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oogi386님의 서재 (koogi386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7 Aug 2026 00:39:22 +0900</lastBuildDate><image><title>koogi386</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oogi386</description></image><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밀의 들판 - [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483</link><pubDate>Sun, 02 Aug 2026 16: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4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284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off/k7421304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284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a><br/>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왜 아픈 것을 알고 싶어 하느냐"는 할머니의 질문이었다. 마거릿 주해 리에게 할머니가 던진 이 짧은 질문 속에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가족 안에 존재할지 모르는 침묵의 이유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믿음, 그리고 그 침묵이 다음 세대에게는 오히려 정체성의 공백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다.책은 표면적으로는 한 여성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역사 탐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저자는 할아버지가 "범죄자"라는 말만 듣고 자랐다. 그 오해와 침묵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야 했고, 그 결핍은 다시 저자에게로 이어졌다. 휴스턴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극히 드물었던 도시에서 자라며 느낀 소외감, "어디서 진짜로 왔느냐"는 반복된 질문들,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결국 할아버지의 진실을 찾아 나서게 만든 근본적인 동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족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대 간 트라우마"다.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이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단어를 접했을 때, 자신이 오랫동안 느껴온 결핍과 공허함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흔히 부모 세대가 겪은 고통이 자녀에게 자동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말하지 않음, 침묵 그 자체가 하나의 유산처럼 대물림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민자 가정에서 부모 세대가 "생존 모드"로 살아가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자녀에게 전하지 않으려 했던 선택이, 역설적으로 다음 세대에게는 뿌리 없는 불안으로 남는다는 통찰은 비단 한인 이민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진실처럼 느껴졌다.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부분은 진실이 밝혀진 이후 아버지의 변화에 대한 묘사였다. 평생 과묵하고 근엄했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다정하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일화는,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조차 사실은 채워지지 않은 상실과 결핍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아버지, 곧 할아버지의 이야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앎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결국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 공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대목에서는, 한 세대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다음 세대를 위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한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 그리고 뒤늦게라도 그 침묵의 이유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족에게 뿌리를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우리 각자에게도 아직 다 묻지 못한 질문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울림은, 그 질문을 던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용한 격려였다. 역사는 가만히 두면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150/k7421304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52366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차가운 접시 하나로 하루를 식히는 여름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49</link><pubDate>Sun, 02 Aug 2026 1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321&TPaperId=174281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52/coveroff/k5421303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321&TPaperId=174281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차가운 접시 하나로 하루를 식히는 여름 에세이</a><br/>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 역시 매년 여름이 되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냉장고 문 앞에서, 소파에 앉은 채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더위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마음이 지쳐 있는 순간들이 유독 여름에 자주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오래도록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름을 늘 '견디는 계절'로만 여겨왔다. 땀이 나고, 몸이 무겁고, 밤에는 잠을 설치는 계절. 그래서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버티고 있던 것은 더위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참고, 더 많은 말을 삼키고, 더 많은 순간에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작년 여름 어느 저녁이 떠오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한참을 현관에 서 있었다. 딱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하철의 열기, 사무실의 냉방과 바깥 공기의 온도 차, 점심시간의 소음 같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있었을 뿐이다. 그날 나는 저녁을 차리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오이 하나를 씻어 썰어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운 하루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게으른 저녁이라고. 하지만 책이 말해주듯,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돌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근사한 저녁을 차릴 힘이 없다고 해서 나를 굶긴 것은 아니었다.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어 나를 먹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저녁을 잘 차려야만,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날의 저녁은 잘 차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일에 더 가깝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답도 천천히'라는 대목이었다. 나는 평소 답장이 느린 사람을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여름이면 별일 아닌 메시지 하나에 며칠씩 답을 미루곤 했다. 상대가 나쁜 의도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그 평범한 안부 인사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저녁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탓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왜 이런 사소한 일에도 지치는 걸까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너무 오래 뜨거운 곳에 놓여 있었던 결과였다는 것을. 마음에도 온도가 있고, 그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말들도 날카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여름은 나에게 '얼마나 잘 해내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데워져 있는가'를 먼저 살피라고 가르쳐준 계절이다. 지금까지 나는 계절과 상관없이 늘 같은 속도로, 같은 기준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쉬는 날에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녁에는 손해 본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여름날의 무기력함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내 안에 쌓인 열기를 알아차리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몸이 먼저 멈추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 그것이 이 계절을 건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br>올해 여름에는 조금 다르게 지내보려 한다. 답장이 늦어지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저녁을 대충 차린 날에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기로 한다. 대신 찬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냉장고에서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 접시에 담아본다.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엉켜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간격을 찾는 것을 느껴본다.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에게 자주 말해주려 한다. 더위보다 먼저 지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그늘 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늘을 허락해줄 시간이라는 것을, 조용히 되새겨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52/cover150/k5421303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5526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초압축 금리 공부 - [초압축 금리 공부 - 경제 원리가 단숨에 이해되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08</link><pubDate>Sun, 02 Aug 2026 12: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249&TPaperId=174281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5/45/coveroff/k3121392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249&TPaperId=174281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압축 금리 공부 - 경제 원리가 단숨에 이해되는</a><br/>추동훈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티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할 리뷰입니다.​요즘처럼 '금리'라는 단어가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발표하는 날이면 부동산 커뮤니티부터 주식 리딩방까지 온통 그 이야기뿐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대출 이자가 조금만 올라도 가슴이 철렁하고, 예금 금리가 조금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정작 금리가 왜 오르고 내리는지, 그 숫자 하나가 어떻게 내 통장 잔고와 집값과 주가를 동시에 흔드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번에 책을 접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꼈던 금리라는 개념을 조금 더 또렷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다.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세대가 겪는 금리 환경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예금 금리가 두 자릿수에 이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그저 성실하게 벌어서 은행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재테크가 성립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충격을 지나며 그런 고금리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서브프라임 사태와 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거치면서 각국 정부는 돈을 풀어 시장을 떠받쳤고, 그 결과 시중에는 유례없이 많은 유동성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체감하는 고물가와 고금리는 어쩌면 그 오랜 저금리·고유동성 시대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금리를 단순히 '은행이 주는 이자율' 정도로만 여겨왔던 나에게, 금리가 '시간의 가치'이자 '돈의 사용료'라는 설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내 손에 있는 100만 원과 1년 후에 받을 100만 원이 결코 같은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 그 차이를 메워주는 장치가 바로 금리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여러 경제 현상이 한결 명료하게 이해되었다. 단리와 복리의 차이,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어림잡는 방법,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금리 개념까지, 이런 것들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스치듯 배웠지만 실생활과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금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세하게 변하는 이유도, 결국 그것이 경제 전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신경망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금리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이나 인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저 중앙은행이 어떤 신호를 주는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앙은행이라는 기관이 왜 탄생했는지, 물가와 금리가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인플레이션 못지않게 디플레이션이 왜 더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니 뉴스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특히 채권 가격이 금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원리는 평소 어렴풋이 들어만 봤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왜 금리가 오르면 채권 시장이 출렁이고 그것이 다시 주식 시장 심리에 영향을 주는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br>무엇보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금리가 우리 일상, 특히 대출과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요즘 대출 이자가 오르는 속도를 보면 정말 실감이 난다. 기준금리가 조금만 인상되어도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이자는 즉각 반응하는 반면, 예금 금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가 반응하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접하니 그동안의 답답함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또한 집값의 본질이 결국 이자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이 얼마나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대출 여력'이 자산 가격을 형성하는 핵심 변수라는 시각도 인상적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여력이 줄어들고, 그것이 다시 부동산 수요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최근 몇 년간 겪었던 집값의 급등과 조정이 왜 하필 금리 인상·인하 시점과 맞물려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었다.<br>앞으로도 금리 뉴스는 계속 우리 삶 곳곳을 파고들 것이다. 예전처럼 그 소식을 그저 흘려듣거나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금리가 왜 움직이고 그것이 나의 대출과 저축, 소비와 투자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짚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결국 금리를 이해하는 일은 거창한 경제학 이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갑과 내 삶을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회에 정리한 금리에 대한 이해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금리 인상과 인하의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5/45/cover150/k3121392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75455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90</link><pubDate>Sun, 02 Aug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508&TPaperId=17427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97/coveroff/k7221305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508&TPaperId=174278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a><br/>박권 외 지음 / 책밥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 곱씹게 되는 생각이 있었다. AI는 더 이상 질문에 답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일을 대신 완수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마케팅 문구처럼 들렸는데, 몇 장을 더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 역시 매일 ChatGPT나 Claude에게 좋은 답을 얻고도, 정작 그 답을 문서로 옮기고 파일을 정리하고 여러 서비스에 다시 입력하는 일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편리한 도구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여전히 손으로 마무리하는 노동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br>그래서 오픈클로(OpenClaw)라는 이름이 낯설게 다가오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지금은 크고 작은 AI 서비스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가 다음 세대의 표준이다"를 외치는, 말 그대로 전국시대 같은 시기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기보다는, 여러 도구가 서로 경쟁하고 또 연결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혼란스러운 지형 속에서 오픈클로는 특정 서비스 하나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내 업무 환경 안에 AI를 아예 심어서 스스로 목표를 나누고 실행하게 만드는 접근을 취하고 있었다. 그 점이 다른 입문서들과 결이 달랐다.<br>직접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막상 손을 대려니 막막했다. 서버니 VPS니 하는 단어들이 낯설었고, 터미널 화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책이 안내하는 순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걸 알게 됐다. 오래된 PC로도 시작할 수 있고, 맥미니나 라즈베리 파이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구동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고사양 서버가 없어도 나만의 AI 비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심리적 문턱을 낮춰주었다.<br>실제로 몇 가지 자동화를 만들어보면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편리함이었다. 매주 쌓이는 문서를 스스로 정리하게 하고, 반복되는 확인 작업을 예약해두고, 필요한 자료를 알아서 취합하도록 맡기고 나니 손이 훨씬 가벼워졌다. 예전 같으면 30분 넘게 걸렸을 잡무가 몇 줄의 지시만으로 처리되는 걸 보면서, 이게 바로 책이 말하던 '일을 완수하는 AI'구나 싶었다.<br>그런데 그 편리함 뒤에는 낯선 불안도 함께 따라왔다. 내가 늘 해오던 정리와 취합의 자리를 AI에게 조금씩 내어주면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게다가 내 PC와 계정 권한의 상당 부분을 AI에게 열어준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기업이 보안과 개인정보를 이유로 이런 도구의 사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접근 권한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떤 작업은 반드시 사람이 최종 확인을 거쳐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능력을 얻는 만큼 새로운 책임도 함께 떠안는다는 걸, 직접 구축해보고 나서야 실감했다.<br>책을 통해 오픈클로 인공지능 경험을 돌아보면 후회는 없다. 오히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들을 덜어낸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는 손이 아니라 무엇을 정리할지 판단하는 머리로, 반복되는 실행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역할로 조금씩 옮겨가야 한다는 감각이 남았다. 결국 오픈클로를 써보며 마주한 질문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그래서 끝까지 내가 붙들고 있어야 할 '내 일'이 무엇인지, 이 전국시대 같은 흐름 속에서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가야 할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97/cover150/k7221305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971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 [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73</link><pubDate>Sun, 02 Aug 2026 0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607&TPaperId=174278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2/15/coveroff/k5121306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607&TPaperId=174278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밤사이 온 메시지, 처리해야 할 업무 메일, 넘쳐나는 뉴스와 알림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이 되었고,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이, 뜻밖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톨스토이의 문장과 르누아르의 그림을 나란히 엮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문학과 미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구성이 반가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두 거장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br>톨스토이는 평생 자신을 향해 거울을 들이댄 사람이었다고 한다. 욕망과 위선, 신에 대한 회의까지 낱낱이 일기에 적어 내려간 사람. 그가 쓴 &lt;주인과 일꾼&gt;을 읽으며, 살을 에는 겨울밤 길을 잃고 헤매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얼어 죽을 위기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니키타의 태도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죽음마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그 담담함이, 무언가를 놓지 못해 안달하며 살아가던 나에게 작은 숨구멍을 내주었다. 인생이 아무리 가혹해도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낡은 러시아의 설원 위에서 배웠다. 반면 르누아르는 창문 너머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웃는 여인, 춤추는 연인, 볕이 쏟아지는 오후. 그의 그림 속에는 어둠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다소 순진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분명 그늘도 있는데, 왜 이 사람은 밝은 면만 그렸을까. 그러나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환한 색채들이 실은 그가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붙잡은 세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그늘이 있고, 그 그늘을 마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그늘을 파고들어 글로 쓰고, 어떤 이는 애써 빛을 그려 자신을 지탱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낸 것일 뿐이다.<br>두 사람에게는 세상에 밝히지 못한 같은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도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톨스토이에게는 끝내 인정하지 않은 아들이 있었고, 르누아르에게는 평생 숨겨야 했던 딸이 있었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이들도 결국 나약하고 모순된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완벽한 삶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고, 누구나 자기 몫의 실패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들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지고 있는 작은 흠들도, 굳이 감추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이 책을 펼치는 시간은, 나에게 일종의 쉼표였다. 스마트폰의 알림음 대신 눈밭을 걷는 말발굽 소리를 상상하고, 회의실의 형광등 대신 르누아르가 그린 오후의 햇살을 떠올리는 시간. 그 잠깐의 멈춤이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우며 살지만, 가끔은 백 년도 더 전에 살았던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를 다독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br>톨스토이가 거울을 보듯 자신을 파헤쳤던 것처럼, 나도 가끔은 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감추고 있던 나의 못난 부분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그늘들. 그것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르누아르가 창밖을 바라보며 빛을 그렸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창문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이 힘겨워도, 잠시 눈을 돌려 볕이 드는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그런 여백 말이다. 책이 나에게 준 것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작은 허락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그늘이 있어도 그 그늘 안에서 계속 살아가도 된다는 허락, 그리고 가끔은 멈추어 서서 옛사람의 문장과 그림을 들여다보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br>책을 덮고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을 때, 여전히 알림은 쌓여 있었고 해야 할 일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대하는 내 마음의 온도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조급함 대신 약간의 여유가, 완벽에 대한 강박 대신 나 자신을 향한 작은 관용이 자리 잡았다. 톨스토이의 겨울밤과 르누아르의 오후 햇살은, 그렇게 아주 오래된 시간을 건너와 지금의 나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네주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2/15/cover150/k5121306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2153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55</link><pubDate>Sun, 02 Aug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0129&TPaperId=174278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59/coveroff/k8021301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0129&TPaperId=174278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a><br/>페마 초드론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마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살면서 우리는 늘 확실한 것을 원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언제 끝날지 미리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페마 초드론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반대의 태도, 즉 불확실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히려 진짜 평온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br>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 감정, 문제를 지나치게 견고한 실체로 여긴다는 지적이었다. 명상 중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를 붙잡아 이야기로 엮다 보면, 어느새 그 이야기가 곧 '나'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생각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조차 명확히 짚어낼 수 없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는 순간을 정확히 집어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흐름에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나의 고통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다'라고 굳혀버린다. 이 굳히는 습관이야말로 괴로움을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br>책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세 가지 독, 즉 갈망과 혐오, 그리고 무지로 설명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 무언가를 밀어내려는 마음, 그리고 그 둘 다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넘어가는 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가지를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오히려 그 감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의 지혜와 자비가 깨어날 씨앗이 있다고 한다. 힘든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 그것이 이른바 전사(戰士)의 마음, 즉 보디사트바의 길이라는 것이다.<br>또 하나 마음에 남은 개념은 '고독을 대하는 여섯 가지 태도'였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적으로 여기고 그것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책은 그 외로움 안에 가만히 머무르는 법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로 기분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도피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불필요한 자극을 좇지 않는 것, 매 순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직접 마주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대화의 동반자를 더 이상 찾지 않는 것. 이 여섯 가지를 읽으며 나는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잠깐의 정적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로 그 틈을 메우려 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독을 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날씨처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책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은 '보디치타', 즉 깨어난 자비의 마음이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본래 있는 마음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가 두려움과 방어 때문에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통렌 수행, 즉 고통을 들이쉬고 안도감을 내쉬는 훈련은 이 자비의 마음을 실제로 연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결국 타인의 아픔을 밀어내지 않고 나의 아픔처럼 받아들이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인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힘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런데 통렌은 그 반대의 방향, 즉 오히려 그 아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라고 말한다.<br>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삶이 원래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우리는 대개 확실함을 손에 넣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책은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불확실함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유연함과 용기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태도에 가깝다.<br>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거창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곧바로 밀어내거나 이야기로 굳히기보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보려는 작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내 감정과 생각을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 이 가르침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창한 초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불확실함과 조금씩 화해해나가는 아주 소박하고 꾸준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59/cover150/k8021301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9599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49</link><pubDate>Sun, 02 Aug 2026 0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407&TPaperId=17427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9/coveroff/k012130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407&TPaperId=174278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a><br/>케리 올리치.켈리 권터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눈치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섬세한 사회적 감각이다. 문제는 이 감각이 방향을 잃을 때 생긴다. 타인의 기대를 읽는 데만 온 신경을 쏟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부모의 기대, 배우자의 시선,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이런 것들에 맞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삶과 남들이 기대하는 삶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케리가 심리학 박사 학위를 꿈꾸면서도 오랫동안 지원을 미뤘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만들어낸 안전한 선택지에 안주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눈치가 지나치면 그것은 더 이상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br>책의 목차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들이 눈치 문화를 개인의 소심함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 시스템의 문제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부모, 종교, 성 역할, 출신과 배경, 결혼, 직업, 우리가 눈치를 보는 대상은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오래된 것들이다. 나 역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선택을 망설일 때 그 뒤에는 늘 특정한 얼굴들이 있었다. "그 나이에 아직도?",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왜?"라는 상상 속의 질문들. 그것들은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던진 말이 아니라, 내가 미리 상상하고 두려워한 반응일 때가 더 많았다. 결국 내가 눈치를 보는 대상은 특정한 타인이라기보다, 내면화된 기대의 총합이었던 셈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가둔 것이 세상 전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난 두려움이라면, 적어도 그 두려움과는 협상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br>마음에 남았던 대목은 "자기 확신은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자신감이란 어느 순간 완성되어 평생 유지되는 상태라고 착각해왔다. 그래서 스스로 흔들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라는 자책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삶의 굴곡마다 자기 신뢰가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관점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자기비판을 과학자처럼 다루라는 조언도 실용적이었다. 근거 없는 자기 의심에 빠질 때,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그동안 이뤄낸 것들을 데이터처럼 하나씩 나열해보는 것. 이는 눈치라는 감정적 반응에 이성적인 제동장치를 다는 방법이기도 하다.<br>돌아보면 내가 가장 눈치를 많이 봤던 영역은 진로와 관계였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 직업, 남들이 이해할 만한 선택을 좇느라, 정작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인터뷰 속 켈리가 테니스를 사랑하지만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이 자기 확신을 꺾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좋은 균형점을 보여준다. 자기 신뢰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인식한 채로도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다. 이것이야말로 눈치 문화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는 대신, 나 자신의 데이터로 나를 이해하는 것.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는 태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것, 그리고 내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잊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눈치가 아닌 자기 확신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연습이다.<br>눈치를 완전히 버리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관계 속에서 조율하는 감각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그 감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내 안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 글을 통해 다시 느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시도하지 않아서 영영 알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 붙잡아도, 오늘의 작은 용기 하나쯤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게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눈치와 나 자신의 목소리 사이에서 더 자주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9/cover150/k012130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593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노력의 종말 - [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39</link><pubDate>Sun, 02 Aug 2026 08: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0722&TPaperId=174278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92/coveroff/k0721307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0722&TPaperId=174278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a><br/>올리비에 바보 지음, 이나래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올리비에 바보(Olivier Babeau)의 책을 읽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지적하는 "노력의 상실"이라는 진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하루하루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롤 한 번으로 웃음을 얻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영상으로 시간을 채우고, 선택이 어려우면 후기와 별점에 판단을 맡기는 삶. 그것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채은 불편할 만큼 명료하게 보여준다.<br>바보가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력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 생존을 위해서든,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든,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기술 문명은 그 오래된 방정식을 깨뜨렸다. 사냥 없이 포만감을 얻고, 구애 없이 쾌락을 얻고, 공동체의 의례를 거치지 않고도 소속감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보상들이 가짜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애초에 "노력 후에 오는 보상"이라는 회로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노력 없는 보상은 뇌에게는 낯선 신호이고, 그 낯선 신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우리는 서서히 노력할 이유 자체를 망각해간다. 내 스스로의 소비 습관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사기 전에 후기를 열 개쯤 읽고,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확인하고서야 지갑을 연다. 겉보기엔 신중한 소비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판단하는 수고를 남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가깝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누군가에게 영향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는 일이다. 나는 내 취향, 내 기준, 내 실패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얼마나 잃어버렸는가. 선택지가 무한히 늘어난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근육을 잃어가고 있다.<br>이 진단이 개인의 습관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글은 이것이 사회 전체의 현상임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학업을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 하향 평준화된 학교 교육, 예의와 인내심의 퇴조, 감정과 즉흥적 반응이 이성적 숙고를 대체해버린 공적 담론.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물질적 풍요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는 통계였다. 안전과 행복이 반비례한다는 이 역설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발전이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균열을 낸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가 더 이상 그 학생의 사유의 산물이 아니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정보를 찾을 때 도구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도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편리함에 기대어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결과물은 얻되 그 과정에서 마땅히 형성되었어야 할 사고력과 인내심을 잃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처럼 평생을 관찰하고 고쳐 쓰는 대신, 완성된 답을 즉시 손에 쥐는 세대가 과연 무엇을 스스로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br>바보의 논의가 단순한 세대 비판이나 향수 어린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과거가 더 나았던 것이 아니다. 노예제, 신분의 굴레, 짧은 수명, 끝없는 육체노동 속에서 살던 이들의 삶을 우리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노력과 보상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어떻게 의식적으로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태도의 문제다. 노력을 찬양하는 것이 노력하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노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노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는 분명 운과 시대적 조건이 작용한다. 하지만 그 운을 붙잡을 준비, 즉 스스로를 갈고닦는 일만큼은 오롯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복권을 사지 않고는 당첨을 바랄 수 없듯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는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방향의 문제다. 노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방향 없는 노력은 소진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글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 즉 자신만의 열정과 규율, 스스로 세운 목표에서 노력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나에게 노력이란 결국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행위다. 그 거리를 인정하고 견디는 일이야말로, 즉각적인 만족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낸다.<br>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정말로 "애써서" 이룬 것이 있었는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손쉬운 자극과 편리한 대체물로 채우며 흘려보냈는가. 솔직히 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노력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게으름의 시대"라는 진단은 무섭지만, 동시에 하나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에 잠식되지 않을 나만의 영역을 지키자는 초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스크롤 대신 책을, 즉답 대신 스스로의 사유를 선택하는 일. 그 작은 저항에서부터, 잃어버렸던 노력의 감각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92/cover150/k072130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7929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독성 인간 - [독성 인간 - 그들의 다크 심리를 무력화하는 7가지 심리 전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68</link><pubDate>Sat, 01 Aug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281&TPaperId=174268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68/coveroff/8901300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281&TPaperId=174268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독성 인간 - 그들의 다크 심리를 무력화하는 7가지 심리 전략</a><br/>리앤 텐 브링크 지음, 김효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특정한 얼굴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들이었다. 분명 상처를 받았는데도 "내가 예민한 건가" 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순간, 분명히 무례한 말을 들었는데 상대는 여전히 웃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던 순간들. 레안 텐 브링크는 그런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준다. 심리학은 이런 사람들을 "악한 사람"이라는 도덕적 언어가 아니라, 정신병질성,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가학성이라는 네 가지 특성이 겹쳐진 "다크 테트라드"라는 좀 더 차갑고 분석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특성들이 소수의 특별한 괴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 안에 조금씩 있다는 설명은 가장 먼저 나를 멈춰 세운 대목이었다.<br>나는 그동안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누군가를 단정 짓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이 특성들이 외향성이나 개방성처럼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는 성향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더 정교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고 끝내는 대신, 그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얼마나 일관되게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것. 그것이 감정을 앞세운 판단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 글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첫인상과 진짜 성격 사이의 시간차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르시시즘이 높은 사람일수록 처음 만났을 때는 유독 자신감 있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왜 우리가 그렇게 자주 속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확신에 찬 태도를 실제 능력과 혼동한다. 취업 면접에서든 연애의 초반이든, 스스로를 확신 있게 포장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저 사람은 뭔가를 아는 사람이구나" 하고 쉽게 믿어 버린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가 존경했던 몇몇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실은 자기 확신만 강할 뿐 다른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 그때 나는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뒤늦게 제대로 보게 된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br>크게 다가온 개념은 단연 "트리클다운 다크니스", 즉 한 사람의 어두운 성향이 조직과 가정으로 흘러내려 가는 현상이었다. 정신병질성이 높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안고 퇴근해서, 정작 아무 잘못도 없는 배우자와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는 설명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까지 어떤 사람의 나쁜 행동은 그 사람과 직접 부딪힌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피해가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번져 간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성격이 얼마나 넓은 반경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동시에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스트레스를, 누구에게, 왜 흘려보내고 있는가. 그 스트레스의 진짜 근원은 어디인가.<br>현실적으로 다가온 조언은 "그 사람을 사랑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텐 브링크는 이것을 "너의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로 정리한다. 다크 테트라드 성향이 높은 사람은 대개 자신의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이미 얻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변화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냉정하게 들리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관계가 어긋날 때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참고 이해해 주면 저 사람도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붙잡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 변화의 동기는 결국 상대방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지, 내 인내심의 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br>책을 다 읽고 나서 남은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신감과 능력을 혼동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의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나와 무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눈여겨보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리고 나는 어떤 관계에서, 매몰 비용 때문에 이미 답이 나온 결정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텐 브링크의 말대로, 이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일은 결국 그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첫인상에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패턴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함께 빌려 오는 것. 그것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오래갈 교훈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68/cover150/8901300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7687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뇌가 만든 천재들 - [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35</link><pubDate>Sat, 01 Aug 2026 14: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268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off/89659684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268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a><br/>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오랫동안 '천재'라는 단어에 얼마나 낭만적인 안개를 씌워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반 고흐의 정신질환, 칸딘스키의 공감각, 실비아 플라스의 우울증. 이런 이름들을 나열하면 자연스럽게 '광기와 천재성은 한 뿌리에서 자란다'는 오래된 통념이 떠오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신화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들의 천재성은 질병 '덕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질병에도 '불구하고' 발현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구분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축이라고 느껴졌다.<br>오랫동안 품고 있던 어떤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고통받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소비할 때, 그 고통 자체를 미화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정신병을 앓았기에 그런 걸작이 나왔다'는 식의 서사는 듣는 사람에게는 매혹적이지만, 실제로 그 고통을 살아낸 당사자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계속 상기시킨다. 신경학자인 저자가 임상에서 매일 마주하는 것이 '거의 뇌졸중 환자들'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예술사 속 인물들이 실험실의 표본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인상 깊었던 부분은 안톤 레더샤이트와 오토 딕스처럼 편측무시(반측 공간 무시) 증후군을 겪은 화가들의 이야기였다. 뇌졸중으로 인해 세계의 절반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사람이,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은 예술이 단순히 재능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구성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뇌가 인식하는 현실이 왜곡되었을 때, 그 왜곡된 현실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증언이 된다. 예술이 현실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저자의 관점은, 뇌과학과 미학을 잇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다리였다.<br>마틴 라미레스의 이야기 또한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신병원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어떤 미술 교육도 받지 못한 채로, 오직 표현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충동만으로 방대한 작품을 남긴 사람. 그는 멕시코 예술의 전통에도, 미국 예술계의 어떤 흐름에도 속하지 못한 채 홀로 존재했다. 이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나는 예술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이 얼마나 제도와 계보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라미레스의 그림은 어떤 미술사조에도 속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인간이 표현하려는 원초적 욕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저자가 강조하듯, 이런 주변부의 예술을 이해하는 일은 결국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보르헤스와 기억, 망각에 대한 장 역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실명이라는 절망 앞에서 그는 오히려 기억과 시어(詩語)로 도피하지 않고 맞섰다. 그에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심지어 굴욕과 불행조차 예술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는 태도는 단순한 긍정주의가 아니라, 한계를 다루는 하나의 방법론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 한계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만, 보르헤스는 한계를 '재료'로 바라보았다. 이 관점의 전환이야말로 이 책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br>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과 창의성에 관한 논의도 개인적으로 가장 시의적절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예술가를 대체하기보다는 그 존재만으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고 본다. 콜링우드의 미학 이론, 즉 창작이란 감정을 명료하게 하고 형태를 부여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용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언어로 묘사하는 행위만으로는 진정한 발견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인간과 도구의 경계가 비교적 명확했던 과거와 달리, 생성형 인공지능 앞에서는 그 경계가 흐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위협이 아니라 하나의 '틈'으로 본다. 사진의 발명이 회화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회화를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켰듯, 인공지능도 예술가들에게 기계가 다다를 수 없는 영역, 즉 신체화된 고통과 결핍, 구체적인 생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으로 더 깊이 파고들 여지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br>책을 덮으며 나는 '결핍'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우리는 보통 결핍을 채워야 할 구멍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그 구멍을 메우려 하기보다, 그 구멍의 모양 자체를 작품의 형식으로 삼았다. 뇌전증이 만들어낸 도스토옙스키의 숭고함에 대한 감각, 공감각이 만들어낸 칸딘스키의 색채 언어, 편측무시가 만들어낸 딕스의 왜곡된 구도. 이들은 모두 자신의 뇌가 세상을 인식하는 고유한 방식을 부정하지 않고, 그 방식을 그대로 언어화했다. 정신질환은 낭만화될 대상이 아니라 이해받고 치료받아야 할 고통이며, 동시에 그 사람이 세상을 지각하는 고유한 방식은 존중받아야 할 다양성이라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니는 균형 감각이야말로 신경다양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나 역시 앞으로 누군가의 '다름'을 마주할 때, 그것을 결함으로 재단하기 전에 그 사람만이 가진 지각의 결을 먼저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150/89659684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3419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 - 공유되는 순간 완성되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원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98</link><pubDate>Fri, 31 Jul 2026 17: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419&TPaperId=174241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4/72/coveroff/k5521304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419&TPaperId=174241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 - 공유되는 순간 완성되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원칙</a><br/>로빈 랜다.그레그 브라운 지음, 최은아 옮김 / 알레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광고는 매일 수천 개씩 쏟아지지만, 그중 하루가 지나도 머릿속에 남는 것은 손에 꼽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어떤 이야기는 사라지고, 어떤 이야기는 계속 회자되는가." 저자들은 그 답을 기술이나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모닥불 앞에서 전해지던 옛이야기든, 지금의 숏폼 영상이든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사람은 공감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브랜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br>책이 소개하는 여러 사례 중 InBev의 맥주 뚜껑 프로젝트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사 로고를 뚜껑에서 빼고 그 자리에 음식점, 물, 차량 호출 서비스 브랜드의 할인 혜택을 넣어, 술을 마신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유도한 캠페인이다. 제품을 파는 광고가 아니라 사람과 사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것이야말로 "공유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의 조건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책은 이렇게 공유되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을 정리한다. 사람들의 화제가 되고, 기존의 대화를 증폭시키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바꾸고, 브랜드의 가치와 일치하며,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거움이나 영감을 주고,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브랜드 스토리는 광고이기 이전에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이야기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br>책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은 부분은 "브랜드가 아니라 수용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이야기라도 결국 그것을 듣는 사람의 삶과 감정에 가닿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나이키의 사례가 특히 그렇다. 나이키의 신발은 소재나 기능 면에서 다른 스포츠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한다. 그 차이는 물리적 성능이 아니라 감정적 연결에서 나온다는 설명을 읽으며, 결국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제품 스펙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가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br>현대자동차의 슈퍼볼 캠페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아기, 강아지, 유명인이라는 광고 업계의 오래된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고, 해외에 파병된 군인과 고향의 가족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캠페인이 특별했던 이유는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진짜 감정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이런 사례들을 통해 브랜드 친밀도란 결국 우리가 실제 사람과 맺는 관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가 마음을 여는 사람은 우리를 웃게 하거나, 진심을 보이거나,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스토리텔링의 기술적인 요소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감정의 반전"에 대한 부분이 그랬다. 영화 〈기생충〉이나 도브의 "뷰티 스케치" 캠페인처럼, 하나의 감정에서 정반대의 감정으로 넘어가는 구조가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는 설명은, 좋은 광고와 좋은 이야기가 결국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청중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은지부터 정해야 한다는 조언은, 비단 광고뿐 아니라 어떤 글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처럼 느껴졌다.<br>동시에 책은 신뢰의 위기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짚는다. 광고라는 매체 자체를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고, 한번 신뢰를 잃은 브랜드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고 답한 소비자가 다수라는 조사 결과는 다소 냉정하게 다가왔다. 그만큼 오늘날의 소비자는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가 진심인지 아니면 마케팅을 위한 겉치레인지 금방 알아챈다는 뜻이다. 버거킹이 경쟁사 매장 근처에서만 1센트에 와퍼를 살 수 있게 한 캠페인처럼 다소 엉뚱하고 도발적인 아이디어도 결국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정직하게 자극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진정성 없는 기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br>브랜드가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이야기한다.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브랜드만이 장기적인 팬덤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메시지가 자칫 특정 집단을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변질될 위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캠페인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사회적 메시지를 다루는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화려한 연출보다 그 이야기 속 사람들을 얼마나 존중하는가에서 성패가 갈린다는 뜻으로 읽었다.<br>"우리 브랜드는, 혹은 나 개인은 어떤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하고 있는가." 제품의 스펙을 나열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이야기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라는 저자들의 말은 비단 광고업계 종사자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콘텐츠를 만들거나, 조직을 운영하거나, 심지어 개인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배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4/72/cover150/k5521304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4729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48</link><pubDate>Fri, 31 Jul 2026 1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0603&TPaperId=174241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off/k2621306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0603&TPaperId=174241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a><br/>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지는 소설이다. 가와카미 히로미의 이 작품이 그렇다. 인류가 서서히 소멸을 향해 가는 수천 년의 시간을 그려낸다는 이야기의 얼개를 접하는 순간, 나는 문득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사랑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이 모든 감정의 소란스러움이 실은 얼마나 연약하고 유한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br>소설 속 미래에서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는다. 눈이 셋이고 코가 없는 존재, 초록빛 피부로 광합성을 하는 존재,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존재, 복제되어 무수히 늘어난 '나'들. 이 낯선 형상들은 공포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애잔하게 다가온다.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변형시켜야 했는지를, 그 필사적인 적응의 흔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형의 끝에서 인류가 도달하는 곳은 다툼도 없고 질투도 없는, 고요하고 평평한 세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꿈꿔온 평화에 가깝다. 그런데 왜 그 평화는 이토록 쓸쓸하게 느껴지는가 생각하게 된다.<br>생각해 본다. 다툼이 없다는 것, 경쟁심과 질투가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 인간을 괴롭혀온 많은 고통의 뿌리가 뽑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뿌리와 함께 뽑혀 나가는 것은 다툼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 안에는 동시에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더 잘 살고 싶다는 열망, 미지의 것을 향한 호기심이 함께 얽혀 있다.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미움을 없애려면 사랑까지 함께 무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인간들이 점점 움직이지 않는 식물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은, 바로 그 무뎌짐의 극단적인 형상화로 읽힌다. 갈등할 능력을 잃은 존재는 동시에 갈망할 능력도 잃는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 낯선 유전자와 만나고 싶다는 욕망마저 사라진 존재는 결국 태어난 자리에서 뿌리내린 채 움직이지 않게 된다.<br>소설이 그리는 세계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아이들이 공장에서 태어나고 부모가 아이를 잊어버린다는 설정이다.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세계, 이름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상실이라는 감정조차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잃을 대상과의 결속이 애초에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우리가 지금 맺고 있는 관계들의 소중함을 떠올렸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 연결을 완전히 지워버린 세계는 고통도 없지만 동시에 삶의 밀도도 없다.<br>작품의 시간축은 수백 년, 수천 년 단위로 흐른다. 이 거대한 시간의 스케일 앞에서 나는 우리가 매일 겪는 다툼과 갈등, 자기기만과 자기 긍정, 비관과 낙관이 얼마나 왜소하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인간다운 몸부림인지를 새삼 느꼈다. 인간은 어리석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밀어내고, 사랑한다면서 상처를 준다. 그러나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압도하고, 우리의 모든 다툼과 노력이 그저 부질없는 발버둥으로 보이는 시대가 온다 해도, 그 발버둥 자체가 생명이 자신을 지속시키려는 안간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br>소설을 덮으며 내가 붙든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 것은 다툼과 미움이었지만, 그 다툼과 미움을 완전히 소거한 세계 역시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마저 앗아간다는 역설. 우리는 아마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로 다투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상처를 주면서도 다시 손을 내미는 그 불완전한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종이 너무 빨리 고요해지지 않기를, 너무 이르게 식어버리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어쩌면 평화가 아니라, 이 서투르고 뜨거운 다툼의 능력, 그리고 그로부터 태어나는 그리움일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150/k2621306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104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리더의 솔루션 - [리더의 솔루션 - 일 잘하는 리더는 AI 프롬프트로 솔루션을 설계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10</link><pubDate>Fri, 31 Jul 2026 16: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1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0108&TPaperId=174241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26/coveroff/k8821301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0108&TPaperId=174241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리더의 솔루션 - 일 잘하는 리더는 AI 프롬프트로 솔루션을 설계한다</a><br/>이인우 지음 / 천그루숲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 &lt;리더의 솔루션&gt;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문 생각은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문제를 잘게 쪼개고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이야말로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소박한 말이었다. 요즘처럼 챗GPT와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답을 쏟아내는 시대에, 오히려 이 문장이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AI가 정보와 초안을 만들어주는 세상에서 리더의 자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의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br>책은 리더의 솔루션을 ‘익숙한 관성을 벗겨내고, 데이터와 맥락으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며 내일의 성과를 설계하는 역량’이라고 정의한다. 생성형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순식간에 요약하고 그럴듯한 대안을 여러 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를 정의하는 일이다. 책에서 강조하듯 현장의 보고는 대개 “문제가 있습니다”처럼 막연하게 시작되고, 그 덩어리를 상황·영향·원인의 순서로 구조화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AI는 좋은 질문에는 좋은 답을 주지만, 애초에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사람, 그중에서도 리더의 몫이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리더십은 정답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AI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설계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책에서 인상 깊었던 개념은 ‘핵심 한 줄’이다. 현상, 원인 가설, 우리가 바꿀 지점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팀 전체가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면 방대한 자료에서 여러 초안과 시나리오를 몇 초 만에 얻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 풍부함이 팀을 더 산만하게 만들 위험도 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일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성형 AI 시대일수록 리더가 핵심 한 줄로 팀의 에너지를 모으는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고 느꼈다. AI가 아무리 많은 대안을 만들어내도, 그 대안 중 어느 것이 지금 우리 조직의 맥락과 가치에 맞는지 판단하고 선언하는 것은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br>책은 좋은 솔루션도 실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실행의 출발점을 ‘리더의 충분한 설명’과 ‘팀원의 깊은 이해’에서 찾는다. 이 부분은 AI 시대에도 전혀 대체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업무 지시서를 대신 작성해줄 수는 있어도, 팀원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납득하게 만드는 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신뢰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만들어진다. 협업에 대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협조하지 않는 부서를 움직이고, 상사의 판단을 돕는 상향 협업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관계와 맥락에 대한 섬세한 이해에서 나온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조직 안의 이해관계, 감정, 신뢰의 결을 읽어내는 것은 여전히 리더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br>‘필살기’ 개념도 새롭게 다가왔다.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초안과 분석을 손에 쥘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리더를 리더답게 만드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반복된 경험에서 나온 자신만의 판단 기준과 강점일 것이다. 책이 강조하듯 강점은 ‘반복적으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나만의 방식’이며, 이는 AI가 대신 만들어줄 수 없는, 오직 현장에서 부딪히며 축적한 감각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AI 시대의 리더십 경쟁력은 결국 ‘AI를 얼마나 잘 쓰는가’와 ‘AI가 줄 수 없는 나만의 판단을 얼마나 단단히 갖고 있는가’가 함께 맞물려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br>생성형 AI는 리더의 일 중 상당 부분, 특히 정보 탐색과 초안 작성, 대안 나열의 영역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정의하고, 핵심을 한 줄로 압축하며, 사람을 설득하고, 신뢰를 쌓아 실행으로 이어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오히려 AI가 정보 격차를 줄여줄수록, 리더의 가치는 ‘무엇을 물을 것인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누구와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결국 리더의 솔루션이란,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문제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태도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26/cover150/k882130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9262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처음이야? 파이썬 데이터 모델링 &amp; 머신러닝 - [처음이야? 파이썬 데이터 모델링 &amp; 머신러닝 - 동영상 강의로 배우는 실전 데이터 분석법(핵심노트+오픈채팅+유튜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079</link><pubDate>Fri, 31 Jul 2026 16: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40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1063&TPaperId=174240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9/21/coveroff/s7721393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1063&TPaperId=174240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처음이야? 파이썬 데이터 모델링 & 머신러닝 - 동영상 강의로 배우는 실전 데이터 분석법(핵심노트+오픈채팅+유튜브)</a><br/>윤영빈.오환.이용희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요즘 회사 회의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AI'와 '데이터'라는 단어가 오간다. 보고서 초안을 챗봇이 몇 초 만에 뽑아주고, 자료 정리도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나는 그 결과물을 '잘 쓰는 사람'일 뿐,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데이터를 '조금 더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그 '제대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도 답하지 못했다. 파이썬 문법은 어느 정도 익혔고, 표를 불러와 정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데이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예측하거나 판단하는 모델을 만드는 단계, 즉 머신러닝으로 넘어가는 순간 길이 뚝 끊겼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막막함, 그것이 요즘 내가 자주 마주치는 감정이었다.<br>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다. 이미 대형 언어 모델이 코드를 짜주고 분석까지 대신해 주는 시대에, 굳이 회귀 분석이나 결정트리 같은 개념을 손으로 익힐 필요가 있을까. 처음에는 나도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미뤄왔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생성형 AI가 잘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패턴을 빠르게 조합해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는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내 상황에 맞는지, 숫자가 실제로 타당한지, 모델이 과적합되지는 않았는지를 판단하는 몫은 결국 사람에게 남는다. AI가 만들어 준 회귀식이 그럴듯해 보여도 결정계수가 지나치게 낮거나, 분류 모델의 재현율이 형편없이 떨어진다면 그 숫자의 의미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만이 문제를 알아챌 수 있다. 다시 말해 생성형 AI 시대일수록, 결과물을 검증하고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데이터 모델링 감각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도구가 똑똑해질수록 그 도구를 부리는 사람의 기초 체력이 얕으면, 결국 잘못된 결과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프롬프트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보면 '왜 이 방법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결과만 소비하게 된다. 나는 이번 기회에 결과를 받아쓰는 사람에서, 최소한 그 결과가 어떤 원리로 나오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단계 올라서고 싶었다.<br>이런 고민 끝에 데이터 모델링과 머신러닝 입문을 위한 실습서 한 권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다. 파이썬 문법과 데이터 분석을 어느 정도 익힌 다음 단계, 즉 예측과 판단을 위한 모델을 직접 만들어보는 단계를 다루는 책이었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부분은 복잡한 알고리즘부터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데이터 모델링이 무엇인지,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이 어떻게 다른지를 짚는 과정이었다. 그다음에야 수치형 데이터와 범주형 데이터, 결측치와 이상치 처리, 스케일링처럼 모델을 만들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 과정으로 넘어갔다. 이 순서를 보면서 느낀 것은, 머신러닝 공부의 진짜 어려움은 알고리즘 자체보다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감각'을 기르는 데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에는 평균과 분산, 상관관계 같은 기초 통계를 다시 짚은 뒤 선형 회귀와 다중 회귀, 비선형 회귀로 확장하고, 이어서 로지스틱 회귀와 결정트리, 랜덤 포레스트 같은 분류 모델로 넘어가는 흐름이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가온 점은, 모델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정확도와 정밀도, 재현율 같은 지표로 그 모델을 스스로 평가하도록 이끈다는 점이었다. 모델을 '만들었다'는 사실보다 '그 모델을 믿어도 되는지 검증했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흐름을 따라가며 새삼 깨달았다. 전체 구성은 데이터 준비, 회귀, 지도 학습, 비지도 학습, 성능 개선을 거쳐 마지막에는 캐글 실전 프로젝트로 마무리되는 형태였다. 이렇게 학습 순서가 한눈에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입문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을 먼저 공부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처지에서, 최소한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도를 얻은 셈이었다.<br>책에는 학습 계획이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데이터 모델링, 회귀 모델, 지도 학습, 비지도 학습,모델 성능 강화, 실전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이 계획을 보며 든 생각은, 하루에 무리해서 많은 내용을 욱여넣기보다 주 단위로 목표를 잡고 예제 코드를 직접 손으로 실행해 보는 방식이 나 같은 입문자에게 훨씬 현실적이라는 점이었다. 실습 환경으로 별도의 설치 과정 없이 웹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한다는 점도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고사양 컴퓨터나 복잡한 개발 환경 구축 없이 코드를 바로 실행하고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시작 단계에서 흔히 겪는 진입 장벽 하나를 걷어내 주는 셈이었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강의 영상이나 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혼자 공부하다 포기하기 쉬운 순간을 버티게 해주는 안전망처럼 느껴졌다.<br>돌이켜보면 나는 그동안 '결과를 빠르게 얻는 법'에만 익숙해져 있었다. 생성형 AI가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코드와 분석 결과에 기대어, 정작 그 안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데이터 모델링과 머신러닝의 학습 순서를 다시 짚어보면서,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결과를 판단하고 책임질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앞으로는 책의 계획을 참고 삼아, 데이터를 준비하는 법부터 회귀와 분류, 군집화, 그리고 모델 성능을 점검하는 과정까지 차근차근 손으로 실행해 볼 생각이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다, 매주 하나씩 코드를 실행하고 그 결과가 왜 그렇게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목표로 삼으려 한다. 생성형 AI가 답을 대신 써주는 시대일수록, 그 답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일이 결국 나를 대체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9/21/cover150/s7721393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9215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위대한 경영의 12가지 조건 - [위대한 경영의 12가지 조건 - 지속 성장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3990</link><pubDate>Fri, 31 Jul 2026 15: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39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15163&TPaperId=174239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8/coveroff/89352151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15163&TPaperId=174239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위대한 경영의 12가지 조건 - 지속 성장하는 기업은 무엇이 다른가</a><br/>갤럽 외 지음, 김광수 옮김 / 청림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갤럽의 방대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책은 제목만 보면 관리자를 위한 지침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의 진짜 시선은 관리자가 아니라 직원 쪽에 놓여 있다. 책에 담긴 열두 개의 문항은 결국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관리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책을 읽으며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인간 본성과 조직 문화라는 다소 철학적인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린(Lean) 경영이라는 실무적 방법론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이 두 시선을 나란히 놓고 보면, 열두 가지 조건이 왜 동시에 매력적이면서도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인지가 뚜렷해진다.<br>먼저 생각해 본 것은 인간이 애초에 현대 조직 생활에 맞게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천 년에 걸친 수렵과 협력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간의 심리는 칸막이 사무실이나 프로젝트 일정, 끊임없이 바뀌는 팀 구성 같은 낯선 환경과 자연스럽게 충돌한다. 그래서 회사의 규정과 방침이 아무리 정교해도, 사람들은 결국 사회적 유대와 소속감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회사 정책과 인간 본성이 충돌할 때 언제나 후자가 이긴다는 저자들의 관찰에 깊이 공감해 진다.​이 관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좋은 관리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수치화하거나 계량화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매출이나 예산은 숫자로 관리할 수 있지만, 동료 간의 신뢰나 애정, 소속감 같은 것은 아무리 정교한 인사평가로도 완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결국 훌륭한 관리자란 사람의 마음이라는 모호한 영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오해와 조급함이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열두 가지 조건 중 특히 경청, 배려, 일관성, 후속 조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식적 태도들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설명해 준다.<br>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시하는 열두 가지 항목이 타당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렇다면 관리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문화와 인프라,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이 결과를 실제로 얻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는 것이 린(Lean) 경영 방식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 즉 기대치를 아는 것과 필요한 도구를 갖추는 것은 린 원칙을 적용한 업무 설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충족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를 명확히 알고, 작업 흐름 속에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시각적이고 단순한 피드백 체계는 품질 관리를 프로세스 자체의 산물로 만들며, 이는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조건, 즉 회사의 사명감과 동료들의 품질에 대한 헌신과도 직접 연결된다.<br>열 번째 조건인 "직장에 절친한 친구가 있다"는 명백히 경영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분류된다.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관리자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열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같은 층위에 있지 않으며, 어떤 것은 프로세스 설계로, 어떤 것은 오직 경영진의 솔선수범을 통해서만, 또 어떤 것은 애초에 관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열한 번째 조건처럼 인적자원 관리 프로세스와 밀접한 항목들은 결국 고위 경영진이 부하 직원을 선발하고 육성하고 솎아내는 방식에서 그 실천이 결정된다.​책을 읽으면, 열두 가지 조건은 단일한 실천 지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과제들이 뒤섞인 목록임이 알게된다. 어떤 항목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정서적 배려를 요구하고, 어떤 항목은 린 경영처럼 구체적인 프로세스 설계로 옮길 수 있으며, 또 어떤 항목은 애초에 관리자의 통제 범위 밖에 있다. 이 목록의 가치는 완벽한 실행 매뉴얼을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성과 조직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들을 거꾸로 추적해 그 이면의 관행을 역설계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br>결국 인간은 조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고 조직을 위해 진화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 그럼에도 사람을 고용한다는 일에 따르는 활력과 재능을 살려내려는 태도가 훌륭한 관리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상론은 노동의 강제적 성격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려는 노력이 재정적으로도, 그리고 그 이상으로도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적어도 일이 존재하는 한 계속 시험해 볼 가치가 있는 명제로 남는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8/cover150/89352151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6082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법으로 배우는 논술 - [법으로 배우는 논술 - 세상을 뒤흔든 사건을 읽고 쓰는 나만의 판결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3864</link><pubDate>Fri, 31 Jul 2026 1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38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0020&TPaperId=174238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5/99/coveroff/k8421300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0020&TPaperId=174238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법으로 배우는 논술 - 세상을 뒤흔든 사건을 읽고 쓰는 나만의 판결문</a><br/>곽한영 지음 / 해냄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문제에는 정답이 있다. 수학 문제는 풀이 과정이 맞으면 정확한 답이 나오고, 역사 시험은 사실관계만 정확히 암기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lt;법으로 배우는 논술&gt;에 실린 '미뇨넷호의 제비뽑기' 사건과 '뱅상 윔베르와 안락사' 사건등을 읽으면서 "정답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논술은 내 자신의 생각을 논리있게 이야기 해야 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은 정말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나만의 논리를 가지고 판결문을 생각하게 하는 책의 구성이 좋았다. <br>미뇨넷호 사건에서 더들리 선장은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가장 어리고 약한 견습 선원 파커를 살해하고, 그 시신으로 나머지 세 사람이 연명하여 살아남았다. 검사는 이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명백한 살인이라고 주장했고, 변호사는 "네 명이 모두 죽는 것보다 세 명이라도 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뱃사람들의 오랜 관행을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을 읽었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더들리 선장이 무죄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두 죽을 상황이었다면, 한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나머지가 사는 것이 더 나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사의 두 번째 주장을 읽으면서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사는 "제비뽑기라는 관행조차 지키지 않고, 더들리 선장이 임의로 가장 약한 사람을 골랐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이 사건의 진짜 문제가 단순히 "누군가는 죽어야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죽을지를 어떻게 정했는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공정한 제비뽑기를 통해 파커가 뽑혔다면 이 사건에 대한 나의 판단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 결과가 같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절차가 공정했는지에 따라 우리는 전혀 다른 도덕적 평가를 내리게 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또한 변호사가 계속 강조한 "사회적 관행"이라는 근거에도 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관행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과거에는 노예제나 인종차별도 오랜 관행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생존 본능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 없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 자체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었다. 다만 사형이라는 처벌 수위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하게 되었는데, 이는 세 번째 사건과도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에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br>인상 깊었던 사건은 뱅상 윔베르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뇨넷호 사건과 달리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동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전신마비 상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뱅상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요구했고, 그의 어머니와 담당 의사는 그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법을 어겼다. 이 사건에서 검사의 주장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나치의 T-4 작전을 언급한 대목이었다.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수십만 명의 장애인과 정신질환자가 학살당한 역사적 사실은, 안락사를 제도화했을 때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이 "강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결코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안락사를 허용하는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생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훨씬 큰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호사의 주장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뱅상은 스스로 손가락 하나로 힘겹게 타자를 쳐가며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고, 그의 가족들도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이는 미뇨넷호 사건의 파커와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파커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한 적이 없지만, 뱅상은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검사가 마지막 주장에서 "다수결로 결정하기 위해서도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논리를 그대로 뱅상 사건에 적용해 보면, 오히려 뱅상 본인의 명확한 동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 행위를 완전히 범죄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지 않고 검사가 기소 면제를 요청하여 마무리되었다는 뒷이야기를 읽으면서, 법이 모든 경우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고려가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br>두 사건을 함께 읽고 나서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생명은 원칙적으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동의의 유무"와 "절차의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뇨넷호 사건에서 파커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하지 않았고 제비뽑기라는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았기에 유죄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뱅상 윔베르 사건은 본인의 명확한 동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이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미뇨넷호 사건의 실제 판결에서 더들리 선장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결국 국민 여론에 힘입어 6개월 만에 가석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법의 원칙과 현실적인 정서 사이에서 사회가 어떻게든 절충점을 찾으려 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뱅상 윔베르 사건에서 검사가 스스로 기소 면제를 요청한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법은 하나의 원칙만으로 모든 사건을 재단할 수 없고, 구체적인 사정과 사회적 합의를 함께 고려하며 조금씩 움직여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br>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법과 정의를 다소 단순하게 생각했다. 법을 어기면 나쁜 것이고, 법을 지키면 옳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검사와 변호사가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전혀 다른 논리를 펼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하나의 사건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진실한 관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검사와 변호사 모두 나름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의 주장만 옳고 다른 쪽은 틀렸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었다. 또한 이 책은 나에게 "판단을 유보하지 않는 용기"와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동시에 요구했다. 책의 사건 설명 부분에서 강조하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해서 잠정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판단은 언제든 새로운 정보나 관점 앞에서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두 사건을 읽고 판단을 내려보면서, 나는 앞으로 사회의 여러 논쟁적 쟁점을 접할 때 성급하게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양쪽의 논리를 끝까지 들어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리고 그런 질문 앞에서도 회피하지 않고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판단을 내려보는 훈련이 왜 필요한지를,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논술을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 좋은 책일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5/99/cover150/k8421300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05991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 - [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59</link><pubDate>Sun, 26 Jul 2026 16: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412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off/k9921305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592&TPaperId=17412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쓰는 동안 조금씩 어른이 되었다</a><br/>라비니야 지음 / 모티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한동안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쓸 이야기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감정도 없는 하루가 반복될 때마다 노트북을 열었다가 다시 닫곤 했다. 오늘 하루도 어제와 비슷했으니, 굳이 적어둘 만한 게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조금씩 흔들렸다. 글쓰기란 대단한 사건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하루를 다시 한번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 쓸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내 하루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감정을 마주하는 일에 서툰 사람이었다. 화가 나거나 서운한 일이 있어도 '별일 아니야'라고 넘기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넘긴 감정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별것 아니라고 믿었던 하루하루가 사실은 별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는 꽤 늦게 알아차렸다.<br>글을 쓰는 시간이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문장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으로서의 글쓰기. 오늘 왜 기뻤는지, 무엇이 나를 답답하게 했는지를 한 줄이라도 적어보면, 그 감정은 더 이상 막연한 안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문장이 된다. 문장이 되는 순간 감정은 조금 더 다루기 쉬워진다. 나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첫 문장 앞에서 자주 멈춰 섰다. 완벽한 시작을 찾으려다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잘 쓴 글보다 솔직한 글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이라도, 그 안에 진짜 내 마음이 담겨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잘 쓰려는 태도보다 정직하게 쓰려는 태도가 먼저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br>읽는 일과 쓰는 일이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도 새롭게 느낀 부분이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요약하듯 정리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에 걸리는 문장 하나를 오래 붙잡고, 그것이 왜 나에게 와닿았는지, 내 경험 어디쯤과 맞닿아 있는지를 되짚어보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책 이야기를 쓰려던 글이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 있다. 아마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좋은 문장은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작동해서,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꺼내주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낀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들여다볼 줄 알고, 오늘의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어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 글쓰기가 꽤 쓸모 있는 도구가 되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기록은 나를 다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br>요즘 SNS를 보다 보면 다들 반짝이는 순간만 골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조급해질 때가 있다. 남들과 속도를 비교하다 보면 내 하루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화려한 기록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남기는 소박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한 줄이라도 내 마음을 적어두는 습관이,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지켜내는 작은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거창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 대신, 아주 작은 습관 하나를 세워보려 한다. 매일 같은 시간, 오늘 있었던 일보다 오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세 줄 정도 적어보는 것. 잘 써지는 날도, 한 문장도 나아가지 못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 자체를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문장의 완성도보다 그 문장을 남겼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br>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독이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서툴고 투박한 문장이라도 괜찮다. 오늘의 마음을 오래 바라보고, 그것을 솔직하게 적어내는 시간들이 쌓이면, 언젠가 그 기록들이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쓰는 동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45/cover150/k9921305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8455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교양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지식 - [교양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지식 -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짚어주는 진짜 돈의 흐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44</link><pubDate>Sun, 26 Jul 2026 15: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714&TPaperId=174127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8/87/coveroff/k5521307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130714&TPaperId=174127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양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지식 -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짚어주는 진짜 돈의 흐름</a><br/>SBS 교양이를 부탁해.한동훈 엮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오랫동안 경제 뉴스를 '나와 상관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여겨 왔다.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미국 기준금리가 몇 퍼센트가 되든, 그것은 신문 한 귀퉁이를 채우는 숫자일 뿐 내 하루하루의 삶과는 동떨어진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lt;교양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지식&gt;를 읽으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깨달았다.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이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의 쓰레기봉투 사재기로 이어지고,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소식이 소고깃값을 흔든다는 대목에서 나는 잠시 멈춰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의 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세계는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br>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경제를 거창한 이론이나 복잡한 수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관세전쟁, 환율전쟁, 통화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 미중 패권 다툼, 희토류, 일본의 승부수, AI가 불러온 위기와 기회를 거쳐 한국의 반도체와 방산, 바이오 산업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처음에는 서로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지는 경험은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나는 이 구성 자체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 공부의 방식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개별 사건을 암기하듯 아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짚어낼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경제 해상도'를 높이는 길이라는 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환율과 통화전쟁을 국가 간의 '체급 차이'로 설명한 대목이었다. 나는 그동안 환율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저 시장의 수요와 공급, 혹은 중앙은행의 정책 발표에 따른 단기적 반응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근본에는 두 나라의 경제력 격차라는 훨씬 크고 구조적인 힘이 자리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으니, 왜 한국은행이 물가와 고환율을 동시에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신중하게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지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동시에 그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낼지 몰라도 내수 경제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경제 정책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당장의 처방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제의 체급 자체를 키우는 근본적인 체력 단련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br>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다룬 부분에서는 부끄러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 역시 뉴스에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달러에 가치를 고정한 코인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넘어, 그것이 미국이 무너져 가는 달러 중심 질서를 다시 자국에 유리하게 짜기 위한 전략적 도구라는 설명을 읽고 나니, 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는지, 그리고 왜 미국이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오랫동안 쌓아 두려 하는지가 하나의 논리로 이어졌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결국 '이해의 깊이'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무엇인지도 모른 채 뛰어드는 순간, 아무리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있어도 그것은 투기에 지나지 않는다.<br>AI가 불러온 세계경제의 재편 이야기 역시 나에게는 낯설지만 절박하게 다가왔다. 데이터센터가 더 이상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고,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부채를 감수하면서까지 연산 능력을 확보하려 애쓰는 이유가 미래의 부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읽으며, 지금이 기술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라 부가 재편되는 거대한 전환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동시에 이 흐름이 언제 꺾일지 모른다는 경고, 즉 레버리지에 기댄 시장은 아주 작은 신호에도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은, 지금의 열기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지금 나는 파도 위에 있는가, 아니면 해일 앞에 서 있는가 하는 물음은,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br>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개별 지식이 아니라 태도였다. 경제를 안다는 것은 주식 종목이나 투자 타이밍을 콕 집어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판 전체를 조망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관세, 환율, 통화, 자원, 기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니, 저녁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환율이나 반도체, 스테이블코인 소식이 예전과는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나와 무관한 어른들의 숫자놀음이 아니라, 내가 살아갈 세상의 규칙을 미리 알려 주는 신호였다.​앞으로 경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단편적인 사실 하나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디로 이어질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려 한다. 세상은 앞으로도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변동성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길 것이다. 책이 말하듯, 경제지식은 이제 교양을 넘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무기다. 나는 그 무기를 조금씩이라도 벼려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8/87/cover150/k5521307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8875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주얼 의과학사 - [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36</link><pubDate>Sun, 26 Jul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0502&TPaperId=174127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00/45/coveroff/k0021305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130502&TPaperId=174127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a><br/>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학의 역사가 사실은 '용기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몬디노가 교회의 금기를 무릅쓰고 시체를 열었을 때부터, 카할이 스페인이라는 변방에서 홀로 신경세포를 그렸을 때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대의 권위와 상식을 거스르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의 본질은 대단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몬디노가 남긴 문구 videre ad sensum, 즉 '직접 보고 이해하라'는 말은 그래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처럼 읽힌다.<br>베살리우스의 이야기는 그 태도가 어떻게 제도를 뒤엎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조수의 손에서 해부용 메스를 빼앗아 직접 시신을 열었을 때, 중세 내내 분리되어 있던 '읽는 머리'와 '자르는 손'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권위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누군가 견디지 못하고 메워버릴 때 온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갈레노스의 오류는 1,40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게 아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확인할 용기, 혹은 확인해도 된다는 허락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하비의 순환 이론에서는 조금 다른 종류의 용기를 본다. 그는 관찰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심장이 한 시간에 내보내는 혈액의 양을 계산해 갈레노스의 이론이 산술적으로 불가능함을 증명해냈다. "나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해부했다"는 그의 말은, 관찰에 숫자라는 잣대를 더했을 때 비로소 낡은 권위가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비의 계산 자체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추론은 훌륭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과학이란 처음부터 정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틀릴 수 있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태도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br>데카르트와 의리학파를 지나며 이 책은 균형 잡힌 시선을 잃지 않는다. 몸을 기계로, 숫자로 환원하려던 시도는 근육과 혈관을 설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통증과 감정, 질병의 경과 앞에서는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산토리오가 30년간 저울 위에서 살았던 집착, 보렐리가 근육을 지렛대로 계산했던 시도는 당대에는 "그래서 환자에게 무엇을 해주면 되느냐"는 냉소적인 질문 앞에 무력했다. 그러나 이 실패들이 결국 오늘날 중환자실의 모니터와 웨어러블 기기로 이어졌다는 서술을 보며, 나는 과학의 실패란 종종 시대를 앞서간 질문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때로는 시점의 문제였던 것이다.​책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한 대목은 제멜바이스였다. 그는 손 씻기라는, 지금이라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 하나로 산모 사망률을 10퍼센트대에서 1~2퍼센트대로 낮췄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인정이 아니라 해고와 조롱, 그리고 정신병원에서의 죽음이었다. 데이터는 이미 답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의사의 손이 산모를 죽인다니 말도 안 된다"는 자존심이 그 데이터를 가로막았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의과학사가 단순히 발견의 연속이 아니라, 발견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이 이긴 것은 진실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코흐와 리스터라는 후속 세대가 같은 진실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증명해냈기 때문이었다. 옳은 답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때로 한 사람의 생애로도 부족하다.<br>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역시 인상적이다. 그는 세균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지도 위에 환자 수를 표시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오염된 펌프 하나를 정확히 짚어냈다. 이는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패턴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만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리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은 반드시 같은 속도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스노는 몸소 증명했다.​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과 카할의 신경세포 스케치를 나란히 읽으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란트슈타이너는 화려한 실험 대신 응집 여부를 기록한 표만으로 ABO 혈액형이라는 규칙을 찾아냈고, 카할은 과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지닌 손으로 신경세포라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그려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발견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 인상 깊다. 위대함은 반드시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다.<br>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권위에서 관찰로, 관찰에서 측정으로, 측정에서 다시 겸손으로 이어지는 순환이다. 파레가 "나는 단지 붕대를 감았을 뿐, 신이 그를 낫게 하셨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전진한 순간들은 언제나 인간이 자연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과 맞닿아 있었다. 갈레노스의 권위를 무너뜨린 것은 더 큰 권위가 아니라, 그저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방대한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재활 로봇이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 역시, 결국은 "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산토리오와 보렐리의 질문이 형태를 바꾸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책을 다 읽고 나니, 의과학사는 '누가 먼저 의심했는가'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의심은 언제나 대가를 치렀다. 몬디노는 금기를 깨야 했고, 베살리우스는 평생 비난에 시달렸으며, 제멜바이스는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손 씻기, 혈액형 검사, 마취와 소독은 모두 누군가 자신의 시대와 불화한 결과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도, 언젠가 새로운 몬디노와 제멜바이스가 다시 열어야 할 금기가 남아 있지 않을까.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결국 그것이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00/45/cover150/k0021305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00453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 [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 여행서 출판사 사람들의 유럽 소도시 여행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28</link><pubDate>Sun, 26 Jul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08&TPaperId=174127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8/89/coveroff/k1521301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108&TPaperId=174127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 여행서 출판사 사람들의 유럽 소도시 여행기</a><br/>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자꾸만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낯선 유럽의 소도시들, 아헨과 몽샤우, 브뤼셀과 로테르담을 걸어가는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내 삶에도 그런 '경계'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기보다 길 위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려 했던 그 여정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아마 나 역시 어딘가에서 비슷한 불안과 결핍을, 그리고 그것을 견뎌내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책 속의 저자는 10년간 작은 회사를 지켜온 사람이었다. 정부 지원도, 외주도 없이 오로지 자기 힘으로 버텨온 시간들. 그 안에서 그는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성공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실패는 감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한다. 자주 넘어지고 있다면 오히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작은 성공은 늘 그림자처럼 등 뒤에 숨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매일 흔들리던 시절이. 그때는 그 흔들림이 부끄러웠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br>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나만의 여행을, 나만의 '경계 도시'를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아헨이 저자에게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면, 나에게는 어떤 도시가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의 소도시들을 떠올려본다. 이름조차 낯설고, 유명 관광지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곳들. 그런 곳에서라면 오히려 나 자신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산다. 낯선 곳으로 떠나야만 비로소 내가 어디까지 걸어왔는지, 무엇을 견뎌왔는지 또렷하게 보이는 순간이 온다.<br>나에게도 사라진 '10테라바이트의 영상'과 같은 순간이 있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무언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던 기억. 그때는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무너짐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자리였다. 저자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출판사를 세웠듯, 나 역시 무너진 자리에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나를 다시 쌓아 올렸다. 완성되지 않은 기반은 언제든 소실될 수 있다는 말처럼, 나의 기반도 여전히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제는 그 불완전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만약 내가 정말로 유럽의 소도시들을 걷는다면, 나는 어떤 도시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상상해본다. 아침 일찍 도착한 작은 마을의 광장,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 낯선 언어로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그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오래된 성당, 강가의 벤치, 이름 모를 카페. 그런 우연들이 사실은 필연이라는 말을 이 책에서 읽었다. 묵묵히 걷는 자의 발끝에만 걸리는 필연. 나도 그런 우연을, 그런 필연을 만나고 싶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에 더 진짜에 가까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걷고 싶다.<br>책이 특별한 이유는 여행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지도를 고집하고 필름 카메라로 기록을 남기는 저자의 선택은,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 역시 언젠가부터 남들이 정해둔 속도와 방향에 맞추려 애써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속도와 나만의 지도를 가져도 괜찮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골목, 남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br>언젠가 나도 배낭 하나를 메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로 떠나고 싶다.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아마도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10년의 생존기를 유럽의 소도시 곳곳에 포개어 놓았듯, 나도 언젠가 나만의 생존기를 어느 낯선 골목길에 조용히 남겨두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묵묵히 걸었던 흔적이면 충분하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나도 목적지를 묻지 않고 떠나보겠다고.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 자신과 마주하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8/89/cover150/k152130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8890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탈리아나 - [이탈리아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13</link><pubDate>Sun, 26 Jul 2026 15: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694&TPaperId=174127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6/82/coveroff/k5221306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694&TPaperId=174127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탈리아나</a><br/>주세페 카토첼라 지음, 이소영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세페 카토첼라의 이탈리아나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 것은, 이 소설이 다루는 시대가 우리가 흔히 배우는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와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탈리아 통일사는 대개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단, 사보이아 왕가의 정치적 결단, 그리고 하나가 된 국가라는 서사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마리아 올리베리오, 훗날 '치칠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여성의 삶은 그 매끈한 서사의 뒷면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통일이라는 사건이 칼라브리아 산골의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는 새로운 지배자의 등장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지배 구조에 맞서 싸운 이들이 훗날 역사책에는 '브리간테', 즉 산적이나 도적으로만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역사라는 것이 늘 승자의 언어로 쓰인다는 오래된 진실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지점, 승자의 언어가 지워버린 자리에 한 여성의 이름을 다시 새겨 넣으려 한다는 점이다. 마리아가 남편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브리간테가 되고, 그 세계 안에서 다시 '치칠라'라는 새 이름을 얻는 장면은 단순한 신분 위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 즉 가난한 여성에게 허락된 유일한 삶의 궤적,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노동으로 몸이 상하고, 남편의 뜻에 순응하는 삶을 벗어나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되는 선택이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저자가 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br>책이 전하는 마리아의 어린 시절은 낭만적으로 미화되지 않는다. 언니 테레사의 존재조차 벽난로 옆 벽에 그려진 몇 개의 표시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는 대목, 그리고 입양이라는 단어가 아이에게 공포로 다가왔다는 서술은 가난이 가족 관계마저 재구성해버리는 폭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먹일 입이 너무 많아서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했다. 이런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쉽게 감상에 젖기보다, 가난이란 것이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이 소설이 가난 속에서도 존엄과 지혜를 잃지 않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산속 마을에서 홀로 살기를 택한 할머니 티누차는 가진 것 없이도 자유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인물이다. 지배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가난해도 마음이 가볍다는 그녀의 삶의 태도는, 물질적 풍요와 자유가 반드시 함께 오는 것은 아니라는 역설을 담고 있다. 이 역설은 훗날 마리아가 산으로 들어가는 선택과 은밀하게 이어진다. 그녀 역시 물질적으로는 더 궁핍해졌을지 몰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처음으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br>책에서 가장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은 마리아와 피에트로 모나코의 관계다. 숯쟁이였던 피에트로는 애국심에 불타 부르봉 왕가의 군인이 되었다가 다시 가리발디를 흠모하는 인물로, 전쟁이 그의 몸과 정신에 새긴 상처는 결국 그를 아내에게 폭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그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함께 나눈 이상과 사랑의 기억 앞에서 그의 거친 면모를 용서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오래 생각했다. 소설이 이 관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전쟁과 폭력의 시대가 한 개인의 사랑조차 어떻게 변질시키는지, 그리고 그런 관계 안에 놓인 여성이 감정적으로 얼마나 복잡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에 가깝다. 사랑과 상처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공존이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은 굳이 설명하지 않고 다만 드러낸다. 우리는 그 불편함을 그대로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이 진짜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실제 삶은 언제나 이야기보다 복잡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이다.<br>산으로 들어간 이후 마리아 곁을 지키는 길들여진 늑대 바카의 존재는 이 소설에서 가장 시적인 장치로 보인다. 인간은 배신할 수 있어도 늑대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치칠라가 이제 인간 사회의 질서와 신뢰 체계 바깥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이것은 그녀가 완전히 인간성을 잃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사회가 강요하는 위선적인 규범, 겉으로는 질서와 법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체제로부터 벗어나 더 순수한 형태의 신뢰와 연대를 늑대에게서 찾았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치칠라가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고, 심지어 알렉상드르 뒤마의 글에까지 등장할 만큼 유명해졌다는 서평의 서술은 흥미롭다. 한 시대의 지배 질서에 저항한 여성이 동시에 대중적 신화가 되어버리는 이 아이러니는, 우리가 오늘날에도 종종 목격하는 현상과 닮아 있다. 체제에 저항하는 개인은 그 저항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소비 가능한 이야기, 낭만화된 전설로 소비되기 쉽다. 카토첼라는 그런 신화화의 이면에 있던 한 인간의 두려움과 고독, 살아남고자 하는 절박한 의지를 함께 그려냄으로써 그 낭만화에 균형을 잡으려 한 것처럼 보인다.<br>치칠라의 독백, 죽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순간과 자신들이 한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언젠가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를 압축해 보여준다.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일은 하나의 이름, 하나의 삶을 역사의 침묵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일이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잊히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대한 역사나 사회 구조 앞에서 개인의 선택은 종종 사소하거나 무력해 보이지만,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든다. 마리아가 치칠라가 되기로 한 선택, 가난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려 했던 티누차 할머니의 선택, 그리고 폭력적인 사랑 앞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던 여러 인물들의 선택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를 향해 나아간 몸짓들이었다. 지배당하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19세기 칼라브리아의 산속에서도,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이 절실한 것이니 말이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6/82/cover150/k5221306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6822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숲과 문명 - [숲과 문명 - 숲이 물러난 자리에 새겨진 5,000년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03</link><pubDate>Sun, 26 Jul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127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0906&TPaperId=174127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26/coveroff/k6121309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12130906&TPaperId=174127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숲과 문명 - 숲이 물러난 자리에 새겨진 5,000년의 기록</a><br/>존 펄린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가 얼마나 당연하게 나무와 숲을 배경으로만 여겨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도시의 마천루와 첨단 기술, 거대한 문명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철과 콘크리트, 전기와 에너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책이 지적하듯, 인류 문명의 뿌리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었다. 아시리아, 중국, 미케네, 그리스와 로마,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목재 공급 없이는 어떤 위대한 문명도 등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br>나무는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었다. 추운 기후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불도,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던 방식도, 모래를 녹여 유리를 만들던 기술도 모두 목재에서 비롯된 열에 의존했다. 수레와 마차, 카누와 선박에 이르는 운송 수단 역시 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이는 탐험과 무역, 제조와 전쟁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화석 연료 시대의 개막을 알린 대규모 석탄 채굴조차 갱도를 지탱하는 목재 지지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사실들을 접하고 나니, 우리가 흔히 "기술 혁명의 영웅"으로 떠올리는 것들의 목록에 나무가 빠져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기이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br>그러나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예찬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 즉 인류가 자신을 지탱해준 숲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파괴해왔는가 하는 역사가 훨씬 더 무겁게 다가온다. 고대 지중해에서만 구리와 철을 제련하는 데 10만 제곱마일에 달하는 숲이 소모되었고, 가정 난방과 취사에 쓰인 목재까지 더하면 그 규모는 두 배에 이른다고 한다.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는 유리 제품에 대한 수요 때문에 용광로가 밤낮없이 타올랐다는 대목에서는,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파괴의 패턴이 특정 문명이나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이든 인도든 메소포타미아든, 심지어 오늘날의 미국이든, 위대한 문명은 예외 없이 주변 숲을 정복하고 황무지를 길들인 것을 하나의 성취로 자축해왔다. <br>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마저 "죽음의 무게로 세상을 비워내어" 지구가 숨 돌릴 틈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해석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 습성이 얼마나 오래되고 뿌리 깊은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조지 산타야나의 그 유명한 경구,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미국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영국 왕실이 대형 목재를 왕립 해군의 전유물로 삼으려 했을 때, 식민지 주민들이 온갖 방법으로 이를 회피했던 일화는 흥미롭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미국 독립 혁명의 역사는 인지세와 차 사건에 집중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8세기 전반에 걸친 이러한 목재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혁명의 토양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결국 숲을 둘러싼 갈등은 단지 환경사의 일부가 아니라, 정치사와 경제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축이었던 셈이다.<br>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뿐 아니라 지구의 기온을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 나뭇잎에서 방출되는 수분이 증발하며 열을 흡수한다. 아마존 유역의 숲 지붕이 사라지면 계절 기온이 최대 섭씨 41도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경고에 주목해 본다. 책은 폭풍과 홍수, 산불이라는 지난 10년의 재난들을 겪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경고흫 한다. 책은 재앙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숲의 파괴와 문명의 몰락이 그저 은유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인과관계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경고다. 우리는 흔히 기후 위기를 미래의 문제, 혹은 최근에야 발견된 새로운 위협으로 여기지만, 책이 보여주듯 숲의 남벌과 그로 인한 문명의 쇠퇴는 인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오래된 패턴이다. 다만 그 규모와 속도가 산업화 이후 비교할 수 없이 커졌을 뿐이다. 결국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다. 문명은 숲 위에 세워졌고, 숲이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진 모든 것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문명을 일구어 온 인류가, 이제는 그 그늘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은 후 내게 남은 진짜 질문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26/cover150/k6121309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260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직도 나를 모르는 나에게 - [아직도 나를 모르는 나에게 - 프로이트가 건넨 낯선 마음의 문장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9897</link><pubDate>Fri, 24 Jul 2026 2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98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010&TPaperId=174098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36/coveroff/k0121300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010&TPaperId=174098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직도 나를 모르는 나에게 - 프로이트가 건넨 낯선 마음의 문장들</a><br/>민유하 지음, 지크문트 프로이트 원작 / 리프레시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종종 낡은 학문으로 취급된다.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이 발전하면서 무의식이니 이드니 하는 개념은 검증되지 않은 은유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정신분석의 학문적 지위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그 언어는 오히려 우리 일상 속으로 더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사실이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 같아", "그건 방어기제야", "나 자신도 몰랐던 욕망이었나 봐" 같은 말들은 이제 전문 용어가 아니라 평범한 대화의 일부가 되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학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가 던진 질문이 시대를 초월해 계속해서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br>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이해"와 "자기 관리"를 강조한다. 자기계발서는 목표를 세우고 습관을 관리하면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SNS 프로필은 각자가 자신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편집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듯 보여준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다"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정면으로 균열을 낸다. 우리는 스스로를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움직인 감정과 충동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것을 그럴듯한 서사로 정리하는 존재에 더 가깝다. 이 진단은 백 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에는 억압된 마음이 꿈이나 말실수, 증상을 통해 우회적으로 돌아왔다. 오늘날에는 그 우회로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우리의 클릭, 체류 시간, 검색 기록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정하기도 전에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데이터로 먼저 포착한다. 사람들은 종종 추천 피드를 보고 나서야 "내가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나"라고 놀란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의 뒤늦음 즉, 의지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마음의 사건을 나중에 이해하는 구조가 기술적으로 증폭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 뒤늦은 해석을 개인의 내면에서 수행했다면, 지금은 플랫폼이 그 해석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되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취향이라 믿는 것, 정치적 견해라 믿는 것, 소비 습관이라 믿는 것의 상당 부분이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적으로 강화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이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이 나의 관심을 대신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하는 일이 되었다.<br>프로이트는 억압이 삭제가 아니라 보류이며, 억압된 것은 반드시 증상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고 보았다. 이 통찰은 오늘날 번아웃과 감정노동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많은 직장인들은 부당함이나 분노, 억울함을 그 자리에서 표현하지 못한 채 "프로답게" 웃으며 넘긴다. 감정을 누르는 일이 반복되면, 그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만성적인 피로, 이유 없는 무기력, 사소한 일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되돌아온다. 번아웃을 단순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긴 것"으로만 설명하면 이 현상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그 이면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노동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프로이트적 통찰을 사회학적으로 번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짜 감정과 요구되는 감정 사이의 간극을 매일 메우며 살아가고, 그 간극이 벌어질수록 몸과 마음은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낸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을 더 완벽하게 억누르는 기술이 아니라, 그 증상이 무엇을 대신 말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태도다. 이는 정신분석이 임상 밖에서도 여전히 실천적 힘을 갖는 지점이다.<br>현대사회는 승화의 개념을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안과 결핍,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일과 성취, 자기계발이라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형태로 바꾸어내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는 분명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의 긍정적 측면 즉, 충동의 에너지가 창조와 헌신의 방향으로 전환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승화가 지나치게 도구화될 때, 즉 쉼 없는 성과와 생산성만이 유일한 승화의 통로로 강요될 때, 그 이면에는 프로이트가 후기에 주목한 죽음충동적 요소 즉, 자기 자신을 소진시키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하는 힘가 함께 작동할 수 있다.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일상어가 될 정도로 자기 착취가 성실함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승화와 자기파괴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흐려지는지를 목격하고 있다.<br>오늘날 프로이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의 이론을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현대사회의 자신감에 질문을 던지는 일에 가깝다. 프로이트는 우리에게 손쉬운 자기 이해 대신, 끈질기고 불편한 질문을 남겼다. 나는 왜 이 감정을 유독 부끄러워하는가, 나는 무엇을 이미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가, 나의 분노와 회피와 습관 뒤에는 어떤 오래된 마음이 숨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알고리즘이 우리의 욕망을 대신 읽어주고, 자기계발 담론이 손쉬운 해답을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프로이트가 남긴 것은 완결된 답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태도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36/cover150/k0121300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8363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시간의 끝 - [시간의 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6289</link><pubDate>Wed, 22 Jul 2026 20: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62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109&TPaperId=174062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32/coveroff/k0921301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109&TPaperId=174062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의 끝</a><br/>김성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은 달이 파괴된 세계, 사교도들이 신도를 모으고 괴물의 목격담이 도시를 떠도는 종말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진짜로 다루는 공포는 괴물이나 재난 자체가 아니다. 더 근원적인 공포는 '틸링해스트 수식'이라는, 우리가 사는 시간과 겹쳐진 또 다른 시간, 이른바 '2차 시간'을 계산해낼 수 있다는 설정에서 나온다. 시간이 더 이상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정식으로 환원되고, 그 방정식을 풀면 세계의 끝이 언제 어떻게 오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 형사, 수학자, 교주라는 세 인물이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수식을 붙들고 씨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간이 계산 가능한 대상이 되는 순간, 운명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산출값이 된다. 이 설정이 섬듯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어떤 감각과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시간과 운명을 실제로 계산해내는 기술, 즉 생성형 인공지능과 함께 살고 있다. 물론 LLM이 '2차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LLM이 하는 일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언제나 '다음에 올 것'을 계산하는 일이다. 다음 단어, 다음 문장, 다음 선택지의 확률을 계산해서 가장 그럴듯한 미래를 제시하는 것. 소설 속 수식이 세계의 종말이라는 미래를 계산해내듯, LLM은 텍스트의 다음 순간이라는 작은 미래를 끊임없이 계산해낸다. 규모와 의미는 다르지만, '미래를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발상 자체는 낯설지 않다.전통적으로 시간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물리적 시간, 즉 시계로 측정되고 우주의 법칙에 따라 균질하게 흐르는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체험적 시간, 즉 기다림과 후회와 그리움 속에서 늘어지거나 압축되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시간의 끝이 그리는 '2차 시간'은 이 둘과는 또 다른 세 번째 시간이다. 그것은 계산 가능한 시간, 수식으로 환원되어 예측과 조작의 대상이 되는 시간이다. 소설 속 지호가 칠판 앞에 서서 근거 없는 직감만으로 식을 도출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수식을 '풀어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의 직관과 감으로 식을 '지어내면서' 답에 다가간다. 계산이 계산을 넘어서 거의 주술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생성형 AI가 다루는 시간도 이와 비슷한 역설을 품고 있다. LLM은 방대한 과거의 텍스트, 즉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을 재료로 삼아 다음에 올 것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과정은 엄밀히 말하면 미래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패턴을 정교하게 반복하고 재조합하는 것에 가깝다. LLM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매 순간의 생성은 그 자체로 완결된 계산이며, 어제와 오늘이 어떤 인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체험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결과물을 보면서 마치 미래가 예측된 것처럼, 마치 다음에 무엇이 올지 이미 알고 있는 존재를 마주한 것처럼 느낀다. 소설 속 사교도들이 수식 하나로 세계의 끝을 '안다'고 믿듯이, 우리도 종종 AI의 그럴듯한 답변 앞에서 그것이 미래를 정말로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계산된 확률을 예지로 오인하는 것, 이것이 이 시대 시간 감각의 새로운 함정이다.소설은 우리 시대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시간이 수식이 되고, 운명이 산출값이 되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두 갈래 길로 나뉜다. 하나는 사교도들처럼 계산된 결과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그것을 숭배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수영과 지호처럼 계산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질문하고 저항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살아내는 길이다. 생성형 AI가 시간과 운명을 계산해내는 도구로서 점점 더 정교해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산을 부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계산되지 않는 부분을 알아보는 눈이라고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다음 문장을, 그럴듯한 다음 선택지를 제시한다 해도,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지킬지는 여전히 계산 밖의 영역이다. 시간은 흐르는 동시에 계산되고, 운명은 정해지는 동시에 걸어가는 방식으로 다시 쓰인다. 흥미롭게 읽었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9/32/cover150/k092130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9325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 -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 - 종양내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암 극복 전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6281</link><pubDate>Wed, 22 Jul 2026 2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062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0192&TPaperId=174062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7/7/coveroff/k9421301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130192&TPaperId=174062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 - 종양내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암 극복 전략</a><br/>문용화.김슬기 지음 / 비타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늘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뉴스에서 누군가의 투병 소식을 들을 때도, 주변 지인이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암은 나에게 오랫동안 "특별히 운이 나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재앙" 같은 것이었다.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거나, 나쁜 생활 습관을 오래 방치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일종의 벌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lt;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비밀&gt;을 소개하는 두 편의 서평을 읽으면서, 그 오래된 믿음이 얼마나 근거 없는 편견이었는지를 깨달았다.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대목은 암이 생기는 원인을 노화, 유전, 그리고 우연이라는 세 가지로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동안 나는 암을 순전히 개인의 잘못이나 관리 소홀의 결과로만 생각해왔다. 그래서 암에 걸린 사람을 보면 은연중에 "뭘 잘못 먹었길래", "왜 관리를 안 했길래" 하는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포는 우리 몸속에서 매일같이 변이를 일으키고, 그중 상당수는 면역 시스템이 알아서 처리하지만 어느 순간 그 균형이 무너지면서 암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을 읽으니, 암을 대하는 나의 태도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서평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의사 부부의 일화, 그러니까 건강식품을 열심히 챙겨 먹던 의사가 정작 암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무리 철저히 관리해도 피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몫이 바로 '우연'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암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 가벼워졌다. 암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 말 한마디가 이렇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그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수술 후에도 재발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 이른바 '미세잔존암'이라는 개념이었다. 나는 그동안 암 수술이 끝나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암세포가 남아 있을 수 있고, 그것이 훗날 재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접하니, 의료진이 '완치'라는 단어 대신 '관해'라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이유도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이것은 의사들이 희망을 주지 않으려는 냉정함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와 가족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후의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 두렵고, 알면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을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실감했다.한편 암 예방에 관한 이야기들은 새삼 당연하면서도 뜨끔하게 다가왔다. 채소와 과일, 통곡물 중심의 식습관, 꾸준한 운동, 스트레스와 수면 관리가 암 예방의 핵심이라는 이야기는 사실 누구나 익히 들어본 조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을 단순한 권장 사항이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체적인 기제로 설명한다고 한다. DNA 자체는 타고나는 것이라 바꿀 수 없지만, 그 유전자를 켜고 끄는 스위치는 생활 습관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적 설명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오늘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이 신약만큼 강력한 치료제라는 표현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항진되면 면역 기능이 무너진다는 설명 역시, 마음의 상태와 몸의 건강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결국 건강이란 거창한 비법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작은 선택들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무엇보다 가장 마음을 울린 부분은 실제로 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3기 유방암을 진단받고 무기력함을 떨쳐내며 운동을 시작한 사람, 4기 전립선암 진단 이후에도 7년을 꾸준한 습관으로 버텨낸 사람, 딸의 결혼식을 목표로 삼아 4기 난소암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몇 번이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두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 사람들이었다는 설명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삶은 결국 재능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아울러 환자가 스스로 질문하고 기록하며 치료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 결과가 실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암 치료는 이제 그저 버티는 인내의 영역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의 건강 문해력이 생존율을 바꾸는 적극적인 영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책이 다루는 24가지의 실용적인 질문들, 이를테면 고기나 커피, 영양제나 한약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부분도 의미가 크다고 느꼈다.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그 정보들 사이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과장된 정보들이 환자와 가족을 얼마나 흔들어 놓는지를 생각하면, 전문가의 정확하고 담백한 설명 하나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될 수 있는지 짐작이 간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암에 대한 나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의 나는 암이라는 단어 앞에서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주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제대로 알지 못해서 두려운 것이지, 암 자체가 무조건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암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닥치는 재앙이 아니라 교통사고처럼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평소의 준비와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는 역설을 이해하게 되었다.돌이켜보면 나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귀찮음이 앞섰고, 운동은 늘 다음으로 미루는 일이었다. 스트레스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그저 흘려듣는 조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책을 소개한 두 편의 글을 읽으며, 건강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습관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이나 가족이 비슷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예전처럼 무작정 두려워하며 주저앉기보다는 정확히 이해하고 침착하게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이 특별한 기적이나 신비로운 치료법이 아니라, 희망을 놓지 않는 마음과 생활 습관의 작은 변화,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비단 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삶의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결국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거창한 각오가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작은 선택들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7/7/cover150/k9421301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7071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 - [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 - 숫자 뒤에 숨은 기업가치를 읽어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68</link><pubDate>Sat, 18 Jul 2026 15: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0907&TPaperId=173984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9/coveroff/k2821309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0907&TPaperId=173984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 - 숫자 뒤에 숨은 기업가치를 읽어라</a><br/>이재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식 계좌를 처음 개설하던 날을 떠올려본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화면 속 숫자들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오르내렸고, 나는 그 흐름에 올라타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은 것은, 시장은 기대를 먹고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변동성은 일상이었고, 손실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찾아왔다. 주식 투자 인구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실시간으로 공시를 열람하고, 해외 투자까지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다. 정보는 평등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성과는 여전히 시장 평균을 밑돈다. 매매가 잦을수록 수익률은 오히려 나빠지는 현상이 실증 데이터로 반복해서 확인된다. 왜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랫동안 흘려보냈다. &lt;재무제표 밖 주식 투자&gt;를 읽으며 비로소 그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했다.<br>학창 시절, 성적표는 이미 끝난 결과였다. 고치거나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재무제표를 그렇게 대해왔다. 매출액이 늘었으면 좋은 기업, 영업이익이 줄었으면 나쁜 기업. 단순하고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저자 이재준은 이 관점 자체를 뒤집는다. 재무제표의 숫자는 '이미 끝난 기록'이 아니라, 그 숫자를 만들어낸 경영진의 전략과 의도, 그리고 기업이 처한 실제 상황이 응축된 '전략서'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매출이 급등한 기업이 있다면, 그 이 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진짜 수요가 늘어난 것인가, 아니면 채널에 재고를 밀어 넣은 것인가. 영업이익률이 개선되었다면, 원가 절감 덕분인가, 일회성 이익이 포함된 것인가. 현금흐름표상 잉여현금흐름이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도, 대규모 설비투자 사이클이 진행 중이라면 그 수치는 일시적 안도에 불과할 수 있다. 네이버의 사례처럼, AI 인프라 투자 구간에서 의 FCF 변동성은 숫자 하나만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재무제표를 더 열심히 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를 읽는 방식 자체를 바꾸라는 요청이다. 손익계산서(IS)와 재무상태표(BS)의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현금흐름의 방향과 속도를 읽으며, 공시 이면에 담긴 자금 조달의 의도까지 해석해야 한다. 유상증자가 발표되었을 때, 그것이 성장을 위한 투자인지, 부채를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는 자금의 용도를 끝까지 추적해야만 알 수 있다. 전환사채(CB) 역시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자금 조달 수단이지만, 그 뒤에는 경영진의 주가 전망과 자본 조달 전략이 숨어 있다.<br>"탐방의 힘은 재무제표의 숫자와 현장에서 관찰한 신호를 연결할 때 드러난다." 재무제표만 보면 이상 징후는 읽히지만, 그것이 실제 위기인지 일시적 노이즈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반대로 현장만 보면 직관적인 인상에 머물고 만다.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기업의 실제 상태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이 공장을 방문하고 IR 담당자를 만나며 경영진의 뉘앙스를 재무 숫자와 교차 검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출처가 특정 기업 하나에 집중된 구조적 취약점, 수면 아래에서 진행 중인 특허 분쟁, 주요 고객의 재고 조정 신호 - 이런 것들은 공시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직접 묻고, 관찰하고, 기록해야 드러난다. 물론 개인투자자가 기업 탐방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것을 '기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책이 제시하는 90일 완성 프로젝트는 그 장벽을 현실적인 단계로 나눈다. IR 부서에 이메 일을 보내고, 주주총회에 참석하고, 경쟁사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같은 업종 종사자를 만나는 것. 거창한 출발이 아니어도 된다. 관심 종목 하나를 골라 DART에서 분기보고서를 열고, 다섯 가지 핵심 수치를 직접 계산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경쟁사와 나란히 비교해보면, 어느 기업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가 바로 보이기 시작한다.<br>재무제표를 읽는 기술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나 자신의 심리다. 책은 개인투자자의 7가지 실패 패턴을 다루면서, 손실회피•확증 편향•과잉확신이 어떻게 수익률을 갉아먹는지를 행동재무학의 시각으로 짚어낸다. 솔직히 이 함정들에 반복적으로 빠졌다. 분명히 이상 신호가 보이는 종목인데도, 이미 매수했다는 이유로 좋은 뉴스만 찾아다녔다. 손실이 커질수록 곧 오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강해졌다. 확증 편향은 분석을 내가 내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이미 내린 결론을 합리화하는 재료만 끌어모으게 한다. 특히 책에서 경고하는 한 대목이 뇌리에 남는다. 현장 확인이나 데이터 분석없이 시장 분위기만 보고 적극적으로 사들이는 행동은, 오히려 정보 우위를 가진 기관이나 내부자들에게 유리한 Exit 환경을 만들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한 채로 거래에 뛰어드는 순간, 나는 이미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투자 경고가 아니라 거의 철학적 경구처럼 느껴진다.<br>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손실을 피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근거 있는 판단을 유지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재무제표는 그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앞으로 나는 재무제표 앞에서 이렇게 질문하려 한다. "이 숫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가 아니라, "이 숫자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라고. 현장으로 나가고, 공시의 행간을 읽고, 내 심리의 편향을 의심하는 것. 그것이 결국 정보 평등의 시대에 개인투자자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 는 진짜 경쟁력이다. 시장은 언제나 변동한다. 하지만 질문하는 투자자는 흔들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9/cover150/k28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93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러킹 - [러킹 -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60</link><pubDate>Sat, 18 Jul 2026 15: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605&TPaperId=173984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56/coveroff/k0821306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605&TPaperId=173984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러킹 -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a><br/>마이클 이스터 지음, 박선령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는 늘 더 가볍게 살고 싶어 한다. 짐을 줄이고, 불편함을 없애고, 마찰을 제거하는 것이 문명의 방향처럼 여겨진다. 식료품 카트, 엘리베이터, 자동차, 배달 앱-이 모든 것은 우리 어깨 위에서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발명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이스터의 책 러킹(Walk With Weight)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짐을 내려놓는 것이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가? 그의 대답은 명확하다. 오히려 우리는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무언가 본질적인 것을 잃었다. 근육만이 아니다. 버티는 힘, 즉 삶의 무게를 견디는 능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다.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했다.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왜 어떤 사람은 쓰러지고, 어떤 사람은 같은 무게 아래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지를 궁금해하면서도, 그 차이를 운명이나 성격의 문제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답이 훨씬 물리적이고, 훨씬 실천적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br>우리는 흔히 인간이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고 배웠다. 2004년 Nature지에 실린 논문, 맨발 달리기 열풍, 지구력 사냥의 이야기들. 그러나 이스터는 그 이야기에서 빠진 절반을 복원한다. 인간은 달리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했다. 짊어지는 것이다. 사냥감을 쓰러뜨린 후 그것을 캠프까지 운반해야 했다. 물을 길어왔고, 도구를 옮겼으며, 아이를 품에 안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었다. 진화는 우리 몸을 그 반복적인 무게에 맞게 설계했다. 어깨의 구조, 척추의 곡선, 엉덩이의 근육-이 모든 것이 무언가를 지고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 문명은 이 모든 무게를 기계에 맡겼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진화적으로 기대하던 자극을 잃었다. 근육이 줄고, 뼈가 약해지고, 신진대사가 흐트러졌다. 그러나 이스터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몸의 약화만이 아니다. 그는 무게를 짊어지는 경험 자체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해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버티는 힘이란 어쩌면 거창한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물리적 경험, 무언가를 지고 한 걸음씩 걷는 그 행위로부터 길러지는 것이 아닐까.<br>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불편함을 제거하려는 현대인의 충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이 책 이전에 쓴 The Comfort Crisis에서 이미 그 논지를 펼쳤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배낭에 무게를 넣고 걷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발적인 불편함을 선택하는 행위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짐을 짊어진다. 그 무 게는 처음에는 어깨를 짓누르고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몸은 서서히 그 무게에 적응한다. 근육이 생기고, 자세가 바로잡히고, 심폐 기능이 향상된다. 몸이 무게를 배우는 것이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삶의 은유처 럼 읽혔다. 버티는 힘은 편안한 조건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마찰과 저항, 땀과 피로 속 에서 자란다. 이스터가 인용한 저자 잭 카의 말처럼, "전문가란 기본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기본기는 결코 쉬운 길에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버티는 힘을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강하고, 어떤 사람은 약하다고.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훈련의 결과라고 말한다. 배낭에 체중의 10~25퍼센트를 넣고 매일 걷는 사람은, 단지 몸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매일 불편함을 선택하고, 그 불편함을 끝까지 견뎌내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삶의 마찰 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바꾼다.<br>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강조였다. 저자는 무거울수록, 빠를수록, 힘들수록 좋다는 군사적 문화에 비판적이다. 지나치게 무거운 짐은 오히려 부상을 낳고, 포기를 부른다. 진정한 강함은 수십 년을 지속할 수 있는 강함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버팀의 속성을 떠올렸다. 우리는 버팀을 이를 악물고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진짜 버팀은 오히려 지속 가능한 페이스를 찾는 일에 가깝다. 이스터가 권고하는 체중의 15~25퍼센트라 는 무게는,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는 무게다. 걷기 싫을 만큼 힘들지 않으면서도, 아무 자극이 없을 만큼 가볍지도 않은 무게다. 삶도 그렇다. 버티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단지 강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페 이스를 알고 있다. 과부하를 피하면서도 나태함을 경계하는 그 균형 속에서, 그들은 오랜 시간을 걸어간다. 이스터의 책이 강조하는 'SUPERMEDIUM' 즉, 극단의 체형이 아닌, 쓸모 있고 균형 잡힌 몸은 사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의 이상형처럼 도 읽힌다. 너무 많이도, 너무 적게도 아닌, 지속 가능한 강함이다. "시작하려면, 시작하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이다. 생각해보면, 걷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능동성이다.<br>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몸으로 결정하는 행위. 한 발을 내딛는 것은 동시에 나머지 한 발을 들어 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걷는다. 그 리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정리하고, 때로는 비워낸다. 짐을 지고 걸을 때 그 경험은 배가된다. 무게는 정신을 현재에 붙잡아 둔다. 배낭이 어깨를 누를 때, 우리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속을 방 황하기 어렵다. 지금, 여기, 이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버티는 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일지 모른다. 현재에 있는 능력. 지금 이 무게를, 지금 이 발걸음을 감당하면 된다는 단순함이다. 우리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 중 많은 경우는, 감당해야 할 전체 무게를 한꺼번에 상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모든 날들, 모든 어려움, 모든 불확실성. 그러나 짐을 지고 걷는 사람은 안다. 지금 이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 다음 걸음은 그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짊어지 고 살아간다. 선택할 수 없는 짐도 있다. 그러나 이스터의 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이것이다. 스스로 짐을 고르고, 그것을 지 고 걷는 연습을 반복할 때,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짐도 견디는 사람이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56/cover150/k0821306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569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주식투자 실전고수의 AI프롬프트 400 - [주식투자 실전고수의 AI프롬프트 400 - 돈 버는 투자자는 AI에게 이렇게 묻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48</link><pubDate>Sat, 18 Jul 2026 1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4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9341&TPaperId=173984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99/coveroff/k7421393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9341&TPaperId=173984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식투자 실전고수의 AI프롬프트 400 - 돈 버는 투자자는 AI에게 이렇게 묻는다</a><br/>이윤호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식시장은 언제나 불확실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확실성은 그 결이 다르다. 과거의 투자자들은 정보가 부족해서 졌다. 신문 한 줄, 전화 한 통이 시장의 흐름을 바꾸던 시절, 정보를 먼저 아는 자가 곧 승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뉴스는 초 단위로 쏟아지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쉬지 않고 종목 분석 영상을 밀어 넣는다. 증권사 리포트는 매일 수십 건씩 발행 되고, SNS에는 누군가의 투자 성공담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문제는 더 이상 정보의 부족이 아니다. 압도적인 정보의 과 잉 속에서 무엇을 걸러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바로 이 '정리의 능력'이 현대 투자자의 핵심 역량이 되었다. AI의 시대에 AI를 검색창으로 쓰는 사람과 애널리스트로 쓰는 사람의 수익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질문의 차이다. 변동성이 극심해지는 현재의 주식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실전 스킬을 읽어본다.<br>현재의 주식시장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단연 '변동성'이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 한 마디에 코스피가 수십 포인트를 오르내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예고 없이 유가와 환율을 뒤흔든다. AI 산업의 기대감이 반도체 섹터를 끌어올리는가 하면, 그 다음 날 수익률 실망이 급락을 부른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디를 봐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판단하기조차 어려운 환경이다.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변동성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반드시 이해해야 할 환경 이다. 파도가 높을수록 항해술이 중요하듯, 시장의 변동성이 클수록 투자자의 사고 구조가 중요해진다. 문제는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변동성 앞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주가가 오르면 흥분하여 추격 매수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공포에 질려 손절한다. 이 감정적 반응의 사이클이 결국 계좌를 갉아먹는 진짜 위험이다. AI 프롬프트는 바로 이 감정적 반응의 회로를 끊어내는 도구로 기능한다. "지금 이 종목 사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은 감정을 AI에게 위탁하는 행위다. 반면 “이 종목의 최근 3분기 영업이익 추이와 외국인 순매수 흐름을 비교하고, 현재 주가가 과열 구간인지 판단해줘"라고 묻는 것은 판단의 구조를 설계하는 행위다. 같은 AI를 사용하지만, 전자는 불안을 외주화하고 후자는 분석을 내재화한다. 변동 성이 심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후자의 질문을 습관화한 투자자다.<br>질문의 수준이 자산의 수준을 만든다. 투자 판단은 결국 정보를 해석하는 행위다. 같은 실적 발표 자료를 보더라도, 어떤 투자자는 영업이익이 올랐으니 좋은 종목"이라고 단순하게 읽는다. 반면 다른 투자자는 "영업이익은 올랐지만 일회성 자산 매각이 포함된 것은 아닌가, 핵심 사업의 마진은 오히려 줄지 않았는가, 경영진의 다음 분기 가이던스는 보수적이지 않은가"를 따진다. 이 두 해석의 차이가 바로 질문의 차이이며, 그 차이가 매수 시점과 매도 시점을 가른다. AI는 이 질문의 품질을 증폭시키는 장치다. 정교한 질문을 입력하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투자자의 판단을 돕는다.​그러나 막연한 질문을 입력하면 AI는 역시 막연한 답변을 돌려줄 뿐이다. 결국 시의 성능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 자신의 사고 구조다. AI는 생각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아니라, 생각을 확장해주는 비서다. 비서를 잘 활용하려면 비서에게 무엇을 시켜야 할지 아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변동성이 심한 장세에서 이 원칙은 더욱 빛을 발한다. 시장이 흔들릴 때 투자 자들은 정답을 원한다. "지금 팔아야 하나, 버텨야 하나"" 하지만 변동성 장세에는 정답이 없다. 있는 것은 '더 나은 질문'뿐이다. "현재 하락이 섹터 전체의 구조적 문제인가, 아니면 일시적 수급 이탈인가",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가 프로그램 매도인가, 펀더멘털 우려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감정적 판단을 논리적 판단으로 전환시킨다. 그리고 그 전환의 반복이 쌓여 장기적인 수익률의 차이를 만든다.<br>책이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가 매도의 어려움이다. 주식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은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진부함 속에 투자자들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핵심 원인이 담겨 있다. 수익이 나고 있을수록 판단이 흐려진다. "조금만 더"라는 욕심과 "지금 팔면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결합하면, 충분한 수익이 원점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변동성 장세에서 매도 판단은 더욱 어렵다. 하락이 시작됐을 때 "이건 일시적 조정이다"라는 희망과 "이미 많이 빠졌으니 더 빠지진 않겠지"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판단을 흐린다. AI 프롬프트는 이 감정의 안개를 걷어내는 데 유용하다. "이 종목의 주가가 고점 대비 15% 하락한 현재 시점에서, 펀더멘털 변화 여부와 외국인 수급의 방향성, 동일 섹터 내 상대 강도를 분석하고 추가 하락 가능성을 판단해줘"라는 질문은 감정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도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다. 책에서 제시하는 지지선과 저항선 개념 역시 변동성 장세에서의 매도 판단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지지선 이 무너지는 순간은 단순한 하락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기준점이 붕괴되는 사건이다. 이 신호를 감정이 아닌 구조적 프레임으로 읽는 훈련, 그것이 AI 프롬프트가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진정한 가치다. 살아남는 투자자는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잘 파는 사람이다. 그리고 잘 판다는 것은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 좋은 기준을 가진다는 뜻이다.<br>AI의 답변은 항상 맞지 않는다. 책의 저자도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 AI가 문장을 유창하게 구성한다고 해서 그 내용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종목을 실적 개선주로 설명했지만 실제 영업이익은 줄고 있을 수 있고, 수급이 긍정적이라고 했지만 하루치 순매수 데이터만을 근거로 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은 AI의 결함이 아니라, 도구로서의 본질적 한계다. Al는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이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신탁이 아니다. 변동성이 심한 시장일수록 AI의 답변을 맹신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시장은 AI가 학습한 과거 데이터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지정학적 사건이나 정책 변화는 어떤 알고리즘도 사전에 반영할 수 없다. 따라서 AI 프롬프트를 잘 쓴다는 것은, AI의 답변을 잘 받아 낸다는 의미와 동시에 AI의 답변을 잘 검증한다는 의미를 포함해야 한다. 프롬프트로 분석을 요청한 뒤, 그 결과를 공시 자료와 실제 재무제표, 거래소 수급 데이터와 대조하는 습관. 이 한 걸음의 검증이 AI 활용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겸손한 검증 없이 정교한 질문만으로는 반쪽짜리 도구를 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질문하는 자가 시장에서 살아남는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2/99/cover150/k7421393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2995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Updated TOEFL All-in-One - [Updated TOEFL All-in-One - [ETS 토플 공식 파트너] 한 권으로 끝내는 토플 이론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241</link><pubDate>Sat, 18 Jul 2026 12: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138630&TPaperId=17398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97/coveroff/k162138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138630&TPaperId=17398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Updated TOEFL All-in-One - [ETS 토플 공식 파트너] 한 권으로 끝내는 토플 이론서</a><br/>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12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토플을 준비한다는 것은 나에게 늘 막막함과 동의어였다. 리딩, 리스닝, 라이팅, 스피킹이라는 네 개의 산을 각각 어떻게 넘어야 할지, 게다가 2026년 1월 21일부터 시험 자체가 통째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막막함이 두 배가 되었다. 기존에 쌓아둔 기출문제 감각도, 선배들의 조언도 새로운 시험 체제 앞에서는 반쪽짜리 정보에 불과했다. 그런 나에게 ETS 토플 공식 파트너인 시원스쿨에서 나온 이 개편 토플 필수 이론서는 뜻밖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br>처음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TOEFL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장이었다. 나는 개편 시험이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조차 제대로 정리된 자료를 찾지 못해 인터넷 커뮤니티의 단편적인 글들을 짜깁기해서 읽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개편 전후 시험을 나란히 비교해 주면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새로 생겼는지를 표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아, 내가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막연한 불안이 구체적인 학습 계획으로 바뀌는 첫 순간이었다.책의 구성은 Reading, Listening, Writing, Speaking 순서로 이어지는데, 각 영역이 다시 세부 문제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리딩에서는 단어를 완성하는 유형부터 일상 속 글 읽기, 학술 지문 읽기까지 난이도가 계단식으로 올라갔고, 리스닝 역시 짧은 응답 고르기부터 대화, 공지, 학술 강의까지 실제 시험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라이팅에서 문장 만들기부터 시작해 이메일 쓰기, 학술 토론 글쓰기로 이어지는 구성은 특히 도움이 되었다. 나는 늘 빈 화면 앞에서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몰라 시간을 허비하곤 했는데, 문장 단위의 기초 훈련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다 보니 어느새 학술 토론 주제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단락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스피킹 파트의 "듣고 따라 말하기"와 "인터뷰 응하기" 유형 역시 새로운 시험 체제에서 낯설었던 부분인데, 각 유형에 대한 설명과 문제 수, 자주 나오는 토픽, 그리고 그 유형만의 특징이 정리되어 있어서 실전 감각을 미리 잡을 수 있었다. 열두 개의 문제 유형을 하나씩 뜯어보며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문제를 만나도 "이건 이런 유형이니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다"는 틀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이론만으로는 실전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ETS 토플에서 직접 제공한 실전모의고사 세 회분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다른 교재들의 예상 문제와 달리, 출제 기관이 직접 만든 문제라는 신뢰감이 있었고, 실제 시험 화면과 구성을 최대한 지면에 옮겨 놓아서 시험장에서 마주할 화면에 미리 익숙해질 수 있었다. 세 번째 모의고사를 풀 때쯤에는 시간 배분이나 화면 전환에 대한 낯섦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특히 라이팅과 스피킹 영역에서는 개편된 채점 기준에 맞춘 원어민 선생님의 모범 답안이 함께 제공되어서, 내가 쓴 답과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었다. 혼자 공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 피드백의 부재였는데, 모범 답안과의 비교를 통해 어느 정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교재 안의 학습이 끝난 뒤에도 시원스쿨 학습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음원 파일과 실전모의고사 스크립트, 그리고 정답 및 해설 PDF를 내려받아 반복 학습을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리스닝 음원을 반복해서 들으며 스크립트와 대조하는 과정은, 단순히 문제를 맞히는 것을 넘어 실제 영어 발화의 리듬과 억양에 익숙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토플 준비는 여전히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지도를 손에 쥐고 걷는 기분이었다.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4/97/cover150/k162138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4976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The Official Guide to PTE Academic - [The Official Guide to PTE Academic (Print Book+Digital Resources+Online Practice) - PTE 출제기관 공식 수험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236</link><pubDate>Sat, 18 Jul 2026 1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982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597&TPaperId=173982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0/99/coveroff/k3821305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597&TPaperId=173982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The Official Guide to PTE Academic (Print Book+Digital Resources+Online Practice) - PTE 출제기관 공식 수험서</a><br/>David Hill.Simon Cotterill 지음, 시원스쿨어학연구소 옮김 / 시원스쿨LAB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영어 시험이라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토익도 쳐봤고, 오픽도 준비해본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PTE(Pearson Test of English)라는 시험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막막함이 앞섰다. 말하기와 쓰기가 한 파트로 묶여 있고, 컴퓨터가 발음과 억양까지 채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내 말을 알아듣고 점수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고, 그래서 더더욱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책이 바로 시원스쿨어학연구소에서 번역한 &lt;The Official Guide to PTE Academic&gt;이었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PTE를 실제로 출제하는 기관인 Pearson에서 직접 만든 공식 교재라는 점 때문이었다.<br>책을 펼치고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화려한 문제 풀이가 아니라 '시험 소개'와 '시험 구성'이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빨리 넘기고 싶은 조바심도 들었지만, 찬찬히 읽어보니 이게 왜 가장 앞에 배치되어 있는지 이해가 갔다. 시험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채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시험 당일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성적표를 받은 후에는 그 점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먼저 알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방향을 잃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AI + 채점관'이라는 PTE만의 독특한 채점 구조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막연히 컴퓨터가 알아서 채점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인공지능 채점 시스템과 인간 채점관의 평가가 함께 반영되는 구조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왜 명확한 발음, 자연스러운 속도, 논리적인 구조가 중요한지가 비로소 납득이 되었다. 막연한 걱정이 구체적인 학습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br>책의 본문은 Speaking, Writing, Reading, Listening의 네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영역 안에서도 문항 유형별로 세세하게 공략법이 제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Speaking 파트의 'Read Aloud'와 'Repeat Sentence'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요구되는 능력과 채점 요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자가 정확한 발음과 억양, 유창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후자는 듣고 그대로 기억해서 재현하는 단기 기억력과 발화 능력이 함께 평가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Writing 영역의 'Summarize Written Text'와 'Write Essay'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영어 문장을 잘 쓰는 것을 넘어서, 정해진 시간과 분량 안에서 핵심을 요약하거나 논리적인 에세이를 구성하는 능력이 평가된다는 점에서, 막연한 작문 실력과는 다른 차원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Reading과 Listening 영역에서는 특히 'Fill in the Blanks'나 'Highlight Incorrect Words', 'Write from Dictation'처럼 이름만 보아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 유형들이 많았는데, 책은 각 유형마다 실제 예시와 함께 왜 이런 방식으로 출제되는지, 어떤 능력을 평가하려는 것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문제 유형에 담긴 출제 의도를 이해하고 나니, 단순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가능해졌다.<br>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론 설명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각 유형에 대한 팁을 읽고 난 뒤에는 반드시 관련 준비 문제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설명을 읽었으니 대충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는데, 막상 풀어보면 머리로 이해한 것과 실제로 적용하는 것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다는 것을 매번 느꼈다. 그리고 그 간극을 하나씩 메워가는 과정에서 실력이 조금씩 쌓이는 것이 체감되었다. 특히 한국어판에만 단독으로 수록되어 있다는 실전 모의고사 1회분은 그동안 익힌 전략들을 실제 시험과 유사한 환경에서 종합적으로 점검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부분적인 유형 연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시간 배분의 어려움이나 집중력 관리의 문제를 모의고사를 통해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영역별 해설 강의가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은, 혼자 채점하고 넘어갔다면 놓쳤을 약점들을 짚어주는 든든한 보완책이 되어주었다.<br>책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PTE라는 시험이 결코 만만한 시험은 아니지만 최소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막막함'만큼은 확실히 걷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출제기관이 직접 정리한 전략을 따라가다 보면,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연습해야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가 점점 선명해진다. 물론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시험 실력이 급상승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을 제대로 잡고 걸어갈 수 있는 지도 한 장을 손에 쥔 기분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지도를 따라 꾸준히 걸어가는 일뿐이다. 매일 조금씩 Read Aloud를 연습하고, Summarize Spoken Text로 듣기 요약력을 기르고, Write Essay로 논리적인 글쓰기를 다듬어가다 보면, 언젠가 PTE 성적표를 받아드는 그날,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0/99/cover150/k3821305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0990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