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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명상록 - 평정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민유하 엮음 / 리프레시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은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그렇다. 2천년 전 로마 제국의 황제가 전쟁터와 궁정 사이에서 자신에게 건넨 말들이, 지금 이 순간 스마트폰 알림에 시달리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을 준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고전의 권위 때문이 아니다. 그가 남긴 문장들이 인간 내면의 본질 즉, 불안, 두려움, 분노,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초역 명상록>은 바로 그 본질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 책이 다. 원문의 철학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구체적 감정과 상황에 맞춰 재구성했다. 번역을 넘어 재창작에 가까운 방식이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아우렐리우스가 평생 붙들었던 하나의 질문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더 정확히는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철학은 혼란 속에서 필요하다. 세상이 질서정연할 때, 우리는 철학을 찾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기준은 흐릿해지며, 타인의 평가가 자아를 잠식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묻는다. "나는 무엇을 믿어 야 하는가?" <초역 명상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 찾지 말라고, 오직 내면의 평정에서 출발하라고 말한다. 분노라는 이름의 자해.. "분노는 남을 상하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해친다." 생각해 본다. 분노는 때로 정당하지 않은가? 부당함을 마주했을 때,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것 아닌가? 그러나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분노는 그런 정의감과는 결이 다 르다. 그는 감정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감정에 지배되는 상태를 경계한다. 분노는 겉으로 보기엔 강렬하다. 상대를 향해 쏟아내는 말과 행동은 마치 내가 힘을 되찾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건 텅 빈 허탈함과, 스스로를 소진시킨 무력감이다. 분노는 외부를 향한 공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면을 갉아먹는 과정이다. SNS에서 누군가의 말에 화가 나서 댓글을 단 뒤, 하루 종일 그 생각에 사로잡혀본 경험이 있다면 이 말의 무게를 안다. 상대는 이미 잊었을 일에, 나만 계속 붙들려 있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게 아니다. 감정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분노를 느끼는 순간, 한 발짝 물러서서 묻는 것이다. "이 감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만약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내가 허락할 감정이 아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를 '판단의 문제'로 본다. 외부 사건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분노를 정당화하는 문화 속에 산다. "화 권리"를 주장하고, "분노 표출을 자유로 여긴다. 그러나 그 분노가 정말 나를 자유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오히려 나를 그 감정의 노예로 만드는가? <초역 명상록> 이 질문을 계속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국 스스로 내려야 한다.
<초역 명상록>이 전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다스리기보다, 자신을 다스리라."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 전체를 통치했지만, 그가 평생 붙들었던 건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외부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타인은 예 측 불가능하며, 운명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마음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평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의 선택 속에서 만들어진다. 화가 날 때, 한 발짝 물러서는 선택. 타인의 말에 흔들릴 때, 내 기준을 다시 세우 는 선택. 미래를 걱정할 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선택. 이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평정이라는 삶의 태도가 된다. 우리는 흔히 평온함을 "외부 조건이 좋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그 반대를 말한다. 평온함은 외부와 무관하게, 오직 내 안에서 만들어진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내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평정이다. 아우렐리우스는 그것을 "영혼의 요새"라고 불렀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안전한 공간이다.
<초역 명상록>은 그 요새를 세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화려한 수사도, 복잡한 이론도 없다. 오직 "내면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정확한 한 문장"만을 남긴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화내고, 두려워하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평정을 갈망한다. 나는 이 책을 회사 책상에 두고, 하루에 한 번씩 펼쳐본다. 때로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읽는다. 그럴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이, 오늘은 가슴에 박힌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오늘 겪은 일, 오늘 느낀 감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으로, 지금 내 삶 속에서 작동한다.
<초역 명상록>은 철학책이지만, 동시에 일기처럼 읽힌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에게 건넨 말들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왜 화를 내는가?""왜 타인의 말에 흔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2천 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AI 시대... 흔들리는 시대, 평정을 묻는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 나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