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각자 한조각씩의 퍼즐을 가지고 있다.

그걸 하나하나 모으면 완성된 그림이 나타나고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망설인다

복잡한 일에 얽혀들기가 싫어서 혹은 나의 안위를 위해서

욕망에 충실하게 뒤쫒느라 자기가 조각을 가졌는지 조차 모르거나

자기연민때문에 조각의 존재를 잊어버리거나

등등의 이유로 자기가 진실의 한조각을 가졌다는 것을 외면한다.

 

그러나 외면하면서도 자꾸 뒤통수가 간지럽고 뭔가 불편하다

화장실에 갔다가 그냥 나온것처럼 찝찝하고 누군가가 자꾸 밟히고 누군가가 걱정이 된다.

자신의 손이 있는 조각을 들여다보지만 그것이 가지는 가치는 모른다.

 

그러다 어느순간 자각이 일어나면서 각자 자신의 조각에 관심을 가진다.

어쩌면 이것이 필요한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믿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웃사람이고 우리는 그들과 힘께 살아가야 하고 매번 마주치며 인사하고 지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손에 쥐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춰주기를 바라기때문이다.

 

그렇게 퍼즐을 맞추어졌고 진실은 드러난다,

 

강풀의 만화를 볼때.. 매일 가슴졸이며 다음회가 업뎃되었는지 들락날락 거리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혼자 속으로 작가를 욕하다가 올라왔다싶으면 또다시 경배하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리면 보던 만화였다.

귀신이나 좀비가 나오지 않으면서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빠졌었다.

괜히 내 주위에 저런 나쁜 놈이 있는 건 아닌지 도끼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웃이면 좋겠다는 근거없는 착한생각도 하고

그 만화가 영화가 되었다.

싱크로율이 좋은 배우들이 나와 그래도 강풀의 다른 만화보다는 재미있고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만화에 비해 사채업자 조폭이 착한 남자로 나와서 문제의 중심에 선다는게 낯설기도 하지만 괜찮은 의도로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소심하고 무심할때 사실 의도치 않게 문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사실은 자신의 이익과 누명을 위해 뛰어들었으나 결론은 정의를 실현하게 되는 희안한 결말이 나쁘지는 않다.

요즘처럼 흉흉한 일이 많은 세상에서

차라리 의도치 않더라도 이렇게 나쁜놈을 누군가 잡아줬으면 하는 심정이 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손에 쥐어진 퍼즐조각을 무시하지 말자

내 촉에 걸리는 평범치 않은 느낌 서늘한 기운에 늘 관심을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한 영화다.

 

또하나...

안혁모처럼 드러난 악인보다 류수혁처럼 드러나지 않은 악인이 더 위험하다

온몸에 문신을 세기고 거들먹거리고 폭력을 동원하고 거친말과 아무데나 침을 찍찍 뱉는 안혁모는 모두에게 존재감을 주고 긴장을 준다.

그래서 경계하고 조심하고 예의주시 대상이다

그러나 류수혁처럼 소심하고 보이지 않지만 음침한 인물은 위험하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않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으면서 보기에 나보다  찌질해보여 만만하게 보이기까지하는 존재의 역습을 주의해야한다는 것

악인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비슷하거나 하찮을만큼 존재감이 없을 수 있다.

혹은 우리 주위에서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인물일 수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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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2-09-0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보고 만화 봤는데요, 둘 다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류수혁이 더 찌질하게 나왔던 것이 좋았구요. 영상에서 김윤진 장면들이 다 너무 짠하니 좋더라구요. 전 딱히 모성 주제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한건 아닌데,김윤진의 세븐데이즈도 이웃사람도 그 여운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요.

다른 무엇보다 '아이'를 우리 모두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건간에 지켜내야할 소중한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점이 정말 좋았고, 나중에 만화 후기 보고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는데, 그 소동을 아이가 끝까지 모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좋았어요.

 

 

 

 

사실 제목만 보고 뭔가 피비린내나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했다.

뭔가 볼게 없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도데체 이건 뭐지 하고 클릭한 순간

멋진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간만에 보는 조디 포스터에  캐이트 윈슬렛까지...

게다가 코메디라니 확....

 

작은 씨네큐브의 극장안 관객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공감하지 않았을까

웃음을 터뜨리는 부분 픽 하고 실소가 나오는 부분 그렇지 하고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 ,,, 그게 어쩌면 그렇게도 다들 비슷한지...

대체로 연령층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이랑도 적당히 타협하고 모른척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주부들이라(물론 남자도 있고 연인도 있었다) 다들 공감하는 부분이 비슷하다

 

이야기의 발단은 간단하다.

두집의 아이가 놀다가 다툼이 났고 한아이가 나무막대로 쳐서 다른집 아이가 이빨이 두개 부러졌다. 그 문제로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 부모를 만나 사과를 하고 뒷일을 의논하고 돌아가려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소도 한정되어있고 네사람의 대화로 모든  상황이 이어지는 게 연극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 희곡이었고 대학로에서 공연도 했던 작품이란다.

 

두 부부는 모두 교양이 있고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안정을 이룬 지식인이다.

변호사에 주식 중계인 작가와 영업맨...

처음엔 점잖게 서로 사과하고 이해하고 이럴 수도 있지 하고 교양있게 넘어가지만 한순간의 말한마디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그 와중에 변호사는 계속  핸드폰으로 자기일을 보고 있고(거의 모두가 상황을 알도록 생중계를 한다)  그리고 속이 않좋은 부인이 구토를 하고 책이 젖어버리고 등등의 상황이 이어진다.

각자 자기 아이의 편을 들고 변호하는 과정을 지나다가 각각의 아빠들은 사실 이 사건에 그렇게 깊게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고 그냥 좋은게 좋은대로 넘어가길 바란다는 의도가 드러나고 무심한 아빠의 모습이 나오면서 이 다음엔 여자대 남자로 대결구도가 간다.

사실 말이 날카롭지만 그래도 다들 교양있게 말로만 싸운다.

그러다 조디포스터네 부부가 다툼이 일어나고 욕이 나오고 구타가 나오고..

암튼 누구나 공감하고 한번쯤은 해봤을.. 혹은 해버릴뻔한 상황들이 계속된다.

가직적인 여자 일만 중요한 남자 만사가 태명하면서찌질한걸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여자 정의롭고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걸 너무나 강요하는 여자.. 등등

누구나 우리같기도 하고 우리가 아는 누구와 닮았다.

 

조금 시시하기도 했지만 계속 키득거리며 볼 수 있다.

좀 더 강하게 서로 충돌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당하게 우아하게 끝이 났다.

어른들은 그렇게 욕을 하고 핏대를 세우고 가방을 집어던지고꽃을 내팽개치면서 싸웠지만

정작 싸웠던 당사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채 다시 어울려 놀고 있다.

 

 

어쩌면 핏대를 세우고 온 힘을 다해 상대를 비난하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내동댕이 치는게

사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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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데체 어떤 영화이길래.. 어떤 엄마이고 어떤 아들이길래..

그런 의문이 가득해서 극장에 들어섰다.

늦는 저녁 의외로 혼자 앉은 누군가의 엄마들이 있다,

나랑 같은 마음이었을까...

 

극장안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토마토축제부터 나오는 붉은 색

집에 던져진 붉은 페인트

아이가 입은 붉은색 티셔츠 심지어 화면 한켠에 잡히는 테디베어도 붉은 색이다.

 

영화에는 끔찍한 장면이나 충격적인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영 내내 가슴을 죄어오는 긴장감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무슨일이 일어나서 무서운게 아니라 일어날거 같은 그 순간의 압박감  초조함을 더 못견뎌하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 눈앞에 일이 벌어지고 피바다가 되고 시체가 둥굴고 살인자가 활을 쏘아보리는 자체는 그 자체가 긴장해소라고나 할까.. 이미 끝나버린거니까

무슨일이 생길듯 말듯한 느낌이 게속되면서 관객에게 쉴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저 엄마가 도데체 뭘 잘못했다는 거지?

영화를 보기전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 모성의 부재라든가 싸이코패스는 태어나는 것인가 등등의 논란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어쩌면 철저한 엄마입장에서 볼때) 그 엄마가 모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녀는 다만 서툴렀고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고 그래서 난처했던것 뿐이다.

그동안 수십년의 교육을 통해서 일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도 엄마가 되는 법 아빠가 되는 법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운것은 아니다. 그냥 아이를 낳았으니 엄마가 되었고 그러니 모성은 젖이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것이고 모유수유를 하지 않은 것이 이유야 어찌되었든 아이에게 나쁜거라는 죄책감을 가지게 하듯이 모성이 나오지 않은 것도 나쁜거란 것만 주입되어 ㅇ왔다.

 

에바처럼 생각지 않은 임신 그것이 축복이고 마냥 좋지마는 않은 엄마가 얼마든지 있다. 그럴 경우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고 짜증의 연속일 수 있다.

누군나 엄마가 된다고 저절로 모성이 나오는건 아니다. (각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사실 아닌가)

그래서 힘들었고 피하고 싶고 하지 않고 싶지만

그래도 에바는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을 어찌 할 줄 몰라 공사장 소음앞에 내팽개쳤다고 하지만 그건 아이를 내팽개친게 아니라 스스로를 그렇게 소음속으로 던져둔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나도 나를 괴롭히는 소음같은 것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애 대한 훈련으로 보였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케빈에게도 정말 정성을 다 한다.

엄마로서 서툰 몸짓이 있고 표정이 있지만 아이를 사랑하지 않거나 귀찮아하는 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광고에 나오는 엄마처럼 늘 다정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아이에게 친절하고 미리미리 알아서 모든걸 해줄 수 없다. 나 역시 그렇고

엄마도 사람이라 힘들고 귀찮고 몸이 아플때는 조금 건성일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고 한두가지 빼먹기도 하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애정이 없다고 할 문제는 아닌것이다.

애바는 나름 노력을 했고 화도 냈지만 문제는 캐빈이다.

 

그 아이는...

타고는 싸이코패스였던거 같다.

한 사람을 집요하게 미워하고 그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즐기는 것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한사람을 모욕하고 미워하고 아프게 하는 것

그것도 그 나이답지 않고 지능적이고 치밀하기까지 하다.

 

사건이 터지고서도 에바는 동네를 떠나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 모욕 화풀이를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간다.

집에 묻은 페인트를 지우고 집을 정리하는 모습은 진지한데다 경견하기까지 하다.

애바의 모성은 그런 것이다.

다정한 미소나 관심등 드러나는 것들은 부족할지라도

아이에 대한 책임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누구의 탓이라고 남탓하지도 않는다.

그냥 정직하게 힘들다 이상하다고 표현할 뿐인데 그것이 엄마답지 못하다 모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게 견디는 것 그것도 모성의 한가지이다.

 

왜 그랬을까 캐빈은...

영화가 끝이 나고 상영관에 불이 들어와도 나는 잘 모르겠다.

캐빈조차 그때는 알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그 말은 캐빈이 지금은 마음에 조금의 움직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조금씩 남과 접촉하고 남을 의식하는 마음 (그걸 공감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거 아닐까

오래오래 견디는 엄마를 보면서 변하지않고 곁을 지키는 에바를 보면서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에바만큼 캐빈도 밉지는 않았다.

그 멋진 얼굴에 번지는 사악한 미소에 몸서리가 쳐지긴 해도 미워할 수는 없다.

그도 뭔가 불편하고 힘든 것을 지니고 그걸 어찌할 수 없었던게 아닐까..

(어쨋든 영화니까 미워하긴 힘들었다. 현실이면... 아우....)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같지 않으니 지금같은    문명의 발전을 이루고 그래도 살기좋은 다양하고 멋진 세상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나와 다른 것을 못견뎌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도 스스로 힘들어하고 조금이라도 같아지고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의 다양성만 바란다.

세상에는 에바도 있고 케빈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내 곁에 있을 수도 있다.

내 곁에 그들이 있다면

내가 그들이라면...

내가 바라는 건 공감과 이해일까..

그것까지는 아니더라고 그러려니 하는 무심한 시선일까..

늦은 밤 극장을 나오면서 곁에서 종종걸어가는 사람들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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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롭고 담담하지만 따뜻하고 몽환적인 이야기

거기에 음식까지 곁들여지며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럽다.

적어도 나는 그런 걸 좋아한다.

알맹이가 없다거나 너무 이쁘기만 하고 사고가 없다는 비평을 받는 종류이지만

가끔은 몸에 좋지않지만 입에는 좋은 것들을 먹고 싶은게 사람 아닐까

달콤한 케잌 한조각의 칼로리나 독소가 많겠지만 순간의 달콤함에 위로받고 싶고

크림과 시럽이 잔뜩 들어간 커피나

독한 술한잔과 기름지고 자극적인 안주들

그런 것들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해피해피 브래도도 그런 영화다

물론 영화속에 나오는 빵이나 요리는 너무나 건강식이고 자연친화적이며 담백하다

영화자체도 그렇다

주인공의 불안이나 불안정감의 원인은 알 수 업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이해하고 깨달아간다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차철로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인생을 바꾸어본 적이 없는 청년의 무모한 용기

엄마가 떠난 빈 자리를 눈물로 울음으로 채워나가면서 치유해나가는 부녀

그리고 죽음앞에서도 살고 싶은 욕구의 정직함이

물론 동화처럼 아름답기만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현실은 더각박하고 영화속처럼 그렇게 누군가 한 사람을 위해 버스가 마냥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뭐든 때가 되면 야박하게 떠나고 진가고 남은 사람은 허둥지둥한다.

하지만 간혹 삶에 쉼표를 찍어놓고이렇게 몽환에 빠지는게 나쁘기만 할까

깜빠뉴.. 함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

식구.. 함께 음식을 먹는 입

음식을 나누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건 결국 나자신의 힐링이다.

남을 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치유가 되고 위로가 되는것

그것이 음식이 아닐까

거창한 요리가 아니라 씀씀하고 소박한 빵처럼...

 

 사족.. 그래도 역시 음식 영화의 지존은 카모메 식당이고 심야식당이다.

          나 전생에 일본사람이었나 아니면 친일파였을까

          일본 영화나 소설의 정서가 참 좋다. 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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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웅들 중 가장 호감을 가진 인물 피터 파커

다른 영웅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는 피터 파커일때랑 스파이더 맨일때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 스파이더 맨 속에 늘 피터 파커이 모습을 지니고 있다.

불안하고 서툴고 순수한 모습 그래서 조금은 나약하고 인간적인 그런 모습

 

이전 시리즈도 열심히 챙겨봤지만 계속 후편이 나올수록 뭔가 아쉽다고 느꼈다.

스파이더맨이 아니 피터파커가 점점 느물느물해지고 세련되어 가는게 뭔가 썩 개운치 않았다.

아직은 어설퍼서 더 매력적이고 고민에 빠져 있는 그가 더 좋았는지 모르겠다.

 

어제 다시 극장에서 피터파커를  만났다.

이번 주인공도 소심하고 불안정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전작들에 비해 많이 요즘아이스럽다.

경쾌하고 다순하기도 하면서 쿨해보이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가 가진 개성인지 아니면 새롭게 해석되어진 인물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요즘 10대의 모습이 된 피터파커를 보면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내 아이가 10대가 되었다.

아직 미친 중 2는 되지 않았지만 그 전초전을 겪고 있어서 수시로 우울하고 수시로 불만이고

수시로 걷잡을 수 없이 행복하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나는 사춘기를 견디는 방법을 본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없고 또 알려는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는 피터에게서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춘기의 모습을 보고

학교 악동을 혼내고 벌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고 현실에서 도피해 밤거리를 해매는 피터에서는 불안감 절망에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본다.

반항하고 전화를 무시하고 건들거리고 욱하는 모습들

그건 사춘기에 드러나는 모습들이니까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삼촌과 숙모에게서 나는 또다른 사춘기를 겨디는 사람들을 본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드어선 자녀를 가진 부모들

그들이 겪어내는 사춘기를 나는 담담하게본다.

기다려주고 몰아세우지 않고 믿어주고 자존감을 올려주는것

나는 너를 믿는다 .. 너는 이 시대의 영웅일거다..

어쩌면 허무맹랑할 수도 있고 립서비스처럼 느껴질 지 모를 그들의 무모하지만 단단한 믿음과 기다리에서 나는  또 다른 사춘기를 견뎌야 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배운다.

 

내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 영웅들은 잘 모른다)

그가 끝없없이 자기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의심스러워하며 자신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 고민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는점이다.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항상 올바른 판단을 하면서 정의를 구현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능력자가 아니라 쫄쫄이때문에 답답하기도 하도 가끔은 상처도 입고 여기저기 내팽겨쳐지기도 하면서도 고민하고 다시 정의를 앞세우는 조금은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고 고민하는 인간적인 영웅

그게 내게는 스파이더맨이다.

 

같이 본 아이는 무얼 보았을까

그저 볼만한 외모의 청춘이 가지는 로맨스와 정의로운 능력

아마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꼈기를 바란다.

 

저들도 저렇고 고민하고 불안하구나

그렇게 저들에게서 나를 보고 내가 살아갈, 지탱할 힘을 얻기를

부모로서 내가 줄 수 없는 무언의 용기와 위안을 스파이더맨에게 받았으면 하는

은밀하고 이기적인 소망을 해본다.

 

이제 사춘기의 한 면을 겨뎌낸 스파이더맨 아니 피터파커의 다음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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