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oogi386님의 서재 (koogi386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31 Oct 2026 05:38:50 +0900</lastBuildDate><image><title>koogi386</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oogi386</description></image><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상한 나라의 경기도민 - [이상한 나라의 경기도민 - 계란 흰자처럼 서울을 둘러싼 1400만의 기쁨과 슬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312</link><pubDate>Sat, 24 Oct 2026 16: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3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1216&TPaperId=175903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91/27/coveroff/k6821312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82131216&TPaperId=175903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상한 나라의 경기도민 - 계란 흰자처럼 서울을 둘러싼 1400만의 기쁨과 슬픔</a><br/>이준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어디서 볼까?" 하고 물으면 약속 장소는 대개 서울로 정해진다. 김포, 안산, 용인에 사는 세 친구가 만나는 곳이 사당인 것은 그곳이 모두에게 가장 공평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작 안산과 용인은 같은 노선으로 이어져 있는데도 서로를 향해 가지 않는다. 가끔 있는 모임쯤이야 서울에서 해도 그만이라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소한 습관 속에는 경기도에 사는 삶의 구조가 들어 있다.

그 구조는 교통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도권 교통망은 경기도 사람을 서울로 빠르게 옮기도록 짜여 있다. GTX가 개통되면 역과 역 사이의 시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마을버스 배차가 절반으로 줄어든 동네가 있다. 고양시 대장동에서는 학생과 노인이 유일한 발을 잃었다. 철도가 가리키는 방향은 서울이고, 이웃 도시로 가는 길은 점점 가늘어진다. 나는 이것이 '장소'의 접근성은 높이면서 '사람'의 접근성은 놓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대곡역에서 서울역까지 17분이 줄어드는 동안, 누군가는 동네 버스를 25분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도민이 차를 사는 이유가 서울 출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로 가는 대중교통은 오히려 잘 되어 있다. 문제는 5킬로미터 떨어진 마트에 가는 일이다. 차로 19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는 47분이 걸리고,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배차 간격은 30분이 넘기 일쑤고, 그나마 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지나쳐 가는 버스도 있다. 그 버스를 모는 기사들이 하루 열대여섯 시간을 운전하며 쉴 틈 없이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화를 내기도 어려워진다. 나를 두고 떠나는 버스의 뒤에는 사람이 부족한 노동 현장이 있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은 운전할 수 없게 되는 날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노인과 청소년들이다. 이동권이 곧 삶의 조건이라면, 자가용 구입을 사실상 강요하는 구조를 개인의 선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경기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 서울에 가지 못한 사람, 언젠가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사람. 우리 사회는 경기도민을 그렇게 상상한다. '상급지'와 '하급지'라는 말이 공문서에까지 등장하는 나라에서 동네를 사랑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자기 위안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용인 시민의 상당수가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답하고, 적지 않은 사람이 그 도시를 고향처럼 느낀다. 사람들은 넓은 집, 정돈된 도시, 가까운 공원 같은 이유로 자기 동네를 좋아한다. 소속감과 애착은 정주를 결정하는 진짜 변수다. 집이 자산으로만 평가되는 세상에서 이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받지만,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기 전에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사는 존재다.

경기도의 문제는 서울에 가깝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지역이 하나의 얼굴로 소비된다는 데 있다. 경기도에는 서울로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아파트 바깥에 사는 사람도, 도시 중심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도, 접경지에서 규제와 공포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책과 담론은 이들의 다양한 요구 대신 "서울까지 몇 분"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도시의 가치를 매긴다. 문화 시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민이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서울로 간다. 서울 밖에는 서울만큼의 갈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편견이다.

그렇다고 해법이 '경기도가 노른자가 되는 것'일 수는 없다. 서울을 닮은 더 비싼 아파트, 더 빠른 철도, 더 큰 산업단지를 쌓아 올리면 또 다른 주변이 생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다른 지역의 전기와 물에 기대고, 개발 앞에서 자연이 '미개발지'로 불리는 한 위계의 사슬은 이어진다. 중심이 어디냐는 질문만으로는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경기도에서의 삶을 생각하며, 중심을 옮기는 일보다 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되묻는 일이 먼저라고 느낀다. 버스 한 대, 동네 도서관 하나, 작은 미술관의 전시 한 편이 누구의 삶을 지탱하는지 살피는 일이 그 출발일 것이다.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고, 사는 곳은 서열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이번 주말에도 친구들과 사당에서 만나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동네에서 "여기서 보자"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말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면, 경기도는 서울의 주변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으로 불릴 것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91/27/cover150/k6821312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91270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책방과 무릎들 - [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305</link><pubDate>Sat, 24 Oct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3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206&TPaperId=175903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9/coveroff/k4221312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206&TPaperId=175903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a><br/>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속 저자는 남해에 와서 낫을 들고 풀을 베다가 "성기지만 엉기게"라는 말에 감동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한참 멈춰 있었다. 사람이 사는 일도 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숨은 쉬되 쓸려가지 않는 것. 거리는 두되 이어져 있는 것. 남해라는 낯선 땅에서 사는 일은 아마 그 어려운 균형을 몸으로 배우는 일일 것이다.

남해살이는 낭만이 아니라 노동에서 시작한다. 글쓴이는 도시를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빈집 한 채 구하지 못해 보름 동안 헤매고, 월세가 귀해 개와 함께 5평 방에 머문다. 도어록 없는 문, 눅눅한 벽, 겨울이면 삭풍을 견디게 하는 전기장판. 시골의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춥지가 않다. 집을 구하려고 인맥을 총동원해 반바지 아저씨를 몰아붙이던 신발달인, 냄비를 들고 간 사람에게 된장찌개를 가득 담아주던 식당 아주머니, 다 열어두고 사는 문들이 있어서다. 집은 벽과 지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기척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준다. 도시에서의 내 집을 생각했다. 현관문에 도어록이 있고, 베란다 샷시가 있고, 이웃의 얼굴은 모르는 집. 안전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는 집. 우리는 그것을 '내 공간'이라 부르며 안심했지만, 그 안심은 사실 서로를 재는 눈금 위에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책 속의 화자도 말한다. 주소와 직업과 학력을 넣으면 삶의 등수가 나오는 모눈종이가 있었다고. 남해에서는 그 눈금이 흐려진다. 누구네 집이 더 비싼지 포털에 나오지 않고, 사람들은 N잡러로 각자의 방식대로 산다. 눈금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몽덕이와 아이들이다. 리드줄을 서로 잡겠다고 협상하는 아이들, 정작 줄을 쥐어봤자 이끄는 쪽은 개라는 사실. 해변 웅덩이에서 이유도 없이 새우를 옮기며 몰입하는 아이들 곁에서 어른은 그저 그 순간에 같이 있는다. 화자가 책방에서 얻은 깨달음도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이, 개의 배를 채우고 곰팡이를 닦는 일 같은 작은 사랑으로 자기 자리를 확인한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대신 사랑하는 쪽에 서 보는 것. 그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는 이야기가 조용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물론 남해가 이상향은 아니다. 아이가 열이 끓던 밤, 응급실을 찾아 순천까지 달려야 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시골의 불편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보여준다. 출생신고서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서랍을 뒤지던 면사무소, 입학생이 없어 합쳐지는 학교들. 이곳의 느슨함은 때로 결핍과 한 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남해를 예찬하지 않아서 좋았다. 화자는 투덜대고, 지치고, 매출에 따라 인성이 달라지는 자신을 웃으며 고백한다. 그 솔직함이 있기에 마지막 장면의 놀이가 더 따뜻하게 읽힌다. 나이 쉰이 넘은 어른들이 "몽덕이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주문에 맞춰 네발로 기고, 한쪽 다리를 드는 장면 말이다. 의미는 알 수 없어도,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따라 하는 것. 그것이 이해를 대신하는 사랑이라고 글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돌 수는 있다. 남해살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관계는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드나들 만큼의 틈을 두고 엮는 일이라는 것이다. 흙 속 미생물이 알아서 균형을 맞추듯, 사람 사이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를 받치는 힘이 있다. 상추가 당귀에 기대어 자라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자란다. 도시로 돌아가든 이곳에 남든, 나는 책을 덮으며 작은 다짐을 한다. 문을 조금 열어두기로. 낯선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로. 그리고 누군가 내미는 손에 어정쩡하더라도 내 손을 얹어보기로. 성기게, 그러나 엉기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내가 사는 어느 곳에서든 작은 두둑 하나를 일구게 할 것 같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30/9/cover150/k4221312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30091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예술을 처방합니다 - [예술을 처방합니다 - 삶을 다시 일으키는 미적 경험 너머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27</link><pubDate>Sat, 24 Oct 2026 15: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901&TPaperId=175902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15/55/coveroff/k242131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901&TPaperId=175902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예술을 처방합니다 - 삶을 다시 일으키는 미적 경험 너머의 힘</a><br/>데이지 팬코트 지음, 조현욱 옮김 / 디플롯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예술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은 익숙하다. 그림을 그리며 마음이 가라앉았다는 경험, 음악이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그래서 &lt;예술을 처방합니다&gt;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반가움 보다 경계심이 먼저 들었다. 제목만 보면 예술을 만능 치료제로 그리는 또 하나의 낙관적인 책일 것 같다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책은 내 우려를 비껴갔다. 저자 Daisy Fancourt는 책 곳곳에서 예술이 만병통치약(panacea)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는 예술이 오히려 더 큰 해를 끼친 사례를 직접 제시하고, 예술 치료와 관련해 떠도는 여러 신화를 하나씩 바로잡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과장과 선정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 분야를 오히려 강하게 만든다고 본다는 점이다. 과장된 주장을 걸러 내야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분할 수 있고, 그래야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하 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과장된 약속은 결국 실망을 낳고, 실망은 분야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의 건강 효과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증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장과 신화를 걷어 내는 일이 필요하다.<br>저자는 신경과학, 역학, 심리학, 면역학, 행동과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 참여가 가져오는 측정 가능한 건강상의 이점을 설명한다. 그가 300편이 넘는 과학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 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도 신뢰를 더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책의 참고문헌이 상징적이다. 주장의 출처를 숨기지 않고 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예술은 좋다'는 믿음을 '예술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좋은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그동안 읽은 많은 책은 연구 결과 중 듣기 좋은 부분만 골라 쓰거나, 개인의 일화에만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은 그런 방식과 명확히 거리를 둔다.<br>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은 예술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를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예술 활동이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짚는다. 예술가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창작을 통해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 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 창작 활동을 멈춘 뒤에야 자신이 누구인지 묻게 된 사람들이었다.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사실은 이 책이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점이 오래 남았다. 창작 경력이 정신 건강을 해졌거나, 질병으로 더 이상 창작을 할 수 없게 된 사람에게 "예술이 치유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용한 수준을 넘어 잔인한 일이다. 치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쓰여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부정당하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br>〈Art Cure&gt;는 예술이 사람을 살린다는 낙관적인 믿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믿음에 과학적 근거와 현실적 한계를 함께 붙여 준다. 책이 예술 치료에 관한 논의에서 그늘과 뉘앙스를 함께 다루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 예술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술이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두 가지 사실을 동시에 인정할 때에야 우리는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15/55/cover150/k242131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15556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관점의 기술 - [관점의 기술 - 새로운 것은 이미 우리 눈앞에 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14</link><pubDate>Sat, 24 Oct 2026 15: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063&TPaperId=175902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9/50/coveroff/89255680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8063&TPaperId=175902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관점의 기술 - 새로운 것은 이미 우리 눈앞에 있다</a><br/>타나카 타츠야 지음, 김윤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상 위에 연필 한 자루를 보면서 생각해 본다.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막대기라고 답하고, 누군가는 로켓이나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릴 것이다. 같은 연필이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일본의 미 니어처 사진가 타나카 타츠야는 책에서 이 사실을 미타테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책을 읽으며 관점이란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익힐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미타테는 두 가지 뜻을 가진다. 첫째는 대상을 다른 것에 빗대어 보는 것이고, 둘째는 여러 가능성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정하는 것이다. 즉 미타테에는 '재해석'과 '선택'이라는 두 과정이 함께 들어 있다. 저자는 이 개념을 '나만의 감각' 에 맡기지 않고 논리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방법으로 정리한다. 막연한 영감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는 절차를 익히면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타테를 의식하면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지금 있는 것들을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며, 타인이 공감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책은 미타테의 발상을 일곱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형태(사물을 단순한 도형으로 줄인다), 색(떠오르는 대표 색으로 환원한다), 생활(익숙한 일상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스케일(크기의 관계를 바꾼다), 움직임(운동 방식을 단 순화한다), 의인화(사물을 사람처럼 본다), 세계 공통 사건(보편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 목록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원리는 단순화다. 형태든 색이든 움직임이든, 복잡한 세계를 몇 개의 핵심 요소로 줄이면 그것이 다른 사물과 연결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듯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처럼, 세상을 단순한 도형으로 옮겨 놓으면 아이디어가 훨씬 쉽게 떠오른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공감의 조건이다. 저자는 미타테의 재미가 모두가 아는 원본(JT 5)에서 나온다고 설명 한다. 유명인의 성대모사가 통하는 것은 청중이 원래 인물을 알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도 외국인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좋은 미타테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을, 누구나 아는 다른 무언가로 바꿀 때 완성된다.흥미로운 점은 미타테를 눈에 보이는 사물에만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제시한 '형태'나 '색'의 발상은 주로 사진과 미니어처를 위한 것이지만, 미타테의 진짜 힘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드러난다. 물리학의 사고실험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실험실에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을 익숙한 장면에 빗대어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이론을 전개한다. 원자 구조를 태양계에 비유한 초기 원자 모형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리적으로도, 논리적으 로도, 감각적으로도 쉽게 붙잡히지 않는 개념을 무언가에 견주고 조립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타테의 확장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즉 미타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상을 그리는 도구가 된다. 익숙한 것을 빌려 와 낯선 것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해가 탄생하는 것이다.<br>책은 무엇을 보느냐 "보다 " 어떻게 보느냐 "가 창의성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형태를 줄이고, 색을 떠올리고, 크기를 바꾸고, 움직임을 읽고, 사물을 사람처럼 상상하고, 보편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것. 이 일곱 가지 방법은 모두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훈련이다. 연필 한 자루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곧 그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관점의 기술이란 결국 세상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며, 그 능력은 연습을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9/50/cover150/89255680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29503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더 늦기 전에 인생의 효율 - [더 늦기 전에 인생의 효율 - 나의 시간과 멘탈을 되찾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07</link><pubDate>Sat, 24 Oct 2026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707&TPaperId=175902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6/54/coveroff/k4221317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707&TPaperId=175902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더 늦기 전에 인생의 효율 - 나의 시간과 멘탈을 되찾는 법</a><br/>아놀드 베넷 지음, 충희 엮음 / 여린풀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자기계발서는 해마다 쏟아지고, 대부분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같다. 그렇다면 차이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방식에서 생긴다. 아놀드 베넷(Arnold Bennett) 의 책은 오래전에 출간되었지만, 이 질문에 대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도 유효한 답을 준다.베넷이 가장 날카롭게 짚은 것은 무심코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그는 특히 출퇴근 시간을 주목했다. 매일 반복되는 이동 시간은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짧지만, 쌓이면 일주일에 몇 시간, 일 년이면 수십 시간이 된다. 신문에 대해서도 그는 읽 는 행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극적이고 일시적인 매체가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 방식을 경계했다. 1910년의 출퇴근 시간은 기차와 전차 안에서의 신문 읽기였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는 시간이다. 도구는 바뀌었 어도 본질은 같다. 나는 하루를 돌아보면서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의식하지 못한 채 사용된 시간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효율의 첫걸음은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어디로 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많은 현대의 생산성 서적이 생산성 그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전제하는 반면, 베넷은 시간을 자신의 가치에 맞게 쓰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베넷은 문학이나 음악을 권하지만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은 교양인이 되는 데 있지 않고,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지혜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시간을 배분하는 능력이다. 이 점이 내게 와닿은 이유는, 효율을 추구하다 보면 쉽게 수단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할 일 목록을 빨리 지우는 것이 목표가 되면, 정작 그 일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는 잊게 된다.베넷이 제시한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하루에 약 90분 정도를 공부나 탐구에 쓰고, 출근 길에는 전날 배운 것을 떠올리며 정리하고, 퇴근 길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잘된 점과 고칠 점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대 신 반복과 점진성이 핵심이다. 그가 경계한 것도 흥미롭다. 지나치게 엄격한 일정은 오히려 해롭다고 그는 말한다. 일정에 노예처럼 매이면 사회적 책임과 관계, 기회를 놓치게 된다. 또 처음부터 과도하게 열정을 쏟으면 금방 지쳐 포기 하게 된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는 새해 계획을 세울 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꾸려 했고, 며칠 뒤 무너지면 "역시 나는 안 된다"고 자책했다. 베넷의 조언은 그 반대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결국 더 멀리 간다. 효율은 완벽한 계획이 아 니라 지속 가능한 리듬에서 나온다. 책은 백 년이 넘은 책이지만, 베넷이 말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우리의 문제다. 시간은 이동 중에 새고, 주의는 자극적인 것에 빼앗긴다. 해결책도 여전히 같다. 자신의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 가치를 향해 작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다.<br>인생의 효율이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을 더 나답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많이 해내는 사람보다,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그에 맞게 시간을 쓰는 사람이 결국 더 충만한 하루 를 산다.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중 무엇을 나의 것으로 만들지는 나의 선택이다. 오늘 밤, 나는 하루를 돌아보며 오늘의 시간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에 쓰였는가?"를 물어보고 싶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86/54/cover150/k4221317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86544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회사 실무에 힘을 주는 엑셀 2024 - [회사 실무에 힘을 주는 엑셀 2024 - 2013, 2016, 2019, 2021, 2024, Office365 모든 버전 활용 가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03</link><pubDate>Sat, 24 Oct 2026 14: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2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1699&TPaperId=175902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6/6/coveroff/k4121316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1699&TPaperId=175902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회사 실무에 힘을 주는 엑셀 2024 - 2013, 2016, 2019, 2021, 2024, Office365 모든 버전 활용 가능</a><br/>서정아 지음 / 정보문화사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요즘 업무 중에 가장 자주 여는 창은 엑셀이 아니라 생성형 Al 채팅창이다. 보고서 문장을 다듬을 때도, 메일 초안을 쓸 때도, 복잡한 수식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AI에게 먼저 묻는다.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이 돌아오니 편리하다. 그런데 어느 날 AI가 제시한 수식을 엑셀에 붙여 넣었다가 결과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데이터 범위가 한 행 어긋나 있었고, 텍스트 형식의 숫자는 합계에서 빠져 있었다. 수식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엑셀의 구조, 즉 참조 방식이나 데이터 형식을 모른 채로 결과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AI에게 제대로 묻기 위해서도 엑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질문의 질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만큼 나온다. 엑셀의 기본 원리를 모르면 AI의 답이 맞는지 판단할 수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도 정하기 어렵다.회사에서 엑셀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도구다. 그래서 오히려 소홀히 다루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필요한 함수 몇 개, 예를 들면 SUM, IF, VLOOKUP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검색해서 해결했고, 같은 작업을 매주 반복 하면서도 원래 이렇게 하는 거지"라고 넘겼다. 책의 목차를 훑어보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업 능률을 높여 주는 기본 기능 50가지"라는 첫 부분이었다.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자동 채우기, 빠른 채우기, 서식 복사, 표 서식 같은 기본기가 업무 시간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 목차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책을 보면서 다시 엑셀을 펼쳐 놓고 기본 기능부터 하나씩 익혔다. 먼저 빠른 실행 도구 모음에 자주 쓰는 명령을 등록했다. 메뉴를 세 번 누르던 일이 한 번의 클릭으로 줄어들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하루에 수십 번 반복되는 동작이라 체 감이 컸다. 빠른 채우기는 특히 인상 깊었다. 이름과 부서가 한 셀에 붙어 있는 목록에서 예시 한두 개만 입력하면 나머지가 패턴을 따라 자동으로 채워졌다. 그전에는 텍스트 함수를 조합해 한참 고민하던 작업이었다. 물론 무엇이든 자동 으로 된다고 믿으면 안 된다. 결과를 항상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금액을 한글로 표시하는 방법도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었다. 견적서나 품의서에 들어가는 금액을 손으로 옮겨 적다가 오타를 낸 적이 있는데, 이제는 숫자 한 칸만 바꾸면 한글 표기가 함께 바뀐다. 사소해 보이지만 문서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기능이다. 표 서식과 슬라이서는 데이터를 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범위를 표로 지정하면 수식이 자동으로 확장되고, 슬라이서를 클릭하면 부서별, 분기별 데이터가 즉시 걸러져 나온다. 예전에는 필터를 여러 번 바꿔 가며 같은 표를 여러 장 만들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표에서 필요한 시점을 골라 보면 된다.가장 큰 변화는 파워 쿼리를 접했을 때 찾아왔다. 폴더 안에 흩어진 여러 엑셀 파일을 한 번에 불러와 하나의 표로 합치는 과정은, 예전의 나에게는 매주 반복하는 노동이었다. 파워 쿼리로 한 번 과정을 기록해 두면, 다음 주에는 새 파일 을 폴더에 넣고 새로 고침만 누르면 된다. 이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반복되는 일을 내가 계속 손으로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거창한 개발 지식이 아니라, 내 업무의 흐름을 한 번 구조적으로 정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정리는 엑셀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때 가능하다.<br>이번에 엑셀을 깊이 다시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익숙한 도구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습관 덕분에 반복 업무를 줄였고, 데이터를 더 정확히 읽게 되었 으며, AI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AI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그 답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힘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그 힘의 출발점이 바로 엑셀이라고 나는 믿는 다. AI에게 묻기 전에 엑셀을 알아야 한다. 이번 공부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분명한 결론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76/6/cover150/k4121316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76067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 - [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194</link><pubDate>Sat, 24 Oct 2026 14: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1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1982&TPaperId=175901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7/13/coveroff/k9221319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1982&TPaperId=175901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a><br/>오사지마 마사오 지음, 박현아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말을 숨 쉬듯 들으며 산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직장에서는 성과로, SNS에서는 타인의 화려한 일상으로 끊임없이 비교당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쉬는 것조차 "생산적으로 쉬어야 한다"는 압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lt;인생에 한 번은 동양철학&gt;은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정말로 나는 지금 이대로 부족한 사람인가. 저자는 성장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의 기준과 사회적 압박에 맞추려고, 이미 충분히 괜찮은 부분까지 억지로 바꾸려는 과도한 자기부정을 멈추자고 말한다. 이 구분이 나에게는 큰 위로였다. 변화하려는 의지와 자신을 깎아내리는 습관은 전혀 다른 것인데, 나는 오랫동안 둘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br>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붓다의 '제행무상'이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이 진리는 흔히 허무한 말로 들리지만, 서평이 소개한 '달의 차고 기움'의 비유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다. 초승달처럼 빛이 줄어든 시기는 실패나 정체가 아니라 보름달로 가는 자연스러운 주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한 번의 실패에도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곤 했다. 상태는 늘 일정해야 한다는 가정이 있었기에 흔들림 하나하나가 곧 추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흔들림이 예정된 순환이라고 생각하면, 어두운 시기를 견디는 힘이 조금은 생긴다. '일수사견(一水四見)'도 오래 곱씹었다. 같은 물이 사람에게는 마실 것, 아귀에게는 피고름, 물고기에게는 집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사건의 의미가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바라보는 쪽의 인식에 달려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일 역시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모든 고통을 "생각하기 나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쥐고 있는 해석이 유일한 해석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용수의 '공(空)'은 집착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면,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지위와 재산, 관계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다. 용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에 비유했다고 한다. 여관은 잠시 몸을 의탁하는 곳일 뿐 내 소유가 아니다. 이 비유를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내 것'이라는 이름으로 움켜쥐고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소유하려 들 때 서로가 숨 막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이별과 다툼을 통해서야 어렴풋이 배웠다. 물건을 '소유물'이 아닌 한때의 '경험'으로 바라보라는 제안은 그래서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br>노자와 장자는 비교와 경쟁의 피로에서 나를 건져 올려 주었다. 팔로워 수, 연봉, 매출 같은 숫자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더 쉽게 우리를 몰아붙인다. 노자는 물이 다투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흘러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고, 그 태도를 가장 강인한 것으로 보았다. 욕망의 대상을 바깥에서 찾기보다 이미 손에 있는 것을 다시 알아보라는 '지족(知足)'의 가르침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서평이 권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자기 전에 이미 가진 것을 다섯 가지 이상 적어 보는 것이다. 집, 물, 건강한 몸의 일부, 친구, 안전한 환경. 적고 나면 하루의 초점이 '부족'에서 '이미 있음'으로 옮겨진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은 습관이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는 점이 좋았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쓸모의 기준 자체를 의심하게 한다. 재목으로 쓸 수 없는 굽은 나무는 베이지 않고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커다란 그늘을 내어 준다. 사회가 정한 유용성의 잣대는 매우 좁고 상대적이다. 그 잣대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비 꿈을 꾸다 깬 장자가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사람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던 '호접지몽'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가치의 기준이 한 장면의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시선으로 내 고민을 내려다보면 우열을 가르던 마음이 슬그머니 작아진다.<br>인간관계의 괴로움에 관한 가르침들은 특히 좋았다. 세친의 '유식(唯識)' 사상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깊은 의식에 쌓인 경험과 기억을 통해 투영된 주관적 세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세계를 산다는 뜻이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는 서운함은 상대가 나와 같은 세계를 본다는 전제에서 생긴다. 상대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외계인'이라고 가정하면 기대가 어긋나도 화가 덜 난다는 서평의 설명은 웃음이 나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상대를 바꾸려는 헛수고를 멈추고 거리를 조절하는 데 힘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달마의 '지월지유(指月之喩)'는 분노 앞에서 자주 떠올리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매달려 정작 달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말이다. 누군가의 사소한 말투나 행동(손가락)에 사로잡혀 내가 원래 지키고 싶었던 마음의 평온(달)을 스스로 부숴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짜증이 치솟을 때 "지금 나는 손가락을 보고 있는가, 달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짧은 호흡 명상 같은 몸의 방법을 함께 쓰라는 조언도 일리가 있다. 감정이 끓는 한가운데서 생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호흡으로 몸을 먼저 가라앉히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호넨과 신란의 가르침은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아버지를 잃고도 복수 대신 출가를 택한 호넨은, 상대에게 앙갚음하려는 마음이 결국 그 사람을 내 마음 한가운데 계속 앉혀 두는 일이라고 일깨운다. 복수를 곱씹는 동안 내 시간과 감정의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가장 좋은 극복은 상대에게 집착하지 않고 내가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를 되찾는 것이라는 말은, 얼핏 소극적으로 들리지만 실은 가장 단단한 자유다. 신란의 '악인정기(惡人正機)'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연이 갖춰지면 누구든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타인의 잘못에 대한 과격한 심판의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불관용도 커진다는 말은 뼈아프지만 정확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쉽게 재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br>렌뇨의 '자리이타(自利利他)'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자기중심도, 자기희생도 아닌 길. 자신의 충만함과 타인에 대한 기여는 서로 의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희생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함께 무너진다. 거절하지 못해 지치던 시간을 떠올리면, 그것은 배려라기보다 나를 돌보지 못한 미숙함에 가까웠다. 부탁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면서 내 경계를 지키는 힘, 서평이 '포요옹의 힘'이라고 소개한 그 탄력은 이기심이 아니라 오래 다정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잇큐의 질문은 모든 가르침을 하나로 묶어 준다. "문 앞의 소나무 장식은 저승길의 이정표, 기쁘기도 하고 기쁘지 않기도 하다." 누가 나를 칭찬하든 시간은 죽음을 향해 흐르고, 타인의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과 사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에 내 가치를 맡기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인가. "내 목숨이 앞으로 일주일뿐이라면 지금의 고민과 인정받으려는 노력에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한 것들을 단번에 걷어 낸다. 이 질문 앞에서 남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일 것이다.​물론 이 열 명의 가르침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비교하고, 서운해하고, 불쑥 화를 낼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럴 때 돌아갈 곳이 생겼다. 흔들림은 달의 주기일 뿐이고, 내가 보는 세계는 하나의 해석일 뿐이며, 지금 손에 쥔 것은 하룻밤 묵어가는 여관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동양 철학이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나아져라"가 아니라 "이미 충분하니 힘을 빼도 된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멈추라는 말이 아니다. 불안에 쫓겨 달리는 성장이 아니라, 안심한 마음에서 자라는 성장을 택하자는 제안이다. 있는 그대로 있는 연습은 결국 나를 포기하는 연습이 아니라, 나를 믿어 주는 연습이다. 오늘 밤 나는 노트를 펴고 내가 이미 가진 것 다섯 가지를 적어 보려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7/13/cover150/k9221319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47133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근미래의 풍경 - [근미래의 풍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142</link><pubDate>Sat, 24 Oct 2026 1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901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1917&TPaperId=175901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73/56/coveroff/k9721319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1917&TPaperId=175901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근미래의 풍경</a><br/>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늦게 딸과 나눈 대화가 어긋나는 순간이 있다. 같은 영화를 봤다고 믿었는데, 딸이 말하는 주인공은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어긋남의 감각을 여러 번 떠올렸다. 현재 우리는 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가 아닌 근미래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기술은 놀랍도록 편리해졌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한 가지 질문이 마음에 걸렸다.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조용히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 속 전문기자는 식당의 서빙 요령과 취재원 집 앞에서 '뻗치기'하는 기술을 인턴기자에게 듣는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온 지식이 다음 세대에도 쓸모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기계가 인터넷에 기록된 지식을 모두 배우는 동안, 현장에 서 몸으로 익힌 감각은 기록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이제 그 감각마저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이 장면에서 희망도 보았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남기지 않을지 고르는 판단, 기록된 지식을 실제 상황에 맞게 바꾸 는 감각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문제는 그 가치를 누가 가져가고, 그 대가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이다. 노인의 경험이 기업의 자산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함께 잊게 될지 모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세환과 지우의 대화였다. 세환은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나쁜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대화는 곧 부모와 교사, 상담 에이전트에게 요약되어 전달되고, 질문은 '위험 신호'라는 18쪽짜리 보고 서가 된다. 호기심이었던 말이 행정 기록으로 굳어지는 순간, 소년은 더 이상 솔직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대화 상대가 기계일 때 더 편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대화가 감시되고 평가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말은 점점 짧아지고 안전해진다. 성장에는 실패와 일탈, 그리고 모순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를 지키려는 어른들의 마음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감시의 그물이 되는 순간, 아이가 자기 자신을 발견할 공간은 조금씩 줄어든다.

배우 이소은은 딥페이크가 외모의 장벽을 없앴다고 말한다. 60대 배우가 20대 남성을 연기해도 겉모습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배우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진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줄의 대사 를 비아냥으로도, 감탄으로도 바꾸는 미묘한 마음을 해석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한다는 뜻이다. 배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계는 문장을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옳은지 망설이고, 그 결정을 책임지며, 상대의 표정을 읽고 반응하는 일은 다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좁아진 영역을 효율이 아닌, 사람다움의 가치로 다시 붙잡아야 한다.
&nbsp;책읽고 나서 나는 미래를 두 개의 길로 나눠 그려 보게 되었다. 하나는 모든 경험이 나에게 맞춰 최적화되어, 누구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세계다. 다른 하나는 기술을 쓰되, 원본을 보고 느리게 대화하며 실패할 자유를 지키는 세계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영화를 1.5배속으로 보더라도 한 편은 끝까지 앉아서 보고, 기계에게 질문을 하더라도 그 답을 사람과 나누는 것이다. 엄마와 딸이 같은 장면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며 웃는 저녁, 친구와 함께 오래된 영화를 두고 이야기 하는 순간. 그런 불편하고 느리고 불완전한 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사람으로 남게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73/56/cover150/k9721319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73568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시추에이티드 - [시추에이티드 - 의지, 노력, 끈기를 성공으로 연결하는 사람과 장소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87061</link><pubDate>Thu, 22 Oct 2026 2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8706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210&TPaperId=175870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89/90/coveroff/k2421312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210&TPaperId=1758706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추에이티드 - 의지, 노력, 끈기를 성공으로 연결하는 사람과 장소의 힘</a><br/>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신솔잎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11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비즈니스북스로부터 샘플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빅터 프랭클의 이야기는 리더십 책이나 자기계발 강의에서 하도 많이 인용돼서, 나는 한참 동안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말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더크워스의 새 책 &lt;Situated&gt;에 따르면 지금까지 내가 "마음가짐"이라고 불러온 것 중 상당수가 사실은 바꿀 수 있는 상황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나 자신만 몰아세운 일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더크워스는 그릿(Grit)으로 열정과 끈기가 성취를 가른다고 말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10년 뒤에 "그릿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쓴다. 계기는 한 대학원생의 비판이었다고 한다. 그릿은 사람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것처럼 읽히고,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은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책의 한계를 이렇게 인정하고 다시 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용보다 그 태도가 먼저 마음에 남았다.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상황, 생각, 반응이라는 세 개의 상자를 떠올려 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세 번째 상자, 즉 반응에만 매달린다. 화가 나면 참으려 하고, 미루고 싶으면 이를 악물고 책상 앞에 앉는다. 하지만 그 생각과 행동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첫 번째 상자, 곧 내가 놓인 상황이다. 그래서 상류로 올라가 거기서부터 바꾸라는 것이다. 책은 그 대상으로 공간, 함께하는 사람들, 멘토, 그리고 속한 문화를 든다. 나의 경우는 어땠으까? 시험 기간이면 나는 늘 결심을 했다. 오늘은 폰을 안 보겠다고. 그리고 결심은 늘 두세 시간쯤 버텼다. 의지가 약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폰을 가방 속에 넣고 가방을 다른 방에 두면, 결심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공부가 됐다. 달라진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손이 닿는 거리였다.

운동복을 침대 옆에 두는 것만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요령 하나하나보다 그 밑에 깔린 생각의 방향이 내게는 더 쓸모 있었다. 안 되는 이유를 나한테서만 찾던 습관을 멈추고, 환경에서도 찾아보는 것이다. 요령이 오래가지 않는다면 그건 요령을 더 잘 짜라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바꾼 환경을 계속 손보며 살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올림픽 선수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환경을 바꾼 이야기가 평범한 직장인의 삶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책을 덮고 나면 남는 불편함이 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바꾸지 못한 것은 네 책임"이라는 말로 뒤집힐 위험이다. 그릿이 받은 비판을 &lt;Situated&gt;가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황을 바꾸라는 말은 모든 것을 바꾸라는 요구가 아니라, 바꿀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먼저 따져보라는 질문이다. 이사는 못 해도 책상 위는 바꿀 수 있다. 직장은 못 옮겨도 점심을 같이 먹는 사람은 고를 수 있다. 큰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작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작은 것을 바꿨다고 해서 큰 구조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는 편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내 노력이 부족해서 안 된다는 설명과 환경이 나빠서 안 된다는 설명 중 하나만 고집하면 둘 다 반쪽짜리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거창하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를 못 하고 있을 때 "왜 나는 의지가 없을까"라고 묻기 전에 "지금 내 주변은 이 일을 쉽게 만들고 있나, 어렵게 만들고 있나"를 먼저 물어보려 한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 하나를 바꾼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때서야 프랭클의 앞 문장이 필요해진다.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고쳐먹는 것은 방을 먼저 치워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흥미로게 읽은 샘플북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89/90/cover150/k242131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89901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을 위한 공간 - [인간을 위한 공간 -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율하는 공간의 원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725</link><pubDate>Sat, 17 Oct 2026 10: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7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1476&TPaperId=175767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99/coveroff/k2121314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131476&TPaperId=175767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을 위한 공간 -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조율하는 공간의 원칙</a><br/>다비데 루촌 지음, 김경일 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건축은 사람이 살아가는 무대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건물을 도면 위의 형태와 수치로만 이해하고, 그 안에서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잊곤 한다. 다비데 루촌은 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공간이 인간에 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 하하며, 건축 설계의 중심을 사용자의 경험으로 되돌리자고 제안한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살았다. 언덕, 나무, 호수, 불, 동굴은 우리의 신체와 감각이 형성되는 조건이었다. 루촌이 말하듯이 요 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행동을 불러내는 신호였다. 물가는 마실 것을 찾게 하고, 불빛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며, 동굴의 입구는 안전과 은신의 감각을 준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탁 트인 전망 을 가지면서도 등을 기댈 수 있는 자리를 본능적으로 찾는다. 환경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망-피난 이론(Prospect-Refuge Theory)이 설명하듯, 사람은 멀리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다 면 좋은 공간이란 이러한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일 것이다.<br>루촌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확장된 인지(Extended Cognition), 행화된 인지(Enacted Cognition), 내재된 인지(Embedded Cognition) 같은 개념을 통해, 인간의 사고가 뇌 속에만 있지 않고 몸과 환경의 상호 작용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공간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걸어 보고, 손으로 짚어 보고, 소리를 들어 보면서 공간을 이해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포던스(Affordance), 즉 환경이 행위를 허락하고 유도하는 성질 은 매우 중요하다. 계단의 높이, 문손잡이의 모양, 벤치의 깊이는 모두 사람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해 준다. 좋은 건축은 설명서 없이도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또한 웨이파인딩(Wayfinding), 즉 길을 찾는 능력도 인간에게 근 원적이다. 복잡한 건물에서 길을 잃고 불안해지는 경험은 공간이 인간의 인지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문제다. 명확한 축, 자연광의 방향, 랜드마크의 배치는 사람이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br>루촌은 산업화 이후의 도시가 효율성과 공학적 성취에 집중하면서 정작 가장 본질적인 것, 즉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잃었다고 지적한다. 넓은 도로와 거대한 블록, 획일적인 주거 단지는 이동과 생산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사람들이 만나고 머무르는 장소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물론 현대 건축이 편리함과 안전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편리함이 곧 풍요로움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 재료의 질감, 계절의 변화, 햇빛의 리듬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콘크리트와 유리 로 가득한 공간에서 우리는 종종 피로와 소외를 느낀다. 이는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경계가 진화해 온 방식과 현대 환경이 충돌하는 결과일 수 있다.<br>루촌이 강조하듯, 우리 삶의 의미는 수많은 행동의 연속에서 만들어진다. 물을 걷고, 불을 피우고, 이웃과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는 일상의 행위들이 쌓여 우리는 장소에 애착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건축의 역할은 의미를 강요하는 것 이 아니라, 의미가 자라날 수 있는 행동의 여지를 마련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때 건축은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의례(ritual)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전통 마을의 우물가, 마당, 사당은 실용적 기능과 함께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고 있 었다. 현대 건죽이 이러한 의례성을 되찾는다면, 공간은 다시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br>인간을 위한 공간은 거창한 기술이나 화려한 형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사람이 어떻게 보고, 움직이고, 느끼고, 관계 맺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루촌은 신경과학과 인류학의 지식이 건축 설계의 실질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좋은 건축은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고향의 감각을 되살리는 건축이다. 언덕과 나무와 물이 주던 안정과 초대의 감각을 현대의 도시와 건물 안에서 다시 찾아주는 것. 그것이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출발점이 아 닐까 생각해 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7/99/cover150/k2121314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7997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 - [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713</link><pubDate>Sat, 17 Oct 2026 1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7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1100&TPaperId=175767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3/22/coveroff/k8221311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1100&TPaperId=175767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위대한 예술가는 무엇을 훔쳤을까</a><br/>데브라 N. 맨커프 지음, 정상희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스티브 잡스가 인용해 유명해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은 누가 처음 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T. S. 엘리엇,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이 번갈아 붙는다.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예술 에서 "독창성"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 주는 듯하다. 최근 생성형 AI가 그림, 음악, 글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이 오래된 질문은 더 날카로워졌다. 수많은 작품을 학습한 LLM과 이미지 생성 모델의 결과물은 누구의 작품인 가? 그리고 그 시대에 "위대한 예술이란 무엇인가?데브라 맨코프는 40개의 작품을 빛에 비춰 그 속에 숨은 흔적을 이야기 한다. 앤디 워홀이 상업 이미지를 재활용한 방식, 르네상스 화가들이 고대 조형 질서를 가져다 쓴 방식, 3,000년 동안 순환해 온 도상 이 현대 회화에 거의 변형 없이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 그 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예술이 과거의 이미지를 흡수하고 조금씩 바꾸고 잘못 기억하고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순환 구조였다. 이 순한 속에서 "빌림", "인용"," 도용", "표절"은 같은 행위가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벨라스케스의 &lt;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반복해 재해석한 것은 의식적인 대화였다. 반면 특정 시대의 색감이나 분위기를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맨코프는 이 구분을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한다. 현대 예술의 몇몇 사례에서 문화적 전유라는 복잡한 문제는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진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원작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기억"이 예술 안에서 어떻게 뒤섞 이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모델은 방대한 기존 작품을 학습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 작가의 문장 리듬, 붓질의 패턴, 구도의 관습을 통계적으로 흡수한다. 그리고 이를 새롭 게 조합해 결과물을 만든다. 이것은 맨코프가 묘사한 "흡수, 변형, 재방출"의 순환과 닮아 있다. 하지만 차이도 분명하다. 인간 예술가는 대개 왜 그것에 끌렸는지를 자각한다. 베이컨은 벨라스케스를 붙잡고 씨름했고, 워홀은 상품 이미 지를 통해 대중문화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드러냈다. 그들의 차용에는 삶의 경험, 욕망, 불안, 그리고 시대에 대한 입장이 개입했다. 반면 모델은 사람의 의도나 체험 없이 확률적으로 결과를 내놓는다. 그 결과물이 아무리 세련되어도, 그 안에는 한 인간이 세계와 씨름한 흔적이 없을 수 있다. 그렇다고 AI의 결과물을 쉽게 "훔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 원작자의 동의, 그리고 결과물이 원작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책을 읽으면서 LLM 시대에 위대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LLM 시대의 위대한 예술을 무엇을 왜 가져왔는지를 아는 예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기술은 빌림의 속도와 규모를 바꾸었지만, 빌 림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질문이다. 무엇에 끌렸는가, 그 끌림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바꿀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정직하게 드러낼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작품이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맨코프 의 말처럼 독창성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신화일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재배치이며, 가장 창의적인 예술가는 가장 열정적으로 훔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훔침이 곧 위대함은 아니다. 위대함은 훔친 것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보는 사람이 자신의 시선을 되묻게 만드는 힘에서 나온다. AI가 무한히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럴듯한 결과"보다 "의미 있는 질문"을 만드는 예술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질문만큼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엇을 빌리고, 무엇을 더하며, 어디에 책임을 질 것인가. LLM이 인간의 과거를 학습해 새로운 것처럼 보여 주는 시대에, 위대한 예술은 기술의 화려함 이 아니라 인간이 던지는 정직한 질문과 그 질문을 향한 책임 있는 변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423/22/cover150/k8221311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423228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서울 밖 감정 - [서울 밖 감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89</link><pubDate>Sat, 17 Oct 2026 10: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1796&TPaperId=175766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0/82/coveroff/k0421317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1796&TPaperId=175766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울 밖 감정</a><br/>성해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약속을 잡을 때 우리는 으레 묻는다. "어디서 볼까?" 그러면 대화는 비슷한 길로 흘러간다. 서울 사람은 서울의 어느 역을 말하고, 서울 밖에 사는 사람은 잠시 말을 고르다 "그럼 거기서 보자" 하고 만다. &lt;서울 밖 감정&gt;에서 김화진 작가가 서울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당연히 서울인 것은 곰곰 생각하면 여전히 이상하다고 쓴 대목을 읽고 나는 한참 웃다가 조금 씁쓸해졌다. 나도 그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 채 오래 지나쳐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을 향한 마음을 아주 일찍 배운다. 열일곱 살 무렵이면 대학 이름 앞에 '인서울'이라는 말이 먼저 붙는다. 어디서 무엇을 공부하느냐보다 서울 안이냐 밖이냐가 먼저 갈리고, 그 선 하나로 노력의 값이 매겨진다. 서울에 산다는 것은 오랫동안 성공의 다른 말이었고, 서울을 떠나는 일은 한 걸음 물러서는 일로 읽혔다. 그 중력은 사람의 시야까지 바꾼다. 서울과 안양 사이에서만 자라 다른 도시로 갈 생각은 해본 적 없다는 김화진 작가의 고백을 읽으며 나는 내 지도를 떠올렸다. 내 머릿속 지도에는 서울이 한가운데 크게 그려져 있었고, 그 바깥은 '서울에서 몇 분 거리'라는 설명으로만 존재했다. 나는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을 읽는 일이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성해나 작가는 고향의 버스를 손을 세차게 흔들지 않으면 멈춰 세울 수 없는 버스라고 적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불편한 교통 이야기로만 읽혔다. 다시 읽으니 그것은 존재 증명에 가까웠다. 손을 흔들지 않으면 아무도 서지 않고, 서지 않으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간다. 인구가 적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 예산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굳어지는 동안 누군가는 치료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배움을 접고 누군가는 체념하듯 떠난다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반대편의 진실도 있다. 서울에서는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안달복달하고, 환승역에서 긴 줄을 서고, 택시가 잡히지 않아 초조해하던 사람이 이곳에서는 손을 흔든다. 어디에 있든 사람은 기다리고 애쓴다. 달라지는 것은 그 수고가 얼마나 눈에 띄느냐다. 서울의 피로는 풍경이 되어 묻히지 않는데, 서울 밖의 피로는 조용히 잊힌다.

서울 밖은 어떤 곳일까. 나는 그 질문에 '서울이 아닌 곳'이라는 정의 말고 다른 대답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서울 밖의 장점을 '서울보다 한적하다', '서울보다 싸다'처럼 서울과의 비교로만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좌표 위에 서 있다. 한적하다는 말도 서울이 분주하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그래서 서울 밖을 서울 없이 설명해 보려 한다. 그곳에는 계절마다 다른 냄새를 풍기는 동네 길이 있고, 이름을 알고 인사하는 가게 주인이 있고,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골목과 별이 보이는 밤이 있다. 새벽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서로를 모르면서도 같은 시간을 산다. 이것들은 서울을 거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되는 삶이다.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거창한 담론보다 겨울 결로 탓에 노트북 자판에 떨어지던 물방울, 옆방 소음이 그대로 들리던 자취방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었다. 삶은 늘 구체적인 곳에서 일어나고, 구체적인 곳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책을 덮고 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볼까?" 이제는 이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이동의 수고를 어느 한쪽이 당연하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당연함이 우리의 마음까지 한쪽으로 기울여 놓은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다음에 약속을 잡을 때는 서울이 아닌 곳을 먼저 말해 보고 싶다. 서울 밖 어느 동네의 작은 식당이나 막차가 일찍 끊기는 역 앞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서울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서울을 미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삶이 우리에게 이미 많다는 것을, 손을 흔들어야 서는 버스의 풍경까지 포함해서 기억하자는 것이다. 서울 밖은 서울의 바깥이 아니라, 누군가의 한가운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0/82/cover150/k0421317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30826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업무능력을 2배로 높이는 AI 글쓰기 - [업무능력을 2배로 높이는 AI 글쓰기 - 챗GPT·클로드·제미나이로 회의록부터 보고서, 기획안 작성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80</link><pubDate>Sat, 17 Oct 2026 1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1484&TPaperId=175766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79/78/coveroff/k9121314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1484&TPaperId=175766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업무능력을 2배로 높이는 AI 글쓰기 - 챗GPT·클로드·제미나이로 회의록부터 보고서, 기획안 작성까지!</a><br/>정태일 지음 / 천그루숲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회사에서 글쓰기는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이 기다리고, 중요한 보고서 앞에서는 첫 문장부터 막힌다. 글쓰기 자체보다 "무엇을, 왜 써야 하는가"를 정하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은 "딸깍" 한 번이면 그럴듯한 초안이 나온다고들 한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의 보고서는 한 번에 통과되고 어떤 사람의 보고서는 반려된다. 정태일 작가의 책을 읽고 나는 그 차이가 AI가 아니라 글쓰기의 기본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책은 같은 AI를 쓰는데 결과가 갈리는 이유를 "기능을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내 업무에 필요한 기능을 골라 제대로 쓰느냐"에서 찾는다.생각해 보면 챗GPT를 "겉핥기"로 써 왔다. 책을 읽고 나서야 어떻게 질문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는지, 그 결과를 어떻게 다듬어 업무에 쓰는지를 배웠다. 도구는 이미 모두의 손에 있다. 부족했던 것은 도구를 부리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의 핵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프롬프트에 구체적인 정보를 충분히 담는 것이다. 책은 "차라리 내가 직접 쓰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자세히 요구하라고 말한다. 둘째, 말투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정중한 부탁보다 직설적인 지시가 정확도가 높았다는 연구는 흥미로웠다. AI에게는 예의보다 명확함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사람에게 업무를 지시할 때도 똑같이 통한다. 결국 AI를 잘 쓰는 능력은 일을 잘 시키는 능력과 같다.책의 장점은 AI로 시간을 줄이는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고서가 기획, 작성, 편집, 피드백의 흐름으로 완성된다고 할 때, AI가 가장 크게 덜어 주는 부분은 작성과 편집이다. 반대로 사람에게 남는 일은 무엇을 쓸지 정하는 기획과 결과를 검토하는 감리다. 기획안 초안을 맨땅에서 시작할 때의 막막함이 목차와 항목별 가이드라인을 받자마자 줄어들었다. 그러니 AI가 쓴 글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은 가장 위험한 활용법이다. 마지막 검수와 글에 진정성을 담는 일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다. AI가 만든 문장은 매끄러워도 우리 팀의 사정, 상사의 취향, 지난 프로젝트의 맥락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고쳐 쓰지 않으면 글은 그럴듯하지만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가장 현실적이라고 느낀 사례는 회의록이다. 책은 회의록 작성을 "직장인 글쓰기의 가장 완벽한 훈련"이라 부른다. 산만한 대화를 분류하고, 원인과 결과를 도출하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각자의 역할을 명시하는 일이 비즈니스 글쓰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AI를 더하면 핵심 키워드만 입력해도 구조화된 회의록이 금세 나온다. 다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무엇이 핵심인지 모르는 사람은 키워드조차 뽑지 못한다. 회의 내용을 이해하고 결정 사항과 담당자를 가려낼 줄 아는 사람이 AI의 정리를 알아볼 수 있다. AI는 정리를 빠르게 해 줄 뿐,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AI 시대의 글쓰기는 타자 속도의 경쟁이 아니라 판단력의 경쟁이다. 글을 대신 써 주는 도구가 생겼다고 글쓰기 능력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무엇을 쓸지 정하고, 좋은 글인지 알아보고, 책임지고 내보내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에게 문장을 맡기되 생각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79/78/cover150/k9121314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79786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별일 없는 날의 별난 모험 - [별일 없는 날의 별난 모험 - 걷고 헤매고 엉뚱하게 생각하며 건져 올린 삶의 경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71</link><pubDate>Sat, 17 Oct 2026 10: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1096&TPaperId=175766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1/13/coveroff/k2721310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1096&TPaperId=175766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별일 없는 날의 별난 모험 - 걷고 헤매고 엉뚱하게 생각하며 건져 올린 삶의 경이</a><br/>G.K. 체스터턴 지음, 지콜론북 편집부 편역 / 지콜론북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우리는 대부분 별일 없는 하루를 산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같은 길로 출근하고, 정해진 일을 처리하고, 비슷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런 반복 속에서 우리는 권태를 느끼고, 삶이 어딘가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막연히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여행이든 이직이든 사건이든, 지금 이 자리 바깥에 있는 무엇이 나를 구해 주리라 믿는다. 체스터턴의 &lt;별일 없는 날의 별난 모험&gt;을 읽으며 나는 이 믿음이 얼마나 쉽게 틀릴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체스터턴은 가만히 앉아서도 모험을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음이 몹시 편안하니, 경이로운 것들과 모험들이 파리 떼처럼 내려앉도록 내버려두겠다고 한다. 이 대목의 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경이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내려앉게 두는 것이다. 경이는 쫓아다니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는 모양이다. 그는 이어서 단언한다. 세상에 경이로운 것들이 부족해서 궁핍해지는 법은 없고, 오직 경이감이 부족해서 궁핍해질 뿐이라고. 이 문장은 권태의 원인을 바깥에서 안으로 옮겨 놓는다. 세상이 시시한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무뎌진 것이다.체스터턴이 경이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은 잃어버릴 수 있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한쪽 발을 다친 경험을 통해, 멀쩡한 발이 얼마나 강하고 멋진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자기 몸을 사랑하는 방법은 다리가 왜 더 빠르지 않은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리를 잃을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른다. 건강할 때는 건강을, 평범한 날에는 평범함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사라진 뒤에야 그것이 전부였다고 후회한다. 체스터턴의 방법은 상실을 겪고 난 뒤가 아니라 겪기 전에 미리 상실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두 발로 걷고 있다는 사실, 아침에 눈을 떴다는 사실, 오늘 누군가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보면 기적에 가깝다. 별일 없는 하루란 사실은 아무것도 잃지 않은 하루다. 그것은 가장 큰 별일일지도 모른다.그렇다고 체스터턴이 세상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lt;정통파 이발사&gt;에서 그는 세상의 가장 오래되고 냉혹한 법칙을 이야기한다. 케이크를 먹어 치우고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 면도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그 면도기로 면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며, 이상한 제약들과 고통스러운 즐거움의 조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경이가 제약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흔히 제약이 많은 삶을 불행한 삶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고, 가진 것은 잃을 수 있다는 규칙이 있기에 선택에 무게가 생기고 소유에 소중함이 생긴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거인에게 모든 것이 작아 보였던 것처럼, 아무 제약이 없는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체념이 아니라 경이로 가는 한 걸음이다.책을 덮고 나는 내 하루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매일 걷는 길, 매일 마주치는 얼굴, 매일 먹는 밥. 나는 그것들을 몇 번이나 제대로 보았을까. 아마 기억에 남는 것은 별일이 있었던 날들뿐일 것이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은 별일 없는 날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날들을 지루하게 건너야 할 구간으로 여긴다면 내 삶의 대부분을 지루함으로 채우는 셈이다. 반대로 그 날들이 모험의 무대가 될 수 있다면 삶 전체의 빛깔이 달라진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체스터턴의 말처럼 눈앞의 현실에 맹렬히 집중하는 일이고, 잃을 수도 있음을 한 번 떠올려 보는 일이고, 길가의 한마디에 잠깐 멈춰 서는 일이다. 경이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져가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경이롭고, 부족한 것은 언제나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다. 내일도 아마 별일 없는 날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나는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흰 종이 위에 별을 그리듯 평범한 하루를 바라보려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1/13/cover150/k2721310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41137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60</link><pubDate>Sat, 17 Oct 2026 1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766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1283&TPaperId=175766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57/coveroff/k4721312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1283&TPaperId=175766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a><br/>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김희상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소개글을 읽다가 한 문장을 생각해 보았다. "네 어린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에 겪은 것과 거기서 내린 결론은 아직 네 안에 살아 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은 자연스럽게 지나간 일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키가 자라고 나이를 먹고 직업과 책임이 생기면 그때의 나는 사진 속에나 남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 믿음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짚이는 장면이 많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하면 논리와 상관없이 존재를 부정당한 듯 위축된다. 칭찬을 들으면 고마워하기보다 "아직 부족한데" 하며 손사래부터 친다. 나는 이런 반응을 성격이라고 불러 왔다. 소심해서, 예민해서,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하지만 글을 읽고 나니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오래전에 내가 내린 결론일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어린 내가 어떤 장면 앞에서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구나" 하고 내린 결론이 아직도 나를 조용히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증상들이 너무 다양해서 그것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내 이상한 반응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풀밭을 걷다 쐐기풀을 밟으면 피부가 붓고 붉어지고 따갑다. 그때 우리는 원인을 정확히 안다.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가려움은 오늘 나타나는데 쐐기풀은 이십 년 전에 밟았다. 그래서 우리는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가려운 곳만 긁으며 산다. 사람을 탓하고, 일을 탓하고, 결국 나 자신을 탓한다. 치유가 고통에서 시작된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변화할 이유가 없다. 불편한 말이지만 맞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편안할 때는 한 번도 나를 들여다본 적이 없다. 자기계발서를 집어 든 날, 일기장을 펼친 날, 밤늦게 검색창에 내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를 쳐 본 날은 모두 어딘가가 아팠던 날이었다. 고통은 피해야 할 고장 신호라고만 여겼는데, 사실은 "여기를 좀 보라"고 두드리는 노크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아픔을 건너뛰지 말고 충분히 느끼라고 한다. 느껴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개된 다른 연습들도 하나하나 곱씹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그 아이와 대화해 보라는 것, 아이만의 안전한 장소를 떠올려 보라는 것, 아이에게 "내가 너를 지켜 줄게"라고 약속하라는 것,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에게서 답장을 받아 보라는 것. 처음에는 조금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 사진을 보며 말을 건다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연습들의 공통점은 단순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지금의 내가 대신 건네는 것이다. 누군가 "괜찮아, 이제 안전해"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던 아이에게, 그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부모가 해 주었어야 한다거나 누군가 알아봐 주었어야 한다고 원망하는 일은 정당하지만, 그 원망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울고 있다. 결국 달래 줄 수 있는 어른은 지금의 나다.

물론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현실의 치유는 훨씬 더디고 지루하고 때로는 뒷걸음질도 친다. 어떤 상처는 책이 아니라 전문가와의 상담 같은 더 단단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연습의 개수가 아니라, 내 안에 아직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는 나를 다그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오늘 밤에는 서랍 깊숙이 넣어 둔 앨범을 꺼내 볼 생각이다. 일고여덟 살쯤의 내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아서 한참 들여다볼 것이다.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랫동안 혼자 기다렸을 아이 옆에 어른이 된 내가 처음으로 가만히 앉아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첫걸음은 뗀 셈이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57/cover150/k4721312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58573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설득의 기술 - [설득의 기술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42</link><pubDate>Sun, 11 Oct 2026 1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1578&TPaperId=175656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9/21/coveroff/k7021315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131578&TPaperId=175656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설득의 기술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a><br/>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설득'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나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떠오른다.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제갈량, 루이 하우, 을파소 등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 생각이 절반만 맞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들의 설득은 말을 잘하는 데서 나오지 않았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눈,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일관성에서 나왔다.먼저 제갈량은 확신에 찬 어투와 신상필벌로 사람을 움직였다. 그는 말끝을 흐리지 않았고, 아끼던 마속이 군령을 어기자 눈물을 머금고 벌했으며, 스스로도 직위를 세 등급 낮추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엄격함이 오히려 신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형벌이 엄했는데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기준이 모두에게 공평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설득을 '상대를 내 쪽으로 끌고 오는 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제갈량의 방식은 '내가 먼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보이는 일'에 가까웠다. 말이 행동과 어긋나면 아무리 논리가 훌륭해도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격장법으로 황충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화도 흥미로웠다. 다만 이것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읽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자주 쓰면 조종이 된다는 책의 경고에 공감한다. 같은 기술도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설득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술수가 된다.루이 하우의 설득은 말이 아니라 헌신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후보 없이 선거를 치르면서도 철저한 조사로 전략을 세웠고,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쓰러졌을 때는 7년을 곁에서 지켰다. 이런 사람의 말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 대목에서 '행동은 말보다 강하다'는 문장이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사람은 논리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자기를 위해 대가 없이 애쓰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한편 그가 뜻이 꺾이면 루스벨트에게까지 욕을 퍼부었다는 대목에서는 의문이 들었다. 직설이 충언이 되려면 그 전에 쌓인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미 믿음이 있는 관계에서의 직언과, 신뢰 없이 던지는 독설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 이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그 바탕에 있던 진정성을 배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을파소는 예의와 과단성으로 설득했다. 고국천왕이 내린 관직이 마음에 차지 않았을 때, 그는 불만을 말하는 대신 더 현명한 사람을 쓰라고 에둘러 말했고, 왕은 그 뜻을 알아채고 국상 자리를 맡겼다. 직접 요구하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다. 이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내 뜻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설득인지 보여준다. 또 그는 진대법처럼 백성에게 실제로 이로운 정책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였다. 이리저리 재다 때를 놓치는 사람보다, 신중히 생각하되 결정하면 곧장 실행하는 사람이 신뢰를 얻는다는 말은 나에게도 뼈아프다. 나는 결정을 미루다 기회를 놓친 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br>책을 읽고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했다. 유비가 한 왕실의 재건을 바란다는 것을, 루스벨트가 믿고 맡길 참모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고국천왕이 어지러운 정국을 바로잡을 인물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했다. 제갈량은 자신에게도 벌을 주었고, 루이 하우는 끝까지 곁을 지켰고, 을파소는 정책으로 말을 증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상대를 이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했다. 데일 카네기가 말한 '상대의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우선 말하기 전에 상대가 무엇을 걱정하고 원하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내 주장이 아무리 옳아도 상대의 관심사와 닿아 있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자신 있게 말하되 과신하지 않으려 한다. 확신은 신뢰를 주지만 지나친 확신은 오만으로 보이고 다른 해법을 막는다는 지적을 기억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약속을 지키려 한다. 작은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려고 애쓰기 전에,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설득의 첫걸음이라는 것이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9/21/cover150/k7021315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9210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33</link><pubDate>Sun, 11 Oct 2026 1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222608&TPaperId=175656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10/coveroff/89632226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222608&TPaperId=175656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에서 가장 짧은 혁신의 역사</a><br/>앤드루 리 지음, 김광수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파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정부의 정책 연설, 기업 전략 보고서, 대학의 비전 선언문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를 보지 않는 날은 드물다.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이 말은 어느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구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에 앤드루 리(Andrew Leigh)의 책을 읽으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감각을 얻었다. 흔한 말일수록 그 뿌리를 한 번쯤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퀴에서 인공지능에 이르는 수천 년의 이야기를 짧게 훑으면서도 이 책은 하나의 질문을 붙든다. 인류는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왔는가. 저자는 그 답을 땜질(tinkering), 팀워크(teamwork), 무역(trade)이라는 세 가지 힘으로 정리한다. 우리는 혁신을 이야기할 때 으레 한 사람의 이름부터 떠올린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 뉴턴, 전구를 밝힌 에디슨 같은 장면은 이야기로는 매끈하지만 현실의 혁신은 훨씬 지저분하고 느리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시작일 뿐이고, 그것이 쓸모 있는 기술이 되려면 고치고, 다시 만들고, 안 되는 이유를 하나씩 지워 나가는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땜질'이라 옮긴 것이 바로 이 과정이다. 혁신이 거창한 천재의 몫이 아니라 끈질긴 반복의 결과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평범한 사람에게도 혁신의 문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팀워크와 무역의 강조도 같은 맥락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 다른 조직이 협력하며, 아이디어와 물건이 오가는 곳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수많은 연구자가 얽힌 거대한 협업을 보면 혁신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활동이다. 혼자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교환의 부산물에 가깝다.책의 또 다른 중심 개념은 '재조합'이다. 새로운 혁신은 이전의 혁신 위에 쌓인다. 페르시아에서 발전한 수학은 훗날 유럽 과학의 도약을 가능하게 했고, 19세기의 정밀 공작기계는 전혀 다른 산업들을 열었다. 쓸 수 있는 도구가 쌓일수록 조합의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혁신의 속도는 빨라진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 공개 데이터, 학제 간 연구가 하는 일도 결국 이 조합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가 요즘 만드는 것의 대부분은 맨바닥에서의 발명이라기보다 이미 있는 것들의 새로운 섞음이라는 사실이 나에게는 의외로 위안이 되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속에는 대가가 따른다. 넷플릭스가 비디오 대여점을 무너뜨리고 다시 할리우드를 겨냥했듯이, 새로운 기술은 낡은 산업을 밀어낸다. 테일러의 작업 재설계나 도요타의 지속적 개선 같은 과정 혁신은 노동의 방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변화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같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잊기 쉽다. '파괴' 되는 쪽에는 구체적인 직업과 삶이 있다.혁신은 인류의 진보하는 능력을 키우지만 해를 끼치는 능력도 똑같이 키운다. 화약과 하버-보슈 공법은 전쟁을 부추겼고, 석탄은 지구를 데웠으며, 원자폭탄은 지정학을 바꿔 놓았다. 방사선을 연구하다 목숨을 잃은 마리 퀴리의 이야기는 지식의 대가가 때로 개인에게 돌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허는 생명을 구하는 기술을 지키기도, 가두기도 했다. 그래서 혁신은 본래 선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혁신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이끌 것인가다. 인센티브, 거버넌스, 윤리적 가드레일이 같은 기술을 전혀 다른 결과로 이끈다. 책의 전체 분위기는 낙관적이라고 한다. 혁신이 기대수명을 늘리고 영양 상태와 의학을 발전시켰으며 세계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을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낙관이 방치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결과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설계된 제도 위에서 만들어진다.책을 읽고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혁신을 '사람'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땜질하는 끈기, 협력하고 교환하는 관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받치는 인프라가 갖추어질 때 혁신은 일어난다. 그리고 그 힘은 선악을 가리지 않으므로, 어디로 향하게 할지는 결국 우리가 만드는 제도와 선택에 달려 있다. 혁신의 역사는 결국 협력과 축적의 역사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이 새로운가"보다 "어떤 토대를 만들고, 누구에게 기회를 열어 줄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질문을 앞으로 내가 접하는 모든 '혁신'이라는 말 앞에 놓아 보려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42/10/cover150/89632226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42104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I 비즈니스 트렌드 2027 - [AI 비즈니스 트렌드 2027 - 휴머노이드 전성시대, 이제 휴먼의 미래는 없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19</link><pubDate>Sun, 11 Oct 2026 1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56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994&TPaperId=175656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9/87/coveroff/k0321319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994&TPaperId=175656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AI 비즈니스 트렌드 2027 - 휴머노이드 전성시대, 이제 휴먼의 미래는 없다</a><br/>이소영.이예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10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2년 말 대형 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가 대중에게 열린 뒤, 우리는 불과 몇 해 사이에 세 번의 국면을 지나왔다. 2025년이 생성형 AI가 퍼진 해였다면, 2026년은 스스로 과업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보편화된 해였다. 책은 2027년의 키워드로 ‘증폭(Amplification)’을 제시한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세상을 움직인 단어가 ‘생산’과 ‘효율’이었다면, 이제는 사람의 판단과 의도를 얼마나 크게 키워 주느냐가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 진단은 나의 체감과도 맞닿아 있다. 처음 챗봇을 쓸 때 나는 AI에게 “무엇을 더 빨리 해 줄 수 있느냐”를 물었다. 요약, 번역, 초안 작성처럼 시간을 아끼는 용도였다. 그러나 에이전트가 일정을 조율하고 자료를 모아 보고서의 뼈대까지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질문이 “이 일을 어떻게 맡길 것인가”로 바뀌었다. 도구는 사용법을 익히면 끝나지만, 동료는 역할과 권한, 책임의 범위를 정해야 한다. 책이 말하는 ‘도구에서 직원이 된 AI’는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AI 수익 방정식’이다. 2027년의 기업은 AI에 돈을 쓰기만 하는 기업과 AI로 돈을 버는 기업으로 갈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갈림길은 누가 더 좋은 모델을 쓰느냐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지능은 이미 충분히 싸고 똑똑해졌고, 부족한 것은 그 지능이 돈을 벌게 만드는 설계라는 것이다. 무엇을 성과로 정의하고, 어느 업무 라인에 AI를 붙이고,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 사람이 확인할 것인가. 모델 성능이 빠르게 평준화되는 지금, 이 말은 설득력이 있다. 같은 모델을 쓰고도 어떤 팀은 회의록 요약에 머물고, 어떤 팀은 영업과 고객 응대의 흐름 전체를 바꾼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기존 업무에 AI를 ‘덧붙이느냐’, 처음부터 AI를 전제로 ‘다시 설계하느냐’에서 나온다. 책이 ‘피라미드를 뒤집는 시간’이라 부르는 흐름, 곧 첫 설계도가 전부를 좌우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의 비즈니스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도입 속도보다 업무를 다시 그리는 용기라고 본다.

산업별 트렌드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이커머스와 엔터테인먼트다. 아마존이 쇼핑 챗봇 루퍼스를 ‘알렉사 포 쇼핑’으로 통합하면서, 조수를 넘어 고객의 대리인으로 역할을 끌어올렸다는 사례가 그렇다. 이 에이전트는 다른 소매점 사이트에서 상품을 찾아 구매까지 대신 마친다. 자사 검색창을 지키는 대신 고객의 에이전트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소비자가 직접 비교하고 클릭하던 시대에는 화면 속 진열과 광고가 경쟁의 무기였다. 그러나 구매를 에이전트가 대행하면 기업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에이전트’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마케팅의 대상이 바뀌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책이 ‘관계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 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돈을 내는 대상이 정보에서 정서로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상에 동행하는 아바타를 ‘프렌덤(frienddom)’이라 이름 붙인 대목에서는 팬덤의 주어가 바뀌는 것을 실감했다. 노인 외로움을 덜어 준 소셜 로봇 사례도 같은 선상에 있다. 정보 처리는 곧 누구나 쓰는 기본 기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차별점은 신뢰, 취향, 정서적 연결 같은 ‘관계의 품질’이다. 이 부분은 기업에도 큰 숙제를 안긴다. 관계를 파는 사업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I는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전석 없는 택시가 매주 수십만 명을 태우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자동차 공장에 출근하며, 물류창고의 로봇은 사람 수를 따라잡고 있다. 책은 이 ‘전면 무인화’의 속도를 기술 시연이 아니라 세 가지가 정한다고 짚는다. 대당 원가와 정비 비용이라는 단위경제, 사고 한 건의 무게라는 안전, 그리고 어느 자리를 사람으로 남길 것인가라는 선택이다. 이 세 번째 관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의 둘은 시간이 지나면 기술과 규모의 경제가 풀어 줄 수 있지만, 어떤 일을 사람에게 남길 것인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불 꺼진 공장’에서 ‘불 꺼진 사무실’로 이어지는 흐름이 현실이 된다면, 효율만 따지는 기업과 사람의 자리를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전혀 다른 신뢰를 얻을 것이다.
&nbsp;책의 핵심 은유는 ‘워커(worker)가 아니라 워커(walker)로’라는 문장에 담겨 있다. AI가 실행을 맡을수록 사람은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존재가 아니라, 방향과 의도를 가지고 걸어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다소 낭만적인 표현이라고 느꼈지만, 읽을수록 매우 현실적인 요구로 다가왔다. 실행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희소해지는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이 3부에서 강조하는 원칙, 곧 처음과 끝은 사람이 쥔다는 말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쉬워졌다. 어려운 것은 좋은 질문을 던지고, 결과물에 책임질 기준을 세우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어떤 의미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기술 숙련도가 비슷해질수록 한 끗 차이는 문제의식과 질문의 격에서 나올 것이다. ‘AI 팀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해도, 최종 책임을 지는 자리까지 AI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9/87/cover150/k0321319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39871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벌리 지음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92</link><pubDate>Fri, 09 Oct 2026 2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1888&TPaperId=175630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6/75/coveroff/k3821318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1888&TPaperId=175630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a><br/>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과학자가 철학의 언어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신비로움과 합리성의 경계에서 아름다운 울림을 만든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으며 우리가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벨리가 말하는 관계적 양자역학의 핵심은 신선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상 즉, 고정된 속성을 가진 사물들로 이루어진 세상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자와 정신, 돌과 법칙, 판단과 은하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고대 동양철학의 상호의존성 개념과 만난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해온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는 가르침이 현대 물리학의 언어로 재탄생한 것처럼 느껴진다. 신비주의나 뉴에이지적 상상이 아닌, 입증 가능한 과학 이론으로 뒷받침한다. 이것이 바로 로벨리가. 다른 철학자들과 구별되는 이유이다.<br>우리의 사고방식에 대한 도전이 있다. 근대 이성주의는 모든 것의 기초, 궁극의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로벨리는 " 거북이가 거북이 위에 있고, 그 거북이도 거북이 위에 있고.." 라는 고전적 역설을 통해 이를 거부한다. 기초는 없다. 모든 사실은 다른 무언가에 상대적이며, 그 상대성 자체도 또 다른 상대성에 종속된다.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우리를 해방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우리의 관점이 유효함을 인청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가 사물이 아닌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은 우리의 존재론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는 동적인 프로세 스타. 심지어 돌조차도 그렇다. 이는 불교의 무상(표)'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어디에 있는가? 로벨리의 답은 우리는 "가족 중 하나"이며, 세상은 우리의 혈족"이다. 우리가 서 있는 위치는 세상밖이 아니라 그 한복판이다.<br>로벨리가 강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우리의 지식은 항상 부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겸손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방의 문제이기도 하다. 완전한 이햬를 향한 무한한 추구가 아니라, 우리의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성주의의 과신 즉, 확실성, 직선성, 이성에 대한 목적 신뢰에 거리를 두고, 로벨리는 "원형의 민첩함, 복잡성, 모호성, 은유, 감정, 불확실성과 변화의 수용"을 제안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사고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br>책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복해야 할 대상도, 이해해야 할 객체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 안에 있고, 그것의 일부이며, 그것과 춤을 추고 있다. 로벨리의 물리학은 신비로운 아름 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진리를 과학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확실성의 추구가 아니라, 이 관계성의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인정하고 그 친족 관계를 존중하는 것이 다. 지구도, 우주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모두 같은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형제이며 자매인 컷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6/75/cover150/k3821318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36757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환상사회 - [환상사회 - 이상적 이미지를 넘어 자기-세계를 만드는 15가지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86</link><pubDate>Fri, 09 Oct 2026 2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1384&TPaperId=175630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73/42/coveroff/k5921313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1384&TPaperId=175630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환상사회 - 이상적 이미지를 넘어 자기-세계를 만드는 15가지 방법</a><br/>정지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밤 11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인스타그램 피드는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따뜻한 조명 아래 펼쳐진 책, 누군가의 완벽하게 정리된 책상, 누군가의 성공한 프로젝트. 나는 그 이미지 들을 빠르게 스와이프한다. 한 번, 두 번, 열 번. 자신도 모르게 한 시간이 흘렸다. 그리고 새벽 1시, 나는 다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다. "감성 있는 책상 셋팅", "성공한 사람들의 생활 습관","나 같은 사람 도 할 수 있는 자기계발법". &lt;환상사회&gt; 속 문장. "우리는 타인의 환상을 수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ㅎ 정확히 환상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환상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깨닫고 있으면서도, 계속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자가 말한 '현실보다 이상이 더 가까운 삶'을 나도 살고 있다. 회사에서 '똑똑해 보이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의 특징"을 검색했다. 그 영 상들은 나에게 이상'을 심었다. 빠르게 말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항상 미소 지으며, 실수를 절대 보이지 않는 사람. 그 이상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는 하루종일 그 이상을 충족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때론 말을 더듬었고, 실수도 했고, 지쳐서 미소 지을 수 없던 날도 있었다. 그럼 나는 자책했다. 왜 난 안 되지? 저 사람들처럼은 왜 못할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타인의 기준에 따른, 때론 대세에 어울리는, 남들에게 내보일 만한 '남다움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다움이 아니었다.

알고리즘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이다. 내가 한 번 성공한 CEO의 하루" 영상을 본 후, 내 피드는 그 종류의 영상으로 가득 찬다. 마치 나의 욕망을 정확히 읽은 듯이. 저자가 지적한 그 대로다. "나는 '어쩌다' 나의 취향이 된 영상에 잠시 더 머물렀는데 AI 알고리즘은 더욱더 그 취향을 '나의 취향'으로 만들고 강화해준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내게 제시된 것들만 자꾸 '내 선택'처럼 느껴 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나라고 믿는다. 더 문제적인 건, 내가 단순히 환상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또한 타인을 평가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요즘 내 친구들과의 대화를 되돌아보면, 자주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 사람 너무 가식적이야", 저건 좀 과한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SNS에서 누군가의 셀카를 보면서, 누군가의 성공담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판단한다. 그리고 내가 그 판단을 내릴 때마다, 일시적으로 나는 더 '현명하고', 더 '도덕적이고', 더 '객관적'인 사람이 된다. 마치 그 우월함이 나를 지켜줄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말이 정확하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결할수록 나는 더 옳고, 더 현명하고,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얻는다. 타인을 실컷 품평한 뒤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안전감을 느낀다." 섬뜩한 부분이 있다. 타인을 향한 그 냉소적 시선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내가 외모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나도 평가받게 되고, 내가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기준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다. 모두 가 서로를 '구경'하고 평가하는 동안, 나 역시 동시에 누군가의 판단 대상이 된다.

그런데 환상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저자도 인정한다. "이 책이 'SNS를 끊어라', '스마트폰을 버려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세계를 만드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이력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누군가의 이상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관심 있는 것에 시간을 쓰고, 경험하고, 때론 실패하면서 본 무서가 대진고 자아이전보자 통라라버력에일에게 일이하 이상을 제시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이상을 추종하고 싶은 요망보다는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작은 세계가 훨씨 아름다다는 것을 깨닫는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73/42/cover150/k5921313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73427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서아쌤의 토익 비밀과외 (2026 개정) - [서아쌤의 토익 비밀과외 (2026 개정) - 토익 베스트셀러 1위 저자, 서아쌤의 토익 700-900+ 완성 기본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65</link><pubDate>Fri, 09 Oct 2026 2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1988&TPaperId=175630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5/43/coveroff/k5421319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1988&TPaperId=175630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아쌤의 토익 비밀과외 (2026 개정) - 토익 베스트셀러 1위 저자, 서아쌤의 토익 700-900+ 완성 기본서</a><br/>최서아.시원스쿨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LAB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몇 년 전 취득한 토익 점수를 꺼내 보니 언제 받은 것인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사이 업무는 점점 더 국제화되었고, 이메일은 영문으로 날아오고, 화상 회의에서는 내 영어 발음이 신경 쓰인다. 토익은 시험이 아니라 생존 도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에 서아쌤의 토익 비밀과외~를 펼치며, 예전에 나는 토익을 "따야 하는 점수"로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배워야 하는 영어"로 접근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책의 서두에서 언급한 최신 출제 경향을 읽으며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토익은 이미 옛날 토익이었다. 예전에는 Part S 문법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수동태니 부정사니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의 토익은 다르다. 문법만이 아니라 문맥 속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의미 유추 문제의 증가"는 내게 충격이었다. 문장을 읽으면서 "아,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이렇지만 실제로는 저런 뜻 이군"이라고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 암기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영어를 쓰고, 읽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즈니스 상황의 다양성도 눈에 다. 이제는 일반적인 회사 상황을 넘어, 이메일, 공지사항, 기사, 광고, 회의록 등 정말 다양한 텍스트가 나온다. 이는 곧 실제 직장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그것 말이다.책에서 제시하는 LC 풀이법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공부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항상 "다 이해해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단어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 만 서아쌤이 강조하는 것은 다르다. "정답 단서를 빠르게 캐치하는 기술"이다. 예전의 내가 이전에 농친 부분이 왜?"라는 질문 없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토익을 다시 공부하려니 이 점이 더욱 절실해졌다. 서아쌤이 제시하는 RC 시간 관리 전략은 현실적이다. "지문을 빠르게 스캔하면서도 핵심 정보를 놓치지 않는 연습"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직장에서 하 는 이메일 읽기, 보고서 정독, 계약서 검토와 정확히 같은 기술이다. 특히 Part 7의 여러 문서 읽기는 현실의 직장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ChatGPT가 있는데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 하지만 답은 명확하다. AI는 도구일 뿐이다. 번역해주고, 이메일 작성을 도와주고, 문법을 검사해준다. 하 지만 시의 결과가 맞는지 아닌지, 내 상황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나다. AI가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 상황에서 필요한 감정, 뉘앙스, 리더십은 내가 제공해야 한다. 서아쌤의 책이 강조하는 "실용적 의사소통 능력"이 바로 이것이다.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인간의 능력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5/43/cover150/k5421319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45437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도쿄 인사이트 산책 - [도쿄 인사이트 산책 - 5인의 창작자가 다시 읽는 낯설고 매혹적인 도쿄의 일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55</link><pubDate>Fri, 09 Oct 2026 2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1783&TPaperId=175630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5/3/coveroff/k0221317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1783&TPaperId=175630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쿄 인사이트 산책 - 5인의 창작자가 다시 읽는 낯설고 매혹적인 도쿄의 일상</a><br/>김학재 외 지음 / 책밥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아침 일찍 깬 날이면 나는 창밖을 통해 서울의 하늘을 본다. 회색 하늘 위로 높은 빌딩들이 촘촘히 솟아있고, 도로 위에는 항상 누군가가 분주하게 이동 중이다. 효율과 속도가 도시의 맥박을 이루는 곳. 그곳이 서울이다. 최근 내가 품게 된 질문은 이 빠른 속도 속에서 나는 정말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 책을 읽으며 소비하는 여행이 끝나자, 비로소 살아가는 도시가 보였다." 가 계속 상기된다. 한국보다 느리게 돌아가는 도시, 도쿄에서 11년간 뿌리내린 다섯 명의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속도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나요?"나는 가을이 되면 도쿄로 가고 싶다. 핫플레이스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처럼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도쿄에 도착한 첫 날, 나는 아마도 시나가와 역에 설 것이다. 건축가처럼 '역'이라는 문턱에서 도시와 기 억의 관계를 읽어보고 싶다. 서울의 명동역이나 강남역이 대체로 상업성의 축이라면, 도쿄의 역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을의 오후 빛이 역 구석에 들어앉아, 나는 천천히 걸어 내려올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 리듬을 따라가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도시가 시간을 어떻게 흐르게 하는지 감지해보고 싶다. 옛 만세이바시의 흔적처럼, 도시에 남겨진 매혹적인 층(레이어)들을 발견하려면 서둘러서는 안 될 것 같다.도쿄의 가을은 일본의 식문화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즌이라고 했다. 요리사의 에세이에서 읽었던 '오모테나시'-온전히 상대를 환대하는 철학-이 음식 속에 담겨 있다면, 가을 도쿄의 작은 식당에서 나는 그것을 맛보고 싶다. 서울에서는 바쁜 점심시간에 대충 허겁지겁 먹는 식사가 일상이지만, 도쿄에서는 어떨까. 혹시 밥 한 공기를 먹으면서도 계절이 담긴 야채를 마주하고, 요리사가 담은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을까. 나는 반경 1.5km의 도쿄에서, 요리사처럼 휴일을 가져보고 싶다. 그곳에서라면 일상이 창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롯폰기 모리 미술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가장 길게 남았다. 예술가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싶어서 방문한 유치원 등하원길에, 자연스럽게 만난 미술관들, 예술이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인 도시. 서울에서 미술관 은 '가야 하는 곳'이다. 휴일에 시간을 내서 일부러 가는, 어딘가 특별한 경험. 하지만 도쿄에서는 미술관이 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가을 햇살에 물든 작품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것을 감상하는 방식도 배우게 되는 경험일 것이다. 그런 삶을 생각해본다. 특별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상이 차분해지는 느낌. 진보초의 서점들에서, 나는 출판 디자이너처럼 '종이책의 물성'을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도 빠르게 전자책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도쿄는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는 도시라고 했다. 만화책의 뒷이야기부터 시작한 그 디자이너의 오답노트를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감촉, 종이의 냄새, 인쇄 기술의 섬세함. 이 모든 것이 도쿄의 서점에 살아있다면, 그곳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다.가을 도쿄의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아마도 서울을 다르게 보게 될 것 같다. 빠른 속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것 같다. 역에서 잠깐 멈추어 도 시의 리듬을 느끼고, 평범한 식사 하나에 계절의 의미를 담고, 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난 것에 주목하고, 특별하지 않은 날상의 미술을 감상하고, 손으로 만진 책 한 권에서 영감을 얻는 것아다 . 그것이 바로 도쿄 인사이트 산책 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이 창작이 되려면, 먼저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 가을이 오면 나는 도쿄로 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살아가는 도시라는 초대장을 생각하면서.<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35/3/cover150/k0221317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35030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클링 &amp; 씨댄스 - [클링 &amp; 씨댄스 -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50</link><pubDate>Fri, 09 Oct 2026 1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1477&TPaperId=17563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8/26/coveroff/k1121314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1477&TPaperId=17563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링 & 씨댄스 -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a><br/>전은재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평소 유튜브와 SNS에서 인상적인 영상들을 보며 저런 건 전문가들만 만드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클링 AI와 씨댄스를 활용한 A 영상 제작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은 설렘보다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인 것이었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진짜 영상이 나올까? 내가 만든 영상이 실제로 쓸 만한 퀄리티일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책에서 강조한 "AI 영상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기술을 넘어 어떤 장면을 만들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라는 것으로, 결국 기술이 아닌 창의력과 기획력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내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먼저 간단한 상품 광고 영상부터 시작해보가로 결심했다. 평소 관심 있던 카페에서 판매하는 수제 초콜릿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책의 제품 어미지를 활용한 이커머스 콘텐츠 생산하기' 섹션을 참고했다. 처음 시도는 실패였다. 너무 단순한 프롬프트로 "초콜릿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만 입력했는데, 나온 영상은 예상과 달랐다. 초콜릿의 형태가 자연스럽지 않았고, 조명도 매력적이지 못했 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프롬프트를 재구성했다. 주체(고급스러운 수제 초콜릿), 동작(손 위에서 부드럽게 회전), 배경(따뜻한 조명의 카페 인테리어), 스타일(사진 스타일), 조명/분위기(골든 아워의 따뜻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세분화했다. 두 번째 시도는 달랐다. 나온 영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을 거의 완벽하게 담아냈다. 손에서 화전하는 초콜릿이 자연스럽고, 조명이 제품을 돋보이게 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급스러웠다.실습 과정에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먼저 구체성의 힘이다.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 막연한 표현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지시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 멋진 영상 " 이라는 표 현보다 " 시네마틱한 카메라 무빙과 따뜻한 네온 조명 " 이라는 표현이 AI가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단계적 수정의 중요성이다. 한 번에 모든 요소를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엉망이 되지만, 조명 만 바꾸고, 배경만 바꾸고, 스타일만 바꾸는 식으로 차근차근 접근하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창의력에 기술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술 습득에만 신경 썼는데, 실제로는 어떤 이 야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했다. 기술은 그 생각을 구현하는 도구일 뿐이었다.이제 SNS에서 멋진 영상을 볼 때마다 "이건 어떤 프롬프트로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능한 것으로 변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깨 달은 가장 큰 것은, 이 시대에는 특별한 장비나 전문 기술이 없어도 창의력과 학습 의지만 있으면 충분한 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AI 영상 제작은 더 이상 소수의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 다. 책에서 제시한 단계적 가이드와 실전 예제들은 나 같은 초보자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18/26/cover150/k1121314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18262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부의 인간학 2026 - [부의 인간학 2026 - 세계 자산가들의 비밀 노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11</link><pubDate>Fri, 09 Oct 2026 19: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30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1892&TPaperId=175630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3/38/coveroff/k5221318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1892&TPaperId=175630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의 인간학 2026 - 세계 자산가들의 비밀 노트</a><br/>이혜정 지음 / 퍼스트북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통장 잔고는 얼마나 되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월요일 아침 일정표에는 무엇이 적혀 있는가?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부()는 결코 계좌의 숫자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5년 간 자산관리 현장에서 수십억 원대의 자산가들을 만난 저자가 발견한 것은 역설적이다. 통장 잔고가 클수록 무너지는 삶이 있다는 것. 재정 자산만 기형적으로 키운 사람들 즉, 건강을 잃은 자산가, 신뢰를 잃은 경영자, 가족 관계가 파탄 난 부자들의 삶 말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네 가지 자산의 개념은 명쾌하다. 먼저 정신 자산이 있다. 이것은 흔들리지 않는 원칙, 시간을 대하는 태도, 삶의 방향성이다. 명확한 투자 철학이 없는 자산가는 시장의 소음에 끝없이 흔들 린다. 그 결정 비용이 수익률을 갉아먹는다. 인적 자산은 역량과 평판이다. 현금 흐름의 천장을 결정하는 것은 금리도, 시장도 아니다. 당신이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고, 얼마나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사회 자산은 신뢰와 관계다. 부자들의 진짜 비밀은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말이 있다. 신뢰 자본이 정보의 질을 결정하고, 기회의 문을 여닫는다. 그리고 재정 자산, 통장 잔고와 투자 자산이다. 저자는 이것을 차량'이라고 표현한다. 앞의 세 바퀴가 충분히 갖춰진 후에야 이 차량은 세대를 넘어 굴러간다.

돈을 남긴 집안은 2대, 철학을 남긴 집안은 100년. 책의 핵심을 관통한다. 자산관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패턴이 있다. 어떤 가족은 상속받은 재산을 3년 내에 탕진한다. 어떤 기업은 창업자 세대 에서만 번영하다 2대에서 무너진다. 그런데 호주의 일부 화교 가문은 5대를 이어가며 부를 유지한다. 중동의 왕족 재단은 백 년의 시간을 견딘다. 차이는 무엇인가? 저자는 말한다."돈을 지킨 집안이 아니 우 라 철학을 지킨 집안이 오래 지속됐다". 홍콩 화교 가문들은 어떻게 다음 세대에 자산을 넘길까? 유럽의 백년기업들은 무엇을 기록하고 보존할까? 그들의 공통점은 재정 기법이 아니다. 부를 대하는 태도, 시간을 생각하는 방식, 신뢰를 쌓는 과정이다.

저자는 국내에서 잘 굴러가던 이 네 바퀴가 국경을 넘을 때 각각 다른 시험을 치룬다고 이야기 한다. 정신 자산은 나라가 바뀌어도 원칙으로 남아야 한다. 인적 자산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다음 세대로 '번역'되어야 한다. 사회 자산은 낯선 시장에서 신뢰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 재정 자산은 명의, 세금, 신고 절차를 동과해야 한다. "다섯 대륙의 가문들이 무너진 지점은 언제나 이 네 뱌퀴 중 준비되지 않은 한 바 퀴였다"는 저자의 말은 무겁게 다가온다, 결국,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 부를 만드는 기술은 온라인에 넘친다. 투자 비법, 재테크 노하우, 자산 증식 전략, 하지만 부를 지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치 있게 다 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다

이 순간 이루에낸 자산이 얼마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떤 기준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신의 월요일 아침 일정표에 무엇을 인쇄할 것인가. 당신의 자녀에게 계산기가 아니라 원칙을 가르칠 것인가다. 책이 제시하는 '부의 인간학'은 결국 이 질문들과 마주하게 한다. 부는 돈이 아니라 삶이고, 자산관리는 돈 굴리기가, 아니라 인생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33/38/cover150/k5221318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33386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패치 인류세 - [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999</link><pubDate>Fri, 09 Oct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9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371&TPaperId=175629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00/62/coveroff/k4221313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1371&TPaperId=175629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a><br/>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거대한 지구 시스템을 바라보던 관점이 조용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오염 등 이 모든 것이 추상적인 수치와 그래프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 (patch) 개념은 이 거대한 위기를 다시 보게 했다. 인류세는 지구 전체에만 작용하는 일원적 힘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패치'들의 연결고리라는 통찰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탈(feral) 개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탈이란 "인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설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비인간 존재의 상태"이다. 하노이의 현대식 하수도 시스템은 식민지배자들의 문명의 자랑 이어야 했다. 그러나 쥐들이 그 관을 타고 흘러나와 프랑스인들의 목욕당을 습격했다. 제국주의 인프라의 완벽함이라는 환상은 쥐의 단순한 적응력 앞에서 무너졌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프라들, 도로, 발전소, 농업 시스템 이 동일한 방식으로 역풍을 맞고 있지는 않을까? 부레장의 사례가 이를 충명한다. 전.세계 식물원의 자랑이었던•이 수생식물은 의도와 다르게 강과 호수를 뒤덮으며 생태계를 교란했다. 인간이 통제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우리의 인프라 속에서 독립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방법론은 역설적이다. 거대한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더 작은 것들을 더 자세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데이터와 위성 이미지가 주는 유혹에 빠지면 현장의 생생한 관찰이 사라진다: 그 대신 특정 자역, 특정 시간의 패치'를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랑스 해변의 노조 사건은 이러한 패치 분석의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녹조 자체는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1960년대 5mg/|에서 오늘날 33mg/로 급증한 질산염 수치는 놈 업 인프라의 이탈 효과를 드러낸다. 강우로 인한 유출, 강에서 바다로의 흐름, 특정 기후 조건 등이 모든 요소가 한 지점에서 만날 때 인간의 죽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패치-행성 역학(patch-to-planet dynamics)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인류세가 본질적으로 식민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다종 침입(multispecies invasion)은 15세가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팽창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적 인식론(patchy epistemics)은 깊이 있다.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토착 지식 체계, 예술가들의 관찰을 쌓기(ping)" 형식으로 모은다. 이는 단순한 학제 간 소통이 아니다. 각 지식 체계가 자신 의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표준을 인정하는 열린 분석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이 나를 감동시킨 이유는 그것이 겸손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데이터, 토착 공동체의 세대에 걸친 경험, 예술가의 감각적 표현-이들은 서로 환원될 수 없으면서도 모두 필요하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허물기(unbuilding)'는 절망적이지 않으면서도 절실하다. 인공 환경이 전체 탄소 배출의 40%를 차지한다. 그 위에 계산되지 않는 이탈 효과들이 쌓여 있다. 라카통과, 바살의 철학처럼, 우리는 짓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인류세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역설의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의 담변은 명화하다: 관찰하고, 기술하고, 연대 하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패치에서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얽힘이 일어나고 있다. 모기, 방사능, 녹조, 황소개구리,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프라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방 식으로 기술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자, 역설적이게도 희망일 것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00/62/cover150/k4221313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00628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 - [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 - 세계 6개 미술관에서 처음 시작하는 그림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788</link><pubDate>Fri, 09 Oct 2026 16: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7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0441&TPaperId=175627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24/coveroff/k4321304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0441&TPaperId=175627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 - 세계 6개 미술관에서 처음 시작하는 그림 여행</a><br/>박혜성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발을 디딘 지 오래되었지만, 그곳을 정말로 '본다'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 앞에 서게 될 때마다 나는 새삼 깨닫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를 알게되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나는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무심코 넘겼었다. 슬픈 색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담긴 화가의 절망과 연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작품을 마주한다면, 나는 달라진 눈 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온통 우울해 보이는 그 시절, 피카소가 어떤 마음으로 색칠한 붓질 하나하나가 느껴질 것이다. 책에서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하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르누아르와 드가는 같은 시대를 살아갔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혀 달랐다. 르누아르는 우아하고 화사한 색채로 부유한 이들의 여유로운 순간을 담았고, 드가는 그 이면의 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두 화가의 작품을 나란히 놀 고 보면, 같은 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보인다.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의 힘이다. 배경을 알면, 그림 속의 색은 더 이상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시간의 기록이 된다.

세관원 루소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전문가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고 믿으며 붓을 놓지 않았던 그 열정.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모마를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관에 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술관을 다니며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예술의 세계에는 시간이라는 위대한 심판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에 주류가 아니었던 것들이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나 새롭게 평가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작품을 만들어낸 화가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소를 보며 나는 내 안의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운다.

미술관에 가면 나는 최근에 자주 생각한다. 결국 미술관이란 거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명화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그림 자체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캔버스 위의 누군가의 슬픔, 기쁨, 분노는 어떤 시대에든 누군가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르누아르가 그려낸 봄날의 산책로에서 나는 나의 소망을 본다. 드가가 응시한 무용수의 피로한 표정에서 나는 내 삶의 무게를 본다. 터너가 기록한 전함의 노을은 영국의 영광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경험하는 변화와 상실 앞에서의 아련함을 담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터너의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가 영국의 20파운드 지폐 얼굴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 나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국은 거대함과 권력을 상징하는 전함이 아니라, 그 전함이 역사 속에 사라져 가는 순간을 그린 그림을 선택 했다. 그 속에는 영광을 기억하면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담겨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시간이 주는 성숙함까지 포함한다.
&nbsp;오늘 미술관으로 향하려 한다. 더 이상 낯설고 경외로운 마음만 가지고가 아니라, 화가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화가들의 열정과 신념을 느끼기 위해. 교과서에서 만났던 그 작품들이 다시 나를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의 눈은 다르다. 단순한 색채와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보는 눈으로. 미술관은 거울이자, 시간의 기록이며, 열정의 증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나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에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겠지만, 계속 바라보다 보면 나만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감성 미술관 투어가 될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91/24/cover150/k4321304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91244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 - [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 -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769</link><pubDate>Fri, 09 Oct 2026 1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627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130315&TPaperId=175627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18/coveroff/k6321303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130315&TPaperId=175627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 -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a><br/>김운아 지음 / 경이로움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화려하게 들리지만, 풀어 보면 소박하다. 월급이 끊겨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 하기 싫은 일을 견디는 이유가 오직 생계만은 아닌 상태다. 책에서 직장의 은퇴를 인생의 은퇴가 아니라 투자라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면, 월급이 끊겨도 재난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유의 본질을 보았다. 자유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선택지를 어떻게 넓히느냐다.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투자를 남의 이야기로 여겼다. 용어는 낯설고, 잃을까 봐 두려웠으며,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러 사람이 미국 주식을 권했지만, '성장주'가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종목을 골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권유는 공허하게 들렸다. 그러던 중 &lt;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gt;를 만났다. 1,000만 원으로 시작해 40억 원의 자산을 일군 저자가 평범한 워킹맘이었다는 사실은, 이 길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책은 미국 시장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상식적으로 설명한다. 미국 주식은 상식에 기반해 기업을 골라도 될 만큼 투자 난도가 낮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해 온 시장이라 약간의 인내만 있으면 자산이 불어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나라는 감기 몸살에 걸린다는 비유도 인상적이었다. 이왕이면 재채기 쪽에 서 있는 편이 낫다는 말은 가볍지만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것이 미국 시장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의 우상향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확신은 누구도 줄 수 없다. 다만 90년이 넘도록 상승과 회복을 반복해 온 역사가 하나의 근거가 되어 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성장주는 그 시장 안에서도 혁신이 일어나는 자리에 자산을 놓는 일이다. 저자는 성장주 투자가 단순히 수익률을 좇는 행위가 아니라 기술과 미래의 변화에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투자가 돈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투자는 공부이고 관찰이며, 삶에 활력을 주는 취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성장주 투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라기보다, 미래에 참여하는 방식에 가깝다.책이 다른 투자서와 다른 점은 매수와 매도의 기술보다 투자자의 멘탈을 먼저 다룬다는 데 있다. 성장주는 상장 초기에 변동성이 크고, 경기 침체기에는 유독 큰 폭으로 하락한다. 계좌가 파랗게 물들 때 손실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투자자의 심리다. 그래서 저자는 하락장을 좋은 기업을 싸게 모을 기회로 바라보는 심리적 체력을 강조한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경험의 복리'라는 개념이다. 1,000만 원을 굴릴 때와 10억 원을 굴릴 때 필요한 정신력은 다르고, 시행착오는 사라지지 않고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쌓여 큰 수익을 담을 그릇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다른 독자의 후기에서도 이 구절에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처음 굴리던 돈의 무게와 지금의 무게가 하늘과 땅 차이지만 부딪히며 경험이 쌓이면 천천히 적응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자산의 크기보다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크기가 먼저라는 뜻이다. 초보인 나에게는 이 말이 위로이자 경고로 들렸다. 실수는 피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시작을 막는다는 것을 배웠다.초보자가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은 "지금이 너무 비싼 건 아닐까"다. 책은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한다. 우리는 늘 고점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저점을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고점에 사더라도 저점이 될 때까지 오래 보유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아군은 시간이라는 것이 이를 요약한다. 다만 나는 이 조언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장기 투자는 여윳돈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한다. 몇 년 안에 써야 할 돈을 성장주에 넣고 시간을 믿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또 성장주는 하락 폭이 클 수 있어,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버티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다. 시간이 아군이 되려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돈과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것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태도였다. 투자 성공은 아이템이나 타이밍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말, 부자에게 무엇을 사야 하느냐고 묻기보다 실패했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야 한다는 말이 오래 머물렀다. 경제적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결과가 아니라, 지루하고 괴로운 손실의 구간을 지나며 좋은 자산을 꾸준히 모아 가는 과정의 끝에서 만나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성과는 코로나19 이후의 상승장이라는 시기적 행운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고, 같은 길을 걸어도 결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정답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삼으려 한다. 앞으로 켄 피셔 같은 저자의 책을 더 읽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며 나만의 원칙을 다듬어 갈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18/cover150/k6321303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3186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은폐된 전쟁 - [은폐된 전쟁 -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이 가린 두 개의 내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82</link><pubDate>Tue, 06 Oct 2026 20: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1980&TPaperId=175577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6/28/coveroff/k4321319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1980&TPaperId=175577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은폐된 전쟁 -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이 가린 두 개의 내전</a><br/>박홍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0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미국이 위챗을 금지하면 중국도 애플 제품을 금지할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은 미국 플랫폼에, 그것도 아이폰으로 쓴 것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은 틱톡의 강제 매각 법안에 서명했지만, 그의 선거 캠프는 여전히 틱톡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중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하며 재집권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판 '트럼프 성경'은 중국 항저우의 공장에서 인쇄되었다. 책은 이러한 모순에서 출발한다. 뉴스는 매일 미중이 반도체와 희토류, 관세와 타이완 해협을 두고 사활을 건 패권 전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나라가 정말 서로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왜 이렇게 서로에게 깊이 얽혀 있을까.

그 속의 답은 국가 중심성이다. 국제 정치는 무정부 상태이고, 국가는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진 단일한 행위자이며, 생존을 위해 힘을 겨룬다는 구조 현실주의의 전제다. 이 안경을 쓰면 미중 관계는 '패권국과 도전자의 대결'로만 보인다. 저자는 이 전제가 유용한 방법론적 가정을 넘어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국가가 단일체라는 담론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국가 권력을 쥔 세력이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통치 권력'이다. 책의 핵심 주장이다. 미중 관계는 '두 개의 내전'을 동시에 치르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자본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의 논제로섬적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각국의 통치 권력이 내부의 대항 세력과 벌이는 정치적 내전이다. '패권 경쟁'이라는 설명은 바로 이 두 번째 전쟁을 가린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부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까지 저자가 끌어오는 사례들은, 통치 권력에게 외적이 내적을 제압하는 명분으로 쓰여 왔음을 보여 준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 대목은 1995~96년 타이완 해협 위기 분석이었다. 클린턴이 리덩후이에게 비자를 내준 것은 톈안먼 이후 악화된 반중 여론과 압도적인 의회 결의(상원 97대 1, 하원 396대 0) 때문이었고, 중국의 미사일 훈련은 보수파와 군, 민족주의 여론 사이에서 입지가 불안했던 장쩌민이 유약해 보일 수 없었던 사정과 맞닿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같은 시기 미국에 타이완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양쪽 모두 국내 정치의 무대를 위해 위기를 연출하고 관리한 셈이다.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분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성능이 형편없어도 계속 만들어지는 줌월트 구축함이나 연안전투함은 군사적으로는 실패작일지 몰라도, 일자리와 지역 경기를 떠받치는 수단으로서는 목적을 다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경제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태다. 전쟁경제의 수혜 세력이 두려워한 것은 역설적으로 소련과의 평화였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전쟁, 곧 국가 간 갈등을 설명하는 열쇠는 자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국가들이 스스로 순응하게 만드는 '글로벌 리바이어던'으로 본다. 카터 정권은 소련 침공에 수출 통제로 맞서면서도 석유 시추 장비만은 목록에서 뺐고, 시진핑은 자유 무역과 다자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택한 것도, 경제 성장이 곧 통치 정당성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이 '달러 패권 체제 내의 지위 변화'였다는 지적을 따르면, 중국이 디커플링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도 분명해진다. 디커플링은 통치 정당성의 토대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커플링은 실제보다 담론으로 더 크게 존재한다. 미중 무역액은 디커플링 담론이 유행하던 2022년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수출 통제 신청의 승인 대 거부 비율은 약 10 대 1이었다. 엔비디아 칩은 선전 시장에서 우회로를 타고 거래된다. 오히려 '진짜 디커플링'은 미국 정부와 미국의 반도체 자본 사이에서 벌어질지 모른다는 저자의 농담 섞인 진단은 꽤 날카롭다. 트럼프 정권이 H20의 대중국 수출을 허가한 뒤 엔비디아 주가가 오른 사실이 그 사례다. 두 번째 전쟁, 곧 내전의 가장 선명한 얼굴은 트럼프다. 저자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신자유주의가 낳은 노동 계급의 빈곤 위에서 자란 현상으로 본다. 미국 대중의 가난이 중국과 그에 결탁한 내부 세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중 기만'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 자본, 안정적 대외 관계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삼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관세는 물가를 올려 지지층을 떠나게 하고, 자유 무역으로 돌아서면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낀다.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 모순이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미중 갈등은 모두 가짜라는 주장으로 읽지 않았다. 타이완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나 기술 통제는 분명 현실의 위험이다. 저자 스스로도 그것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나는 통치 권력의 동기를 지나치게 일관된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아닌지, 국내 정치와 자본이라는 변수를 강조하다 안보 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남았다. 국가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통치 권력'이라는 또 다른 단일 행위자를 세우는 것은 아닐까. 책은 한국에게도 실용적인 교훈을 준다. 중국의 요구를 읽을 때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읽어야 한다는 제안, 그리고 미국의 요구를 읽을 때도 그 뒤에 있는 국내 정치와 자본의 계산을 읽어야 한다는 제안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준다. 뉴스 속 '패권 전쟁'이라는 장면 뒤에는, 두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그 전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공포를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46/28/cover150/k4321319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46283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 [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63</link><pubDate>Tue, 06 Oct 2026 19: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1870&TPaperId=17557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7/2/coveroff/k2321318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1870&TPaperId=175577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a><br/>때지타로 지음 / 모티브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요즘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듯한 조급함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불쑥 찾아온다. 이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우리는 SNS 속에서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 본다. 반면 내 삶에서는 피곤한 날, 실패한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까지 전부를 겪는다. 편집된 남의 하이라이트와 무편집인 내 일상을 나란히 놓고 저울질하니 늘 내가 모자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었던 셈이다. 책에서 말하듯,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잘난 사람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부정적 메타인지'에 익숙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새로운 일을 앞두면 정답부터 찾았고, 완벽히 준비되기 전에는 시작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공식을 대입해 정답을 맞히던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진짜 재능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시도의 끝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시도하지 않으면 재능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모범생이 아니라 모방생이 되자'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한 번에 성공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볍게 따라 해 보고 안 맞으면 고치며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 이 태도는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에 가깝다. 실패해도 그것이 또 하나의 배움이 되어 다음 걸음으로 이어진다면, 실패는 오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시도부터 해 보려 한다. 미뤄 두었던 공부를 하루 삼십 분만 시작해 보고, 관심 가는 분야의 글을 하나 써 보는 것이다. 결과가 형편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 메타인지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내 가능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첫발을 뗄 용기가 생긴다.관계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 나는 오랫동안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계산,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의 서운함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런데 관계를 취미처럼 대하라는 말을 듣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게임이나 운동에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듯, 내가 기꺼이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만큼만 관계에 내어 주면 된다. 내가 정한 '손해의 마지노선'을 넘어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차가운 단절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지혜다.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는 피로만 깊게 만들지만, 기꺼이 투자하는 관계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나의 내실과 실력을 다지는 데 집중하면 된다.책을 덮고 나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보다 불안한 순간에도 내 선택을 이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흔들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듯, 흔들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번아웃이 찾아올 만큼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세게 채찍질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속도를 늦추는 용기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남의 시선과 비교에 소모하는 하루가 얼마나 아까운지도 분명해진다. 소중한 사람과 다투고 후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다정하게 채우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7/2/cover150/k2321318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7023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스핀트로닉스 응용편 - [스핀트로닉스 응용편 - 반도체를 넘어, 전자의 스핀으로 여는 차세대 정보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58</link><pubDate>Tue, 06 Oct 2026 19: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5577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0353&TPaperId=175577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1/52/coveroff/k7821303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82130353&TPaperId=175577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핀트로닉스 응용편 - 반도체를 넘어, 전자의 스핀으로 여는 차세대 정보기술</a><br/>스즈키 요시시게 외 지음, 일본자기학회 엮음, 원운재 외 옮김 / 광문각 / 2026년 09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에 스며든 요즘, 우리는 습관처럼 "이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이야기한다. 파라미터 수, 추론 속도, 응답의 자연스러움.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지능이 돌아가는 물리적 기반, 즉 그것을 계산하고 저장하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자동차를 몰면서 엔진 내부의 폭발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 &lt;스핀트로닉스 ―응용편&gt;을 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엔진 내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학문이 물리학, 반도체공학, 자기공학, 전자공학, 양자정보학 등 여러 분야가 겹치는 지점에서 성장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껏 전자공학이라 부르며 발전시켜온 모든 기술은 사실 전자의 '전하'라는 한 가지 성질에만 주목한 결과였다. 전하가 얼마나 흐르는지, 얼마나 빠르게 스위칭되는지가 반도체 산업 전체를 이끌어온 질문이었던 셈이다. 스핀트로닉스는 여기에 아주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더한다. 전자에게는 전하 말고도 '스핀'이라는 또 하나의 물리량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것을 정보처리에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을까? 이 질문 자체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스핀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알려진 개념이다. 그런데도 이 익숙한 성질을 낯설게 다시 바라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기술의 지평이 열린다. 목차에서 다루는 거대자기저항(GMR), 터널자기저항(TMR), 스핀토크 자화반전 같은 소자들은 모두 이 하나의 질문에서 갈라져 나온 답들이다.일반인의 눈으로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AI 반도체' 담론이었다. 생성형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엔비디아의 GPU, HBM 메모리, 그리고 이를 둘러싼 파운드리 경쟁이 연일 화제가 된다. 그런데 이 흐름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AI 산업이 마주한 진짜 병목은 연산 속도보다 오히려 '메모리와 연산 사이의 데이터 이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거대한 모델을 학습시키고 추론할 때 소모되는 전력의 상당 부분이, 계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꺼내고 다시 저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핀트로닉스가 흥미로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이크로마그네틱스, 자벽과 카이랄리티, 베리 위상 같은 용어들은 한 문장을 읽는 데도 여러 번 멈춰서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이해되지 않음'이 오히려 흥미를 자극했다. 모르는 용어 하나하나가 "이 안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원리가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2장에서 다루는 진공증착, 스퍼터링, 포토리소그래피, 전자빔 리소그래피 같은 제조 공정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매끈한 기술 뒤에는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지루한 실험의 반복이 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폰 안의 자기센서 하나, 하드디스크의 헤드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술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겸손해진다.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만 보고 감탄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와 씨름하는 연구자들의 시간이 있다.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좋은 과학책은 모든 것을 이해시켜주는 책이 아니라 이전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쓸 때, 그 안의 메모리 어딘가에서 전자의 스핀이 어떤 방향으로 정렬되어 정보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AI가 그려주는 그림, 대신 써주는 문장 뒤에는 결국 전기가 흐르고, 전자가 움직이고, 그 전자의 스핀이 자기장 속에서 방향을 바꾸는 물리적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br>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는 어쩌면 '보이는 것'의 시대다. 우리는 화면에 나타나는 결과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와 소자의 세계, 그리고 그 소자를 더 빠르고 더 적은 전력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있을 스핀트로닉스 연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의 영역에 남아 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 한 번쯤 눈을 돌려보는 경험은 앞으로 다가올 기술의 지형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어렵지만, 그래서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01/52/cover150/k7821303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01526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