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 혁명 - 5분 운동으로 재발 없이
홍경진(닥터홍선생) 지음 / 체인지업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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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통증은 낯선 방문객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뻐근한 목,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다 느껴지는 허리의 묵직함, 스마트폰을 보다 찾아오는 어깨의 불편함. 우리는 이런 통증들과 함께 살아가며, 때로는 그것이 삶의 일부라고 체념하기도 한다. 정형외과 전문의 홍경진이 쓴 <무통 혁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통증을 참고 견디거나 일시적으로 완화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로 읽어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은 통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좋아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픈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통증의 대부분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어깨 충돌증후군을 예로 들어보자. 병원에서 염증 부위에 주사를 맞으면 당장은 증상이 좋아진다. 하지만 통증을 유발했던 일상의 동작과 자세가 그대로라면, 회전근개는 계속해서 견봉과 상완골 사이에 끼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염증은 재발하고, 반복되는 충돌은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약물과 시술은 증상을 완화시킬 뿐, 통증을 만드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관점은 미국의 물리치료학자 셜리 샤먼의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특성을 바꾸고, 결국 통증과 손상을 불러온다.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자세, 한쪽으로만 누워 자는 습관, 같은 방향으로만 몸을 돌리는 작업. 이런 무의식적인 반복이 관절과 근육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며 조직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통증을 해결하려면 그 동작을 만드는 일상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메시지다.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개념은 '최소 저항의 경로'다. 전류가 저항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우리 몸의 움직임도 가장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관절과 근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며 바른 자세를 의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엉덩이는 뒤로 빠진다. 왜일까?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덜 힘든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땅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허리가 뻣뻣한 사람은 허리를 편 채로 무릎이나 등을 더 구부려서 물건을 줍는다. 고관절이 뻣뻣하다면 허리를 많이 굽히면서 줍게 된다. 한두 번은 문제없지만, 이런 동작이 반복되면 많이 사용하는 관절에 무리가 가고 퇴행성 변화나 통증이 발생한다. 이는 상대적인 유연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느 한 부위가 뻣뻣하면, 상대적으로 유연한 다른 부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며 과도하게 사용된다. 척추관 협착증 수술 후 고정한 부위는 멀쩡한데 그 위아래에서 퇴행성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원리다. 따라서 우리 몸 어느 한 부위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통증 예방의 핵심이 된다.


저자는 통증 치료에서 근막의 역할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의학계는 뼈와 근육 중심의 부위별 치료에 집중해왔다. 어깨가 아프면 어깨만, 허리가 아프면 허리만 보는 식이었다. 하지만 근막은 거미줄처럼 우리 몸 전체를 덮고 연결하고 있어서, 한 부위의 문제가 연결된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토마스 마이어스가 제시한 '근막 경선' 이론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떤 근막은 목 뒤에서 복부를 지나 반대쪽 다리로 이어지고, 다른 근막은 목 뒤에서 허리를 거쳐 양쪽 다리 뒤로 연결되어 있다. 책에서 소개된 사례가 이를 생생히 보여준다. 만성 목 통증으로 1년간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던 환자가 있었다. 검사 결과 경추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과거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복부 근막을 확인했다. 복부 수술 부위의 근막에 문제가 있었고, 이를 치료하자 목 통증이 점차 사라졌다. 이처럼 통증의 원인은 아픈 부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근막은 잘못된 자세나 과사용, 수술 등으로 두꺼워지고 딱딱해진다. 긴장된 근막이 주변 신경이나 혈관을 압박하면 통증이 생기고, 움직임이 제한된 부위를 보상하기 위해 다른 부위의 근막이 늘어나며 모양이 변한다. 따라서 두껍고 딱딱해진 근막을 이완시키고 풀어주는 치료를 병행해야 균형 잡힌 몸의 정렬을 회복하고 통증 없이 움직일 수 있다.

책은 근육의 역할을 속근육과 겉근육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속근육은 몸을 움직일 때 중심을 잡아 안정시키는 역할을, 겉근육은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크게 움직일 때 힘을 내는 역할을 한다. 이 둘의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속근육이 약해져 척추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겉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척추와 디스크에 과도한 부담이 쌓이며 손상이 생긴다. 반대로 속근육은 튼튼한데 겉근육이 약하면, 큰 움직임에 필요한 힘이 곧바로 디스크에 전달되어 역시 손상과 통증을 일으킨다. 저자는 코어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풍선에 비유한다. 배 안에 풍선이 있고, 코어근육이 사방에서 그 풍선을 감싸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코어근육이 튼튼하면 풍선 내부의 압력이 높게 유지되면서 척추와 골반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준다. 위쪽의 폐와 흉부까지 단단히 받쳐주어 허리와 등이 곧게 설 수 있다. 하지만 코어근육이 약해지면 척추와 골반을 지지하지 못해 허리가 굽고, 흉부를 받쳐주지 못해 라운드숄더와 거북목이 된다. 거북목은 목 뒤쪽 근육의 긴장을 높여 통증을 유발하고, 라운드숄더는 어깨 충돌증후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깨가 아프면 팔꿈치나 손목에 더 힘을 주게 되고, 결국 이런 부분에도 힘줄염이나 퇴행성 변화가 발생한다. 코어가 무너지면 우리 몸 전체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운동법은 명확한 순서를 따른다. 1단계는 스트레칭, 2단계는 안정화 운동, 3단계는 강화 운동이다. 통증이 발생하면 우리 몸은 반사적으로 주변 근육을 긴장시켜 척추를 보호하려 한다. 일시적이라면 문제없지만, 잘못된 자세가 지속되면 근육 긴장이 유지되고 혈류가 감소하며 조직 회복이 방해받는다. 스트레칭은 이런 근육 긴장을 풀고 이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경직된 근육과 인대는 정상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며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데, 스트레칭은 조직의 유연성을 회복시켜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고 통증을 완화한다. 책에서는 정적 스트레칭, 동적 스트레칭, 자가근막이완의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정적 스트레칭은 정지된 상태에서 천천히 근육을 늘리는 방식으로, 15~30초씩 유지하며 총 60초 정도 실시하는 것이 좋다. 동적 스트레칭은 관절을 움직이면서 근육을 푸는 방식으로 주로 운동 전 준비운동에 해당한다. 자가근막이완은 마사지에 가까운 방법으로, 폼롤러 등을 이용해 긴장된 근육 부위에 가볍게 압력을 가하며 천천히 굴려준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칭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다. 아파야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통증을 참아가며 스트레칭하면 오히려 근육과 근막이 손상될 수 있다. 가벼운 불편감이나 긴장이 느껴지는 정도까지만 하면서 점차 부하를 늘려가야 한다. 또한 짧고 빠르게 해야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근육을 늘린 채로 15초 이상 유지해야 우리 몸이 근육의 늘어난 길이에 익숙해지면서 가동 범위를 늘릴 수 있다. 안정화 운동은 코어근육을 강화하는 단계다. 저자는 횡격막 호흡법, 케겔 운동, 고양이-소 자세 등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운동을 소개한다. 이런 운동들은 복횡근과 다열근 같은 속근육을 활성화시켜 척추와 골반의 안정성을 높인다. 강화 운동은 마지막 단계로, 관절이 어느 정도 풀어지고 안정성이 확보된 후에 진행한다. 회전근개와 견갑골 주변 근육, 대둔근 같은 주요 근육을 강화하여 재발을 방지한다.

많은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지만 금방 포기한다. 저자는 이것이 의지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이유는 습관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습관은 신호, 행동, 보상의 3단계 구조로 형성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치하는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이 구조 때문이다.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5단계 방법이 제시된다. 첫째, 명확한 신호를 결정한다. 시간, 장소, 감정,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둘째, 아주 단순한 것부터 시작한다. 거창한 목표는 금방 포기하게 만든다. 작은 운동 하나만 시작해도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운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운동 후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운동은 효과를 보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다른 즉각적인 보상을 정해야 한다. 넷째,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과 연결한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하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섯째, 다른 사람과 함께하거나 알린다. 사회적 연결이 습관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습관이 잘 형성되면 뇌는 자동으로 이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이를 '골든 루프'라고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운동을 특별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운동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듯이 정해진 시간에 운동한다.


책이 제공하는 가장 큰 가치는 통증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통증은 제거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다. 잘못된 자세와 움직임, 불균형한 근육 사용, 경직된 근막. 이런 요소들이 오랜 시간 쌓여 통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일시적인 증상 완화가 아니라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통증은 갑자기 생긴 문제가 아니라 나쁜 자세가 천천히 쌓여 나타난 결과다. 일상에서 나쁜 자세와 동작 습관을 바꾸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다. 이 책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단계별로 제시한다. 스트레칭으로 긴장을 풀고, 안정화 운동으로 중심을 잡고, 강화 운동으로 재발을 방지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 지속 가능하게 한다. 통증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 통증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무통 혁명』이 제안하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특별한 도구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루 5분, 내 몸의 신호를 듣고 올바른 움직임을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통증으로 고생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몸을 다시 회복시키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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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로 여는 새로운 세계 - 유전학자가 들려주는 60가지 과학의 순간들
천원성 지음, 박영란 옮김 / 미디어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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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점심에는 볶음밥을 만들고, 저녁에는 탄산수를 마신다. 이 모든 순간이 그저 일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천원성 교수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사실은 과학 그 자체였다는 것. 일상 속에서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앤더슨의 실험 이야기였다. 시험관에 녹말을 넣고 가열한 뒤 망치로 깨뜨리는 실험. 세 개는 폭발했지만 네 번째는 다공성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서 그가 멈추지 않고 "이것으로 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질문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우리가 즐겨 먹는 뻥튀기가 바로 이런 과학적 호기심에서 탄생했다니. 나는 얼마나 자주 질문하며 살아왔을까. 학창 시절, 과학은 암기해야 할 공식들의 나열이었다. 시험을 위해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잊어버리는 지식. 하지만 진짜 과학은 그게 아니었다. 과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그렇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여정이었다.

고산 지역의 암 발생률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인과관계를 착각하는지 보여준다. 맑은 공기와 건강한 식단에도 불구하고 암 발생률이 높다면, 사람들은 쉽게 "건강한 생활이 소용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단순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래 살기 때문이었다. 장수 자체가 암의 위험 요인인데, 이를 간과하고 표면적인 상관관계만 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통계를 보고, 뉴스를 읽고,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으며 우리는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다. 과학적 사고란 바로 이런 함정을 경계하는 태도가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진짜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퓨린 농도에 관한 설명을 읽으며 내가 먹는 음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새싹이나 어린잎에 퓨린이 더 많은 이유가 세포 분열이 활발하기 때문이라니. 식물의 생장점에서는 새로운 세포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물질들의 농도가 달라진다. "콩나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넘어서, 왜 그런지를 세포 수준에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주방에서 쌀국수를 볶을 때도, 커피를 내릴 때도 과학이 작동하고 있었다. 겔 여과라는 기술이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화학 반응이 새로운 맛을 창조했다. 요리를 하면서 "왜 이렇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더라면, 나는 더 나은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윈의 이야기는 특히 가슴에 남았다.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한 과학자도 평생 병을 앓았고, 자녀들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는 자신의 근친혼이 아이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영국 의회에까지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의회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과학자도 한 명의 인간이다. 불안해하고, 후회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의 길이다. 책에서 소개된 여러 과학자들의 일화는 과학이 완벽한 천재들만의 영역이 아니라, 끈질긴 호기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발전해 왔음을 보여준다. 카페인과 광 회복 메커니즘에 관한 농담 같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발터 하름 교수의 연구를 듣고 배구 전에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걱정했다는 이야기. 나중에야 인간에게는 애초에 그런 메커니즘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우스운 결말. 과학자들도 이렇게 웃고, 오해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오른다. 사과는 교환해도 하나지만, 아이디어는 교환하면 둘이 된다. 과학의 발전은 바로 이런 아이디어의 교환에서 비롯되었다. 위대한 과학자도, 위대한 발견도 진공 상태에서 홀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논쟁하면서 과학은 전진해 왔다. 현대의 mRNA 백신도 마찬가지다.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고, RNA 중합 효소를 이용하며, 나노지질입자로 감싸는 복잡한 과정. 이 모든 것이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과 축적된 지식의 결과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과학은 놀라운 속도로 해답을 찾아냈다. 특히 흥미로웠던 개념은 억제 돌연변이였다.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가지고도 발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들의 유전체에는 그 돌연변이를 상쇄하는 또 다른 돌연변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유전학의 원리를 넘어서, 인생의 비유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른 요소들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 약점이 있어도 강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과학이 때로는 이렇게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도, 저녁에 바라보는 하늘에서도 과학을 본다. 왜 이렇게 되는지,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품고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 과학은 어려운 공식이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고, 질문하는 용기이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천원성 교수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생각해 본다. 나는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왜?"라고 물었을까.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의문을 품었을까. 과학적 사고란 실험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 속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좀 더 천천히, 좀 더 주의 깊게 세상을 관찰하고 싶다. 음식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니까. 세상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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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 - ESG를 둘러싼 새로운 자본주의의 얼굴
홍상범 지음 / 알토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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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초반, 글로벌 자본주의는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이 곧 좋은 기업이라는 합의가 형성되었다. ESG라는 이름 아래 세계는 '착한 투자'의 시대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2024년 미국 대선은 이러한 흐름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했다. 트럼프의 재집권은 서로 다른 자본주의 철학의 충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이번에 읽은 <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은 바로 이 충돌의 본질을 파헤친다. 14년간 글로벌 기업 법무팀에서 일한 저자는 ESG를 둘러싼 논쟁이 결코 추상적 이념 대립이 아니라, 실제 기업 경영과 시장 구조를 흔드는 구체적 갈등임을 보여준다.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은 명료하다. 왜 미국 보수는 ESG를 반대하는가? 그리고 그 반대 이면에는 어떤 세계관과 경제 논리가 자리하고 있는가?

트럼프의 "지구온난화는 거대한 사기"라는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데이터는 이러한 입장이 단순한 무지나 반과학이 아님을 시사한다. 미국 보수층의 약 80%가 기후 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는, 이것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집단적 세계관의 문제임을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기후 회의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구조다. 그들은 지구 역사상 현재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훨씬 높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 1930년대 미국의 폭염이 최근보다 더 극심했다는 환경보호청 데이터,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포화 효과' 이론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과학적으로 완벽히 검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비과학적 신념'이 아니라 '다른 해석의 과학'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기후 과학이 순수한 학문적 탐구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기후 정책은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얽혀 있으며, 어떤 과학적 합의를 채택하느냐에 따라 산업의 흥망이 결정된다. 트럼프가 유럽연합의 경제 쇠퇴를 재생에너지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기후 논쟁의 핵심은 "무엇이 진실인가"를 넘어 "누가 규칙을 정하는가"의 문제로 확장된다.

트럼프의 에너지 철학은 명확하다. 싸고 안정적인 전력을 확보하는 국가가 21세기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2030년이면 AI가 전 세계 전력 수요의 10~16%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전력 인프라는 단순한 유틸리티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 되었다. 미국 보수 진영의 관점에서 보면, 재생에너지로의 급진적 전환은 경제적 자살 행위다. 풍력과 태양광은 아직 화석연료만큼 안정적이지도, 저렴하지도 않다.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도 AI 데이터센터를 위해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모순적 상황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의 '에너지 해방' 정책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한다. 파리기후협정 탈퇴, 화석연료 규제 완화, 국내 에너지 생산 확대는 모두 미국 산업의 전력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는 환경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냉소적 태도가 아니라, 에너지를 국가 안보와 산업 패권의 문제로 보는 다른 우선순위 체계의 표현이다.

ESG 투자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글로벌 투자자들과 손잡고 시작한, 아름다운 프로젝트였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약속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미국 보수 진영은 이 '착한 투자'에서 전혀 다른 것을 읽어낸다. 첫째, 그들은 ESG가 주주 이익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본다. 기업의 일차적 책임은 주주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것인데, ESG는 사회적 책임을 앞세워 이 원칙을 희석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ESG 투자의 수익률 신화가 무너지면서 이러한 비판은 더욱 힘을 얻었다. 착한 투자가 곧 좋은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투자자의 돈으로 특정 정치적 의제를 추진하는 것 아닌가? 둘째, 더 음모론적인 해석도 존재한다. ESG가 오히려 정부 규제를 약화시키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한다는 낙관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정부는 강력한 환경 규제를 도입할 정치적 동력을 잃는다. 결국 '착한 이미지의 ESG 운동'이 실질적 규제 강화를 가로막는 방패가 된다는 역설이다. 이에 대한 보수 진영의 대응이 바로 '반 ESG 투자법'이다. 이 법들은 ESG 기준에 따른 투자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불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대형 은행들이 탄소중립 협의체에서 연이어 탈퇴하는 현상은, 자본 시장 내부의 균열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착한 자본과 수익 추구 자본 사이의 전쟁은 이제 법정과 규제 기관으로까지 확산되었다.​

ESG 논쟁이 돈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면, PC(정치적 올바름)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는 말과 가치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표면적으로 PC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어 사용을 권장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미국 보수 진영의 눈에 PC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들이 보기에 PC는 언어 통제를 통해 사고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는다"는 격언처럼, 어떤 말을 쓸 수 있고 없는지를 규정하면 결국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도 제한된다. '크리스마스'를 금지하고 '홀리데이 시즌'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은, 보수 진영에게 새로운 형태의 사상 통제로 느껴진다. 더 나아가 PC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진 집단이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을 쉽게 낙인찍는 도구가 되었다. 조금만 다른 의견을 제시해도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혐오자로 몰리는 상황에서, 보수 진영은 이를 '새로운 매카시즘'으로 규정한다. 죄 없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던 과거의 마녀사냥이, 이번에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코드 가치 전쟁>이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비전의 충돌이다. 한쪽은 자본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며, 시장이 공정성과 포용성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른 쪽은 자본의 본질은 효율성과 수익 추구이며, 도덕적 의제를 자본 시장에 강요하는 것은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이 충돌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ESG 기준, 기후 규제, 다양성 정책은 모두 국경을 넘어 글로벌 기업과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기업들도 미국 시장에서 사업하려면 이 가치 전쟁의 지형을 이해해야 한다. 어제까지 칭찬받던 ESG 정책이 오늘은 반발을 사고, 어제까지 당연했던 다양성 프로그램이 오늘은 리스크가 되는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AI, 바이오기술, 우주개발 같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누가 규칙을 정하고, 무엇을 정상으로 규정하며,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가? 이 싸움의 결과가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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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 진짜 나를 찾아 자유로워지는 100가지 방법
리샤오이 지음, 이지연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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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규칙과 기대 속에서 자란다. 부모님의 바람, 학교의 규율, 사회의 통념.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울타리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어느새 우리는 그 안에서만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이래야 한다', '저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모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제목부터 낯설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니.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배려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며, 적절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것과 무책임한 삶을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저자가 스물네 살에 겪은 일화였다. 헤드헌터가 제안한 기회를 스스로 판단하여 포기한 이야기. 면접조차 보지 않고, 스스로에게 자격 미달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그 순간.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할 기회가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 도전해보라고 격려했지만, 나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결국 신청서조차 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답답해진다. 실패했다면 그나마 교훈이라도 얻었을 텐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에 남은 것은 오직 '만약에'라는 공허한 가정뿐이다. 책에서 헤드헌터가 했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부정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부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종종 세상이 우리를 거부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걸러낸다. 안 될 거야, 나한테는 무리야, 내가 감당할 수 없어.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해버리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저자는 능동성을 무모함과 구별한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경험하고, 그 결과를 돌아보며 배워나가는 태도를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나는 늘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렸고, 실패하지 않을 방법을 찾으려 했으며, 안전한 선택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삶은 우리가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회는 종종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능동적인 삶이란 결국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책에서는 "일단 저질러 보자"고 말한다. 이 표현이 처음에는 다소 거칠게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다가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 과정에서 배우고 조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은 다음 선택을 더 현명하게 만든다.

책의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저자는 소피아 로렌의 예를 들며,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녀의 외모를 비난했지만, 그녀가 성공하자 같은 특징들이 독창적인 매력으로 재해석되었다.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 처음에는 비난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하지만 그 길에서 자신만의 성과를 이뤄내면, 사람들은 그것을 선구적이었다고, 용감했다고 재평가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그 길을 걸으며 얻은 경험과 성장이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내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맞추려 했으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내 감정을 숨겼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정작 나는 점점 지쳐갔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책에서 말하듯, "늘 참으면 서운함이 쌓이고, 늘 용서하면 배신을 당한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 기준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침범당했을 때는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우리가 순간을 경험하는 여정이지, 고통스럽게 시간을 버티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며, 언젠가 올 행복을 위해 지금의 즐거움을 미룬다. 하지만 그 '언젠가'는 정말 올까? 아니면 우리는 평생 그렇게 미루기만 하다가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후회하게 될까? 예쁜 스카프가 있다면 지금 두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 떠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고백하라는 저자의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미뤄온 것들을 떠올렸다. 배우고 싶었던 악기,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다시 연락하고 싶었던 친구.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나중에'라는 이름으로 계속 뒤로 미뤄왔다. 하지만 정작 그 '나중'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나중'이 아닐까? 책이 전하는 핵심을 생각해 본다.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라는 것.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통념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자 성숙한 삶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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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포비아 - 요즘 세대는 왜 리더를 두려워하는 걸까?
정인호 지음 / 바이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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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승진 시즌이다."축하합니다. 팀장으로 승진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말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과거 승진은 성취의 정점이자 사회적 성공의 증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책임의 무게만 늘어나고, 권한은 축소되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평가와 비판 속에서 홀로 버텨야 하는 자리. 그것이 오늘날 많은 이들이 특히 MZ 세대들이 인식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실제로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팀장 이상의 직책을 맡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지나친 성과 압박,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의 크기, 그리고 자신이 그 역할에 적합하지 않다는 불안감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그들은 직급과 권위보다 자신의 전문성과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리더가 되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희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리더 포비아'라 부른다. 리더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혹은 리더라는 자리 자체를 기피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개인의 소극적 태도나 세대의 특수성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 구조와 사회 문화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에 가깝다.


리더 포비아의 가장 큰 원인은 권한과 책임 사이의 불균형이다. 과거의 리더는 의사결정권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가졌다. 하지만 현대의 리더는 위로부터는 지시를 받고, 아래로부터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끼인 존재'가 되었다. 수평적 조직문화와 실시간 평가 시스템은 리더의 모든 행동을 공개적으로 노출시킨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으며, 성공은 팀의 것이지만 실패는 리더 개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더 큰 문제는 리더가 실제로 잘못한 것이 없어도 책임의 자리에 놓인다는 점이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원인을 리더에게서 찾는다. "리더가 더 잘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분위기 속에서 리더는 자동적으로 희생양이 된다. 심지어 리더의 감정과 인간적인 면까지 소비된다. 구성원의 불만을 듣고, 위로를 건네고,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역할로 여겨지지만, 정작 리더 자신은 위로받을 곳이 없다. 조직은 리더를 키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리더를 버텨내게 만들 뿐이다. 살아남은 자만이 리더가 되는 구조 속에서, 그 생존 과정은 심리적 소진과 고립을 대가로 치른다. 리더 포비아는 이러한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자 방어기제다.


리더 포비아는 단지 조직 구조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대적 불안감이 이를 더욱 증폭시킨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안정과 회피를 선택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불확실성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성과를 보장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도 없으며, 언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리다. 실제로 신임 팀장들의 대다수는 승진 이후 행복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졌다고 고백한다. 특히 요즘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과보호와 경쟁의 양극단을 동시에 경험했다. 부모 세대의 지나친 보호 속에서 실패의 경험이 부족했고, 동시에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그 결과 자기효능감은 낮고, 불안은 높으며,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두려운 심리 상태를 갖게 되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이들에게 불완전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위험천만한 무대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디지털 환경은 모든 것을 공개하고 평가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리더는 단순히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관리하고 감정까지 통제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곧 표적이 된다는 의미다. 튀면 다치고, 눈에 띄면 비난받는 시대에, 누가 자발적으로 리더라는 무대 위에 서고 싶겠는가.

리더 포비아를 이해하려면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조직에 깊이 소속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 있는 연결을 원하지만, 그 방식을 스스로 정하고 싶어 한다. 전통적인 조직은 소속의 형태를 미리 정해놓고 구성원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느슨하지만 유의미한 연결, 필요에 따라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유연한 소속감을 선호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 세대는 현재의 희생이 미래의 보상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경험을 중시한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미래의 불확실한 보상을 기다리는 일로 여겨진다. 시간 할인율이 높은 이들에게 이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정체성의 기준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소속된 조직과 직급이 자신을 정의했다면, 지금은 개인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조직 밖에 있는 세대에게, 조직 내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리더 포비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리더십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리더십을 정의하는 방식에 있다. 권위와 통제에 기반한 낡은 리더십이 시대와 맞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지시가 아니라 질문으로, 통제가 아니라 연결로, 완벽함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작동해야 한다. 구글의 연구는 성과가 높은 팀의 핵심 요소로 '심리적 안전감'을 꼽았다. 리더가 모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짜 리더십이다. 이케아는 리더가 얼마나 많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핵심 지표로 삼는다. 실적보다 관계, 통제보다 신뢰가 중심에 있는 리더십이다. 이러한 리더십을 '동반향상 리더십'이라 부를 수 있다. 리더는 혼자 앞서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료와 함께 걸으며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존재다. 성공도 실패도 함께 나누고, 학습의 과정 자체를 공유한다. 리더가 완벽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리더 포비아도 사라진다.


리더 포비아는 리더십의 실패가 아니라 진화의 신호다. 리더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는, 동시에 리더십을 새롭게 정의하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이상 카리스마 넘치고 완벽한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실수하며, 그 과정에서 함께 배우는 리더를 원한다. 조직은 리더를 감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원하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리더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리더 개인도 완벽함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신뢰를 만드는 시대다. 리더 포비아를 극복하는 길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성장의 언어로 바꾸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리더라는 자리는 여전히 어렵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립의 무게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연결의 과정이 될 때, 비로소 리더십은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이 된다. 승진의 순간, 불안보다 설렘이 앞서는 조직. 리더가 된다는 것이 희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 리더 포비아는 극복해야 할 문제만 아니라, 우리 시대가 어떤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지 알려주는 귀중한 신호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일 때, 리더십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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