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남아 있는 길은 행복할까

새롭게 만난 여자와는 서로 통하는게 많아서 행복할까....

헐리우드 작가이지만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낭만주의자 길은 파리에서 낭만을 즐기고 싶어하고

현실적인 약혼녀는 파리 관광과 쇼핑을 원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나름대로 파리를 즐기고 있다.

여자는 현학적인 친구와 함께 늘 그런 관광을 하고 남자는 밤의 파리를 즐기면서 1920년도로 시간을 건너뛰어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난다.

파리가 낭만의 도시인건 맞다. 비가 오는 파리가 아름답고 그 거리를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낭만을 즐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

길이 느끼는 낭만 예술에 대한 목마름 그리고 고민들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왜 약혼녀를 이해 하려고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파리에 와서 여자라면 관광도 하고 쇼핑도 하고 맛난것도 먹는게 나름 낭만이기도 하다.

사실 소설에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그렇게 끌고 다니는 거나 쇼핑에 관광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끌려다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길이 그렇게 숭배해 마지 않던 1920년대 헤밍웨이를 만나고 피카소를 만나고 달리를 만나며 나름 파리의 낭만에 젖어들 동안 약혼녀도 즐겼을까..물론 즐겼겠지만 편했을까 길 만큼??? ㅁ모르겠다.

 

길을 따라 옛날로 돌아가 글로만 보던 작가들을 만나고 예술가를 만나고 그 당시 낭만을 만나는 동안 행복햇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길이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자기밖에 모르는게 아닐까 한다는 생각도 떠나지 않는다.

자기가 쓴 글을 약혼녀에게 보여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그가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보여주고 충고를 받을 수도 있는데 스스로 모든 걸 차단해버리고 외롭다고 하고 다른 여자에게 빠져 든다는 건 어떤 말로도 용서가 안된다.

내가 너무 나이든 아줌마 티를 내는 건지는 몰라도...

 

현재 내 상황이 썩 좋지 않아서 길의 낭만에 긍정적으로 동참해 줄 수 없음이 유감이지만

그래도 파리는 낭만적이고

더구나 비오는 파리는 더욱 매력적이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도 큰 비가 내렸다.

비오는 서울도 꽤 낭만적이지만

왠지 비오는 서울길을 비를 맞으며 걷고 싶은 생각으 ㄴ없다

그건 낭만보다는 조금 처량하고 궁상맞아 보일거 같아서....

 

현재 지금에 충실하라..

지나간 과거는 뭐든 아름답고 좋아보일 수 밖에 없다.

결국 또다른 결론은

글을 써라. 일단 쓰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 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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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멜리에의 그녀는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해 매력적이다.

이젠 그때처럼 통통 튀는 귀여움은 많이 사라졌지만 사랑스러운 여자가 나이를 먹었을때 가지는

또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프랑소와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했지만 사고로 남편을 잃은 나탈리는 일에만 몰두하면서 일에 미친채 살아간다. 회사 사장이 대쉬하지만 그것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어느날 회사의 무뚝뚝한 스웨덴남자 마르퀘스와 키스를 해버리고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다.

처음 남편과의 사랑은 그냥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속의 사랑이었다면

마르퀴스와의 연애담은 참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둘이 심각하게 갈등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과연 이 남자에게 왜 끌리는 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러면서 말을 통하고 유머코드가 같은 이 남자를 좋아하는 걸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나탈리다

나탈리는 정말 우발적으로 키스를 해버렸지만 그땐 그녀의 말대로 딴데 정신이 팔려서 자기도 모르게 착각한 것이었겠지만

그렇게 엉뚱하게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자꾸 마주치게 되고 바라보게 되고 이야기하고 하면서 비슷한 점 좋은점을 찾아간다.

마르퀴스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하고 조금은 소심한 남자지만 그 속에 따뜻하고 솔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상을 긍정적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큰 장점인거 같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게되면 내가  왜 그 사람에게 끌리는가 이게 과연 옳은 감정인가 내가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착각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된다.

더구나 한번의 경험이 있고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주저함 어쩌면 계산속이라고 할 수 있는 갈등들이 지극히 당연하다

나탈리는 그런 속의 갈등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참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두 사람이 그래서 사랑을 하게 되었다는 결과보다는

그 사랑을 과연 진짜 사랑인지 착각인지 고민하는 과정들

그리고 그걸 귀엽게 실험해보는 과정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이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는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느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응시하는 것

그 감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젊어서 불같은 사랑에 빠져버리면

그런 과정들을 단순한 계산속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버린다.

가끔은 내 감정을 들여다 보고 정리하고 응시할 필요가 있다.

 

오드리 토투 그녀는 나이를 먹어도 너무 사랑스럽다

그녀의 옷차림도 너무 맘에 든다. 작고 왜소해서 더 아름다워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차려입지 않고 아무렇게나 묶거나 풀어놓은 머리스타일도 맘에 든다.

 

어찌보면 달달한 로맨스지만 사랑을 할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할 것들을 보여주는 꽤 괜찮은 영화다. 왜 난 좀더 젊었을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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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건축에 대해 아는 건 없다.

몇몇 건축가의 이름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하고 가치있는 건축물들

그냥 상식적인 이야기들

오늘날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에서 거주해야하므로 갖는 내 공간에 대한 관심정도?

 

정기용.. 이라는 건축가도 영화를 통해 첨 알았다.

그가 말하는 건축

공간은 사람이 있는 곳이고 사람에게 필요한 곳이라는 것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주는 의미 그곳을 이용할 사람들이 꼭 필요료 하는 것

그리고 사회에 가치가 있는 존재여야 하는것

건축에 대한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확실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떤 영화

 

그보다 내게 영화가 끌어당기는 것은 건축가 정기용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정기용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보여주는 담담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보는 내내 뭉클했다.

잘 나오지 않은 목소리 쾡한 눈빛 그리고 조금은 어눌한 걸음걸이속에서도 그는 신념이 있었고 두려움이 없었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길 죽어서 하는 회고전은 너무 슬프지 않느냐고  살아있을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담담하고 조용한 모습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들이 보면서 다시 내 자세를 고치게 하고 옷깃을 여미게한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젊은 날의 모습들과 아들의 모습에서 건축가 정기용이 아니라 인간 정기용 한 아이의 아버지이고 가족이던 정기용을 보면서도 뭉클하다.

세상과 하는 소통을 그는 건축을 통해서 한다.

영화에서 그가 지은 납작 엎드린 숨어있는 집을 보여주는데

집 주인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한 소통이 없었다면 이런 건축물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주고 드러내려는 아름다움이나 웅장함 없이 조용히 위로하고 안아주는 집이라는 것.. 공간이 건축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첨 알았다.

 

어쩌면 영화를 보러간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뭔가 위로를 받고 싶었고 다 괜찮다는 무조건적인 위안을 얻고 싶었던 까닭에 그 집에 더 와닿았고 그 분의 나즉한 목소리가 더 울림이 컸던지도 모르겠다.

세상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한 사람의 작가의 말년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나는 누구와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고함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감정에 푹 빠져서 내게 보이는 것만 믿고 보려고 하는건 아닌가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다른것일지라도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드는 것 삶의 마지막에 대한 엄숙하고 경건한 예의

그리고 사람들과의 소통...

그것만 내게 남아있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면 나는 누구와 소통했노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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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하고 말이 많긴했다.

여고생과의 섹스신이 과연 타당하고 정당한가..

뭔가 야하고 음흉한 뭔가를 원했던 사람들은 다들 실망하고 돌아섰다는 말도 있고

기대하지 않고 보고는 감동하고 뭔가 뭉클했다는 말도 있고

일단 내가 보고 판단하자.

 

초반 내내 왜 하필 박해일이 노인분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년의 배우를 쓰지는 않더라도 조금 더 나이 든 배우를 노역으로 분장시켜도 되지 않았을까

아직은 젊은 박해일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왠지 이적요가 어색하기만 했다.

차라리 한석규를 노역으로 했더나면 그것도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고 이적요가 은교를 보면서 알 수 없는 떨림  설레임을 느끼고 상상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직 청년의 모습이 아니 어쩌면 덜 성숙한 소년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박해일이 더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육체적으로 나이를 먹어서 늙어버렸지만 아직 불안하고 순수한 청년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이적요에게 박해일을 딱이었다.

그가 은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끈적이지 않았고 그냥 나이만 들었을 뿐 누구나 가지는 사랑에 빠지고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만약 정말 이적요 나이의 배우가 했더라면 미안하지만 조금 추해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은교가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은교의 거울을 주워주기위해 위험한 벼랑으로 걸어가고 교복을 말려주는 모습이 참 순수하고 보기 좋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모든것이 변하는 건 아니다.

몸이 늙는다고 해서 생각이 마음이 함께 나이먹어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적요가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도 소녀를 보면 마음이 설레고 좋아하는 소녀를 위해서 치기어린 영웅심리를 내보이기도 하고 그녀가 해주는 건 뭐든 맛있고 좋고 그리고 쉽게 마음을 보일 수 없어서 그 모든 열정을 소설에 쏟아부어 버리는 것 

어쩌면 이적요는 순수하고 치기어린 청년과 함께 배려심있고 나이든 노년이 함께 보기좋게 공존하는 인물인거같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적절하고 추악한 욕정이라고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끼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울 수 없는 관계를 묘사한걸 보면 알 수 있다.

은교도 소설을 읽고 자기가 그렇게 에쁜지 몰랐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적요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 그 소설에 모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제삼자인 정지우의 눈에만 그렇게 추악하고 더럽게 보이는 것이다.

그냥 세상사람의 눈으로 노인이 주책맞고 추잡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치는 것이었으니까...

 

영화를 보면서 왜 은교가 정지우에게 끌렸을까 내내 의문이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은교도 이적요에게 뭐랄까 사랑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인간적인 끌림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다정하고 자상한 할아버지 그리고 자신을 힐끗보면서 얼굴을 붉히는 조금은 엉뚱하고 귀여운 구석도 있는 할아버지라는 건 알았을 것이다. 자기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도 알고

성공한 소설가라는 레벨에 정지우에게 끌렸나?

아니면 젊다는 것?

왜 그 겨울밤 은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 정지우와 섹스를 했는지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관계를 보면서 그리고 그 사이 그 말많았던 대사를 보면서 참 의아해샛다.

아직 불안정하고 모든 것이 서툰 젊음이라 잠시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이해하더라고 은교의 그 행동은 좀 그랬다.

그러나 결국  본인들만 아는 공기의 미묘한 떨림 습기 그런것들을 나중에 깨닫게 되고 그건 누가 말해준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니라고..

결국 치기어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그 속에서 내가 함께 휘몰아칠때 알 수 없었던 그런것들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다시 곱씹어야 알게 되고 보이는 것  그런 은교의 뒤늦은 깨달음도 참 슬펐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제목은 은교이지만 어쩌면 주인공은 은교가 아니라 이적요인거같았다.

세사람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은교가 아니라 이적요이고 정지우와 은교가 양쪽에서 이적요를 자신으로 끌어당기려는 힘겨루기가 아닐까

정지우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같고 존경하고 흠모하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이적요에게 오직 자신만이 다가가 밥하고 빨래하고 뒷바라지 하면서 받들었는데 은교가 나타가 이적요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알수 없는 질투

좀 유치하게 표현하지만 그동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동생이 태어났을때 모두의 관심이 거기에 모여들고 게다가 동생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고 그럴때 느끼는 유치하지만 처절한 질투가 정지우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욕망은 있으나 실력이 없는 정지우는 이적요가 늘 흠모의 대상이면서 질투의 대상이었는데 그 적나라한 내면이 은교가 나타나면서 점점 드러났던게 아니었을까

이적요의 작품을 가지고 은교를 가지고 그러므로서 이적요를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아직은 어리고 물정모르는 은교는 그 사이에서 그렇게 엉뚱하게 본의아니게 줄타기를 하고 상처를 입히고

젊음과 나이듬

내가 가질 수 없는 재능에 대한 질투

젊음에 대한 질투

이적요나 정지우는 서로 자기가 가진것보다 상대가 가진 것에 더 집착하면서 싸움을 했던거 같다.

 

 별이 다르다는 걸 알아보는 감수성

연필이 슬프다는 것 발뒤꿈치가 슬프다는 걸 알고 있는 감수성을 생각해본다.

마지막 이적요가 쓸쓸하게 은교에게 인사할때 눈물도 나싸.

그렇게 내 청춘이 뒤늦게 마감했음을 그는 알았을 것이다.

꽤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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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2-05-1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망이라는 것 그것이 클수록 절망도 깊은 것이다.
욕망은 나이를 먹는다고 많이 가졌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게 슬프다.
 

ㅇㅎㅎㅀㅇㄹㅀ             

 

 

 

 

 

 

 

 

 

 

 

 

 

 

 

 

 

어느 영화평에서 본 글

성인용 건축학개론이라고

 

하긴 닮은 꼴이긴 했다.

남자가 건축가였고 예전에 연인이 헤어졌고 다시 우연히 만났고 다시 불태우고

 

세상에 세상에 이런 찌질한 남자가 다 있나

하긴 여자도 보는 내내 불편하게 찌질하게 굴긴 했다.

내 옆에 두 사람이 있다면 뒤통수를 한대 후려치고 걸죽하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주고 싶을을만큼

사실 두 사람은 잘못이 없을지모른다.

이런걸 예술이라고 만드는 남자는

어쩌면 건축학개론의 그 감독못지 않게 여자에 대해 첫사랑에 대해 그리고 스스롱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나랑 헤어진 여자들은 나를 잊지 못한다.

다시 만나면 나로 인해 설설레고 생의 기반이 흔들기고 뭔가 다시 시작하고 싶을 지도 모모른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아직도 먹힌다 정도

내게 어떤 예술적 감흥이나 촉이 없어서 이렇게밖에 해석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불륜이고 찌질함의 극치이고 나쁜놈의 극치이다.

사랑이 그리고 추억이 이렇게 추잡스러울수도 있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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