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김효동 지음 / 아이스타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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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우리는 모두 바쁘다. SNS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자기계발서는 더 나은 내가 되라고 속삭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주 말문이 막힌다. 김효동 작가의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너무 열심히 쫓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며, 50년이 넘게 품어온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아련함을 포착한다. 기쁨 속에 스며든 서글픔.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닿을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의 무게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 이루어질 행복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고,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견딘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삶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작은 힘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참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이 때로는 큰 연대감을 준다. 해운대 독서살롱을 운영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버팀을 발견한다. 모임을 준비하는 시간, 책장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는 그 고요한 순간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고백. 결과보다 과정에서, 화려함보다 일상에서 찾는 평온.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행복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도망칠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을 칭송한다. 포기는 나약함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정말 그런가? 때로는 손을 놓는 것이 더 큰 용기가 아닐까? 책을 읽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회사 상사를 이기기 위해서"라고 답한 젊은 회원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책마저도 경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하지만 동시에 그 솔직함이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기계발조차 전쟁터로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전업 작가를 고민하며 내린 결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참고용'일 뿐, 정답은 자신의 선택 속에 있다는 것. 성공한 사람의 말도, 실패한 사람의 경고도 모두 그들의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게 맞는 하루는 어떤 모습인지 스 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고백은 가장 날것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따뜻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퉁명스러울 때, 느끼는 자기혐오. 어머니의 희생을 뒤늦게 알았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이다. "괜찮다"고만 말씀하셨던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자신을 탓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관계의 모순을 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리를 만들어가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용기처럼 느껴진다. 완벽한 관계, 완벽한 효도, 완벽한 사랑은 없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채로 서로를 사랑하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 성숙일지도 모른다. 책은 조용히, 오래 남는다. 마치 겨울밤 내린 눈처럼 소리 없이 쌓여 결국 세상을 덮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매일 최대한 늦게 출근하고 가장 빠르게 퇴근한다고 고백한다. 출근길은 여전히 무겁고, 일하는 시간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그럼에도 퇴근 즈음이면 "이만하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위로다. 우리는 매일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된다.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성취보다, 묵묵한 지속이 때로는 더 큰 용기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제목은 역설이다. 우리는 불행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버티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작가가 독서살롱을 운영하는 이유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그 불완전함을 견디고 이해하며, 때로는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 그것이 글쓰기이고, 그것이 살아가기다.

책을 읽고 난다고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출근은 무겁고, 관계는 어렵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달라진다.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 자신에게 "수고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거창한 행복을 쫓느라 놓쳤 던 작은 평온들. 성공을 향해 달리느라 지나쳤던 일상의 온기들. 그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찾던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불행한 게 아니라,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깊이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만난다. 불완전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힘들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는, 행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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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투자자를 위한 미국 주식 불패 공식 - 현직 해외 주식 전문 PB 연수르의 실전 투자 생중계
김연수(연수르)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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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투자에 관한 책들은 넘쳐난다. 그중 상당수는 복잡한 차트 분석, 난해한 재무제표 해석, 혹은 '남들이 모르는 보석'을 찾아내는 비법을 다룬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대한민국 투자자를 위한 미국 주식 불패 공식>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정반대다. 투자는 어려워야 성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쉬워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이 역설적 주장의 핵심은 확률에 있다. 투자자의 목표가 돈을 버는 것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을 낼 확률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수천 개의 중소형주 중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아내는 것보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대형 성장주의 지속적인 상승 추세에 올라타는 것이 쉽고 따라서 '확률이 높은' 투자다. 실제로 나스닥100 지수와 러셀2000 지수의 장기 성과 비교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초대형주로 구성된 나스닥100이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을 압도적으로 앞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규모가 큰 기업이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미국 주식 투자가 쉬운 투자가 될 수 있는 구조적 이유다. 많은 투자자들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아는 것'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엔비디아가 GPU 시장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헤게모니가 AI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것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이익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투자의 성공은 정보의 희소성이 아니라 해석의 깊이에서 온다.


가치 투자와 성장 투자의 차이는 저평가주와 고평가주의 선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축에 대한 관점의 차이다. 가치 투자는 ' 현재 저평가된 것 ' 에, 성장 투자는 ' 미래에 정당화될 고평가 '에 베팅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성장주 투자의 핵심은 바로 이 ' 정당화 ' 메커니즘이다. 주가가 먼저 오르고, 기업은 그 상승을 실적으로 뒷받침한다. 투자자들의 기대가 주가를 끌어올리면, 기업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이익을 실제로 만들어낸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 비싸 보이지만 더 비싸지는 '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한국 시장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수많은 테마주가 급등하지만, 대부분은 기대만 남긴 채 실적 부진으로 추락한다. 투자자들의 기대를 실제 이익 성장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드물다.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S&P500 기업의 70% 이상이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다. 기대를 현실로 바꾸 는 능력, 이것이 미국 기업들의 진짜 경쟁력이다. 성장주 투자에서 밸류에이션은 전통적 의미를 잃는다. PER이 50배 100배든, 트렌드가 지속되는 한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익 성장률이 밸류에이션 확장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번 올라탄 트렌드에서 내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매도했다면, 같은 기준으로는 다시 살 기회를 얻지 못한다.


미국 주식 투자가 쉬운 이유는 정보가 많아서만이 아니다. 시장의 구조 자체가 투자자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압도적인 유동성이다. 유동성은 곧 주가 상승의 용이성을 의미한다. 같은 호재라도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에서는 주가가 더 쉽게, 더 높이 오른다. 코로나19 시기의 경이적인 주가 상승이 기업 펀더멘털보다는 유동성에 기인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유동성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둘째, 가격의 대표성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주가가 정말로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 정보가 신속하게 가격에 반영되고, 인위적인 왜곡이 적다. 이는 기술적 분석이 실제로 작동하는 시장, 추세가 존재하는 시장을 만든다. 투자자는 차트와 흐름을 믿고 투자할 수 있다. 셋째, 진정한 주주자본주의다. 미국 기업들은 정말로 주주를 위해 일한다. CFO는 주가 관리를 핵심 업무로 인식하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적극적으로 주주 가치를 환원한다. 한국 기업들이 쌓아두기'에 급급할 때, 미국 기업들은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준다. 넷째, 산업이 기업을 만드는 생태계다. 미국에서는 정부와 시장이 함께 미래 산업을 육성한다. AI, 우주항공, 자율주행 등 거대 트렌드가 만들어지면, 그 산업 전체가 성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을 함께 끌어올린다. 개별 기업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어떤 산업에 속해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장이다.

책은 핵심은 향후 3년을 주도할 6대 키워드 분석이다. 에이전틱AI, 임베디드 AI, TV 광고의 진화, 자율주행, AI 광고, 클라우드 게이밍. 이것들은 테마라기 보다는 , 실제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는 메가 트렌드다. 특히 AI 광고 영역에서의 통찰은 예리하다. 구글, 메타, 아마존이 AI 시대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된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하던 일을 더 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AI는 타기팅 효율을 높이고, 광고 단가를 올리고, 결국 이익률을 개선시킨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 필요도, 고객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그저 기존 비즈니스가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이 산업 분석의 핵심이다. 어떤 트렌드가 어떤 기업에게 '자연스러운' 수혜를 주는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트렌드와 정렬되어 있는 기업을 찾는 것.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피지컬 Al 경쟁,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전쟁,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의 반도체 대결 등 빅테크 간 경쟁 구도 분석은 기업 비교가 아니라,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가늠하는 나침반이다.


성장주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 사고 언제 파느냐'는 타이밍이다. 연수르는 이를 위해 '트렌드-실적-주가'의 흐름 을 읽는 프레임을 제시한다. 주가 상승의 가장 좋은 모멘텀은 이익 성장이다. 하지만 그 이익 성장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트렌드에서 온다. 세상이 변하고, 산업이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기업이 성장한다. 따라서 투자자는 재무제표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성장주 주가 폭발의 '두 가지 지점'이다. 첫 번째는 시작이 트렌드를 인지하는 순간, 두 번째는 실적이 그 트렌드를 확인해주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두 번째 지점에서야 뛰어들지만, 진짜 수익은 첫 번째 지점에 들어간 사람들이 가져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첫 번째 지점을 포착할 수 있을까? 바로 산업과 트 렌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시장이 아직 저평가하고 있는 변화를 먼저 인지하는 것이다. 컨센서스와의 밀당도 중요하다. 시장의 기대치(컨센서스)를 상회하는 실적이 반복되면 주가는 지속 상승한다. 반대로 컨센서스를 하회하는 순간 급락한다. 따라서 투자자는 컨센서스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IR 자료, 애널리스트 리포트, 경영진 가이던스를 종합해 시장의 기대 수준을 파악하고, 그것이 보수적인지 공격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필수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의 투자 복기 루틴이다. 매일, 매주, 매년 자신의 투자를 돌아보고, 무엇이 맞았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기록한다. 성공한 투자에서는 운과 실력을 구분하고, 실패한 투자에서는 교훈을 추출한다. 이런 복기가 중요한 이유는, 투자는 한 번의 대박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 번 성공하는 것은 누 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반복하려면, 내가 왜 성공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저자의 투자 철학은 겸손에 기반한다. 시장은 항상 옳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주가가 오르면 그것을 인정하고, 내리면 그 이유를 찾는다. 자신의 분석이 틀렸을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새로운 정보 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이것이 바로 '효율적 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이다.


저자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어려운 투자를 추구하지 말고, 쉬운 투자를 선택하라. 남들이 모르는 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모두가 아는 것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라. 개별 기업의 특수성에 매몰되지 말고, 산업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라. 미국 시장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유동성, 투명성, 주주 친화성, 산업 생태계. 투자자는 이 시스 템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물론 '올라타는 것'이 쉽지는 않다. 트렌드를 읽는 눈,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 타이밍을 포착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들은 학습 가능하고, 반복 가능하며, 체계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투자의 성공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과 꾸준한 실행에서 온다. 연수르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방향이다. 미국이라는 시장, 성장 이라는 철학, 산업이라는 관점, 데이터라는 도구, 그리고 겸손이라는 자세. 이 다섯 가지가 모여 '불패 공식'을 만든다. 결국 투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이 아니라, 확률을 높이는 게임이다. 가장 높은 확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끝까지 걷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쉽고 가장 확실한 투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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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위기경영 - 위기 속에서 기회를 보는 97가지 지혜
최병철 지음 / 대경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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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많은 현대인들은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을지 걱정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이 걱정 뒤에는 두려움이 있고, 그 두려움 뒤에는 무력감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AI를 기술의 문제로 본다. 이번에 현대의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지혜를 볼 수 있는 신간을 읽었다. 우리는 이 AI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이것이 '질서의 교체'라고 말한다. 철기가 청동을 밀어낸 것처럼, AI는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산업과 조직의 판을 바꾸고 있다.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 역시 청동이 모자라서 철기시대로 넘어간 게 아니다. 더 강력한 힘, 더 효율적인 구조, 더 냉정한 실리가 작동했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AI 혁명은 삶의 질이 부족해서 온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권력의 이동, 자본의 재편, 구조의 해체가 깔려 있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감성이 아니라 구조를 읽는 눈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의 원리를 파악하는 힘이다. 그 대안으로 찾은 현자가 한비자다. 그는 난세를 정리한 냉정한 전략가였다. 혼란 속에 서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웠고, 본성을 이용해 시스템을 설계했다. 오늘의 위기경영이 그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대목은 안전경영에 관한 부분이다. 저자는 “안전이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 안전은 논란의 영역에 머문다"고 말한다. 안전불감증, 안전교육, 안전문화. 이 단어들은 언제나 사고가 터진 뒤에야 등장한다. 그리고 곧 잊힌다. 왜 그럴까? 안전을 '의지의 문제'로만 보기 때문이다. 안전불감증을 개인의 태만으로 치부하고, 안전교육을 형식적으로 채우며, 안전관리자의 목소리는 '거친 말투' 때문에 외면당한다. 한비자가 말을 더듬었던 것처럼, 현장의 목소리는 세련되지 못해 무시받는다. 하지만 한비자는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바꿀 수 없다. 이익을 좇고, 해로움을 피하려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 본성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본성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상과 벌, 명확한 기 준, 예측 가능한 결과. 이것이 한비자가 제시한 법가의 핵심이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안전을 지키면 이익이 된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안전을 어기면 손실이 크다"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도덕적 호소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욕망 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안전경영이다.

저자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현장성이다. 사상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시공간 속에서 빛을 발한다. 안전경영도, 위기 관리도 마찬가지다. 한비자의 법가사상이 스승 순자와 달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순자는 이론가였다면, 한비자는 실전가였다. 그는 현장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찾았고, 그것을 법과 제도로 체계화했다. 화려한 수사학이 아니라, 작동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안전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런데 현실은? 실무 경 험 없이 자격증과 학별로 포장된 전문가들이 의사결정권을 쥔다. 그들의 의견은 여론의 힘을 얻어 본질을 가린다. 현장의 목소리는 묻힌다. 저자는 묻는다. "안전 전문가가 정말 안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가?" 진짜 전문가는 땀 흘려 위험을 경헙한 사람이다. 말이 거칠어도, 논리가 세련되지 않아도, 그들의 목소리에 진실이 있다. 그 진실이 존중받는 조직만이 진짜 안전을 만든다.

저자는 Al 시대의 직업 구조, 조직 갈등, 리더십, ESG 경영까지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모든 장을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위기에서 누가 살아남는가?" 한비자는 명확하게 답한다. 본성을 이해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실리를 좇는 사람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논리에 갇히지 않으며,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이다. AI 시대는 능력의 전쟁이 아니다. 선택의 전쟁이다. 어떤 시스템을 설계하느냐, 어떤 구조를 선택하느냐, 어떤 본성을 활용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개인의 도덕성에 기대지 말고, 조직의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성적 설득이 아니라, 본능적 동기를 건드려야 한다. "안전이 곧 돈이 된다", "안전을 잘하면 승진한다" 이것이 증명될 때, 비로소 안전은 문화가 된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AV를 배우면 이익이 된다"는 구조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움직인다. 강요가 아니라 협업, 논리가 아니라 실리. 이것이 한비자가 제시한 생존 전략이다.

"Al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다.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준비할 시간이 아직 있다는 뜻이다. 위기를 먼저 이해하고, 구조를 먼저 설계하며, 본성을 먼저 활용하는 사람만이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된다.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최악의 난세를 정리했다. 그가 남긴 지혜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의 원리는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구조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AI 시대, 우리는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 미래학자? 기술 전문가? 아니다. 가장 위험한 시대를 살아남은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 비자가 소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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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읽는 한비자 -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만의 답을 찾는 지혜
양현승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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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공자는 이를 '이립‘의 시기라 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서른은 확립보다는 혼란에 가깝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딘지 몇 년,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선배들의 조언은 때로 모순적이고, SNS에 넘쳐나는 성공담은 오히려 초라함만 부각시킨다. "네 꿈을 따르라"는 말과 "현실을 봐라"는 말 사이에서, "정직하게 살아라"는 가르침과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경고 사이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2천 년 전 한 사상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그것도 가장 냉정하고 현실적이 라는 평가를 받는 법가 사상의 집대성자, 한비자의 목소리라면. 언뜻 고리타분한 고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지혜가 가장 동시대적인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서른에 읽는 한비자>는 바로 그런 책이다.

유교 경전이나 불교 철학서, 혹은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서는 많이 읽혀왔다. 하지만 한비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다. 너무 냉정하고, 너무 권모술수적이며, 너무 비정하다는 평가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이 아닌 성악설에 가깝게 바라보았고, 도덕과 예의보다는 법과 제도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히려 필요한 관점은 아닐까. 우리는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자주 목격한다. 열심히 일해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원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가 미움을 사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냉소주의에 빠지거나 아예 무기력해지기 쉽다. 한비자의 지혜는 이 두 극단 사이에 다른 길을 제시한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그렇다고 도덕과 원칙을 포기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과 감정 사이의 현실적 균형 감각"이며,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 요한 태도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민하게 되는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원칙을 잃지 말라."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천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순간의 감정에, 타인의 시선에, 즉각적인 이익에 흔들리는가. 한비자가 강조한 것은 법치였다. 군주조차도 자의적 판단이 아닌 법에 따라 다스려야 한다는 것. 이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면, 나만의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친한 친구 라고 해서, 상사라고 해서, 혹은 내가 불리하다고 해서 원칙을 굽히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은 원칙이 경직된 완고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비자는 형명사상을 통해 말과 실제가 일치해야 함을 강조 했는데, 이는 내가 세운 원칙이 실제 행동과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입으로만 원칙을 외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다면, 그 것은 위선일 뿐이다. 진짜 원칙은 실천 가능해야 하며, 구체적이어야 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현대인에게 이런 원칙이 왜 중 요할까.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매일같이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고, 성공의 공식이 쏟아지며, 살아가야 할 방식에 대한 조언이 범람한다. 이 모든 것을 따라가려 하면 정작 나는 사라진다. 내 안의 단단한 원칙이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을 받아들이 고 무엇을 거부할지 판단할 수 있다. 원칙은 선택의 기준이며,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내면의 나침반이다.

한비자를 읽으며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은 "너무 냉정하다", 인간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비자는 신상필벌을 강조했고, 사적 감정보다 공적 원칙을 우선했으며, 인간의 이타심보다는 이기심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다. 하지만 냉정함이 반드시 냉혹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냉정함은 감정적 반응에서 벗어나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물러서서 왜 화가 났는지", "이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이것이 냉정함이다. 또한 한비자의 냉정함은 공정함을 향한다. 친분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돈이 많다고 다르게 대우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따뜻함이 아닐까. 불공정한 사회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 은 동정 어린 위로가 아니라 명확한 원칙과 공정한 제도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진정한 우정이라면 불편한 진실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에게 원칙을 가르치는 것이 엄격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진짜 사랑이다. 냉정함과 따뜻함은 반대가 아니라, 올바른 냉정함이 진 정한 따뜻함의 토대가 된다.

<서른에 읽는 한비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은 무엇일까?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어떻게 만들 것 인가?" 외부 환경은 통제할 수 없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이 힘들며, 관계가 복잡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이 모든 것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원칙으로 살 것인지, 어떤 태도로 대응할 것인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한비자의 지혜는 바로 이 선택의 기준을 제공한다. 명확한 원칙, 냉정한 현실 인식, 일관된 실천, 공정한 판단. 이것들이 모여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든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더 이상 타인의 기준으로 살 수 없는 시점이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시선, 또래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때다. 그리고 그 기준은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위에 세워져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파악한 후에야 비로소 실천 가능한 원칙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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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하게 한 것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문윤수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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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병원 복도의 형광등은 24시간 꺼지지 않지만, 정작 그곳을 걷는 사람들의 눈빛은 때로 깜깜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중환자실 앞에서, 누군가의 가족들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다. 그 복도 저편에서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걸어 나온다. 피로에 지친 얼굴이지만, 환자 가족을 향해 건네는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어둠 속 작은 빛처럼 희미하게 빛난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 반딧불이 ' 라는 단어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존재.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빛이 되어주는 존재. 외상외과 의사라는 직업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직업을 만난다. 그중에는 화려하고 주목받는 일도 있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일도 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 그것도 죽음의 문턱에서 누군가를 다시 삶의 영역으로 끌어당기는 일은 '직업'이라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소명이고, 사명이며, 동시에 끝없 는 자기희생의 연속이다.

저자는 달리기를 한다. 마라톤을 하면서 전날의 과식을 반성하기도 하고,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질 때쯤, 어느 순간 러너스하이를 경험한다. 그 순간부터는 감사한 것들이 떠오르고, 앞으로 더 잘 해야 할 것들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우리의 인생도 마라톤과 닮아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힘차게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숨이 차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의외로 편안한 리듬을 찾게 되고, 그때부터 진짜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감사해야 할 것들, 소중한 사람들,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 같은 것들 말이다. 저자에게 달리기는 성찰의 시간이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지만, 달리는 동안만큼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어제 환자에게 한 말이 적절했는지, 수술은 최선이었는지, 만약 내가 환자라면 어떤 치료를 받고 싶었을지를 곱씹어본다. 이런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반성이 결국 더 나은 의사로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을 돌아보는가, 바쁜 일상 속에서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정작 내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살지는 않는가. 저자의 달리기는 체력을 기르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의 현실에서 산다"는 저자의 고백은 묵직하게 다가왔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과감한 베팅으로 일확 천금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는 자조 섞인 표현. 하지만 그 속에는 동시에 깊은 자부심과 사명감이 함께 담겨 있었다. 외상외과 의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한다. 자정에 응급환자가 실려 오면 잠을 설치며 수술에 임해야 하고, 수술이 성공해도 회복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환자가 끝내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의사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린다. 내가 조금 더 빨리 판단했더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회한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길을 계속 걷는다.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주는 보람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한 '바이탈뽕'이라는 표현처럼, 죽어가던 사람이 며칠 뒤 멀쩡하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금전적 보상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종종 '가성비'를 따진다. 투입한 노력과 시간에 비해 얼마나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하지만 진짜 가치 있는 일들은 대부분 그런 공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일,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일. 이 모든 것은 하이 리스크이면서도 때로는 로우 리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이 담겨 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슬램덩크의 안 감독 명대사를 떠올리며 저자는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심장이 뛰고 있는 한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에서 비롯된다. 책 속에는 기적처럼 회복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2톤 철근에 깔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던 환자, 거즈 9정을 배 안에 넣고 전원되어 왔던 환자. 의학적으로 보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의료진과 환자 그리고 가족이 함께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기적들이다. 반대로 끝내 살리지 못한 환자들의 이야기도 있다. 뇌사 판정을 받았지만 장기기증으로 여섯 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청년, 이국 땅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다 간 외국인 노동자. 이런 이야기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생명의 존엄함과,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쉽게 포기한다. 조금 힘들면 그만두고, 조금 어려우면 다른 길을 찾는다. 물론 때로는 그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지켜야 할 것 앞에서까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저자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배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된다.

책의 제목처럼, 저자를 성장하게 한 것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교과서나 논문에서 배운 지식도 중요하지만, 진짜 배움은 환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환자들은 저자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었고, 끝내 떠나간 환자들은 겸손함과 한계를 일깨워주었다. 환자 가족들의 간절한 눈빛은 책임감을 더해주었고, 동료 의료진들의 헌신은 함께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 모두는 사람 속에서 성장한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의 격려, 누군가의 비판,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저자가 환자들에게서 배웠듯이,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배운다. 때로는 스승처럼, 때로는 거울처럼,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아가길.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 힘든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때 곁에서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이 책은 그런 마음을 품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가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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