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oogi386님의 서재 (koogi386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14 Jul 2026 15:46:34 +0900</lastBuildDate><image><title>koogi386</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oogi386</description></image><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연금술사 - [연금술사 - 최신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43</link><pubDate>Sun, 12 Jul 2026 14: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2&TPaperId=173873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10/coveroff/k0221304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130492&TPaperId=173873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금술사 - 최신개정판</a><br/>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파울로 코엘료, &lt;연금술사&gt;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스페인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걷는 길이 나의 길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산티아고는 꿈을 좇아 안달루시아의 평원을 떠나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막으로 향한다. 그에게는 지도도, 확실한 안내자도 없다. 오직 꿈이 가리키는 방향과, 발밑에 닿는 모래의 감촉만이 있을 뿐이다. 대학때 많이 읽었던 연금술사. LLM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 에 대학시절에 읽었던 연금술사를 다시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장을 넘기며 자꾸 멈추게 되었다. 2026년,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ChatGPT의 창을 열고, 클로드에게 말을 건네 고, 미드저로 이미지를 만들고, 검색 결과 대신 AI의 대답을 먼저 읽는다. 어느새 일상 속에 스며든 이 존재들은 편리하고 강력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알 수 없는 불안을 심어 놓는다. 이 불안은 정확히 무엇인가. 산티아고가 사막 한가운데서 느꼈을 그 막막함과, 내가 생성형 AI 앞에서 느끼는 막막함은 과연 다른 것인가. 책 속에서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에게 말한 다. "위험은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AI가 가져온 불안의 진짜 정체도 이것이 아닐까. AI가 너무 무능해서가 아니라, 너무 유능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일들 즉,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짜고, 상담을 하는 일들이 하나씩 알고리즘의 영역으로 넘어가 는 것을 바라보며, 내 존재의 좌표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연금술사의 서사는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다'라는 메시지다. 산티아고는 이집트 피라미드 아래의 보물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보물은 그가 처음 출발했던 스페인의 교회 아래에 있었다. 여정이 없었다면 그는 집 앞의 보물도 찾지 못했을 것이 다. 여정 속에서 겪은 실패, 배신, 사랑, 깨달음이 그를 보물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AI가 불확실성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곤 했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 어떤 능력이 쓸모없어질지 모른다. AI가 언제 나보다 더 잘할지 모른다. 하지만 연금술사를 읽으며 나는 이 불확실성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불확실성은 사막이다. 사막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불확실성을 피해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코엘료는 말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당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소망을 이루기 전에 먼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어야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며 내가 붙들고 있는 두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전의 나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글 쓰는 사람,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 문제 를 해결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A로 인해 흔들릴 것 같은 두려움. 하지만 산티아고가 낡은 양 떼를 팔아야 사막을 거닐 수 있었듯이, 나도 이전의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릴지 모른다. 시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도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여정의 동반자로 볼 것인가. 이 선택 자체가 나의 신화(Personal Legeng)를 어떻게 쓸 것 인지를 결정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연금술에서 코엘료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연글술사의 핵심은 변환(transformation)일 것 같다. 가장 흔하고 낮은 물질인 납을 가장 귀한 금으로 바꾸는 것. 코엘료는 이 연금술의 비유를 통해 말한다. 인간의 내면에 있 는 두려움과 평범함을 지혜와 깨달음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연금술이다. AI 앞에서 느끼는 나의 불안이 납이라고 생각한다. 이 납을 금으로 바꾸는 나만의 연금술은 무엇인가. 나는 이 에세이를 쓰며 하나의 답을 찾았다. 그것은 AI를 이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AI와 함께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연결하고, 더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산티아고가 사막과 싸우지 않고 사막이 되어 바람이 되었듯.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AI는 더 강력해질 것이고,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물을 손에 쥔 산티아고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안도가 아니라 웃음 이었다. 그 웃음은 보물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정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2026년의 나는 아직 여정 중이다. Al라는 사막 한가운데, 나만의 신화를 향해서.<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삶의 비밀은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다시한번 AI의 시대를 어떨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본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직접 길을 걷는 경험 자체다. 산티아고에게 누군가 피라미드의 좌표를 알려주었다면, 그는 보물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사막을 건너며 얻은 눈이 없었다면, 보물이 있는 땅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나에게 수많은 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질 문을 던질 것인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지, 그 답을 내 삶에서 어떻게 의미로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나의 몫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10/cover150/k0221304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101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마음이 단단해지는 하루 한 문장 일본어 필사 - [마음이 단단해지는 하루 한 문장 일본어 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37</link><pubDate>Sun, 12 Jul 2026 14: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0700&TPaperId=173873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1/75/coveroff/k4321307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32130700&TPaperId=173873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음이 단단해지는 하루 한 문장 일본어 필사</a><br/>안은미 지음 / 센시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열기도 전에 손끝에 느껴지는 묵직함이 심상치 않았다. 뜯어보니 생각보다 두툼하고, 표지는 수수했다. 그런데 펼치는 순간, 나는 그만 멈춰 버렸다. 페이지가 활짝, 그리고 완전히 펼쳐졌다. 억지로 누르지 않아도, 손 으로 잡아당기지 않아도, 책은 스스로 납작하게 누워 나를 기다렸다. 사철제본. 실로 꿰맨 방식이라고 했다. 작은 것 하나 가 하나가 마음을 건드렸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정확히는, 아침을 좋아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이다. 알람은 여섯 시에 맞춰놓고 실제로 일어나는 건 일곱 시 반. 그 사이 세 번쯤 다시 눕고, 두 번쯤 자책하며, 한 번쯤 오늘은 달라질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 중얼거림이 공기 중에 흩어지기 전에 뭔가를 붙잡고 싶었다. 말이 아니라 손으로, 머릿속이 아니라 종이 위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어 필사를 시작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처음엔 솔직히 일본어가 목적이었다. 히라가나는 일을 줄 알고, 가타카나는 가끔 헷갈리고, 한자는 더더욱 가물가물한 어 중간한 수준. 드라마를 볼 때 자막 없이 한 문장이라도 알아듣고 싶다는 가벼운 욕심. 그런데 막상 펜을 들고 앉으니, 이상 한 일이 벌어졌다. 문장을 옮겨 적는 동안 일본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보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무사태평해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한 글자씩 눌러 쓰면서 자꾸 멈췄다. . 무사태평. 종종 남들이 이야기 한다. 별로 걱정 없어 보인다고, 어디서든 잘 적 응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씩 웃고 넘겼지만, 사실 그 웃음 아래 고여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 다. 소세키의 문장이 조용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그것을 건드렸다. 필사는 그런 것이었다. 타인의 언어가 나의 내면을 비 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하루 루틴이 조금씩 바뀌었다.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고요한 부엌 식탁에 앉는다. 책을 펼친다. 사철제본이라 책은 언제나 순순히 펼쳐진다. 그 얌전함이 좋다. 억지로 눌러야 하는 것들이 이미 하루에 차고 넘치니까, 아침만큼은 저항 없이 열리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날의 문장을 먼저 눈으로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다. 낯선 발음이 입 안에서 굴러다니다가 혀와 이 사이를 빠져나온다. 처음엔 어색하고, 두 번째엔 조금 익숙하고, 세 번째엔 비로소 내 목소 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쓴다. 천천히, 한 씩. 손가락 마디가 뻐근해질 즈음이면, 문장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 든다. 알람 소리가 아니라, 내 손끝의 감각이 오늘을 열어주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봄의 하이쿠를필사하던 날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오늘까지의 날은 오늘 버리네, 첫 벚꽃 피니. 비우는 용기. 책은 그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어제의 나를 기꺼이 비워내야만 오늘의 내가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고.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썼 다. 한 번은 따라 쓰듯, 한 번은 되새기듯, 한 번은 다짐하듯. 버리는 것에 서툰 사람이다. 지난 실수, 오래된 후회, 이미 끝 난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들을 오래 붙들고 산다. 그런데 벚꽃 한 줄기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그 하이쿠의 결기 가, 다섯 글자 열두 글자 사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짧아서 더 날카로웠다. 짧아서 더 오래 마음에 걸렸다. 필사를 마친 뒤 나는 노트 여백에 작게 적었다. 오늘은 어제의 나를 좀 내려놓기.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그냥 그 하루를 위한 작은 다짐 하나. 그것으로 충분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여름 파트에서는 고바야시잇사의하이쿠가 나를 웃겼다. 때리지 마라, 파리가 손 비비고 발 비비거늘. 파리 한 마리에게 연 민을 품은 시인. 우습고도 따뜻한 시선. 필사를 하며 나는 피식 웃었는데, 그 웃음이 어쩐지 가슴 깊은 곳에서 왔다. 뜨거운 계절을 살아내느라 전력을 다한다. 파리도, 나도, 이 여름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땀에 흠뻑 젖어 축 처진 하루의 끝이 고단 한 시간이 아니라 오늘을 온전히 살아냈음을 선포하는 치열한 기록이라는 말. 그 문장을 쓰는 동안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잘 살아냈다, 오늘도. 필사를 시작하면서 변화를 눈치챘다. 일본어 실력이 늘었냐고? 그것도 조금.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달라진 건 아침이었다. 예전의 나는 아침을 잃어버린 채로 하루를 시작했다.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뉴스와 SNS와 누군가의 일상을 스크롤하다가 어느새 30분이 증발해 있었다. 그 30분 동안 나는 세상의 소음을 잔뜩 집어삼키고, 정작 나 자신의 목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하루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지금의 아침은 다르다. 가장 먼저 하는 일 이 필사가 되면서, 하루의 첫 목소리가 바뀌었다. 소세키의 문장이든, 잇사의 하이든, 오타니 쇼헤이의 말이든-그날의 문장이 하루의 첫 음표가 된다. 그 음표에 맞춰 하루가 시작되니, 뭔가 달라도 다르다. 언어는 변화무쌍하다고, 책은 말했다. 마치 사람의 인생처럼. 같은 문장도 쓰는 날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무기력한 아침에 읽는 행복과, 충만한 아침에 읽는 행복은 같은 두 글자인데 온도가 다르다. 그 온도의 차이가 나의 하루를 조율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1/75/cover150/k4321307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21757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선과 지브리 - [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28</link><pubDate>Sun, 12 Jul 2026 14: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0299&TPaperId=173873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5/42/coveroff/k2321302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0299&TPaperId=173873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a><br/>스즈키 도시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늘 빠른 사람이고 싶었다. 빠르게 이해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빠르게 다음으로 넘어가는 사람. 모호함 앞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 그게 능력 있고 효율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lt;선과 지브리&gt;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 믿음이 흔들 렸다. 스즈키 토시오는 이 책에서 선을 종교적 교의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모름과 함께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이 선이라고. 답을 찾지 않고 물음 곁에 계속 앉아 있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림을 그리고, 부수고, 다시 그리는 것처럼. 완성이 보이지 않아도 손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그 말이 내 어딘가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건드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이해'를 수집해왔다. 어떤 영화를 보면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감독의 의도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어떤 유형이다'라고 정리하려 했다. 어떤 경험을 하면,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바로 이름 붙이고 싶어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정리된 것은 불안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내가 이해하려는 속도만큼, 나는 무언가를 놓쳐왔다는 것을. 아직 다 피지 않은 감정을 서둘러 닫아버렸 다는 것을. 이름 붙이기 전의 그 짧은 순간, 그 여백 안에 오히려 진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브리 작품이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원래 복잡하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고. 감정에는 정답이 없고, 행동에는 명확한 이유가 없을 때가 많다고. 그것을 억지로 정리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일이라고.<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미야자키 하야오의 작업 방식은 유명하다. 계획 없이 시작하고, 그리면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완성이 보이지 않아도 계속 손을 움직인다. 완성된 스토리보드 없이 제작에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히 비효율이다. 그런데 스즈키 도시오는 그것을 비효율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 미야자키는 미아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길을 잃는 것 자체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미아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는가. 방향이 보이지 않으면 멈추고, 계획을 세우고, 리스크를 계산하고, 확실해진 다음에야 움직이려 했다. 불확실함 속에서 일단 손을 움직이는 것을 나는 '무모함'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걸으면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계획하는 동안에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우연이 있다. 미야자키의 비효율은 혼돈이 아니라, 불확실함을 창작의 연료로 쓰는 방식이었다. 선에서 말하는 '좌선'처럼, 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 니라 물음 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행위였다. 그 용기를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 있었나, 자문해 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또 하나 마음에 걸린 부분이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내면에 있는 모순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전쟁에 반대하면 서도, 어린 시절 전투기와 병기에 매혹되었다.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기를 바라면서도, 아이들이 집 안에서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아이러니를 그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보통은 이런 모순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긴다. 일관 성이 없다고,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순을 숨기거나, 한쪽을 억누르며 산다. 그런데 책에서 소 개되는 일본의 사유 방식, 양행(I(5)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대립하는 두 가지를 모두 살려두면, 거기서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생각. '빨리 가라'와 '돌아가라'가 동시에 진실일 수 있다는 것. 모순은 해소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창 조의 씨앗이라는 것. 모순들을 떠올렸다. 사람이 그립지만 혼자 있고 싶은 것. 인정받고 싶지만 주목받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익숙한 것에 매달리는 것. 오랫동안 나는 그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 '진짜 나'인 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그런데 어쩌면, 그 양쪽이 모두 진짜 나일 수도 있다. 그 긴장 안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방식일 수도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이 세상, 버릴 것 없다" 지브리의 기본 자세라고 스즈키 도시오는 말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직면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낙관주의와는 다르다고 느꼈다. 낙관주의는 '잘 될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그런 확신이 없다. 잘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세상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있는 이 세계를 통째로 버리지 않겠다는 태도. 이것은 용기에 가깝다. 어쩌면 선이 말하는 것도 이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답이 없어도 좋다. 길을 잃어도 좋다. 모순을 안고 있어도 좋다. 그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손을 움직이고, 생각 하고, 살아보는 것일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고 나서 나는 무언가를 '알게' 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확신이 조금씩 느슨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느슨함이 불안하지 않았다. 흔들려도 괜찮다는 것. 모르는 채로 걸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의 혼란이 곧 실패가 아니라는 것. 지브리의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모순투성이다. 스즈 키 토시오도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만들고, 계속 물어보고, 계속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빠르게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리하는 것보다, 여백을 남기는 사람으로. 그리고 흔들리는 것을 숨기는 것보다,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으로. 이 세상, 버릴 것 없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5/42/cover150/k2321302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5424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림 그리는 과학자 - [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16</link><pubDate>Sun, 12 Jul 2026 14: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0592&TPaperId=173873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51/coveroff/k2921305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92130592&TPaperId=173873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a><br/>이동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연필 한 자루, 혹은 펜 한 자루를 들고 자연 앞에 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화가이기 이전에 과학자였고, 과학자이기 이전에 무언가에 깊이 매료된 인간이었다. 마리아 시빌라메리안, 메리 애닝,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장 앙리 파브르, 존 제임스 오듀본. 이들의 이름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공통된 하나의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을 붙잡으려는 손, 그리 고 그 손이 긋는 선이다. 글을 읽으며 내내 한 가지 질문을 놓지 못했다. 왜 하필 그림이었을까? 문자가 없던 시절, 인간은 동굴 벽에 손을 얹고 윤곽을 그렸다. 사냥한 들소, 뛰어오르는 말, 손바닥의 실루엣. 그것은 보았다는 증거였고, 존재했다는 기록이었다. 그 본능은 수만 년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17세기의 메리안이 누에의 허물을 스케치하고, 19세기의 오듀본이 새를 실물 크기로 화폭에 옮길 때, 그들은 동굴 벽의 인간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림은 시대와 언어를 초월한다. 라틴어로 쓰인 논문은 시간이 지나면 번역이 필요하고, 언어가 다르면 오해가 생긴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려진 딱정벌레 한 마리는 300년이 지나도 같은 딱정벌레다. 이것이 과학자들이 그림을 선택한 가장 원초적인 이유였을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마리아 시빌라메리안의 이야기에서 나는 가장 먼저 '용기'를 읽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저 흉내내고 예쁘게 보이도록 하기보다 본인이 보고 경험한 모든 것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이것은 혁명적인 태도였다. 당시의 박물화는 대상을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 즉 이상화된 자연을 보여주는 것에 더 가까웠다. 메리안은 달랐다. 알에서 깨어나는 애벌레, 탈피 후 남겨진 허물,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방. 그녀의 그림에는 삶의 불완전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형태만이 아닌 시간의 기록이었다. 생명이 변해가는 과정, 즉 생태 그 자체를 그림으로 포착한 것이다. 여성이 곤충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매우 이상하게 보이던" 시대에, 그녀는 수리남까지 건너갔다. 뇌졸중으로 몸이 마비된 후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메리안의 그림 앞에서 나는 묻게 된다. 그녀를 그 자리까지 이끈 것은 예술적 열망이었을까, 아니면 과학적 집념이었을까. 아마도 그 둘은 그녀 안에서 처음부터 하나였을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메리 애닝의 이야기는 다른 결의 이야기다. 그녀의 손이 찾아낸 익티오사우루스 두개골은 박물관에 전시되었지만, 그 표본을 발굴한 사람의 이름은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았다. 화석을 해석하고 복원한 공로는 학회에 앉은 남성들에게 돌아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엘리자베스 필폿이라는 존재에 주목했다. 메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 여성이 없었다면, “메리 애닝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 이것은 과학의 역사 속에 숨겨진 수 많은 협력과 연대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빛나는 발견의 뒤에는 언제나 기록되지 않은 손들이 있었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과학에서 기록의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림을 그리고, 화석을 찾고, 표본을 복원하는 행위. 그것이 누구의 것으로 남느냐는 순전히 권력과 제도의 문제였다. 지식은 발견되는 것이지만, 그 공로는 선택되는 것이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650볼트 전기뱀장어의 전기 충격을 네 시간 동안 직접 받아가며 실험했다. 산소통도 없이 6천 미터 고산을 오르며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했다. 장 앙리 파브르는 정원 한 켠을 실험실로 삼아 평생을 보냈다. 돈도, 장비도, 학계의 인정도 없이. 관찰이란 결국 헌신의 다른 이름임을 깨닫는다. 훔볼트의 기록이 30권의 책이 되고, 파브르의 관찰이 10권의 &lt;곤충기&gt;가 된 것은 단지 지적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알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 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사명감이었다. 파브르가 "나는 곤충을 연구하며 단 한 번도 돈을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가난 속에서 쓴 그 문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순수한 열정이 어디까지 인간을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머릿속에 빠르게 흘러가는 생각을 남기기 위해 필기구는 펜 하나만을 단촐히 사용한다.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화가들 이 완성을 목표로 그림을 그린다면, 현장의 과학자는 사라지기 전에 붙잡는 것을 목표로 선을 긋는다. 근육을 그리고, 골격을 그리고, 동공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전체가 아닌 부분을. 완성이 아닌 순간을. 이 필드 노트의 미학은 불완전함 속에 있다. 미처 그리지 못한 부분을 메모로 채우고, 확인하지 못한 것은 물음표로 남긴다. 그 불완전한 기록들이 쌓여 하나의 과학이 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과학이 사실 얼마나 인간적인 행위인지를 새삼 느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듀본이 새를 그린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단순히 새의 외형을 묘사하지 않았다. 날고, 먹고, 싸우고, 쉬는 새의 순간을 포착하려 했다. 그의 그림이 전통적인 야생동물 그림을 초월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생명을 그림 속에 가두지 않고, 생명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이것은 메리안이 변태의 과정을 기록하고, 파브르가 말벌의 외과적 침술 을 묘사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과학 그림의 목표는 대상의 복사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형태를 그리 는 것이 아니라 삶을 그리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자연에 대한 이해는 인간에게 필요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림 그리는 과학자들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그림들은 인간이 자연 앞에 섰을 때 얼마나.겸손해질 수 있는지, 동시에 얼마나 집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메리안의 누에 허물, 메리 애닝의의티오사우루스 두개 골, 홈볼트의 고산 스케치, 파브르의 말벌 관찰, 오듀본의 살아있는 새들. 이 모든 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소멸하는 것들 앞에서, 눈을 감지 않을 용기를 가진 채로 다가온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8/51/cover150/k2921305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8516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가장 느린 것들이 가장 오래 빛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10</link><pubDate>Sun, 12 Jul 2026 14: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873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15139&TPaperId=173873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93/coveroff/89352151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215139&TPaperId=173873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가장 느린 것들이 가장 오래 빛난다</a><br/>이유리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래도록 속도를 믿었다.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성과를 내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며, 퇴근 후에도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는데, 어느 날 문득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었다. 내 삶의 좌표 자체가 흔들리는 감각이었다. 식물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을 만났다. &lt;식물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gt;. 처음에는 그저 지친 마음을 달래줄 가벼운 읽을거리겠거니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묵직한 울림을 얻었다. 식물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내가 외면해온 수많은 질문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앙아메리카 우림에는 1년에 20미터씩 걷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린 움직임이지만, 그 나무는 분명히 걷고 있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는 지금 걷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남들의 속도에 떠밀려 흘러가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분류한다.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 이름 있는 것과 이름 없는 것.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 도 벗어나면 마치 뽑아버려야 할 잡초처럼 취급받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직장에서의 평가,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일상,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척도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끊임없이 측정하고 판단한다. 그런데 책은 말한다. "잡초는 아직 이 름 불리지 않은 꽃이다." 버려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이라고. 그리고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화 려한 꽃이 아니라 흙 속 뿌리처럼, 들판의 잡초처럼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라고.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던 나의 평범함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으로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무미건조한 일상을 반복하며 나는 종종 스스로를 잡초 취급 했다. 특별하지 않고, 두드러지지 않고, 누군가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식물의 세계 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연에는 위계가 없다. "자연은 말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옳은지, 무엇이 정상인지, 그 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서로의 삶을 이어갈 뿐이다."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멈춤'은 종종 실패나 게으름으로 읽힌다. 잠시 쉬어가겠다고 말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속도를 늦추면 도태되는 것 같다. 이 도시의 문법은 끊임없는 전진을 요구한다. 그런데 식물은 안다. 언제 피어나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가을이 오면 나무는 수백만 장의 잎을 미런 없이 떨군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다. 멈춤은 후퇴가 아니라 다음 계절을 위한 전략이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 밑동치에서 봄이 오면 새 가지가 솟아오르듯,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맹그로브를 생각한다. 진흙 속 협기성 환경에서도 뿌리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나무. 누가 봐도 불리한 조건에서, 남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숨구멍을 찾아낸다. 그 모습이 나의 지난 시간과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지금 내 자리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 자리가, 이 시간이, 뿌리로 숨을 쉬는 나만의 방식을 익히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발아의 순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삶이란 깨어날 수 있는 가능 성이다. 죽음은 단지 잠시 멈춘 침묵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내게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하나의 철학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 금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시간도, 언젠가 새순을 틔우기 위한 고요한 기다림일 수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삶의 의미에 대한 거대한 질문들이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잘 살고 있는가. 이 길이 맞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그 질문들은 답을 주기보다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를 말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자신을 보존하려는 근원적인 힘. 식물도 그 힘으로 산다. 거대한 의미를 위해서도 아니고, 허무주의에 반항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단순한 진리가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다. 지금의 벗어남과 망설임, 겉으로 뻗 어낸 뿌리 하나하나가 결국 내 깊이를 만들어온 시간이었음을.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할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었다. 모 는 꽃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고, 모든 아름다움이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늘도 도시는 빠르게 돌아간다. 지하철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알림은 쉼 없이 울리고, 누군가는 더 높이, 더 빠르게 올 라가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오늘 식물 하나를 떠올리기로 했다. 말없이,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계절을 살아가는 식물. 나도 그렇게, 오늘 하루에 충실하며, 내 뿌리가 닿는 곳을 믿으며, 그냥 살아가기로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93/cover150/89352151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9938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파이썬의 도구들 - [파이썬의 도구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523</link><pubDate>Sun, 05 Jul 2026 0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5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3643&TPaperId=173745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70/14/coveroff/89314836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3643&TPaperId=173745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이썬의 도구들</a><br/>정국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는 챗GPT에게 질문을 던지면 코드 한 줄 몰라도 웬만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듣는다. 그런 시대에 왜 여전히 파이썬 같은 "구식" 프로그래밍 언어를 처음부터 배우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책이 취하고 있는 태도, 즉 AI 보조 코딩을 전제로 하되 파이썬 자체를 손에 쥐여주는 방식을 보면서, 나는 생성형 AI의 시대에도 파이썬 같은 기초 도구가 왜 여전히,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생성형 AI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실행'의 문턱을 낮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에러 메시지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검색창에 오류 문구를 붙여넣고 여러 블로그와 스택오버플로우 글을 헤매야 했다. 지금은 챗GPT에게 코드와 에러를 함께 보여주면 몇 초 만에 원인과 해결책을 알려준다. 이 서평에서도 강조하듯, AI를 "코딩 학습 도우미"처럼 활용하는 경험은 분명 학습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AI가 답을 잘 준다고 해서, 우리가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까지 대신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코드에서 어떤 라이브러리를 써야 이미지 처리를 할 수 있을까?", "REST API로 공공데이터를 받아오려면 어떤 구조로 요청을 보내야 할까?" 같은 질문 자체를 던질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개념적 지도가 머릿속에 있어야 한다. AI는 훌륭한 내비게이션이지만,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데려다주지 않는다. 파이썬 문법과 라이브러리에 대한 기초 지식은 바로 그 목적지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지도인 셈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문법 설명이 아니라 22가지 라이브러리와 REST API를 활용한 9개의 완성품 제작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지식의 총량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실행력이 훨씬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AI에게 코드를 대신 짜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어도, 그 코드가 내가 원하는 결과물로 이어지도록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각 조각들을 연결하고, 실제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특히 로그인 GUI, 문서 자동화, 영상 처리, 웹 크롤링, 웹 서버 구축처럼 서로 다른 영역의 프로젝트를 두루 경험하게 하는 구성은, 파이썬이라는 언어 자체보다 "이 문제는 어떤 도구로 풀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감각을 길러준다. 이런 감각은 챗GPT가 아무리 발전해도 AI가 대신 채워주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감각은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보고, 실패하고, 다시 고쳐보는 과정에서만 쌓이는 경험적 지식이기 때문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은 REST API를 활용해 카카오, Twilio,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Gemini 같은 외부 서비스와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생성형 AI 자체도 대부분 API라는 형태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챗GPT를 웹 화면이 아니라 나만의 프로그램 안에서 활용하려면, 결국 API 요청을 보내고 응답을 받아 처리하는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즉 파이썬으로 REST API를 다루는 경험은 옛날식 프로그래밍 훈련이 아니라, 앞으로 AI를 나의 업무나 서비스에 실제로 통합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자동화는 단일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러 서비스와 여러 AI 모델이 API로 서로 얽혀 돌아가는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날씨 데이터를 가져와 AI에게 분석을 맡기고, 그 결과를 다시 메신저로 전송하는 식의 파이프라인을 상상해보면, 그 모든 연결의 밑바탕에는 결국 파이썬 같은 언어로 짜인 코드가 있다. AI가 개별 코드 조각을 써줄 수는 있어도, 이 전체 파이프라인을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각 조각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이해하는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생성형 AI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차이는 AI가 발전할수록 더 선명해질 수 있다. AI에게 막연히 "이런 프로그램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는 사람과,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결과물의 구조를 어느 정도 파악한 채로 AI와 대화하며 코드를 완성해가는 사람은 결과물의 질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파이썬 같은 기초 도구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옛날 방식으로 프로그래밍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AI가 준 답을 검증하고, 여러 AI의 결과물을 하나의 완성된 시스템으로 엮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싶은 직장인이든, 개발자를 꿈꾸는 입문자든, 이 기초 체력이 없다면 AI라는 강력한 도구도 결국 반쪽짜리로만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70/14/cover150/89314836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70142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와 내 돈, 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률 지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513</link><pubDate>Sun, 05 Jul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5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0665&TPaperId=173745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5/83/coveroff/k5721306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0665&TPaperId=173745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와 내 돈, 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률 지식</a><br/>임호균 지음 / 모티브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 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표현이었다. 순하고 착하게 살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 말을 일종의 칭찬이자 삶의 목표처럼 여기며 자랐다. 경찰서 문턱을 넘을 일도, 법원에 갈 일도 없이 조용히 사는 것이 가장 평온한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접한 한 책을 읽으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책은 현직 변호사가 자신이 다룬 수많은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생활 법률서였다. 전세 계약, 지인 간의 금전 거래,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연애와 이별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까지, 책이 다루는 범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일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 해에 접수되는 형사 고소와 고발 건수가 수십만 건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여겼던 법적 분쟁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상의 위험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br>책을 읽으며 크게 와닿았던 것은, 법을 모르는 착한 사람이 가장 먼저 손해를 본다는 지적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게 느껴지는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흔히 갈등 상황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넘어가거나, 억울해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보이는 빌미가 되고, 결국 시간이 지나 돌이킬 수 없는 손해로 이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접한다. 전세 보증금을 떼이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 임금을 받지 못한 채 퇴사 후에야 뒤늦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특히 나는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이기에, 주거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요즘 뉴스를 켜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세 사기 피해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나는 계약서를 쓸 때 그저 중개인이 알려주는 대로, 관행이라는 말에 기대어 서명해왔다. 계약서에 어떤 특약을 넣어야 내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만 안고 살아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계약 단계에서부터 확인해야 할 사항들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막연했던 두려움이 조금은 구체적인 대비책으로 바뀌는 기분이 들었다.<br>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졌던 영역들도 있었다.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동거 관계의 정리와 같은 주제들은 평소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사건이 때로는 매우 치열한 법적 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내가 그동안 타인의 갈등을 얼마나 피상적으로만 바라보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헤어진 이후에도 집요하게 연락을 시도하는 상대, 동의 없이 사적인 기록을 유포하는 상황 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 누군가의 현실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침착하게 증거를 모으고 절차를 밟아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훨씬 덜 무력한 상태로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책이 강조하는 태도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철저히 증거를 중심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억울함이나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 감정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결국 나를 지켜주는 것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남긴 기록과 준비해둔 증거라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화를 정리해두고, 중요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문제가 될 만한 상황에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객관화하는 습관. 이런 것들이 거창한 법률 지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br>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온라인 거래, 프리랜서 계약, 동업, 투자 등 예전에는 흔치 않았던 형태의 경제 활동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분쟁의 종류와 양상도 다양해졌다. 이런 시대에 법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본 소양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하고 신중하게 살아가려 해도, 나를 둘러싼 관계와 계약, 거래 속에서 예기치 못한 갈등에 휘말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런 상황 자체를 완전히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br>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제부터라도 일상에서 남기는 기록의 습관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통장 내역 하나, 대화 캡처 하나가 훗날 나를 지켜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다른 하나는, 이 지식을 실제로 써먹을 일이 내 인생에 없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소망이었다. 법을 안다는 것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당한 상황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력을 갖추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방어력은 나 자신뿐 아니라, 언젠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하루가 여전히 가장 큰 축복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그 평온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정도는 갖추고 살아가고 싶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5/83/cover150/k5721306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5830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피타고라스 생각 수업 - [피타고라스 생각 수업 - 수학자는 어떻게 발견하고 분석하고 활용할까, 개정증보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74</link><pubDate>Sun, 05 Jul 2026 09: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7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276&TPaperId=17374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10/coveroff/k492130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130276&TPaperId=1737447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타고라스 생각 수업 - 수학자는 어떻게 발견하고 분석하고 활용할까, 개정증보판</a><br/>이광연 지음 / 향기책방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수학은 어렵고 일상에서는 쓸모가 없다.” 학창 시절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방정식을 풀고 공식을 외우는 일이 대학 입시를 넘어서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 여겼고, 수학은 그저 시험을 위한 도구로만 존재했다. 그러나 이광연 교수의 &lt;피타고라스 생각 수업&gt;을 접하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이 편견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하나다. 수학은 공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그 자체라는 것. 문제를 발견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창의적으로 상상하며, 기초에서부터 확장해 나가는 사고의 흐름이야말로 수학의 본질이며, 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용되는 힘이라는 사실을 책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제시하는 수학적 사고법(문제를 발견하는 생각,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생각, 창의적으로 상상하는 생각, 발명을 이끄는 생각, 기초에서 확장하는 생각, 실생활에 응용하는 생각...)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비단 수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외판원 문제를 통해 일상의 효율을 고민하는 방식이나, 병뚜껑의 각도에서 기하학적 원리를 발견해내는 상상력은 사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문제 해결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특히 ‘문제를 발견하는 생각’이라는 것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주어지면 답을 찾는 데만 급급하지만, 정작 어떤 문제가 진짜 풀어야 할 문제인지를 알아채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수학자들이 새로운 정리를 발견해낸 역사는 결국 “무엇을 물을 것인가”를 고민한 역사였다는 사실이, 비단 수학뿐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민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연 인공지능과 수학적 사고를 연결 짓는 대목이었다. 2500여 년 전 피타고라스가 대장간의 소음 속에서 정수비의 조화를 찾아냈던 것처럼, 오늘날의 생성형 인공지능 역시 방대한 언어 데이터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확률적 연결을 찾아낸다는 비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매우 정교한 통찰로 다가왔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하는 원리, 데이터를 벡터와 행렬로 환원하여 처리하는 방식,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패턴으로 읽어내는 과정, 이 모든 것이 결국 피타고라스학파가 세상을 수(數)로 이해하려 했던 시도의 현대적 연장선이라는 설명은, 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적 사고를 훈련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특히 마르코프 연쇄를 삶의 태도에 빗댄 대목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다음 상태를 결정짓는 것은 지나온 모든 과거가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재라는 것. 이 수학적 원리가 “과거의 실수에 발목 잡히지 말고 오늘의 선택에 집중하라”는 삶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점에서, 나는 수학이 단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일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까지도 은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계산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지만, 그 계산이 품고 있는 의미를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이 책은 거듭 강조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요즈음 인공지능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딥페이크로 대표되는 가짜 정보의 시대에 수학이 지닌 또 다른 힘을 생각해 본다. 아무리 정교하게 위조된 정보라 해도 반드시 성립해야 할 논리, 즉 ‘불변량’은 존재하며, 이를 추적해내는 증명의 사고야말로 진실을 지켜내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가려내야 하는 우리 시대에, 수학적 사고는 실제로 절실하게 필요한 능력처럼 느껴졌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덮으며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는 생각 하나. “막연한 불안을 계산 가능한 희망으로 바꾼다”. 우리는 흔히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그 안의 구조와 규칙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막막해 보이던 문제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수학적 사고가 우리 삶에 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수학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게 되었다. 더 이상 수학을 “정답이 하나뿐인 딱딱한 학문”으로만 보지 않고, 세상의 복잡함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오래된 노력이자 태도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계산과 반복 작업을 대신해주는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계산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발견하고, 그 이면의 구조를 꿰뚫어 보며, 결과를 비판적으로 해석해내는 힘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깊이 공감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10/cover150/k492130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7108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왕과 책사 - [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69</link><pubDate>Sun, 05 Jul 2026 0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172&TPaperId=173744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25/coveroff/k0321301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172&TPaperId=173744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a><br/>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고국천왕과 을파소, 궁예와 왕건, 문종과 최충, 이자연과 이자겸, 권람과 세조, 한명회. 등 시대도 다르고 인물도 다르지만 역사 속에서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탁월한 인재는 어떤 리더 앞에서 비로소 빛나는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또 다른 질문이 놓여 있다. "리더는 유능한 신하를 앞에 두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넘어서야 하는가?" 책은 왕과 책사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고국천왕이 이름 없는 농부 을파소를 하루아침에 국상 자리에 앉힌 사건은,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상식을 벗어난 인사였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게 최고위직을 맡기는 것은 왕에게도 도박이었다. 그러나 고국천왕은 그 위험을 스스로 짊어졌다.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겠다"는 선언으로 반발을 잠재우고, 을파소가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보장해 주었다. 능력만 보고 발탁하는 것과, 그 인재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리더십이다. 많은 리더가 전자에서 그치지만, 진짜 성과는 후자에서 나온다는 것을 고국천왕의 사례는 보여 준다. 여기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장면은 을파소를 천거한 안류에 대한 처우다. 고국천왕은 추천의 공을 잊지 않고 그에게도 높은 벼슬을 내렸다. 이는 단순한 보은이 아니라 조직 전체를 인재 발굴의 주체로 만드는 정교한 설계였다. 한 사람의 신뢰가 아니라 시스템의 신뢰를 쌓은 것이다. 리더 혼자 인재를 찾아다니는 조직과, 구성원 모두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 조직은 성장의 속도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궁예와 왕건의 이야기는 정반대의 교훈을 준다. 궁예는 처음에는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공정한 신상필벌로 신망을 얻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권력이 커질수록 그는 실력이 아니라 '관심법'이라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기 시작했다. 왕건처럼 일인자의 자질을 갖춘 신하는 리더에게 양날의 검이다. 탁월한 참모가 되어 줄 수도 있지만,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하를 다루는 유일하게 건강한 방법은 실력으로 압도하고, 그 재능을 담을 수 있을 만큼 리더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다. 궁예는 그 길을 포기했다. 자신을 갈고닦는 대신 신비주의와 공포로 신하를 억눌렀고, 결국 신뢰의 균열은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왕건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마침내 정변을 일으킨 것은, 충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순종이 아니라 두려움과 계산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실력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궁예는 스스로 몰락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증명한 셈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문종과 최충의 관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리더십을 보여 준다. 문종은 최충을 극진히 예우하여 당대의 헌신을 이끌어 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충이 인재 부족이라는 고려의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고 은퇴 대신 교육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했을 때, 문종은 오히려 그의 지위와 명예를 더 높여 주었다. "이제 경이 백성의 스승이 되고자 하니, 지극히 높은 지위로 승진시키지 않는다면 어찌 그 위대한 덕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라는 문종의 말에는, 한 사람의 신하를 넘어 다음 세대의 인재까지 내다보는 시야가 담겨 있다. 구재학당에서 길러진 인재들이 고려 조정의 중추가 되었다는 사실은, 훌륭한 리더의 안목이 자신의 시대를 넘어 다음 시대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 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권람과 한명회는 같은 주군 세조를 도왔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권람은 스스로 조연이 되어 세조를 돋보이게 했고, 인재 영입과 재정 확보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 "경은 진실로 이 공업의 주인"이라는 세조의 인정은,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조직의 뼈대를 세우는 역할이 얼마나 귀한지를 말해 준다. 한편 한명회는 권력의 정점에서 세조의 의심을 감지하자 스스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몸을 낮췄다. 오를 때의 능력만큼이나, 내려올 때를 아는 감각이 신하의 생존과 명예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왕과 책사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관계의 상호성'이다. 인재는 홀로 빛나지 않는다. 그를 알아보고, 권한을 실어 주고, 실력으로 승복시키고, 다음 세대까지 내다보는 리더가 있을 때 비로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인재가 탄생한다. 반대로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시기하거나 방치하는 리더 곁에서는 괴물이 되거나 스러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조직과 관계 속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의 가능성을 키우는 밤하늘인가, 아니면 그 빛을 가리는 먹구름인가. 그리고 나 자신은, 나를 성장시켜 줄 관계를 알아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25/cover150/k0321301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9259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 [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52</link><pubDate>Sun, 05 Jul 2026 0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744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9243&TPaperId=17374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7/65/coveroff/k6421392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9243&TPaperId=173744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a><br/>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었을 뿐인데,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술렁였다. 마치다 소노코라는 작가의 데뷔작을 소개하는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소설의 줄거리보다 더 오래 남는 질문 하나. "어려움을 안고도 살아가기로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살기 좋은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완전하지 않다.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자살로 연인을 잃은 여자, 여자로 변해가는 중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카페 주인, 원치 않은 임신을 안고 옛 동료를 찾아온 여자. 이들은 저마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헤엄치듯 힘겹게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힘겨움이 어른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 역시 학교와 교실과 가정이라는 여러 공동체를 넘나들며 저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산다고 썼다. 순진해 보이지만 실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먼저 공격하기도 하는 존재로 아이들을 그린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살기 좋은 세상의 첫 번째 조건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많은 갈등은 실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방어벽을 치고, 그 방어벽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굳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어른들이 일터에서 조금 더 무장을 풀고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여성의 강함'에 대한 물음이었다. 책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약해 보인다.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부당한 대우에도 반박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보호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살아내는 힘이 서서히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함'이 얼마나 좁은 정의에 갇혀 있는지 깨달았다. 상황을 단번에 뒤집는 힘, 남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 이런 것들만이 강함이라고 믿어왔지만,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매일을 버텨내는 끈질김 또한 분명한 강함이다. 살기 좋은 세상은 이처럼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강함까지도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극복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묵묵히 오늘을 견디는 사람에게도 마땅한 자리를 내어주는 세상 말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세 번째로 마음에 남은 것은 관계의 힘이다. 사요와 후미와 타마키, 세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며 부딪치는 과정들... 힘든 일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애써 혼자가 되어 살아온 이들조차 결국은 서로의 삶에 관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살기 좋은 세상의 또 다른 조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도 완전히 혼자 남겨지지 않는 세상이다. 물론 모든 관계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책 속 인물들처럼 갈등하고 부딪치는 관계가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부딪침조차 곁에 누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화합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내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아니다. 그런 세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살기 좋은 세상이란, 저마다 다른 어둠과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해주는 세상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괴롭고 힘겹지만, 그럼에도 발버둥 치며 숨을 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발버둥을 곁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손을 내밀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사키코처럼, 여러 이야기 속에 조용히 등장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게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그 사람이 물속에서 완전히 가라앉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 숨을 쉬어주는 존재.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7/65/cover150/k6421392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77651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CAFE SKETCH - [CAFE SKETCH - 관찰하는 삶, 그려내는 인생, 그리고 느끼는 보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9375</link><pubDate>Thu, 02 Jul 2026 08: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93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1209&TPaperId=173693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5/12/coveroff/89314812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1209&TPaperId=173693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CAFE SKETCH - 관찰하는 삶, 그려내는 인생, 그리고 느끼는 보물</a><br/>쿠리타 유이 지음, 김재훈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무명의 유학생이었던 저자가 세계적인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때 나는 밖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서웠다. 사람들 앞에서 서투른 선을 드러내는 일도,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다가 오해를 사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예쁜 사진을 찾아 그것을 따라 그리는 쪽을 택했다. 문제는 그럴수록 그림이 점점 재미없어졌다는 것이다.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 안에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카메라가 이미 한 번 포착한 순간을, 나는 그저 한 번 더 베껴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저자가 짚어낸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그림은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잘라낸 장면이다. 그것을 참고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즐거움이나 감동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서툴러도 좋고 단 한 줄의 선이어도 좋으니, 내가 느낀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잘 그리는 것에만 매달려 있었지, 무언가를 느끼는 일에는 게을렀던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밖에서 사람을 스케치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겁나는 일이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린다면, 그것은 무례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도 낯선 사람이 나를 그렇게 관찰한다면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가 전한 조언은 그 두려움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카페 스케치란 그 사람 자체를 초상화처럼 담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눈에 들어온 인상, 그 찰나의 아이디어를 선으로 옮기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오래 응시하며 압박감을 주어서는 안 되고, 잠깐 스친 인상만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그릴 대상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스케치 자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관찰하고 소비하는 시선이 아니라, 스쳐 가는 순간에 감사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시선.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밖으로 나가 그려보고 싶다는 용기가 조금씩 생겨났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이 좋은 이유는 손기술을 가르치는 지침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을 어떻게 그리는지, 구도를 어떻게 잡는지를 알려주는 대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던 저자가, 결국 자신을 살린 것은 더 좋은 아이디어와 자신만의 시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인상 깊었다. 기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 스스로에게 즐기는 것을 허락하라는 조언은 그림뿐 아니라 다른 어떤 창작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데생이 부족하면 데생을, 채색이 부족하면 채색을 더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는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어떤 장면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목적은 사라지고,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만 남아 있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노트와 연필을 챙겨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졌다. 완성된 그림 한 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람들에게서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붙잡아 보는 것. 그 인상이 서툰 한 줄의 선으로 남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스케치를 잘하는 것보다 먼저 삶을 잘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사실은 사랑스러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그릴 자격은 잘 그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느끼려는 사람 모두에게 있다는 것. 이 깨달음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넘어, 하루하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5/12/cover150/89314812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5125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리더의 일은 맡기는 것이 전부다 - [리더의 일은 맡기는 것이 전부다 - 성과를 내는 리더가 반드시 알아야 할 ‘맡김’의 연금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9341</link><pubDate>Thu, 02 Jul 2026 08: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93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0279&TPaperId=173693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coveroff/k4521302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0279&TPaperId=173693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리더의 일은 맡기는 것이 전부다 - 성과를 내는 리더가 반드시 알아야 할 ‘맡김’의 연금술</a><br/>이바 마사야스 지음, 정혜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질문 하나와 다시 마주했다. "왜 나는 일을 맡기지 못하는가." 겉으로는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는 순간 통제력을 잃는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 두려움을 의지박약이나 성격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전준비-실천-후속 지원'이라는 구조로 차근차근 풀어냈다는 데 있다.<br>인상 깊었던 대목은 리더의 과중한 업무가 근무 환경 개선의 부작용이라는 지적이었다. 구성원의 야근을 줄이려고 리더 자신이 그 몫을 떠안는다는 이야기는, 언뜻 헌신적인 리더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직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가 조금 더 하면 팀원들이 편해진다"는 생각으로 일을 끌어안았던 적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피로는 결국 리더 자신을 소진시키고, 팀원들에게는 성장의 기회를 주지 않는 이중의 손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다. 리더의 일은 혼자 짊어지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 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사과 깎기 비유는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었다.<br>책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개념은 '맡기는 방침'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대신, 리더로서 의식적으로 성선설을 '선택'해야 한다는 관점이었다. 사람은 원래 게으르다거나 원래 성실하다거나 하는 정답은 없다. 다만 리더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구성원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실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매출이 부진한 매장의 점장에게 질책 대신 "열심히 하고 있군요"라고 말하며 묵묵히 기다렸다는 한 경영자의 일화는, 신뢰란 상대의 자격을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리더 자신의 의지의 문제라는 책의 결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부하 직원이나 후배를 볼 때 "이 사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를 먼저 따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질문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어야 할 것은 상대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줄 용기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동시에 책은 성선설이 무조건적인 관용이나 방임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짚는다. '깊이 공감하되 어설프게 봐주지 않는다'는 태도, 이른바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공감이 필요하다는 대목에서는, 좋은 리더십이란 결국 상반된 두 가지 태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움과 단호함, 신뢰와 기준, 이 둘 중 하나만 붙잡으면 리더십은 쉽게 무너진다. 조직의 구체적인 목표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신뢰를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방향이 뚜렷한 믿음이야말로 진짜 신뢰라는 것을 알려주었다.<br>또 하나 실용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실패'를 미리 정의해 두라는 조언이었다. 대부분의 실패는 돌아보고 개선하면 성장으로 이어지는 '투자형 실패'이고,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기밀 유출이나 큰 손실로 이어지는 회복 불가능한 실패뿐이라는 구분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실패라는 단어 자체를 뭉뚱그려 두려워했던 것 같다. 오탈자 하나, 놓친 질문 하나까지도 실패로 여기고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일을 직접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패에도 종류가 있고, 대부분의 현장 실패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미리 인정해 두면, 일을 맡길 때 훨씬 담대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두려움은 실체가 불분명할 때 가장 커지고,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순간 훨씬 다루기 쉬워지는 법이다. 실천 단계에서 이야기하는 자기결정감의 힘도 깊이 공감이 갔다. 리더가 완벽하게 다듬은 100점짜리 기획과, 구성원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든 70점짜리 기획 중 어느 쪽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하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답이 명확했다. 나 역시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결과의 완성도에 집착한 나머지 지나치게 개입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분명 더 매끄러웠을지 몰라도, 팀원들의 표정에는 열정보다는 무기력함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일의 완성도와 구성원의 주인의식은 때로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으며, 진짜 리더십은 그 사이에서 어느 쪽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br>마지막으로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었던 문장은, 맡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업무뿐이며 책임만큼은 리더가 끝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구분이었다. 맡긴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방치로 받아들였다는 일화는 많은 리더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정확히 짚어낸다. 일을 넘겨준 뒤 관심마저 거두어 버리면, 그것은 신뢰가 아니라 무관심이 된다. 진짜 맡김에는 반드시 관찰과 지원, 그리고 필요할 때 함께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br>책을 덮으며 나는 리더십이란 결국 '용기의 총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대를 믿을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는 대신 내가 믿기로 결심하는 용기, 완벽을 포기하고 다소 부족한 결과를 견디는 용기, 실패를 성장의 재료로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맡긴 뒤에도 끝까지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용기. 이 모든 용기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조직을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cover150/k4521302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080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정프로의 한없이 가벼운 경제 상식 - [정프로의 한없이 가벼운 경제 상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8681</link><pubDate>Wed, 01 Jul 2026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86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130074&TPaperId=173686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6/28/coveroff/k6521300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130074&TPaperId=173686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프로의 한없이 가벼운 경제 상식</a><br/>정영진 지음 / 저녁달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경제 뉴스를 켜면 늘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한국어인데, 외국어를 듣는 기분. 환율이 오른다, 기준금리를 동결한다, 국채 금리가 튄다, 코스피가 8천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도 나는 그게 오늘 저녁 내가 먹을 저녁 메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 채 채널을 돌리곤 했다. 경제는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걷는, 따라잡을 수 없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경제를 몰랐던 게 아니라, 그동안 아무도 내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영진이라는, 방송에서 익숙한 얼굴의 저자는 경제를 사전처럼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실제로 속으로 중얼거렸던 말들을 그대로 챕터 제목으로 가져온다. 냉면 한 그릇에 만 팔천 원이라니, 나라가 물가를 좀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그 투덜거림. 월급으로는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코인으로 한탕을 꿈꿔보는 그 마음. 그건 경제학 교과서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퇴근길 지하철에서 실제로 하는 생각들이다. 그 순간 나는 이 책이 나에게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미 하고 있던 생각에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돌이켜보면 요즘처럼 세상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관세는 하루아침에 25퍼센트가 붙었다 빠지고, 코스피는 반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고, AI가 내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시대에는 정보가 아무리 많아도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뉴스는 매일 새로운 숫자를 던지지만, 그 숫자들을 꿰어줄 실 한 가닥이 없으면 우리는 그저 파편적인 공포 속에 갇혀버린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 실 한 가닥이었다. 물가와 환율과 세금과 보험이 서로 동떨어진 지식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흐름 안에서 내 월급과 내 노후로 이어진다는 감각. 그 감각을 갖는 순간, 뉴스는 더 이상 공포의 신호가 아니라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저자가 국민연금을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나라가 망할 정도가 아니라면 연금은 결국 나올 것이고, 나라가 망할 정도라면 그 어떤 자산도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 처음엔 그저 낙관적인 위로처럼 들렸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건 위로가 아니라 사고의 틀을 바꾸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 하나만 따로 떼어내 불안해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한 조각만 무너지고 나머지는 멀쩡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연결된 시스템 안에서 함께 흔들리고 함께 버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불안의 상당 부분은 가라앉는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코인 투자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또 다른 결의 위로를 받았다. 저자는 무모한 도박꾼이 되지 말고 지도 없는 대륙을 신중하게 탐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내일 당장 사라져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돈으로만 시작하라는 그 조언은, 사실 투자에 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처럼 읽혔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위험과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구분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그 구분이 서지 않으면 우리는 매번 전부를 걸거나, 혹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뒤처지는 두려움 속에 머무르게 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이랬다. 경제 공부를 한다는 건 어쩌면 세상을 예측하는 능력을 기르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흔들 때 최소한 그 흔들림의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 관세가 오르고, 금리가 움직이고, 물가가 뛰는 그 모든 순간에 우리는 여전히 무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흐름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파도에 휩쓸리는 대신 파도를 읽는 사람이 될 수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경제는 결국 삶의 언어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지만, 누군가 제대로 통역해주지 않아서 낯설게만 느껴졌던 언어.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는 이 책 덕분에 적어도 하나의 통역기를 손에 쥔 기분이 들었다. 완벽하게 미래를 대비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오늘의 뉴스 앞에서 더 이상 멀미를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조금 더 알게 된 사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게 이 불안한 시대를 건너는 나의 작은 방법이 될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6/28/cover150/k6521300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6280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부자는 역사를 공부한다 - [부자는 역사를 공부한다 - 돈의 숨겨진 패턴에 눈뜨는 가장 확실한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8650</link><pubDate>Wed, 01 Jul 2026 21: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86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0878&TPaperId=173686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75/coveroff/k642130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130878&TPaperId=173686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자는 역사를 공부한다 - 돈의 숨겨진 패턴에 눈뜨는 가장 확실한 방법</a><br/>이형준 지음 / 책들의정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나는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늘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 같았다. 조선의 화폐 정책이나 산업혁명의 증기기관 같은 것들은 시험을 위해 외우는 지식일 뿐, 내 삶과 연결된 흐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흐름 밖에 있었던 적이 없다. 나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태어났고, 그 시스템이 흔들릴 때마다 내 삶도 함께 흔들렸다. 역사 속에서의 자본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책은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내가 처음으로 '돈'이라는 것이 종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 것은 1997년, 이른바 IMF 외환위기 때였다. 아직 어렸던 나는 경제 위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회사 이야기가 줄었고, 어머니는 마트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한참을 고민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환율과 금리, 국가 부도라는 낯선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은 한 나라의 경제가 세계라는 거대한 그물망에 얼마나 촘촘히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태국에서 시작된 위기가 한국까지 번져 온 것처럼, 돈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움직인다. 그 사실을 나는 몸으로 배웠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시간이 흘러 내가 직장을 구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돈의 흐름'을 체감하게 되었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과 불황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반도체 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실적이 좋은 해에는 성과급 이야기를 신나게 했고, 업황이 꺾이는 해에는 감원 소식을 걱정스럽게 전했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반도체 하나에 이렇게 울고 웃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었다.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운명을 갈랐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기술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운명을 가르고 있다. 나는 그 거대한 경쟁의 한복판, 반도체 강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개인이었던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미국 대선이 있을 때마다 내가 이유 모를 불안을 느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한국인인 내가 왜 다른 나라의 선거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지, 예전에는 스스로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달러가 총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역사를 알고 나면, 그 불안은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금리 정책 하나로 한국의 주식시장과 환율이 출렁이고, 미국의 관세 정책 하나로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막히기도 열리기도 한다. 나는 투표권이 없는 나라의 선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가 이미 하나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그 시스템의 뿌리가 대항해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지금의 불안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구조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조금 편하게 해주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최근 몇 년 사이 나는 또 다른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낀다. 팬데믹을 지나며 당연하게 여겼던 세계화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았고, 미중 갈등 속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 같은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는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나는 회사에서 인공지능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동료와 여전히 낯설어하는 동료 사이의 격차를 실제로 목격하고 있다. 증기기관이 새로운 부자와 몰락한 계층을 동시에 만들어냈던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승자와 패자를 함께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 나는 이 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결국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반복해 왔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돌이켜 보면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순간들은 언제나 더 큰 경제사의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유년기의 외환위기, 청년기의 글로벌 금융위기, 사회인이 된 이후의 반도체 산업 부침,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 혁명까지. 나는 그 흐름을 스스로 만든 적은 없지만, 그 흐름 안에서 선택을 내리며 살아왔다. 어떤 산업에 몸담을지, 어떤 자산에 돈을 넣을지, 어떤 기술을 배울지를 결정하는 매 순간이 사실은 거대한 역사적 패턴 안에서의 작은 몸짓이었던 셈이다. 책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놀라울 만큼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돈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의 주인을 찾아 이동하고, 그 이동의 방향을 먼저 읽어낸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잡아왔다. 나는 미래를 정확히 맞히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역사의 어느 지점인지 알고 싶어서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적어도 내가 왜 불안한지, 그 불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 발걸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내디딜 수 있을 것 같다. 자본주의라는 무대 위에서 나는 여전히 작은 개인일 뿐이지만, 적어도 그 무대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으려 한다. 책은 나에게 그 의미를 선사해 주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75/cover150/k642130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5758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다시, 니체 - [다시, 니체 - 남의 기준을 넘어 나로 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2773</link><pubDate>Mon, 29 Jun 2026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27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0292&TPaperId=173627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8/35/coveroff/k6621302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0292&TPaperId=173627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시, 니체 - 남의 기준을 넘어 나로 살다</a><br/>구재윤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잠깐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알림이 오지 않을까 봐서가 아니다.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지 스스로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피드에 올라온 여행 사진, 연봉 협상 성공담, 승진 소식 앞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잠시 후 거울을 보면 표정이 조금 달라져 있다. 나는 무언가와 나를 재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만들지 않은 척도로. 니체는 19세기 끝자락에 살았다. 그러나 그가 물었던 질문들, 당신은 정말 당신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남이 만든 척도 안에서 자신을 재고 있는가? 등은 오늘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그 질문이 가장 절실한 시대일지 모른다. 비교를 손안에 집어넣은 시대, 인정을 숫자로 환산하는 시대, 순응을 콘텐츠로 포장하는 시대.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보며 살고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비교는 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비교는 예전과 다르다. 과거에 비교는 아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졌다. 동네, 학교, 직장 안의 몇 십 명이 나의 비교 대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수억 명의 삶이 정제되어 펼쳐진다. 그것도 가장 빛나는 순간만 편집된 형태로. 우리는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일상 전체를 비교하면서, 어딘가 부족하다는 감각을 일상처럼 껴안고 산다. 니체의 언어를 빌리면, 우리는 지금 가장 촘촘하고 정교한 가치표 위에 올려진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떤 몸이 이상적인지, 얼마나 생산적이어야 충분한지, 어느 나이까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가 피드마다 묵시적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으면서, 마치 자기 기준인 듯 받아들인다. 비교가 무너뜨리는 것은 자존감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삶을 자기 감각으로 느끼는 힘이다. 내가 지금 이것을 좋아서 하는지, 불안해서 하는지조차 헷갈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비교의 진짜 해악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인정욕구의 문제는 더 복잡하다. 좋아요 버튼이 생긴 이후, 우리는 감정에 수치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 글이 몇 명에게 닿았는지, 이 사진이 몇 명의 마음에 들었는지가 화면에 찍힌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표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숫자는 사람 안에서 다른 무게를 갖게 되었다. 게시물이 올라간 후 첫 몇 분간 숫자를 확인하는 손가락. 그것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다. 내가 괜찮은지를 바깥에서 허가받으려는 손짓이다. 니체는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물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의 승인 속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달려감을 손바닥 안에서 24시간 할 수 있게 되었다. 승인의 창구가 무한히 열려 있고, 피드백은 즉각적이며, 반응이 없을 때의 불안은 생각보다 강하다. 더 위험한 것은 인정욕구가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위장된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하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관계에서 좋은 인상을 유지하는 것. 겉으로는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 '실망시키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힘에서 나온 삶이 아니라 불안에서 나온 삶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순응은 오늘날 더 세련된 언어를 입고 나타난다. '분위기 파악', '눈치', 'TMI 하지 말 것', '적당히 맞추는 사람'. 직장에서, 관계에서, 심지어 자기계발 담론 안에서도 순응은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미덕이 된다.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원만하다고 불리고, 흐름에 맞추는 사람이 어른스럽다고 평가받는다. 니체가 경계했던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순응이 미덕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더 옳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덜 흔들기 때문이다. 사회는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보다 예측 가능한 인간을 더 편안해한다. 그리고 그 편안함은 종종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순응이 오래될수록 외적인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해도 되는 말'로 바뀌고, 원하는 삶이 '허용된 삶의 범위 안'에서 조정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순응은 선택이 아니라 습관이고, 습관이 아니라 자기 자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가 이것을 원해서 이렇게 사는 건지, 오래 반복했기 때문에 이것이 나처럼 느껴지는 건지를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니체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위로를 찾는 일이 아니다. 그는 다독이는 철학자가 아니라 묻는 철학자다. 자기 극복이라는 말을 그는 남보다 앞서가는 것으로 쓰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살게 하지 못하는 나의 형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어제의 두려움으로 오늘을 결정하지 않는 일, 오래된 자기 설명에 편안히 기대지 않는 일, 아직 끝나지 않은 존재로 스스로를 두는 일. 그것이 니체가 말한 극복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니체는 강인함의 아이콘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미리 그려둔 삶의 형식 위에 나를 맞추고 있는가. 그 질문을 불편하더라도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이 시작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8/35/cover150/k6621302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8354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중국이라는 역설 - [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2759</link><pubDate>Mon, 29 Jun 2026 2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2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0870&TPaperId=17362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7/8/coveroff/k8821308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0870&TPaperId=17362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중국이라는 역설 - 역동과 통제, 첨단과 소외가 공존하는 복합 중국 읽기</a><br/>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강한 나라가 왜 저토록 두려워하는가." 오늘날 중국을 관찰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품는 의문이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핵을 보유한 군사 강국, 인공지능과 전기차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굴기(崛起)의 나라가 동시에 국민을 촘촘한 감시망으로 통제하고, 간첩을 신고하라는 캠페인을 SNS에 올리며, 모든 영역을 안보의 언어로 재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이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역설이다. 책을 읽으며 역설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시진핑 시대 중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제의 시대'에서 '안보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2014년 시진핑이 제시한 '총체적 국가 안보관'은 정치·군사·경제·문화·사이버·식량·생태까지 모든 것을 안보 문제로 규정한다. 2024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 보고에서 리창 총리가 '안보'를 29번, '위험'을 24번 언급한 것은 이 전환이 얼마나 깊이 체제 언어 속에 각인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집착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2010년 무렵으로 돌아가야 한다. 두 자릿수 성장이 끝나고 권력 귀족의 부패가 심화되는 가운데, 2008~2009년 티베트와 신장의 시위, 2011년 아랍의 봄과 카다피의 최후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서방이 비정부기구와 민간 기업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는 '화평연변(和平演變)' 에 대한 공포가 엘리트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시진핑은 바로 이 위기감 위에서 집권했고, 공산당의 영구 집권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선제적 통제 체제를 구축해왔다. 그 결과가 중국을 거대한 군산 복합체로 변형시키는 작업이다. 2022년 제20차 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 13명이 군수 산업 관련 인물로 채워졌다. 국가 전체 자원을 동원해 핵심 과학기술 혁신을 이루는 '신형거국체제(新型擧國體制)'가 가동되고, 군과 민간의 기술을 통합하는 '군민 융합(軍民融合)' 전략이 속도를 낸다.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구조 속에서 민간 경제의 활력은 사그라들고, 개인의 자유는 안보라는 이름 아래 유예된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공산당을 지키기 위해 만든 총동원 체제가 인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2026년 1월, 중국군 2인자였던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심각한 기율 및 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시진핑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든든한 기둥이 제거된 이 사건은, 독재 권력이 필연적으로 낳는 가장 비극적인 역설을 보여준다. 절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가장 충성스러운 자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시진핑의 숙청은 이미 10년을 훌쩍 넘긴 '끝없는 드라마'다. 로켓군 수뇌부에서 시작된 부패 조사는 리상푸 국방부장을 거쳐 장유샤로 이어졌고, 2022년 당대회에서 선출된 205명의 중앙위원 중 군인 44명 가운데 29명이 2026년 초까지 낙마했다. 중앙군사위 7명의 구성원 중 시진핑과 서열 7위를 제외한 5명이 모두 제거됐다. 이 숫자는 단순한 반부패가 아닌 정치적 숙청의 규모를 말해준다. 스탠퍼드대 우커광 선임연구원이 지적하는 '독재자의 딜레마'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최고지도자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끝없이 숙청을 단행하지만, 숙청이 거듭될수록 진실을 직언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며, 통치 위기가 점차 심화된다. 지금 중국의 관료 시스템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공포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시진핑 옆에 앉은 관리들이 "바짝 긴장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고 묘사한 장면은 이 공포 문화의 단면이다. 55년 전 린뱌오 사건이 마오쩌둥의 절대 권력을 확인했지만 동시에 체제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던 것처럼, 장유샤 사건 역시 역사에 그 이중적 의미를 새길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2025년 초 딥시크(DeepSeek)가 일으킨 충격은 중국 인공지능 기술의 약진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세계에 증명했다. 중국의 AI 연구자 수는 41만 명으로 인도와 미국의 합산을 넘어서고, 전기차·배터리·태양광·로봇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24년 기준 가동 중인 산업용 로봇 200만 대, 인간형 로봇의 세계 출하량 중 90%를 차지하는 나라. 이것이 기술 굴기 중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취의 이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첨단 기술과 국유 기업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질주하는 동안, 민간 경제는 침체에 빠져 있다. 부동산 급락, 청년 실업률(공식 통계 20%, 현장의 체감 50~60%), 소비 디플레이션, 농민공과 중소기업의 고사(枯死). 상하이의 한 교수는 "최고지도자에게 이런 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칼부림 사건을 벌인 직업학교 졸업생의 유서 속 절규 즉 "나는 죽어도 다시는 착취당하고 싶지 않다" 는 화려한 기술 통계 뒤에 가려진 중국 서민의 목소리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잉 생산의 덫이다. 중국처럼 거대한 경제가 전통 산업부터 최첨단 산업까지 모두 장악하는 '전 방위 선진국'을 목표로 삼을 때, 생산 능력은 필연적으로 내수 수요를 초과한다. 중국의 과잉 생산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지면서 한국·독일·일본 등 제조업 국가들이 압박을 받고, 보호무역과 시장 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기술 대약진은 진정한 강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또 다른 역설의 씨앗이기도 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가 중국이라는 역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역설은 강대국 경쟁의 시대에 힘과 공포, 기술과 인간, 안보와 자유 사이의 선택이 얼마나 근본적인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거울 앞에서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의 선택을 묻지 않을 수 없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7/8/cover150/k8821308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7081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주식 투자의 그릇 - [주식 투자의 그릇 - 90세 현역 트레이더 시게루 할아버지의 일대일 부자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0358</link><pubDate>Sun, 28 Jun 2026 2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603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0171&TPaperId=173603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8/63/coveroff/k2021301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0171&TPaperId=173603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주식 투자의 그릇 - 90세 현역 트레이더 시게루 할아버지의 일대일 부자 수업</a><br/>후지모토 시게루 지음, 박선영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요즘 주식 시장은 매일 아침 뉴스를 여는 것이 두렵다. 간밤 미국 시장이 급락했다는 소식, 관세 전쟁의 파고, 금리 전망을 둘러싼 엇갈린 해석들. 숫자들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그 위에 올라탄 나는 손잡이를 꽉 쥔 채 눈을 감아버리기 일쑤다. 투자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나의 마음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기사를 읽었다. 1936년생, 올해로 여든일곱 살의 현역 트레이더 후지모토 시게루 씨의 이야기였다. 열아홉 살에 주식을 시작해 68년간 하루도 시장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람. 현재 자산 약 20억 엔, 매월 6억 엔을 거래하는 사람. 그런데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의 자산 규모가 아니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의 책일 읽을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시장이 흔들릴 때 손을 놓아버리는 나와, 68년 동안 손을 놓지 않은 사람. 그 사이에는 실력의 차이가 아닌, 무언가 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시게루 씨의 하루는 새벽 두 시에 시작된다. 미국 시장을 점검하고, 네 시에 신문을 읽고, 여섯 시에는 일본 선물거래를 확인한다. 여덟 시에 컴퓨터 앞에 앉아 지정가 주문을 넣고, 오전 장이 열리는 아홉 시에는 이미 그날의 준비가 끝나 있다. 장이 마감된 후에는 노트에 그날의 거래를 모두 기록하고 반성한다. 노트는 수십 권에 이른다. 나의 하루와 비교하면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나는 시장이 오를 때는 들뜨고, 내릴 때는 불안해하며 뉴스 헤드라인만 훑는다. 적립식 펀드를 설정해두고 '장기투자'라는 말 뒤에 숨어 사실상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맡겨두고' 있었다. 시게루 씨는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나와 다르다. 그는 예순여섯 살에 컴퓨터를 처음 샀다. 보통 사람이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할 나이다. 그러나 인터넷 증권 거래가 편리하고 수수료도 싸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날 바로 전자제품 매장으로 달려갔다. 망설임이 없었다. 그 가벼운 발걸음이, 나에게는 오히려 무겁게 느껴진다. 나는 새로운 투자 방식이나 금융 상품 앞에서 얼마나 자주 '나중에'라고 중얼거렸던가. 시게루 씨에게 '나중에'라는 단어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첵에서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시게루 씨가 주식과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이었다. 어떤 젊은 트레이더가 나이가 들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고민을 털어놓자, 시게루 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매일매일 주식을 보다 보면, 주식 쪽에서 가르쳐주게 돼.' 그리고 덧붙였다. '아직 주식과 친구 수준이야. 주식과 형제가 될 정도로 사귀어야 해.' 이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주식 시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시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를 때는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내릴 때는 회피하고 싶었다. 시장을 벗 삼아 매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결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흔들리는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친하지 않은 상대는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보여도 겁이 나기 마련이다. 시게루 씨는 바블 붕괴로 자산이 10억 엔에서 2억 엔으로 줄었고,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집을 잃고 투자 의욕마저 잃었다. 그러나 결국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시장은 내일도 열린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로 전부 끝낼 필요는 없어. 내일도 모레도 시장은 열리니까.' 이 말에는 단순한 낙관이 아닌, 수십 년의 경험이 깔려 있다. 나는 그동안 시장의 단기적인 움직임에 너무 많은 감정을 실었다. 조금 오르면 팔고 싶고, 조금 내리면 버리고 싶었다. 그 불안의 근원은 결국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자, 나 자신에 대한 믿음 부족이었다. 진짜 손실은 계좌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은 시간들에 있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시게루 씨의 투자 기법은 특별히 복잡하지 않다. PER 15배 이하, PBR 1배 이하의 성장주를 고르고, RSI 지표를 참고하고, 소량으로 먼저 사보고 확인한 뒤 늘려간다. 하루에 수만 엔, 많아야 수십만 엔의 작은 이익을 차곡차곡 쌓는다. 비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그가 20억 엔의 자산을 쌓은 진짜 이유는 기법이 아니라 '계속했다'는 사실 자체인 것이다. 요즘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주 묻는다. 지금 사야 하는가, 팔아야 하는가, 기다려야 하는가. 시게루 씨라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잘 모르겠으면 먼저 조금 사보라고. 사보지 않으면 그 주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한 번에 모르더라도 서너 번 거래하다 보면 그 주식을 알게 된다. 결국 투자는 지식의 축적이고, 그 지식은 경험을 통해서만 쌓인다.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직접 부딪히고, 잃어보고, 반성하는 과정에서 온다. 시게루 씨의 노트 수십 권은 그 증거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흔들리는 시장 앞에서 나는 오늘부터 조금 달라지고 싶다. 적립식 투자를 '방치'가 아닌 '관찰'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보유한 종목의 결산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오늘의 시장 움직임을 짧게라도 기록해보려 한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시게루 씨도 처음부터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87세의 그가 오늘도 새벽 두 시에 눈을 떠 미국 시장을 확인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뉴스 헤드라인에 흔들리는 것이 조금 부끄러워진다. 시장은 언제나 롤러코스터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위에서 손을 놓지 않는 법을 배운다. 나도 그 사람들 곁에, 조금씩 가까이 서고 싶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8/63/cover150/k2021301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8632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에디슨 알고리즘 - [에디슨 알고리즘 - AI 시대에도 결코 대체되지 않는 창조적 사고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9467</link><pubDate>Sun, 28 Jun 2026 1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94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845&TPaperId=173594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5/23/coveroff/k48213984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9845&TPaperId=173594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에디슨 알고리즘 - AI 시대에도 결코 대체되지 않는 창조적 사고법</a><br/>박종규.곽병열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언젠가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내가 평생 쌓아온 것들, 수십 년간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판단력과 경험들이 과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가.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몇 마디 문장을 입력하면 순식간에 보고서와 분석이 쏟아지는 세상을 목격하면서, 그 물음은 점점 더 묵직하게 가슴에 걸렸다. 그러던 차에 &lt;에디슨 알고리즘&gt;을 펼쳤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나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동시에 다시금 날카로워지는 긴장감을 느꼈다.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에디슨의 이야기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다. 백열전구를 발명했다는 결과가 아니라, 그가 수천 번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하는 '과정'에 주목한다. 에디슨은 실패할 때마다 그것을 '전구가 켜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를 발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자산으로 삼는 이 태도, 보편적 이론보다 현장의 경험을 앞세우는 상향식 접근법이 바로 저자들이 말하는 '에디슨 알고리즘'의 핵심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강하게 마음을 붙잡은 것 있다. "정답을 도출하는 비용이 사실상 '0원'에 수렴하는 시대, 인간에게 남은 진짜 경쟁력은 무엇일까." AI는 기존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조합하여 놀랍도록 빠르고 매끄러운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답은 언제나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 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없었다. 그는 세상에 없던 답을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더디었으며, 수없이 틀렸다. 그러나 바로 그 고통과 더딤과 실수들이 쌓여서, AI는 아직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탄생시켰다. 책은 에디슨의 청각 장애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인상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소년 시절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에디슨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이 던지는 질문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저자들은 해석한다. 약점이 도리어 본질에 다가서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AI가 쏟아내는 답들의 소음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에게 묻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 질문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에서 또 하나 깊이 새긴 대목은 멘로파크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다. 에디슨은 혼자 천재로 남는 것을 거부했다. 세계 최초의 산업 연구소를 세워, 발명이 한 사람의 번뜩임이 아닌 조직의 시스템에서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도록 설계했다. 그는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이기 이전에, 결과가 나오는 과정 자체를 설계한 사람이었다. 리더십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정돈하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리더란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빠르게 답을 내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AI가 정답을 순식간에 내놓을 수 있는 시대에, 그런 리더십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에디슨이 보여준 것은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었다. 좋은 질문을 설계하고, 실패가 자산이 되는 환경을 만들고, 여러 사람의 협업이 혁신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능력. 이것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리더의 영역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저자는 말한다. "에디슨 알고리즘이란 결국 하나의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반복된 경험의 축적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막연하게 느끼던 것에 이름이 붙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세대가 살아온 방식, 맨손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몸으로 익히며 쌓아온 것들, 그것은 AI가 학습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다. AI는 결과를 가장 빠르게 도출하는 일에서 인간을 능가한다. 그러나 '왜 이 결과를 원하는가', '이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해볼 것인가'를 묻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책이 특별한 이유는, AI 시대를 다루면서도 기술을 찬양하거나 공포심을 조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100년 전 한 발명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시대를 가로질러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을 끄집어낸다. 집요함, 질문하는 능력, 실패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태도, 혼자가 아닌 함께 혁신을 만드는 시스템. 이것들은 에디슨의 시대에도,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AI와 구별되는 지점이 될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덮고 나서 나는 질문을 해본다. 내가 평생 쌓아온 것들이 지금도 쓸모 있는가. 이제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이다. 다만 그 쓸모는 내가 아는 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딪혀온 과정 속에 있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정답을 내놓더라도, 그 정답을 향해 틀리고 또 틀리면서 걸어온 길의 무게는 흉내 낼 수 없다. 에디슨 알고리즘은 결국 이것을 말하고 있다. 정답보다 과정이 먼저이고, 결과보다 그 결과에 이르는 사람이 먼저라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에게 남겨질 마지막 영역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5/23/cover150/k48213984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5234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진짜 쓰는 프리미어 영상 편집 2026 - [진짜 쓰는 프리미어 영상 편집 2026 - 유튜브 및 SNS 콘텐츠 제작을 위한 동영상 편집 실무 강의 [포토샵 + 애프터 이펙트 연동 부록 PDF 제공], 최신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9433</link><pubDate>Sun, 28 Jun 2026 0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94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9215&TPaperId=1735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44/coveroff/k8721392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9215&TPaperId=173594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진짜 쓰는 프리미어 영상 편집 2026 - 유튜브 및 SNS 콘텐츠 제작을 위한 동영상 편집 실무 강의 [포토샵 + 애프터 이펙트 연동 부록 PDF 제공], 최신개정판</a><br/>조블리(조애리) 지음 / 제이펍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처음 '프리미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영상 편집이란 방송국 편집실이나 유튜브로 돈을 버는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키보드 자판 하나를 잘못 눌러도 당황하는 내가, 화면을 자르고 붙이고 자막을 얹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가족 단체 카카오톡 방에는 매일 짧은 영상들이 오간다. 지인들은 유튜브에 채널을 열고 손자 손녀의 재롱을, 텃밭의 사계절을, 혹은 동네 산책길의 풍경을 영상으로 나눈다. 글자로 안부를 전하던 시대가 저물고 영상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SNS의 숏폼 콘텐츠가 일상을 점령한 지금, 영상 편집은 더 이상 전문가의 기술이 아니라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어가고 있다.<br>그 변화의 물결 앞에서 나는 오래 망설였다. 그러다 &lt;진짜 쓰는 프리미어 영상 편집 2026&gt;을 손에 쥐었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화소', '픽셀', '프레임'이라는 낯선 단어들을 아주 쉬운 언어로 풀어낸 설명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가 옆에 앉아 "이건 이런 거야, 어렵지 않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2026 버전부터 프로그램 이름이 '프리미어 프로'에서 '프리미어'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소소한 변화조차 나에겐 새삼스러웠다. 세상은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바뀌고 있었다. 책은 그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설치 과정부터 한 단계씩 안내한다. 새 프로젝트를 만들고, 영상 소스를 가져오고, 시퀀스를 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책의 컬러 사진과 단계별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손이 마우스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br>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AI 기능이었다. 말하다가 머뭇거린 구간을 자동으로 찾아 잘라주고, 대화를 인식해 자막을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기능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예전 같으면 타임라인을 한 프레임씩 들여다보며 밤을 새워야 했을 작업을, AI가 몇 초 만에 처리해 내는 것이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영상 확장', '자동 리프레임', '텍스트 기반 편집'… 처음엔 외계어처럼 들렸던 이 말들이 이제는 내 편집 도구의 이름이 되었다. 책의 구성도 나 같은 입문자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각 페이지 곳곳에 자리한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비추면 저자의 영상 강의로 이어진다. 글로 이해가 안 된 부분을 영상으로 확인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와 손으로 따라 하는 이 반복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학습 리듬을 만들어 주었다.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저자 조블리의 친절하고 명쾌한 설명은 혼자 공부하는 이에게도 충분한 길잡이가 되었다.<br>처음으로 완성한 영상은 아내와 함께 가꾸는 작은 텃밭의 사계절을 담은 짧은 클립이었다.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 쉬어가는 땅의 이야기. 거기에 잔잔한 배경음악을 깔고, 직접 쓴 자막을 얹었다. 타임라인 위에 클립들을 하나씩 붙이고, 전환 효과를 넣고, 볼륨을 조절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만드는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완성된 영상을 가족 단체방에 올렸을 때 날아온 하트와 엄지 이모티콘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성취의 기쁨을 되살려 주었다. 생각해 보면, AI 시대는 기술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를 더 벌려놓을 것 같지만, 동시에 그 격차를 좁혀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복잡한 편집 작업을 자동화해 주는 AI 덕분에, 기술적인 숙련도보다 이야기를 담아내는 감각과 의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닐까.<br>프리미어를 배우면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도구는 언제나 그것을 쓰려는 사람의 의지를 기다린다는 것을. AI 시대의 기술은 무섭고 낯선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는 데 도움을 주는 든든한 조력자다. 타임라인 위에 내 남은 날들의 이야기를 한 컷씩 정성스럽게 얹어가며, 나는 오늘도 편집실 앞에 앉는다. 이제 나도, 내 삶을 영화처럼 편집하는 크리에이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44/cover150/k8721392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69446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꿈꾸는 불사조 3 - [꿈꾸는 불사조 3]</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815</link><pubDate>Sat, 27 Jun 2026 09: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8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0077&TPaperId=173578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35/coveroff/k3721300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0077&TPaperId=173578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꿈꾸는 불사조 3</a><br/>전세훈 그림, 최신규 원작 / 해냄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서포터스로 활동하면서 받아본 코믹북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단숨에 읽었다. 책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낯설지 않은 이름, '손오공'. 어릴 적 텔레비전 앞에 쪼그려 앉아 손오공 캐릭터를 따라 그리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이 단순한 만화 캐릭터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생을 건 꿈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lt;꿈꾸는 불사조&gt;를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저자 최신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신념으로 반세기를 걸어온 사람이다. 결핍의 어린 시절을 딛고, 실패를 겪으면서도, 그는 그 초심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그것이 손오공이라는 IP를 살아남게 한 힘이었고, 오늘날 K-콘텐츠 산업의 뿌리 중 하나가 된 원동력이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정도면 포기할 만했다'는 것이었다. 많은 도전에 실패도 하면서 또 세계적 기업과 경쟁하며, 특허 소송이라는 법적 위기까지 맞닥뜨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무릎을 꿇었을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최신규는 달랐다. 그는 실패를 '수업료'라 불렀다. 값비싼 수업료였지만, 그 수업을 통해 그는 산업의 본질을, 창작의 무게를,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배웠다. 특히 해리포터와의 경쟁 속에서 탄생한 팽이 게임 콘텐츠, 그리고 &lt;TV 동화 행복한 세상&gt;에 대한 후원 이야기는 사업적 성공담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즐거운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치른 싸움의 기록이었다. 수익보다 가치를, 속도보다 방향을 선택한 삶의 태도가 느껴졌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손오공은 한 사람의 집념이 만들어낸 살아있는 증거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수입 콘텐츠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던 시절, 역으로 우리만의 IP를 만들어 세계에 내놓겠다는 꿈을 꾸었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무모함이,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콘텐츠 산업의 씨앗 중 하나였다. 불사조는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 손오공 역시 그랬다. 위기가 올 때마다 쓰러지고, 또 일어섰다. 그 반복 속에서 캐릭터는 더 단단해졌고, 브랜드는 더 깊어졌다. 오늘날 손오공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재능 덕분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끈기 덕분이었다. 이 책이 '재능보다 끈기'를 이야기한다고 말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다른 성공 신화와 다른 점은, 결과보다 과정을 이야기한다는 데 있다. 3권에 걸쳐 펼쳐지는 이야기는 찬란한 결말이 아니라, 흔들리고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살아있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 끝에는 세대교체가 있다. 자신의 꿈을 다음 세대에게 이어주려는 저자의 마음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따뜻한 줄기였다. K-콘텐츠가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지금, 우리는 종종 그 화려한 현재만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 현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최신규들이, 수없는 실패를 감내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결과다. 이 책은 그 보이지 않는 역사를 기억하게 해준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을 덮으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었다. "한 번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 수많은 실패와 국제 특허 소송을 넘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그 무게가 달랐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증언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의, 다시 일어선 사람의 진심 어린 증언이다. 빠른 성공과 자극적인 서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결국 자신의 길을 만든다고. 손오공의 성공 신화는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7/35/cover150/k3721300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7357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2500년을 건너온 인생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79</link><pubDate>Sat, 27 Jun 2026 08: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9318&TPaperId=173577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70/8/coveroff/k3921393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139318&TPaperId=173577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의 불안을 잠재우는 노자의 말 - 2500년을 건너온 인생 수업</a><br/>노무라 소이치다로 지음, 류휘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오늘도 남의 삶을 훔쳐봤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은 멈출 줄 몰랐고, 피드 속 누군가의 여행 사진, 누군가의 승진 소식, 누군가의 반짝이는 일상이 내 화면을 채웠다. 보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나는 기어이 보고야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조용 한 패배감 하나를 가슴 어딘가에 슬쩍 집어넣는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분명 어제와 똑같은 나인데, 타인의 삶을 한 번 들 여다봤을 뿐인데, 갑자기 내 삶이 초라해진다. 당근 하나로 이 기묘한 심리를 꿰뚫어 본 노자의 통찰이 새삼 날카롭게 다 가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당근은 길다"고 하면 그냥 넘어간다. 그런데 "당근은 감자보다 길다"고 하는 순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비교가 있어야 비로소 개념이 선명해진다. 길고 짧음도, 좋고 나쁨도, 성공과 실패도 모두 비교라는 렌즈를 끼는 순간 생겨나는 환상이다. 렌즈를 벗으면? 당근은 그냥 당근이다. 나는 그냥 나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 렌즈를 자발적으로 끼운다. SNS를 열 때마다, 동창 모임에서 근황을 나눌 때마다, 부모님의 전화 한 통에 "그 집 아이는 벌써 결혼 했다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비교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디폴트값이 되어버렸다. 비교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비교를 안 하려고 애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열심히 사는 것을 미덕으로 배웠다. 쉬는 것은 나태한 일이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암묵적인 공식 속에 서 자랐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가 찾아오면, 이상하게 불안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 유튜브를 보 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죄책감이 든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초조함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쉬면서도 쉬지 못하는 상 태, 그것이 진짜 소진이었다. &lt;화장실 사고&gt;..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화장실은 내가 직접 가야 한다. 대신 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내 몸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밖에 없다. 누군가가 쉬라고 허락해줄 때까지 기다릴 필 요 없다. 사회가 인정해주는 종류의 피로가 쌓여야만 쉬어도 된다는 법도 없다. 오랫동안 '쉬어도 된다는 허가'를 외부에서 찾아왔다. 아프거나, 너무 지치거나, 주변이 먼저 걱정해줄 때에야 비로소 쉬는 것이 정당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노자는 말한다. 그 허가는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 억지로 나 를 끼워 맞추지 않는 것이다. '나팔바지 사고'가 일깨워주듯, 지금 유행하는 기준도 10년 후면 촌스러운 것이 될지 모른다. 그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갈아넣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약하다는 것의 용기, 자기혐오는 조용히 찾아온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노자에게 물은 최고의 덕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막히면 돌아가며, 다투지 않고,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적시고 바위마저 뚫는다. 이 물의 이미지가 나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아도 된다. 돌아가도 된 다. 낮은 곳에 있어도 된다. 우리는 항상 위로 올라가려 한다. 더 높은 곳, 더 빠른 길, 더 인정받는 자리. 그런데 물은 늘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그리고 그 낮은 곳에서, 가장 넓고 깊은 바다가 된다. 요즘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스크롤을 멈추는 연습. 비교하는 습관을 알아채는 연습.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하루도, 그 자체로 충분했다고 말해주는 연습이다. 노자의 말처럼, 지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바람개비는 목표가 없다. 그저 바람이 부는 대로 돌아갈 뿐 이다. 그런데 그 돌아가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lt;도덕경&gt;... 2,500년 전의 언어가 지금도 살아있는 이유는, 그것이 시대의 유행을 쫓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자는 빠름을 설파하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지라고 하지 않았다.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말했다. 자연스럽게 있으라고. 흐름을 거스르지 말라고. 비워야 채워진다고. 이 처방이 수천 년을 건너 지금 나에게 닿는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위안이 된다. 세 상이 이렇게 복잡하게 변해도,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뿌리에 닿는 지혜 역시 시대를 초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과와 속도의 언어에 둘러싸인 나날들 속에서, 노자의 말은 한 박자 느리고, 한 온도 낮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 담는다. 읽고 나서도 며칠째 마음 한켠에서 가만히 울리는 문장들처럼 가슴 속에 살아 남는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70/8/cover150/k3921393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70081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싫어하는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 - [싫어하는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67</link><pubDate>Sat, 27 Jun 2026 0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9611&TPaperId=173577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90/coveroff/k7621396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9611&TPaperId=173577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싫어하는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a><br/>호리 모토코 지음, 이은혜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스마트폰을 열면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흘러내린다. SNS에는 혐오 발언이 소용돌이치고, 직장에서는 교묘한 괴롭힘이 만연하며, 지역 공동체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벌이 서로 충돌한다. 우리는 지금, 타인을 향한 '혐오'가 공기처럼 어디에나 가득 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시대는 대형오의 시대인 것 같다. 과거에 혐오는 개인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증폭되고, 공명하고, 불길처럼 번진다. 혐오는 사회 현상이 되었다. 저자는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하나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 싫어하는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왜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는지 되물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현대의 인간관계를 본질적 으로 리셋하는 길로 이어진다고, 생각해 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누군가를 싫어하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이유'를 오로지 상대방 쪽에서 만 찾으려 한다. 저 사람이 나쁜 거야", 저 사람이 이상한 거야", "저 사람만 없으면" 이런 사고방식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의 감정 구조를 놓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혐오 감정은 종종 '자신 안에 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의 투영' 이거나, '과거의 트라우마나 가치관의 충돌' 에서 비롯된다. 즉, 타인을 향한 혐오는 깊이 파고 들면 자기 내면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아주 작은 '선택의 여백'을 가지고 있다. 그 여백을 알아차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인간관계를 소모로 끝낼 것인가 성장의 양분으로 삼을 것인가의 분기점이 된다. 물론, 감정에 옳고 그름은 없다.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작용이다. 문제는 그 감정에 '점령' 당 하는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현대 사회 자체가 '혐오'를 증폭시키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SNS의 알고리즘은 '분노'나 '혐오'를 담은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확산시킨다. 분노의 감정이 참여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혐오를 소비하고 혐오에 소비되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 게다가 다양성이 강조되는 현대에서, 가치관의 차이는 이전보다 훨씬 가시화되고 첨예해졌다. 과거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막연하게 느끼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상대방의 사상, 정치관, 라이프스타일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마찰이 늘어나고, 혐오가 생겨나기 쉬워진다. 여기에 더해, 재택근무와 개인화의 진전으로 인간관계의 '도피처'가 줄어들었다. 예전이라면 직장의 불 편한 상사를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화면 속에 갇혀, 도망칠 곳 없는 인간관계 안에서 스트레스가 침전물처럼 켜켜이 쌓여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라" 고 말하는 것은, 지 나치게 현실을 무시한 정신론이다. 호리 씨가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고 거듭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현실을 직시하기 때문일 것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그렇다면 싫어하는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리셋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잊어버리 것’이나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상대가 변해 주길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변한다" 이중에서 가장 실효성이 높은 것은 세 번째일 것이다. "내가 변한다"는 것은 "참는 것을 쌓아가는 것" 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 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깊은 호흡, 충분한 수 면, 감정을 종이에 써 내려가는 작업 등 이것들은 언뜻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뇌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행동들 이 편도체의 과잉 반응을 억제하고 전두전야의 냉정한 판단을 되찾는 데 효과적임이 밝혀져 있다.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 을 지속하는 것에 효과가 있다는 저자의 말은, 과학적 근거를 갖춘 실천적 지혜다. 또한 싫은 것을 종이에 쓴다"는 것은, 인지치료에서 말하는 외재화(externalization) 기법에 해당한다.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 가두어 두지 않고, 한 번 밖으로 꺼내어 객체화 함으로써,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리셋이란 제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혐오가 생 겨나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의 파도에 올라타기 전에,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용서하는 것" 도,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것" 도 아닌, "상대에게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는 조용하고 강인한 자기 방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라" 고는 말하지 않는다. 감정에 거짓말을 칠 필요는 없다.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 려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중요한 것은, 그 '싫음' 이라는 감정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신으로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혐오를 증폭시키고 소비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흐름에 계속 올라탈 필요는 없다. 싫어하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의 색깔이 바뀔 필요는 없다. 마음의 리셋이란 대단한 혁명이 아니다. 깊은 호흡 한 번, 종이에 써 내려가는 한 마디, 푹 자는 하룻밤 그러한 작은 축적이, 어느덧 "저 사람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는 조용한 기적을 만들어 낼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90/cover150/k7621396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8907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처음 만나는 지경학 - [처음 만나는 지경학 - 지리와 경제로 읽는 세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60</link><pubDate>Sat, 27 Jun 2026 08: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728&TPaperId=173577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88/coveroff/k0721397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9728&TPaperId=173577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처음 만나는 지경학 - 지리와 경제로 읽는 세계사</a><br/>안민호.이용훈 지음 / 날(도서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인류는 늘 땅 위에서 먹고 싸우고 거래했다. 역사책을 펼치면 전쟁과 조약, 왕조의 흥망이 가득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경제적 이해관계와 지리적 조건이 맞물린 이야기가 반복된다. 어떤 나라가 강해졌는가, 어떤 문명이 오래 번성했는가, 어떤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이 물음들의 답은 군주의 결단이나 영웅의 용기보다 훨씬 오래된 곳, 즉 '어디에 있는가'와 '무엇을 가졌는가'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책은 이 오래된 진실을 '지경학'이라는 새로운 렌즈로 조명한다. 지경학이란 국가가 정치적·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칼과 포탄이 무기였다면, 오늘날에는 관세와 반도체 수출 규제, 공급망 통제가 무기가 된다. 하지만 책이 설득력 있게 보여 주듯, 지경학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지리와 경제를 한 쌍으로 묶어 세계를 움직여 왔다.<br>가장 오래된 지경학적 사례 중 하나는 실크로드다. 유라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이 교역로는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한나라가 꾸준히 관리하고 지원한 덕분에 안전한 교역망이 구축되었고, 그 주변에는 상인들이 쉬고 먹고 거래하는 상업도시가 자연스럽게 들어섰다. 비단과 향신료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이 오가며 막대한 이윤이 창출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윤의 상당 부분이 결국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 교역로를 장악한 세력이 곧 경제적 패권을 쥔다는 원칙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이슬람 제국의 번영도 같은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 세계는 7세기 이후 수백 년간 유라시아의 중계 무역을 장악하며 거대한 상업 제국으로 성장했다. 이것은 종교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한 결과였다. 어디에 위치하느냐가 곧 어떤 경제적 기회를 얻느냐를 결정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순수하게 지리와 교역의 논리로 출발한 역사는 종종 탐욕과 폭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성지 탈환이라는 종교적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과 이익, 돈과 명분, 땅과 후추를 둘러싼 탐욕의 전쟁으로 변해 갔다. 교황은 권력을 위해, 왕과 귀족은 땅을 위해, 상인들은 무역로 확보를 위해 전쟁을 이용했다. 명분과 신앙이 걷혀지고 나면 그 아래에는 언제나 지경학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민중이 그 계산의 도구로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에서 지리와 경제의 논리가 얼마나 냉혹하게 작동하는지를 보여 준다.<br>근대로 넘어오면 지경학의 작동 방식은 더 정교해진다.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를 자신들에게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는 기지로 철저히 재편했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는 카카오, 에티오피아는 커피, 잠비아는 구리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모노컬처 경제'로 굳어졌다. 드넓은 땅에 돈이 되는 작물 하나만 가득 재배하는 기형적인 경관. 이것은 자연스러운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외부 세력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의도적으로 설계한 구조였다. 식민지가 끝난 뒤에도 이 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았고, 특정 자원 하나의 가격이 오르내릴 때마다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취약함이 남았다. 지리와 경제가 외부의 의지에 의해 왜곡될 때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아프리카의 역사는 생생하게 보여 준다. 대서양 삼각 무역 역시 이 맥락에서 읽힌다. 경제학에서 생산의 세 요소는 노동력, 토지, 자본이다. 유럽은 이 세 가지를 각각 아프리카, 아메리카, 그리고 자신들의 시장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를 닦았다. 노예무역이라는 반인륜적 행위조차 지경학적 논리, 즉 어떤 자원을 어디서 조달해 어디서 이익을 실현할 것인가라는 차가운 계산의 산물이었다. 인간의 존엄이 지리와 경제의 논리 앞에서 어떻게 짓밟힐 수 있는지를, 이 역사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증언한다.<br>오늘날의 세계는 표면적으로 훨씬 세련되어 보이지만, 작동하는 논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촉발된 에너지 공급망의 재편, 관세 전쟁과 희토류 수출 제한 같은 사건들은 모두 경제적 수단이 안보 무기로 전환된 지경학의 현재형이다. 무역 관세, 수출 통제, 금융 제재, 핵심 광물 공급망 통제 등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칼과 포탄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기다. 특히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실크로드 시대의 교역로 장악 경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설계는 미국, 소재·부품·장비는 일본, 시스템 반도체 생산은 대만,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담당하는 이른바 '칩4 동맹'을 구성했다. '마당은 좁게, 울타리는 높게'라는 전략으로 중국을 이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봉쇄 전략은 중국이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동기와 명분을 동시에 제공했다. 과거 무역로를 봉쇄당한 세력이 우회로를 개척했던 것처럼, 기술 봉쇄는 새로운 기술 개발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한국의 위치도 이 맥락에서 새롭게 읽힌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임에도 한국은 세계 항공유 수출 1위, 석유 비축량 6위의 지위를 갖고 있다. 높은 기술력으로 지경학적 전략의 우위를 선점한 결과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과 뛰어난 정제 기술이 결합되어, 자원 자체가 없어도 자원 산업에서 핵심 거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주어진 지리적 조건과 후천적으로 축적한 기술력이 만날 때, 자원 빈국도 지경학적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br>책을 읽으며 강하게 남은 생각은,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구조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실크로드를 장악한 자가 부를 쥐었고, 무역로를 통제한 자가 권력을 쥐었으며, 오늘날 공급망과 기술 표준을 장악한 자가 패권을 쥔다. 무기의 형태가 칼에서 관세로, 함선에서 반도체로 바뀌었을 뿐, 지리와 경제가 권력을 만들어 낸다는 원리 자체는 수천 년을 관통한다. 흥미로운 주제였다.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3/88/cover150/k0721397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3882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비인 - [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53</link><pubDate>Sat, 27 Jun 2026 0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577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9247&TPaperId=173577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25/coveroff/k69213924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9247&TPaperId=173577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비인 - 성해나 기담집</a><br/>성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처음 혼모노를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책장을 덮고도 무언가가 손끝에 남아 있는 느낌, 마치 방금 만진 것이 날카롭고 차가운 금속이었는데, 손을 거두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온도를 실감하는 것처럼. 성해나라는 이름 석 자가 내 독서 목록에 조용히 각인된 것은 그날이었다. 신작 인비인. 차갑고, 예리하고, 그러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책이다. 인비인는 '인간 아닌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해설에서 밝히듯, 그것은 괴수일 수도, AI일 수도, 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남는 질문은 정작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과연 인간이었냐고.<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표제작 인비인에서 노인이 건네는 두툼한 서류봉투 속에는, 하얼빈에서 벌어진 생체실험의 기억이 담겨 있다. '가타마리' 덩어리라는 이름이 붙은 존재.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인간의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것을. 나는 처음에 이 소설이 역사적 공포를 소재로 한 고발 서사일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성해나는 그보다 훨씬 더 불편한 곳을 찌른다. 정작 소름 돋는 것은 가타마리가 아니었다. 고문 틀에 매달린 사람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고 쓰면서도, 결국 그 자리를 지켰던 청년 노인. 세월이 지나 자신의 죄를 '영화화해 달라'며 찾아오는 그의 모습. 진정한 반성이나 뉘우침 없이 오직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으로 뭉쳐진 그 존재가...어쩌면 가장 기이한 인비인이 아닐까.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짓을 하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책상 밑판에 새겨진 문장, 어린 마사히로가 읽지 못한 그 문장. &lt;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gt;에서 '역사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 테지. 흠은 파내고 구실은 잘 덮으며...<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윤회(당한)자들의 주인공은 나와 닮아 있었다. 한때 잘나갔던, 지금은 아무것도 찍지 못하는 감독. 그는 처음에 그 이상한 모임을 비웃는다. 속으로 냉소하면서,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확히 어느 순간인지 집어낼 수 없는 그 어딘가에서, 그는 모임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감정선의 이행이 처음에는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세뇌가 이렇게 허술하게 이루어지나? 그러나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니, 소설의 핵심이었다. 우리가 무언가에 세뇌당할 때, 우리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라는 로봇의 속삭임처럼, 세뇌는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온다. '괜찮아요, 샤오잉'이라는 위로처럼,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같은 존재의 형태로 온다. 마지막에 단검을 꽂으며 미소 짓는 장면에서, 나는 그제야 처음 페이지의 잔상과 마지막 장면이 하나로 겹치는 것을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저자는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 발견의 쾌감과 공포를 동시에 선물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lt;아미고&gt;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현재에 가까운 이야기다. AI 로봇 야키마 H1이 도입된 촬영 현장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스턴트맨은 서서히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간다. 처음에는 로봇이 형편없었다. 스파링에서 나가떨어지는 야키마 H1을 일으켜 세웠을 때, 로봇이 속삭인다. '저 얼굴들을 잘 기억해둬요.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 예언처럼 실현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뼈대다. 인간들은 점점 차갑고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오히려 인간을 학습한 로봇이 따뜻해진다. 주객이 전도된 이 역설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주인공이 욕조 속에서 중얼거리는 한 마디... “정말 괜찮을까“는 로봇에게 묻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 모호함이 오래 남았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책은 언제나 경계선 위에 있다. 인간과 비인간, 믿음과 세뇌, 욕망과 죄악의 경계. 혼모노에서도 그랬지만 인비인에서 그 경계는 더욱 흐릿하고, 그렇기에 더욱 무섭다. 가타마리를 바라보며 '저것이 인간인가' 묻는 동시에, 그 질문을 던지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세뇌당하는 주인공을 비웃다가, 나 역시 언젠가 '괜찮아요'라는 다정한 말에 스며들지 않았던가 돌아보게 된다. 비 오는 날 아주 옅은 조명 아래서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읽는 동안 나는 그 세계 안에 있고, 덮고 나서도 그 세계는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시원한 무엇인가가 생각날 때, 읽으면 좋은 책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1/25/cover150/k69213924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1254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 - [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79</link><pubDate>Mon, 22 Jun 2026 1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198&TPaperId=17349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35/coveroff/k6021391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139198&TPaperId=173493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a><br/>유미라 지음 / 모티브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는 오랫동안 말을 잘한다는 것이 타고난 능력이라고 믿어왔다. 어떤 사람은 무대 위에서도 물 흐르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떤 사람은 단 한 마디로 방 안의 공기를 바꾼다. 그 차이가 재능이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기에, 나는 오랫동안 '나는 말하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살았다. 그러나 유미라 작가의 &lt;결국, 사랑받는 1등의 언어&gt;를 읽으며 그 믿음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책은 말을 잘하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첫 장부터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말하기에 대해 품고 있는 오해들은 무엇인가? 말을 잘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다, 내성적인 성격은 말하기에 불리하다, 아나운서처럼 세련되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저자는 이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반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다. 7년간 뉴스 앵커로서, 그리고 수 백 명의 수강생을 만나온 스피치 컨설턴트로서 체득한 살아있는 언어로 이야기 한다.<br>책을 읽으며 내가 처음으로 멈춰 생각하게 된 문장은 "수백만 원짜리 스피치 강의보다 강력한 것은 '일상의 한마디'다"' 말하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종종 학원을 등록하고, 강의를 찾아보고, 책을 사 읽는다. 그러나 저자는 말의 근육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된 일상 속에서 단련된다고 말한다. 뉴스 앵커도 데스크 뒤에서 매일 기본기를 연습한다는 사실은, 화려한 무대 뒤에 얼마나 많은 지루하고 성실한 반복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 는 얼마나 자주 '언젠가 제대로 배워야지'라는 막연한 다짐만을 반복했던가. 결국 말하기도, 모든 능력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의 작은 실천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1일 1챌린지'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습관의 제안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말하기 MBTI' 개념도 인상 깊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다른 상황 에서 다른 약점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발음이 문제이고, 어떤 사람은 심리적 긴장이 문제다. 어떤 사람은 비즈니스 상 황에서 작아지고, 어떤 사람은 친밀한 관계에서 오히려 무뚝뚝해진다. 자신의 블랙홀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지피지기의 원리를 말하기에 적용한 것이다. 나를 알지 못하면, 어떤 기술도 나에게 맞게 작동하지 않는다.<br>책이 다른 스피치 책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비즈니스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를 모두 다루되, 그 둘이 서로 다른 온도 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면접과 발표, 회의와 협상의 언어는 명확하고 단단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뉴스 헤드라인 보고법‘이라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고, 핵심을 압축하며, 데이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식. "결론이 뭐야?"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말하기 전에 이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아나운서가 뉴스 오프닝을 준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특히 협상에 관한 대목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협상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드는 예술입니다." 우리는 흔히 협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고수는 상대가 지지 않았다고 느끼면서도 내가 원하 는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낸다. 저자가 소개하는 '쿠션 언어'는 그 도구다. 날카로운 반대 의견을 부드럽게 감싸 승낙으로 전환하는 이 기술은, 단순한 화술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에서 비롯된다. 반면, 가족과 친구, 연인과의 언어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다. 여기서 저자는 '긍정의 언어 채우기'와 '부정의 언어 줄이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관계의 언어를 설명한다. 인정, 칭찬, 축하, 감사, 관심이라는 다섯 가지 긍정의 언어와, 사과, 분노, 서운함, 이해, 조율이라는 다섯 가지 갈등의 언어. 이 분류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이 언어들을 잘못 사용하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br>저자는 말하기의 디테일을 제시한다. 발음과 발성, 복식호흡,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맞춤법과 호칭, 그리고 TPO에 맞는 이미지까지. 이 부분은 실용적인 노하우의 집합이지만, 그 바탕에는 하나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품격 있는 말하기는 단단한 문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말그릇'이라는 개념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 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왔느냐에 달려 있다. 독서와 필사, 글쓰기 연습으로 단어장을 채우는 일이 결국 말하기의 깊이를 결정한다. 비속어와 은어 대신 품격 있는 언어 습관을 기르는 것, 올바른 호칭과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모든 것이 단지 예의 바름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에 대한 선택이다. 특히 공감에 대한 저자 의 시각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속 날씨를 함께 견뎌주고, 그 하늘에 뜬 무지개를 함께 감상해 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위로를 '해결'로 오해한다. 상대가 힘들다고 하면, 조언을 건네고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섣부른 해결책보다 "그랬구나"라는 한마디가 100배 강력하다고.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저 옆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어디서든 사랑받는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언어임을 책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한다.<br>'앞으로 말을 잘해야지'라는 다짐이 생겼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사용해온 언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을 누군가의 표정, 진심을 전하지 못해 어색하게 흘러간 수많은 대화들, 용기 내어 사과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태도는 결국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드러낸다. 화려한 언변보다 상대가 편안해지는 언어, 논리적인 설득보다 진심이 닿는 한마디, 완벽한 발음보다 따 뜻한 온도가 결국 사람을 곁에 머물게 한다. "말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내게 다가오는 세상의 온도가 달라졌다." 말은 곧 나다.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조금 더 다정하고 단단한 언어로 이 세상과 마주하기로 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35/cover150/k6021391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2353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제이크쌤의 28시간에 끝내는 토익스피킹 All in One - [제이크쌤의 28시간에 끝내는 토익스피킹 All in One - 2026 최신 기출 전면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60</link><pubDate>Mon, 22 Jun 2026 1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9316&TPaperId=173493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80/15/coveroff/k2921393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9316&TPaperId=173493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제이크쌤의 28시간에 끝내는 토익스피킹 All in One - 2026 최신 기출 전면 개정판</a><br/>황인기.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영어를 배운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늘 '읽는 영어'의 사람이었다. 시험지 앞에서는 제법 영리해 보였지만,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혀가 굳어버렸다. 그 침묵이 부끄러워 토익 스피킹 시험 준비를 결심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28시간이라는 숫자였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수십 년을 영어와 씨름해 온 사람도 입이 트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커리큘럼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책은 방대한 영어의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욕심 대신, '시험장에서 필요한 것'만을 정밀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28주 완성, 2주 완성, 1주 완성이라는 세 가지 학습 플랜 중 내 사정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었고, 나는 그 선택지 앞에서 처음으로 막연하지 않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br>공부를 시작하고 가장 낯선 것은 발음이었다. 나는 p와 f, l과 r의 차이를 머리로는 알았지만 귀와 혀로는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책은 이 발음들을 따로 모아 집중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했고, QR코드를 통해 원어민의 실제 발음을 언제든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틀어놓고 듣기만 했다. 그다음 날에는 따라 했고, 그 다음에는 녹음 기능을 써서 나의 발음을 직접 들어봤다. 그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다. 내 귀로 듣는 내 목소리는 어색하고 부정확했고, 그 불일치가 오히려 나를 더 집요하게 만들었다. 잘못된 발음을 귀로 확인하고, 고치고,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음은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사진 묘사 문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있어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제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책이 알려준 방법은 단순했지만 효과적이었다. 먼저 장소를 파악하고, 묘사 순서를 정하고, 키워드를 미리 떠올린 다음, 네다섯 문장을 일정한 리듬으로 말한다. 말의 내용보다 말의 흐름을 먼저 잡는 것이다. 이 방식에 익숙해지자 사진 앞에서 느끼던 막막함이 절반쯤 사라졌다. 특히 사람의 인상착의를 묘사하는 표현이 따로 정리된 부분이 도움이 됐다. 'wearing a blue shirt'나 'holding a briefcase' 같은 문장이 자동반사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작은 자신감을 느꼈다.<br>억양과 강세도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의식하게 됐다. 끊어 읽기 표시가 본문 곳곳에 삽입되어 있었고, 어디서 멈추고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음성 파일을 들으며 따라 읽는 훈련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느렸지만, 반복할수록 입이 영어의 리듬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영어는 결국 음악처럼 리듬이 있는 언어라는 것을, 눈으로 공부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을, 귀와 입으로 공부하면서 처음 체감했다.​의견 제시 유형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부분이었다. 단순히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입장을 즉석에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긴장한 상태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다가 시간이 끝나버리는 상황이 훤히 그려졌다. 책은 여기서 '답변의 완성도'를 강조했다. 길게 말하는 것보다 짜임새 있게 말하는 것이 고득점으로 이어진다는 원칙 아래, 효율적인 답변 구성 방식과 함께 회사, 교육 등 주제별로 자주 쓰이는 필수 표현이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이 표를 외우는 대신, 반복해서 입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표현들이 문장 속으로 자연스럽게 끼어들기 시작했다.<br>강남 현장 강의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팁들이 책 곳곳에 녹아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었다. 준비 시간과 답변 시간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어떤 실수가 감점으로 이어지는지, 시험장 특유의 긴장감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에 대한 조언은 단순한 언어 공부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없는 처지에서도 그 경험을 나눠받는 느낌이었다. 실전 모의고사 회차를 쌓아가면서 나는 달라지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무엇을 말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시간 배분이 자연스러워졌고, 생각을 문장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부록에 담긴 고난도 빈출 어휘와 유형별 필수 표현 모음은 시험 직전에 한 번 더 훑어보는 '최후의 정리'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br>돌이켜보면 시험만을 위한 훈련이 아니었다. 내 목소리로 영어를 소리 내어 내뱉는 경험, 녹음한 내 발음을 귀로 확인하는 경험, 제한 시간 안에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 경험, 이 모든 것이 쌓여 오랫동안 굳어 있던 말문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영어는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말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비로소 몸으로 알았다. 좋은 교재를 만나는 것은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들 한다. 말문이 트이는 시간, 그것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고 생각해 본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80/15/cover150/k2921393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80154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영어 귀 뚫기 - [영어 귀 뚫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49</link><pubDate>Mon, 22 Jun 2026 1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9297&TPaperId=173493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23/14/coveroff/k4221392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139297&TPaperId=173493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어 귀 뚫기</a><br/>집영 지음 / 모티브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는 오랫동안 영어를 "공부"했다. 단어장을 외우고, 문법책을 정독하고, 토의 문제집을 풀었다. 시험 점수는 어느 정도 나 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점수가 오를수록 영어가 더 두려워졌다.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다. 분명히 알아야 할 단어인데,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다. 나는 그때마다 "나는 영어 귀가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단정 지었다. 그 자기 단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꽤 오랫동안 몰랐다. &lt;영 어 귀 뚫기&gt;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공부하지 말고 그냥 켜 놓기만 하라"는 말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45세가 되어서도 귀가 열릴 수 있는가?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언어를 분석의 대상 으로만 대해왔다는 사실을. 언어는 원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것 이었다.<br>책에서 인상 깊었던 비유는 아이의 언어 습득이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1년 동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단지 듣는다. 부모의 목소리, TV 소리, 일상의 소음 속에 담긴 언어를 온몸으로 흡수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엄마", "맘마", "아빠"가 튀어나온다. 그 아이에게 누군가 문법을 가르쳤는가? 단어 시험을 보게 했는가? 아니다. 그저 충분히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이 당연한 진실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학교 교육이 우리에게서 그 본능을 빼앗아 갔을지도 모른 다. 영어 수업 시간, 우리는 항상 해석을 요구받았다. 문장이 들리면 즉시 한국어로 바꾸어야 했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었다. 이 습관은 뿌리 깊게 박혔고, 우리는 영어를 들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번역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 번 역기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원어민이 말하면, 우리의 뇌는 패닉 상태에 빠진다. 저자가 말하는 귀 뚫기의 핵심은 바로 이 번역 충동을 내려놓는 것이다. 들리는 대로, 끊기지 않게, 그냥 쭉 듣는 것. 이것이 모국어를 배울 때 우리가 했던 일이고, 이것이 언어 습득의 본질이다. 우리는 단지 그 방법을 너무 오래 쓰지 않았을 뿐이다.<br>책에는 "누적 듣기 7000시간"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 숫자가 벽처럼 느껴졌다. 7000시간. 하루 3시간씩 들으면 약 6년이 넘는 시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국어를 배우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가 한국어를 듣고 말하는 데 투자한 시간은 7000시간을 훨씬 넘을 것이다. 언어란 원래 그만큼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을 단 몇 달의 집중 학습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이 애초에 무리였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 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집용이 강조하는 것은 열정과 호기심이다. 관심 있는 콘텐츠를 고르고, 목소리가 귀에 편안한 채 널을 찾고, 일상의 자투리 시간마다 켜 두는 것. 이것은 고행이 아니다. 오히려 즐거운 루틴이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설거지하면서 듣고, 출퇴근길에 넷플릭스를 귀로만 흘려들으면서, 우리는 이미 하루에 수많은 들을 수 있는 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 관점이 나를 바꾸었다. 영어 공부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시 간을 채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공부하지 마, 그냥 켜 놓기만 해" 라는 말은 게으름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습 득의 본질을 꿰뚫는 통잘이었다.<br>"넷플릭스 자막을 끄는 순간, 당신의 진짜 영어가 시작됩니다." 나에게 작은 충격이었다. 나는 항상 자막에 의존했다. 자막이 없으면 불안했다. 혹시 중요한 내용을 놓칠까봐,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바로 귀 뚫기를 가로막는 장벽이었다. 자막이 있으면 뇌는 편한 길을 선택한다. 눈으로 읽고 이해한다. 귀는 보조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상태에서 수천 시간을 보내도 귀는 열리지 않는다. 반면 자막 없이 들으면, 뇌는 불편함 속에서 소리 자체에 집중하기 시작 한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고, 아는 것들이 귀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 걸리는 순간들이 축적될수록 들리는 범위가 넓어진다. 물론 쉽지 않다. 처음에는 소음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다. 그것을 견디는 것이 핵심이다. 언어 습득에는 침묵 의 기간(silent period) 이 존재한다. 아이가 1년을 말 없이 듣기만 하듯이, 우리도 충분히 듣기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쌓이고 있는 순간이다.<br>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방법이 아니라 허락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모르는 채로 들어도 된다는 허락. 공부처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그리고 45세든, 50세,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허락. 책의 말처럼, 사람마다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르고, 매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르고, 집중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므로 나만의 루 틴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침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 미국 팟캐스트를 틀기로 했다. 산책할 때는 영국 드라마의 오디오를 흘려 듣기로 했다. 자막 없이,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냥 소리의 리듬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용이 약속했다.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임한다면, 반드시 귀 뚫기라는 보답이 온다고.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알기 때문이다. 내 귀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단지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라는 것. 두 번째 인생이 들리기 시작할 그날을, 나는 오늘부터 조용히 준비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23/14/cover150/k4221392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23147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 - [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42</link><pubDate>Mon, 22 Jun 2026 1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93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9975&TPaperId=173493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2/35/coveroff/k5721399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9975&TPaperId=173493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니체의 가르침, 단독자로 살아라</a><br/>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정영훈 엮음, 김경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처음 책의 문장들을 읽었을 때, 나는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은 낯선 것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쳐서였다. 니체는 묻는다. 당신은 타인의 보폭에 맞춰 걷고 있지 않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선뜻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많은 선택들은 내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 옳다고 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 했던 것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다. 어떤 직업을 선 망했던 것은 그 일이 나를 불태울 것 같아서가 아니라, 주변이 안정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특정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도, 관계가 깨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지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의 좌표를 찾아왔다. 니체는 이런 태도를 낙타의 단계라고 부른다. 사회가 지워주는 짐을 묵묵히 짊어지고, "그래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하며 사막을 걷는 낙타. 그 낙타의 모습이 바로 나였다. 물론 순종이 무조건 나쁜 것 은 아니다. 규칙을 배우고 공동체의 요구에 응하는 과정은 삶의 기초를 닦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낙타의 단계에 머물면서도 그것이 내 자신의 선택이라 착각할 때다. 짐을 지고 있는데 그것이 짐인지도 모르는 상태. 그것이 진정한 위기다. 니체가 충격적인 이유는 “더 열심히 하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도덕, 집단, 칭찬, 양심)이 실은 탁월한 개인을 옭아매기 위한 구조일 수 있다고 폭로한다. 이 폭로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사유의 시작이다. 안락한 수면에서 깨어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나는 얼 마나 오랫동안 타인의 칭찬을 연료로 삼아 살아왔는가.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는 멈주는 삶. 그것은 자율적인 삶이 아니라 타인이 스위치를 쥐고 있는 삶이다. 니체의 언어를 빌리자면, 나는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먹고 사는 의존자였던 것이다.<br>니체 철학에서 내가 가장 깊이 공명한 것은 고독과 파괴다. 우리 시대는 고독을 병으로 취급한다. 혼자 있는 사람은 외로 운 사람이고, 무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부적응자처럼 여겨진다. SNS는 끊임없는 연결을 강요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 게 그 소음 속에 자아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니체는 말한다. 고독은 도망이 아니라 귀환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나는 고독이 두려웠다. 혼자 있으면 잡념이 밀려오고, 그 잡념 속에는 직면하기 싫은 질문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이 선택은 정말 내 것인가?' 소음으로 그 질문들을 덮는 것이 훨씬 쉬웠다. 유튜브를 틀고, 음악을 켜고, 누군가와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스스로를 채우지 못했기에 외부의 소음으로 마음의 공백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독을 진짜로 직면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아주지 않는 어떤 새벽, 혼자 오래 앉아 있었을 때. 처음에는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이 가라앉고 나면, 아주 선명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 내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 내가 지금까지 회피해온 것들, 그것들이 고요 속에서만 목소리를 낸 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br>니체가 말한 "침묵할 때 진짜 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문장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파괴에 관한 사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파괴를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무너지는 것, 잃어버리는 것,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낡은 자아를 붙들고, 과거의 성공에 기대어, 변화를 최대한 미루며 산다. 그러나 니체는 말한다. 낡은 껍질을 깨지 않으면 새로운 자아는 태어날 수 없다고. 파괴는 창조의 전제 조건이다. 나는 한때 내가 구축해 온 어떤 이미지와 역할 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무너짐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그 낡은 껍질 속에서 안전하다는 착각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통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니체가 말하는 파괴적 성장이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실제로 겪는 그 쓰라린 과정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자는 낙타와 다르다. 낙타가 "당신은 해야 한다"는 명령에 복종한다면, 사자는 "나는 원한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가치에 맞선다. 이 전환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익숙한 순종의 패턴은 뿌리가 깊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 하는 순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인식이 곧 변화의 첫 번째 근육이다.<br>니체 철학의 정점은 위버멘쉬나 영원회귀의 개념보다, 나에게는 아모르파티(Amor Fati)였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능동적인 태도다. 내게 주어진 조건(결핍, 상처, 실패, 한계)을 원망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바로 그것을 재료 삼아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아모르파 티가 요구하는 삶의 태도다. 나는 오랫동안 내 삶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을 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더 나은 조건이었다면, 다른 시작점이었다면,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라는 가정들이 나를 현재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었다. 니체는 이 도피를 정확히 꿰뚫는다. "환경을 탓하는 자는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불편한 문장이다. 그러나 진실은 종종 불편한 형태로 도착한다. 아모르파티를 삶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통이 닥쳤을 때 그것을 사랑하라는 말은,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것은 고통을 즐기라는 게 아니다. 그것을 없애려 발버둥치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그 고통을 통과함으로써 더 단단해지라는 것이다. 고통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원동력이다.<br>나는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오늘 하루가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그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실존적인 물음이다. 만약 지금 이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할 때 그것을 기꺼이 원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신호다. 니체는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흔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 이 진짜 시작이다. 타인의 허락 없이, 집단의 승인 없이, 내 안의 명령 하나만으로 걸어가는 삶.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단독 자의 삶이며, 나는 지금 그 길의 아주 초입에 서 있다. 두렵지만, 이 두려움마저 껴안고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아모르파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02/35/cover150/k5721399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02355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고래의 포트폴리오 - [고래의 포트폴리오 - 폭발적 우상향을 이끌 주식투자 넥스트 텐배거 TOP7]</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6713</link><pubDate>Sun, 21 Jun 2026 1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67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0770&TPaperId=173467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41/coveroff/k4521307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0770&TPaperId=173467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래의 포트폴리오 - 폭발적 우상향을 이끌 주식투자 넥스트 텐배거 TOP7</a><br/>정주용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2025년 말부터 2026년에 이르는 이 시장은 두 개의 극단이 동시에 존재한다. 엔비디아는 다시 한번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고, 스페이스X의 IPO 기대감은 우주·항공 섹터 전체를 들끓게 만들고 있다. HBM 수주 잔고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 중이고, AI 데이터센터에 쏟아붓는 글로벌 자본은 연간 5조 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숫자만 보면 지금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장세다. 그런데 동시에, 공부지수도 사상 최고치다. 유튜브에는 날마다 새로운 '텐배거 후보'가 등장하고, 커뮤니티에는 "지금 이 종목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는 경고가 넘쳐난다. 테마주 열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선을 바꾼다. 어제는 자율주행, 오늘은 로보틱스, 내일은 방산이다. 이 시장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주가의 하락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생각해 본다.<br>많은 투자자들이 초성장 섹터에 뛰어들며 꿈꾸는 것은 '시장 평균을 압도하는 수익률'이다. 그것은 나쁜 욕망이 아니다. 하지만 이 욕망이 가장 자주 만들어내는 결과는 고점 추격 매수와 저점 공포 매도의 반복이다. 테마주 열차를 갈아타는 투자자는 항상 이미 출발한 기차의 뒷칸에 탑승하게 된다.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가치투자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경제적 해자는 존재하는가, 현금 흐름이 지속되는가, 가격이 가치보다 낮은가. AI 시대의 화려한 수사 속에서도 이 세 가지 질문의 답이 긍정적인 기업만이 장기 복리의 수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나는 이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자기 진단이 필요하다. 나는 엔비디아의 CUDA 생태계를 기술적으로 깊이 분석할 역량이 있는가? 스페이스X의 발사체 재사용률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한계비용 구조를 스스로 모델링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오'다. 개별 종목의 깊은 분석이 어렵다면, 섹터 전체의 성장에 올라타는 ETF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는 저자의 제안은 나에게 위안이 아니라 전략적 방향이다.<br>자율주행에는 AI 칩이 필요하고, 로봇에는 반도체가 들어가고, 방산 드론은 자율주행 기술을 쓴다. 섹터 분석서에서 흔히 보는 산업 연결 지도처럼 보이지만, 투자 실전에서의 함의는 훨씬 깊다. 이 7개 테마가 서로 경쟁하는 열차가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병렬 노선이라면, 어느 열차가 먼저 도착할지를 맞추는 게임보다 모든 열차가 지나는 '공통 철로'에 자산을 배치하는 것이 훨씬 낮은 리스크로 높은 확률의 수익을 만든다. 나의 포트폴리오 코어는 이 원칙 위에 세운다. 전체 투자 자산의 70%는 모든 테마를 관통하는 핵심 인프라 자산에 고정한다. 구체적으로는 S&amp;P 500 인덱스 ETF와 나스닥 100 ETF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AI가 뜨든, 로보틱스가 뜨든, 방산이 뜨든, 이 지수에 편입된 빅테크와 핵심 인프라 기업들은 결국 수혜를 입는다. 엔비디아 하나가 S&amp;P 500 전체 수익률에 기여하는 비율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넓게 분산된 인덱스가 가장 효율적으로 AI 슈퍼사이클의 과실을 흡수하는 그릇이 된다. 여기에 반도체 섹터 ETF(SOXX 또는 SMH)를 일부 추가한다. 반도체는 AI, 자율주행, 로보틱스, 방산 드론 등 모든 테마의 공통 원자재다. 특정 응용 산업의 승자를 고르지 않아도, 반도체 공급망 자체가 성장하면 이 ETF는 수혜를 입는다. '금광을 캐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를 파는 사람'에 투자하는 고전적 논리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반도체 ETF는 증명하고 있다. 코어의 핵심은 '갈아타지 않는 것'이다. 뉴스에 반응하지 않는다. 리밸런싱은 연 1회로 제한한다. 이 단순한 규칙이 수수료, 세금, 심리적 손실을 모두 줄이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다.<br>나머지 30%는 위성 포트폴리오다. 이 자산의 목적은 특정 테마가 폭발할 때 초과 수익을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테마가 먼저 터질지 나는 모른다는 전제를 유지한다. 우주·항공 ETF 한 종목, 에너지 인프라(전력·SMR) ETF 한 종목, 방산 ETF 한 종목에 각각 8~10% 수준으로 분산 배치한다.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는 당장 현금 흐름이 검증된 기업이 많지 않고 밸류에이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추가 성숙을 기다리며 관찰 대상으로 유지한다. 에너지 인프라를 위성에 포함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성장은 필연적으로 전력 수요 급증을 동반한다. 6,65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시장이 직면한 가장 본질적인 병목은 연산 칩이 아니라 전기와 냉각이다. 이 물리적 제약은 반도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전력 인프라와 SMR(소형 모듈 원자로)에 투자하는 ETF는 AI 섹터의 직접 수혜주이면서도 상대적으로 현금 흐름이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안정 우선 성향의 나에게 적합하다. 방산 ETF 역시 유사한 논리다. 지정학적 불안이 상수가 된 시대에 각국의 국방 예산은 GDP 대비 확장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K-방산의 장기 수주 잔고와 수출 다변화는 단기 테마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의 근거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 진전 같은 지정학적 변수가 단기 조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비중을 10%를 넘기지 않는다.<br>나의 포트폴리오 전략의 가장 큰 전제는 버핏이 말한 그 문장이다. "가격은 당신이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당신이 얻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때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이 원칙의 반대편에는 경고가 있다. 현재 가격이 미래 가치를 압도적으로 초과할 때, 그것이 버블이다. AI 반도체가 PER 40배를 넘어도 계속 오를 수 있다. 스페이스X가 상장하면 섹터 전체가 리레이팅될 수 있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그랬고, 2021년 메타버스 광풍이 그랬듯, 가격은 반드시 가치로 회귀하는 중력이 존재한다. ETF 중심의 분산 투자는 이 중력이 작용할 때 특정 종목에 집중 투자한 포트폴리오보다 훨씬 완만한 충격 흡수 구조를 만든다. 공부지수가 최고치인 시장에서 역설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가장 공부를 덜 한 척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의 범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 자체를 포트폴리오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테마 열차가 먼저 도착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열차가 지나는 철로 위에 서기로 했다. 폭풍이 지나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다. 가격과 가치 사이의 간극을 냉정하게 읽는 눈, 그리고 그 눈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자신만의 원칙이다.  태그<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41/cover150/k452130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7416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를 균열내기 - [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6667</link><pubDate>Sun, 21 Jun 2026 1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3466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346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off/k9021398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4&TPaperId=173466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a><br/>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비어 있는 자리를 메우기 위해. 신유진님의 말을 빌리자면, 완전해지고 싶어서, 공백과 균열 없이 가득 찬 상태에 닿고 싶어서. 그 욕망은 순수하다. 아니, 정확히는 순진하다. 책을 읽을수록, 채울수록 오히려 더 많은 모름이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다. 언젠가 책을 읽으면 세계가 해명될 것이라고 믿었다.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충분히 흡수하면, 언젠가는 삶이라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그러나 뒤라스를 읽고, 카뮈를 읽고, 크리스토프를 읽을수록 퍼즐은 완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빈칸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읽기란 채움이 아니라 발굴이었다. 그리고 발굴된 빈칸들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신유진님은 '균열'을 파괴로 읽지 않는다. 균열은 H라는 알파벳이 내리찍혀 갈라지는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 쩍, 쨍그랑, 우지끈. 그런데 그 소리는 공허하지 않다. 무언가가 깨진다는 것은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는 뜻이다. 껍질이 깨지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증거다. 뫼르소가 해변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도,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낯선 언어의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쓴 것도, 그들이 더 이상 온전하기를 포기한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짓누르는 것들을 정면으로 감당하려 했던 몸짓이었다. 태양을 쏘고 싶었던 뫼르소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향했지만, 그 행위 안에는 거대하고 무심한 존재에 맞서려는 처절한 의지가 있었다. 크리스토프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은 언어라는 적에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영토였다. 그렇다면 균열은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속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일이다. 껍질은 우리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뒤라스가 말한 글쓰기는 '발현'이 아니라 '해독'이다. 이미 있는 것을 읽어내는 일. 간조의 해변에 남겨진 발자국과 해초와 깨진 조개들처럼, 우리 안에도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 쌓여 있는 것들이 있다. 읽기란 그것들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에 비로소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다. 나는 이 생각이 위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했을 때, 채우지 못했을 때, 나는 그것을 결핍으로 읽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미해독의 상태였다. 이미 내 안에 있지만, 아직 읽히지 않은 것들. 간조가 되어야만 드러나는 해변처럼, 어떤 것들은 시간과 고독과 실패를 거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균열을 받아들이는 것은 실패를 용납하는 것과 다르다. 신유진이 다루는 작가들, 그리고 그들의 인물들은 계속해서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는 포기가 아니다. 끝을 유예하는 일이다. 불이 꺼질 테지만 무대에 남아 있는 것. 생을 조금 더 살아보는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끝내 프랑스어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을 감추지 않고 글 속에 드러냈다. 그의 짧고 파편적인 문장들 사이의 행간에서 오히려 더 크고 더 진실한 무언가를 만난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들어온다. 몰리나르가 그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고집한 이유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균열의 역설이다. 깨지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온전히 채워진 척할 때, 우리는 오히려 자신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페렉은 사물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존재가 선명해지는지, 아니면 그 속에 파묻혀 지워지는지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을 읽기와 쓰기에 대입해 보고 싶다. 읽은 책이 쌓일수록 나는 더 선명해지는가, 아니면 더 흐려지는가. 신유진의 대답은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 나의 세계를 안전하게 확인하는 읽기는 나를 가두지만, 존재의 밑바닥을 흔들고 절대적인 낯섦을 보게 하는 읽기는 나를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균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읽기다. H가 내리찍히는 소리.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소리가 났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다.<br style="font-family: Roboto, &quot;Noto Sans KR&quot;, &quot;PingFang SC&quot;,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Microsoft YaHei UI&quot;, &quot;Malgun Gothic&quot;,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14px;"><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4/77/cover150/k9021398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4772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