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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도 괜찮아 용기만 있다면 - 250만 명의 인생을 바꾼 배짱 이야기
이시형 지음 / 풀잎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기자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회의실 테이블 앞에서, 저녁 약속 자리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연기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능숙한 척. 그 연기가 너무 능숙해서 때로는 자신조차 속인다. 마음속으론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겉으론 태연한 표정을 지었던 순간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는데 결국 삼켜버렸던 기억이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첫발을 떼지 못해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던 시간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숙맥의 초상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 이들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깊이 느끼기 때문에 주저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규칙들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면 창피해", "남들이 뭐라고 하겠니", "체면이 말이 아니네". 이런 말들이 우리 귓가를 맴돈다. 체면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지만, 더 자주는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샀지만 점원 눈치가 보여 교환하지 못한다. 잘못 주문한 음식을 그대로 먹는다. 약속 시간에 늦었지만 전화하기 민망해서 그냥 뛴다. 작은 일들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우리는 점점 자신의 진짜 마음에서 멀어진다. 체면을 지키려다 정작 자신을 잃어버리는 역설. 우리는 언제쯤 이 무거운 갑옷을 벗을 수 있을까?
완벽주의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저주다. "잘해야 해", "실수하면 안 돼", "모든 게 완벽해야 시작할 수 있어".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옭아맨다. 하지만 인생은 완벽한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모든 조건이 갖춰지길 바라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 백번 계획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게 낫다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만큼 정확한 진실도 없다. 실패가 두려울때가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럴때 묻고 싶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늙어가는 것과, 실패했지만 적어도 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후회스러울까?세상에는 실패한 사람들보다 시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갔기에 빛나는 것이다.
용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처음엔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식당에서 잘못 나온 주문을 바로잡아 달라고 말하기.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당당히 환불하기. 동료에게 먼저 커피 한잔 제안하기.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면 어느새 당신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거절도 배워야 한다. "안 돼"라고 말하는 용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자신을 희생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안함이 과해지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병이 된다.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는 소중하다. 모든 요청에 응해야 할 의무는 없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러워진다. 근육을 키우듯, 용기도 훈련으로 강해진다.
많은 이들이 이성 앞에서 유독 위축된다. 직장에서는 프레젠테이션도 척척 해내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만큼 진지하고, 그 관계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문제는 그 진지함이 과도한 긴장으로 이어질 때다. 상대방도 사람이다. 나만큼이나 불완전하고, 때로는 서툴고, 누군가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완벽한 타이밍, 완벽한 멘트, 완벽한 분위기를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커피 한잔 할래요?" 이 간단한 문장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이 문장을 건네는 순간, 당신의 세계는 달라진다. 받아들여지든 거절당하든, 적어도 당신은 시도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감한 것이다.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비교한다. 누군가의 완벽해 보이는 삶,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 하지만 그것은 편집된 하이라이트일 뿐이다. 열등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그 감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과소평가할 때다. 나에게는 나만의 속도가 있고, 나만의 길이 있다. 누군가는 스무 살에 결혼하고, 누군가는 서른에 사업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쉰에 꿈을 찾는다. 모두 괜찮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독특하다는 의미다. 나의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 말아야 겠다. 그보다는 나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어제의 자신보다 나은 오늘의 자신이 되려 노력해야 겠다.
결국 모든 것은 용기로 귀결된다. 실패할 용기, 거절당할 용기, 혼자 설 용기, 다르게 생각할 용기, 자신을 드러낼 용기. 숙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이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용기를 꺼내 쓸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혹은 용기를 내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실수해도, 서툴러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숙맥도 괜찮다. 소심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한 걸음씩,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