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만약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언제나 이 물음앞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휙휙 지나간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여러가지 계산들

어떤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아이가 생기기 전? 대학시절? 결혼전?  아니면 고등학교 때로 가서 다시 빡세게 공부를 해봐?

어디로 가야 내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풍부할지 머리를 굴리지만

어떤지점도 만족스럽지 않고 어떤 지점도 포기할 수 없다,

아예 다시 태어나는건?

그렇게 질문앞에서 망설이는 동안 그 질문은 스르르 사라진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도데체 어느 지점으로 돌아갈까?

가능하지도 않은 물음앞에서 진지하게 오래 고민한다

다만 변한건 어느 지점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지금의 나와 다를까?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뿌듯하지도 않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럽지 않다

아니 후회홰도 소용없다는 마음이 강해서일거다,

되돌린들 나는 또 같은 지점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같은 시간에 같은 실수를 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거나 우물쭈물하다고 놓칠것이다,

어쩌면 그 지점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선택에 다름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나는 역시 지금의 나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것이다,'그러니 굳이 되돌아 갈 이유가 없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지금의 나에게 또다른 삶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지만

결국의 지금의 삶을 받아들인다,

남들 눈에는 초라하고 평범하고 별것 아니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안다, 다른 내 모습이 있다거나 다른 선책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나도 그런 기대로 살아왔을 것이고 지금 내 모습도 그런 선택과 기대의 결과일 뿐이다,

 

비슷비슷하고 한 번쯤 스치며 혹은 진지하게 생각해 좠을 지금 여기와는 다른 어떤 삶에 대한 고민이 각각의 단편에 담겨있다,

스윽 보면 닮아보여서 그게 그거 같은 이야기지만

오래 들여다 보면 제각각의 이야기가 숨어있고  결이 다르다,

 

 

#  2

 

마지막 단편 "어딘가 있을 너에게"

별거 아닌 단편에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남은 시간 동안 그 때일을 복기하는 사람

그때 내가 아이를 잡지 않았더라면

주먹밥을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앞 차를 탈 수만 있었더라면

 

그때 내가 세탁기를 배달받지 않았더라면

운반해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창문을 열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랑하는 대상은 없다,

그 순간의 내 선택이 내 행동이  어쩌면 나의 배려가 그런 사건을 만들어 낸건 아니라고 이성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지만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내가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배려했더라면... 자꾸 모든 원인이 나에게 돌아온다,

 

분명 이 여자는 키치를 찾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겠지, 그리고 키치를 찾지 못하거나 더 슬픈 현실이 펼쳐지면 자신의 일처럼 울어주겠지, 어느 쪽이든 자신의 슬픔과 비교하는 일 없이 그렇게 해주겠지 그리고 나도 이 여가가 슬픔을 떠올릴 때마다 줄곧 슬퍼하겟지 아마도.

 

슬픔이나 후회는 단 1 밀리그램도 줄어들지 않지만 크기의 차이가 아닌 무게의 차이도 아닌 그저 그것을 짊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공명한다,. 그것이 이렇게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니와코는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다,

 

아들을 잃은 요다와 고양이를 잃은 니와코

누구의 슬픔의 무게가 더 큰지는  중요하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공명하게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뫁으로 올라올 일만 남은 낡고 망가지 세월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공명하고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그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런 표정 그런 말투는 하지 말아야 했느데 하고

끝임없이 내 속에서 자책을 찾아내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주는 것보다

함께 울어주는 일 울음을 안아주는 일... 그게 더 위로가 된다고 말해준다,

 

 

무심하게 되돌릴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나

이미 생은 지나버린걸... 하는 마음으로 단편을을 읽다가

마지막에,,, 그럼에도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시 쉽게 다 안다는 듯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누군가의 간절한 시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  3

 

미스터리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단편들이다,

삶에서 내가 모르는 귀퉁이가 있다면 그것 역시 미스테리일 수 밖에...

내가 모르는 부분들 알지 못했던 부분들 그리고 덮어버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한

삶은 어떤 면에서 미스테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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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의 나이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깊은 주름을 가진 외모

그와 다르게 아직도 탄탄하게 살아있는 근육과  빈첩한 반사신경

그녀의 직업은 청부살인업자이고  그들끼리는 방역업자로 통한다,

쥐 바퀴벌레 등등 사람에게 해로운 해충이나 미물을 없애나가는 일을 한다는 방역업자가 그들의 일이다, 결국 사람에게 해가되는 건 그런 미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가장 해롭고 가장 두려운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다른것이 아닌 사람을 없애는 일을 하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나이든  조각이다

'조각'이라는 명칭도  주인공의 본명은 아니다,

어느 하나 빈틈 없이 일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붙은 별명

그 세계가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이니만큼 주인공도 그렇게 하나의 가면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이제 65세 세속의 어떤 일을 하건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그 조각이 어는 순간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무엇엔가 욕심을 내고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는 순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연민이 남고 미련이 남아있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의 주저앞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을 쳐내고 건조하고 매마른  강팍한 줄기하나만 남겨놓은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누군가를 욕심낸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이 되돌려주었던 피비린내나는  앙갚음에 살기위해 그리고 누군지모를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조각이 어느 순간 방역과정에서 몸을 다치게 하고 강박사를 만나고 그의 무심하고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무너진다, 그건 어떤 연애감정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꽁꽁 묶어놓았던 저 심연아래 감정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실금을 만들어가다가 어느  부지불식간에 그 틈으로 스며나온 물기처럼 올라온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본 진심의 감정이나 무심한 다정함이 조금씩 그 균열을 넓히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주는 대상이 생기는 것

그렇게 무언가 지켜보고 싶고 잘 살았으면 바라게 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은 위험하다

조각에게도 위험하지만 그 대상에게도 위험하다,

 

그것이 나이듦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외로움의 끝에 드러나는 지쳐버린 순간이 왔기 때문일까

알지 못한다,

조각이 65세가아니라고 해도 오랫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던 누군가가 방심하던 순간 불쑥 내 바운더리를 침범해온 다정함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긴장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사실 이 소설이 나왔던 시점에 읽었었다,

그때는 너무 길게 늘어지는 문장과 도데테 65세의 킬러라니.,

그리고 소설 말미에 그렇게 피비린내 풍기는 난투극을 겪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몇년되지 않은 과거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거나 아직도 억누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읽게 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지루하고 길을 잃기 쉬운 그 긴 문장들도 어쩌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이 이어지는 노년의 평범하고 막막한 시간의 흐름같았다, 아직 조각의 나이는 한참 남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아무런 연관없이 이어지는 경험을 나도 한다,

그 이어지고 이어지는 상념을 문장으로 풀어낸다면 이렇게 마칠듯 마치지 않은 만연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강하고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듯 단단하게 여며진 조각에게서 얼핏 보여지는 소심하고 주저하는 모습들도 좋았다,

혹시 나의 어떤 행동이 말들이 어떻게 들리려나 순간 생각하고 지나가는 순간들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마음이 먼저가는 순간들이 좋았다,

대상을 처리해야하는 순간 페지 줍는 노인을 도와줄 수 밖에 없다거나

나갈 때마다 행여 혼자 남게될  반려견 무명을 위해 창을 잠그지 않은 행동들

군데군데 보이는 소소한 묘사가 좋았다,

 

한때 농염한 향기를 풍기고 한 입 깨물면 수밀한 과즙을 흘리며 싱싱하게 살아있던 과육이

잊혀지고 방치되어 구석에서 점점 물러지고 흘런내리고 색이 변해서 순간 시큼하고 들큰한 냄새를 풍기는 파과가 되어가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이듦의 묘사이기도 하다,

한때 아름답지 않았던 노년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그렇게 빛나는 순간을 빛나는 순간이라고 알지 못하고 그 시간 한가운데서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서서히 익어가고 익어서 더이상 익을 수 없어 썩어가는 순간  아 그때 내가 아름다웠고나 하고  돌이키게 된다, 그 순간의 가운데서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녀 조각의 가장 어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삶이란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잉라는 드라마틱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미미하고 지루하게 꾸역꾸역 살아내거나 치열하게 돌아볼 틈도 없이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순간 반짝하는 반딧불처럼 살기도 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이제 절정의 순간이야

이제 결말을 해야할 시간이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몰아치다가 순간 무심해지다가 그저 살아내는 것같다가 순간 반짝했다가,... 또 다시 반짝할 수도 있는 것... 그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유선을 그렸다가 다시 되올아갔다가 하는 제각각의 곡선을 가지는 것이 삶이아닐까

 

이제 조각의 나이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나의 삶은 이미 뭉큰해져버린 파과로 가는 길일까

아직도 팔팔한 파과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다시 읽은 책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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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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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이 생각났다.

제 머리만 모래속에 숨겨넣고 모든 것이 되었다고 믿고 싶어하는 어리석고 순진한 꿩

이야기들이 그런 꿩을 연상시켰다,

나만 아니라고 믿으면 아닌게 될거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옛애인 미스조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희준씨의 이야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반복적인  나날을 보내는 희준씨에게 어느날 아버지의 옛애진인 미스조의 부고가 날아오고 미스조가 키우던 거북이를 유산으로 받게 된다,

우연히 SNS로 연락이 닿아 한달에 한번 톡을 하고 만나고 밥을 먹는 사이가 전부였던 희준씨와 미스조는 어느 샌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이라고 인정된다, 몰랐다, 서로가 가장 가까운 사이인지.... 한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이라니...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하고 들어주는 사이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뭘까? 미스조의 과거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희준씨는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인형 샥샥을 고백하는데 이건 다른 누구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기도 하다,

미스조가 예전 끝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나이든 애인과 관계를 계속해오면서 이제 끝이라는 걸 알아버린 순간처럼 희준도 매번 반복되는 무탈한 일상들이 어쩌면 그렇게 무탈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고 불길하라 수 도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게 옳은 것도 아니고 안심할 일도 아니라는 것.. 아니 알지만 알려고 하지 않은 사실들을 미스조의 죽음으로 그의 이야기들로 슬며시 알아가고 있다

 

마흔번째 생일 아침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쓰러지고 병원엘 갔더니 임신이라는 사실에 놀랄 새도 없이 24주만에 아기를 낳았다, 무탈하다고만 할 수 없는 나날을 살았고 그렇게 아이도 자랐는데 지금 이순간은 도무지 현실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을만큼 청천벽력이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아기는 보고 싶지 않고 출산하고 돌아누운 딸아이의 등짝이라고 후려치고 싶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나버린 일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런 불행 와중에서도 다행이다 싶은 일들을 억지로 발견해내면서 이건 잘 지나갈거라고 잘 지나가야한다고 스스로 되내이면서 섬뜩한 결심을 한다,

함께 등장하는 상대방 남자아이의 엄마역시 깨어져버린 후라이팬 뚜껑때문에  화가 치솟는 경험을 하지만 어쩌면 살아가면서 이유도 알 수 없이 폭발해버리고 산산히 부서지는 것이 프라이팬 뚜껑이라면 참 다행한 삶일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비슷하지만 다른 뚜껑 미묘한 어긋남이 폭발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알게 되지만 그런 깨달음은 현실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의 아기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은 건 여자아이의 엄마와 마찬가지고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일단 모른 척 하면 없는 일일거라도 믿고 싶은 것도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렇게 두 엄마는 공모자도 아니면서 함께 모른 척하는 섬뚝함을 보인다,

 

이 단편에서 가장 무서운건 그 제목일 것이다, 이런 글에 이런 제목을 붙이다니,,,

손바닥으로 가린 입술사이에서 무거운 장찬식도 웃음도 새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길 위로 나섰다. .................. 운전대에 엎드려 울 수도 없었다, 하늘을 유난히도 새파랬다, 파란 빛깔의 돔형 지붕이 이 세계를 뚜껑처럼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뚜껑이었다

                                    -아무것도 아닌것-

 

세번째 이야기는 그래도 조금 낫다고 하면 말도 안될까?

함께 동거하는 커플이 있고 둘은 잘나지도 그렇다고 뚜렷하기 못나지도 않은 어정쩡하고  흔한 젊은이들이다, 오래 사귀다가 동거하지만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다는 예감과  아슬아슬한 갈등을 격어내고 있는데 어느날  남자가 어떤 살인을 제안받는다, 이복형이 나타나고 돈 많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 유산을 받게 되면 나누자고... 그 문제로 둘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 함께 마음을 함친다, 일단은... 그리고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그 일에 여자도 함께 나서면서 둘은 더 끈끈해지고 더 서먹해진다,

공범은 오래갈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약하고 위험한 부분을 알고 있는 이상 신뢰는 끝이다,

둘은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지만 그건 거기까지다,

아무렇지 않다고 별일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지만 그 흔적은 죽을 때까지 그래고 상대를 바라보는 동안은 떨어지지 않고 질기게 달라붙을 것이다,

설령 그 일이 제대로 되었건 아니건...

왜 제목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안의 천사가 우리삶을 더 꼬이게 하는 법이라는 생각을 문득한다, 내 속에 악마만 득시글거린다면 세상은 그렇게 살기 팍팍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하게 껴있는 내 속의 천사가 나를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하게 만드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잠시 한 눈을 팔아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죄가 또 유에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하고 절망했다., 극적인 파국이 닥치면 속죄와 구원도 머지 않을 텐데  또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나는 바다 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우리안의 천사-

 

 

 

네번째 이야기는 먹먹했다,

소녀가 자신의 별명을 되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 그리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렇게 대상화되지 않은 새로운 학교가 낯설다는 전제가 먹먹하고 아팠다,

그렇게 조숙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겪는 새로운 K에서의 이야기다,

그 곳에서 아이는 무심하고  이기적인 부모대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메이라는 친구는 자기보다 더 말이 없고 짝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둘은 단짝이 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함께 논다,

그 아이에게 내 모습을 보았을까

아이와 메이는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아이는 어른이 된다,

 

 

엣애인의 부고를 지나간 신문에서 발견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50대 교사의 이야기 를 지나

 

이사에 대한 어떤 공포물처럼 떠도는 이야기를 잘 잡아낸 이야기도 지나

 

마지막 '안나'로 넘어가면 속물적이고 세속적인 우리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되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적성 선 이상응로 들어왔다고 여겨지는 순간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 바운더리에서 사라지는 것 그건 다행이다,

내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으므로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무어라고말 한 적이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헤어졌고 만날 수 없을 뿐이다,

그렇게 내 생활은 아무렇지 않게 계속될 수 있다,

욕하고 미워할 수 도 공감할 수도 애매한 목에 걸린 작은 가시처럼 불편하고 힘들다,

 

모든 등장인물은 나는 아니라고 나만은 아닐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별탈없는 일상을 지겨워하면서도 약간의 균열에는 심하게 동요한다,

무심하게 15분동안 한바퀴를 도는 관람차에 재미없어하면서도 쉽게 올라타지도 않는다. 올라타기엔  뭔가 두렵다,

삶이 그렇다, 무심하고 지루하지만 그렇게 계속되어지면서 무언가를 바라기만 하는 것으로 이어지길,,, 실제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어리석은 타조처럼 모래속에 머리만 쳐박으면 아무일도 없는 거라고 믿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다행히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기도 하지만 한 번의 균열은 절대 그 이전으로 되도릴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돼!!

각자도생의 시대

냉정하고 살벌한 현실이 나만 지나기진 않을 것이다,

균열이 생겨도 나혼자 삭히고 모른 척 넘어가야 하는 시대다

타인의 불안이나 떨림은 더 이상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하고 싶지않다.

외롭지만 그렇게 익숙해지면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이 된다,

 

별것 아니지만 섬뜩해지는 순간 그리고 돌아서면 잊버리느고 기억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 그것이 지금 이순간의 삶이 아닐까

쓸쓸하다.

 

너무 섬뜩해서  그리고 쓸쓸해서 별을 두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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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뭐 읽어?

아이가 묻는다,

책표지를 보여줬다.

-재미있어?

-응

잠시 표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아마 나중에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얘기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절대 이야기해주지 말아야지 하고 다시 생각을 고쳤다.

아직은 이런 깊은 우울함과 슬픔과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을 알리가 없을테고 알 필요가 없고 꼭 알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기적이지만.......

 

제임스와 메릴린의 가족을 어디로 되돌리면 이런 비극에 닿지 않을까?

메릴린이 집을 나가기 전으로?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으로? 결혼 전으로 두 사람이 키스를 하기 전으로? 메릴린이 수업에서 제임스를 만나기 전으로? 아니면 태어나기 전으로?

어디로 되돌리든 그들의 삶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1060년대 미국으로 이민간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 시대에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여성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둘은 다시 되돌려도 서로 첫눈에 알아 볼 것이고 서로 끌릴것이고 결혼했을 것이다,

아니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음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 이외의 판단이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신이어서 두 사람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결혼식무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 두사람의 결혼을 막을 생각이 아니라 그 무렵 그들의 생각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절대 되돌아 보지 않을거라고 결심했다,

모든 지난 시간은 다 여기에 두고  새롭게 시작할거라고 결심했다,

그게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과거든 그렇게 묻고 싶다고 묻어지는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해줘야했다,

깊이 구덩이를 파고 묻어도 언젠가 그건 새봄 연한 땅을 뚫고 올라 올것이고 알게 모르게 내몸에서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고 내가 눈을 감아도 누군가는 나를 통해 내 과거를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어쩌면 그건 내가 직면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다도 말해줘야했다,

눈을 감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제임스와 메릴린이 자기의 과거를 인정하고 결혼을 하고 삶을 시작했다면 모든 것은 잘 풀렸을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삶은 살아보기 전엔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고 나면 그 분기점이 보이고 순간의 선택이 보일 뿐이다,

지나야 선명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리디아가 죽었다,

왜 죽었을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중국게 미국인인 아버지와 백인인 엄마 사이에 중국인처럼 생긴 삼남매가 산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이고 엄마는 지적이고 아름답다,

아이들은 아름답고 똑똑하다.

도무지 죽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가 리디아를 납치해서 죽이지 않은 이상 혼자 죽을 이유따위는 없다, 그러나 리디아는 죽었다,

그리고 가족들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적이 우수하고 영리해서  언젠가 의대를 진학하고 의사가 될거라고 믿었던 딸

에쁘고 똑똑해서 친구들이 많고  인기가 있었을 거라고 믿었던 딸

부모는 리디아에게 보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만 본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아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사회의 비주류였던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다르기만 했던 아버지 제임스는 검은 머리지만 푸른눈과 흰피부을 가진 리디아는 주류 사회에 무난하게 편입할거라고 믿었다,

검고 찢어진 눈을 가지지 않고 엄마를 닮은 푸른 눈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고 믿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동시에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까지 가졌던 엄마 메릴린은 딸에게는복종하고 결혼하는 삶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딸은 세상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가 될거라고 믿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투영한다,

똑똑하고 자립심을 가진 여자. 대인관계가 좋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이루는 주류의 삶

부모의 기대가 리디아에게 집중되는 동안 그 시선 바깥에는 아들 네스와  막내 안나가 있었다,

동생의 부담을 알지만 도울 수 없는 네스와

모두의 감정을 읽지만 표현하지 않은 그림자같은 안나가 있다,

가족은 모두 자기가 가진 무게에 눌려서 자기 호흡조차 힘들어서 타인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못 보는게 아니라 자기 시선으로 타인을 본다,

메릴린은 자기의 꿈을 통해 리디아를 보느라 다른 아이들을 잊어버린다,

제임스는 과거 자기 못난 모습을 네스에게 투영해서 그 아이를 미워하고 리디아에게 집중하며

네스는 무심한 부모를 모른 척하지만 아프다, 동생의 부담을 알지만  질투를 느낄만큼 자신의 외로움이 힘들다.

안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하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기연민과 자기만이 자기를 위로할 수 밖에 없는 각각 닫힌 상태로 가족들은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어쩌면 리디아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리디아에게 몰린 모든 무게의 추를 모른척 하는게 다른 모두가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리디아만 괜찮다면....

엄마와 아빠는 못다한 꿈을 이룰 것이고  네스는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안나는 평화로운 가정을 지속할 수 있다, 리디아만 견뎌낸다면

그러나 리디아가 죽었다,

그리고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금이 가고 있던 가정은 그렇게 단 하나의 기둥이 사라지면서 그래도 폴싹 주저앉을만큼 위태했었다,

 

건강하지 않은 부모는 건강하지 않은 자녀를 다시 생산한다,

그래서 모든 비극의 원인을 건겅하지 않은 제임스와 메릴린에게 돌려야 할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 역시 건강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들이었다,

괜찮은 하버드생을 잡아 결혼하라고 하는 엄마를 거부하며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메릴린은 결국 엄마와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고약해진 버전의 엄마가 되었다.자식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중국인 부모를 가진 제임스에게 부모란  고마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담의 존재였다, 고맙고 미안해서 미워할 수 없고 그래서 내가 나쁜 놈이 되어가고 그 죄책감에 반발하지만 그냥 입을 다무는 것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도망친다,

그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을게 없고 공감해주지 않을게 없지만

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다른 이애게 상처를 주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하나하나의 상처를 모두 들여다 볼 수도 없다,

제임스와 메릴린이 자기가 보는대로 자기 부모를 보았듯이 네스와 리디아와 안나도 보이는대로 부모를 볼 뿐이다,

 

 

'축하해'와 파란색으로 쓴 L.Y.D는 엄마가 운전면허증처럶 보이게 만들려고 햏던 모든 노력은 , 매끈한 하얀색 밑에 감춰져버린거야, 비록 볼 수는 없지만 그건 저 밑에 있는 거야. 얼룩처럼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끔찍하게 그러니까 맛도 날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게속해서 아이들 사진을 찍고 또 찍었지만 한나는 웃지 않았다. 리디아와 다르게,  아직 한나는 웃는 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신 한나는 눈을 반만 떴다. 텔리비젼에서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올 때 그러는 것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반만  볼 수 있게

 

매끈하게 손 본 케이크처럼  모든 것이 저 아래에 있는데 모른다, 모른척 한다,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크림으로 매끈하게 덮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없는 일이 될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서...

 

메릴린이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자신을 찾아 집을 떠났던 일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임신과 결혼으로 꿈을 포기한 여자가 다시 꿈꾸는 일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겨진 아이들은 끊임없이 지가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내가 나쁜 아이여서 엄마가 떠났고 사람들이 불쌍하게 바라보고 아빠가 힘들어한다고 믿는다,

돌아온 엄마를 보며  무조건 엄마가 원하는 건 다 하겠다는 결심은 그래서 애처롭다,

어떤 질문에도 어떤 요구에도 YES이외의 답은 없었다.

리디아의 복종은 그무게를 더해가면서  동시에 네스의 외로움은 깊어가고 안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래도 가정은 유지된다, 리디아가 있으니까....

그리고 리디아에게는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가족 오빠가 있으니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가족이 어느날 무너져버린다,

리디아가 죽었으므로..

그럼에도 가족은 다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덮어야 할 것은 다시 덮어야 하고 마주해야할 것은 아파도 마주해야할 것이다,

 

파멸이  그 속에 있듯이 구원도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같은 곳에서 파멸을 찾는 자는 파멸할 것이고 구원을 찾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

중국계 리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그건 리디아가 남긴 숙제도 된다,

그리고 가족은 어쨌든 변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고 할지를 알. 았. 다.

부모의 치부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상처많은 사람이란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적나라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결국 나도 제임스나 메릴린과 다르지 않은 부모라는 것

그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가 드러내고 싶어하는 어떤 상처도 나는 아직 모른 척 하고 싶다,

똑바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볼 그 어떤 것이 아직은 두렵다.

피한다고 없어지진 않겠지만 내가 어떤 부모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꼼꼼하게 돌아본 후 마주하고 싶다고 변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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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란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있기는 하되 눈에 띄지 않은 사람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은 사람

없으면 없는댇로 아무런 문제없이 세상이 계속될 수 있는 사람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처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사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단 하나의 존재이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몸짓이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가 되기를 그렇게 세상에 기억되길 바라지만 세상에는 무수하게 많은, 셀 수 없이 많은 '내'가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고 나는 언제나 쉽게 잊혀지고 대체된다.

 

무오는 무오여서 이부의 눈에 띈게 아니다,

아니 무오여서 이부의 눈에 띄였겠지만 그 이유가 무오라는 단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많은 무오들 중 하나일 수 있어서였다,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사람 그렇게 없는 사람이라서 이부의 선택을 받는다,

어쩌면 이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흔하디 흔한 없는 사람이어서 선택된 존재일 수 있다.

이야기는 무오가 없는 사람이길 원하던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게 되고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세상과 관계를 가지고 싶어한다는데서 시작한다.

도트를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반점의 눈에 띄어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무오는 없는 존재에서 있는 존재가 되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이부에게도  그냥 무오는 무오고 농성집단속에서도 무오는 그냥 무오다

특별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다는게 그렇다,

 

각자도생이라는  우울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감추기 위해 결국 혼자를 택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고 혼자 티비를 보면서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한켠의 불안을 나와 닮은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위안한다

혼자에서 이제 관계망으로 들어가보려고 하지만 양쪽에서 손을 내밀때만 손을 맞잡을 수 있다

혼자 내민 손은 그저 허공에서 퍼드득거리다가 떨어진다,

 

투박하게 직진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각자도생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 읽고 나니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슬펐다,

유령도 아닌데 없는 사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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