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표제작 이외에 세편의 단편이 함께 실려있다,
각각 다른 이야기지만 다 읽고 나면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각각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지만 그 인물을 관통하는 정서는 상실감일 것이다
표제작 "환상의 빛' 에 나오는 여주인공 유미코는 남편이 자살을 했다.
어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도데체 왜 무엇때문에?
그 알 수 없는 의문은 내내 그녀를 따라다닌다,
남편이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먼 바닷가 마을로 재혼을 해서 떠난다.
그 곳에서 좋은 남편과 살가운 딸 그리고 편안한 시아버지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따뜻하고 넓은 자연을 품은 마을에서 아들도 제대로 잘 자라는 것을 보면서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죽은 남편을 자꾸 생각한다.
그날 밤 어두운 밤에 무엇이 그 남자를 철로위로 걷게 했을까
길게 이어진 철로위로 그냥 걸어가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녀는 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태어나는 일에 이유가 없듯이 죽어버리는 일에도 이유가 없는 것일까
왜 죽었나요?
가난하지만 어떤 불화도 없었고 무거운 빚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태어난지 이제 막 석달이 된 아들이 있었고 통근을 위해 자전거까지 마련했는데 그는 왜 죽었을까
멀쩡히 퇴근해서 근처 커피점에서 커피까지 마신 그가 왜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고 철로를 갔고 그 선로위를 무심하게 그러나 단호한 걸음으로 걸어가버렸을까
저는 왜 그런지 견딜 수 없을만큼 슬퍼졌습니다, 초경이 무서웠던 게 아닙니다, 저는 그때 가난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원망했던 것입니다, 했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는 국도로 사라진 할머니의 조그만 뒷모습이나 막벌이꾼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한낮인데도 전구를 켜지 않으면 안 되는 축축한 방 가득히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장지문을 쾅 닫고 피가 굳어서 딱딱해진 팬티를 스크트 위로 언제까지고 꼬옥 누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달거리가 시작될 때는 어김없이 이유 없이 썰렁해지고 쓸쓸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마 초경이 있었던 순간 파친코점의 냉방으로 얼음처럼 차가워진 땀에 절여 있었던 탓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p30-31
저는 당신이라는 ㄴ사람이 따라다니는 푸영에서, 소리에서, 냄새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깨닫자 마자 제 가슴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한신 국도 서쪽으로 멀어져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별안간 애가 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아직도 개찰구에 내내 서 있을 게 틀림없는 어머닝한테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p40
저는 이슥한 밤에 흠뻑 젖은 선로 위의 당신과 둘이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 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윗모습이었습니다, 아아 당신은 그냥 죽고 싶었을 뿐이었구나 이유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당신은 그저 죽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저는 뒤를 쫒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멀어져갔습니다,
p 60
이제 아무래도 좋아 행복같은 건 바라지도 않아 죽는다고 해도 좋아 뿜어져 올랐다가 흩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파도와 함께 그런 생각이 자꾸만 가슴속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저는 그때 확실히 실감했던 것입니다, 아아 당신은 얼마나 쓸쓸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요 눈물과 흐는낌 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언제까지고 울었습니다.
눈에 비치지 않지만 때떄로 저렇게 해변에서 빛이 날뛰는 떄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부치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의 마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만히 시선을 주고 있으니 잔물결의 빛과 함꼐 상쾌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제 그곳만은 바다가 아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부드럽고 평온한 일각처럼 생각되어 흔들흔들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미쳐 날뛰는 소소기 바다의 본성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잔물결이 바로 어둡고 차가운 심해의 입구라는 것을 꺠닫고 제정신을 차릴 것임을 틀림없습니다
유미코는 새 가족과 아무런 어려움없이 잘 지내는 중에서도 계속 죽은 남편을 떠올리고 대화를 나눈다.
그때 당신을 유혹했던 빛은 무었이었나요?
죽은 남편을 닮은 남자를 보고 먼 바다에 나가서 죽지않고 지혜롭게 돌아온 우메노댁을 보면서 그리고 일상을 덤덤하지만 묵직하게 이어가는 새 남편과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유미코는 점점 환상의 빛을 바라보는 힘을 키워간다,
유미코에게 상실감은 죽은 남편만이 아니었던 것같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뒷모습을 남기고 사라졌던 할머니, 어두운 방안에 누운 아픈 아버지 맞아가며 일을 해야하는 엄마 그리고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어버린 초경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상실감을 유미코는 어릴 적 부터 알아버렸다. 그래도 애서 안도했던 그녀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남편이 크게 흔들어 놓았던 것 뿐이다,
무엇이 저렇게 까지 사람을 몰고 갔을까
어쩌면 어쩌면 유미코는 그렇게 가버린 남편이 부러웠던 건 아니었을까
일상속에 환상처럼 흔들리고 빛나는 그 빛이 사실은 어둡고 차라운 심해의 입구라는 걸 이제 유미코는 안다.
그래서 살아갈 것이다.
때떄로 그 빛에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 상실감의 바닥을 쳐 본 유미코는 충분히 현실을 볼 내성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 아련한 부재가 힘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졌다,
자기 방의 불을 끄고 튓마루의 유리문을 열었다. 따스한 밤이었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는걸 하고 아야코는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져버리는 활짝 핀 벛꽃을 . 아야코는 튓마루에 앉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다 정원석도 도기로 된 의자도 보이지 않았다. 밤 벛꽃이 꼲임없이 지고 있는 모습만이 마음에 스며 들어 뜨뜻미지근한 꽃비에 몸을 맡기고 있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는 방법을 오늘이 마지막인 꽃 안에서 일순 본 것인데 그 아련한 기색은 밤 벛꽃에서 눈을 떼면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벚꽃이 핀 풍경은 아름답다.
어두운 밤 달빛에 환하게 빛나는 벚꽃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이다
그 벛꽃의 개화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아야코는 젊어서 강한 여성이었을 것이다. 기가 쎄고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강한 여성이 아니라 스스로 자존심이 높고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이 확실한 여자가 아니었을까
남편의 단 한 번의 외도에 칼같이 이혼을 결심하는 것이 그러하고 그 이후 줄곧 혼자서 살아온 점 아들을 먼저 보내고도 그 집에서 견디어 온 점등이 아야코의 성격을 느끼게 한다,
사는 동안 아야코는 자기집 정원의 벛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을까
그 벛꽃을 바라보며 한 숨 돌리는 여유를 가진적이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늘 자기 정원에 있었던 벛나무였으니까 조금은 무심해도 상관이없다고 생각했을 듯 하다.
그렇게 무심했던 벛꽃의 아름다움을 이 동네에 처음 온 낯선 젊은 부부는 온몸으로 느낀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고 느끼는 그 젊음이 아야코는 부러웠을까
그렇게 오래 살아도 무심하게 지나쳤던 벛꽃을 보면서 아야코는 자신을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여자로도 될 수 있는 방법
어떤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야코는 낯선 부부를 이층에 들인 그 날밤 알게 된다,
내에게도 누군가를 유혹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는 걸 그것을 잃은 후 상실과 함께 느끼는 아야코는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왜 모든 깨달음은 한 참이 지난 후 알게 되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벛나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건 그녀에게 다행일까 불행일까
모르겠다,
나는 전붓대를 깍는 일을 그만두고 제방 건너편의 휑뎅그렁하고 지저분하며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숨어 있을 그 주변 위의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은 박쥐가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쳤고 언제까지고 박쥐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둔하고 까만 눈을 가진 새라고도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물의 추악한 춤이며 땀과 허무로 처버ㅏㄹ라진 관능의 무수한 비밀이며 기괴한 표정에 조종되는 그 영혼들의 어쩔 수 없는 술렁거림이었다,
저물어가는 어슴푸레함속에서 낙엽이 격렬하게 춤추고 있었다, 바람은 시센도의 뜰에서 소용돌이 치는 모양으로 몇개의 입사귀가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낙엽이 검게 뒤석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가을 저물녘에 흩날리는 낙엽은 십면 년전의 박쥐 바로 그것 이었다,. 아주 고요해져 있던 내 몸 속 안에서 크레인 소리가 울리고 어지럽게 그리고 나긋나긋하게 서로 뒤ㅅ엉키듯이 박쥐들이 품어져 나왔다,
때떄로 이게 끝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관성처럼 계속 하고 있는 행동이 있다,
주인공은 우연히 부딪친 친구에게서 잊어버리고 있던 엣친구 란도를 기억해내고 그때 란도와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해낸다. 그건 ' 기억한다'가 아니라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별 일이 아니었고 그냥 무심학 보아버린 크레인 소리가 시끄러운 그 지저분한 하늘의 박쥐가 지금 이순간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주인공앞에 펼쳐진다,
그때는 박쥐를 보고 무엇에 쫒기듯 친구를 버리고 도망쳐버렸지만 지금은 어디도 갈 데가 없다,
이제 잊어야 하고 놓아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주인공은 놓쳐버렸고 이제 박쥐를 피해서 달아날 곳은 없다. 지금은 그 박쥐들이 흩날리고 뒤엉키는 낙엽처럼 아련할 뿐이다,
이것도 역시 상실이다,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도 있고 마지막 한조각의 양심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도 있고 뭐 그렇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작품은.....
뭐랄까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엔 그냥 턱 하고 걸리는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등을 보이며 흐느끼는 노인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책을 넘기기 힘들었다,
누구나 섬처럼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바다에서 빛나는 환상의 빛이든 밤에 핀 벛꽃이든 박쥐떼든... 그게 무엇이랴 하는 생각
그 노인의 모습과 그 노인을 바라보는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이 책은 밑줄을 그을 수가 없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꽉 짜여진 더 이상 줄일것도 없고 걸러낼 것도 없는 고농축의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