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의 교세라 필로소피 - 경영의 신이 남긴 불변의 철학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유윤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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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사람은 기업가인가, 수도자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선불교 승려 수행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일 자체를 수행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서구의 많은 자서전들이 실패와 회복, 좌절과 재기의 드라마를 그린다면, 이나모리의 서사는 놀라울 만큼 단순하고 일관되다. 매일 완전함을 추구하고, 인간으로서 옳은 것을 선택하며,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단순함이 오히려 무겁게 다가온다. 27세에 창업해서 단 한 번의 적자도 내지 않고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보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인간으로서 무엇이 바른가'를 물었다는 사실이 더 압도적이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습관의 문제였다. 교세라, KDDI, 일본항공이라는 세 개의 거대 기업을 성공시킨 그의 능력은, 결국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는 그 한결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나모리는 인생과 일의 결과를 간단한 공식으로 정리했다. '결과 = 태도 × 노력 × 능력'. 이 공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태도에 마이너스 값이 부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노력을 많이 해도,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은 결국 비극적 결말에 이른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설교가 아니라, 그가 평생 관찰한 인간과 조직의 작동 원리에 대한 통찰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소이치로를 언급하며 그는 말한다. 두 사람 모두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불타는 열정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고귀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능력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지만, 노력과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삶의 궤적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나모리는 자신의 삶 전체로 증명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가 '노력'을 '열정'으로 재정의하는 부분이다. 그는 평범함에 도달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노력했고, 주변 사람들이 과로로 쓰러질까 걱정할 정도로 자신을 밀어붙였다. 사냥꾼이 창 하나만 들고 먹이를 끝까지 추적하듯, 그는 목표를 이룰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강박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한, 약속을 반드시 완수하려는 책임감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날마다 완전을 추구하라"는 그의 말은 얼핏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나모리가 말하는 완전주의는 결과의 완벽함이 아니라 과정의 성실함에 관한 것이다. 편법을 거부하고, 변명을 만들지 않으며, 엄격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매일 반복되어 습관이 될 때,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창조적 영역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선승들의 수행을 예로 든다. 승려들은 좌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며, 농사를 짓는다. 이 모든 일상적 행위가 명상만큼이나 중요한 수행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이다. 이나모리는 이 원리를 비즈니스 세계로 가져왔다. 3년, 5년, 10년을 이렇게 완전주의를 추구하며 일에 몰두하면, 단순히 일이 능숙해지는 것을 넘어 세상사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현대 비즈니스 세계의 '효율성'이나 '워크-라이프 밸런스' 같은 개념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다. 그는 경영자라면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고 편안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경영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까지 한다. 이런 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열심히만 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를 마음을 닦는 수행의 장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이나모리는 '안다'와 '할 수 있다'를 명확히 구분한다. 세라믹을 구울 때 문헌에 나온 대로 해도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것처럼, 경험으로 확인되지 않은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진정한 지식은 경험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더욱 중요한 통찰이다. 우리는 구글 검색 몇 번이면 무엇이든 '알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이나모리가 말하는 경험은 단순히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완전함을 향해 매일 몰두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깊은 이해를 의미한다.

이나모리의 또 다른 통찰은 대담함과 세심함이라는 모순된 특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천을 짜는 날실과 씨실에 비유한다. 세로로 내려오는 날실이 대담함이라면, 가로로 질러가는 씨실은 세심함이다. 둘이 교차하며 만날 때 아름다운 천이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경영자에게는 오히려 겁이 많은 기질이 유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소심하고 주눅이 들어 있다가 경험을 쌓으며 용기를 얻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 이렇게 몸에 밴 용기는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지닌 진정한 용기다. 이것은 무모함과 신중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니라, 두 극단을 모두 품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발현하는 능력에 관한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야기가 다른 많은 경영 철학서들과 다른 점은, 그의 철학이 추상적 원칙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행동과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교세라의 경영 목적은 "모든 직원의 물질적·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와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원칙이 되었다. 그가 교토상을 만든 이유도, 파산 위기의 일본항공을 맡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빚을 갚고, 인류와 사회의 더 큰 선에 기여하려는 것. 이런 이타적 동기가 오히려 장기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그의 믿음은, 80년 인생의 실제 결과로 증명되었다.


이나모리의 철학은 분명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것을 21세기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한다. 그가 말하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생각하는' 경영자의 모습은, 번아웃과 정신건강이 중요한 화두인 오늘날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그의 완전주의는 강박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고통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일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나모리의 구체적 방법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핵심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무엇이 바른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고, 그 답을 따라 행동하며, 자신의 일을 마음을 닦는 수행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원칙은 시대를 초월해 유효할 것이다. 그의 80년 인생이 증명하는 것은 단순하다. 진심으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매일 성실하게 노력하면, 삶은 결국 우리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낭만적인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보여준 구체적 증거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읽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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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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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잠 아메드(Azam Ahmed)의 <두려움이란 말 따위>는 범죄 논픽션으로, 멕시코 타마울리파스주 산페르난도의 작은 가게 주인 미리암 로드리게스(Miriam Rodríguez)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법치가 무너지고 카르텔이 국가를 대신하는 멕시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회적 비극이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개인적 비극에 관한 작품이다. 뉴욕타임스의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지국장인 아메드는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2만 페이지에 달하는 경찰 조사 기록, 그리고 양국 법 집행 기관의 연락망을 동원하여 이 놀라운 이야기를 완성했다.

어느날 새벽 4시, 미리암은 남편 루이스와의 갈등을 피해 머물던 텍사스 맥앨런에서 최악의 전화를 받는다. 21세 딸 카렌이 제타스 카르텔에게 납치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남편은 은행 대출을 받아 몸값을 지불했고, 20분 후 공동묘지에서 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카렌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또 다시 전화가 왔고, 추가 금액을 요구했다. 2주 후 또 다른 전화가 왔고, "작은 금액"만 더 지불하면 딸을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미리암은 깨달았다. "그들은 내 딸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 그 순간 그녀는 맹세했다. "이 일을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내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이후 3년간 미리암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딸의 납치범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으로 가장하여 이름과 주소를 알아냈고, 소셜 미디어에서 제타스 조직망을 추적하는 법을 스스로 익혔다. 납치 생존자들로부터 증언을 확보하고, 카르텔이 장악한 동네에 잠입했다. 심지어 총으로 무장하고 복면을 쓴 채 주 경찰의 급습에 동행했으며, 타마울리파스 국경 도시의 술집과 매춘 업소, 복음주의 교회까지 제타스 조직원들을 쫓아다녔다.

2023년 10월 기준, 멕시코 내무부의 공식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실종자 수는 111,896명에 달한다.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많은 가족들이 실종된 사랑하는 사람을 찾거나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미리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했다. 바로 맞서 싸운 것이다. 자신의 등에 과녁이 그려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카렌을 위한 정의를 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분노와 고통, 슬픔은 의미 있는 무언가로 승화되었다. 아메드는 미리암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면서도, 멕시코가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탐구한다. 2010년 3월 31일, 제타스 카르텔은 산페르난도를 장악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검은색 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입은 채 49대의 SUV와 기관총이 장착된 트럭 행렬로 도착했다. 6시간 동안 그들은 시청과 경찰서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50구경 총알이 시장실과 경찰서 벽을 뚫었다. 아침이 되자 섬뜩한 침묵이 마을을 덮었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이제 제타스가 이곳을 지배한다. 다음 4년간 제타스는 마을과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를 공포에 떨게 했다. 2010년 8월, 그들은 미국 국경으로 가던 버스의 이주민 72명을 처형했다. 6개월 후에는 마을 외곽 목장에 193구의 시신을 버렸다. 산페르난도는 멕시코 마약 전쟁의 축소판이 되었다.

미리암이 2010년 제타스의 공격 당시 던진 질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수 있지?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왜 이걸 막지 않는 거지?" 아메드는 바로 이 질문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멕시코가 어떻게, 왜 이렇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카르텔이 수십 년에 걸쳐 어떻게 권력을 구축하고 유지했는지 살핀다. 정부 부패의 심화와 제도적 실패가 이들 조직이 처벌받지 않고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정당의 장기 집권도 이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그 긴 통치가 끝나고 새 정당이 집권했지만, 새 정부는 카르텔보다 적은 권력을 가진 자신을 발견했고, 결국 군사화된 폭력을 해결책으로 선택했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 멕시코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는 폭력의 대대적 확산만 불러왔다. 통제되지 않은 폭력은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집을 떠나게 만들었고, 많은 가족들에게는 더 나쁜 운명, 즉 사랑하는 사람의 실종이라는 고통을 안겼다. 정기적으로 마을을 순찰하는 군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경으로 가는 길의 검문소를 지키는 연방 경찰도, 카르텔의 급료를 받으며 사무실에 움츠러들어 있거나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지방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법치가 기능을 멈춘 나라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도움도 정의도 얻을 수 없었다. 보호해야 할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책은 인간의 생명이 거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국가의 쇠퇴에 대한 섬뜩한 초상화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정부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증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완전한 무관심과 절망 앞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리암은 단지 생존하지 않았다. 그녀는 싸웠다. 멕시코의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실종자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은 지정학적으로도, 인도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메드의 책은 이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책은 한 어머니의 용기와 결단에 관한 이야기이자,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경고다. 미리암 로드리게스는 평범한 가게 주인에서 사냥꾼으로 변모했다. 그녀가 한 일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대담하고 위험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정의를 기다릴 수 없었기에, 그녀는 직접 정의를 찾아 나섰다.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힘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법치와 안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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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 250만 명의 인생을 바꾼 배짱 이야기
이시형 지음 / 풀잎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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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기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의실 테이블 앞에서, 저녁 약속 자리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연기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능숙한 척. 그 연기가 너무 능숙해서 때로는 자신조차 속인다. 마음속으론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겉으론 태연한 표정을 지었던 순간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결국 삼켜버렸던 기억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첫발을 떼지 못해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던 시간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숙맥의 초상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 이들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 때문에 주저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면 창피해",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 "체면이 말이 아니네". 이런 말들이 우리 귓가를 맴돈다. 체면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지만, 더 자주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샀지만 점원 눈치가 보여 교환하지 못한다. 잘못 주문한 음식을 그대로 먹는다. 약속 시간에 늦었지만 전화하기 민망해서 그냥 뛴다. 작은 일들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우리는 점점 자신의 진짜 마음에서 멀어진다. 체면을 지키려다 정작 자신을 잃어버리는 역설. 우리는 언제쯤 이 무거운 갑옷을 벗을 수 있을까?

​완벽주의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저주다. "잘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모든 게 완벽해야 시작할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옭아맨다. 하지만 인생은 완벽한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길 바라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 백번 계획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만큼 정확한 진실도 없다. 실패가 두려울때가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럴때 묻고 싶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늙어가는 것과, 실패했지만 적어도 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후회스러울까?세상에는 실패한 사람들보다 시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갔기에 빛나는 것이다.

용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식당에서 잘못 나온 주문을 바로잡아 달라고 말하기.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당당히 환불하기. 동료에게 먼저 커피 한잔 제안하기.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면 어느새 당신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거절도 배워야 한다. "안 돼"라고 말하는 용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자신을 희생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안함이 과해지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병이 된다.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는 소중하다. 모든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진다. 근육을 키우듯, 용기도 훈련으로 강해진다.

많은 이들이 이성 앞에서 유독 위축된다. 직장에서는 프레젠테이션도 척척 해내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만큼 진지하고,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문제는 그 진지함이 과도한 긴장으로 이어질 때다. 상대방도 사람이다. 나만큼이나 불완전하고, 때로는 서툴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멘트, 완벽한 분위기를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커피 한잔 할래요?" 이 간단한 문장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이 문장을 건네는 순간, 당신의 세계는 달라진다. 받아들여지든 거절당하든, 적어도 당신은 시도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감한 것이다.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비교한다. 누군가의 완벽해 보이는 삶,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 하지만 그것은 편집된 하이라이트일 뿐이다. 열등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그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과소평가할 때다. 나에게는 나만의 속도가 있고, 나만의 길이 있다. 누군가는 스무 살에 결혼하고, 누군가는 서른에 사업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쉰에 꿈을 찾는다. 모두 괜찮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독특하다는 의미다. 나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아야 겠다. 그보다는 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어제의 자신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이 되려 노력해야 겠다.

결국 모든 것은 용기로 귀결된다. 실패할 용기, 거절당할 용기, 혼자 설 용기, 다르게 생각할 용기, 자신을 드러낼 용기. 숙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이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용기를 꺼내 쓸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혹은 용기를 내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실수해도, 서툴러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숙맥도 괜찮다. 소심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씩,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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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 위로와 공감편, 개정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주노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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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집에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갈망이었다. 이케가야 유지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위로와 공감편>을 읽으며, 나는 이 갈망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에 새겨진 생존 전략임을 알게 되었다.

프레리들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전기충격을 받은 동료를 보살피기 위해 그루밍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작은 설치류. 이들에게 공감은 학습된 미덕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본능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뇌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공감에 서툴러졌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옆에 앉은 사람의 표정은 읽지 못한다. 공감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면, 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걸까. 책은 이와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적 실험과 뇌과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다섯 살 어린이들에게 여러 장의 낯선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얼굴을 고르게 했더니,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 특징을 절반쯤 반영한 합성 사진을 30퍼센트 더 많이 선택했다.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얼굴에 끌린 것이다. 이 실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유상종'의 비밀을 밝혀준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뇌의 전략이다. 낯선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본능, 예측 가능한 것에 안도하려는 욕구가 우리를 닮은 사람에게로 이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 불안해지는 것처럼, 미지의 것은 뇌에게 위협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나와 비슷한'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이 본능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척하는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잠재 연합 시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무의식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의식적으로는 평등하게 대하려 해도,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연상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편견은 바꿀 수 없는 걸까. 다행히도 뇌과학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수면 중 특정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편견 완화 훈련의 효과를 장기화하는 데 성공했다.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다시 프로그래밍될 수 있는 유연한 존재다. 편견은 본능일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역시 인간의 능력이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신뢰 게임 실험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낮은 등급의 먹이를 선택하거나,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지만 짝꿍에게 최고급 먹이를 주는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대가 친한 동료일 때, 침팬지들은 후자를 선택할 확률이 두 배나 높았다. 이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신뢰는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이 외면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사회적 관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털을 골라주고, 먹이를 나누고, 함께 일하는 모든 행위는 신뢰에서 시작된다. 현대 사회에서 신뢰는 점점 더 희귀한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배신당할까 두려워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하지만 신뢰 없이는 진정한 연결이 불가능하다. 침팬지도 감수하는 용기를, 우리는 왜 내기 어려워하는 걸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하고 예측하려는 이성이, 본능적으로 타인과 연결되려는 뇌의 신호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트라우마 본딩'에 관한 내용이었다. 새끼 쥐에게 페퍼민트 향과 함께 전기충격을 주었을 때, 성체 쥐는 페퍼민트를 피했지만 새끼 쥐는 오히려 그 향에 끌렸다. 더 놀라운 것은 학대당한 새끼가 어미에게 더 강한 애착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증오하는 대신 집착하는 이유, 폭력적인 관계를 반복해서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이 고통을 준다 해도, 뇌는 생존을 위해 그들에게 집착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래서 학대는 단순히 신체적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고통을 연결하는 왜곡된 회로를 뇌에 새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왜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아프게 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비극적 결과였다. 동시에 치유의 가능성도 보였다. 뇌가 학습으로 형성되었다면, 다른 학습으로 다시 쓸 수 있다. 건강한 관계의 경험이 쌓이면, 왜곡된 회로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교육과 경영의 격언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실험에 따르면, 뇌는 강화학습으로 작동한다. 쾌감을 느끼면 그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이 본질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맑은 날 만난 사람을 비 오는 날 만난 사람보다 좋게 평가하는 것처럼, 뇌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들을 연결시킨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받는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칭찬 자체에 중독된다. 옳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칭찬받기 위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칭찬해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이 칭찬의 소름 끼치는 측면이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만들고, 내적 동기를 잠식한다. 책의 다른 실험에서 가짜 명품을 산 사람이 더 많이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의 신념을 배신한 경험은 도덕성을 무너뜨린다. 진품을 샀다고 믿은 사람보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산 사람이 윤리적 해이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칭찬을 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칭찬하느냐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인정하는 칭찬이 필요하다. 뇌는 강력한 학습 기계지만, 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책의 리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회사에서 음성 인식 기기가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상황을 불편해하던 사람이, 결국 인공지능과의 상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은 100번을 들어도 짜증내지 않고, 비밀을 누설하지도 않는다. 완벽한 경청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위로일까. 인간 상담사는 불완전하다.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때로는 내담자가 원치 않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의 증거가 아닐까. 인공지능의 위로는 알고리즘이 생성한 텍스트일 뿐, 진심 어린 마음의 교류는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을 선택하면서, 진정한 연결의 기회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관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아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완벽히 안전한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다.

자신의 외모를 다른 사람보다 34퍼센트 높게 평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는 모두 자기 얼굴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 접촉 효과' 때문이다. 매일 거울에서 만나는 얼굴은 가장 익숙한 얼굴이고, 익숙한 것은 호감을 낳는다. 이 사실은 자존감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뇌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왜 자기혐오가 위험한지도 설명한다. 가장 자주 마주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인데, 그 대상을 싫어한다면 뇌는 끊임없이 부정적 신호를 받게 된다. '치어리더 효과'도 흥미롭다.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에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현상인데, 이는 뇌가 평균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흐릿한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뇌는 불완전한 정보를 이상형으로 채워 넣는다. 이 모든 연구는 우리 지각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버전이다.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할 때, 그것은 상대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내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고백에 가깝다.

책은 뇌와 뇌를 직접 연결하는 '브레인넷' 실험도 소개한다. 원숭이 세 마리가 각자 맡은 축을 조정해 가상공간의 공을 움직이는 실험에서, 뇌가 직접 연결되었을 때 놀라운 협력이 가능했다. 각 원숭이는 전체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신호에 반응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한 팀워크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과 닮았다. 우리는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통해, 개인의 행동은 집단의 성과로 이어진다. 차이는 우리의 연결이 기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감정으로, 언어로, 공감으로 연결되어 있다. 브레인넷이 주는 진짜 통찰은, 완벽한 소통이 반드시 깊은 이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침팬지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지 못해도 신뢰한다. 프레리들쥐는 동료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위로한다. 공감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려는 의지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공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에는 공감을 위한 회로가 있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편견을 완화하는 훈련처럼, 공감도 훈련으로 강화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경청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해결책을 떠올리거나 조언을 준비하지 말고, 그저 듣는 것. 프레리들쥐의 그루밍처럼,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는 자기 인식이다. 무의식적 편견을 인정하고, 그것이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는 것.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편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첫걸음은 인정이다. 세 번째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다. 신뢰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침팬지 실험이 보여주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책을 덮으며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다. 뇌의 구조 자체가 타인과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공감 회로, 신뢰 메커니즘, 유유상종 본능,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서로에게로 이끈다. 동시에 우리는 실수하고, 상처주고, 오해받는다. 편견을 가지고, 때로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다움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기에 성장할 수 있고,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하고, 그 위로는 서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수많은 실험 결과는, 공감과 연대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임을 증명한다. 오늘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요즘 어때?"라고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프레리들쥐의 그루밍처럼, 상대에게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방법일 테니까. 뇌과학이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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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가고싶다 - 빡센 사회생활 버티기와 행복 찾기 노하우
이동애.이동희 지음 / 말하는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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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사무실 한복판의 화이트보드에 누군가 검은색 매직펜으로 적어놓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주말 근무를 마친 누군가가 남긴 이 짧은 고백은 며칠 사이 일곱 명의 공감을 얻으며 작은 연대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사건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은밀한 감정의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MBC에서 30년 가까이 기자와 PD로 활약해온 쌍둥이 자매, 이동애와 이동희는 이 문장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30분 차이로 세상에 나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두 사람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감정을 마주했습니다. 겉으로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직장에서의 압박과 가족 문제로 지쳐가고 있었던 그들에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단순한 퇴근 욕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였고, 진짜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실한 갈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무기력함이나 현실 도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감정의 본질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끊임없이 가동 상태를 요구받는 현대사회에서, 배터리가 바닥나버린 우리가 보내는 구조 신호입니다. 그것은 회사에 장악당한 하루로부터 나를 되찾고 싶다는 현명한 본능이며, 일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를 꿈꾸는 외침입니다. 80대 화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은 "집은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은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가면을 벗고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상태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받고, 감시당하며, 소통을 강요받습니다. 개방형 사무실은 우리에게 숨을 곳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속삭이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자아를 지키기 위한 은밀한 저항입니다.

저자들은 책을 통해 위로만을 건네지 않습니다. 대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합니다. 요가나 명상, 취미생활 같은 일시적 해법을 넘어서, 더 근본적인 삶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동희 PD는 브레인 포그와 번아웃을 경험하며 '이렇게 살다가는 죽는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일상을 뒤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나 자신을 위해 몰입하는 한 시간을 만들었고, 회사 일 외에 정말 하고 싶었던 책 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습관과 시간 관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현실적인 방법론이 되어줍니다. 중요한 것은 회사 생활의 목표를 '성공'이 아닌 '무수히 많은 시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승진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프로젝트가 빛을 보든 좌절하든, 그 모든 경험의 축적이 진짜 나를 만들어갑니다. 회사를 탐구하고 적절히 활용하되, 그곳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빌런'들에게서도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생에서 경로를 바꾸고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것은 뜻밖에도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분노는 강력한 동기부여의 원천이 되고,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연료를 제공합니다. 직급이 올라가고 책임이 커지면서 때로는 전략적인 자기표현이 필요합니다.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말한 '될 때까지 그런 척하면 그렇게 된다'는 초긍정의 자세도 상황에 따라서는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물론 그것이 진정한 힘이 되려면 용기와 끈질긴 노력,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쓸모 있는 허세와 빈 껍데기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발자크는 자신만의 시공간을 창조하며 한계를 뛰어넘었고, 100세가 넘어서도 창작 활동을 이어간 예술가들은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이들로부터 우리는 현재의 지위와 소유에 집착하기보다, 덜어내고 줄이면서 자유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직 전성기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는 오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매 순간을 아끼며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질적 전환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는 전성기의 순간은 그렇게 준비되는 것입니다. 작아도 진정한 내 일을 찾아서 과감히 현재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들의 '추구미'는 그래서 아름답습니다.

저자들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지브리 영화의 산실, 지브리 스튜디오를 어머니와 함께 여행하며 직장인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을 찾고자 했습니다. 양양 해변에서 거친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잡는 서퍼들을 보며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좌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기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을 인정하고 나만의 혁신적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추구했던 것처럼,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문학을 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하루 중 나를 위해 확보한 한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누려온 삶을 송두리째 버리고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하루에 한 시간쯤은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고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를 회복하는 베이스캠프이자, 진정한 의미의 '집'입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 속에는 휴식에 대한 갈망, 안전함에 대한 욕구, 그리고 나답게 살고 싶은 작은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온(ON) 상태를 요구받으며 저전력 모드로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감각입니다. 지금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이미 퇴직한 사람도, 손주를 돌보며 집에 머무는 사람도 종종 집에 가고 싶어집니다. 그 집이 부산의 바닷가인지, 여행지의 어디쯤인지, 아니면 추억 속 어느 순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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