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oogi386님의 서재 (koogi386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8 May 2026 22:41:46 +0900</lastBuildDate><image><title>koogi386</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oogi386</description></image><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언제까지 핑계만 댈 건가요? - [언제까지 핑계만 댈 건가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407</link><pubDate>Sun, 24 May 2026 13: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4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8609&TPaperId=172944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4/coveroff/k9721386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8609&TPaperId=172944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언제까지 핑계만 댈 건가요?</a><br/>지유진 지음 / 모티브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잠깐 멈췄다. 제목이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이름을 붙인 것만 같은 느낌. 돈이 없어서, 시간이 모자라서, 아직 준비가 부족해서. 나는 오래도록 그런 문장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말들이 핑계라는 걸 몰랐던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뱉었다. 핑계는 실패보다 덜 아프기 때문이다. 저자 지유진은 유리한 조건 하나 없이 세상에 던져진 사람이다. 어린 시절의 가난, 깨진 가족, 일터에서 겪은 모욕. 그 목록만 읽어도 충분히 주저앉을 만하다. 실제로 세상은 그에게 멈추어도 된다는 신호를 여러 번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멈추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멈추었다가 다시 걸었다. 등에 QR코드를 붙이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그 장면이 오히려 마음에 박혔다. 완벽하게 준비된 출발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몸짓.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사용해온 핑계들의 구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핑계는 대부분 논리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돈이 없는 건 사실이고, 시간이 부족한 것도 거짓말이 아니며, 준비가 덜 된 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핑계가 무서운 것이다. 핑계는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의 일부다. 하지만 그 일부를 전부인 척 앞세울 때, 그것은 자기 보호가 아니라 자기 유폐가 된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감옥 안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그것을 신중함이라고 불렀다. 책 속에서 저자가 붙잡았다는 문장 "어차피 우주 먼지일 뿐인데, 걱정하면 뭐 하냐"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허무주의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문장은 포기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라는 존재가 우주적 기준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면, 내 실패 역시 우주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내가 무너져도 멈추지 않는다. 그 냉정한 사실이 오히려 자유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말을 수백 번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 비유 하나가 그 말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걱정과 행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하고, 충분히 따져보고, 충분히 준비하는 것. 그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여겼다. 그런데 저자는 걱정이 행동의 반대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걱정은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고급스러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그 말이 찌르듯이 들렸다. 나의 신중함이 사실은 도망이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책을 손에 쥔 채로 한참 천장을 바라보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흔한 자기계발서와 다른 이유는, 저자가 성공의 레시피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하면 된다"는 식의 문장이 이 책엔 없다. 대신 있는 것은 무너진 순간의 기록이고,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시간이며, 부당한 현실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도 계속 움직였던 사람의 흔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위로와 채찍질을 동시에 한다. 당신의 상황이 힘들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 힘듦이 멈춤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 두 가지가 이 책 안에서 기묘하게 공존한다. 나는 지금도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망설이고, 여전히 핑계를 찾는 날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핑계를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예전에는 핑계를 정당화하거나 외면했다. 이제는 그것이 핑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려 한다. 완벽하게 괜찮아지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조금 두렵더라도 지금 움직이는 것. 인생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 이유보다 한 발 먼저 내딛는 몸짓이라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남긴 질문은 하나다. 나는 지금 핑계 뒤에 서 있는가, 아니면 핑계 앞에 서 있는가. 핑계가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핑계를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핑계를 옆에 두고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저자가 그랬듯이. 무너지고, 쉬고, 그리고 다시 자기 자신을 데리러 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삶의 방식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4/cover150/k9721386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1044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미꽃체 마스터북 - [미꽃체 마스터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401</link><pubDate>Sun, 24 May 2026 1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4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317&TPaperId=172944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1/7/coveroff/k4121373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7317&TPaperId=172944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꽃체 마스터북</a><br/>최현미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마지막으로 펜을 쥐고 무언가를 썼던 게 언제였는지,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메모도 스마트폰으로, 일지도 노트북으로, 심지어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쪽지조차 메신저 앱으로 대신하는 생활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졌다. 손이 해야 할 일을 자판이 모두 가져가버린 것이다. 그러다 문득 다이어리 한 켠에 메모를 적으려 펜을 들었을 때, 낯선 감각에 잠시 멈췄다. 내가 쓴 글씨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삐뚤고 힘이 없었으며, 같은 글자도 쓸 때마다 다른 모양이 나왔다. '이게 정말 내 글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것일 테다. 그 무렵, 인쇄한 것처럼 단정한 손글씨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보게 됐다. 사람이 직접 쓴 것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알고 보니 악필이었던 한 작가가 오래 혼자 연습하며 만들어낸 글씨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서 묘한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라면. 어쩌면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단순한 필사 노트쯤 되겠거니 했다.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예쁜 문장 아래 줄을 그어 따라 쓰는 방식의 책.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이 책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자세를 잡는 법부터 시작했다. 허리를 세우고, 팔꿈치를 책상에 가볍게 얹고, 펜을 너무 꽉 쥐지 말 것. 그 다음은 선 긋기. 세로 선 하나를 천천히, 숨을 살짝 참고, 힘을 빼고. 겨우 선 하나인데 손이 이상하게 긴장됐다. 나는 이게 글씨 쓰는 법이 아니라 거의 명상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를 준비하며 공책 가득 글자를 채우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는 '잘 써야 한다'는 긴장보다 '한 칸을 꽉 채운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오래 잊고 있던 그 감각이 손끝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책의 종이는 생각보다 좋았다. 펜이 사각거리며 미끄러지는 느낌, 잉크가 번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감촉. 180도로 완전히 눕혀지는 제본 덕에 양쪽 손이 자유로웠다. 연습하는 환경 자체가 글씨를 쓰고 싶게 만드는 구조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처음 며칠은 솔직히 잘 안 됐다. 선은 떨리고, 자음은 제자리를 잃고, 같은 글자를 열 번 써도 열 가지 모양이 나왔다.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책은 그 지점에서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무작정 예쁜 글씨를 따라 쓰라고 하지 않았다. 왜 이 획이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글자 사이 간격이 왜 중요한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는 처음으로 글씨의 '구조'를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내 글씨가 흐트러졌던 이유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로 선이 조금 더 반듯해졌고, 'ㅏ'의 가로획이 균일해졌다. 완성된 글씨라고 하기엔 한참 멀었지만, 어제의 내 글씨와 오늘의 글씨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작은 기쁨으로 남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연습을 이어가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잘 쓰려면 반드시 천천히 써야 한다는 것이다. 펜을 잡고 한 획을 그을 때, 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답장을 해야 하는 메시지도, 내일 할 일도, 오늘 있었던 사소한 마찰도 전부 한쪽으로 밀려난다. 그저 이 선이 반듯하게 내려가는가, 적당한 힘이 담겼는가만 남는다. 그게 생각보다 고요한 시간이었다. 타이핑은 빠르다. 그래서 생각보다 앞서 손가락이 먼저 달려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손글씨는 다르다. 생각의 속도에 손이 맞춰야 한다. 어떤 때는 손이 생각을 앞지르려 하지만, 그때마다 글씨가 무너진다. 결국 글씨를 쓰는 일은, 내 리듬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요즘 하루에 한 페이지씩을 채운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에 잠깐, 자판을 내려놓고 펜을 드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이면 글씨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어쩌면 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지 모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한번은 연습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몸으로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다. 자전거를 타는 법, 수영하는 법, 악기를 연주하는 법. 이것들은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손글씨도 그렇다. 처음에는 눈으로 모양을 보며 따라 쓰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글씨체를 만든 작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악필로 시작해서 혼자 연습을 거듭하고, 결국 자신만의 글씨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건 그냥 예쁜 글씨를 갖게 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 반복하고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닿았다. 지금 내 글씨는 아직 서툴다. 어떤 날은 어제보다 못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 펜을 잡았을 때처럼, 낯선 무언가를 다시 익히는 감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서툰 채로 시작했고, 서툰 채로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과 펜을 쥐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속도가 아니라 결이 다르다. 그 결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천천히, 한 획씩.]]></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1/7/cover150/k4121373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1075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주도주 사이클 절대 법칙 - [주도주 사이클 절대 법칙 - 지수를 넘어 압도적 수익을 이끄는 투자 불패 공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93</link><pubDate>Sun, 24 May 2026 1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8532&TPaperId=172943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9/coveroff/k3321385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32138532&TPaperId=172943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도주 사이클 절대 법칙 - 지수를 넘어 압도적 수익을 이끄는 투자 불패 공식</a><br/>한규범 지음 / 부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식 시장에는 오래된 두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 첫째, 이미 충분히 비싸 보이는 주식이 왜 계속해서 오르는가. 둘째, 회사의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바로 그 순간, 왜 주가는 오히려 고꾸라지는가. 이 두 물음은 얼핏 별개의 현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전의 앞뒤처럼 하나의 원리로 연결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 역설을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채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너무 일찍 팔거나, 너무 늦게 판다. 전자는 주도주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지를 과소평가한 결과이고, 후자는 언제 그 비행이 끝나는지를 감지하지 못한 결과다. 저자는 바로 이 두 실수 사이, 즉 '탑승 시점'과 '하차 시점' 사이의 법칙을 추적한다. 핵심 논지는 단순하다. 주도주에는 재현 가능한 생애 주기가 존재하며, 그 주기를 이해하는 투자자만이 군중의 환호 속에서 냉정하게 출구를 찾을 수 있다.<br>모든 주도주의 이야기는 차트 위에서 시작된다. 이동평균선들이 뒤엉킨 채 방향을 잃고 있던 어느 순간, 단기 이동평균선이 중기선을 뚫고 올라서고, 이어 장기선마저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선들이 위에서 아래로 단기·중기·장기 순서로 가지런히 정렬된다. 이를 정배열이라 부른다. 정배열은 기술적 현상만이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한 방향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매수 압력이 매도 압력을 지속적으로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 힘이 단기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주도주들은 예외 없이 이 관문을 통과했다. 정배열이 없는 주도주는 없었다. 그러나 정배열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적 신호가 아무리 또렷해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펀더멘털이 없다면 신기루에 불과하다. 진짜 주도주의 탄생에는 두 번째 요소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주가를 움직이는 것은 좋은 실적이 아니라 빠르게 좋아지는 실적이다. 영업이익이 1,000억 원이라는 사실보다 그것이 전년 대비 두 배로 늘었다는 변화의 기울기가 훨씬 더 강력한 자극이 된다. 이를 실적 델타(Delta), 즉 실적의 변화율이라 표현할 수 있다. 정배열이 완성된 첫 해에 실적 델타가 폭발적으로 치솟을 때, 주가는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높이까지 밀려 올라간다. 이 구간에서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지표들은 무력해진다. 주가수익비율(PER)이 50배를 넘어도, 100배를 향해 달려도 주가는 계속 오른다. 왜냐하면 시장은 현재의 수치가 아니라 미래의 가속도에 베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의 결합, 즉 정배열의 완성과 실적 델타의 폭발이 동시에 나타날 때 비로소 진짜 주도주가 태어난다.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외견상 비슷해 보여도 결국 군중을 이끌지 못하고 소멸하는 가짜 주도주에 불과하다.<br>한국과 미국 시장의 200여 개 주도주를 25년에 걸쳐 추적하면 놀라운 일관성이 드러난다. 정배열 완성 시점부터 주가의 공세가 종료되는 지점까지, 대다수 주도주의 수명은 약 2년에 수렴한다. 일부는 18개월 만에 힘을 잃고, 일부는 30개월 가까이 버티지만, 전체 분포를 시계열로 펼쳐 놓으면 2년이라는 중력처럼 작용하는 시간이 존재한다. 이는 신비로운 우연이 아니다. 자본에는 피로가 쌓인다. 초기에 기회를 포착한 선도 매수세가 이익을 실현하기 시작하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신규 매수자가 필요해진다.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면 새로 유입될 수 있는 자본이 한계에 이른다. 스토리가 이미 대중에게 상식이 되어버린 탓이다. 이 수급의 임계점과 실적 가속도의 자연 한계가 맞물리면서 2년이라는 통계적 실체가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투자의 대가들 역시 이 원리를 직관적으로 체득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주식을 판 것은 주가가 비싸서가 아니었다. 시장의 열기가 식고, 모두가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즉 알파가 소멸했을 때였다. 데이터는 그 직관을 숫자로 증명할 뿐이다.​주도주 투자에서 가장 치명적인 함정은 역설적으로 가장 화려한 순간에 찾아온다.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쏟아지는 바로 그 시점이 종종 매도의 최적 시기가 된다. 이를 이해하려면 시장이 무엇에 가격을 매기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장은 좋은 상태(good)에 프리미엄을 부여하지 않는다. 더 좋아지는 변화(better), 즉 가속하는 방향에 돈을 건다. 영업이익이 1,000억에서 2,000억, 4,000억으로 두 배씩 성장할 때 주가는 날아오르지만, 같은 이익이 4,000억에서 6,000억, 7,000억으로 늘더라도 성장률 자체가 50%에서 30%, 15%로 떨어지는 순간 시장은 그것을 이미 둔화로 인식한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이익의 1차 미분(성장률)은 여전히 양수지만 2차 미분(가속도)이 음수로 돌아서는 순간이 바로 공세종말점의 내부 신호다. 실적 발표 수치만 보는 투자자는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반면 시장 전체는 이 신호를 이미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이 '선반영'이나 '재료 소멸'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리는 현상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br>내부 엔진이 식기 시작해도 차는 관성으로 한동안 더 굴러간다. 고점에서 주도주는 겉으로는 여전히 강해 보인다. 그러나 차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미 균열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신호는 방어 구조의 약화다. 오랫동안 주가를 떠받쳐주던 중기 이동평균선이 처음으로 깨지거나, 수개월간 유효했던 상승 추세선이 하향 돌파된다. 이것은 일시적 조정이 아니다. 구조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 신호는 수급의 이상 징후다.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주가는 더 이상 신고가를 경신하지 못한다. 대량의 자본이 유입되고 있음에도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매도 물량이 맞서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끊기고 개인 투자자의 매수만 남는 구조가 형성된다면, 이는 정보 우위를 가진 이들이 이미 출구를 향하고 있다는 신호다.​고점에 이른 주도주는 무너지지만, 자본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 전선에서 철수한 자본은 즉시 다음 델타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한다. 시장은 진공 상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15년간 한국 증시를 돌아보면 이 순환의 패턴이 소름 돋을 정도로 반복되었다. 화학·화장품, 바이오, 플랫폼, 반도체, 이차전지, 조선·방산·원전으로 이어지는 주도 섹터의 교체는 매번 이름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동일했다. 정배열 완성, 실적 델타의 폭발, 약 2년의 상승, 공세종말점, 그리고 다음 섹터로의 자본 이동. 개별 기업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단 한 번의 사이클로 역사에서 사라지는 기업이 있는 반면, 새로운 기술 물결을 타고 스스로를 재정의하며 다시 주도주로 부활하는 기업도 있다. 부활의 공통 조건은 하나다. 새로운 델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 구조의 유연성이다.<br>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주도주의 생애 주기는 운이나 감이 아닌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배열에서 태어나 실적 델타의 폭발로 비상하고, 약 2년의 시간이 지나 델타의 가속도가 꺾이는 순간 고점에 도달하며, 이윽고 자본은 새로운 전장으로 이동한다. 한국 투자 서적 시장에서 매수 전략은 넘쳐나지만 매도 전략을 정면으로 다루는 책은 드물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매도가 훨씬 더 불편하고 심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수익을 실현한다는 것은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기회를 포기하는 행위이고, 손실을 확정한다는 것은 틀렸음을 인정하는 행위다. 인간의 심리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장은 심리가 아닌 구조로 작동한다. 감정으로 매도 시점을 결정하는 투자자는 영원히 군중의 일부로 남는다. 반면 실적 델타의 방향을 관찰하고, 방어 구조의 균열을 감지하며, 수급의 이상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투자자는 군중이 열광할 때 조용히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시장은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배우만 바뀔 뿐, 대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 대본을 읽을 수 있는 자에게 시장은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신호를 볼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0/99/cover150/k3321385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50999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세계사를 바꾼 금 이야기 - [세계사를 바꾼 금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85</link><pubDate>Sun, 24 May 2026 12: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105&TPaperId=172943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3/91/coveroff/k7221381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105&TPaperId=172943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계사를 바꾼 금 이야기</a><br/>레베카 조라크.마이클 W. 필립스 주니어 지음, 서소울(정세라)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금은 별의 죽음에서 태어난다.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며 폭발할 때 생성된 이 원소는 우주적 폭력의 산물이지만, 지구에 당도한 순간부터 인간의 손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받았다. 원자번호 79번, 무르고 도구로 쓰기에 부적합한 이 금속이 인류 문명의 핵심 상징이 된 것은 역설적으로 그 '쓸모없음' 때문이었다. 실용적 가치가 없기에 오히려 욕망과 권력, 신성(神性)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었다. 1972년 불가리아의 한 굴착기 기사가 우연히 발견한 바르나 네크로폴리스의 황금 유물들은 기원전 4600년경의 것으로, 인류가 6,000년 전부터 이미 죽은 자를 황금으로 장식해 매장했음을 보여준다. 단 하나의 무덤에서 동시대 전 세계 황금 유물을 합산한 것보다 많은 양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금이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내세에 대한 믿음을 물질화한 매체였음을 증명한다. 금을 몸에 두른다는 행위 자체가 곧 권력이었고, 죽음 이후에도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황금 부장품(副葬品)이라는 문화를 낳은 것이다. 이집트 파라오들은 금을 '신의 살갗'으로 여겼고, 아즈텍인들은 '신들의 배설물', 잉카인들은 '태양의 땀'이라 불렀다. 문화권마다 표현은 달랐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금은 썩지 않고 변색되지 않으며 영원히 빛난다. 그 불멸성이 신성과 동일시되었고, 금을 소유한 자는 그 신성의 일부를 나눠 갖는다고 여겨졌다. 황금은 단순히 희귀한 물질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관념의 가시적 형태였다.<br>금의 역사는 찬란하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폭력과 착취가 도사리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올린 황금 문명이었다. 그러나 콩키스타도르들은 정교한 황금 공예품들을 예술로 감상하는 대신 용광로에 던져 넣었다. 예술 작품이 금괴로 변하는 데는 불과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문명을 녹인다는 것은 단순히 금속을 재주조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세계관과 신앙, 미적 감각을 통째로 소각하는 문화적 학살이었다. 황금을 향한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도 있었다. '엘도라도'는 본래 황금 도시가 아니었다. 콜롬비아 무이스카족의 왕이 해마다 종교 의례에서 온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과타비타 호수에 뛰어드는 풍습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점점 부풀려져, 마침내 정글 깊숙이 숨겨진 황금 도시라는 전설로 탈바꿈했다.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허상을 쫓다 정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찾은 것은 금이 아니라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현실을 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증거였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는 수십만 명을 서부로 불러들이며 미국이 대륙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지만, 동시에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고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제노사이드의 배경이기도 했다. 금은 한쪽에서는 기회였고, 다른 쪽에서는 재앙이었다. 커스터 장군의 블랙힐스 금광 원정은 라코타족과의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황금 한 줌이 한 문명의 존망을 가르는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br>종교와 금의 관계는 근본적인 역설을 품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자 격노하여 율법의 돌판을 박살냈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의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를 금 10만 달란트로 뒤덮었다. 우상숭배를 단죄한 종교가 가장 화려한 황금 성전을 짓는 아이러니. 기독교, 이슬람, 불교를 막론하고 금을 경계하는 교리를 지닌 종교일수록 황금으로 장식된 성소와 성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금이 인간의 내면에서 신성의 언어로 기능해왔음을 방증한다. 중세 유럽에서 황금 테세라 모자이크로 장식된 교회의 천장은 신도들에게 천상의 예루살렘을 지상에서 체험하게 하는 장치였다. 촛불 아래 황금 박이 일렁이면 마치 빛이 안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심리적 효과를 성직자들은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했다. 황금이 영적 체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시각 시스템이 반짝이고 일렁이는 표면에 본능적으로 이끌리기 때문이다. 수면의 반짝임이 생존에 필요한 물의 존재를 알리듯, 금의 광채는 진화적으로 각인된 주의 집중 신호를 활성화한다. 세속 권력도 금을 동일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의 사치금지법은 금 장신구를 귀족과 왕족에게만 허용함으로써 신분 질서를 가시화했다. 올림픽 금메달, 노벨상, 아카데미상 트로피가 모두 금을 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희귀한 재료를 희귀한 재능을 지닌 자에게 수여한다는 상징 체계는, 수천 년 동안 금이 축적해온 '탁월함의 기호'라는 의미장에 기대고 있다.<br>금이 화폐가 된 것은 희귀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금은 썩지 않고, 분할 가능하며, 어디서나 알아볼 수 있고, 위조하기 어렵다. 역사상 최초로 금화를 주조한 것으로 알려진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결국 페르시아에 패망했다. 금화를 발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금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금을 갖는 것과 금을 지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20세기 들어 금본위제는 세계 경제를 옥죄는 족쇄가 되었다. 통화 공급을 금 보유량에 묶어두는 구조는 경기 침체 시 신속한 재정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국민이 보유한 금화를 국가에 납부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수천 년간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자산이었던 금이 하룻밤 사이에 국유화된 것이다. 이는 금이라는 물질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제도와 신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금은 공식 화폐 시스템에서 이탈했지만 여전히 불안의 시대를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기능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금융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금을 산다. 이 반응은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집단 심리에 가깝다. 금의 경제적 가치는 결국 '우리가 금에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는 공유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한 금은 세계 경제의 심리적 앵커로 남을 것이다.<br>6,000년의 역사를 관통하며 금은 한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가치란 무엇인가. 금 자체에 내재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집단적으로 합의하여 부여한 의미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금은 원자번호 79번의 원소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의 살갗이라 부르고, 왕관에 올리고, 사랑의 서약에 끼고, 올림픽 승자의 목에 거는 순간 금은 물질을 넘어선 무언가가 된다. 동시에 금의 역사는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황금을 손에 넣기 위해 문명을 불태웠고, 광산 노예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원주민을 학살했다. 오늘날에도 금 한 돈을 만들기 위해 수십 킬로그램의 독성 폐기물이 생성되고, 일부 금광 지역에서는 아동 노동과 강제 노역이 계속된다.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 하나가 누군가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금에 부여해온 아름다운 의미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금은 인류 문명의 핵심 서사를 응축하고 있다. 별의 폭발에서 시작된 이 금속은 인간의 손을 거치며 신앙이 되고, 권력이 되고, 예술이 되고, 화폐가 되었다. 금의 역사는 결국 인간이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그리고 그 의미가 어떻게 문명을 만들고 파괴하는지에 관한 가장 긴 이야기다. 황금빛 광채 앞에 멈추어 서는 순간, 우리는 6,000년 전 바르나의 무덤 앞에 선 누군가와 같은 충동을 느낀다. 그 충동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3/91/cover150/k7221381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3910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 쇼펜하우어와 함께 이겨내는 삶의 고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76</link><pubDate>Sun, 24 May 2026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8986&TPaperId=172943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5/coveroff/k2921389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8986&TPaperId=172943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 쇼펜하우어와 함께 이겨내는 삶의 고통</a><br/>강산 지음 / 알토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느 날 문득, 나는 이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 왜 회사가 바뀌어도, 팀이 바뀌어도, 심지어 나 자신이 꽤 많이 달라졌다고 느낄 때조차 비슷한 갈등이 되풀이되는 것인가.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좀 더 유연했더라면, 좀 더 참았더라면, 좀 더 영리하게 처신했더라면 하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자책의 반복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문제의 뿌리는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은 아닐까.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위로의 언어를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삶을 낙관하지 않았고, 인간을 아름답게 묘사하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냉정하고, 때로는 잔인하리만큼 솔직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냉정함이 어떤 위로보다 더 깊은 안도감을 준다. 왜냐하면 그는 고통이 우리의 실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 존재하는 방식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br>쇼펜하우어 철학의 출발점은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는 선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무대가 아니라, 각자의 주관이 인식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성립하는 장면이다. 다시 말해,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회의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협력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쟁의 장이, 또 다른 이에게는 그저 견뎌야 할 시간일 수 있다. 이 통찰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이 '틀렸다'거나 '나쁘다'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표상으로서의 세계 개념에서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충돌은 악의보다 인식의 차이에서 더 자주 태어난다. 관계의 상처가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마주친 결과일 수 있다.​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이기심을 도덕적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교정해야 할 병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가 개체로 발현된 자연스러운 형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존속을 원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이 욕망들이 좁은 장 안에서 동시에 충돌하는 곳이다. 역할이 주어지고, 평가가 이루어지며,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특히 뛰어난 누군가가 등장할 때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생각해 보라. 탁월함은 환영받기보다 억제되는 경우가 많다. 성과를 축소하거나, 평가를 흐리거나,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행동들은 단순한 시기심이 아니다. 쇼펜하우어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자신의 평균적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느낀 존재가 그 기준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다. 이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그 반응들이 덜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나를 향한 공격이라기보다 구조가 만들어 낸 반응에 가깝다.<br>성경에서 최초의 살인은 질투에서 비롯된다. 카인은 아벨이 무언가 나쁜 일을 해서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아벨이 인정받았다는 사실, 그 비교의 결과가 카인을 무너뜨렸다. 이처럼 질투는 외부 대상에 대한 반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내면의 불균형에서 증폭된다. 우리는 타인의 성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이 드러내는 자신의 결핍에 반응하는 것이다. 현대 직장인의 삶은 이 열등감의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작동시킨다. SNS는 타인의 삶을 끝없이 비교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고, 조직은 평가와 순위를 통해 사람을 서열화한다. 평균이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평균을 벗어난 존재는 불안을 일으킨다. 쇼펜하우어는 이 불안의 해소 방법이 종종 타인을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구조적으로 예견된 반응임을 알게 되면, 비로소 그 안에서 자신을 덜 잃을 수 있다.​쇼펜하우어는 시간에 대해서도 독특한 입장을 취한다. 그는 과거와 미래가 모두 현재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현재는 미래를 위한 준비 공간이 아니라, 삶이 실제로 작동하는 유일한 자리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재를 유예하며 사는가. 승진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이직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다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지금 이 순간을 통과 지점으로만 취급한다. 퇴근 후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일의 회의를 걱정하며 오늘 저녁을 소비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현재를 미래의 하위 개념으로 격하시킨 습관의 결과다. 쇼펜하우어의 언어로 말하자면, 의지가 충족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면서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지금의 선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며, 이후의 시간은 그것을 수정해 주지 않는다. 지금을 살지 않으면, 그 어떤 미래도 우리를 구해 주지 않는다.<br>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비관주의로 분류되는 것은 그가 삶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관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다. 고통이 우연히 찾아온 불운이 아니라 삶에의 의지가 작동하는 한 피할 수 없이 수반되는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고통 앞에서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을 먼저 찾지 않아도 된다. 직장에서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바뀌어도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구조가 만들어 내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관계의 마찰을 개인적 실패로 받아들이는 대신, 예측 가능한 변수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감정적 소모가 줄어들고, 판단이 조금 더 냉정해진다. 그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지혜의 시작이다.<br>나는 이 철학에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정확히는 위로보다 조금 다른 무언가였다. 그것은 납득이었다. 왜 이렇게 살아도 늘 어딘가 부족하고, 왜 열심히 해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지에 대한 납득. 삶이 괴로운 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지를 가진 존재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납득이다. 지금의 환경이 나의 인생 전체를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의 평가가 나라는 존재의 값어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갈등은 내가 틀렸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욕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구조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리고 그 구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 사람은, 그 안에서 조금 더 가볍게 숨을 쉴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에게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 즉 의지가 잠시 쉬는 순간에 가깝다. 그것은 작고 조용한 것이다. 크게 흥분하거나 환호하는 순간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순간.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삶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5/cover150/k2921389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23551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 - [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 - 예비 퇴직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36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72</link><pubDate>Sun, 24 May 2026 1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43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7881648&TPaperId=172943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4/57/coveroff/89278816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7881648&TPaperId=172943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신도 돈 걱정 없이 은퇴할 수 있습니다 - 예비 퇴직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36가지</a><br/>정도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느 날 아침, 문득 달력을 바라보다가 멈춘 적이 있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어가며 계산을 해보니, 퇴직까지 남은 시간 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숫자를 마주한 순간, 가슴 한편 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돈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준비가 덜 되어서 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불안의 진짜 원인이었다. 막연하다는 것. 기준이 없다는 것.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것.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시험을 치렀다. 시험 범위가 있었고, 공부할 교재가 있었고, 점수로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불안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노후 준비라는 시험에는 명확한 범위도, 정해진 답안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살아온 사람도, 퇴직이 가까워지면 그 앞에서 막막해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꼭 나쁜 신호만은 아니다. 불안은 일종의 알람이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몸과 마음이 보내는 조용한 경고 음. 그 알람을 끄려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어나 창문을 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꽤 오랫동안 이불 속에 있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은퇴를 위해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 은 기회가 되었다.<br>지금까지 노후를 위해 무언가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국민연금 꼬박꼬박 납입했고, 퇴직연금도 어느 정도 쌓여 있을 것이다. 적금도 들었고, 집도 한 채 있다. 그러면 충분한 것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충분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준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이었다. 노후에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 언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퇴직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을 지. 이 질문들에 나는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괜찮겠지'라고 생각해왔을 뿐이다. 그 '괜찮겠지'라는 믿 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살고 있으니까. 아직은 직장이 있으니까. 아직은 건강하니까. 그런데 그 아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나는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돌아보면 나는 돈을 모으는 일에는 나름 성실했지만, 그 돈이 언제, 어떻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획하는 일에는 소홀했다. 저축은 했지만 설계는 하지 않은 셈이다. 크기는 있었 지만 기준이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통장 잔고가 늘어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불안의 정체는 돈의 부족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였다. 어느 선배가 퇴직 후 이런 말을 했다. 퇴직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는지 알았다. 돈은 있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랐다.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은퇴는 자산의 문제가 아니라 현금 흐름의 문제다. 얼마 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매달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가 나가는지가 중요하다. 직장을 다닐 때는 월급이라는 흐름이 있었다.<br>그 흐름이 멈추는 순간부터는,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연금이든, 임대 수익이든, 파트타임 일이든. 아무 준비 없이 흐름이 끊기면, 아무리 많은 저수지도 결국 바닥을 드러낸다. 그렇게 생각하니, 노후 준비의 핵심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연금은 언제부터 얼마나 나오는가. 퇴직 후 몇 년간의 공백기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생활비는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것인가, 줄일 것인가. 집 한 채 외에 다른 소득원이 있는가. 이 질문들에 하나씩 구체적인 숫자를 채 워 넣는 것, 그것이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막연히 불안해하는 것과, 숫자를 들여다보며 현실을 직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현실은 때로 냉정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달콤한 착각보다 훨씬 낫다. 착각은 준비를 막지만, 진실은 행동을 부른다.<br>퇴직은 끝이 아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하나의 문이 닫히는 것이지만, 동시에 다른 문이 열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 문이 어디 있는지, 열 준비가 되어 있는지이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했는가. 어떤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자주 물어왔는가. 이 질문들은 자기성찰만의 의미가 아니다. 퇴직 이후 두 번 째 커리어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은 쌓인다. 판단력은 무르 익는다. 사람을 읽는 눈도 깊어진다. 이것들이 쓸모없어지는 세상이 온다면 모를까, 아직은 그렇지 않다. 20년, 30년을 한 분야에서 일해온 사람이 가진 노하우는, 어디선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두 번째 일이 첫 번째 일만큼 화려하거나 급여가 높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적당한 수입과 함께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 그것이 노후의 심리적 안정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돈은 부족해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는 하루하루는 사람을 서서히 무너뜨린다.<br>불안은 행동하지 않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불안은 조금씩 작아진다. 완벽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이다. 내 연금 예상 수령액을 조회해보는 것. 퇴직 후 한 달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적어보는 것. 내가 가진 자격증과 경력을 다시 정리해보는 것. 퇴직 이후 하고 싶은 일을 막연하게라도 떠올려보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거창한 재테크보다 훨씬 더 중요한 노후 준비의 시작이다. 나는 지금, 노후의 문 앞에 서 있다. 문 너머가 어떤 모습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준비한 사람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그 문을 여는 느낌은 전혀 다를 것이라는 것을. 남은 시간, 걱정하는 데 쓰지 말고싶다. 점검하는 데 쓰고자 한다. 내가 쌓아온 것들을 믿되, 그 위에 작은 기준 하나씩을 더 얹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문을 열 때,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조금 더 많기를 바란다. 노후는 준비한 만큼 보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4/57/cover150/89278816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4577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 -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261</link><pubDate>Sat, 23 May 2026 18: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2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8678&TPaperId=172932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5/83/coveroff/k9521386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8678&TPaperId=172932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a><br/>은하른(신박천문연구소) 지음 / 든해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릴 적, 나는 자주 옥상에 올라갔다. 딱히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좁은 방 안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 어느새 계단을 올라 옥상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별자리의 이름도 몰랐고, 저 빛이 몇 광년 떨어진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냥 오래,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무언가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우주를 '위로의 공간'으로 느꼈다. 별빛은 아름다웠고, 하늘은 넓 었고, 그 광활함 앞에서 나의 고민은 잠깐이나마 가벼워졌다. 나는 우주를 몰라도 우주 앞에 설 수 있다고 막연히 믿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을 읽고 난 뒤, 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작은 세계 안에서의 믿음이었는지를 깨달았다.<br>우리는 왜 밤하늘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반짝이기 때문에? 멀기 때문에? 아니면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별빛을 '지금 이 순간'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면 그 빛이 바로 지금 저 별에서 출발해 내 눈에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현재라고 믿었다. 그 빛이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 전에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감각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훨씬 더 선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별빛 은 그 별이 과거에 살아있었다는 증거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를 보고 있다 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주의 과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은 살아있는 지금이 아니라, 사라진 것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우주가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들의 잔상'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아름답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들 중에는, 이미 끝난 것들이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나간 계절, 돌아오지 않는 사람, 다시 꾸지 못하는 꿈. 우리는 그것들이 사라진 줄도 모르고, 여전히 그 빛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br>나는 오래도록 '보이는 것'만이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성과로 증명되는 것,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것, 숫자와 결과 로 남는 것. 그것들이 나를 이루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말로 꺼내기 어려운 감정들, 아무도 모르는 슬픔, 혼자서 삼킨 외로움은 그냥 잉여 감정, 처리해야 할 노이즈 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은 우주조차도 보이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주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눈으로 볼 수 없다. 빛을 내지 않아 관측조차 되지 않는 암흑 물질 과 암흑 에너지가 우주 전체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우주'라고 알고 있는 것, 즉 반짝이는 별과 화려한 은하와 빛나는 성운은 사실 전체의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어둠이 없다면, 우주는 형태 자체를 유 지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지탱한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 버티게 한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잉여라고 여겼던 것들,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감정들, 조용히 혼자 삼킨 밤들이 사실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고 있던 힘이었던 것은 아닐까.<br>화려하게 빛나는 5퍼센트만이 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95퍼센트까지가 온전한 나일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어딘가 나를 놓아주는 것 같았다. 슬픔을 없애야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둠이 있어야 우주가 유지되듯, 보이지 않는 나의 무게들이 있어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지우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어둠과 함께 살 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다. 이 광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만 이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으니까. 언젠가는 신호가 닿을 것이고, 언젠가는 응답이 올 것이라 고 막연히 기대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기대에 정면으로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호를 보냈다. 탐사선을 날 렸고, 전파를 쏘았고, 기다렸다. 하지만 우주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아직 닿지 않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나를 섬뜩하게 했다. 응답 없는 침묵이 가장 무서운 것은 우주에서만이 아니다. 우주의 침묵 앞에서, 나는 그 모든 기다림의 무게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응답이 없어도, 신호를 보낸 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우주를 향해 탐사선을 날리고, 전파를 쏘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간의 행위는 응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니까. 응답이 없는 침묵 앞에서도 계속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우주를 닮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br>책을 덮은 뒤, 나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별은 여전히 반짝였고,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 만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빛 하나하나가 이미 사라진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내 눈에 닿는 이 순간이 사실은 과거라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둠이 저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이 조금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가볍지 않았다.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겁고 서늘 하고 거대한 무언가를 품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작았다. 몹시 작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음이 더 이상 허무하지 않았다. 138억 년의 시간이 흘러 만들어진 이 우주 속에서, 우주의 먼지보다 작은 내가 그 어둠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고 감동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나는 여전히 별자리의 이름을 잘 모른다. 광년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어도 우주 앞에 서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다. 어둠 속에서 별을 배우는 일은, 어쩌면 어둠 속에서 나를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5/83/cover150/k9521386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5839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1% 리더의 언어 공식 - [1% 리더의 언어 공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94</link><pubDate>Sat, 23 May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8268&TPaperId=172930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2/43/coveroff/k7721382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8268&TPaperId=172930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 리더의 언어 공식</a><br/>윤상명 지음 / 모티브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는 오랫동안 말을 잘하는 것이 곧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유창한 화술, 막힘없는 언변, 분위기를 휘어잡는 입담. 그런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수십억 수백억의 계약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조직의 명운이 걸린 결정의 순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말을 많이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말을 정확하게 한 사람이었다. 말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이기는 말의 구조를 가르치는 책. 화 술이 아니라 전략으로서의 언어를 다루는 책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임원들의 대화에는 형용사가 없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러나 주변의 대화들을 다시 들어보기 시작 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형용사로 진실을 포장하는가. "대략 많이", "꽤 빠르게", "상당히 중요한"이라는 표현들은 말하는 사람의 불안을 감추는 안개와 같다. 안개가 걷혀야 풍경이 보이듯, 수식어가 걷혀야 비로소 사실이 드러난다. 진짜 리더는 숫자와 사실로 말한다. "빨리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번 주 금요일 오후 3시까 지 1차 초안을 제출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많이 팔렸습니다"가 아니라 "지난 분기 대비 23% 성장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차이는 책임의 언어와 회피의 언어의 차이다. 모호한 말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해석의 여지는 결국 책임의 공백을 만든다. 반면 명확한 말은 말하는 사람이 그 말에 걸려 있다는 신호다. 숫자로 말하는 사람은 그 숫자에 자신의 신뢰를 담보로 걸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식어 가득한 보고보다 간결한 한 줄의 데이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언어의 명료함은 결국 존재의 명료함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만이 명확한 말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삶 의 태도의 반영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많은 사람들이 품격을 세련된 외양이나 격식 있는 표현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품격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품격이란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드러나는 내면의 질서다. 누군가 회의 중에 당신 의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깎아내린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며칠 밤을 새워 준비한 기획안이 한 줄의 비아냥으로 무너진다고 상상해 보라. 그때 목소리를 높이고, 흥분하여 반박하는 사람과, 오히려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핵심만 말하는 사 람, 두 사람 중 누가 그 방에서 신뢰를 얻겠는가. 상위 1% 리더들은 분노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다루는 법을 안다. 그들은 감정의 불꽃이 타오르는 순간, 물을 붓는 대신 공기를 차단한다. 목소리 톤을 낮추고, 말의 속도를 늦추고, 불필 요한 반응을 보내지 않는다. 그것이 단순히 자기 통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훨씬 정교한 전략이다. 조용한 사람이 시끄러운 방을 지배한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실제다.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확한 말을 가장 침착하게 꺼내는 사 람이 결국 회의실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힘은 말 이전의 것, 즉 몸의 언어에서도 배어 나온다.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어떻게 앉아 있는지, 침묵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리더의 품격은 말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순간에 완성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흥미롭게도 저자는 설득을 논리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논리는 창이지만, 그 창이 상대의 마음에 꽂히려면 날이 있어야 한다. 그 날이 바로 공감이다. 숫자로 증명하고, 스토리로 공감하라.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설득은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이성과 감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한다. 논리적인 사람은 차갑고, 감성적인 사람은 논리가 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구조는 훨씬 복잡하다. 사람은 이성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 정으로 결정하고 이성으로 합리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설득은 데이터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안에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반대 의견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반대 의견을 부정적 장벽으로 보는 대신, 긍정적인 대안으로 전환하는 화법. "그 방법은 어렵습니다"가 아니라 그 방향이라면 이런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로 말하는 것. 이 미묘한 전환이 대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다. 반대는 대화의 끝이 아니다. 반대는 상대가 여전히 대화에 참 여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 신호를 적으로 보지 않고 재료로 활용하는 사람이, 결국 협상 테이블의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된다. 칭찬의 3단계 공식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행동, 감정, 영향. 단순히 "잘했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그 순간 당신의 결 정이 팀 전체의 방향을 바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울림을 만든다. 진심어린 칭찬은 상대에게 '나는 당신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완벽한 리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자신의 언어를 돌아보고 다듬는 사람이 진짜 리더가 된다 타고난 언어 천재는 없으며, 매일 자신의 말을 고쳐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리더십은 직위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말이 만드는 것도 아니다. 매일의 언어 속에서 쌓이는 신뢰의 총합이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화려한 스피치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확함과 품격, 그리고 상대를 진심으로 보는 공감에서 자란다. 말이 바뀌면 관계가 바뀌고, 관계가 바뀌면 조직이 바뀐다. 조직이 바뀌면 결과가 바뀐다. 그 긴 연쇄의 시작점이 고작 한 마디의 말이라는 것. 그래서 말은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2/43/cover150/k7721382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2434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초압축 조선사 - [초압축 조선사 - 500년 역사가 단숨에 읽히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84</link><pubDate>Sat, 23 May 2026 16: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8713&TPaperId=172930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1/89/coveroff/k2821387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8713&TPaperId=172930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압축 조선사 - 500년 역사가 단숨에 읽히는</a><br/>로빈의 역사 기록 지음, 유정호 옮김 / 믹스커피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조선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왕조다. 세종대왕의 얼굴은 지갑 속에 있고, 사도세자의 비극은 영화관 스크린을 채웠으며, 흥선대원군의 쇄국은 교과서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런데 이 익숙함이 때로는 함정이 된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은 알지만 맥락은 모르고, 사건은 기억하지만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그 여파가 어디까 지 이어졌는지는 흐릿하다. 이번에 읽은 &lt;초압축 조선사&gt;는 바로 그 흐릿함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따 라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임을 깨닫게 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모든 국가는 어떤 이념 위에 세워진다. 조선의 경우, 그 설계자는 정도전이었다. 그는 성리학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통치의 언어로 삼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구상한 국가 운영의 핵심이 왕이 아닌 재상이었다는 점이다. 왕은 세습으로 태어나지만, 자질은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판단에 수백만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정도전은 그 위험을 분산하고자 했다. 유교적 소양을 갖춘 현명한 재상들이 국정을 주도하는 체제, 즉 지금의 언어로 바꾸자면 일종의 내각 중심제를 꿈꿨다. 그러나 설계도가 현실이 되는 순간, 이상은 종종 굴절된다. 이황과 이이는 같은 성리학의 기반 위에 서 있었지만, 실천의 방향은 달랐다. 이황은 군주 스스로의 내면적 수양을 강조했다. 성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외부에 서 강제할 수 없고, 군주 자신이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닦아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반면 이이는 현실주의자였다. 군주가 완벽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현명한 신하가 군주의 부족함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았다. 두 시각은 서로 모순되지 않지만, 강조점이 다르다. 이황의 길은 이상적이며, 이이의 길은 실용적이다. 이 두 관점의 긴장은 조선 정치사 전체를 관통한다. 이상적인 군주가 등장하면 나라가 번영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신하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 신하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는 방식은 늘 공정하지 않았다. 재상 중심의 정치가 붕당의 이권 다툼으로 변질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도전이 꿈꿨던 현명한 재상의 합의체는, 역사 속에서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상대를 역적으로 모는 환국의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숙종은 이 붕당 간의 대립을 오히려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왕권을 강화했다. 그 결과 건전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사실상 무너졌다. 설계도는 훌륭했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욕망이 설계를 비틀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 중 하나는 좋은 의도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다. 조선사는 그 사례로 가득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남긴 것은 폐허만이 아니었다. 전쟁은 국가 재정을 바닥냈고, 조선은 살아남기 위해 납속책과 공명이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다. 돈을 내면 관직을 주고, 이름 없는 임명장을 대량으로 찍어냈다. 당장의 재정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신분 질서의 균열이었다. 수백 년간 유지되어 온 계층 구조가 금전 앞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위기 앞에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 사회의 근간을 바꿔놓았다. 대동법의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각 지역의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던 방식을 쌀로 통일한 이 제도는 농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개혁이었다. 그런데 대동법이 시행되자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상업 자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수공업자들은 공인과 상인으로부터 자본과 원료를 미리 받아 물건을 만드는 선대제 방식으로 편입되었다. 조선은 농업 사회를 유지하려 했 지만, 정책 하나가 시장 경제의 싹을 틔우는 데 기여한 셈이다. 역사는 의도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명종 시대의 녹봉제 전면화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관료들이 녹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자, 그들은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토지에서 찾으려 했다. 그 결과 지주 전호제가 확산되었고, 토지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국가가 관료의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제도가, 역설적으로 토지 겸병과 소작 농민의 확산을 가속화한 것이다. 그리고 정조. 조선 후기 최고의 군주라 불리는 그의 개혁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했다. 규장각 같은 국왕 직속 기구를 통해 인재를 키우고, 기존의 견제 기구들을 약화시키면서 왕 중심의 통치를 완성해 나갔다. 그의 재위 기간에는 분명 그것이 작동했다. 그러나 강력한 군주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 구조였다. 정조 사후, 어린 왕들이 연달아 즉위하자 그 빈자리를 왕실 외척이 채웠고, 세도 정치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이 펼쳐졌다. 정조의 왕권 강화는 그 자신에게는 옳은 선택이었지만, 그 이후를 위한 제도적 안전망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세도정치 하에서 삼정의 문란은 필연적이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수탈 로 흐르고, 수탈이 극에 달하면 민중은 일어선다.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봉기는 그 결말이었다. 역사는 언제나 과함에 대한 반작용을 만들어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정반합이라는 헤겔의 변증법적 개념이 조선사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왕권이 강해지면 신권이 반발하고, 그 긴장 속에서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진다. 이상적인 제도가 현실의 욕망과 부딪히면서 변형되고, 그 변형이 또 다른 문제를 낳으며, 그 문제에 대한 반응이 다시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끝없는 이어짐이다. 조선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만을 아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뿌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 성씨의 부계 계승, 장자 중심의 가족 문화, 학벌과 계층의 상관관계, 권력의 집중과 견제의 실패가 반복되는 패턴들이 모두 조선이라는 시간 속에서 형성되거나 강화된 것들이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정확히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의 관성은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저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메시지는 거기에 있다. 500년 전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의 우리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1/89/cover150/k2821387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01893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혁신의 지리학 - [혁신의 지리학 - 혁신은 어디에서 탄생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76</link><pubDate>Sat, 23 May 2026 16: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8718&TPaperId=172930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9/65/coveroff/k47213871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8718&TPaperId=172930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혁신의 지리학 - 혁신은 어디에서 탄생하는가</a><br/>메흐란 굴 지음, 홍석윤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세계 지도를 펼쳐놓고 기술 혁신의 중심지를 표시해보면, 놀랍도록 몇 개의 점으로 수렴된다. 실리콘밸리, 선전, 싱가포르, 서울, 취리히, 베를린... 이 작은 점들이 인류 기술 문명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왜 혁신은 이처럼 특정 장소에 집중되는가? 왜 어떤 도시와 국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다른 곳은 그것을 소비하는데 그치는가? 이 질문은 국가 의 운명과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과제다. 저자는 이 묵직한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산업혁명이 왜 하필 서유럽에서 시작되었는지, 왜 첨단 기술 기업들이 미국의 몇몇 도시에 집결해 있는지를 탐구하면서, 혁신의 지리적 불균 등성을 설명하는 구조적•문화적 요인들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북미, 유럽, 동아시아의 여덟 개 국가를 직접 발로 뛰며 약 200명의 기술 분야 저명인사들과 인터뷰한 이 책은, 혁신이라는 현상을 천재성이나 우연의 산물로 보지 않고, 반복 가능 하고 분석 가능한 사회적 현상으로 파악한다.<br>혁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지역은 동아시아다. 중국, 한국, 싱가포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공통적으로 강력한 국가의 역할을 통해 기술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의 사례는 단연 가장 극적이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는 데 급급하던 중국은, 이제 해외 직접 투자 유출액이 유입액을 초과하는 기술 수출국으 로 변모했다. 텐센트의 궤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규모 데스크톱 메신저 서비스로 출발한 텐센트는 오늘날 중 국인의 일상 전반을 지배하는 거대 플랫폼 기업이 되었으며, 해외 투자 역시 막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선전(Shenzhen)과 같은 경제특구가 있다. 중국 정부는 지리적으로 격리된 구역을 설정해 시장 친화적 정책을 시험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실패의 위험을 통제하면서도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중 기술 협력의 역할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아시아(MSRA)가 2025년 가장 많이 인용된 컴퓨터 과학 논문을 배출했는데, 공동 저자 네 명 모두 중국에서 교육받았고 미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었다. 이는 중국이 더 이상 서구 기술의 소비자나 모방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물론 기초 연구(R&amp;D) 역량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앞서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실행과 배포(execution and deployment) 측면에서 오히려 미국을 능가하는 면이 있다. 선진화된 전자 결제 시스템, 산업 자동화, 전기차 보급률, 청정에너지 생산 능력이 이를 증명한다. 중국 사회가 변화에 더 유연하고 수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싱가포르의 사례는 소국이 어떻게 혁신의 허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예시다. 싱가포르 정부는 '테크노프 레너십 혁신 펀드'와 같은 공격적인 스타트업 지원 정책, 세계 최고 수준의 사업 용이성, 그리고 개방적인 이민 정책을 통 해 외국 기업과 인재를 끌어들였다. 스탠퍼드 MBA 졸업 후 싱가포르에 정착해 가레나(Garena)를 창업한 중국인 리샤오 등의 사례,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탄생한 차량 공유 서비스 그랩(Grab)을 성공적으로 유치한 사례는 싱가포르의 전략이 실질적인 성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ASEAN 전역이 양국 모두와 교류하려 는 기업들의 새로운 기술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혁신 방식은 또 다른 독특함을 지닌다.<br>삼성, 현대, LG와 같은 재벌(chaebol), 즉 가족 지배 대기업 집단이 혁신의 핵심 주체였다. 군사 독재 시절부터 국가 주도 경제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육성된 이 재벌들은 저기술 대량 생산에서 고부가가치 첨단 전자 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삼성이라는 기업 하나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의 생애 전반에 걸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거대 기업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모델은 역설적 이게도, 기술 혁신이 기존의 정치경제적 권력 구조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동했 다는 점에서 비판적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동아시아의 혁신이 국가의 강력한 의지와 전략적 개입에 의해 추동되었다면, 서구의 혁신은 문화와 제도적 환경의 산물이 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실리콘밸리는 혁신 생태계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된다. 아나 리 색세니언의 연구가 밝혔듯, 실리 콘밸리의 핵심 경쟁력은 보스턴과 같은 다른 기술 도시들에 비해 훨씬 유연하고 개방적인 문화에 있다. 이 문화는 세 가지 특징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혁신을 촉진한다. 첫째, 기업 간 활발한 이직이 아이디어의 교차 수분(cross-pollination)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지분을 현금화하는 능력, 즉 주식 상장을 통한 유동성 확보가 새로운 스타트업 창업의 자본을 제공 한다. 셋째, 실패에 대한 낙인이 없는 문화가 도전을 장려한다. 이에 더해, 저널리스트 세바스찬 말라비가 강조한 벤처 캐 피탈의 발달은 실리콘밸리에 독특한 리스크 수용 문화를 심어주었고, '문샷(moonshot), 즉 성공 확률이 낮지만 성공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담한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스위스의 혁신은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스위스는 글로벌 혁신 지수 1위 국가임에도, 유니콘 스타트업의 수로만 혁신을 측정하는 협소한 시각으로는 그 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br>스위스의 혁신은 ETH 취리히 같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 완전히 전기화된 청정에너지 기반 철도 시스템, 그리고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인 대형 강입자충돌기(LHC)와 같은 거대 과학 인프라에서 나온다. 이는 혁신이 반드시 스타트업과 벤 처 캐피탈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아닌 7인 협의체가 국가를 이끄는 정치 문화처럼, 스위스 사회 전반에는 성숙하고 합의 지향적인 '혁신의 생활화'가 스며들어 있다. 독일의 경우, 중소기업 혁신 모델인 '미텔슈탄트(Mittelstand)'가 주목을 끈다. 가족 소유의 중소기업들이 특정 틈새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구축하는 전략은 독일 산업의 근간이다. 이 모델은 깊이 있는 기술 혁신을 가능하게 하지만, 공개 주식 시장 접근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스케일업(scale-up)이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안고 있다. 이는 혁신의 방식이 국가마다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를 보여주는 동시에, 각 방식이 그 자체로 고유한 강점과 약점을 지님을 시사한다. 캐나다의 AI 굴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캐나다 정부와 대학 생태계는 외국 출신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함으로써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 사례는 혁신에 있어 이민 정책의 전략적 중요성을 웅변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민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발이 이 개방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는, 혁신 생태계가 얼마나 사회적·정치적 맥락에 민감한지를 일깨워준다.<br>동아시아와 서구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혁신을 촉진하는 조건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낸다. 양질의 공교육과 의료, 연구개발 투자, 이민에 대한 개방성, 사업하기 좋은 제도적 환경과 같은 공공재는 혁신의 토양이다. 여기에 벤처 캐피탈이 조성하는 리스크 수용 문화,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적 분위기, 지분 분배를 통한 부의 순환,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아이디어 교류가 더해질 때 혁신의 꽃이 핀다. 중국의 성공은 권위주의적 국가 통제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고, 실리콘밸리의 활력은 미국적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문화의 산물이다. 스위스의 혁신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중립성과 정밀성의 문화 위에 서 있다. 혁신의 조건은 보편적이지만, 그 발현 방식은 철저히 역사적•문화적•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 아직 충분히 탐색되지 않은 영역들도 존재한다. 비서구권 혁신 주체들의 목소리, 스타트업 중심 지표를 넘어선 특허•논문•대학 등 다양한 혁신 지표, 그리고 각국의 혁신 모델이 서로 어떻게 경쟁하고 수렴하는지에 대한 비교 분석은 여전히 더 깊은 탐구를 기다리고 있다. 혁신의 지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혁신은 결코 우연이나 천재성의 산물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제도, 문화, 인적 자본, 사회적 신뢰의 복합적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혁신을 원하는 사회는 단기적인 정책 처방에 앞서, 자신들의 사회가 어떤 토양을 지니고 있는지를 먼저 솔직하게 직면해야 한다. 혁신의 지도는 이미 그려져 있지만, 그 위에 자신만의 좌표를 새기는 것은 결국 각 사회의 몫이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9/65/cover150/k47213871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9659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먹는 식물 도감 - [먹는 식물 도감 - 전 세계 760여 종 식용 식물 총망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68</link><pubDate>Sat, 23 May 2026 16: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8301&TPaperId=172930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1/52/coveroff/k1921383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138301&TPaperId=172930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먹는 식물 도감 - 전 세계 760여 종 식용 식물 총망라!</a><br/>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아침마다 밥을 짓는다. 쌀을 씻어 솥에 안치고,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서 있다 보면,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이 작고 흰 낱알 하나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이 한때 초록빛 논에서 바람에 흔들리던 뼈였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 걸까. 찬장을 열면 양파가 있고, 냉장고에는 시금치 한 봉지가 구겨져 있다. 된장찌개를 끓이려 애호박을 썰고, 참기름을 두른 팬에 시금치를 볶는다. 우리가 매일 치르는 이 평범한 식사의 의식 속에는, 사실 수천 년에 걸쳐 인간과 식물이 함께 쌓아 온 오랜 대화가 담겨 있다. 인간이 식물을 선택한 게 아니라, 식물이 인간을 살아남게 해 주 었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마움을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잊는다. 마트의 진열대는 언제나 깔 끔하고 풍요롭고, 계절과 무관하게 딸기와 수박이 나란히 놓여 있는 세상에서, 식물의 본래 얼굴을 기억하기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 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lt;먹는 식물 도감&gt;은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들길을 걷다 노란 꽃이 핀 풀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무슨 꽃인지는 몰랐다. 그냥 예쁜 노란 꽃,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존재와 완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와 같다. 우리는 이름을 부를 때 비로소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니까. 어린 시절, 할머니는 뒷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이름 으로 불렀다. "이건 쑥이야. 봄에 뜯어다 떡 해 먹으면 향이 기막히지.""저건 질경이, 발에 밟혀도 꿋꿋하게 산다." 할머니 의 손은 언제나 흙 냄새가 났고, 눈은 풀잎 하나에도 오래 머물렀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가 내게 식물의 이름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세상을 천천히, 깊이 들여다보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름을 안다는 건 암기가 아니다. 하나의 존재를 내 삶의 지도 속에 새기는 일이다. 쑥이라는 이름을 알고 나면, 봄철 들판에서 쑥이 보이기 시작한다. 쑥 을 보면 할머니의 손이 떠오르고, 된장국 냄새가 스친다. 이름 하나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쌓여 삶이 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학교 운동장 한켠에 심어진 나무 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봄이면 그 나무에 꽃이 피고, 여름이면 그늘을 내어 주고, 가을이면 낙엽이 지며 아이들의 발밑을 바스락거리게 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나무는 조용히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아이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아도, 사실 몸으로 먼저 기억한다. 처음 손으로 잡아 본 나뭇잎의 감촉, 이마에 내려 앉은 꽃잎, 아스팔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풀 한 포기를 발견했을 때의 그 묘한 흥분이다. 식물은 교실 밖의 교과서다. 아 이가 민들레 홀씨를 후 불어 날리며 씨앗이 바람을 타고 퍼지는 원리를 몸으로 이해하는 순간, 어떤 강의보다 더 깊은 배움이 일어난다. 손에 흙을 묻혀 씨앗을 심고, 매일 물을 주며 새싹이 올라오는 걸 확인하는 아이의 눈빛에는, 숫자와 문자로는 전달할 수 없는 어떤 진지함이 깃들어 있다. 그 진지함은 교실에서 배우는 집중력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살아 있는 것과 마주하는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집중, 즉 삶에서 우러나오는 배움의 자세다. 어른들은 종종 공부를 따로 떼어 생각한다. 국어, 수학, 과학이 각각 다른 서랍 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하지만 식물 하나를 제대로 알아 가는 과정에는 그 모든 것이 녹아 있다. 이름의 유래를 찾으면 언어와 역사가 나오고, 꽃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생물학이 펼쳐지고, 수분과 광합성을 이해하다 보면 화학과 물리가 따라온다. 식물은 분리된 지식이 아니라, 통합된 삶의 언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봄날 아침, 면 소재 셔츠를 입으며 생각한다. 이 부드러운 흰 천이 한때 목화 꽃이었다는 것을, 목화는 여름내 흰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솜 같은 열매를 내어 준다. 그 솜을 따서 실을 뽑고, 실을 엮어 천을 만들고, 그 천이 내 몸을 감싸는 옷이 된다. 이 기나긴 여정을 생각하면, 옷 한 벌이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앉아 있는 나무 의자, 잠드는 침대 프레임,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 심지어 연필 한 자루까지. 따지고 보면 우리 삶의 물질적 기반 상당 부분이 식물에서 비롯되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식물과 함께 먹고, 입고, 자고, 짓고, 병을 고쳐 왔다. 그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놀랍고 또 경이롭다. 약용식물의 세계도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생강차, 쑥차, 결명자차 한 잔에는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이 경험으로 축적해 온 지혜가 담겨 있다. 어떤 풀이 열을 내리고, 어떤 잎이 소화를 돕는지를 인류는 책이 아 니라 몸으로, 세대를 이어 기억해 왔다. 이제 그 기억이 점점 옅어지고 있지만, 식물을 알아 가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그 오래된 지혜의 실마리를 다시 잡아당길 수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늘 퇴근길,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문득 발을 멈춰 보고 싶다. 그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 언제 꽃을 피우는지,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궁금해 보고 싶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놓인 오늘의 재료들을 잠시 들여다보고 싶다. 그것들이 햇빛을 받고, 비를 맞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라났을 어딘가의 들판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책은 나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식물은 조용하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바라볼 때, 식물은 분명 무언가를 전한다. 삶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 지구 위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한다. 초록의 언어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어쩌면 모든 배움의 시작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인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51/52/cover150/k1921383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51526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마존 웹 서비스 AWS Discovery Book - [아마존 웹 서비스 AWS Discovery Book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60</link><pubDate>Sat, 23 May 2026 16: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7657&TPaperId=172930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55/coveroff/k9621376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7657&TPaperId=172930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마존 웹 서비스 AWS Discovery Book - 개정판</a><br/>권영환 지음 / 정보문화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서버를 산다'는 것은 기업에게 꽤 무거운 결정이었다. 전산실을 짓고, 냉각 장치를 설치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트래픽이 몰릴 것을 대비해 미리 여분의 장비를 확보해 두어야 했다. 그 모든 과정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예측'이라는 불확실한 작업을 전제로 했다. 비즈니스가 잘될지, 사용자가 얼마나 몰릴지, 데이터가 얼마나 쌓일지,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업들은 인프라에 먼저 투자해야 했다. 아마존 웹 서비스(AWS)는 바로 그 구조를 뒤집었다. 이제 기업은 서버를 '소유'하는 대신 '사용'한다. 필요한 만큼만 켜고, 필요 없으면 끈다. 트래픽 이 갑자기 폭발해도 클릭 몇 번으로 자원을 늘릴 수 있고, 반대로 조용한 새벽에는 자원을 줄여 비용을 아낀다. 이 단순해 보이는 변화가 실은 산업 전체의 경쟁 방식을 바꿔놓았다. 기술을 많이 아는 것이 경쟁력이던 시대에서, 기술을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전통적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규모'는 곧 '경쟁력'이었다. 더 큰 공장, 더 많은 인력, 더 넓은 창고를 가진 기업이 시장을 지배했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서는 이 공식이 달라진다. 지금의 경쟁은 규모보다 속도에서 갈린다. 얼마나 빠르게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가. 얼마나 신속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꿀 수 있는가. 얼마나 즉각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곧 기업의 생존력을 결정한다. AWS가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 속도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다. EC2로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고, S3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CloudFront로 전 세계 사용자에게 콘텐츠를 빠르게 전달하고, RDS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고, IAM으로 보안을 설정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과거에는 수개 월이 걸렸다면, 지금은 몇 시간 안에 가능하다. 이것이 스타트업이AWS를 선택하는 이유다. 초기 자본이 없어도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고, 성장하면 인프라도 함께 성장하며, 실패하면 비용 손실을 최소화하며 접을 수 있다. 실험의 비용이 낮아 질수록, 도전의 횟수는 늘어난다. 그리고 도전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혁신의 가능성도 커진다. 대기업이 AWS를 선택하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글로벌 수십 개 리전에 분산 배포된 인프라를 자체 구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AWS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닛플릭스가 전 세계 190개국 사용자에게 동시에 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것도, 에어비앤비가 수백만 건의 예약을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그 기반에는 AWS가 있다. 클라우드는 비용 절감 도구가 아니다. 기회를 확장하는 플랫폼이다. 이 관점의 전환이 AWS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AWS의 진화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서버리스(Serverless) 와 생성형 AI 의 결합이다. 서버리스 컴퓨팅은 이름 그대로 개발자가 서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Lambda 같은 서비스가 대표적인데, 코드를 올려두면 이벤트가 발생할 때만 실행되고, 실행된 만큼만 비용이 청구된다. 서버를 항상 켜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비용 절감을 넘어서, 개발자가 인프라 관리 대신 서비스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구조가 AI 시대와 맞물리면서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는 막대한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하지만, 그 수요는 불규칙하다. 특정 시간 대에 집중되기도 하고, 특정 기능에만 부하가 몰리기도 한다. 서버리스 구조는 이 불규칙한 수요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AWS의 Amazon Bedrock은 이 맥락에서 등장한 서비스다. 다양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API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기업들이 AI 모델을 직접 학습시키지 않아도 고성능 AI 기능을 서비스에 통합할 수 있게 한다. Lambda와 Apl Gateway를 조합하면, 서버를 하나도 운영하지 않고도 나만의 AI 비서를 만들 수 있다. AI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진입 장벽이 급격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AI 연구소가 있어야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AWS 계정 하나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산업 구조 자체 를 재편하고 있다. 패션 기업도, 리테일 기업도, 금융 기업도 이제는 데이터와 Al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지 않으면 시장에 서 뒤처지는 시대가 왔다. 그리고 그 경쟁의 무대가 AWS라는 플랫폼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AWS에 대한 이해는 이제 개발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기획자가 클라우드 구조를 이해하면 더 현실적인 서비스 기획을 할 수 있다. 투자자가 AWS 생태계를 알면 플랫폼 기업의 해자를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마케터가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개념 을 이해하면 더 정밀한 타겟팅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기술은 항상 변한다. EC2가 중요하던 시대에서 Lambda가 중심이 되고, 이제는 Bedrock과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은 일관되다. 더 추상화되고, 더 접근하기 쉬워지고, 더 많은 가능성을 더 적은 비용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시대를 설계할 수 있다. 클라우드를 배운다는 것은 어떻게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어떻게 산업이 움직이며, 어떻게 미래 가 구성되는지를 이해하는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다. 이제 그 언어를 읽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회계를 모르거나 영어를 못 하는 것과 같은 핸디캡이 될지 모른다. 기술의 시대는 기술을 만드는 사람만의 시대가 아니다. 기술을 이해하고, 읽고, 활용하는 사람 모두의 시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7/55/cover150/k9621376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7553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매도의 기술 - [매도의 기술 - 손실은 최소, 수익은 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54</link><pubDate>Sat, 23 May 2026 15: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8081&TPaperId=172930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5/27/coveroff/k2621380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8081&TPaperId=172930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매도의 기술 - 손실은 최소, 수익은 최대</a><br/>알렉스 강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식 시장에 발을 들인 사람치고 이런 질문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사도 될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다음 질문은 잘 들려오지 않는다. "언제 팔아야 할까요?" 매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미 절반의 게임을 끝낸 것처럼 느낀다. 마치 좋은 씨앗을 심으면 풍성한 수확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처럼. 하지만 농부는 안다. 씨앗을 심는 것과, 그것을 제때 거두는 것은 전혀 다른 기술이라는 사실을. 수확 시기를 놓친 작물은 밭에서 썩어 버린다. 주식도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시장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얼굴을 바꾼다. 오전의 급등이 오후의 급락으로 뒤집히고, 어제의 호재가 오늘의 악재로 전환된다. 알고리즘이 수천 건의 매매를 1초 안에 처리하고, 소셜 미디어의 한 줄 문장이 시장 전체를 흔든 다. 이런 환경에서 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반응이 아니라, 더 단단한 원칙이다. 그리고 그 원칙의 핵심은 언제나 같은 곳에 있다. 언제, 어떻게 팔 것인가.<br>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시장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람의 뇌는 수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최적화되어 왔다. 손실은 위험으로, 이익은 안도로 인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금액의 손실을 이익보다 약 두 배 더 크게 느낀다. 이른바 손실 회피 편향이다. 이 편향은 주식 시장에서 치명적으로 작동한다. 수익이 10%일 때 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막상 30%가 되면 오히려 팔지 못한 다. '조금만 더'라는 욕심이 이성을 덮어버린다. 반대로, 손실이 5%일 때는 '금방 회복되겠지'라며 버티다가, -30%가 되어서야 패닉 셀링을 한다. 수익은 일찍 잘라내고, 손실은 길게 늘어뜨리는 이 패턴은 수백만 명의 투자자가 공유하는 공통적인 실수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매도 계획 없이 매수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 다. 어떤 종목을 살지, 얼마나 살지는 철저하게 분석하면서도, 언제 팔지는 감에 맡긴다. 그 '감'이라는 것은 사실 감이 아니라, 공포와 탐욕이 번갈아 가며 내리는 명령이다. 공포가 지배할 때는 손실을 확정짓기 싫어 버티고, 탐욕이 지배할 때는 더 오를 것 같아 팔지 못한다. 결국 투자의 실패는 종목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팔아야 할 때 팔지 못한, 혹은 팔지 말아야 할 때 팔아버린 감정의 실패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흔히들 말한다. "매수는 기술이고, 매도는 예술이다"라고.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예술은 영감에 의존하지만, 투자는 원칙에 의존해야 한다. 매도를 예술로 낭만화하는 순간, 투자자는 결국 그 '영감'을 기다리다 최적의 시기를 놓치게 된다. 매도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축은 손실의 통제다. 투자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수학이 있다. 원금의 10%를 잃으면 회복하는 데 약 11%의 수익이 필요하다. 그런데 50%를 잃으면 다시 원금으로 돌아가기 위해 100%의 수익이 필요하다. 이 비대칭성이 핵심이다.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회복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손절은 실패가 아니다. 손절은 자산을 지키는 가장 이성적인 결정이다. 잡초는 뿌리가 알을 때 뽑아야 한다. 뿌리가 깊어질수록 밭 전체가 망가진다. 손실이 작을 때, 아직 감당할 수 있을 때, 기계적으로 정해놓은 기준선에서 손절하는 습관이 장기적으로 계좌를 살린다. 감정이 아니라 규칙이 작동하는 순간, 투자자는 비로소 시장의 노예에서 벗어난다.<br>두 번째 축은 수익의 극대화다.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탐욕을 부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추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서두르지 않고, 추세가 꺾이는 신호가 오면 미련 없이 수확하는 것이다. 이 원칙을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20세기 초 월가를 지배했던 제시 리버모어다. 그는 시장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포지션을 유지하고, 시장이 반전의 신호를 보내는 순간 단호하게 청산했다. 더 오를 것 같다는 기대보다, 지금 벌어놓은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그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분할 매도는 이 두 축을 가장 현실적으로 결합한 전략이다. 수익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절반을 팔아 이익을 확정하고, 나머지 절반은 추세를 따라간다. 주가가 더 오르면 남겨놓은 절반에서 추가 수익을 거두고, 주가가 내리면 이미 확정된 수익이 손실을 완충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심리적 안정감이다. '팔고 나서 더 오르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사라지면, 투자자는 더 냉정하고 더 이성적으로 시장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br>개별 종목의 매도 타이밍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시장 전체의 온도를 읽는 능력이다. 1989년, 일본의 닛케이 지수가 38,900포인트를 찍었을 때 시장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무적'이었다. 누구나 부동산과 주식에 뛰어들었고, 이 상승세가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일본 주식 시장은 역사적인 붕괴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지수를 회복하는 데에는 무려 3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장이 과열되었다는 신호는 언제나 존재한다. 버핏 지수(시가총액을 GDP로 나 눈 값)가 임계점을 넘어설 때, 평범한 주변 사람들이 주식 얘기를 하기 시작할 때, 공포•탐욕 지수가 극단적인 탐욕 구간에 머물 때. 이런 신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켜진다면, 그것은 시장이 보내는 출구 신호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종복을 찾는 것이 아니다. 주식 비중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시장 전체가 무너질 때는 우량주도 함께 떨어진다. 가장 강한 배도 태 풍 앞에서는 무력하다. 이럴 때 현금을 보유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가장 공격적인 선택이다. 현금은 기회가 왔을 때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장이 극도의 공포에 빠졌을 때, 모두가 주식을 내던지고 도망갈 때, 그때가 오히려 씨앗을 뿌릴 시간일 수 있다.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수확한다. 겨울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없다. 계절을 읽는 안목이 투자의 성패를 결정한다.<br>주식 투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단 한 번의 대박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자산을 불려나가는 것인가. 20대와 30대에게 장기 투자는 분명 강력한 무기다. 시간이 복리의 마법을 만들고, 꾸준히 쌓인 자산은 인생을 바꾼다. 그러나 동시에 삶은 지금도 흘러간다. 젊고 건강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억을 만들어야 할 때, 통장의 숫자만 바라보며 30년을 버티는 것이 과연 올바른 답인지는 각자가 생각해볼 문제다. 투자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 수단이 삶을 지 배해버리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렇기에 매도는 단순히 주식을 파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노력을 실제 삶으로 변환시키는 행위다. 수익을 확정짓고, 그것을 현실의 가치로 바꾸는 과정이다. 한 종목에서 100%의 수익을 노리며 1년을 기다리는 것보다, 10~20%의 수익이 나는 구간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누적하는 것이 복리 관점에서 훨씬 현실 적이고 강력하다.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투자자가 결국 이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번의 대박보다 수십 번의 안타가 더 많은 점수를 만든다.​투자를 시작하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언제 팔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이 없다면, 매수 버튼은 아직 이르다. 매도 계획은 매수 전에 세워져야 한다. 수익이 얼마가 되면 팔 것인지, 손실이 얼마가 되면 손절할 것인지, 시장의 어떤 신호가 왔을 때 비중을 줄일 것인지. 이 세 가지 질문에 명확한 답을 가진 투자자만이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시장은 언제나 위협적이고, 언제나 유혹적이다. 두려움과 탐욕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을 내린다. 그 선택의 질을 높이는 것이 투자 공부의 본질이다. 매수는 투자의 시작이고, 매도는 투자의 완성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5/27/cover150/k2621380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25274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주 보는 변호사 - [사주 보는 변호사 - 전직 검사가 법전 대신 만세력부터 펼친 이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46</link><pubDate>Sat, 23 May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107&TPaperId=172930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4/79/coveroff/k7121381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107&TPaperId=172930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주 보는 변호사 - 전직 검사가 법전 대신 만세력부터 펼친 이유</a><br/>안종오 지음 / 노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 안에 살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찰나의 순간에 답을 내놓는다. 판례를 검색하고, 계약서를 분석하며, 논증의 허점까지 짚어낸다. 법조의 영역에서도 AI는 이미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다. AI가 정밀해질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오래된 것을 찾는다. 명리학 상담 시장은 커지고 있고, '사주'를 검색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 현상을 단 순히 불안한 현대인의 미신적 퇴행으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안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 검사로 시작하여 변호사로 수천 건의 사건을 다뤄온 안종오 작가는 그 갈증을 가장 예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해소한다. 법정의 언어와 명리의 언어를 나란히 세우고, 그 사이에서 인간을 읽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 취향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그의 여정이 곧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어떤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br>AI는 "무엇이 사실인가"에 탁월하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인식하며, 확률적으로 가장 정확한 답을 도출해 낸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결정적인 질문들은 대개 사실의 영역이 아닌 곳에 있다. "나는 지금 나아가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이 선택이 나에게 맞는 선택인가?" "왜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이 물음들은 데이터로 풀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판례를 학습한 시도, 수백만 건의 상담 기록을 분석한 알고리즘도, "당신의 지금 이 순간"에 대 해서는 말을 아낀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맥락의 문제이고, 맥락은 언제나 개별적인 인간의 서사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안종오 변호사가 명리학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이 맥락을 읽는 언어였다. 그는 수많은 의뢰인을 만나며 깨달았다. 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져도 고통을 최소화하는 경우가 있고, 법리가 불리한 쪽이 삶 전체로는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논리와 증거라는 두 개의 축만으로는 인간의 선택과 결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인식, 그것이 그를 사주라는 고전적 지혜 앞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이성의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성의 확장이다. 냉철한 논리로 훈련된 법조인이 명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주라는 도구에 담긴 인식론적 가능성을 방증한다. 그는 사주를 미래를 결정하는 신탁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가진 타고난 기질의 구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타나는 에너지의 패턴을 읽어내는 분석의 틀로 바라본다.<br>생성형 AI의 시대에 가장 뜨겁게 부상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자기이해'다. 코칭, 심리검사, MBTI, 에니어그램, 강점 진단... 현대인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도구를 동원한다. 그런데 이 모든 도구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그 물음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주 명리가 현대적으로 재조명받는 맥락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출생 시점의 천문적 배치를 통해 한 사람의 기질과 삶의 리듬을 해석하려는 수천 년의 집단적 관찰 체계다. 물론 그 정확성이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논쟁과는 별개로, 명리학이 제공하는 틀은 인간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구조적으로 살피고, 현재 처한 시절의 흐름을 객관화하는 데 유용한 언어 체계가 될 수 있다. 저자는 사주를 일종의 에너지 예산안으로 본다. 고정된 감옥이 아니라, 내가 이번 생에 어떤 자원을 가지고 출발했는지를 알려주는 초기 설계도. 중요한 것은 그 설계도를 읽는 법을 알고, 주어진 자 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주권자로서의 선택을 하는 일이다. 컨설팅 회사가 기업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여 전략을 수립하듯, 사주는 개인이 자기 자신을 가장 정직하게 컨설팅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결정론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질이 이러하다"는 인식은 맹목적으로 상황에 휩쓸리는 대신, 자신의 고유한 결을 이해한 채로 선택의 자리에 서게 한다. 신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대화의 주도권을 본능적으로 잡는다는 관찰, 신약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타인의 반응을 살피며 말의 끝을 흐린다는 통찰은 단순한 점술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관찰에서 비롯된 기질의 언어 이며, 자기 인식의 거울이다.<br>공자는 논어에서 스스로의 삶을 회고하며 말했다.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 서른에 섰으며, 마흔에 흔들리지 않았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고. 그 마지막 도달 지점이 천명의 인식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지혜가 궁극적 으로 향하는 곳은 자신의 때와 하늘의 때와 세상의 때가 일치하는 지점을 알아보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AI 시대는 역설적으로 이 오래된 물음을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알고리즘은 최적의 타이밍을 계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 데이터 의 평균에서 도출된 확률이다. 그러나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은 언제나 평균을 벗어난 지점에서 일어난다. 파도가 일어나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거나, 멈춰서 힘을 길러야 할 때 무모하게 돌진하는 것, 이 진퇴의 실패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흔들어 놓는지는 수천 건의 법정 사건이 증명한다. 저자가 주목한 명리학의 핵심은 바로 이 시절의 감각이다. 나의 대운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알고, 그에 맞게 공세와 수세를 조율하는 지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오래된 경구는 영원한 상승이 없다는 경고인 동시에, 지금의 내리막이 영원하지 않다는 위로이기도 하다. 이 흐름의 감각을 내면화한 사람은 호운에 교만하지 않고 흥운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주를 개인의 삶에 적용하는 가장 현명한 태도다. 특히 법률적 분쟁의 세계에서 이 시절 감각은 더욱 중요하다. 같은 사건도 어느 시기에 제기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는 안종오 변호사의 통찰, 2년간 팔리지 않던 부동산이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자 3일 만에 매매된 사례는 인간의 심리와 시장의 흐름, 그리고 개인이 가진 에너지의 파동이 서로 맞물리는 접점이 존재한다는 현실적인 관찰이다.<br>생성형 AI는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더 빠르게 추론하며, 더 그럴듯한 언어로 답할 것이다. 그러나 AI는 결코 당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AI는 선택을 앞두고 밤새 뒤척이는 불안을 함께 앓지 않는다. 나의 목소리가 떨리는 순간 그 결을 읽어내지 못하고, 말의 끝자리가 흐려지는 이유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지 못한다. 사주 보는 변호사의 진정한 가치는 법의 언어로 현실을 정리하면서도, 명리의 언어로 인간의 내면과 시절의 흐름을 읽어내는 복합적 시선에 있다. 그것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 오히려 Al 시대일수록 더욱 희소해지고 더욱 소중해지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인간은 데이터가 아니다. 인간은 상처이고 욕망이며, 후회이자 기대다. 그리고 그 모든 복잡성을 하나의 삶의 서사로 이어가는 존재다. 사주가 그 서사를 더 잘 이해하는 언어가 된다면, 그리고 법이 그 서사가 현실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면, 두 언어가 만나는 자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인간적인 나침반이 될 수 있다.​지금 나아가야 할 때인가, 멈춰야 할 때인가. 이 질문은 수천 년 전 공자도, 수백 년 전 사주를 연구한 명리학자도, 그리고 법정에서 인간의 갈림길을 목격해온 안종오 변호사도 끊임없이 마주한 물음이다. AI는 이 질문에 확률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파도를 뚫고 나아가는 결단, 혹은 항구에 닻을 내리는 용기는 결국 인간 스스로의 몫이다. 그 결단을 내리기 전에 자신의 기질을 알고, 시절의 흐름을 읽으며, 부족함을 인정하고 채워나가는 과정.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메시지다. 가장 좋은 나침반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자가 세상을 가장 잘 항해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도구로서, 오래된 지혜와 현대적 이성이 손을 맞잡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AI가 줄 수 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게 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4/79/cover150/k7121381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4791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하루 10분 걷듯이 달렸을 뿐인데 - [하루 10분 걷듯이 달렸을 뿐인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43</link><pubDate>Sat, 23 May 2026 15: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930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8201&TPaperId=172930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7/52/coveroff/k8421382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8201&TPaperId=172930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루 10분 걷듯이 달렸을 뿐인데</a><br/>다나카 히로아키 지음, 나지윤 옮김 / 향기책방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는 오랫동안 달리기를 두려워했다. 정확히는 ' 달려야 한다 '는 생각 자체를 회피해 왔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운동이라면 으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무릎이 욱신거리고, 다음 날 온몸이 굳어버리는 그 불쾌한 기억과 함께 떠올랐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의 오래달리기는 고문에 가까웠고, 헬스 러닝머신 위에서 몇 분을 버티다 내려온 기억은 부끄러 움과 함께 남아 있다. 그래서 달리기는 언제나 '나와는 거리가 먼 것’ 이었다. 그런 내가 슬로조깅(Slow Jogging)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반신반의했다. 천천히 달리면 무슨 운동이 되겠어. 그것은 그저 걷는 것을 달리 기처럼 포장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의심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br>슬로조깅의 핵심 개념은 단순하다. '니코니코 페이스', 즉 웃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숨이 차지 않는 속도, 힘들지 않은 속도. 이것이 스로조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제창한 사람은 후쿠오카대학교 스포츠과학부의 다나카 히로아키 교수다. 그는 스스로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스로조깅의 효과를 증명해 왔다. 37세에 처음 풀 마라톤에 출전해 4시간 11분을 기록했던 그는, 9년 후 '니코니코 페이스'만으로 훈련해 3시간 30분으로 단축했다. 더 나아가 식이요절과 하루 5~7km의 슬로조깅을 병행해 3개월 만에 10kg을 감량하고, 마침내 50세에 2시간 38분이라는 놀라운 자기 최고 기록을 세웠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력이다. 그는 대학 시절 심장에 구멍이 있다는 오진을 받고 격렬한 운동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 시절 그가 만난 것이 '가벼운 강도의 훈련'이라는 개념이었고, 그것이 평생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포기에서 출발한 연구가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달리는 기쁨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br>우리는 흔히 운동은 '힘들수록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땀을 흘리고, 근육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을 견뎌야만 비로소 몸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슬로조깅은 그 상식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빠른 달리기나 격렬한 무산소 운동은 속근을 주로 사용한다. 속근은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피로해지기 쉽고, 젖산을 생성해 근육을 산성으로 만들며 몸을 탈진 상태로 몰아간다. 반면, 스로조깅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은 지근이다. 지근은 천천히, 오래 수축할 수 있는 근육 섬유로, 젖산이 쌓이지 않아 피로감이 훨씬 적다. 그래서 슬로조깅을 시작한 사람들이 매일 달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몸이 지치지 않으니 달리는 것이 괴롭지 않고, 괴롭지 않으니 계속하게 된다. 실제 참가자들의 체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단 3주간의 슬로조깅 체험 이후 체중이 3~4kg 감소했고, 공복혈당이 151mg/dl에서 109mg/이로 내려간 사례가 있었다. 유방암과 당뇨를 동시에 앓던 한 참가자는 당화혈색소가 7%에서 6.3%로 떨어지며 눈물을 흘렸다.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격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슬로조싱 꾸준히 실천하면 3개월에 약 3kg 감량이 가능하고, 식이 조절을 병행하면 5~6kg 이상도 어렵지 않다. 특히 현대인의 만병 근원이라 불리는 내장지방 감소에 탁월하다는 점은, 40대 이후의 건강 관리에 특히 주목할 만한 효과다.<br>무릎이 아파서 달리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스로조깅은 충격이 적고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훨씬 덜하다. 실제로 3km만 달려도 무릎을 부여잡던 한 참가자가, 스로조깅3개월 후에 는 한 달에 200km 이상을 달리게 되었다는 사례는 과학적 원리의 결과다. 처음부터 계속 달리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걷뛰뛰 방식도 있다. 1분 스로조깅 후 30초 빠른 걷기를 반복하며 시작해, 점차 달리는 시간을 늘려 가는 것이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면 노인도, 운동 초보자도 충분히 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팔을 억지로 크게 흔들지 않는 것이다. 팔을 세게 흔들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빨라지고, 그러면 니코니코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된다. 지면의 반발력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것, 팔은 그저 흔들리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 스로조깅은 몸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존중하는 달리기다. 다나카 교수는 말했다. "인간은 달리도록 진화해 왔다." 수렵 시대의 인류는 먹이를 쫓아 긴 거리를 자연스럽게 달렸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삶의 방식이었다. 현대인은 달리기를 '힘든 것',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어쩌면 그 인식 자체가 왜곡된 것일지도 모른다. 스로조깅은 달리기를 원래의 자리, 즉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로 되돌리려는 시도다. 웃으면서, 대화하면서, 억지로가 아니라 즐겁게. 메타볼릭 증후군을 진단받고 지팡이에 의지하던 50대 여성이 60대에 호놀룰루 마라톤을 완주하고, 70대가 된 지금도 달리며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느리게 달리는 것이 삶의 속도를 바꿀 수 있다는 증거다.<br>슬로조깅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달리기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속도' 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었다. 빠르게 달리다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 한 번의 격렬한 노력보다, 매일의 작은 움직임이 몸과 삶을 바꾼다는 것. 어쩌면 이것은 달리기를 넘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웃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슬로조깅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7/52/cover150/k8421382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7529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 중국 첨단 지능화의 허와 실, 그리고 한국의 대응 전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2314</link><pubDate>Sun, 17 May 2026 19: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23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552&TPaperId=172823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0/60/coveroff/k2121375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7552&TPaperId=172823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차이나 반도체 라이징 - 중국 첨단 지능화의 허와 실, 그리고 한국의 대응 전략</a><br/>권석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2023년 화웨이가 출시한 메이트 60 프로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 되었다. 자국 팹리스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자국 파운드리 SMIC가 생산한 7나노급 기린 9000s 칩을 탑재한 이 스마트폰은 미국의 강력한 기술 제재 속에서도 중국이 첨단 반도체 영역에 도달했음을 전 세계에 선언한 것이었다. 한편, 같은 해 딥시크(DeepSeek)는 저비용 고효율 AI 모델로 오픈AI와 구글이 주도하던 인공지능 생태계에 균열을 냈다. 화웨이 캠퍼스에서 수천 명의 박사급 연구원이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중국 명문대 이공계 석박사생들이 앞다투어 반도체·AI 기업 취업을 꿈꾸는 지금의 모습은, 불과 10여 년 전 중국을 저급 칩의 위탁 생산 기지로 바라보던 시각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양 이면에는 구조적 취약성이 공존한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은 10년 넘게 쏟아부은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 위에 세워진 것이다. 회계의 불투명성, 중복 투자, 수익성 부재, 인민해방군과의 복잡한 연계, 그리고 미국의 기술 제재가 만들어 내는 단절의 위협이 그 취약성의 면면을 이룬다. 책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실체를 투자 구조, 기술적 현실, 지정학적 맥락이라는 세 축에서 냉정하게 짚어보고, 그것이 한국에 던지는 함의를 모색한다.<br>중국 반도체 투자의 핵심 엔진은 국가 대기금, 일명 '빅 펀드(Big Fund)'다. 2014년 1기로 출발한 빅 펀드는 2024년 현재 3기에 접어들었으며, 3기 규모만 3,440억 위안(약 74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중국 제조 2025 계획 자금, 지방정부 펀드를 합산하면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투입한 직간접적 지원 총액은 3,500억 달러(약 515조 원)에 육박한다는 추산이 나온다. 미국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ct)의 연간 투자액에 맞먹는 규모를 중국은 매년 집행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방대한 투자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첫째, 중복 투자 문제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CXMT는 중앙 빅 펀드와 허페이 시 지방정부 펀드를 동시에 수혜하고 있으며, 공정 장비 업체 사이캐리어 역시 선전 시, 빅 펀드, 화웨이 클러스터 펀드에서 중복으로 자금을 받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식재산권 분쟁, 부채 정리, 과잉 생산에 따른 수익성 저하 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둘째, 기술 내실화의 지체다. CXMT는 글로벌 4위 DRAM 업체로 부상했지만, 양산 수율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 25~30%포인트 낮은 수준에 머문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도 3세대 HBM2 양산과 4세대 시험 생산 수준에 그치는 반면, 글로벌 상위 3사는 이미 6~7세대 HBM 양산을 준비 중이다. 장비 분야의 사이캐리어 역시 동세대 ASML 장비 대비 노광 성능이 40% 이하에 불과하다. 화려한 외형과 달리 기술 격차는 여전히 크다. 셋째, 빅 펀드의 기수별 오버랩 문제다. 1기·2기·3기가 각각 10년씩 투자-회수-연장을 거치며 겹치는 구조는, 이전 기수의 부실이 다음 기수로 이월되는 '좀비 투자'의 온상이 될 수 있다. 2기 빅 펀드 책임자가 부패 혐의로 낙마한 사건은 수익성 악화의 책임을 특정 인물에게 전가하는 공산당식 문제 해결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러한 구조적 불투명성이 지속되는 한, 빅 펀드의 장기 지속 가능성은 2044년 최종 만기까지 불안 요소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br>중국 반도체·AI 굴기의 아이러니는 그 토대를 미국이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애플은 20년간 중국에서 사실상 IT 제조 생태계를 육성했다. 폭스콘에서 럭스쉐어로, 삼성·LG디스플레이 기술이 BOE로 흘러가는 과정에서 제조 노하우가 이전되었고, 애플 i클라우드 서버의 운영권이 중국 국유 기업(GCBD)에 넘어가며 데이터 주권까지 양도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아시아(MSRA)는 중국 최고의 IT 인재 산실로 기능했고, 그 졸업생들은 화웨이·바이두·바이트댄스의 핵심 인력이 되었다. 자본의 역설도 심각하다. 미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요 벤처캐피털(VC) 16곳이 중국 공산당 연계 기업, 나아가 인민해방군과 협력하는 반도체·AI 기업에 최소 31억~45억 달러를 투자했다. 월든 인터내셔널은 SMIC 이사회에 20년 가까이 참여하며 기술·경영 멘토링을 제공했고, IBM은 2007년 SMIC에 45나노 공정 라이선스를 이전하여 중국 파운드리 기술의 도약에 기여했다. 오픈소스 AI 프레임워크인 텐서플로와 파이토치는 중국이 미국과의 AI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발판이 되었다. 미국은 의도치 않게, 그러나 상당 기간 체계적으로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키웠다.<br>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심화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외생 변수다. 현재 가장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하나는 AI 반도체·생태계 중심 리디렉션 시나리오로, 중국이 반도체 자급화의 한계를 인식하고 AI 응용 생태계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화웨이, 텐센트, 알리바바 같은 대기업이 산업 플랫폼을 주도하는 이 경로는 중국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한 '소버린 AI' 생태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품는다. 다만 글로벌 생태계와의 호환성 부재라는 '갈라파고스' 위험도 함께 안는다. 다른 하나는 디커플링 시나리오다. 미중 무역 전쟁이 전면적으로 심화되면, 중국은 강제적 내재화에 박차를 가하고 글로벌 공급망은 미국 클러스터와 중국 클러스터로 분리된다. 이 경우 공급망 분기에 따른 기술 표준 분열, 비용 중복 발생, 수급 혼란이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강타한다. 한국·일본·대만·네덜란드는 미국 주도 클러스터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지만, 대중 수출 채널의 상당 부분이 차단되고 중국 내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도 생산 차질을 피할 수 없다. 이 두 시나리오 모두에서 주목할 점은 인공지능 산업 자체의 수익성 문제다. MIT 난다 이니셔티브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AI에 투자한 기업의 95%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거대한 투자가 집중되고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수익 기반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 과제다.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안한 상태에서 AI 산업의 수익 구조마저 불확실하다면, 중국은 '반도체+AI'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 있다.<br>중국 반도체 굴기는 과소평가할 수도, 과대평가할 수도 없는 복잡한 현상이다. 국가 자본주의의 압도적 자금력을 등에 업고 분명히 실력을 키워 왔지만, 그 성장의 토대가 얼마나 견고한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일본이 1980~90년대 정부 주도 반도체 산업 육성에서 결국 구조 조정의 쓴맛을 본 것처럼, 중국의 빅 펀드도 회계 투명성과 수익성 검증이라는 시험을 결국 피할 수 없다. 한국에게 이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다. 중국은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지켜온 반도체·AI 분야에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중국이 취약한 영역, 즉 첨단 패키징, HBM 같은 맞춤형 메모리 파운드리, 극자외선 이후 패터닝 기술 탐색,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기업 거버넌스는 한국이 차별화를 추구할 공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모래성이 무너지기 전에, 한국은 더 깊은 기술적 해자를 파두어야 한다. 복합 특이점의 시대, 경쟁의 프레임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GDP를 대체할 국내 총지능(GDI)의 시대에 한국은 규모로 싸우기보다 정밀도로 승부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의 신뢰 가능성,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제조업 경험,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핵심 위치를 지렛대 삼아, 아직 누구도 걷지 않은 기술의 미개척 지대로 과감하게 발을 내딛는 것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 전략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0/60/cover150/k2121375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0608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 - [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 - 건축가 황두진이 그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적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2233</link><pubDate>Sun, 17 May 2026 1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22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8601&TPaperId=172822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70/coveroff/k6021386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8601&TPaperId=172822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 - 건축가 황두진이 그리는 지속 가능한 도시적 삶</a><br/>황두진 지음 / 해냄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주말 아침, 서울 한복판을 걷다 보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광화문 앞 세종대로, 종로 일대, 청계천 변이 텅 비어 있다. 카페 몇 곳에 불빛이 켜져 있을 뿐, 이 나라 최고의 업무 지구가 마치 유령 도시처럼 고요하다. 평일 낮이라면 사람이 넘쳐날 거리가, 유동 인구가 사라진 시간대에는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이 잘못 설계된 도시라는 증거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오래도록 잘못된 방향으로 정책이 운용되어온 결과다.​&lt;사대문 안 인구 30만 프로젝트&gt;는 그 잘못된 흐름을 되돌리자는 제안이다. 현재 사대문 안 상주인구는 약 10만 명. 조선 후기 수준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1980년대 정점을 찍은 이후 40여 년간 꾸준히 줄어들었다. 서울 인구 전체는 팽창했지만 그 무게 중심은 강남,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갔고, 도심은 비어갔다. 3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인구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도시가 진짜 도시답게 기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br>직주 근접(職住近接). 일하는 곳과 사는 곳이 가까운 것. 당연한 이치처럼 들리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직장인에게 이것은 사치에 가깝다. 광화문에서 일하면서 일산에서 자고, 판교에 출근하면서 수원에서 아침을 먹는다. 왕복 두세 시간의 통근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사대문 안은 원래 직주 근접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시장은 종로변에, 관청은 궁궐 앞에, 주거는 그 사이사이에 얽혀 있었다. 걸어서 삶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였다. 내사산이 만들어낸 분지 안, 약 16.5제곱킬로미터의 공간은 지형적으로도 걷기에 이상적이다. 청계천 상류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의 평균 경사가 0.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 공간이 얼마나 보행 친화적인지를 말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이점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1970년대부터 학교를 강남으로 이전시키고, 주거 기능을 도심에서 밀어냈다. 기업과 관공서는 남았지만 사람이 떠났다. 낮에는 붐비고 밤에는 텅 비는 비정상적 구조가 수십 년에 걸쳐 고착되었다. 편의점 하나 찾기 어려운 도심,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 마포 공덕동까지 가야 하는 서촌의 현실은 그 결과다. 상주인구가 줄면 생활 인프라가 사라지고, 인프라가 사라지면 상주인구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 이것이 사대문 안이 지금 걸린 병이다.<br>코로나-19 팬데믹은 도시 문명 자체를 흔들 것처럼 보였다.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교외로의 이주가 유행처럼 번졌다. 도시는 끝났다는 선언이 쏟아졌다. 그러나 3년여 만에 그 '뉴 노멀' 담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밀도를 혐오하던 사람들도 결국 도시의 편의와 자극 앞에 돌아왔다. 오히려 팬데믹은 도시에 대한 성찰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 파리의 '15분 도시' 개념이 주목받은 것도 이 시기였다. 핵심은 단순하다.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직장, 학교, 병원, 시장, 공원을 모두 닿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기능별로 지역을 분리하는 근대적 조닝(zoning)의 실패를 인정하고, 복합 도시로 돌아가자는 선언이다. 이것은 실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조선의 한양이 그랬고,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빌리지가 그랬다. 밀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거부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한국인은 과밀의 고통을 몸으로 겪었다. 한 반에 60명, 2부제 수업, 출퇴근 지하철의 지옥도. 그 기억이 밀도 혐오를 낳았고, 도시 정책은 낮은 용적률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용적률을 낮추면 도시는 수평으로 팽창하고, 팽창할수록 이동 거리는 늘어나며, 체감 밀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강남역 사거리의 법정 용적률 800퍼센트 이하라는 숫자가 세계적 대도시 기준으로 얼마나 낮은지를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도시를 만들어왔는지 가늠된다.<br>그렇다면 사대문 안에 어떤 건축을 담아야 할까. 이 글은 단지형 아파트를 명확히 거부한다. 단지형 아파트는 도로를 막고, 담을 치고, 도시를 조각냈다. 용적률은 높아 보이지만 건폐율이 낮아 실제 밀도 효과는 제한적이다. 경희궁자이가 들어선 뒤 오히려 주변 인구가 줄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사대문 안에는 그런 대규모 부지 자체가 없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무지개떡 건축'이다. 저층부엔 상점과 카페, 중층부엔 사무실과 학원, 상층부엔 주거와 옥상 마당. 상업, 업무, 주거가 한 필지에 수직으로 중첩된 이 방식은 1960~70년대 한국의 상가 아파트에서 이미 실험된 바 있다. 낙원상가, 세운상가, 서소문아파트.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와 법적 규제의 부재로 문제도 많았지만, 그 개념 자체는 탁월했다. 도시의 밀도와 복합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방식이었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전통 한옥의 원리와도 닿아 있다는 점이다. 한옥은 비정형 자연석 기단, 직선 목구조, 3차원 곡면 지붕이라는 전혀 다른 세 가지 기하학을 하나의 건축 안에 중첩시킨다. 무지개떡 건축도 마찬가지다. 층마다 다른 기하학적 질서, 다른 재료, 다른 공간 경험. 이것이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다양성이다. 뉴욕 소호의 건물들이 개별적으로 보면 단조롭지만 거리 풍경이 생동감 있는 이유도 저층부의 상점들, 그 위의 주거, 그리고 각각의 층이 만드는 도시적 접촉성 때문이다.<br>직주 근접은 편의의 문제만이 아니다. 탄소 배출의 문제이기도 하다. 운정에서 서울역까지 GTX로 출퇴근한다면 편도 탄소 배출량만 약 1,545그램이다. 여기에 역까지 이동하는 탄소까지 더하면 수치는 더 올라간다. 대구시 온실가스 배출의 41퍼센트가 도로 교통에서 나온다는 통계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게 한다. 반면 걷거나 자전거로 사대문 안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의 탄소 배출량은 0이다.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것은 같은 규모를 새로 짓는 것보다 에너지를 평균 55퍼센트 이상 절약한다. 아무리 친환경 자재로 신축해도 철거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지역사회의 맥락 단절이라는 비용을 상쇄하기 어렵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새로운 건물을 얼마나 잘 짓느냐가 아니라, 이미 있는 도시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 있다. ESG가 평가의 무게 중심을 거기로 옮겨야 하는 이유다.<br>사대문 안을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자는 이 제안은, 낭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넓게 퍼진 도시 구조를 유지하는 비용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수도권 광역 인프라를 계속 확장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이미 있는 자원, 이미 잘 갖춰진 공간을 더 잘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향이다. 사대문 안은 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많은 일터, 역사적 투자가 축적된 인프라,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걷기 좋은 평탄한 지형, 그리고 600년이 넘는 이야기. 이 공간이 밤이면 텅 빈 채로 방치되는 것은 낭비이자 실패다. 여기에 사람이 다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서울이 진짜 세계적인 도시로 성숙해지는 길이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맨해튼을 '인류가 만든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라 불렀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직주 근접이 실현된 고밀도 도시야말로 가장 적은 탄소로 가장 많은 삶을 담는다는 뜻이다. 사대문 안 인구 30만 명 프로젝트는 그 역설을 서울에서 실현하려는 시도다. 새로운 건축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동기 부여, 오래된 지혜의 현대적 재해석. 도심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을 다시 사람으로 채우는 일, 이제 시작할 때가 됐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1/70/cover150/k602138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1701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59</link><pubDate>Sun, 17 May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986&TPaperId=172815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2/coveroff/k1721389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986&TPaperId=172815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 - 90세 과학자의 가슴 뛰는 자연 관찰기</a><br/>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나는 종종 숲에서 길을 잃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도 앱이 없어서도 아니고, 방향 감각이 무뎌서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 면, 내가 바라는 것은 목적지 없이 걷는 상태 즉, 다음 발걸음보다 지금 이 발밑의 낙엽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 그런 상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 많은 것을 미리 알고 시작한다.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나오는 정보들, 화면 속 다 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완벽하게 편집된 자연. 우리는 자연을 알기도 전에 이미 '안다고 느끼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베 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의 에세이집 A Naturalist at Large를 처음 펼쳤을 때, 나는 묘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 은 마치 오래된 흙 냄새 같았다. 아스팔트 아래 깊이 눌려 있다가 비가 온 뒤에야 비로소 올라오는 그 냄새. 설명하기 어렵 지만, 분명히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무언가 있다. 하인리히는 나에게 길을 잃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는 보통 자연을 마주했을 때 이름을 찾는다. 저 새는 무슨 새일까. 저 꽃은 무슨 꽃일까. 이름을 알면 아는 것 같은 기 분이 든다. 하지만 하인리히의 에세이를 읽으면 이름이 지식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깨닫게 된다. 꿀벌은 왜 같은 종류의 꽃을 반복해서 찾아가는가. 왜 새의 알은 종마다 색깔이 다른가. 까마귀는 무리 안에서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 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십만 년의 진화, 환경과 생명체 사이의 끊임없는 협 상, 그리고 생존이라는 치열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하인리히는 결코 현학적이지 않다. 그는 독자에게 복잡한 학술 언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 대신 그는 숲 속 통나무 위에 앉아 몇 시간이고 까마귀를 바라보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집요하게 이야 기를 건넨다. 그의 문장들은 실험실 노트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의 일기처럼 읽힌다. 그 일기를 따 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창문 밖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에게 시선이 머문다. 저 새는 왜 저기 앉아 있을까. 왜 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름 하나 아는 것과, 그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내가 가장 깊이 울린 것은 어떤 특정 에세이가 아니라, 책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태도였다. 그것은 겸손함이다. 하 인리히는 생물학자다. 유전자와 진화를 이야기하고, 생리 생태학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자연은 결코'분석의 대상으로 납작하게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끊임없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쓴다. 숲 속 오두막에서 자고, 영하의 날씨에 혼자 서서 새를 기다리고, 손으로 흙을 만지고, 직접 몸으로 그 계절을 겪는다. 이 점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자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적게 '있었는가?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어느 오후를 떠올렸다. 시골 할머니 댁 뒷산에서 혼자 돌멩이를 뒤집으며 그 아래 사는 것들을 들여다보던 오후.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그것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앉아 있던 시간. 이름도 몰랐고 설명할 수도 없었지만, 그 순간 나는 분명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인리히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연결의 감각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뉴스와 화면과 소음으로 채워진 일상 속에서, 세상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아름답게 작동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언젠가 읽었던 문장이 있다. 과학은 경이에서 시작되고, 경이는 직접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인리히의 에세이들은 그 명제를 살아있는 언어로 증명한다. 그가 꽃과 벌의 관계를 서술할 때, 수백만 년에 걸쳐 서로를 조각해 온 두 존재의 이야 기가 눈앞에 펼쳐진다. 꽃은 벌을 훈련시키고, 벌은 꽃을 선택한다. 이 단순해 보이는 사실 안에 얼마나 깊은 시간이 담겨 있는지, 얼마나 정교한 협력의 역사가 있는지를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다음번에 길가 에서 벌 한 마리를 만났을 때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워진다. 저 작은 몸 안에 어떤 기억이 있는가. 저 날갯짓 하나에 얼마나 많은 세대의 시간이 녹아 있는가. 이것이 하인리히가 내게 준 선물이다. 자연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자연을 다시 보게 하 는 눈. 이미 보던 것을 처음 보듯이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익숙한 것을 낯설게 느끼는 용기.<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덮고 나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 오늘은 조금 달리 보였다. 저 나뭇잎이 저렇게 흔들리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저 흔들림 속에 살고 있는 곤충들 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인리히가 말하는 자연주의자(naturalist)란 단지 자연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반복해서 같은 장소를 걷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익숙한 새소리 하나에 도 그날의 온도와 빛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감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느끼는 것.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 하인리히의 에세이는 과학서이면서 동시에 초대장 이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진짜 숲으로, 진짜 강으로, 진짜 바람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이다. 경이는 잃어버릴 수 없다. 잠시 잊을 뿐이다. 그리고 베른트 하인리히의 글은, 나에게 그것을 다시 찾는 길을 알려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2/cover150/k1721389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23529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I 비즈니스 TEST 1급 공식 가이드 - [AI 비즈니스 TEST 1급 공식 가이드 - 생성형 AI 비즈니스 활용 능력 검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46</link><pubDate>Sun, 17 May 2026 1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8603&TPaperId=172815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3/54/coveroff/k7621386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8603&TPaperId=172815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 비즈니스 TEST 1급 공식 가이드 - 생성형 AI 비즈니스 활용 능력 검증</a><br/>최병일 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그야말로 인공지능의 시대다. 처음에는 이 흐름을 그냥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AI 도구 몇 가지를 써보고, 유용 하다 싶으면 업무에 적용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도구를 '쓰 는' 것과 도구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떤 기준도 없이 스스로의 AI 활용 수준을 가늠하 기가 어려웠다. 그즈음 AIBT(AI Business Test)라는 자격시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격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솔직히 반감부터 드는 편이다. 숫자로 환산된 시험 점수가 실무 역량과 얼마나 연결되는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AIBT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무엇보다 이 시험이 묻는 것이 '기술 지식'이 아니라 '비즈니스 역량'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알고리즘의 원리를 외우 거나 코드를 짤 줄 알아야 합격하는 시험이 아니라, 실제 업무 상황에서 AI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평가 한다는 것이었다. PM이라는 직업의 본질과 꽤 잘 맞아 떨어졌다. 기획서를 AI로 초안을 잡고, 데이터를 분석해 방향을 제 시하고, 클라이언트와 더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것-이것이 바로 내가 업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이었다. 또 한 가지, 최근 채용 공고에서 AIBT 자격을 우대 조건으로 명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커리어의 방향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체계적으로 역량을 정리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나는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고,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출간한 &lt;AI 비즈니스 TEST 1급 공식 가이드&gt;를 선택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의 솔직한 느낌은 '두껍다'였다. 하지만 목차를 훑어보면서 그 두께가 납득이 되었다. 책은 크게 두 편으로 나뉜다. 제1편은 생성형 AI의 이해를, 제2편은 경제·경영 분석을 다룬다. AI 자격 시험이라는 이름 아래 경영 전략, 마케팅, 재무회계, 거시경제까지 포함된 구성은 처음에는 의외였지만, 이내 납득이 갔다. AI는 결국 비즈니스의 문 제를 풀기 위한 도구이고, 그 도구를 제대로 쓰려면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1편에서 는 인공지능의 역사부터 시작해 생성형 AI의 원리,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전략, 그리고 AI 윤리까지를 순서대로 다룬다. 개 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챕터였다. 지금까지 ChatGPT나 Claude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 서 나름대로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즉흥적으로 도구를 사용해왔는지 반성하게 되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프롬프트 설계에도 원칙이 있고, 맥락을 구조화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현격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정리해준 셈이었다.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문제, 즉 AI가 그럴듯하지만 잘못된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에 대한 부 분도 실무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클라이언트에게 제출하는 문서에 AI 생성 오류가 그대로 담긴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가 된다. 이를 어떻게 검증하고 방지하는지에 대한 전략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실무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2편은 처음에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PEST 분석, SWOT 분석, BCG 매트릭스, 마이클 포터 의 5 Forces 모델 등 경영학 교재에서 본 적 있는 프레임워크들이 AI 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이 편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경쟁사 벤치마킹을 설계할 때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효율적인지, 재무상태표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롬프트는 어떻 게 구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각 개념에 실무용 프롬프트 예시가 함께 제시되어 있어 학습과 동시에 실전 연습이 가능하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느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 한 권을 어떻게 공부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세 단계로 접근하기로 했다. 첫 번째 단계는 이론의 정독이 다. 각 챕터에서 소개하는 AI 도구를 실제로 열고 직접 입력해보는 방식으로 진행한 다. 읽으면서 '이런 방식이 있구나'로 넘어가는 것과, 직접 손을 움직여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학습의 깊이가 다르다. 특히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챕터는 실습 없이는 절반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단계는 예시문제 풀이와 오답 정 리다. 공식 가이드북과 함께 제공되는 예시문제 PDF를 반복해서 풀며 출제 경향을 파악한다. 틀린 문제는 단순히 정답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틀렸는지 이유를 언어로 명확히 정리한 뒤 해당 이론 파트로 돌아가 복습한다.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복적으로 약점 영역이 노출되면 그것이 곧 시험에서 실점하는 구간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통합 점검이다. 전체 학습을 마친 후 통합실전 강의를 통해 내용을 종합적으 로 복습하고, 시간 배분 전략을 실제 시험 조건에 맞게 훈련한다. 마지막에는 핵심 개념을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한 요약 자료를 만들어 시험 직전까지 반복 확인할 계획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AIBT 시험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 과정이 수험 공부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프롬프트 하나를 정교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경영 전략 프레임워크를 AI와 연결하는 사고 실험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더 나은 PM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격증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 공부가 끝났을 때, 나는 합격증 하나를 손에 쥐는 것보다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제대로 체득한 실무자로 성장해 있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이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 에게도 작은 도움이 된다면, 이 공부의 의미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3/54/cover150/k7621386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3549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맥진습득법 - [맥진습득법 - 누구나 맥진을 할 수 있게 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42</link><pubDate>Sun, 17 May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864&TPaperId=172815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97/coveroff/k1721388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8864&TPaperId=172815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맥진습득법 - 누구나 맥진을 할 수 있게 된다</a><br/>기도 마사오 외 지음, 유준상 외 옮김 / 청홍(지상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손가락 세 개를 손목에 올리는 것만으로 몸의 상태를 안다고? 현대 의 학의 정밀한 기계들이 즐비한 세상에서, 그것도 손끝의 감각만으로? 하지만 맥진이라는 것이 무려 2천 년을 살아남았다 는 사실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살아남은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맥 진이 오늘날까지 색이 바래지 않고 전해져 온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맥진을 배우는 일은 먼저 '어디에 손가락을 올리느냐'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손목의 촌, 관, 척, 검지, 중지, 약지가 각각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위치를 정확히 잡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알면 알수록 새삼스럽다. 팔꿈치를 편 상태에서 전의 길이를 10촌으로 보고, 손목 주름에서 2촌 거리 안에서 다시 1푼을 빼고...... 이 정밀한 계 산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손목을 실측하고, 검증하고, 다듬어온 세월이 담겨 있다. 손가락 세 개의 폭이 평균 4.7센티미터 라는 실측 데이터, 손목 주름에서 기준점까지의 거리가 평균 1.32센티미터라는 수치. 이런 숫자들이 쌓여 하나의 방법론이 된다는 것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어릴 때 음악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손 모양부터 잡아주던 기억이 난다. 피아노 건 반에 손가락을 올리는 자세, 활을 쥐는 방법, 붓을 잡는 각도...••.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언제나 올바른 자세를 먼저 몸에 새기는 일에서 시작한다. 맥진도 다르지 않았다. 첫걸음을 제대로 밟지 않으면 잘못된 습관이 붙고, 그것이 나중에는 오히 려 실력을 가로막는 벽이 된다고 했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는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맥진에서 흥미로운 역설 중 하나는, 잘 느끼기 위해서는 오히려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부, 중, 침. 피부 위에서 뼈 쪽으 로 향하는 이 세 가지 깊이의 감각은, 손가락에 얼마만큼의 압력을 가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피부에 닿기도 전에 맥의 박동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손가락이 아직 허공에 있는데, 그 미세한 진동이 전해진다는 것.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쩌면 집중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듣고 싶을 때, 우리는 귀를 기울이기 전부터 이미 듣기 시작한다. 맥진도 손가락이 피부에 닿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어 있는 것이다. 또 한 좌맥과 우맥이 다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같은 사람의 몸에서도 왼손과 오른손의 맥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신체란 대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언제나 비대칭이며, 그 미묘한 차이 속에 몸의 균형과 불균형이 담겨 있다. 맥진은 그 차이를 읽는 일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랫동안 맥진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맥진을 이미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 쓰여 있었다고 한다. 허맥이 어떻고, 실맥이 어 떻고, 육부정위가 어떻다는 설명들. 하지만 정작 '어떻게 배우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친절하게 써두지 않았다. 그래서 맥진을 배우려는 사람은 저마다 혼자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야 했다. 그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전달하는 방법이 없으면, 그 기술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머물다 조금씩 옅어진다. 장인의 기술이 사라지는 방식이 대개 그렇다. 너무 어렵다고, 오래 걸린다고,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고, 하나씩 포기하면서. 그래서 수십 년간 학생 들을 가르치며 공통의 실수와 오류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의 표준 매뉴얼로 정리한 책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초보자도 단기간에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계단을 놓은 일. 그것은 2천 년의 기술을 다음 세대에 연결하는 다리를 놓은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맥진을 배우는 데는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여섯 군데 맥진 부위에서 허와 실만 구분하는 비교맥진에서 시작한다. 그다음 은 맥의 상태를 보는 맥상진, 그리고 위치와 상태를 종합해서 읽는 맥위맥상진으로 나아간다. 이 세 단계를 모두 통합하면 천문학적인 수의 패턴을 판별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부터 그 전부를 목표로 하면 누구든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계단씩 오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첫 계단이 선명하면, 두 번째 계단이 보이고, 세 번째 계단도 멀지 않다.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이 어쩌면 이 단계적 배움 속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손목 안에서 맥이 뛰고 있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의 맥도, 오래 아파 지친 사람의 맥도, 무언가 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의 맥도. 그것들은 모두 조금씩 다른 리듬으로, 다른 깊이로, 다른 강도로 뛰고 있을 것이다. 맥진 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그 다름을 듣는 귀를 손끝에 키우는 일이다. 오랫동안 많은 것들이 기계로 대체되었지만, 사람이 사람의 손목을 잡고 그 안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이 방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맥진이 2천 년을 살아남은 가장 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 데이터가 아니라, 닿는다는 것의 따뜻함이다. 손끝으로 듣는 2천 년의 언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1/97/cover150/k1721388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51975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 - [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 - 현대미술에서 훔쳐온 욕망의 공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37</link><pubDate>Sun, 17 May 2026 11: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257&TPaperId=172815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05/72/coveroff/k73213725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257&TPaperId=172815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 - 현대미술에서 훔쳐온 욕망의 공식</a><br/>윤상훈 지음 / 미래의창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얼마 전, 오래 쓰던 노트를 다 쓰고 새 것을 샀다. 무인양품 노트였다.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손이 갔다. 집에 돌아와 새 노 트를 펼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걸 샀지?' 가격이 특별히 저렴하지도 않았고, 기능이 놀랍도록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표지에는 아무 그림도 없었고, 브랜드 로고조차 작고 조용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골랐다. 그 이유를 당 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윤상훈님의 &lt;왜 끌리는 브랜드에는 틈이 있을까&gt;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언어로 붙잡 을 수 있었다. 브랜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내 말을 그 안에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브랜드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단순한 구매를 기억으로 바꾸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브랜드란 완벽한 브랜드라고 믿어왔다. 메시지는 명확해야 하고, 이미지는 일관되어야 하며, 소비 자가 오해할 여지는 없어야 한다고. 기능을 빠짐없이 설명하고, 장점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광고 문구는 귀에 쏙 들어와야 했다. 그 믿음은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브랜드들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애플 은 아이폰의 사양을 줄줄이 나열하지 않았다. 나이키는 운동화가 발에 얼마나 편한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이 말한 것은 훨씬 적었고, 그래서 우리는 훨씬 많이 기억했다. 왜 그럴까. 완성된 이야기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다. 모든 문장이 닫혀 있 고, 모든 여백이 채워져 있으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읽는 관객에 머문다. 읽고 나면 끝이다. 하지만 이야기 안에 빈자리가 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자리를 채우려 한다. 그 순간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공동 저자가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참 여해서 만든 이야기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피카소가 황소를 계속 단순하게 만들어갈 때, 사람들은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 다. 선 몇 개로 그린 그림이 황소라고? 그런데 그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멈춰 서서 생각했다. "이게 황소의 본질 인가?" 라는 질문이 생겼다. 세밀하게 그려진 황소 그림 앞에서는 그런 질문이 생기지 않는다. 이미 다 보여주었으니까.<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흥미로웠던 부분은 '거리두기'와 '충돌하기'의 개념이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결 합해 새로운 인상을 만드는 방식.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마케팅 기법처럼 보였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것이 훨씬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익숙한 것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매일 보는 거리, 매일 쓰는 물건, 매일 듣 는 말. 뇌는 이미 처리한 정보를 다시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익숙함은 투명해진다. 반대로 낯선 것은 시선을 붙잡는다. 예상이 어긋나는 순간, 뇌는 깨어나 그것을 처리하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섬세한 균형을 요구한다. 너 무 낯설면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한다. 너무 익숙하면 그냥 지나친다. 좋은 브랜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알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는, 가까운 것 같은데 조금 다른 그 지점.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멈추고, 더 보려 하고, 생각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브랜드를 기억에 새긴다. 예전에 한 향수 브랜드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아무 설명도 없 었다. 그냥 낯선 풍경, 낯선 사람, 낯선 감각이 짧게 지나갔다. 그 향수가 어떤 냄새인지는 광고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브랜드를 오래 기억했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왠지 궁금했고, 왠지 끌렸다. 그 낯섦이 내 안에서 질문 을 만들었고, 그 질문이 브랜드를 살아있게 만들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왜 지금 사람들은 기능보다 의미를 따지는가. 예전에는 성능 좋고 가 격 합리적인 제품이 잘 팔렸다. 지금도 그것이 기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걸 사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이것은 소비가 필요 충족에서 자기 표현의 언어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무엇을 사느냐 가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되었다. 그렇다면 브랜드는 기능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파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의미는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 없다. 소비자가 스스로 발견하고 붙여야 진짜 의미가 된다. 론 뮤익의 조각이 단순한 밀랍 인형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밀랍 인형은 아무리 정교 해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것은 완성되어 있고, 닫혀 있다. 하지만 뮤익의 조각 앞에 서면 우리는 무언가를 느낀 다. 그 느낌을 설명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이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작품이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 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여야 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사실 가장 어려운 것은 비워두는 일이다. 뭔가를 더 넣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럽다. 설명을 하나 더 추가하면 오해가 줄 것 같고, 장점을 하나 더 나열하면 설득이 쉬울 것 같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유혹에 끌린다. 내가 만든 것 을 충분히 보여주고 싶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봐 주었으면 싶다. 그런데 그 욕심이 오히려 브랜드를 닫아버린다. 소 비자가 들어올 문을 막아버린다. 너무 많은 말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된다. 독백 앞에서 상대는 참여자가 아니라 청중이 된다. 그리고 청중은 공연이 끝나면 돌아간다. 레고가 완성된 장난감이 아니라 블록을 파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완성된 장난감은 소비자를 사용자로 만든다. 블록은 소비자를 창조자로 만든다. 창조자는 그 경험을 잊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것 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결국 브랜드란 소비자와 함께 완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가 설계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라 가능성의 구조다. 그 안에서 소비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브랜드를 살아있게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05/72/cover150/k73213725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05726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저항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 [저항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 복종 본능에서 깨어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행동과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29</link><pubDate>Sun, 17 May 2026 1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81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8710&TPaperId=17281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0/19/coveroff/k5221387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8710&TPaperId=17281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저항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 복종 본능에서 깨어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행동과학</a><br/>수니타 사 지음, 이윤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릴 적 우리는 수없이 들었다. 말 잘 들어야 착한 아이지." "어른 말씀에 토달지 마라." "분위기 파악해라." 이 말들은 훈육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었다. 순응이 미덕이고, 저항은 결례라는 세계관.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먼저 배우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은 나중으로 미루거나 영영 배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을 살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분명히 "이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와 기대가 나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순간. 그 순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궤적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저항이란 단지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행위다.<br>우리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거칠고, 시끄럽고, 공격적인 무언가다. 주먹을 쥐고 고함치는 모습, 혹은 권위에 맞서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 그러나 이것은 저항의 본질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진정한 저항이란 외부의 압력이 존재할 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큰 소리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저항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외과 의사가 동료의 실수를 목격했을 때 "잠깐만요, 다시 확인해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 회의실에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라고 손을 드는 것, 혹은 불합리한 지시 앞에서 "이건 제 양심에 반합니다"라고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모든 것이 저항이다. 중요한 것은 저항이 타인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정직함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가치관을 억누르고 순응할 때, 가장 먼저 배신당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저항은 그 배신을 거부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은 폭력이 아니라 자기 보존에 가깝다.​순응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사회는 어느 정도의 순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신호등 앞에서 멈추고, 줄을 서고, 공공 규칙을 따르는 것은 문명의 기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순응에 너무 길들여진 나머지, 순응해서는 안될 순간에도 순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상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의료 현장에서 동료가 실수를 저지를 때, 가족 안에서 불합리한 일이 반복될 때,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인상 관리'에 대한 불안이다. 내가 이의를 제기하면, 상대방은 내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을까? 이 불안이 우리를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침묵은 우리 내면에 조용히 쌓인다. 처음에는 작은 불편함이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한다. '나는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라는 자책이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조차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순응의 비용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치러지고 있으며, 그 정 구서는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날아온다.<br>우리는 종종 역사 속 위대한 저항을 마치 운명처럼 이야기한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 한 청소년이 권력자의 부당한 행위를 카메라에 담은 것, 이런 행동들을 '타고난 용기'나 '운명적 순간'으로 낭만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로자 파크스는 그 순간 이전에 이미 오랫동안 준비하고 훈련해 온 사람이었다. 저항은 즉흥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물이었다. 저항은 천성이 아니라 연습이다. 마치 근육처럼,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꾸준히 단련하면 강해진다. 작은 일상 속에서의 연습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다. 원하지 않는 약속을 정중하게 거절해 보는 것, 동의하지 않는 의견에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라고 말해 보는 것, 불편한 상황에서 즉각 동의하지 않고 "생각해 볼 시간을 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 이런 소소한 저항의 연 습들이 뇌의 회로를 바꾼다. 또한 중요한 것은 자기 내면의 신호를 감지하는 훈련이다. 위기의 순간, 많은 사람들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속이 불편하거나 목이 마르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신체 반응이 먼저 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신호를 무시하도록 훈련받아 왔다. "별거 아니겠지", "다들 괜찮다고 하니까"라며 자신의 직관을 억누른다. 저항을 훈련한다는 것은 그 내면의 신호를 억누르지 않고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br>저항이 삶을 변화시키는 방식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안으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의 영향이다. 내면의 변화.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저항을 경험한 사람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묘사한다. 두려웠지만 살아 있는 느낌, 어색했지만 진실했던 경험, 결과가 두렵지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확신. 그것은 '나는 내 삶의 주체'라는 감각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압력에 맞춰 살아온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신뢰하는 순간, 그 경험은 삶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어떤 관계가 진정한 관계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이 비로소 의미있게 다가온다. 다음으로 외부로의 영향. 저항은 혼자만의 변화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저항은 반드시 주변에 파문을 일으킨다. 한 어머니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은 그 자리에 있던 자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직장에서 혼자 이의를 제기한 동료의 용기는 침묵하고 있던 다른 이들에게 "나도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씨앗을 심는다. 이것이 저항의 도미노 효과다. 역사적인 변화는 언제나 한 사람의 작은 저항에 서 시작되었다. 그 저항이 누군가를 깨우고,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깨우는 연쇄 반응 속에서 세상은 조 금씩 달라져 왔다.​저항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삶의 모든 불편함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저항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른다. 관계의 균열, 직업적 불이익, 때로는 물리적 위험까지. 따라서 저항은 신중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이 상황에서 저항하는 것이 충분히 안전한가? 완전히 안전한 저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위험이 감당 가능한 수준인지를 가늠해야 한다. 둘째, 이 저항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의 저항은 때로 희생만을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너무 쉽게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는 합리화 뒤에 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지금 두려워하는 것이 실제적인 위험인가, 아니면 단지 불편함인가? 또한 저항은 반드시 극적인 행동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제가 동의하지 않지만, 이 부분을 더 논의해 볼 수 있을까요?"라는 한 문장이 충분한 저항이 된다. 저항의 크기와 형태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완전히 묻어버리지 않는 것, 내면의 목소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br>저항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다: 저항은 삶을 자신에게 돌려준다. 우리는 오랫동안 타인의 기대, 사회의 규범, 권위의 명령에 맞추어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을 조금씩 빌려주어 왔다. 저항은 그 빌려준 것들을 되찾아 오는 행위다. 그것은 화려한 선언이 아니어도 좋다. "이번엔 아니요"라는 조용한 한 마디로 시작될 수 있다. 저항은 개인을 변화시키고, 개인의 변화는 관계를 변화시키고, 관계의 변화는 조직을 변화시키고, 조직의 변화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 연쇄가 시작되는 지점은 언제나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로 결심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우리는 완전히 순응하는 삶도, 완전히 저항하는 삶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삶을 원한다면, 적어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만큼은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용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작은 선택들 속에서 하나씩 키워가는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0/19/cover150/k5221387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00197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매일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 [매일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94</link><pubDate>Tue, 12 May 2026 2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7559&TPaperId=172726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9/22/coveroff/k8221375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7559&TPaperId=172726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매일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a><br/>박상호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04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는다는 것이 삶을 바꾼다는 말을, 한동안 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믿어버리면 읽지 않는 나 자신을 변명할 수 없게 되니까. 그런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사람이 경험한 것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향을 잃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감각은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함. 그건 꽤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안고 살아가는 감각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변화의 속도였다. 독서를 시작했다고 해서 갑자기 삶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그 사람도 그랬다. 하루 5분, 때로는 한 페이지, 완독하지 못한 책들이 쌓여가는 동안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 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람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던 사람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불평하던 사람이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며, 두려움 앞에 멈춰 서 있던 사람이 작은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변화를 너무 극적인 것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고, 결심이 서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그런 순간. 그러나 실제 변화는 그런 식으로 오지 않는다. 변화는 어느 날 돌아보았을 때, 내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반드시 긴 시간의 축적 뒤에 찾아온다. 독서가 바로 그 축적의 방식이라는 것. 그게 이 책이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느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내가 오래 생각한 부분은 결핍에 관한 시선이었다. 우리는 보통 결핍을 빨리 채워야 할 무언가로 본다. 부족하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채우려 하고, 채우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결핍의 자리를 달리 바라본다. 부족한 곳이야말로 더 나은 내가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라고. 빈 곳이 있어야 무언가가 채워질 수 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위로의 수사처럼 들렸다.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결핍을 결함으로 보느냐, 가능성의 여백으로 보느냐, 그 시선의 차이는 실제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결핍을 결함으로 보는 사람은 끊임없이 방어적이 된다. 숨기고, 채우는 척하고,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반면 결핍을 여백으로 보는 사람은 부족함 앞에서 조금 더 열려 있을 수 있다. 배울 수 있고, 질문할 수 있고, 틀렸다고 인정할 수 있다. 독서가 그 시선을 바꿔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책 속의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때로는 그 결핍이 그들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나의 부족함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니까.<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감정에도 통로가 있어서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해서 자꾸 담아두고 억제하면 긍정적인 감정까지 나오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성숙함이라고 배운다. 화내 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힘들어도 티내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나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쌓이고 굳어져서, 나중에는 긍정적인 감정조차 흘러나오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독서는 그 통로를 열어주는 방식 중 하나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 속의 누군가가 나 대신 아파하고, 화내고, 두려워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 면, 억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것은 카타르시스이기도 하고, 일종의 연습이기도 하다. 감정이 흘러갈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연습이다. 그 연습이 쌓이면, 외로움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책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과 함께라도 괜찮아졌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극복이 아닌 공존. 그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마음의 방식이라는 것을 독서는 가르쳐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은 완벽하게 쓸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말한다. 완성도보다 완주가 중요하다고. 그 말은 글쓰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삶의 많은 순간에 우리는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느라 시작을 미룬다. 충분히 알게 되면, 충분히 강해지면, 충분히 준비되면 그러나 그 충분함은 대개 영원히 오지 않는다. 불완전하게라도 시작한 것들이 결국 사람을 만든다. 그 사람이 책을 통해 배운 것도,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내가 다시 떠올리게 된 것도 결국 그것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더 잘 읽는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습관이 바뀌거나, 삶이 드라마틱하 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달라진 것 같다. 책이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책이 나를 나 자신과 연결해주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의 저자가 말했듯 독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근육이 생기면, 삶이 흔들릴 때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서도 걸을 수 있게 된다. 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방향만 보여줘도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 조용히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 그것이 이미 방향을 향한 한 걸음이라는 것을 이 책은, 그리고 이 사람의 이야기는 말해주고 있었다.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책은 방향을 제시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 때 책은 속도를 늦추어 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9/22/cover150/k8221375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29225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파리의 작은 미술관 - [파리의 작은 미술관 - 골목길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79</link><pubDate>Tue, 12 May 2026 2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8166&TPaperId=172726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91/coveroff/k9521381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8166&TPaperId=172726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리의 작은 미술관 - 골목길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삶</a><br/>김정화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여름 휴가를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책을 펼쳤다. &lt;파리의 작은 미술관&gt;. 제목부터가 이미 어딘가로 데려가는 느낌이었다. 루브르나 오르세 같은 이름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름들을 한 발짝 비켜선 자리에서 시작했다. 크고 화려한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조용하고 밀도 높은 공간들 이야기였다. 읽다 보니 어느새 나는 파리 골목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아직 비행기표도 사지 않았는데. 책 속에서 들라크루아는 60이 다 된 나이에 이사를 했다. 오래 사귄 친구들과 익숙한 동네를 뒤로하고, 센강 좌안의 좁은 집으로 향했다. 이유는 하나였다.​10년이 다 되도록 끝내지 못한 생쉴피스 성당의 벽화. 집 골목을 나와 대로를 건너면 바로 성당이 보이는 자리. 그는 그렇게 생의 마지막 작업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시 배치했다. 잠시 멈췄다. 왜일까. 아마도 그 결심이 너무나 예술가답지 않은 방식으로 예술가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뭔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그냥 성당 가까운 데로 이사를 했다는 것. 그 평범함 속에 깊은 집념이 있었다. 그가 수첩에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을 읽었을 때는 더 오래 멈췄다. 회화의 첫 번째 장점은 눈에 축제가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가, 끝에 가서는 많은 눈이 가짜이고 생기가 없다고 했다. 죽기 두 달 전의 문장이다. 축제와 허무가 한 문장 안에 공존하는 그 글에서, 나는 오래 그 림을 사랑해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체념과 갈망의 뒤섞임을 느꼈다. 진정으로 보는 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들라크루아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 눈을 갖고자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br>나는 미술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미술관에 가면 작품 앞에 서서 뭔가를 느끼긴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언어화하기가 어렵다. 설명을 읽으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내 것이 된 느낌은 아니다. 그러다가 어떤 그림 앞에서 갑자기 이유도 모르게 오래 서 있게 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아, 이게 미술이구나, 싶어진다. 책이 흥미로웠던 건 그 '이유도 모르게 오래 서 있게 만드는' 감각을 언어로 풀어주기 때문이었다.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의 수련 연작 앞에서 저자가 쓴 대목. 크고 굵은 붓질이 화면을 쓸고 지나간 듯 하다고, 전체가 붉은색으로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이게 모네 그림이라고?' 놀라며 다시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며 그 전시실 안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네가, 사실은 훨 씬 더 격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폴 마르모탕이 인상주의를 가리켜 "이게 회화라고, 아니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고 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한 시대의 혁신은 항상 누군가에게 모욕처럼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모욕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 세기를 건너 남는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발언을 남긴 마르모탕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에서, 지금 그토록 혹독하게 비난했던 인상주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역사의 어떤 유머처럼 느껴졌다. 로댕 미술관의 이야기는 또 달랐다. 손만 모아놓은 전시실이 있다는 것. 사람의 손이 그렇게 많은 표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외로움의 비탄, 고통의 절규, 창조주의 힘, 은밀한 비밀. 조각이라는 건 결국 형태로 감정을 번역하는 일인데, 로댕은 그걸 신체의 일부만으로도 해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오른손이 맞닿아 기도와 사 랑을 표현한 &lt;대성당&gt;. 나는 이 작품을 아직 실물로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미 그 손이 어떤 감촉인지 알 것 같 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br>귀스타브 모로의 이름은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신고전주의도, 낭만주의도, 사실주의 도, 인상주의도 아닌, 어떤 화풍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화가. 그 설명을 읽으며 나는 그가 궁금해졌다. 살로메를 에로티시즘과 신비함이 뒤섞인 팜파탈로 그렸다는 것, &lt;환영&gt;에서 허공에 빛을 발하며 등장하는 잘린 요한의 머리가 그 신비함을 더한다는 것. 미술사의 주류에서 비켜서 있으면서도, 아무도 흥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3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의 곡선에 먼저 시선을 빼앗기고, 그러고 나서 야 벽면을 가득 채운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묘사. 공간 자체가 감상의 일부가 된다는 이야기가 내 상상 속에 서 생생하게 그려졌다. 몽마르트르 미술관의 장에서는 로트레크를 통해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귀족 혈통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장애를 갖게 된 후 몽마르트르의 밤 속으로 걸어들어간 화가. 그를 편안히 받아준 건 술집과 유곽의 여인들이었다. 그는 그들 사이에서 일상을 기록하듯 그림을 그렸다. 향락에 취해 있으면서도 어딘지 외 로움이 배어 있는 실루엣들. 그것이 그가 남긴 몽마르트르의 얼굴이라는 문장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유흥과 고독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들이 그림이 되었다는 것이다.<br>수잔 발라동은 또 얼마나 강렬한가. 몽마르트르 골목의 천덕꾸러기 소녀가, 화가들의 모델로 청춘을 보내다가, 독학으로 붓을 잡아 중년에 당당한 화가가 되었다. 몽마르트르였기에 가능했던 인생이라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그 언덕이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 시대를 몸으로 통과한 사람들의 숨결로 이루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피카소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사랑하는 여자가 바뀌면 화풍도 바뀌었다는 문장이 강하게 남았다. 심장이 뛰는 대로 사랑하고, 숨 쉬는 것처럼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 예술과 삶이 그토록 밀착되어 있다면,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누군가의 삶 자체를 목격하는 경험일 것이다. 자코메티 미술관 이야기의 끝에서는 한동안 책을 덮어야 했다.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날, 동생 디에고는 부랴부랴 작업실로 달려가 형이 작업하던 조각에 젖은 천을 덮었다. 마르지 않도록. 부인 아네트는 벽체의 드로잉까지 떼어 보존했고 낡은 의자 하나, 화병 하나, 먼지조차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의 자코메티 미술관 이 되었다는 것. 사랑이 미술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br>책을 읽으면서 나는 파리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찾아 인파를 헤치는 것도 물론 파리다. 하지만 그 번잡함을 한 발짝만 비켜서면, 한 인간의 생애 전체가 농밀하게 응축된 공간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는 것. 그 공간들은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예술가가 살았던 시간 그 자체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여름, 나는 그 골목들을 걷고 싶다. 들라크루아가 생피스 성당까지 걸었을 좁은 길을, 자코메티가 비 오는 날 건너갔을 알레지아가를, 로트레크가 밤마다 드나들었을 몽마르트르의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를, 그리고 어떤 그림 앞에서 이유도 모르게 오래 서 있게 되는 그 순간을, 올여름 파리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들라크루아를 두고 했다는 표현이 자꾸 떠오른다. 꽃다발 같은 겉 모습에 예술적으로 감춰진 화산 분화구. 어쩌면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그런 곳이 아닐까. 겉으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이지만, 그 골목 깊숙이에는 한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뜨거운 잔 열이 남아 있는 도시. 그 열기를 느끼러, 이번 여름 나는 파리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91/cover150/k9521381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917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말의 시작 - [말의 시작 - 편안하게 마음을 여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71</link><pubDate>Tue, 12 May 2026 2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507&TPaperId=172726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72/coveroff/k9321375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7507&TPaperId=172726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말의 시작 - 편안하게 마음을 여는</a><br/>아가와 사와코 지음, 박재영 옮김 / 밀리언서재 / 2026년 04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마주 앉아, 커피잔을 감싸 쥔 두 손이 어색하게 떨리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말들이 뒤엉켜 있는데, 막상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침묵이 공기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고, 그 무게가 가슴을 짓누른 다. 결국 참다못해 꺼낸 한마디는 “날씨가 참 좋네요" 같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말이다. 이상하다. 친한 친구와 있을 때는 끝도없이 이야기가 쏟아지는데, 왜 낯선 사람 앞에서는 그토록 말이 막히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안고 산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원인을 자신의 말솜씨 부족에서 찾는다. 나는 말재주가 없다고, 원래 조용한 사람이라고, 타고난 성격 탓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말솜씨의 부재가 아니라, 말을 시작하는 방식의 문제다. 화려한 언변이나 재치 있는 농담이 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 순간이 찾아오면, 말은 저절로 흐른다.<br>우리는 흔히 대화를 '정보의 교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상대가 그것을 받아 대답하는 구조. 하지만 실제 대화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감각적인 데 있다. 대화는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조율하는 행위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무의식중에 상대와의 거리를 측정한다. 이 사람에게 어디까지 다가가도 될까. 어느 정도의 농담이 허용될까. 이 주제는 불편하지 않을까. 그 미묘한 감각들이 대화의 온도를 결정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측정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데 있다. 잘못 다가갔다가 경계를 침범할까봐, 말이 어긋나 분위기를 망칠까봐,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침묵은 그렇게 선택된다. 실수하지 않기 위한 가장 안전한 도피처다. 그러나 침묵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메시지다. 관심이 없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고, 차갑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오히려 어설프게 꺼낸 한마디가, 계산된 침묵보다 훨씬 따뜻하게 전달될 때가 많다. 말을 시작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는 작은 용기의 표현이다.<br>그렇다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어떤 첫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열고, 대화의 물꼬를 자연스럽게 트는 걸까. 첫 번째 조건은 '나'보 다 '상대'를 먼저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 '무슨 말을 해야 잘 보일까', '어떻게 하면 재미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까.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향해 있다. 그래서 긴장한다. 그래서 말이 막힌다. 반면 편안하게 말문을 여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의 시선은 상대를 향해 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이 자리가 편안해 보이는가, 어색해 보이는가.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그 작은 관찰이 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상대에게서 찾아낸 한 가지 단서가, 어떤 공들여 준비한 멘트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이 된다. 두 번째 조건은 완벽한 말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침묵에 갇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완벽한 말을 찾기 때문이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완벽한 의견, 모두를 웃게 만들 완벽한 농담, 상황에 딱 맞는 완벽한 한마디. 그런 것을 찾느라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말을 검열하다 보면, 그 사이에 대화의 물결은 이미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편안한 대화는 완벽함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불완전함, 살짝의 어색함이 대화를 인간적으로 만든다.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 상대의 말에 작게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얹고, 그렇게 천천히 대화의 강물에 발을 담그면 된다. 세 번째 조건은 불행도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의 소재로 밝고 긍정적인 것만 꺼내려 한다. 그래야 상대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종종 작은 실패담이나 소소한 불행이다. 오늘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 아침에 커피를 쏟았다는 이야기, 어제 이상한 꿈을 꿨다는 이야기. 이런 사소한 고백들이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그 공감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혼자 감당하던 일도 말로 꺼내는 순간 이야기가 되고, 때로는 웃음이 된다. 대화는 그렇게 치유의 기능도 갖는다. 완벽하고 빛나는 이야기만이 대화의 재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적인 허술함과 솔직한 감정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대화의 씨앗이다.<br>말의 온도, 표현의 방식, 어떤 주제를 선택하느냐, 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든다. 때로는 다가서는 것만큼 물러서는 것도 중요하다. 관계가 삐걱거릴 때, 억지로 말을 이어가려 할수록 상황은 더 꼬이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잠시 침묵을 선택하는 것, 거리를 두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관계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했을 때, 갈등의 원인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상대의 좋은 면만 남아있는 경험을 해본 사람 이라면 알 것이다. 반대로, 낯선 환경에서 말을 먼저 건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자리에서 나만 이방인일 때, 먼저 미소를 짓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는 것. 그 작은 한 발짝이 종종 예상치 못한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미 위계가 정해진 자리에서는, 가장 조용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대화 전체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화학반응처럼, 한 사람에게 건넨 관심이 자리 전체를 살아있게 만든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말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있으면, 말하는 사람은 불안해진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걸까, 관심이 없는 걸까. 그 불안이 쌓이면 대화는 멈춘다. 반면 작은 추임새 하나, 가벼운 고개 끄덕임 하나가 상대에게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다. 눈빛, 표정, 몸의 방향, 상대를 향한 집중. 이것들이 모여 대화의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편안한 대화의 시작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 내 이야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 완벽하지 않 아도 괜찮다는 여유.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말은 자연스럽게 흐른다.<br>우리는 모두 연결되기를 원한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받고, 함께 웃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 중 하나다. 그 욕구가 있음에도 말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상대가 냉담하게 반응하면 어떡하지, 말이 어긋나면 어떡하지 걱정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말을 건넸다가 실패한 경험보다, 말을 건네지 못해 아쉬웠던 경험이 훨씬 많지 않은가. 그 자리에서 한마디만 했더라면 이어졌을 인연, 조금 더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깊어졌을 관계, 용기 내어 먼저 다가갔더라면 달라졌을 순간들이다.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다. 재치 있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편안하게 말문을 여는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는 것,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안부 문자 하나를 보내는 것,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자리에서 작은 실수담 하나를 꺼내는 것이다. 말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진심을 담아 상대를 향해 손을 내미는 그 한마디, 그것이면 충분하다. 대화는 언제나 그 작은 한마디에서 시작된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94/72/cover150/k9321375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94728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신장 케어 - [신장 케어 - 수치의 악화를 막고 일상을 회복하는 신장 관리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62</link><pubDate>Tue, 12 May 2026 19: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726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8068&TPaperId=172726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25/coveroff/k3821380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8068&TPaperId=172726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장 케어 - 수치의 악화를 막고 일상을 회복하는 신장 관리법</a><br/>다카토리 유지 지음, 김소원 옮김 / 싸이프레스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는 흔히 아픔을 통해 몸의 이상을 감지한다. 두통이 오면 머리를 짚고, 가슴이 답답하면 심장을 걱정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장기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는다면 어떨까. 우리 는 그 침묵을 건강의 증거로 착각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이어간다. 신장이 바로 그런 장기다. 신장은 ‘조용한 살인자'라고 불린다. 이 표현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매우 정확한 묘사다. 신장은 기능의 상당 부분이 손상되기 전까지 뚜렷한 증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이 상을 발견하게 되고, 그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든 경우가 많다. 신장 관리가 일종의 생존 전략 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br>신장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몸 전체 시스템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다. 신장은 매일 쉬지 않고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 수분과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하며, 혈압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한다. 여기에 더해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뼈 건강과 직결되는 비타민 D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이처럼 신장이 관여하는 기능의 범위는 단순히 소변을 만들어내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신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오염되고, 혈압이 불안정해지고, 빈혈이 생기며, 뼈가 약해지고, 심장에까지 부담이 가해진다. 결국 신장 하나가 무너지면 전신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구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장이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간은 일정 수준까지 스스로를 회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장의 기능 세포인 네프론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장 관리는 치료보다 예방이 핵심이며, 이미 기능이 크게 저하된 뒤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장 관리는 어떤 질병을 예방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수명을 관리하는 일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만이 아 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기능하며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장이 버텨주는 한 우리 몸은 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신장이 무너지는 순간 그 균형은 빠르게 무너진다.<br>신장의 역할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몸 전체 시스템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다. 신장은 매일 쉬지 않고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고, 체내 수분과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하며, 혈압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조율한다. 여기에 더해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뼈 건강과 직결되는 비타민 D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이처럼 신장이 관여하는 기능의 범위는 단순히 소변을 만들어내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신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오염되고, 혈압이 불안정해지고, 빈혈이 생기며, 뼈가 약해지고, 심장에까지 부담이 가해진다. 결국 신장 하나가 무너지면 전신이 연쇄적으로 흔들리는 구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장이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간은 일정 수준까지 스스로를 회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장의 기능 세포인 네프론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신장 관리는 치료보다 예방이 핵심이며, 이미 기능이 크게 저하된 뒤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신장 관리는 어떤 질병을 예방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수명을 관리하는 일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의 문제만이 아 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기능하며 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장이 버텨주는 한 우리 몸은 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신장이 무너지는 순간 그 균형은 빠르게 무너진다.<br>신장은 조용하지만, 완전히 침묵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신호가 너무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눈 주위가 부어 있거나 발목이 붓는 느낌이 지속된다면, 이는 신장이 체내 수분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일 수 있다. 소변에 거품이 많이 생긴다면 단백질이 소변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신호다. 소변 색이 지나치게 진하거나 탁하다면 신장의 여과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유 없이 만성 피로가 지속되거나 집중력이 흐려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신장이 노폐물을 충 분히 걸러내지 못하면, 그 독소들이 혈액 속에 쌓여 전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가려 움증이 생기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신호들 하나하나는 단독으로 보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여러 가지가 겹쳐서 나타난다면 신장 기능 저하를 의심해볼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신호들이 나타날 무렵이면 이미 신장 기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신장은 전체 기능의 절반 이상을 잃기 전까지는 증상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증상이 없다는 것을 건강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된다. 정기적인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를 통해 크레아티닌 수치, 사구체 여과율, 단백뇨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 신장의 상태를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신장 케어는 거창한 계획이나 특별한 치료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의 식탁에서, 오늘의 산책에서, 오늘의 물 한 잔에서 시작된다. 식사에서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나트륨과 인이 많은 가공식품의 섭취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가능하면 자연 식품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는 것이 신장에게 큰 도움이 된다. 단백질은 완전히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질 좋은 단백질을 적정량 섭취하는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당 관리 역시 신장 보호와 직결된다. 혈당이 만성적으로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신장의 미세혈관이 손상 되고, 이것이 당뇨성 신증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된다. 운동은 격렬한 것보다 꾸준한 것이 낫다. 매일 30분의 가벼운 걷기는 혈압을 안정시키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신장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반면 지나치게 격렬한 운동은 근육 분해 산물을 급격히 늘려 오히려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와 충분한 수면도 놓을 수 없다. 만성 스트레스는 혈압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면역 체계를 흔들어 신장에 간접적이지만 누적된 손상을 가한다. 깊은 호흡, 명상, 또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하며 일상의 긴장을 푸는 시 간은 신장 건강과 무관한 사치가 아니라, 건강 관리의 한 축이다.<br>신장은 평생 동안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낸다. 우리가 무엇을 먹든, 어떤 생활을 하든, 신장은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안으며 최선을 다해 몸의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그 헌신에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크지 않다. 조금 더 싱겁게 먹고, 물을 조금 더 마시고, 무리한 식단을 재고하고, 혈압 수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건강을 지키는 일은 결국 아직 괜찮을 때 시작하는 일이다. 신호가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신호가 없을 때 더 부지런히 돌봐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신장 케어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조용한 것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신장이 오래도록 조용히 일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조용히 그 옆을 살피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작지만 가장 확실한 건강의 출발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5/25/cover150/k3821380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5251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브레인 아웃소싱 - [브레인 아웃소싱 - AI 시대, 정답을 구독하고 사유를 잃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731</link><pubDate>Sun, 10 May 2026 2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7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7355&TPaperId=172687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76/coveroff/k0221373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7355&TPaperId=172687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브레인 아웃소싱 - AI 시대, 정답을 구독하고 사유를 잃다</a><br/>김해용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새벽 두 시, 나는 빈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써야 할 보고서가 있었고, 마감은 내일 아침이었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브라우저를 열고, 챗GPT 창을 띄우고, 질문을 입력했다. 몇 초 뒤 깔끔하게 정돈된 문단들이 화면을 채웠다. 나는 그것을 복사해 문서에 붙여넣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나는 편리함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잃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몰랐다. 보고서는 완성됐고, 마감도 지켰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그 보고서의 내용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것을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인류는 언제나 도구를 발명하며 진보해 왔다. 문자는 기억을 돌판에 새겼고, 계산기는 암산의 부담을 덜었으며, 인터넷은 지식의 접근 비용을 사실상 0 으로 만들었다. 매번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인간은 '이것이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을까'라고 우려했지만, 결국 도구는 인간을 더 높은 차원의 문제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AI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인가.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 앞에 멈춰 선다. 문자, 계산기, 인터넷은 인간이 '저장하고 계산하고 검색하는 행 위를 대신했다. 반면 AI는 '판단하고 추론하고 결론 내리는 행위, 즉 생각 그 자체를 대신한다. 이것은 도구의 연장선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범주의 사건인가.<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신체의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된다. 깁스를 한 달간 하고 풀면 팔뚝이 눈에 띄게 가늘어진다. 이것은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런데 사유의 근육도 다르지 않다. GPS가 일상화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한 번 가본 길을 다시 찾지 못하게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에서 관찰됐던 해마 발달, 즉 공간 인지와 기억에 관여하는 부위의 성장이 내비게이션 의존도와 반비례한다는 사실은 이제 신경과학의 상식이 됐다. 편리함이 능력을 대체하는 순간, 그 능력은 쓸 이유를 잃고 퇴화한다. 이 논리를 AI에 그대로 대입하면, 이야기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우리가 AI에게 맡기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길 찾기가 아니다. 논증의 구조를 세우는 일, 정보 사이의 모순을 발견하는 일, 감정의 결을 언어로 포착하는 일,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입장을 결정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 이 AI 아웃소싱의 대상이 되고 있다. AGI(범용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거나 근접하는 지금, 이 문제는 더욱 날카로워진다. AGI는 단순 반복 작업만을 대신하는 좁은 AI와 달리, 인간이 수행하는 거의 모든 인지 작업을 처 리할 수 있는 존재다. 그 앞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두 가지다. 생각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결과를 소비하는 '구독자'가 되거나, 혹은 AI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도 자신의 판단력과 비판적 사유를 날카롭게 유지하는 '지휘자'가 되거나. 문제는 구독자의 길이 너무 매끄럽고 달콤하다는 데 있다. 마찰이 없다. 고통이 없다. 막히는 순간이 없다. 그러나 배움과 성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 핵심에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이 있었다.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의 시행착오, 개념이 손에 잡히지 않아 밤새 씨름하는 시간, 자신의 논리가 무너지는 순간의 당혹감.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사유의 근육이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AI 아웃소싱은 이 소중한 마찰을 제거한다. 결과는 얻되, 과정은 건너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조용하고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청구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그렇다면 AI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맡길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경험의 무게'라고 생각한 다. AI는 수십억 개의 텍스트를 학습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확률적으로 적절한 자리에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실연 후 밥 한 술 뜨기도 무거웠던 그 아침을 모른다. 오래된 친구와 나눈 전화 한 통이 무너지던 마음을 다시 세워준 경험을 모른다. 인간의 언어가 힘을 갖는 것은 그 언어 뒤에 살아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AI의 언어가 아무리 유창해도, 그 뒤에는 경험이 없다. 그것이 기계와 인간을 가르는 마지막 경계선이다. 그러나 이 경계선은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의식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우리는 '질문하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AI 가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이 더 희귀하고 강력한 역량이 된다. 좋은 질문은 단순히 AI에게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반영하는, 사 유의 구조 그 자체다. 질문의 수준은 곧 사고의 깊이다. 또한 우리는 'AI의 답을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AI는 자신이 틀렸을 때도 유창하다. 확신에 찬 어조로, 매끄러운 문장으로,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하고 없는 논문을 제시한다. 유창함과 정확성은 다르다. 이것을 구별하는 안목이 AGI 시대의 핵심 리터러시다. 더 나아가, AI가 제시하는 답이 맞더라도 '왜 맞는가'를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검증 없는 수용은 사유의 포기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비효율의 가치'를 복권시켜야 한다. 삶의 모든 영역을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는 순간, 인간적인 것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직접 고른 단어들로 쓴 편지, 막히면서도 스스로 풀어낸 문제, 빠른 길을 두고 굳이 걸어서 만나는 사람. 이것들은 알고리즘으로는 계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비효율의 순간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Al 아웃소싱은 적이 아니다. 우리의 판단력이 살아 있는 한, AI는 강력한 조력자다.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라 AI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AGI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것'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시대가 될 수 있다. 기계가 모든 답을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인간의 진짜 역량을 가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18/76/cover150/k0221373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18768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최강의 일하는 방식 키엔스 - [최강의 일하는 방식 키엔스 - 신입부터 베테랑까지, 최단 시간에 최대의 성과를 내는 간단한 규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708</link><pubDate>Sun, 10 May 2026 2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7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023629&TPaperId=172687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2/34/coveroff/89650236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023629&TPaperId=172687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최강의 일하는 방식 키엔스 - 신입부터 베테랑까지, 최단 시간에 최대의 성과를 내는 간단한 규칙</a><br/>사이타 신지 지음, 강모희 옮김 / 지상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인생의 어느 순간,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물음을 가슴 속에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저 사람은 저토록 가볍게 성과를 내는데, 나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걸까." 그 물음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같은 답을 내린다. "재능의 차이야." 그리고 그럴 때마다, 조금씩 체념의 층을 영혼 위에 쌓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멈춰 생각해본다. 정말 그럴까. 재능의 차이가 정말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걸까? 키엔스라는 회사는 그 '상식'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50%를 넘어 일본을 대표하는 초고수익 기업으로 군림하는 이 조직의 강점의 원천은, 천재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의 '약함'을 철저히 인정하고 받아 들이면서도, 누구나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의 힘에 있다. 이 사실은 나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혹시 우리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의 규칙을 따르며 줄곧 소모되어 온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게임의 규칙을 설계한 적이 없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주어진 평가 기준 안에서, 그 기준에 맞는 사람 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싸워왔다. 그 게임판 자체를 의심하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로. 키엔스는 바로 그 게임 판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진짜 승리의 전략임을 보여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저자 사이타 신지 씨의 커리어는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출발이었다. 채용 시험에서 불합격을 경험하고, 입사 후에는 동기 중 최하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던 한 청년이, 훗날 키엔스 사상 최초의 3기 연속을 포함해 5번의 영업 성적 전사 1위라는 '전설'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 궤적은, 재능론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증이다. 그의 변화를 이끈 키엔스의 사상은 성약설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인간이란 본래 의지가 약하고, 쉬운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생물이라는 냉철한 인간관이다. 많은 조직이 정신론이나 근성론으로 사람을 움직이 려 할 때, 키엔스는 그런 모호한 노력에 대한 의존을 거부했다. 대신, 인간이 약하더라도, 흔들리더라도, 지쳐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리는 '구조'를 철저하게 설계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매일 반복하는 롤플레이 연습, 방문 전후에 작성하는 외출 보고서, 행동량 자체를 KPI로 평가하는 성과 측정 시스템 이것들은 얼핏 보면 답답한 관리 체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이것들은 인간의 약함을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함을 보완하고, 누구나 높은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정 부목' 인 것이다.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일부터 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몇 번이나 배신해왔던가. 키엔스는 그런 우리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지에 의존하는 것을 포기한 채, 행동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사람을 천재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사상이 결코 개인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인간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함으로써, 그 약함을 스스로 책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자책이 아닌 설계. 의지가 아닌 시스템. 이 전환이야말로, 키엔스식 사고방식의 핵심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버린다면, 키엔스는 그저 냉철한 기계적 조직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합리적인 시스템 위에 인간적인 온기(사랑받는 힘)를 융합시킨 데 있다. 사랑받는 힘이란,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기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이 사람에게서 사고 싶다" 고 느끼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이고 재현 가능한 기술이다. 그 예로 자리 배치의 경우, 상담 자리에서 정면이 아닌 옆에 앉아 같은 자료를 함께 들여다본다. 이것은 심리적 구도가 '대립'에서 '공동 작업'으로 변하게 한다. 다른 예로 손글씨 메모 를 들 수 있다. 자료를 보낼 때 손으로 쓴 한마디를 함께 첨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에서, 특별한 한사람'으로 각인되게 할 수 있다. 이외 여러가지 사례를 볼 수 있다. 어느 것이나 작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작은 보통'의 축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닌다. 내가 이 '사랑받는 힘'이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을 타고난 카리스마나 천성적인 화술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그것 역시 분해하고,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기술' 인 것이다. 사이타 씨는 커뮤 니케이션에 강한 콤플렉스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기술을 하나하나 습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저자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냉철한 시스템이라는 뼈대 위에, 인간적인 온기라는 살을 입히는 것. 이 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재능'이라는 불확실한 신화를 넘어설 수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다 읽고 난 후, 내 안에 남은 것은 일종의 조용한 흥분이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손에 잡힐 듯한 희망이었다. 키엔스의 구조를 그대로 자신의 직장에 들여오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업종도, 환경도, 문화도 다르다. 그러나 그 근저에 있는 원리원칙은 보편적이다.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고, 구조로 보완한다" 합리성 위에 인간적 온기를 더한다" 어떤 일에도, 어떤 인간관계에도 응용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재능이 없다" 고 느꼈던 순간의 많은 경우는, 사실 구조가 없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올바른 틀도 없고, 돌아보는 습관도 없고, 행동의 기록도 없이, 그저 무작정 노력을 거듭해왔다. 그것은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같다. 저자는 그 나침반을 건네준다. 재능이라는 불확실한 별이 아닌, 누구의 손에도 닿을 수 있는 구조라는 확실한 이정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2/34/cover150/89650236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52340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 - [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 - 오직 남프랑스에서 마주하는 예술적인 풍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678</link><pubDate>Sun, 10 May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6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722509&TPaperId=172686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5/84/coveroff/89587225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722509&TPaperId=172686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 - 오직 남프랑스에서 마주하는 예술적인 풍경</a><br/>김종진 외 지음 / 효형출판 / 2026년 04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작년 여름, 나는 니스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행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어딘가에서 나를 불러낸 것 같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비행기에 올랐고, 코트다쥐르의 햇살 속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비로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감각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프랑스의 빛은 달랐다. 한국의 여름 햇살이 짓누르듯 내리꽂힌다면, 니스의 빛은 스며들었다. 낡은 돌벽 사이로, 지중해의 물결 위로, 좁은 골목의 색 바랜 덧문 틈 사이로 빛은 조용히 파고들었다. 그 빛 아래 서 있으면 시간이 다르게 흘렀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냥 흘렀다. 내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통과해 가는 느낌이었다. 니스의 아침은 재래시장에서 시작됐다. 쿠르 살레야 꽃시의 라벤더 향이 공기 속에 번지고, 노란 미모사와 붉은 토마토가 쌓인 좌판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무 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기 위해 걸었다. 그것이 남프랑스가 내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것이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마티스 미술관 앞에 섰을 때, 나는 특별한 기대를 품지 않았다. 미술관이라면 이미 숱하게 다녀왔고, 작품은 늘 액자 안에 갇혀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무언가가 달랐다. 마티스의 색은 그림 바깥으 로 흘러넘쳐 있었다. 그것은 캔버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간 전체를 물들였다. 파랗고, 붉고, 노란 세계. 이성보다 먼저 몸이 반응했다. 가슴 어딘가가조여들었고, 이유도 모른 채 눈이 뜨거워졌다. 그는 단순히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빛으로 공간을 다시 쓰고 있었다. 수술 후 병상에서도 가위와 색종이로 세계를 재구성했다는 그 이야기가, 미술관의 조용한 복도 속에서 갑자기 생생하게 와닿았다. 몸이 불편해도 손끝에서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예술이구나. 그것이 삶이구나. 그날 오후, 마르크 샤갈의 세계 속에도 잠시 들어갔다. 전쟁과 망명, 사랑과 상 실을 지나온 한 인간이 남프랑스의 빛 속에서 완성한 색채의 서사. 샤갈의 그림 앞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어떤 꿈을 불현듯 떠올렸다. 기억이란 이상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색 앞에서 갑자기 깨어난다. 기억은 사 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나는 언제부터 침묵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여행 중 하루, 세낭크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을 달렸다. 고르드의 절벽 마을을 지나 라벤더 밭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수도원이 나타난다. 보랏빛 라벤더 너머 회색 돌벽의 수도원. 그 순간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거기서 보면 안 다. 수백 년 전 수도사들이 쌓아 올린 그 돌벽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은 위압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아주 오래된 것들만이 줄 수 있는 고요한 안도감. 이 벽은 나보다 훨씬 오래 여기 있었고, 나보다 훨씬 오래 여기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초라함이 아닌, 해방감을 느꼈다. 수도원 안으로 들어서면 소리가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돌이 숨 쉬는 소리, 빛이 바닥 위에 내려앉는 소리, 수백 년의 시간이 벽 속에서 삭아가는 소리.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도시의 삶은 늘 무언가를 채우라고 요구한다. 시간을 채우고, 일정을 채우고, 피드를 채우고. 그런데 세낭크 의 그 고요한 돌 안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비워야 들린다는 것을, 아무것도 없어야 보인다는 것을.<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니스의 마지막 날 저녁, 나는 해변에 한참 앉아 있었다. 지중해는 그림엽서 속 바다와 달랐다. 그것은 파도가 검은 자갈을 쓸어내리는 소리, 저물어가는 빛이 수면 위에 부서지는 방식, 수평 선 너머로 사라지는 마지막 붉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 문장의 의미를 나는 완전히 해독하지 못했다. 아마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아도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예술과 자연이 공통으로 가진 힘이니까. 르코르뷔지에가 이 바다를 사랑했다는 것이, 그리고 이 바다로 돌아갔다는 것이 그날 저녁에야 비로소 이해됐다. 이 바다는 그냥 바다가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위대한 건축가도, 유명한 화가도, 평범한 여행자도 결국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곳. 그 앞에 서면 누구나 그냥 '한 사람'이 된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 아래 어딘가에 그 빛이, 그 돌이, 그 침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lt;돌, 빛, 숲 그리고 코트다쥐르&gt;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이 남프랑스를 여행하며 기록한 책.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은 남프랑스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는 것 같았다. 마티스 채플의 빛, 르 코르뷔지에의 흔적, 수도원의 침묵, 고르드와 에즈와 생폴드방스의 골목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글자가 아니라 냄새와 온도와 질감이 느껴졌다. 라벤더 향, 돌이 품은 따뜻함, 지중해 바람의 짭조름함. 그것들이 손에 잡힐 듯 되살아났다. 책은 내게 여행을 권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 나는 지금 무엇을 경험하며 살고 있 는가. 데이터와 이미지가 경험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는 여행지의 사진을 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하지만 세낭크 수도원의 돌벽 앞에서 멈추지 않고는, 그 고요가 어떻게 가슴 안쪽까지 스며드는지 를 알 수 없다. 지중해의 자갈 위에 실제로 앉아보지 않고는, 파도가 돌을 쓸어내리는 그 진동이 왜 눈물겨운지 를 알 수 없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35/84/cover150/89587225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35844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653</link><pubDate>Sun, 10 May 2026 2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2686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8986&TPaperId=172686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7/coveroff/k2221389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8986&TPaperId=172686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a><br/>공지영 지음 / 해냄 / 2026년 05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은 노년의 문턱에 선 한 어머니가 서른을 견디고 있는 딸에게 보내는 열두 편의 진심 어린 편지다. 대학 시절부터 작가의 글을 곁에 두어온 독자로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낯익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어느새 나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작가의 자리가 아닌, 그 편지를 받아 읽는 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2008년에 발간되어 담담하게 읽었던 &lt;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gt;가 리커버 북과 함께 &lt;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2&gt;로 만날 수 있어 더욱 좋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박힌 것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고통이란 블랙홀과 같아서, 그 안에 빠지면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놀랍도록 정확하다.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정말로 세상 전체가 그 고통으로만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출구도, 다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동시에 떠올린 것은, 그 블랙홀에서 빠져나온 경험들이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그토록 진부하게 느껴지면서도 살면서 수없이 경험 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고통은 분명 끝난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지나고 나면 그 시간 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 또한 그 고통의 기적 같은 변환, 즉 시련이 감사로 바뀌 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늘 새로운 길을 찾아 이동해온 나의 삶이, 돌이켜 보면 그 고통의 블랙홀들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지도임을 이제는 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어 중 하나는 품위다. 작가는 운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운명이지만, 품위를 지키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동안 책을 덮어두었다. 우리는 흔히 내 상황이 나쁘거나 억울하면 그것을 핑계로 스스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품위와 품격은 누가 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어떻든 나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결국 나라는 사람을 형성한다. 또한 작가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엄성이라고 말한다. 나를 낮추고 상처 입히면서까지 지킬 사랑은 많지 않다 는 말. 이것은 냉정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가장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없을지언정 잃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이 품위라면, 나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오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으며 나는 세상이 얼마나 억울한 것들로 가득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득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이상한 게임 같은 인생. 자기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내가 혜택 받은 것은 하나도 기억에 없고, 손해 본 것들만 눈에 선하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바로 그 지점을 짚어낸다.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싶지 않은 게으름에서 온다는 것. 과거의 탓을 내려놓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짜 시작이라고. 억울함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억울함에 계속 머무는 것과 억울함을 인정한 채 앞을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누구나 저마다의 어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아이들이 모래성을 짓는 이미지다. 엄마가 곧 부를 것을 알면서도 정성 들여 모래성을 쌓고, 불리면 기쁘게 달려가는 아이들, 작가는 자신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모래성을 잘 짓다가, 신께서 부르시면 기쁘게 놀던 손 탁탁 털고 달려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으로 마주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모래성을 짓는 아이처럼, 지금 여기에 온 마음을 다하다가 때가 되면 가볍게 일어설 수 있다면 -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 산 삶이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을 더 충실하게 살게 하는 나침반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일깨워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이 책이 그렇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딸보다는 언니에게, 혹은 먼저 살아본 사람에게 듣는 말처럼 책은 나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지금 나는 운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고 싶은 것에 매몰되기보다 차라리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못하는 것에 좌절하기보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충분히 다들 어려움만큼이나 애쓰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든, 저는 당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마음이 무거운 날, 이유도 모르게 지친 날, 조용히 이 책을 펼쳐보고 싶다. 읽고 나서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더라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조금 달라질 것이 다. 그 미세한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23/57/cover150/k2221389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23576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