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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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비채)

 

에세이와 인문학에 질려 돌아온 곳은 소설. 엄청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은 단도직입적으로 주제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방대한 지식을 뽐내는 것도 아닌 소소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책이 이전에 내가 읽은 소설들과 다른 점을 꼽자면 풍부한 묘사. ‘여름 별장에서는 선생님이 가장 일찍 일어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묘사의 시작은 새의 지저귐부터 사람의 성향, 자연의 풍경까지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가본 적이 없는 일본의 마을이라도 생생하게 상상해 그려낼 수 있었고, 전혀 본적없는 인물이지만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만, 간결함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 디테일해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묘사가 많으니 지루하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까지 글로 정해지니 흥미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흥미로웠던 점은 이 소설책에서 사람과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지조 있는 건축가와 그를 동경하는 청년이 함께 자연 속 별장에서 일하는 과정을 담은 줄거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떻게 이 책을 풀어나갈 것인지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건축을 하는 과정, 그 과정과 함께하는 자연의 흐름과 움직임, 그리고 인물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따라가며 읽다보니 이야기가 끝나있었다.

나는 풀베기랑 잔디 깎기를 좋아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나일론 끈이 잡초를 끊고 작은 돌을 튕겨내면서 자기 의지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 앞으로 인도해나간다. 귀를 찢는 엔진소리. 풀이 끊어지는 소리도, 새가 우는 소리도, 사람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다. (중략) 평평한 면을 인간이 좋아하게 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일까? 인간이 처음 본 평평한 것. 바람 없는 날의 호수. 파도가 쓸고 간 모래사장. 얼어붙은 물웅덩이. 내 청바지와 티셔츠에는 주름이 가고, 풀이랑 잎사귀의 초록색 파편이 달라붙어 있다. 예초기 엔진을 그고 헬멧을 벗는다. 숲의 소리가 귀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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