨네큐브가 생각보다 가깝다.

행정구역상 이제 더 이상 같은 서울이 아니라 아주 멀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한시간이면 간다

뭐 서울 안에서도 한시간씩 걸리는 곳이 꼭 있으니 멀다고 할 수도 없다.

홍홍,,,, 나로선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못지 않은 발견이다.

씨네큐브가 늘 그자리에 있었으나 나로서는 신선한 새로운 발견이다..

 

# 이 근처에서는 개봉조차 않았던 더센던트가 아직도 하길래 한걸음에 갔다.

여전히 그것에 건재한 씨네큐브

어라.. 그동안 금액이 올랐나? 그리고 사람이 많아졌다.

언제나 내가 이 곳에서 익명으로 숨고 싶을때 찾아들었던 그 고요하고 적막한 곳에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다른 영화관에 비교해서 바글거린다는 표헌은 아니지만 씨네큐브에 이만한 인원이면 바글거린다가 맞다,

봄맞이 단체 나들이라도 오셨는지 연배가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 무리들이 많이 보인다.

뭐 이정도면 아직 익명으로 사람들 사이에 스며 숨기엔 안성맞춤이다.

 

# 라바짜에서 카페인을 보충해야하는데 문을 열지 않았따

  보통 10시면 열었던거 같은데... 아흐 오늘은 카페인 없이 영화를 봐야한다.

 아침에 나오느라 커피도 못마셨는데....

 

# 디센던트...

  후손. 자손 뭐 그런 뜻 아닌가   고등학교 이후 멈춘 단어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화면을 꽉 채우는 하와이 그리고 조지 클루니

  아무리 망가져도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렇게나 퍼질러 있어도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아줌마 팬들이 많이 몰려든걸까?

 

  영화 첫머리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화와이를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늘 평화롭기만 할거라고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엿먹어라..

키드키득...

하긴 우리도 제주도라고 하면 늘 휴양의 섬이고 이국적이고 낭만적이라고 만 하지 그곳도 사람이 살고 먹고 싸고 싸우고 악악거리고 가끔은 살인이 일어나기도 할것이다. 뭐 하와이라고 별거 있으랴,,,

하와이에 사는 잘나가는 변호사 멧 킹은 어느날 사고로 아내가 코마에 빠지고 둘째딸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첫딸은 대화가 안통하는데 그의 아내마저 바람을 피웠단다. 세상에 그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동안 잘 나가느라 가족을 등한시했을 이 남자는 좌충우둘 정신이 없다. 딸들은 외계어를 쓰는지 자꾸 이상한 짓만 하고 아내와 바람핀 남자는 누군지 궁금하고.. 장인은 아내의 사고를 자신탓으로만 돌린다.

게다가 딸이 데리고 온 도무지 맘에 들지않는 남자친구까지 엉겨서 이 남자는 정신이 없다.

우리나라 남자뿐 아니구나 어느날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정신없이 돌아치기는 하와이도 마찬가지구나. 아이들을 돌보는것중 쉬운 일만 맡았던 그 남자는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고 변했는지도 몰랐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도 이혼을 하고 싶어했는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선조에게 물려받은 땅문제까지 겹쳐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한 남자가 모든것이 엉망으로 엉켜버린 가운데 하나하나 풀어가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작은 딸의 엉뚱한 행동  난데없는 딸의 남자친구의 멍청한 언행들이 자꾸 웃음을 만들어내지만 영화자체는 참 슬프다. 아무리 미운 엄마라도 이렇게 코마상태로 누워있다는 것이 가정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내의 불륜 상대를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마침내 만나지만 .. 그 남자는 아내의 마지막을 봐달라는 말만 한다. 어쩌면 아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고...

그 남자의 가족은 모르게 그렇게 전하고 오지만 막상 병실에 온건 그 남자의 아내...

 

여기저기 엉키고 우왕좌왕하면서 펫킹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이어나가지만 나는 자꾸 그렇게 코마에 빠진 그 남자의 아내가 맘에 걸린다.

자신은 아무런 변명도 이유도 말할 틈도 없이 누워있는데 자신의 불륜이 드러나고 불륜 대상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고 그의 아내는 와서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이 용서하겠다고 소리치고 가고... 남편은 남편대로 화를 내고...

이 여자는 할 말이 없을까?

왜 바람이 났는지 왜 부부가 서로 이렇게 이혼을 생각하게 되었느지 그녀는 할말이 없을까

코마에 빠졌다는 이유로 그녀는 어떠한 변명도 항변도 못하고 용서받고 이해받고 (?) 생을 마감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그 남자가 아내에게 입맞추고 나의 사랑 나의 고통 나의 즐거움 ,,, 어쩌구 할때는 살짝 눈물도 났다

결국 가족이란 가장 상처주고 가장 아프게하면서도 끝내는 보듬어가는 존재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아주 재미있도 너무너무 좋다,,, 라고 할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자꾸 생각날거 같은 영화다

 

어쨌든 영화속의 그 남자도 그리고 극장안의 우리들도 그렇게 삶을 지속할 수 밖에 없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