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른에 읽는 한비자 -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만의 답을 찾는 지혜
양현승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공자는 이를 '이립‘의 시기라 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른은 확립보다는 혼란에 가깝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딘지 몇 년,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선배들의 조언은 때로 모순적이고, SNS에 넘쳐나는 성공담은 오히려 초라함만 부각시킨다. "네 꿈을 따르라"는 말과 "현실을 봐라"는 말 사이에서, "정직하게 살아라"는 가르침과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경고 사이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2천 년 전 한 사상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그것도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이 라는 평가를 받는 법가 사상의 집대성자, 한비자의 목소리라면. 언뜻 고리타분한 고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지혜가 가장 동시대적인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서른에 읽는 한비자>는 바로 그런 책이다.
유교 경전이나 불교 철학서, 혹은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서는 많이 읽혀왔다. 하지만 한비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너무 냉정하고, 너무 권모술수적이며, 너무 비정하다는 평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에 가깝게 바라보았고, 도덕과 예의보다는 법과 제도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히려 필요한 관점은 아닐까. 우리는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자주 목격한다.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원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가 미움을 사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아예 무기력해지기 쉽다. 한비자의 지혜는 이 두 극단 사이에 다른 길을 제시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그렇다고 도덕과 원칙을 포기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과 감정 사이의 현실적 균형 감각"이며,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 요한 태도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민하게 되는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원칙을 잃지 말라."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천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순간의 감정에, 타인의 시선에, 즉각적인 이익에 흔들리는가. 한비자가 강조한 것은 법치였다. 군주조차도 자의적 판단이 아닌 법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것. 이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면, 나만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친한 친구 라고 해서, 상사라고 해서, 혹은 내가 불리하다고 해서 원칙을 굽히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은 원칙이 경직된 완고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비자는 형명사상을 통해 말과 실제가 일치해야 함을 강조 했는데, 이는 내가 세운 원칙이 실제 행동과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입으로만 원칙을 외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다면, 그 것은 위선일 뿐이다. 진짜 원칙은 실천 가능해야 하며, 구체적이어야 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현대인에게 이런 원칙이 왜 중 요할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매일같이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고, 성공의 공식이 쏟아지며, 살아가야 할 방식에 대한 조언이 범람한다. 이 모든 것을 따라가려 하면 정작 나는 사라진다. 내 안의 단단한 원칙이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을 받아들이 고 무엇을 거부할지 판단할 수 있다. 원칙은 선택의 기준이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한비자를 읽으며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너무 냉정하다", 인간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비자는 신상필벌을 강조했고, 사적 감정보다 공적 원칙을 우선했으며, 인간의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다. 하지만 냉정함이 반드시 냉혹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냉정함은 감정적 반응에서 벗어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왜 화가 났는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냉정함이다. 또한 한비자의 냉정함은 공정함을 향한다. 친분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돈이 많다고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따뜻함이 아닐까. 불공정한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 은 동정 어린 위로가 아니라 명확한 원칙과 공정한 제도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진정한 우정이라면 불편한 진실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에게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 엄격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진짜 사랑이다. 냉정함과 따뜻함은 반대가 아니라, 올바른 냉정함이 진 정한 따뜻함의 토대가 된다.
<서른에 읽는 한비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무엇일까?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어떻게 만들 것 인가?" 외부 환경은 통제할 수 없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힘들며, 관계가 복잡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원칙으로 살 것인지, 어떤 태도로 대응할 것인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한비자의 지혜는 바로 이 선택의 기준을 제공한다. 명확한 원칙, 냉정한 현실 인식, 일관된 실천, 공정한 판단. 이것들이 모여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든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으로 살 수 없는 시점이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시선, 또래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때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실천 가능한 원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