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너무 뻔하게 흘러가서 재미가 없습니다. 전근이 나오자마자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이 갔고 한 치도 다르지 않게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같은 흐름의 이야기를 얼마 전 다른 비엘에서 봤고 또 비슷한 이야기를 이전에도 여러 번 비엘에서 봤습니다. 클리셰란 거죠. 문제는 그 클리셰 외의 다른 개성적인 요소가 없다는 거예요. 주인공수의 특징 있는 취미 하나로는 이 만화만의 매력이나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면에서도 그렇지만 캐릭터 면에서도, 그 특징 있는 취미가 거의 유일한 캐릭터의 개성처럼 되어서, 딱히 주인공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취미 개성이 유효하려면 시리즈가 아니라 딱 1권으로 끝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리즈 화가 될 만큼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나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역시 이번 작도 취향이었습니다. 그림체 내용 주인공들 성격 다 마음에 들었어요. 다만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을 때 책이 끝났습니다. 얼핏 별 이야기 없어 보이는데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단권으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마 작가의 다른 시리즈처럼 이 이야기도 후속작이 있을 거 같고 인상적인 조연도 있으니 역시 다른 시리즈처럼 스핀 오프도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주인공수가 연구와 생활에 찌든 학생이라 저도 같이 과로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공수의 성격 덕분에 연애는 막히지 않고 순조롭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시원했습니다. 특히 공 성격이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만들어서 좋았습니다.이 만화에서 중요하지 않은 요소지만 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 집안이 전통 사업을 하는데, 그런 부류의 사업 대부분이 그렇듯 위기를 겪습니다. 그리고 수는 진로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고민합니다. 다행히 예비 형수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을 제안합니다. 주인수의 자유와 정당성을 위해 예비 형수를 난데없이 등장시킨 거죠. 그런데 사실 이 짧은 한 권 분량을 생각한다면 주인수 집안 이야기는 집어넣지 않는 쪽이 더 좋았을 거 같긴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일본 유명 드라마가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미국에서 아주 잘 나가던 학자인데 가업인 작은 생선 가게를 이어받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드라마에선 그것을 바르고 좋은 선택 혹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연출했지만 제가 보기엔 과연 그럴까 싶었던 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그런데 이 만화는 같은 결의 선택을 가업 후계자도 아닌 후계자의 예비 배우자가 합니다. 예비 형수는 햇병아리 전문직인데 수습기간 지나면 퇴사하고 가업에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회계사로서의 능력을 살리려면 적어도 회계사로서 몇 년 경험은 있어야 할 텐데 고작 수습 기간 경험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회계사 자격증을 따기까지 감당했을 노력도, 본인 꿈이 아닌 예비 배우자의 사업을 위해 본인 커리어를 애매한 시기에 중단하는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네요.실제 일본의 오래된 점포들은 후계자를 찾지 못하거나 대를 이어 운영할 만큼 수익을 올릴 사회적 경제적 환경이 되지 않아 많이 사라진다고 합니다.차라리 예비 형수가 본인의 커리어에서 성공해 번 돈으로 남편을 원조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수 캐릭터의 어두운 과거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 엉성한 느낌이 듭니다.수의 아버지를 중국계로 설정한 건 우스웠습니다. 일본 만화는 이런 경우 중국계 한국계 등 일본 외 아시아인으로 설정하고 비겁하고 추잡한 사람으로 만들더라고요. 아동 성애하면 바로 떠오르는 국가는 일본인데요. 심지어 아버지의 복수 방식이나 복수의 방향성이 지극히도 일본스러웠어요. 진짜 중국인이라면 앞뒤 안 재고 우르르 몰려가 칼 들고 찔렀죠. 그나마 한국계로 안 그려서 다행이라 해줘야 할까요. 시대 배경을 조금 더 당겨서 2차 대전 정도로 그렸으면 다른 일본 만화가가 했던 것처럼 일본이 미국과 함께 세계 평화를 위해 싸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렸을 거 같은 느낌입니다. 카톨릭교도일수밖에 없는 이탈리아계 상인이 남창 아이를 집으로 불러 성관계를 하고, 단지 똑똑해 보인다는 이유로 양자로 삼았다는 설정도 굉장히 어색합니다. 18세기 유럽 가상 국가 변태 귀족이 나오는 가상의 이야기에 나올 법한 설정을 실재하는 나라의 실재하는 집단, 가까운 과거의 시간적 배경에서 그리니 거북하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영국계 신사의 비밀스런 취미의 혜택을 받았다고 하거나, 아예 가상의 국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수의 비극 설정을 가져오는 게 나았을 거예요.그림체, 캐릭터 조형미는 흠잡을 곳 없으나, 수의 비극을 그리기 위해 과잉 설정한 게 생각보다 크게 거부감을 줘 별 셋 이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화려한 벨 에포크 시대와 경제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가져온 건 좋은 아이디어지만, 실재하는 타국과 계층, 가까운 과거 역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들 때는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재하는 요소들에 비엘 판타지 특유의 막장 요소가 맞물려 재밌는 게 아니라 삐걱거리고 불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