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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
김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딸을 낳으면 하고 싶었던 로망중 하나.
남편을 빼고 딸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 기왕이면 외국으로 이국적인 곳으로 여자만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서로 친구처럼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여자끼리 가면 딱 좋은 홍콩부터 시작해서 유럽으로...
그렇게 꿈은 있었는데 딸이 사춘기가 되고 딱 보기 싫은 행동들 말투로 바뀌면서
이 아이랑 둘만 어딜 갔다가는 살인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딸과 함께 유럽을 걷다라... 낭만적이군
작가의 편하지 않은 이력처럼 딸과 함께 떠나는 유럽도 편안한 낭만만은 아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짜디짠 생활의 연속이다. 가장 싼 교통편을 이용하고 산 숙소를 이동하고 가능한 많이 걷고 여유있는 여행보다는 극기훈련에 가까운 나날들..
게다가 가장 큰 복병은 외국에서의 낯설음이나 고독이 아니라 지독하게도 말안듣는 딸이다.
어딜 가든 방에 있기만을 원하고 그 방안에서 음악프로그램만 티비로 줄창 보고 싶어하는 것
어쩌면 우리딸이 거기 있고 내가 거기 있을까?
화가 치솟으면 그곳이 어디든 딸에게 다다다 퍼부어버리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작가의 모습이
어찌나 낯익던지..
아이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을때 다리가 아프다고 기절할뻔 했을때 등등 막상 머리로는 아이를 걱정하고 이러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마음은 욱 해서 참다가 다다다 나가는 잔소리들
왜그렇게 아이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타이밍이 꼭 다다다 하면서 아이마음을 헤집고 꼬집고 할퀴고 난 다음인지 모르겠다.는 마음도 나랑 같은지
아이에게 많을 것을 보여주고 싶고 느끼게 하고 싶고 경험하게 하고 싶은 건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만 아이는 역시 제가 보고 싶은 거 듣고 싶은 거 느끼고 싶은대로 느끼고 이 비싼 돈을 들여 유럽까지 와서도 잠이나 자고 귀찮아하면서 숙소에만 있고 싶어하고...
아... 굳이 외국은 아니더라도 어디든 다녀오며 아이에게 가장 좋았던 곳을 물어보면 늘 상 하는 말이 숙소에서 투니버스 본거라는 우리아이랑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엄마가 그렇게 미친년처럼 다다다할때마다 말간 얼굴로 묵묵히 듣기만 하면서 돌아서서는 다시 마음이 풀어져 헤헤거리는 모습도 닮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혹시 저 깊은 속에 상처를 꼬꼭 담아놓고 혼자 앓는건 아닌지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렇고..
모녀는 그렇게 50일을 넘게 유럽을 돌았다,.
겁도 많고 영어도 짧고 화도 잘내고 자격지심까지 있는 엄마와 무심하고 쿨한 딸은 그렇게 여행을 마친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건 다녀온 뒤 쓴 작가의 후기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없으면서도 무모하게 여행을 떠나는 모녀 그 쉽지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모녀는 대단하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도 아니고 누구나 가는 곳 여기처럼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그곳을 못갈 건 없다.니들이 한다면 나도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모자라고 소심한 나도 한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는 말
나도 할 수 있을까...
작가못지 않게 지독한 방향치에다 소심하고 겁도 많고 성격도 좋지 않는 내가 딸을 둘씩이나 끌고 그렇게 무모하고 용감하게 길을 떠날 수 있을까?
그녀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글 행간에 묻어나는 싱글맘으로서 살아가는 고달픔이 더 와닿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단지 남편이 없다는 것이 불편한게 아니라 남편이 없는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건지가 구절구절 드러난다. 오죽하면 이국땅에서 젤 불편한것이 제나라 사람을 만난는 것이라고 하겠는가... 무심하게 하는 질문 남편은 어쩌고 딸이랑만 왔어요?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바늘로 쑤시는 아픔을 준다는 것을 타인들은 아는지...
돈 못 버는 작가로 직업이 불안정한 엄마로 살면서 딸이랑 그렇게 떠날 수 잇는 그녀는 더이상 소심한 이혼녀는 아닌거 같다.
그녀에게 용기를 얻는다.
그녀가 하는데 나는 뭔들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