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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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35년산 술병에 전자 태그를 붙인다. 그 술병을 상류사회에 유통시킨 후 이동경로를 추적하면 자연스레 권력 분포 지도가 그려진다.

 

ㅋㅋ 이 얼마나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가능한 일일것도 같다. 술이 최고의 뇌물임을 안다면 권력자를 향해 돌고 돌아 정착할 것이다. 흥미로운 이 작업을 위해 빈스토크 미세권력 연구소의 정교수와 박사 세사람이 뭉쳤다. 하지만 컴퓨터 안에서 3차원으로 그려지는 권력지도를 쫓아가던 이들의 앞에  있던 현실은 5병의 술병이 한 곳으로 모이고 그 집의 주인이 바로 개라는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해..?

 

높이 2408m, 674층 , 인구 50만 이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치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이 생각이 난다. 특별자치구역으로 지정되고 주권을 인정받아 독립적인 정치와 군대를 가질 수 있고 빈스토크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있으며 가상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있을 것은 다 있다.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이 다 벌어진다. 닫혀있는 공간이고 있는자들의 세상이지만 그들안에서 고통받고 힘겨워하는 일반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 빈스토크를 소재로 6편의 단편을 모아 옴니버스 소설을 선보인 저자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작금의 현실을 가상의 공간에 담아 비꼬고 싶었던 것일까? 온라인 서점에 연재를 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 읽다보니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힘겹다. 일자리도 찾아 헤메야 하고 사회의 차디찬 냉대에도 견뎌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서럽다. 젊은이들만 그런가 한창 일할 나이 직장을 나와야 하는 가장들의 고충도 말로 할 수 없다. 빈스토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외주 용역업체의 비정규직 사원으로 사고가 나지만 빈스토크는 외면한다. 책임질 일도 아니고 관심이 있는 일도 아니다. 그들이 아니어도 빈스토크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빈스토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가족과도 헤어져야 한다. <광장의 아미타불>에서 처제와 형부가 주고받는 편지속에는 그리움에 대한 애환이 묻어난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타클라마칸 배달사고>에서 사막에 추한 후 빈스토크에 의해 버려진 비정규직 조종사를 찾기 위해 미친듯 컴퓨터에 접속해서 영상검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희망이라는 것을 생각하게도 한다. 권력층은 우리를 버렸는데 우리는 우리 모두를 버리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예찬>을 읽다보면 인공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었을지는 모르지만 자연적인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음이 보인다. 권력과 자본으로 똘똘뭉쳐져 있는자들의 힘을 알수 있는 빈스토크지만 태초의 따뜻함을 진솔함을 인간다움을 기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류에 편입하기 위한 비주류들의 몸부림이다. 어느 편이 잘 사는 길인지는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를 보여주던 티비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내것도 네것도 없었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감사하고 오버하며 이용하지 않았고 서로를 신뢰하며 순간순간의 자유를 즐기고 만끽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게 올라가고 싶어하는 빈스토크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행복한 지 물어보고 싶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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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변광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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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구의 인구가 50억 아니 60억이라 했던가. 지금 이순간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긴 시간 세상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그 불꽃을 사그러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고 있다. 왜 살까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흘러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주변의 일이 아니라고 평소 느끼지는 못하고 있기도 하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늘이 정해 놓은 이치이기에 원한다고 이루어지지도 막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결국 어떻게로 물음의 돌리고 오늘도 화이팅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았다 말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답을 알수 없다.

 

그렇기에 다른 이의 인생을 자꾸 들여다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환경 다른 결정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삶에 지표를 삼기도 하고 방향을 정하기도 하며 고민의 답을 끌어내기도 한다. 주로 자신의 일상을 써 내려가거나 과거의 힘겨움을 극복하는 과정들을 열거하는 형식의 글을 빌린 수필들이 대 다수이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동감이나 동조의 감성적인 면만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울고 웃게 되는 경우가 다이다. 이에 반해 한 인물의 태어남부터 자라온 환경 그리고 인물의 사상과 삶을 모두 아우르게 되는 평전이나 전기는 조금 더 딱딱하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장폴 사르트르[1905~1980)을 만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뜨악이었다. 워낙 철학이나 사상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기에 그 유명한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아는 것 하나도 없던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자그만치 900페이지도 넘게 펼쳐져 있다는 것 부터가 책을 펼치기 전에 겁을 먹게 만들었다. 게다 프랑스판 판 부제인 '찰학적 탐구' 에 걸맞도록 처음부터 여지껏 읽어본 평전과는 다르게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건너뛰어지고 있다. 보통 인물의 성장과 완성은 자라나는 배경과 환경에  있으니 그 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확 무너뜨리며 처음부터 40살의 사르트르와의 조우가 시작된다.

 

20세기의 대사상가이며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르트르의 면면을 파헤치는 책을 읽다보면 위대하다 아니 모순덩어리이다 아니 여성편력이 심했던 한 남자일 뿐 이구나를 왔다 갔다 하게 된다. 사르트르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보이는 이 책은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저자 레비가 2005년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 콜로키엄에서 한 발표였던 <한명 혹은 두명의 사르트르>가 책의 집필동기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구토>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쓴 문학가로서의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의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가가 되고 , 열렬히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그가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사건의 지지로의 너무 쉬운 돌변등의 이중적 행보속에 한 사람이 아닌 두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 여지껏 알쏭했던 두 명의 사르트르에게서 발견한 공통된 사상으로 반휴머니즘과 반자연주의, 반역사주의, 역사적 비관주의 를 말할 수 있다. 아직도 그의 사상이 모두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피노자와 스탕달이 동시에 되고 싶었던 젊은 사르트르는 결국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못하고 자꾸만 변하게 된다. 인간 스스로의 창조성을 강조한 반휴머니즘과 만들어져 있는 환경속의 존재로서 인간을 탐구한 반연주의자였으며 아직도 어렵기한 헤겔과 모택동주의에 빠져드는 반역사주의와 역사적 비관주의가 핵심사상이다. 정말 한 인물의 사상과 문학을 따라가다 보니 역사의 소용돌이와 시대 사상사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힘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책이 두껍다는 것이 핸디캡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두꺼운 반면 술술 읽혀 나간다. 저자의 사르트르의 면면에 대한 까발리기 속에 들어 있는 대선배로서의 존경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잘 몰랐던 역사적 인물이지만 인간으로서 변질되어져 가는 사르트르와 함께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건드릴 수 없던 신성 불가침 영역같던 사생활을 속속들이 풀어헤쳐놓은 대다 개인 사생활과 학자 정치가로서의 생활은 분명 다르게 해석되어야 함을 내세워 칭송을 하기도 하고 칼날같은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우리에게서 발견 할 수 없는 한 인물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비판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서구사회의 자유스러움이 부러울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다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에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더불어 20세기 사상가들을 총 아우러 만나볼 수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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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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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열심히 소장용으로 모으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들녘의 일루저니스트시리즈이다. 시리즈 중 처음 읽어던 책은 느림의 발견이었다. 독특했고 지루하지 않았고 영미권 소설에 물들어 있던 사고에 전환을 가져다 주는 멋진 책이었기에 도대체 이 시리즈는 어떤 것인가 관심을 가지고 한 권 두 권 읽게 되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페루등의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작가를 만나게 해 주고 개성적이며 독특한 소재와 접하게 해 주는 일루저스트 세계의 작가 14번재로 만나게 되는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콩고의 판도라이다. 여지껏 읽은 책 중 두께로도 최고고 (600여 페이지) 표지도 너무 예쁘며 소개 또한 빠져들것만 같은 매력이 넘친다.

 

우리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괴물이 필요하다.

 

이런 일이 있을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필 대작이 문제가 되어 한 때 신문을 장식하며 시끌벅쩍 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작가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외국에서 조차도 소설의 소재가 된다면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건 좀 심하다. 유명작가의 소설을 대신 써주는 사람들이 마치 피라미드의 조직처럼 엉겨있다. 그 마지막에는 매일 8페이지가 넘는 살인적인 소설쓰는 노예 대필 작가 토머스 톰슨이 있다. 그리고 살인이 일어난다. 마치 스릴러 소설인양 그 시작이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자신이 노예대필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피라미드의 끝을 찾아 톰슨은 탐정놀이를 하게 되고 우연히 만나게 되는 젊은 변호사 노필에게서의 살인용의자 마커스 가비의 경험과 사건을 소설로 써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교도서에서 듣게 되는 마커스의 체험 속에 아프리카 콩고를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커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 동화되어 가는 톰슨은 급기야 소설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마커스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고자 하는데...

 

소설 안에 또 하나의 소설이 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다 귀족 자제인 윌리엄과 리처드를 만나 더 많은 부를 찾기 위해 콩고의 밀림으로 떠나는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는 마커스의 이야기속에는 윌리엄과 리처드가 보여주는 물질만능주의와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인간미까지도 없는 황금을 찾아 떠나는 유럽 상류자제들의 행태가 담겨있고 땅속 지하세계와 괴물들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같은 면모도 보인다. 빠질 수 없는 연애소설의 구색도 갖추고 법정소설인양 살인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수사관들, 부패한 법정과 그리고 판결을 이끌어 내는 과정까지 읽는 독자가 원하는 결말을 기대하게 만드는 짜릿함도 있다.

 

이쯤되면 이것이 리얼일까 상상일까 궁금해진다. 독자들은 소설에 빠져들어 현실이라 생각하고 읽게 마련인데 소설속의 소설은 이를 상상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여지를 준다. 헷갈리지만 헤어날 수 없는 것을 보면 저자인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것들이 얽혀있지만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나가는 솜씨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상자의 두껑을 여는 순간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고 이제 하나씩 상자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동참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아프리카, 밀림이 보이고 둥둥둥 원주민들이 치는 북소리가 울린다. 얼굴에 흰칠을 하고 창을 들고 있는 흑인들의 모습도 떠올려진다.

 

과연 그것은 무슨 차이일까. 마커스는 다시 자문했다. 밀림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마침내 그는 그 차이는 풍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콩고의 풍경은 예전의 그가 아닌, 지금 그의 마음에 따라 달라졌던 것이다...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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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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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가즈키를 만난 건 「레벌루션 No. 3 」를 통해서 였다. 그가 조총련계 초 중학교를 다닌 우리의 피를 가진 작가였다는 것도 신기했고 이 작가의 작품을  「플라이, 대디, 플라이」「연애소설」「SPEED」「영화처럼」등 모두 읽고 소장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에서 눈길을 끌었다. 성장이 남달랐던 것 만큼 그의 작품속에는 어떤 매력과 어떤 중독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서 읽었던 작품이「레벌루션 No. 3 」였고 이 후 영화로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매혹되었다. 이번도 예외는 아닐거라는 믿음으로 「GO」를 만나게 된다.

 

청춘. 청춘이란 그저 공부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경쟁하고 매일 바쁘게 학원으로 쫓겨 다녀야 하고 쉴틈없이 몰아치는 기성세대들의 기대와 호기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지내는 시간이란 느낌이 강했다. 60~70년대의 교복을 입고 고교얄개시대에 나오는 개구장이들처럼 순수함과 열정과 패기와 오기와 때론 미친듯이 도전할 목표를 가지고 있는 청춘을 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대학에 가서야 자유가 주어지지만 그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불쌍한 청춘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청춘에 대한 부러움이 불같이 일어난다. 이미 나는 나이를 먹었고 청춘이란 시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먼 길을 왔다. 그럼에도 고뇌와 고민과 번민과 자기주체에 대한 심란함을 일상생활에 묻어 헤쳐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청춘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그 편견이 돌아가보고 싶은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을 차단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독특한 환경속에서 험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스기하라라는 친구의 우정 사랑 가족 공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p81

조선인 학교를 다니다 일본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결심하자 스기하라에게 민족의 반역자이며 매국노라는 자아비판을 강요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때 교실 뒤쪽에서 누군가 악을 쓸 때 말한다.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재일 한국교포들을 외국인으로 치부하며 온갖 불이익을 주고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도 아닌 사람들로 만들어 버린 상황을 꼭 일본인에게만 떠 넘길 수 있을까.

 

온통 갈등 투성이이다. 아버지와의 갈등, 친구들과의 갈등 그리고 연인과의 갈등같은 일상적인 것들 조차도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갈등에 옷을 입혀 놓은 것 같다. 저자 스스로 겪었던 일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가네시로 가즈키라는 이름은 일본인이지만 스스로를 재일 한국인라 당당히 밝히는 저자의 사고와 행동이 고스란히 주인공 스기하라의 갈등과 고민이 담긴 행동속에 묻어나고 있다.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임을, 국적도 구별도 없는 그저 아주 오래전 우리의 조상이 하나였을때의 그분들의 자손임을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귀에 담긴다.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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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 - 긍정적 사고를 키우는
하마오 미노루 지음, 이민영 옮김 / 비즈니스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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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분명 아이를 키우다 보면 혼을 낼 일이 있다. 성질같아서는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실제로 꿀밤 몇대 정도는 때려주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말도 듣지 않고 고집을 세우며 어른인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면 견디기가 힘들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니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어릴적 엄마에게 혼나 본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이 상처로 남는다면 문제다. 그렇기에 더욱 함부로 말을 할 수도 꾸짖을 수도 없다.

더구나 요즘의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가. 어떤 부모도 자신의 아이는 사랑스럽다 생각할 지 모르지만 보는 것 많고 듣는 것이 많기 때문에 감수성 예민하고 복잡한 나이에  걷잡을 수 없이 변해 갈 수 있는 시기이기에 그 어떤 행동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버릇이 없거나 잘못된 행동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늘 일이기에 늘 걱정이다.

 

그래서 어른들도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를 어떻게 칭찬하는지 꾸짖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세상은 달라졌고 아이들의 위상도 어른들의 사고도 변해가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칭찬 한마디에 기고만장해지는 아이를 보면 혼을 내기 보다는 화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되고 이중적인 잣대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기에 공부만 잘하는 아이 성격이 삐뚤어진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한 노력을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한다.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도 이미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이 되어 있고 잘잘못을 구별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많은 대화를 통해 아이의 생각을 읽고 어른의 생각 또한 알려 주어야 한다.  또한 아이가 많이 어리다면 어떤가 모르는 부분은 가르쳐 줘야 한다. 에이 아직 어린데 뭘 ~하고 내버려 두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처음에 길을 잘 가르쳐 주어야 사회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일이 없지 않겠는가.

 

또한 예의가 바른 아이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길을 걷다 보면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입에서 차마 담기도 힘든 욕설이 습관처럼 나오는 것을 듣고는 한다. 시대가 그러니 어째라고 말하기에 앞서 아이들 앞에서의 행동을 반성하고 올바른 언어교육에 힘쓰며 어른을 공경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범이 되도록 보여주어야 한다. 벌컥벌컥 화를 내기 보다는 인내를 하며 이끌어 나가야 하고 의지와 신념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힘을 주는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칭찬거리를 발견해 오버라 할 정도로 격려를 해 주어야 하고 열정과 진심으로 대한다면 분명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만 소황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정의 하나 둘의 자녀로 인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우리아이만큼은 이란 생각으로 차별화를 두고자 한다. 모든 부모가 그런 생각이라면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이 된 순간 우리나라는 정말 잘난 사람밖에 없을 것이고 대신 사회의 정과 따스함은 사라진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아이를 우리아이처럼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노력을 하기로 한다. 어른이란 것이 그저 존중받을 대상만은 아님을 깨닫고 나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겠다... 도움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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