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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먹은 음식은 오랫동안 몸이 기억한다,
그때 어떤 맛이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게 된다,
어떤 분위기였느지 누구랑 먹었는지의 기억도 희미해지겠지만 그 맛이 주었던 감정은 남게 된다,
즐겁다거나 슬펐다거나 억울했다거나하는 맛을 내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고 있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울할때 기운이 나는 ,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내게 힘을 주는 음식도 그렇고 왠지 가까이 하기 싫고 누구나 좋아하지만 나는 끌리지 않은 그 음식에도 그런 감정이 함께 할 것이다,
병약하지만 아름다웠던 엄마는 요리솜씨는 엉망이었다,
반조리 식품 인스턴트식품 그리고 토스트 조차 잘 태워먹고 조리도구는 먼지가 덮이고 구석에 방치되어 있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볼품 없고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음식이 주인공에게는 천상의 맛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하나하나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그 추억이 다 맛깔스럽지는 않다,
똥 구토물 침 등등 역겨운 배설물들이 함께 등장하고 불쾌한 냄새 우울하고 무서운 기분 어색했던 순간들이 함께 기록된다,
그런 상황에서 반조리식품의 조리법이나 건조된 야채들 그리고 캔디 초코바 젤리 케익등등의 간식과 디저트가 펼쳐진다,
사실 내 마음의 소울푸드가 모두 슬로푸드고 몸에 좋은 것일 수는 없다,
엄마 몰래 문구점에서 사 먹었던 강렬한 색깔 제각각 모양의 조잡한 군것질들
차가 다니는 도로의 먼지와 소음을 모두 머금은 길거리 음식들
하교길에 옹기종기 모여 입이 반쯤 벌어진 것도 모르고 바늘로 콕콕 찌르며 하나더를 기다하던 뽑기 달고나
리어커에서 퍼 주던 냉차들
야자를 땡땡이치고 몰려가서 먹었던 학교 가까운 중국집의 짜장면
먹어도 먹어도 계속 불어나던 대연시장 구석에서 필던 칼국수
시험끝나고 친구들과 몰라겨서 바가지를 쓰는 줄도 모르고 절대 친절하지 않은 험상궃은 좌판 아줌마들한테서 사먹었던 비빔 당면
국물한 번 찍어먹으면 아줌마 호통에 쫓겨날 수도 있던 하교길 포장마차 떡볶이
사실 엄마가 해주는 음식도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정갈한 건 아니었던거 같다,
라면도 끓여먹고 스팸도 구워먹고
사발면도 박스째 사다놓고 온가족이 먹은 기억도 있다,
찬밥에 콩나물 대가리만 남은 잔반만 놓고 먹은 기억도 있고
제사 일주일이 지나 아직도 남은 전들을 모아 잡탕찌게를 만들어 아무 생각없이 퍼먹었던 기억도 있지만
밀가루 반족을 해서 얋게 밀고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가운데 금을 긋고 그 사이로 두번 꼬아서 기름에 튀겨주던 타래과의 기억도 있고
밤 콩 과일 통조림 등등을 넣어 밥통이 폭 쪄준 영양빵의 기억도 함께한다,
무엇을 먹든 음식은 그 당시의 기억이 더 오래 가는 법이다,
그렇게 맛은 내 속에 들어와서 기억되고 추억이 되고 그리고 그리움이 된다,
주인공 나이젤도 그랬다,
친엄마의 엉망인 솜씨로 만든 요리들이 따뜻한 추억이 되고
맘에 들지 않았지만 조안 아줌마의 화려한 음식들도 불안하지만 이젠 추억으로 남았다,
음식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풀어놓은 것은 작가 자신의 성장이야기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
사랑하는 엄마가 죽고 아빠와 함께한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시간들 새로운 여자의 등장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시절 외롭고 소외받은 기억들
그리고 요리에 대한 관심과 성장기 소년이 갖는 성적인 호기심과 이성친구에 대한 이야기
한국이나 영국이나 더러운 주방을 가진 식당들도 있고 대충대충 만들어 장식에만 치중하는 연회요리도 있다,
이야기 하나씩 하나씩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다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더 이상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소년의 이야기가 뭉클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낯선 음식들 케잌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따뜻한 추억이 함께 하는 음식은 뭐든 맛있어 보인다, 궁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