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koogi386님의 서재 (koogi386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9 Aug 2026 16:12:46 +0900</lastBuildDate><image><title>koogi386</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koogi386</description></image><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903</link><pubDate>Fri, 28 Aug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9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540&TPaperId=17476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4/70/coveroff/890130054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540&TPaperId=174769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a><br/>장샤오만 지음,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은 모녀의 일상 기록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20년 9월, 52세의 어머니 춘상은 딸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편과 함께 1,500km 떨어진 심천으로 향한다. 표면적으로는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후 3년간의 동거는 두 사 람에게 공동의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책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어머니의 노동 기록을 통해 딸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고, 동시에 대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고단함을 마주한다. 이는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노동자의 이야기이다.

심천의 거리를 다니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청결함의 뒤편에는 엄청난 노동이 숨어 있다. 작품에서 소개하는 보청원(보) 집단은 "모두가 보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존재들이다. 50대에서 60대의 노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심 천의 쇼핑몰, 정부청사, 고급 오피스 건물을 청소한다. 어머니 춘상의 하루는 가혹하다. 16시간 노동, 하루 3만 보 이상 보행, 무릎 잘환을 숨겨야 하는 고통. CCTV는 항상 감사하고, 앉아 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작품은 이렇게 기 록한다: 쇼핑몰의 경이로운 청결은 노동자 개개인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결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억압이 제도적이라는 점이다. 보청원들은 불평등한 대우 앞에서 저항할 권리를 거의 잃어버렸다. 상사의 질책도, 뚜방의 민원도 감수해야만 한다. 춘상이 "내 문제가 아니라면 절대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존심의 지표일 뿐 현실의 변화를 불러오지 못한다.

안타가운 부분은 이 억압이 스스로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보청원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들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양로금을 마련하기 위해, 심지어는 거리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한 62세 보청원은 심천의 따뜻한 겨울 이 있기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과로는 파동과 능동의 공모"라는 표현의 의미다. 시스템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자들은 그 착취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 들인다. 이렇게 제도적 억압이 개인화되면서, 불의는 더욱 견고해진다.

표면적으로 어머니와 딸은 극도로 다르다. 어머니는 50대, 글을 많이 모르고 스마트폰을 서러한다. 아에 비해 딸은 20대, 고학력 화이트칼라 직장인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고급 오피스 건물의 젊은 직원들은 화장실에 숨어든다. 계 속해서 뛰어야만 제자리에 머물 수 있는 사회. 대량의 탈모, 끝나지 않는 업무, 언제든 주류 사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사회를 열대우림 생태계에 비유하면, 나와 샤오만 같은 화이트칼라는 약간의 지식과 운으로 나무에 올 라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보면, 대지 위에는 생계를 위해 분주한 아버지 세대와 같은 세대 사람들이 가득하다. 더욱 더 높은 지점에서 보면, 우리의 고민도 결국 같다." 라고 이야기 한다. 교육과 직업이 상승의 통 로라는 환상은 깨진다. 딸은 어머니를 통해 깨닫는다.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어머니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도시 기계 속의 나사못이다.

책은 나를 거울 앞에 서게 한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어머니 춘상의 부어진 손가락을 보고, 표백제에 상한 피부를 본다. 동시에 그 거울은 우리 자신도 비춘다. 화장실에 숨어 쉬고 있는 우리,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감 속에서 뛰고 있는 우리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우리는 모두 같은 곳에서 왔다는 것이다. 학력으로, 직업으로, 도시와 시골로 분리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생계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노동자다. 어머니가 청소기를 들 때와 딸이 키보드를 칠 때, 그 고통의 질감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책은 감동적 가족 이야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해온 사람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라는 초대다. 심천의 쇼핑몰이 깨끗한 것은 누군가의 무릎이 아프기 때문이고, 우리가 편하게 일하는 사 무실은 누군가의 밤잠을 빼앗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의 생명 흔적을 기록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4/70/cover150/89013005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4702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클로드 역대급 활용법 with 코워크, 디자인, 코드, 스킬, 커넥터, 플러그인 - [클로드 역대급 활용법 with 코워크, 디자인, 코드, 스킬, 커넥터, 플러그인 - 자료 조사부터 PPT, 엑셀, 보고서, 대시보드, 디자인까지 클로드로 끝내는 AI 자동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886</link><pubDate>Fri, 28 Aug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4275&TPaperId=17476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9/21/coveroff/89314842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484275&TPaperId=17476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로드 역대급 활용법 with 코워크, 디자인, 코드, 스킬, 커넥터, 플러그인 - 자료 조사부터 PPT, 엑셀, 보고서, 대시보드, 디자인까지 클로드로 끝내는 AI 자동화</a><br/>진한별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챗GPT와 제미나이를 번갈아 쓰며 업무를 처리해 왔다. 이메일 초안을 잡거나, 회의록을 요약하거나, 급하게 자료를 찾아야 할 때 이 두 도구는 늘 손닿는 곳에 있었다. 제미나이는 구글 워크스페이스와의 연동이 편했고, 챗GPT는 대화의 자연스러움과 폭넓은 지식이 강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한 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나오는데, 그 답을 실제로 문서나 발표자료, 스프레드시트로 옮기는 과정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AI가 초안을 던져주면, 나는 그것을 복사하고 붙여넣고 서식을 다듬고 다시 검토하는 반복 노동을 계속해야 했다. '질문에 답하는 AI'는 이미 충분히 좋아졌는데, '일을 끝내주는 AI'는 아직 멀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접한 &lt;클로드 역대급 활용법&gt;. 자료 조사부터 PPT, 엑셀, 보고서, 대시보드, 디자인까지 클로드 한 권으로 끝내는 AI 업무 자동화라는 문구가 마음을 붙잡았다. '프롬프트 모음집'이 아니라, 코워크·디자인·코드·스킬·커넥터·플러그인까지 클로드의 생태계 전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정확히 짚어주는 듯했다.

목차를 훑어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5장의 '커넥터로 외부 서비스 연결하기'였다. 구글 드라이브, Gmail, 노션, 슬랙을 클로드와 연결해서 지원자 메일을 채용 기준표로 분석하거나, 여러 슬랙 채널의 대화를 모아 요약하고 다시 채널로 보내는 실습 사례들은, 내가 그동안 챗GPT나 제미나이를 쓰면서도 결국 손으로 옮기던 그 '연결 구간'을 AI가 대신 채워준다는 뜻이었다. 정보를 찾아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흩어진 서비스들 사이를 오가며 실제로 일을 완결시켜주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lt;클로드 코워크&gt;도 눈에 띄었다. 워드로 마케팅 보고서를 만들고, PPT로 온보딩 발표 자료를 완성하고, 엑셀로 쇼핑몰 주문 데이터를 정리해 수식과 차트까지 만들어내는 과정은, 내가 매주 반복하는 업무 패턴과 거의 겹쳤다. 특히 '다른 파일에서 정보 가져와 붙이기'나 '수식으로 매출과 이익 계산하기' 같은 항목은, 지금까지 내가 엑셀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바로 그 작업들이었다. 이 부분을 AI에게 맡길 수 있다면 내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되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활용 계획을 세워보았다. 반복되는 보고 업무의 자동화다. 매주 작성하는 주간 업무 보고서와 매달 정리하는 실적 자료는 형식이 거의 고정되어 있다. 이 부분에 클로드의 프로젝트 기능과 커스텀 지침을 활용해서, 회사 양식과 톤앤매너를 학습시킨 '나만의 보고서 도우미'를 만들어보고 싶다. 매번 예시를 설명하는 대신, 한 번 지침을 잡아두고 데이터만 바꿔 넣으면 되는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와 문서를 오가는 작업의 연결이다. 지금은 엑셀에서 데이터를 정리한 뒤 그 결과를 다시 PPT로 옮기고, 필요하면 워드 보고서로도 만드는 과정을 손수 반복했다. 책에서 소개한 클로드 인 엑셀, 클로드 인 파워포인트, 그리고 코워크 기능을 조합하면 이 흐름 자체를 AI에게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데이터 정리부터 차트 생성, 발표자료 초안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자동화를 실제 업무에 적용해보는 것이 목표다.

오픈AI와 제미나이를 쓰면서 느꼈던 부족함은, 사실 도구 자체의 성능 문제라기보다는 결과물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가 늘 내 몫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클로드가 특별한 이유는 그 마지막 단계, 즉 실제 문서와 파일과 서비스 안으로 들어가 일을 마무리하는 지점까지 함께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코워크, 디자인, 코드, 스킬, 커넥터, 플러그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하나 구체화해 보여주었다. 내게 남은 것은 책장을 덮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따라 해보는 일이다. 실습 파일과 프롬프트를 그대로 써보고, 익숙해지면 내 업무 데이터로 바꿔 반복하면서, 나만의 자동화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싶다. 챗GPT와 제미나이가 훌륭한 '질문의 파트너'였다면, 클로드는 '완성의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실무의 첫걸음으로 삼아보려 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9/21/cover150/89314842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19211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서리꽃 1 - [서리꽃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848</link><pubDate>Fri, 28 Aug 2026 1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768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130041&TPaperId=174768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0/coveroff/k06213004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130041&TPaperId=174768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리꽃 1</a><br/>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시절 &lt;태백산맥&gt;을 통해 조정래 작가의 문학적 거대함에 감동했던 나에게, 이번에 발표된 신작 &lt;서리꽃&gt;은 마치 겨울날 창문에 맺힌 서리처럼 차갑고도 아름다운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운명을 그려내는 그의 필력에 압도당했다면, 지금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개인의 감정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느낌는 감정이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웃음이 터져나온 장면은 이재이와 형의 대사였다. "형은 상속권을 마구 포기하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난 인생의 목적을 돈 많이 버는 것으로 세우고 있는 형을 바바라고 생각하고 있지. 이건 영원한 평행선이야." 책 전체를 정의하는 것 같았다. 물질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부모님과 형과 달리, 이재이는 자신의 상속권까지 포기하며 윤소인을 돕는다. 그것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날로그 감성의 소유자 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스마트폰 한 손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조종하려는 이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정래는 그 질문을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재이가 문학이 아닌 철학으로 전공을 바꿀 때, 부모님은 격렬히 반발했다. 경영학이 아닌 철학, 그것은 자본주의의 논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돈 없는 사람을 어찌 사람으로 보겠는가?"라는 부모님의 태도 앞에서, 이재이는 깊은 신을 소리를 물었다. "산도 높고 높은 산이었고, 바다도 깊고 깊은 바다였다. 그 산을 어찌 넘고, 그 바다를 어찌 헤쳐 나아가야 할 것인지 암담하고 가위가 눌렸다." 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생생 히 느꼈다. 개인의 사량과 신념은 얼마나 쉽게 계층과 자산 앞에 무너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이는 자신의 길을 꺽지 않는다. 대학 시철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변용해 그린 시화, 그것이 윤소인과 이재이의 인 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5년이라는 시간은 그녀를 너무나 많이 변화시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남겨진 빚더미, 가난으로 인한 내적 피폐함,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질병까지. 이재이가 느낀 "바위가 가슴에 얹히는 듯한 압박 감"은 단순히 개인적 걱정이 아니라, 계층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참하게 짓누르는가를 보여주는 메타포였다.

저자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운다는 것이다. 이재이가 윤소인의 수술 후 전라남도 장흥으로 함께 떠나는 장면, 술잔을 부딪치며 눈물을 흘리는 네 사람의 모습 등이 모든 것이 설렘과 열정을 넘어선 그윽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 시대가 변했다. SNS에서 "사랑해"를 너무나 쉽게 외치는 시대에, 조정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희생으로 보여지는 사랑의 본질을 되묻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감 동시킨 것은 작가의 건강 상태였다. 복부대동맥 수술이라는 직업병 속에서 이 촘촘한 구성의 장편소설을 완성했다니. 책을 읽는 내내 한 발 물러서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젊을 때는 사랑을 오직 설렘과 행복으로만 생각했 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랑의 의미는 다양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사랑은 때론 희생처럼 느껴지고, 때론 아프지만 아름답고 때론 침묵 속에서 가장 크게 울려 퍼지는 것, 윤소인이 수술 후 회복되면서 겪는 희망과 절망의 진동, 이재이가 형과의 밀약으로 자신의 미래를 담보하는 순간들 , 이 모든 것이 내 가슴을 한없이 뜨겁게 만들었다.
&nbsp;1권에서 본 것은 이재이와 윤소인의 고통의 여정이었다면, 2권에서는 그들이 찾아낸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조정래의 신작은 &lt;태백산맥&gt; 만큼 거대한 역사를 그리지는 않지만, 미시적 개인의 감정 속에서 사랑의 의 미를 발견하게 한다. 그의 필력에 다시 한 번 놀랐고, 그의 작가정신에 다시한번 놀란다. 책을 읽으며 나도 내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는 기회를 얻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4/80/cover150/k06213004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4800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83</link><pubDate>Sun, 23 Aug 2026 1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219&TPaperId=17466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42/66/coveroff/k1521302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219&TPaperId=174668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a><br/>한용운 지음 / 비타민북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젊었을 때는 이 질문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해야 할 일들은 늘 넘쳐났으며,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여유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끝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고, 글씨를 쓰다 보면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도 하고, 예전에는 단숨에 써 내려가던 문장도 이제는 한 글자 한 글자 신경 써서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이 듦을 몸으로 실감하던 즈음, &lt;나는 쓴다&gt;라는 필사책을 만나게 되었다.<br>책은 한용운 선생의 시를 직접 따라 쓰도록 구성된 필사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씨 교정을 위해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흐트러진 글씨체를 다시 바로잡고 싶었고, 무엇보다 손을 움직이는 일이 인지력과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lt;님의 침묵&gt;부터 &lt;알 수 없어요&gt;, &lt;나룻배와 행인&gt;, &lt;사랑하는 까닭&gt;과 같은 시들을 한 줄씩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 이 시간이 단순한 글씨 연습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용운 선생은 시인이기 이전에 나라를 빼앗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었다. 그의 시에는 사랑과 이별의 정서만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간절함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삶의 고통을 견디는 힘이 함께 담겨 있다. 젊었을 때 이 시들을 읽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로만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시들을 한 글자씩 손으로 옮겨 적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결국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마음,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 이러한 역설이 이제는 단순한 문학적 기교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진실처럼 느껴졌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잃어가는 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이별도 하나둘 늘어가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한용운 선생의 시를 필사하며 깨달은 것은, 잃음이 곧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lt;나룻배와 행인&gt;에서 나룻배가 행인을 실어 나르며 비바람을 다 맞아도 다시 행인을 기다리듯이, 삶도 그렇게 견디고 또 기다리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 기다림의 의미를, 이제는 손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하루 10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순간이 되었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시 한 구절을 옮기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눈앞의 문장에 집중하고, 한 획 한 획 정성을 들이는 일만 남는다. 이렇게 집중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예전보다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든 빨리 해내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br>한용운 선생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자유와 희망을 끝내 놓지 않았던 분이다. 그의 시를 필사하며 나 역시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지금, 잃어버린 것들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천천히, 그러나 정성스럽게 채워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오늘 써 내려간 한 줄의 시가,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그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준 고마운 책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42/66/cover150/k1521302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42662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랑과 안정 - [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68</link><pubDate>Sun, 23 Aug 2026 13: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0638&TPaperId=174668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1/48/coveroff/k7521306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130638&TPaperId=174668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a><br/>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결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한다. 이는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혼인 건수의 증가라는 통계 뒤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뉴스를 보니 한동안 외면당했던 결혼 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2025년 혼인 건수는 24만 326건으로 전년대비 8.1퍼센트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이 부활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스펙 과 자산으로 자신을 입증하려는 남성들, 외모와 나이로 평가받는 여성들, 로테이션 소개팅에 나서는 청년들의 모습. 그리고 TV와 OTT에 쏟아지는 결혼 예능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 인지, 아니면 원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것인지 묻게 한다. 결혼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책은 여러 담론을 이야기 한다.

결혼 담론에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동화의 결말이다."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는 결혼이 모든 고통의 종점이며, 거기서부터 영원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OTT 예능에서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은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연출된다. 그것이 모든 갈등의 해결, 모든 기다림의 결말인 양...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고, 때로는 냉철하다 : 결혼은 보험이 다.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다. 떨어질 수 있는 연애 감정을 법적 구속으로 들어잠그는 것, 결혼하지 않으면 언제든 상대가 떠날 수 있지만, 결혼하면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믿음. 이것이 결혼이 제공하 는 유일한 안정"이다. 사회가 결혼만이 안정을 제공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안정을 원하면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형태의 안정 즉, 공동생활, 법적이지 않은 헌신적 관계, 친구들과의 깊은 연결 등은 "진정한 안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결국 제도가 목적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혼 시장은 낡은 성 역할이 가장 적극적으로 재생산되는 장소다. 남성에게 결혼은 "가장으로서의 증명"을 의미한다. 스펙, 자산, 직업 등 모든 것이 남성성을 입증하는 수단이 된다. 혼자서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혼하지 못한 남성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능력이 없는 " 남자가 아닌 존재"로 낙인찍힌다. 산업화 시대에조차 한 남성이 온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신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있다.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 남성에 대한 요구 는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고하다. 한편 여성들에게 결혼은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나이, 외모, 그리고 "남편보다 낮지 않으면서도 압도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라는 모순적인 요구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자율성을 양도한다. 인정하거나 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여성이 서른다섯 넘으면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기준이 자신에게 작용한다. 이것이 제도적 폭력의 본질이다. 인식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 더 심 각한 것은, 결혼이 여성에게 자율성의 포기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든 것을 용해시킨다.

결혼의 최종 목표는 보통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결혼의 필수 요소로 아이를 이야기했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삶의 안정은 오직 핵가족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시 대적, 지역적, 경제적 발명인 핵가족을 동물적 본능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에서 핵가족만이 임신- 출산육아, 그리고 이것 너머 생애 전반의 경제적, 관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성하는 유일한 길로 여겨지 기 때문이다. 핵기족은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생물학적 본능으로 착각한다. 역사와 정치경제를 생물학으로 위장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안정을 원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가져야 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완성된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도적 필연성이다.
&nbsp;결혼은 나쁜 제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진정한 지지와 사랑의 관계가 된다. 마지막 독자가 아내와 함께 불안정한 삶을 견디는 것처럼, 결혼이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만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착각이다. 현재의 한국 청년들이 결혼으로 수렴하는 것은 들이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걸을 보이게 하는 것,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1/48/cover150/k7521306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1481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미 가진 사람으로 살아라 - [이미 가진 사람으로 살아라 -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드는 16강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54</link><pubDate>Sun, 23 Aug 2026 13: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943&TPaperId=174668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48/coveroff/k13213094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943&TPaperId=174668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미 가진 사람으로 살아라 - 원하는 삶을 현실로 만드는 16강 수업</a><br/>주느비에브 베런드 지음, 박수민 옮김 / 노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단순한 외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 신념과 상상력의 결과물이라는 명제이다. 책에서 반복되는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정신의 영역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는 첫 번째 레슨에서, 제자가 "집, 남편, 자녀"를 원한다고 고백할 때, 스승은 물질적 형태를 직접 추구하기 전에 그것의 영적 원형(spiritual prototype)에 먼저 접근할 것을 권고한다. 단순히 집"이 아니라 "보호, 피난, 안전감, 자유"라는 본질적 감정에 먼저 도달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세상을 대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외부의 조건과 환경에 우리 삶이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란드는 오감 의식(5-sense consciousness)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현재의 제한된 상황을 유일한 현실이라고 믿게 되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반대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신적 근원, 창조적 에너지에 연결될 때, 현재의 조건은 더 이상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단순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받는다"는 법칙의 재발견이다. 베련드는 많은 사람들이 먼저 받으면 그 다음에 주겠다"는 순서로 생각하는 오류를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니라, 우주의 창조적 법칙 자체라고 주 장한다. 마리(Marie)라는 간호사의 이야기는 이 법칙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피로와 불만으로 가득 찼던 마리가 환자의 호출을 "주인(Master)의 부르심"으로 재해석했을 때, 그녀의 삶은 완전히 변화한다. 같은 행동이라도 그것을 어떤 정신 상태에서 수행하는가에 따라 그것이 창조하는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법칙의 역설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는 마음으로 행동할 때-이웃을 위하는 마음, 신을 섬기는 마음으 로 행동할 때-역설적으로 우리는 더욱 풍요해진다. 왜냐하면 그러한 마음 상태 자체가 이미 우리를 풍의 근원과 일치시키기 때문이다. 부족함과 결핍의 의식에서 주는 것은 축소이지만, 풍요와 신성함의 의식에서 주는 것은 확장이다

책 곳곳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상상력의 창조적 힘이다. 베런드에 따르면, 상상력은 단순한 꿈꾸기나 공상이 아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나기 전의 정신적 틀(mental mald)"이다. 우리 가 어떤 것을 강렬하게, 구체적으로, 그리고 확실함의 느낌을 가지고 상상할 때, 우리는 우주의 창조적 에너지가 그 방향으로 흐르도록 "길을 낸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기 회로에 플러그를 연결하는 것과 같다. 현재의 제한된 환경이나 가농성의 부족함은 이 창조 과정을 방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적 창조의 원리는 외부 조건과 무관하게 항상 작동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베런드가 이것을 "운"이나 "마법"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명확히 규정한다는 것이다. 전기 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우리가 청소기를 켤 수 있듯이, 우주의 창조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 법착에 따라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베란드가 이 책을 정신과학"의 틀 안에서 제시하는 이유이다.
&nbsp;책이 제시하는 가르침의 중심은 의식의 전환 이다.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긍정적 사고나 자기 암시의 기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라는 본질적:진실을 환기시 키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외부의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느낀다. 시장의 변동, 사회적 압박, 타인의 기대, 과거의 상처-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러나 베런드의 가르침은 이러한 외적 조건들 너대에 여전히 우리의 창조적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낙관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이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 내면의 의식이고, 그 변화가 자연스럽게 외부 현실을 재형성한다는 통찰은, 무 력감 속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권력과 책임을 회복하게 해준다. 책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깊다: 우리가 현재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식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삶을 사 랑하고 사는 것"의 시작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59/48/cover150/k1321309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59480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불행 앞에 노래 부르리 - [불행 앞에 노래 부르리 - 상실과 슬픔 그리고 인생이 무너질 때 느끼는 감정을 마주하는 삶의 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45</link><pubDate>Sun, 23 Aug 2026 13: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625&TPaperId=174668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78/37/coveroff/k2721306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625&TPaperId=174668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행 앞에 노래 부르리 - 상실과 슬픔 그리고 인생이 무너질 때 느끼는 감정을 마주하는 삶의 기술</a><br/>크리스 카 지음, 오혜진 옮김 / FIKA(피카)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슬픔이라는 보편적 인간의 경험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슬픔을 통해 아침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렸고, 그 과정이 " 치유를 향한 분명한 걸음 " 이 되었습니다. 슬픔이 무엇이며, 우 리가 슬픔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술픔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br>인상적이었던 부분은 "over it(극복하다)"아라는 표현에 대한 거부입니다. Kris Cart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것뿐"이라고 말하며, 이는 우리의 일반적인 슬픔에 대한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우리 사회는 슬 품을 약점처럼 취급하고, 가능한 빨리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아침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걷는 경험은 슬픔이 결코 숨겨야 할 감정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누군가를 얼마나 깊게 사랑했는지 를 드러내는 증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목할 점은 Kris Carr가 언급한 "다른 사람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우리의 내재된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이 우리를 지배하는지 보여줍니다. 감정을 억누 르려는 행동은 실제로는 더 큰 고롱을 초래하며, 내재된 감정은 우리의 신체에 남아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계속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슬픔을 진정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치유의 필수 과정입니다.같은 경험을 했어도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br>&nbsp;생각해 보면, 슬픔의 경험에서 매우 자주 무시되는 부분입니다. 친구나 가족이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하면,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러 나 슬픔은 극도로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같은 부모를 잃은 형제차매도, 같은 애완동물을 잃은 가족 구성원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쓸픔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서평 착가가 "4마리의 개를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으며, 그 후 또 다른 개를 잃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는 각각의 상실이 유일한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공감의 시작입니다. 타인의 슬픔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진정한 위로입니다."할 수 있는 구체적인 도움"의 목록. "라자냐를 만들어주고, 아이들을 봐주고, 심부름을 도와주기" 그리고 무엇보다 "기념일, 생일, 졸업식 같은 이정표를 함께 기억하기"라는 행동들은 결국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 지를 전달합니다. 슬픔은 개인적이지만, 그것을 견디는 과정은 공동의 일입니다. 특히 "장례식 이후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남겨진 자들에게는 정상이 없다"는 표현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슬픔을 외로운 경험으로 남겨 두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동반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표현입니다.<br>책을 통해 나는 술픔이란 극복해야 할 약점이 아니라, 우리가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인생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깊은 공감 능력을, 생명의 소중함을, 그리고 인간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습 니다. 작가가 아침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경험한 치유는 슬픔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진정으로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의 힘을 보여줍니다. 슬픔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의 증거이며, 그것을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인간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슬픔 옆에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78/37/cover150/k2721306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78377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투자하는 뇌 - [투자하는 뇌 - 오늘의 선택을 내일의 자산으로 만드는 생각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36</link><pubDate>Sun, 23 Aug 2026 1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683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036&TPaperId=174668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1/85/coveroff/k7421300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036&TPaperId=1746683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투자하는 뇌 - 오늘의 선택을 내일의 자산으로 만드는 생각법</a><br/>가미오카 마사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엔 금융 자산 운용법을 다루는 일반적인 투자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깨달은 것은, 이 책이 말하는 '투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훨씬 광범위한 의미라는 것이었다. 시간, 경험, 인간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투자 말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정말 올바른 것인가? 핵심은 '가회손실(Opportunity Cost)이라는 개념에 있다. 책의 저자 상표온 기회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곧 부자로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아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지금까지 나는 소바뇌로 살아왔다. 돈을 쓰 는 것이 '손실'이라고 생각해서, 배우고 싶은 강의는 미뤘고, 가고 싶은 여행은 취소했으며,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기한 내에 반납했다. 그럼 내가 정말 돈을 절약했을까? 아니다. 나는 그보다 훨씬 큰 것을 잃고 있었다.

기회손실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장온 "1분 1초마다의 리턴을 경쟁하라"는 부분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그 시간으로부터 얻는 리턴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나는 최근 출퇴근 시간, 청소할 때, 운동할 때를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순간이 낭비의 시간'일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유튜브의 책 요약 채널을 들으면서 청소하고, 오디오북으로 읽고, 영어 단어를 반복하면서 운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1분 1초를 투자하는 것이 아닐까. 자뇌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후자가 5년을 낭비할 때, 전자는 그 시간을 복리로 쌓아간다. 시간이 흘러 5년 후, 둘의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져 있 을 것이다. “두려움을 졸업하면 사람의 능력은 무한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다." 나를 가장 많이 흔들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투자를 못하는 이유, 새로운 도전을 미루는 이유가 단순한 '신중함'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책을 읽고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내년부터 새로운 NISA의 성장투자 프레임으로 개별 주식에 도전하기로. 지금까지는 인덱스 펀드에만 투자했지만, 이제 한 발 더 나아갈 차례다. 이것은 물론 재정적 투자지만, 동시에 자신에 대한 투자이기도 하다. 실패할 수도 있다.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투자하지 않는 것의 기회손실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조가 있다. "돈을 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돈의 흐름을 지탱하는 모든 이에게 감사할 줄 안다. 반면 돈을 별지 못하는 사람은 돈만을 신봉한다. 나에게 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무거웠다. 나는 지금까지 돈을 무 엇으로 보고 있었나? 상품인가, 아니면 신뢰와 감사의 매개체인가? 자뇌는 단순히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면 서, 동시에 미래에 투자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진정한 부자의 뇌라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 소비뇌에서 투자뇌로 거듭날 때다." 나의 모토가 되었다. 통자뇌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그릇을 넓혀나가는 과정이다. 시간을 의식적으로 운용하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매 순간의 선택에서 기회손실을 최소화하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미래에 계속 투자해나가는 것이다. 소비는 순간의 만족을 주지만, 투자는 인생을 바꾼다. 그리고 그 투자는 반드시 돈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 다. 지금 이 순간, 한 권의 책을 읽고, 하나의 강의를 듣고, 자신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려는 그 선택 자체가 바로 투자인 것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1/85/cover150/k7421300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01850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달러 연금 수업 - [달러 연금 수업 - 우아하고 여유로운 인생을 위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2302</link><pubDate>Thu, 20 Aug 2026 1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623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0629&TPaperId=174623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60/9/coveroff/k5321306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0629&TPaperId=174623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러 연금 수업 - 우아하고 여유로운 인생을 위한</a><br/>최혜실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을 사세요. 돈 버는 건, 달러한테 맡기고."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했다. 국내주식과 미국주식을 함께 투자하고 있자만, 항상 불안감이 따라다녔가 때문이다. 환율이 내려오면서 외화RP에 관심이 생겼지만, 막상 계좌를 만들고 실행에 옮기는 건 계속 미루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전문가 의견을 찾아보고. 공부는 계속했지만, 정작 해야 할 행동은 늘 내일로 미루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책은 정확히 그런 내 모습을 꼬집으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에 육박하더니 이제 1400원이 위험한 시점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 나는 어떻게 살아날을 것인가?<br>인상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공부를 멈추고 시스템에 놀라타라"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 특히 똑똑한 사람들일수록 이 함정에 빠진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아야 할 것 같고, 환율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엔 정말 완벽한 전략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명확히 지적하듯이 투자의 세계는 잔인하게도 당신의 그 '유능함이 역으로 작용하는 유일한 장소다. 책 속 김 부장이 이것을 증명한다. 재테크를 공부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본다. 환율이 1,300원일 때는 비싸다며 못 사고, 1,400원이 되면 거품이 터질까 봐 못 산다. 결국 예측에 매볼된 똑똑이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이 바로 여기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 앱을 열어보고, 환율 차트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투자를 진자하게 준비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했다.<br>책에서 강조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은 역설적이지만, 투자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 가지 달러 시스템(5:5 코어, 3:3:2:2 알파, 4:3:2:1 오메가)은 단순히 자산 배분 비율이 아니다. 이것은 한 번 설정하면 시장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다. 박 차장, 김 부장, 권 작가, 이 상무라는 네 명의 인물을 따라가며 10년의 결과를 보는 것은 마치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경험이다. 같은 시장 환경에서도 사스템을 끝까지 지킨 사람과 손을 놓은 사람의 결과는 극명하게 달랐다.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투자에서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을 살 것인가 가 아니라 정해놓은 원칙을 얼마나 오래 지킬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br>흥미롭게도 책은 환율을 예측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절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행동하라고 한다. ISA,IRP, 비과세 달러연금,같은 절세 계좌는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투자, 수익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지만, 절세 혜택은 제도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절세는 예측이 아니라 설계다. 이 부분은 나의 투자 관점을 크게 바꼈다. 지금까지 나는 “언제 사야 하나환율이 더 내릴까” 같은 예측에만 집중했는데, 사실 국가가 마련한 세제 혜택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견고한 복리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에서 말하는 10만 달러는 화폐의 수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0만 달러라는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근로소득이 자산을 견인하지만, 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자본소득이 근로소득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산이 자가 동력을 얻는 지점이다. 단순히 큰 숫자가 아니라, 돈이 일을 시작하는 마법의 순간이다. 책은 현재 상황에 따라 10만 달러 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시율레이션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추상적인 꿈을 현실적인 목표로 바꾸어 준다.<br>책을 읽기 전의 나는 "달러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읽고 난 후의 나는 "나에게 맞는 시스템을 먼저 설계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면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깨달음을 얻었다. 책의 제목은 &lt;달러연금수업&gt; 이지만, 핵심은 달러 투자를 당장 시작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나는 정말 돈을 잃을까 봐 두렵거나, 성과를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공부 하나를 더하기 전에, 내 투자 성향을 돌아보고 나에게 맞는 시스템 하나를 만들어본 준비는 되어 있을까? 이제 행동할 시간이다. "핸들을 놓아라. 그래야 옆에 앉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스템 투자자가 얻는 진짜 수익은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비로소 당신의 것이 된 시간과 여유, 그리고 삶의 주도권이다." 책이 말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다. 돈이 일하는 구조를 만들어서, 내 인생을 내가 주도하는 것에 관한 책이다. 지금부터 공부 하나를 더 추가하는 대신, 내 상황에 맞는 투자 시스템을 하 나 만들어보려고 한다. 계좌를 만들고, 첫 거래를 시작하고, 그 시스템을 끝까지 지켜낼 계획이다. 미루던 것을 이제 실행하려고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60/9/cover150/k5321306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60099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경제학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 [경제학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 최선의 선택을 만드는 노벨 경제학자의 11가지 아이디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428</link><pubDate>Tue, 18 Aug 2026 2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42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037&TPaperId=1745842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2/46/coveroff/k44213003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037&TPaperId=1745842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경제학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 최선의 선택을 만드는 노벨 경제학자의 11가지 아이디어</a><br/>한순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경제는 유례없는 변동성을 경험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예측을 벗어나 요동치고, 부동산 시장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며, 가계부채는 임계점을 넘나든다. 뉴스를 볼 때마다 "다음 달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불안이 앞선다. 이런 상황에서 한순구 교수의 &lt;경제학자는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gt;를 읽으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이 던진 질문들이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학은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는 학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돕는 학문이라는 책의 메시지는, 변동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의 나침반처럼 다가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벤 버냉키가 연구한 대공황과 금융위기의 메커니즘이었다. 불안 심리가 실물 경제보다 먼저, 그리고 더 빠르게 돈의 흐름을 움직인다는 그의 통찰은 최근 한국의 금융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금리 인상 우려나 해외발 악재가 뜨면 국내 증시와 채권시장이 즉각적으로 출렁이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이는 실제 기업의 펀더멘털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심리적 공포가 서로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버냉키가 강조했듯,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은 이 공포의 전염을 얼마나 빠르게 차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마다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신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 금융 시스템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의 변동성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의 무리 짓기 이론은 한국의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설명하는 데 특히 유효하다. 전문 지식이 없는 투자자들이 주변 사람들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가는 현상은, 몇 해 전 '영끌'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부동산 매수 열풍이나 특정 테마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남들이 사니까 나도 사야 한다는 심리는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자산 가격의 거품과 붕괴를 반복시키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 이 이론을 접하고 나니, 최근의 변동성이 단순히 외부 충격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모방하며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하게 각자의 정보와 판단에 기반해 선택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에릭 매스킨의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왜 좋은 제도가 필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거짓 정보를 흘리면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보도록 시스템을 설계해야 진실이 드러난다는 발상은,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제도나 각종 금융 공시 제도의 중요성과 맞닿아 있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된 전세사기나 회계 부정 사건들은 결국 정보의 비대칭성과 허술한 제도 설계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변동성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사실을 이 이론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올리버 하트와 벵트 홀름스트룀의 계약 이론이 다루는 '대리인 문제' 역시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주인과 대리인의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 조직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최근 여러 기업에서 불거진 지배구조 문제나 공기업의 방만 경영 논란과 겹쳐 보인다. 대리인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이기 이전에, 그것을 방치하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관점은 신선했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조직과 국가 모두에 필요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아제모을루의 제도 이론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 나라의 번영이 자원이나 지리적 환경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떤 제도를 선택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그의 연구는, 단기적인 변동성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어떤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지금 한국이 겪는 환율 변동, 부동산 불안, 저출생과 맞물린 성장 둔화 같은 문제들도 결국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경제·사회 제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향방이 달라질 것이다.

책을 통해 만난 여러 경제학자들의 이론은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한다.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어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구조와 태도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변동성이 심한 시기일수록 남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정보를 검토하고, 눈앞의 공포에 휩쓸리기보다 제도와 시스템의 힘을 믿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은 거창한 예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작지만 단단한 합리성이었다. 지금의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도, 이제는 조금 더 침착하고 구조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02/46/cover150/k44213003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02469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이긴다 - [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이긴다 - 재능, 실력, 운명을 뛰어넘는 29가지 행동 매뉴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411</link><pubDate>Tue, 18 Aug 2026 2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4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0232&TPaperId=174584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6/47/coveroff/k47213023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0232&TPaperId=174584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국 행동하는 사람이 이긴다 - 재능, 실력, 운명을 뛰어넘는 29가지 행동 매뉴얼</a><br/>유루아자부 지음, 김진아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늘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 첫 장에 목표를 빼곡히 적었고, 좋은 책을 읽으면 밑줄을 긋고 메모를 남겼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계획은 완벽했지만 실행은 늘 다음 주로, 다음 달로 미뤄졌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준비가 안 되어서,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아서. 핑계는 언제나 그럴듯했고, 그 그럴듯함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오랫동안 속일 수 있었다. 최근 두 편의 글을 연달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결국 인생을 바꾸는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라도 움직이는 몸이라는 사실이다.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것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값이면 평범한 숙소의 좋은 방보다 고급스러운 공간의 소박한 방에 머무는 편이 낫다는 발상은 처음엔 다소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그 안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있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의 공기, 사람들의 태도, 공간의 분위기에 물든다.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기준을 따라가게 되고, 낮은 기준에 둘러싸이면 어느새 그 수준에 안주하게 된다. 흔히 말하듯 한 사람의 평균적인 삶은 가장 가까운 몇몇 사람들의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변화를 원할 때 가장 먼저 손대야 할 것은 의지력이 아니라 환경일지도 모른다. 굳게 마음먹는 것보다, 나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려주는 자리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의지는 쉽게 바닥나지만 환경은 매일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나를 밀어준다.

두 번째로 마음에 남은 것은 시간과 돈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동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사람은 결국 그 비용만큼의 성과도 내지 못한다는 말은 얼핏 냉정하게 들리지만, 실은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이동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으로 바꾸는 것, 몸의 컨디션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 이런 선택들은 사치가 아니라 전략이다. 아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정작 아껴야 할 시간과 에너지는 엉뚱한 곳에서 새어 나간다. 반대로 무엇을 위해 쓰는지가 분명한 사람은 작은 지출 하나에도 자신의 방향성을 담아낸다.

세 번째로, 어쩌면 가장 뼈아팠던 대목은 자유 시간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고 한다. 하루 중 온전히 자유로운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오히려 공허함과 무기력이 찾아온다는 연구 결과는, 흔히 꿈꾸는 조기 은퇴나 무한한 여가가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낀다. 결국 행복은 정지 상태가 아니라 진행형의 감각이다.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이고 있다는 실감,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지치지 않게 만드는 연료다.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 바로 남을 탓하거나 상황을 원망하는 대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움직인다는 태도다. 우리는 흔히 결과가 나쁘면 환경 탓을, 타이밍 탓을, 주변 사람 탓을 한다. 그러나 정작 그 환경을 선택한 것도, 그 타이밍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그 사람들 곁에 계속 머무르기로 한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이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행동은 늦어지고, 행동이 늦어질수록 우리는 다시 생각으로 도망친다. 이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실행이다.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 움직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을 오늘 안에 떼는 것. 그 한 걸음이 쌓이면 어느 순간 몸에 관성이 붙고, 그 관성은 다음 걸음을 이전보다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이라도 움직이고 있는가. 완벽한 타이밍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확신도 마찬가지다. 결국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확신이 아니라 움직임 그 자체다. 생각을 줄이고, 환경을 바꾸고,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야말로 화려한 재능이나 특별한 배경 없이도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성공의 방정식이다. 결국 이기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도, 가장 운이 좋은 사람도 아니다. 끝까지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이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6/47/cover150/k4721302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16476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슬픔의 발견 - [슬픔의 발견 - 상실, 그 이후의 삶을 헤아려본 과학의 응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393</link><pubDate>Tue, 18 Aug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83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0027&TPaperId=174583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8/92/coveroff/k5821300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0027&TPaperId=174583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픔의 발견 - 상실, 그 이후의 삶을 헤아려본 과학의 응답</a><br/>바버라 블래츨리 지음, 제효영 옮김 / 디플롯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슬픔은 언제나 낯설다. 여러 번 사람을 떠나보내도, 슬픔이 익숙해지는 법은 없다.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낯섦의 정체를 처음으로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바버라 블래츨리는 남편 크리스를 잃고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슬픔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 시간의 길이를 읽는 순간, 나는 안도했다. 그동안 나는 슬픔에는 '적당한 기간'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잃고 한 해가 지나도록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나 자신을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이 책은 슬픔이 사회가 정해놓은 시간표를 따르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br>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다가온 부분은 슬픔과 애도를 구분하는 대목이었다. 슬픔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라면, 애도는 그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행위다. 나는 그동안 이 둘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해 왔다. 슬퍼하는 것과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다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내가 왜 어떤 상실 앞에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감정은 있는데 그것을 밖으로 꺼낼 통로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장례식이나 추모의 의식이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마음속에 갇힌 슬픔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해주는 다리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 다리가 없으면 슬픔은 안에서 맴돌다 다른 모습으로, 이를테면 무기력이나 짜증, 알 수 없는 피로감으로 새어 나오는 것 같다.<br>재결합 이론과 인지-진화적 관점에 대한 설명도 인상 깊었다. 어린아이가 부모와 떨어지면 울고, 찾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어른이 된 우리도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습관처럼 전화기를 들었다가 내려놓곤 했다. 그것이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여전히 그분과 다시 이어지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다는 것을 이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슬픔이란 결국 사라진 애착의 대상을 계속해서 찾아 헤매는 마음의 작동 방식이라는 설명은, 내가 겪었던 이상한 행동들에 이름을 붙여준 듯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찾음은 서서히 놓아줌으로, 그리고 삶을 다시 짜맞추는 적응의 과정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슬픔이 단지 견뎌내야 할 고통이 아니라, 상실 이후의 삶을 새롭게 구성해가는 하나의 지혜로운 과정이라는 시선이 위로가 되었다.<br>'슬픔의 의료화' 문제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DSM-5에서 일 년 넘게 지속되는 슬픔을 '연장된 애도 장애'라는 질환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읽으며,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슬픔이 병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것을 겪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치료해야 할 결함처럼 느끼게 되지 않을까. 블래츨리는 슬픔이 문화와 관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강조한다. 그녀가 인용한 친구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죽음을 다루는 데 서툴다.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더 젊으니 곧 다른 사람을 만날 거야'와 같은 말들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실은 슬픔을 서둘러 끝내라는 무언의 압박일 때가 많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비슷한 말을 건넨 적이 있었던 것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진짜 위로는 말을 얹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br>책을 통해 내가 발견한 것은, 슬픔이 극복하거나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슬픔은 우리가 누군가를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이며, 사랑을 쌓는 데 걸린 시간만큼 그 사람 없이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담고 있다. 블래츨리가 마지막에 남긴 말처럼, 나아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히 나아진다는 것, 그리고 그 여정이 뒷걸음질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누군가의 슬픔 앞에 서게 된다면, 나는 서둘러 위로의 말을 찾기보다 그저 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 자신의 슬픔이 찾아올 때에도, 그것을 병으로 여기며 서둘러 지우려 하기보다 그 슬픔이 지나가는 그 나름의 길을 믿고 걸어가 보려 한다. 슬픔은 끝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사랑했던 마음이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발견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8/92/cover150/k5821300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8922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심장 듣기 - [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614</link><pubDate>Fri, 14 Aug 2026 15: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6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0221&TPaperId=174506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8/84/coveroff/k1021302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0221&TPaperId=174506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a><br/>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지금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설명한 그 구분 즉, 공기를 읽는 일과 호흡을 마시고 내뱉는 일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나 자신을 좋은 청자라고 믿어왔던 순간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골라온 시간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일처럼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척하는 동안, 나는 안전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므로.

진짜 듣기란 화자와 청자가 함께 추는 춤이라고 말한다. 그 비유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들어주는 일이 한 사람만 무대에 세워두고 나머지는 관객석에서 박수를 치는 일이라면, 듣는 일은 두 사람이 서로의 리듬에 반응하며 함께 움직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나 역시 흔들려야 한다. 상대의 말에 내 생각이 부딪히고, 때로는 부서지고, 다시 다른 모양으로 맞춰져야 한다. 이것이 무섭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며 비로소 인정하게 됐다.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변하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겉으로만 듣는 사람인 척했던 것 같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진심으로 애도했지만 정작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했던 그 순간을, 작가는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되짚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듣기와 침묵의 차이를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배려라고 부르지만, 어떤 침묵은 그저 내가 불편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진짜 듣기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상대의 고통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어설프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상대에게 가닿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 그것은 예의 바른 침묵보다 훨씬 어렵고, 훨씬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려견 밤이와의 관계에서 듣기가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들이다. 사료를 코로 눌러보고 내쉬는 한숨, 침대에서 일어나는 몸짓의 미묘한 차이. 작가는 그것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앎의 범위를 넓혀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듣기라는 것이 결국 관계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의 말을 정확히 듣는다는 건 한순간의 집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침묵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과 반복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는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오래 듣고, 자주 곁에 머물렀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듣기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더 가깝다.

무안공항 참사를 다룬 부분에서는 듣기가 언어화될 수 없는 순간까지 확장된다. 작가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솔직함이 오히려 듣기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느꼈다. 우리는 종종 위로의 말을 찾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들어야 할 소리, 창자가 끊어질 듯한 울음, 텅 빈 공항의 적막, 비에 씻겨 알아볼 수 없게 된 메모지의 흔적을 지나쳐버린다. 말을 보태는 일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다. 때로는 그저 곁에 몸을 두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듣기는 성립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내가 위로한답시고 서둘러 말을 채워 넣었던 순간들을, 그로 인해 정작 상대의 침묵을 들을 기회를 놓쳤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지금까지 누구의 말을 '들어주었는지'와 누구의 말을 진짜로 '들었는지'를 구분해보려 애썼다. 부끄럽게도 후자의 목록은 훨씬 짧았다. 나는 여전히 공기를 읽는 데 익숙하고,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데 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능숙함이 때로는 상대를 혼자 두는 일이었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이 혼잣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다정함은 그 혼잣말을 대화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다시 질문하며 함께 춤추는 일. 그 서투른 스텝을 밟는 용기를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내보고 싶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8/84/cover150/k1021302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88400</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초풍요의 시대 - [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81</link><pubDate>Fri, 14 Aug 2026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0536&TPaperId=174501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84/coveroff/k6221305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0536&TPaperId=174501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a><br/>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68년 스튜어트 브랜드가 외쳤던 " We are as gods and we might as well get good at it "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더 이상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로봇공학의 급 속한 발전은 인류를 신화 속 신의 영역으로 진입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의 제약 앞에서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정보를 창조하고, 생명을 설계하며, 물질의 희소성을 풍요로 변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신의 힘을 얻은 순간,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기술의 가속도는 인간의 지혜를 능가했고, 풍요는 새로운 형태의 불행을 낳았으며, AI의 등장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위협하고 있다. 책은 초풍요의 시대에서 AI의 부상이 인류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초풍요의 시대는 단순히 물질의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의 폭발, 선택지의 무한증식, 그리고 가능성의 무한 확장을 의미한다. 로봇 배송 드론Zipline은 아프리카의 혈액을 분 단위로 배송하여 산모 사망률을 51% 감소시켰다. 온라인 교육 Khan Academy는 2025년 1억 5천만 명 이상이 50개 언어로 학습할 수 있게 했다. iPs 세포 기술과 3D 바이오프린터는 장기 부족의 시대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구현해내는 것은 스케일의 민주화다. 과거 특권층만 누릴 수 있던 것이 이제 보통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깨끗한 물, 의료, 교육, 이동성 등,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손 안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풍요로움이 진정한 해방일까? John B. calhoun의 마우스 실험은 충격적이다.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된 환경에서 마우스 사회는 붕괴했다. 출생률은 떨어지고, 개체 간의 유대는 사라졌으며, 집단은 무의미한 반복행동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이 마우스 실험을 재현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무한한 정보를 제공 하지만, 동시에 우울증 발병률을 3배 증가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전 지구적 연결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심화된 고독감과 실존적 불안이다. 온라인 쇼핑은 욕망의 즉각적 충족을 제공하지만, 삶의 의미는 오히려 감소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부정성 편향"은 실재한다. 우리 뇌는 진화적으로 위협에 민감하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풍요 속의 공허함이다. 우리는 생 존을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순간, 더욱 강력한 주인공이 무대에 나타났다. 인공지능.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지 능력을 복제하고, 확장하며, 심지어 초월하기 시작했다. ChatGPT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1억 사용자에 도달했고, 멀티모달 AI는 이미지, 음성,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생성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위협은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로 정의했다. 하지만 AI가 우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창의성의 소유자라고 믿었지만, AI가 창의적인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철학적 문제를 넘어 실촌적 위기가 되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초풍요의 시대가 모든 인류에게 동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 기술의 혜택은 극도로 집중되어 있다. 세계 자산의 76%를 지배하는 상층부 10%는 AI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반면 하층 부 50%는 세계 자산의 2%를 소유하고 있으며, Al로 인한 실업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책에서 제시된 " Rising Floor Effect "는 통계적으로 사실일 수 있지만, 상층부의 상승 속도가 하층부의 상승 속도를 훨씬 능가한다. 격차는 절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초풍요는 선택받음 자들의 풍요일 뿐, 보편적 풍요가 아니다.

&lt;We Are as Gods&gt; 책의 제목이다. 미래의 지성체는 신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 힘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기술적 위험으로 바이오테러, AI 의 오류, 기후 재앙, 인류학적 위험으로 의미 상실, 사회 붕괴, 실존적 공허이다. 마인드셋의 변화만으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집단적, 제도적, 철학적 혁신이 필요하다.

초풍요의 시대, AI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초풍요의 시대는 우리에게 신의 힘을 주었다. 하지만 신의 힘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신처럼 행동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진정한 유산이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기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미래를 목격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질문이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84/cover150/k6221305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0840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머니베이킹 - [머니베이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73</link><pubDate>Fri, 14 Aug 2026 1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020&TPaperId=174501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5/96/coveroff/k7321300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0020&TPaperId=174501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머니베이킹</a><br/>김다인(머니바게트) 지음 / 모티브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지수가 출렁이는 장세를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뉴스에서는 매일 새로운 악재와 호재가 쏟아지고, 스마트폰을 열 때마다 빨간 숫자와 파란 숫자가 번갈아가며 나를 시험한다. 머니베이킹을 읽으며 가장 크게 와닿았던 문장은 "경제적 자유는 예측이 아니라 원칙에서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한때는 시장을 예측하려 애썼다. 급등주에 올라타면 단숨에 부자가 될 것 같았고, 하루 이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며 매매 버튼을 눌렀다 뗐다 반복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움직일수록 오히려 계좌는 조금씩 말라갔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시장을 이기려 했지 시장과 함께 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의 변동성 장세를 견디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나는 책에서 말하는 '복리의 나무' 비유를 다시 떠올린다. 씨앗을 심은 뒤 몇 년간은 눈에 보이는 성장이 없다. 땅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는 시간,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나무를 뽑아버리고 다른 곳에 새로 심기를 반복한다. 지금의 하락과 조정도 어쩌면 내 투자라는 나무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는 과정일지 모른다. 3년쯤 투자하고 "은행 이자보다 나을 게 없다"며 포기하는 대신, 나는 이 구간이 앞으로 15년, 20년 뒤의 폭발적인 성장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려 한다. 복리 투자의 진짜 적은 시장의 폭락이 아니라 투자자 자신의 조급함이라는 문장이,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기일수록 더 무겁게 다가온다.

특히 인상 깊었던 관점은 하락장을 '세일 기간'으로 바라보는 태도였다. 백화점 세일에는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정작 주식 시장이 세일에 들어가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은 사실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간의 급락 뉴스를 보면서도,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계좌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담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놓고 보면 3~4번의 크고 작은 하락장은 필연적으로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붙잡으려 한다.

책은 복리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시간, 꾸준함, 인내를 꼽는다. 최소 15~2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에 선물해야 하고, 매달 정해진 금액을 빠짐없이 넣는 꾸준함이 필요하며, 하락장에서도 팔지 않는 인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재능이나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는 않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변동성이 심한 요즘 같은 시기일수록, 나는 매달 정해둔 금액을 기계적으로 적립식 매수하는 원칙을 지키기로 다짐한다. S&amp;P 500이나 나스닥100 같은 지수 자산에 꾸준히 투자하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매매 화면을 들여다보는 횟수를 오히려 줄이려 한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매일 확인하려는 습관 자체가 조급함을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동성이 두렵고 밤잠을 설치게 하는 투자가 싫은 사람에게는 SCHD처럼 꾸준한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는 배당 성장 자산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연금저축펀드나 IRP 같은 절세 계좌를 활용하면 세액공제와 과세이연 효과로 장기 복리 수익률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결국 변동성 장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시장을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계좌 구조를 미리 마련해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수는 오르내리고, 나는 여전히 완전히 초연해지지는 못한다. 다만 예전처럼 하루하루의 등락에 매매로 반응하기보다, 지금 내가 심고 있는 나무가 아직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조금 더 버텨보려 한다. 조급함을 버린 '느린 부자'가 결국 가장 빨리 부자가 된다는 책의 문장처럼, 오늘의 변동성은 내 60대에 어떤 크기의 빵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짓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고 믿는다. 변동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심고, 얼마나 견디며, 얼마나 꾸준히 반복하는지가 결국 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05/96/cover150/k7321300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059692</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 - [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65</link><pubDate>Fri, 14 Aug 2026 10: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604&TPaperId=174501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49/coveroff/k8621306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130604&TPaperId=174501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a><br/>돈모행(안현경)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급이 들어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잔고가 다시 바닥을 드러낼 때,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돈은 모이지 않을까. 이 질문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물가는 매년 오르고, 고용은 예전만큼 안정적이지 않으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낡은 말이 되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출렁이고, 어떤 자산이 오늘의 안전자산인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변동성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안을 견디고 있다. 최근 읽은 &lt;텅 빈 통장에서 1억 만들기&gt; 책은 이런 불안 앞에서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질문을 다시 던지게 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가 결국 삶의 안정을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화려한 투자 성공담이 아니라, 반복된 경제적 좌절 속에서도 통장 잔고를 하나씩 채워나간 지극히 현실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그 진솔함이 오히려 큰 울림을 준다. 대박을 노리는 방법이 아니라, 누구나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 쌓여 결국 단단한 자산이 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큰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기본기가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어느 정도의 무지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금 금리가 높고, 자산 가격이 완만하게 오르던 시절에는 그저 성실히 저축만 해도 어느 정도 미래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금리는 예측하기 어렵게 오르내리고, 자산 가격의 변동 폭은 커졌으며, 새로운 금융상품과 투자 수단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런 환경에서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뒤처지기 쉽다. 책에서 말하듯, 아는 만큼 아낄 수 있고 아는 만큼 지킬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나 역시 그동안 재테크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작 내 소비 습관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카드값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대략은 짐작하면서도, 정확히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는 늘 뭉뚱그려 넘어갔다. 돈 공부의 출발점이 거창한 투자 지식이 아니라 내 지출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그동안 내가 가장 소홀히 했던 부분이었다. 변동성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나 자신의 경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비유 중 하나는 절약을 운동에 빗댄 부분이다. 갑자기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몰아붙이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치는 것처럼, 절약도 처음부터 극단적으로 접근하면 금세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신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지속하는 태도가 결국 절약이라는 근육을 키운다는 설명이 오래 남았다. 이는 비단 돈 관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단번에 큰 성과를 내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오래 살아남는 습관은 대체로 작고 지속 가능한 것들이다. 나에게도 식비나 통신비, 구독 서비스처럼 무심코 나가는 고정지출을 다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돈을 한 번에 아끼려는 시도보다, 매달 조금씩이라도 새어나가는 돈을 줄여나가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절약은 궁상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시선에도 공감이 갔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경험은 단순한 숫자의 증가를 넘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변동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존 전략은 수입의 다각화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소개된 블로그, 앱테크, 소소한 부수입 만들기 등의 방법들은 얼핏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수입원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위기 앞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하나의 직장, 하나의 월급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그 자체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산업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는, 크지 않더라도 여러 개의 수입 흐름을 만들어두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훨씬 안정적인 기반이 된다. 나 역시 오랫동안 미뤄왔던 부업이나 자기계발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거창한 사업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가진 작은 능력이나 관심사를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의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일단 움직여보는 실행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동성이 심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완벽한 예측이나 확실한 정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스스로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작은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며, 하나의 수입과 하나의 자산에만 기대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를 갖춘 사람이 결국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책을 계기로 나만의 돈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지난 석 달간의 소비 내역을 점검하는 것부터, 하루 십 분이라도 가계부를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까지, 거창하지 않아도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씩 채워나가고 싶다.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도 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통장은 다시 비어질 수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채울 수 있는 힘과 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짜 돈 공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49/cover150/k8621306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490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드라마 대사로 인생 공부 - [드라마 대사로 인생 공부 - 내 삶을 비추는 명문장 100 필사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52</link><pubDate>Fri, 14 Aug 2026 10: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501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197&TPaperId=174501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41/coveroff/k44213019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197&TPaperId=174501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드라마 대사로 인생 공부 - 내 삶을 비추는 명문장 100 필사집</a><br/>오수경 지음 / Birdbox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밑줄을 긋는다는 건, 사실 나 자신에게 표시를 하는 일이다. 좋은 문장은 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그 문장이 지금의 나와 부딪히는 순간에야 비로소 빛을 낸다. 그래서 오늘 몇 개의 드라마 대사를 손으로 옮겨 적으면서, 나는 문장을 베낀 게 아니라 나를 조금 더듬어 본 것 같다.

요즘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갇혀 있다'는 말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어디에 갇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회사일 수도, 관계일 수도, 혹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기준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뭔가를 뚫고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든다는 것이다. 그저 그런 만족이 아니라 진짜로 행복해서 진짜로 좋은 순간, 그래서 저절로 "아, 이게 사는 거지" 하는 말이 나오는 순간을 갖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갈망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해방의 시작이었다. 갇혀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 보는 것. 힘든 걸 힘들다고, 지친 걸 지쳤다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를 스스로에게 마련해 주는 것. 그게 없으면 사람은 갇힌 채로 갇힌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나는 나에게 그런 자리를 얼마나 자주 내어주고 있었을까.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무엇이 그리운지 생각해 보면, 화려했던 순간이나 큰 성취가 아니다. 그리운 건 오히려 그때의 사소한 걱정들이다. 숙제를 못 끝낼까 봐, 선배에게 혼날까 봐, 무대에서 실수할까 봐,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할까 봐,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그 걱정들이 실은 그 시절을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든 것들이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걱정도 언젠가는 그렇게 그리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지금의 근심조차, 시간이 지나면 내가 치열하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로 남을 테니까.

성공은 사람을 조금 가르치고, 실패는 사람을 전부 가르친다는 말을 오래 곱씹었다. 넘어지지 않으면 조금 알지만, 넘어지면 모든 걸 알게 된다는 말. 나는 그동안 넘어지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하며 살아온 것 같다. 실패가 나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정말로 배운 순간들은 늘 매끄럽지 않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날,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던 날, 자존심이 상했던 날. 그런 날들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다음을 준비하게 만들었다. 성공은 나를 안심시켰지만, 실패는 나를 깨어 있게 했다. 앞으로도 넘어지는 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넘어지는 것을 조금 덜 두려워하며 살고 싶다.

나는 늘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준비가 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조금 더 확신이 서면, 그렇게 미뤄온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서른여덟이었으면 쉬웠을까, 마흔여덟이었으면 두렵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 앞에서 깨달았다. 모든 조건이 동시에 갖춰지는 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신호등이 한꺼번에 파란불이 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완벽한 때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물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타이밍이 아니라 용기였다. 나는 그동안 타이밍을 핑계로 용기를 미뤄온 건 아니었을까.

사랑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실 나는 사랑보다 나 자신을 더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망설였던 순간에도, 돌아섰던 순간에도 나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보다, 내 마음의 결을 읽어내는 일이 언제나 더 어려웠다. 그래서 요즘은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먼저 나 자신과 잘 지내보려 한다. 내가 무엇에 흔들리고 무엇에 편안해지는 사람인지 아는 것. 그게 관계의 시작이자 결국은 해방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 문장들을 손으로 옮겨 적으며 알게 된 건, 해방이란 어딘가로부터 완전히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안에서도 나답게 걱정하고, 넘어지고, 사랑하고, 오늘을 사는 일.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 자신과 화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해방이 아닐까.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던 나로부터, 넘어짐을 두려워하던 나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장 낯설어하던 나로부터. 그 모든 것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해방일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41/cover150/k44213019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4418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수능 영어, 해석이 아니라 단서다 - [수능 영어, 해석이 아니라 단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618</link><pubDate>Sun, 09 Aug 2026 12: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6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023726&TPaperId=17440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75/coveroff/896502372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023726&TPaperId=174406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수능 영어, 해석이 아니라 단서다</a><br/>김혜남 지음 / 지상사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오랫동안 수능 영어를 '단어 싸움'이라고 생각해 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독해가 멈추고, 문장 하나를 놓치면 지문 전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불안 속에서 사전을 뒤지듯 단어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러나 이번에 책이 소개하는 여러 지문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내가 정작 놓치고 있던 것은 단어의 뜻이 아니라 글이 움직이는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능 영어는 문장을 얼마나 정확히 번역하느냐를 묻는 시험이 아니라, 필자의 생각이 어디에서 꺾이고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읽어 내는 시험이었다.새로운 관점의 출발점은 역접 접속사였다. however, but, yet, instead 같은 단어들을 나는 그동안 그저 '그러나', '하지만'으로 옮기고 넘어가는 연결어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이 단어들은 출제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신호에 가까웠다. 지문은 흔히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이나 기대를 먼저 제시한 뒤, 역접 접속사를 기점으로 그 기대를 뒤집으며 필자의 진짜 주장을 드러낸다. 예컨대 부모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간식을 주고 싶어 하는 상황을 먼저 그려 놓고, However 이후에 정서적 필요를 간식으로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구조가 그렇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지문을 읽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이제 나는 however나 but을 발견하는 순간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그 뒤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앞부분을 완벽하게 해석하지 못했더라도, 역접 뒤의 흐름만 정확히 붙잡으면 정답에 훨씬 가까워진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다시 보게 된 것은 this, that, such, these 같은 지시어였다. 예전의 나는 이것들을 그냥 '이런', '그런' 정도로 얼버무리며 지나갔다. 그러나 지시어는 바로 앞 문장의 핵심 내용을 압축해서 다시 가리키는 장치였다.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 글이 어색해지기 때문에 출제자는 this tendency, such behavior, these changes처럼 형태를 바꾸어 핵심 개념을 다시 불러온다. 그래서 나는 지시어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this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behavior는 앞에서 말한 어떤 행동인가'를 되짚는 순간,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끊어져 있던 논리가 다시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순서 배열이나 문장 삽입 문제에서는 지시어가 곧 단서였다. 어떤 문장에 this phenomenon이나 such effects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면, 그 현상이나 효과가 반드시 앞선 문장에서 먼저 설명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알게 되면서, 나는 문장을 낱개로 보지 않고 지시어가 만들어 내는 고리를 따라가며 순서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인상 깊었던 것은 지문이 하나의 핵심 개념을 여러 단어로 바꾸어 가며 반복한다는 사실이었다. competition, rival, outperform, survival 같은 단어들이 함께 등장한다면, 그것은 각각 독립된 단어가 아니라 '경쟁'이라는 하나의 의미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risk, uncertainty, instability 같은 단어들이 이어진다면 글 전체가 위험이라는 주제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고, environment, pollution, sustainability 같은 단어들이 반복된다면 환경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알게 된 뒤로 나는 지문을 읽을 때 개별 단어의 뜻보다 '지금 이 글이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하나의 개념이 무엇인가'를 먼저 찾으려 한다. 이렇게 의미 묶음으로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하나쯤 섞여 있어도 전체 흐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낯선 단어의 뜻을 문맥 속에서 짐작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br>수능 영어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슨 단어가 나왔는가'가 아니라 '글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이다. 역접 접속사는 논리가 꺾이는 지점을 알려 주고, 지시어는 핵심 개념이 반복되는 고리를 만들어 주며, 의미 묶음으로 반복되는 어휘는 글 전체가 향하는 하나의 중심 주제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리를 모두 관통하는 것이 바로 흐름, 즉 문장과 문장 사이의 방향성이다. 앞으로 나는 지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번역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however 뒤에서 멈추고, 지시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되짚고, 반복되는 핵심어를 따라가며 글의 방향을 먼저 파악하는 방식으로 수능 영어를 다시 준비해 보려 한다. 완벽한 해석보다 정확한 방향 읽기가 진짜 실력이라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배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0/75/cover150/89650237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07557</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76</link><pubDate>Sun, 09 Aug 2026 1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124&TPaperId=174405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1/76/coveroff/k9921301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0124&TPaperId=174405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a><br/>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자주 이런 느낌을 경험한다. 화면 앞에서 무언가를 입력하려다 멈추고, 이 선택이 정말 내 선택인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AI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없는 불안"이라고나 할까.. 무엇이 불안한지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히 불안하다. LLM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으로 침투하면서 우리는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속 으로 빨려들어갔다. 알파고가 바둑판 위의 불확실성을 정복했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확실성은 우리 자신의 존재 위 에 걸려 있다. 내가 생각한 것도 누군가는 이미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 선택도 알고리즘의 예측 범위 안에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현대의 불안이다.

EP문화와 이중구속. "직장에서는 유능한 동시에 여유로운 동료여야 하고, 집에서는 따뜻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낡은 시대의 말처럼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동시에 해야 한다. AI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 하지만 AI에 일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공포.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야 한다는 명령,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경고. 우리는 '정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정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다. 이것이 현대적 노모패시(normopathy)가 아닌가 싶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실업의 공포가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나의 가치가 기 계적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대체 가능한 존재'로 환원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책에서 말하는 "피플 플리저"처럼 나도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역할이 이제는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 해 정의되고 있을 뿐이다.

책은 상호주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AI와의 상호작용에는 일방성이 있다. 나는 반응하지만, 그것이 정말 '반응'인지 의문이 든다. 더 정확히는 반응 의도의 흉내인 것 같다. 더 불편한 것은 이 일방성이 점점 양방성으로 착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받는다고 느낀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건강한 상호주관성일까,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환상일까? 책에서 말하는 "판타즘(환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은 아닐까 싶다. 내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의 반영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반영적 자기대상으로서의 AI를 무한정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너는 멋진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환상이다.

사후성의 의미도 흥미롭다. 의미 없이 숨겨져 있던 무의식적 기억이 시간이 흐른 뒤 '사후적으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 정신분석가 크리스토퍼 볼라스의 말이 떠오른다. "주체는 좀 늦게 현장에 도착한다." AI 시대에 우리는 이 사후성 자체 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경험, 선택, 감정이 모두 데이터로 변환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사후적으로 해석할 기회를 빼앗긴다. 대신 이미 해석된 데이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추천 알고리즘이 나를 정의하고, 트렌드 분석이 나의 미래를 예측한다. 역설적이다. 우리가 과거를 재구성할 자유를 잃을수록, 현재를 이해할 능력도 상실한다. 책에서 강조하는 이름 붙이기"의 능력 즉,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정의하고 의미화하는 능력이 가장 절실해진다. 하지만 그 이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는 중이다.

책은 희망적이다. "모호함을 견디는 것은 회피와 다르며, 성급한 단정을 유예하는 태도다." 그리고 "가짜 안전감 속에 숨 어 있는 것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내 불안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것이다: 현대는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을 빼앗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요구한다. AI 시대의 불확실성은 과거의 그것과 다르다. 과거의 불확실성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불확실성은 "이미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의된 나'를 마주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제시하는 길은 명확하다. 양가감정을 받아들이듯이, 우리는 이 시대의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마음에 이름을 붙이면 막연하기만 하던 불안과 공포는 다룰 수 있는 마음이 된다. LLM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과의 경쟁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불안에 이름을 붙이고, 그 불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심리적 성숙함이다. 알고리즘이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이 주체의 얼굴이다. 우리는 좀 늦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 AI가 쓴 시나리오 위에 손글씨로 우리의 경험을 적을 수 있다. 그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1/76/cover150/k9921301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1762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자주국방의 가성비 - [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65</link><pubDate>Sun, 09 Aug 2026 12: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120&TPaperId=174405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76/coveroff/k1221301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120&TPaperId=174405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a><br/>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절규가 유럽을 뒤흔들고, 중동은 또 다른 화염에 휩싸여 있다. 미국은 '아틀라스처럼 세계 질서를 홀로 떠받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중국은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며 조용히 움직인다. 이런 시대에 한반도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정욱식 소장의 &lt;자주국방의 가성비&gt;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외쳐온 자주국방은 진정한 자주성이 아니라, 대미 의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 위주의 담론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쏟아부은 국방비는 천문학적이다. 2003년부터 2025년까지 총 865조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 뒤에는 깎아지른 절벽처럼 높아진 군사비 부담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2026년을 전시작전권 회복 원년으로 삼고 2028년 최종 환수를 목표로 하면서 국방 예산을 66조 2947억 원으로 편성했다. 그것도 7년 만에 가장 큰 폭인 8.2% 인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날카롭다. 우리는 정말 자주국방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그리는 '약탈적 패권주의'의 더 깊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의 꿈을 품고 2012년 12월 전시작전권 환수를 선언했다. 그것이 20년 전의 일이다. 20년이 흘렀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 미로 속을 헤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의 유산"이라며 발을 빼 버렸고, 박근혜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정권 간 쟁점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 국방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증거다. 작전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이미 기형적이다. 마치 축구 대표팀의 감독을 평소에는 한국인이 맡다가 대회 때는 외국인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미국의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자국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판단하면 손을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이면서도 전쟁과 평화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갖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주국방이 언제나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전시작전권 환수라는 형식적 절차만으로는 진정한 자주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패권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최근 이란 침공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미국 패권의 종말을 의미할까?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고, 달러는 국제 금융의 중심이며, AV 등 첨단기술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다극화 추세다. 중국이 강해지고, 러시아가 호전성을 드러내고,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약탈적 패권주의'다. 미국은 이제 만만한 동맹국들의 팔을 비틀어 경제적•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한국에 대해 국방비 증액과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면서도, 한국의 주권에는 눈을 감고 있다. 주한미군에 한국 영토를 "발진기지"나 "중간기지"로 사용할 권리를 달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봉착한 딜레마다. 우 리가 전시작전권을 회복해도,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의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군은 휴전선과 북방한계선 이남 영토를 넘어, 헌법 제3조의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방어해야 한다고 생각한 다. 이것이 상당한 규모의 군사력 건설과 훈련을 요구하게 만든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도 '방어와 격퇴'를 1단계로, '반격과 점령'을 2단계로 설정했다. 이러한 높은 군사 목표는 전시작전권 환수 조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동시에 조선의 핵• 미사일 강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한다. 만약 한국이 흡수통일 계획을 명시적으로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국 방비 소요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국방 예산을 동결하면서도 현재보다 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재정립이다.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론'과 '한국에 대한 불변의 주적' 입장을 고수하는 핵심 이유가 바로 한국의 유사시 무력흡수통일론이다. 한국이 이를 명시적으로 포기한다면, 조선도 입장을 바꿀 여지가 생긴다. 이는 이재 명 정부가 천명한 "흡수통일 배제"와도 정확히 부합한다. 가장 현실적인 제안은 평화협정 체결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실 용적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일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우리에게 행운일 수도 있다. 미국 패권의 약화, 미중관계의 변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주의적 외교, 이 모든 것이 한반도에 평화의 문을 열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자주국방'은 기존 자주국방론의 화려한 수사를 거둬내고 현실의 제약 조건 속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의 순간 앞에 있다. 우크라이나처럼 무한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변화된 국제 정세를 현명하게 활용하여 진정한 자주성과 안정을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 그 답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76/cover150/k1221301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97693</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읽고 읽고 말하다 - [읽고 읽고 말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52</link><pubDate>Sun, 09 Aug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405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06&TPaperId=174405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1/coveroff/89323250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5006&TPaperId=174405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읽고 읽고 말하다</a><br/>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소설 &lt;읽고 읽고 말하다(よむよむかたる)&gt;를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소설이 '읽는 행위'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타루의 작은 찻집, 카페 시트론에 모이는 여섯 명의 노인들과 스물여덟 살 청년 야스다. 그들 사이에는 육십 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책 한 권을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순간만큼은 그 간극이 무색해진다. "재밌겠다, 재밌겠어, 나 아흔 두 살 두근두근, 콩닥콩닥, 셀 수 없이 많지, 고를 수 없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설렘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그리는 노년의 얼굴이다.문득 부끄러워졌다. 나이 든다는 것을 그저 상실의 연속으로만 생각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기력이 줄고, 곁을 지키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 그러나 이 소설 속 노인들은 서로의 부고 소식보다 다음 달 첫 금요일의 독서 모임을 더 간절히 기다린다. "최고의 동료들과 보내는 최고의 시간이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에 기다리고 있다." 이토록 소박하면서도 확실한 기쁨이라니. 스무 해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이루어져 온 약속이라니. 나는 그 꾸준함 앞에서 오히려 내 삶의 조급함을 돌아보게 되었다.<br>한편으로 책은 읽는다는 행위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계속해서 일깨운다. 야스다는 회원들이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우리는 결코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기억과 상실과 사랑이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내를 먼저 보낸 회원의 고백, "아내가 그어놓은 밑줄이나 본인만 읽을 수 있게 써놓은 메모가 깜짝 선물처럼 튀어나오는 겁니다"라는 말은, 책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임을 보여준다. 그는 병상의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저 목소리로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른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br>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결코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회장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틋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다른 회원이 불쑥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뜨리는 장면처럼, 일상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다소 무례하며,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소설 내내 은은하게 드리워 있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불현듯 표면으로 떠오른다. 늘 기운차고 제멋대로였던 노인들이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죽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이 모임이 왜 그토록 간절하게 매달 한 번의 만남을 지켜왔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br>소설을 덮으며 나는 읽는다는 것이 결국 함께 늙어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혼자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누군가와 한 문장을 나누어 읽고, 그 문장이 서로에게 어떻게 다르게 스며드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각자의 고독에서 벗어난다. 카페 시트론의 여섯 노인과 야스다처럼,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만나 책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것이 이 풍성하고 복잡한 소설이 내게 남긴,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큰 선물이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6/1/cover150/89323250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6017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비밀의 들판 - [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483</link><pubDate>Sun, 02 Aug 2026 16: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4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284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off/k7421304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423&TPaperId=174284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a><br/>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왜 아픈 것을 알고 싶어 하느냐"는 할머니의 질문이었다. 마거릿 주해 리에게 할머니가 던진 이 짧은 질문 속에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가족 안에 존재할지 모르는 침묵의 이유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믿음, 그리고 그 침묵이 다음 세대에게는 오히려 정체성의 공백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다.책은 표면적으로는 한 여성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역사 탐구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저자는 할아버지가 "범죄자"라는 말만 듣고 자랐다. 그 오해와 침묵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알지 못한 채 살아야 했고, 그 결핍은 다시 저자에게로 이어졌다. 휴스턴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극히 드물었던 도시에서 자라며 느낀 소외감, "어디서 진짜로 왔느냐"는 반복된 질문들, 그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들이 결국 할아버지의 진실을 찾아 나서게 만든 근본적인 동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족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대 간 트라우마"다. 그녀가 책을 쓰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이 개념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단어를 접했을 때, 자신이 오랫동안 느껴온 결핍과 공허함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흔히 부모 세대가 겪은 고통이 자녀에게 자동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말하지 않음, 침묵 그 자체가 하나의 유산처럼 대물림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민자 가정에서 부모 세대가 "생존 모드"로 살아가며 자신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자녀에게 전하지 않으려 했던 선택이, 역설적으로 다음 세대에게는 뿌리 없는 불안으로 남는다는 통찰은 비단 한인 이민 사회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진실처럼 느껴졌다.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부분은 진실이 밝혀진 이후 아버지의 변화에 대한 묘사였다. 평생 과묵하고 근엄했던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진짜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다정하고 사교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일화는, 우리가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조차 사실은 채워지지 않은 상실과 결핍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저 아버지, 곧 할아버지의 이야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앎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결국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그 공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대목에서는, 한 세대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다음 세대를 위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한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이민자로 살아간다는 것,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 그리고 뒤늦게라도 그 침묵의 이유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나는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가족에게 뿌리를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우리 각자에게도 아직 다 묻지 못한 질문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울림은, 그 질문을 던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용한 격려였다. 역사는 가만히 두면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52/36/cover150/k7421304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52366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차가운 접시 하나로 하루를 식히는 여름 에세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49</link><pubDate>Sun, 02 Aug 2026 1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321&TPaperId=174281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52/coveroff/k5421303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0321&TPaperId=174281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차가운 접시 하나로 하루를 식히는 여름 에세이</a><br/>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08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 역시 매년 여름이 되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냉장고 문 앞에서, 소파에 앉은 채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더위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마음이 지쳐 있는 순간들이 유독 여름에 자주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오래도록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름을 늘 '견디는 계절'로만 여겨왔다. 땀이 나고, 몸이 무겁고, 밤에는 잠을 설치는 계절. 그래서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버티고 있던 것은 더위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참고, 더 많은 말을 삼키고, 더 많은 순간에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작년 여름 어느 저녁이 떠오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한참을 현관에 서 있었다. 딱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하철의 열기, 사무실의 냉방과 바깥 공기의 온도 차, 점심시간의 소음 같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있었을 뿐이다. 그날 나는 저녁을 차리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오이 하나를 씻어 썰어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운 하루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게으른 저녁이라고. 하지만 책이 말해주듯,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돌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근사한 저녁을 차릴 힘이 없다고 해서 나를 굶긴 것은 아니었다.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어 나를 먹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저녁을 잘 차려야만,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날의 저녁은 잘 차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일에 더 가깝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답도 천천히'라는 대목이었다. 나는 평소 답장이 느린 사람을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여름이면 별일 아닌 메시지 하나에 며칠씩 답을 미루곤 했다. 상대가 나쁜 의도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그 평범한 안부 인사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저녁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탓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왜 이런 사소한 일에도 지치는 걸까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너무 오래 뜨거운 곳에 놓여 있었던 결과였다는 것을. 마음에도 온도가 있고, 그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말들도 날카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여름은 나에게 '얼마나 잘 해내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데워져 있는가'를 먼저 살피라고 가르쳐준 계절이다. 지금까지 나는 계절과 상관없이 늘 같은 속도로, 같은 기준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쉬는 날에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녁에는 손해 본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여름날의 무기력함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내 안에 쌓인 열기를 알아차리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몸이 먼저 멈추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 그것이 이 계절을 건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br>올해 여름에는 조금 다르게 지내보려 한다. 답장이 늦어지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저녁을 대충 차린 날에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기로 한다. 대신 찬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냉장고에서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 접시에 담아본다.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엉켜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간격을 찾는 것을 느껴본다.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에게 자주 말해주려 한다. 더위보다 먼저 지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그늘 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늘을 허락해줄 시간이라는 것을, 조용히 되새겨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45/52/cover150/k5421303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45526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초압축 금리 공부 - [초압축 금리 공부 - 경제 원리가 단숨에 이해되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08</link><pubDate>Sun, 02 Aug 2026 12: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81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249&TPaperId=174281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5/45/coveroff/k3121392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9249&TPaperId=174281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초압축 금리 공부 - 경제 원리가 단숨에 이해되는</a><br/>추동훈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본 포스티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할 리뷰입니다.​요즘처럼 '금리'라는 단어가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발표하는 날이면 부동산 커뮤니티부터 주식 리딩방까지 온통 그 이야기뿐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대출 이자가 조금만 올라도 가슴이 철렁하고, 예금 금리가 조금 떨어졌다는 소식에도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정작 금리가 왜 오르고 내리는지, 그 숫자 하나가 어떻게 내 통장 잔고와 집값과 주가를 동시에 흔드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이번에 책을 접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만 느꼈던 금리라는 개념을 조금 더 또렷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다.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세대가 겪는 금리 환경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예금 금리가 두 자릿수에 이르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그저 성실하게 벌어서 은행에 맡겨두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재테크가 성립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충격을 지나며 그런 고금리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서브프라임 사태와 팬데믹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거치면서 각국 정부는 돈을 풀어 시장을 떠받쳤고, 그 결과 시중에는 유례없이 많은 유동성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체감하는 고물가와 고금리는 어쩌면 그 오랜 저금리·고유동성 시대에 대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금리를 단순히 '은행이 주는 이자율' 정도로만 여겨왔던 나에게, 금리가 '시간의 가치'이자 '돈의 사용료'라는 설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내 손에 있는 100만 원과 1년 후에 받을 100만 원이 결코 같은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 그 차이를 메워주는 장치가 바로 금리라는 설명을 듣고 나니 여러 경제 현상이 한결 명료하게 이해되었다. 단리와 복리의 차이,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어림잡는 방법,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금리 개념까지, 이런 것들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스치듯 배웠지만 실생활과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금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세하게 변하는 이유도, 결국 그것이 경제 전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신경망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br>인상 깊었던 부분은 '금리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이나 인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저 중앙은행이 어떤 신호를 주는구나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중앙은행이라는 기관이 왜 탄생했는지, 물가와 금리가 어떤 상호작용을 주고받는지, 그리고 인플레이션 못지않게 디플레이션이 왜 더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니 뉴스를 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특히 채권 가격이 금리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원리는 평소 어렴풋이 들어만 봤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왜 금리가 오르면 채권 시장이 출렁이고 그것이 다시 주식 시장 심리에 영향을 주는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br>무엇보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금리가 우리 일상, 특히 대출과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요즘 대출 이자가 오르는 속도를 보면 정말 실감이 난다. 기준금리가 조금만 인상되어도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이자는 즉각 반응하는 반면, 예금 금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가 반응하는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접하니 그동안의 답답함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또한 집값의 본질이 결국 이자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이 얼마나 대출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대출 여력'이 자산 가격을 형성하는 핵심 변수라는 시각도 인상적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 여력이 줄어들고, 그것이 다시 부동산 수요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최근 몇 년간 겪었던 집값의 급등과 조정이 왜 하필 금리 인상·인하 시점과 맞물려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었다.<br>앞으로도 금리 뉴스는 계속 우리 삶 곳곳을 파고들 것이다. 예전처럼 그 소식을 그저 흘려듣거나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금리가 왜 움직이고 그것이 나의 대출과 저축, 소비와 투자에 어떤 경로로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짚어보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결국 금리를 이해하는 일은 거창한 경제학 이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내 지갑과 내 삶을 더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회에 정리한 금리에 대한 이해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금리 인상과 인하의 국면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기준이 되어주기를 바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75/45/cover150/k3121392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754556</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90</link><pubDate>Sun, 02 Aug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508&TPaperId=174278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97/coveroff/k7221305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508&TPaperId=174278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구나 성공하는 AI 비서, 오픈클로 - 윈도우·맥미니·라즈베리 파이까지, 30분 만에 구축하는 오픈클로 실전 활용서</a><br/>박권 외 지음 / 책밥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 곱씹게 되는 생각이 있었다. AI는 더 이상 질문에 답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일을 대신 완수하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처음엔 그저 마케팅 문구처럼 들렸는데, 몇 장을 더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 역시 매일 ChatGPT나 Claude에게 좋은 답을 얻고도, 정작 그 답을 문서로 옮기고 파일을 정리하고 여러 서비스에 다시 입력하는 일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편리한 도구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여전히 손으로 마무리하는 노동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br>그래서 오픈클로(OpenClaw)라는 이름이 낯설게 다가오면서도 묘하게 끌렸다. 지금은 크고 작은 AI 서비스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가 다음 세대의 표준이다"를 외치는, 말 그대로 전국시대 같은 시기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기보다는, 여러 도구가 서로 경쟁하고 또 연결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 혼란스러운 지형 속에서 오픈클로는 특정 서비스 하나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내 업무 환경 안에 AI를 아예 심어서 스스로 목표를 나누고 실행하게 만드는 접근을 취하고 있었다. 그 점이 다른 입문서들과 결이 달랐다.<br>직접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막상 손을 대려니 막막했다. 서버니 VPS니 하는 단어들이 낯설었고, 터미널 화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책이 안내하는 순서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걸 알게 됐다. 오래된 PC로도 시작할 수 있고, 맥미니나 라즈베리 파이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구동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고사양 서버가 없어도 나만의 AI 비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심리적 문턱을 낮춰주었다.<br>실제로 몇 가지 자동화를 만들어보면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편리함이었다. 매주 쌓이는 문서를 스스로 정리하게 하고, 반복되는 확인 작업을 예약해두고, 필요한 자료를 알아서 취합하도록 맡기고 나니 손이 훨씬 가벼워졌다. 예전 같으면 30분 넘게 걸렸을 잡무가 몇 줄의 지시만으로 처리되는 걸 보면서, 이게 바로 책이 말하던 '일을 완수하는 AI'구나 싶었다.<br>그런데 그 편리함 뒤에는 낯선 불안도 함께 따라왔다. 내가 늘 해오던 정리와 취합의 자리를 AI에게 조금씩 내어주면서,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게다가 내 PC와 계정 권한의 상당 부분을 AI에게 열어준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기업이 보안과 개인정보를 이유로 이런 도구의 사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접근 권한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떤 작업은 반드시 사람이 최종 확인을 거쳐야 하는지를 스스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능력을 얻는 만큼 새로운 책임도 함께 떠안는다는 걸, 직접 구축해보고 나서야 실감했다.<br>책을 통해 오픈클로 인공지능 경험을 돌아보면 후회는 없다. 오히려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들을 덜어낸 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스스로 고민하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자료를 정리하는 손이 아니라 무엇을 정리할지 판단하는 머리로, 반복되는 실행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역할로 조금씩 옮겨가야 한다는 감각이 남았다. 결국 오픈클로를 써보며 마주한 질문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그래서 끝까지 내가 붙들고 있어야 할 '내 일'이 무엇인지, 이 전국시대 같은 흐름 속에서 이제부터 하나씩 찾아가야 할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97/cover150/k7221305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9719</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 [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73</link><pubDate>Sun, 02 Aug 2026 0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607&TPaperId=174278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2/15/coveroff/k5121306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130607&TPaperId=174278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밤사이 온 메시지, 처리해야 할 업무 메일, 넘쳐나는 뉴스와 알림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이 되었고, 나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이, 뜻밖에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톨스토이의 문장과 르누아르의 그림을 나란히 엮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문학과 미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구성이 반가웠을 뿐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두 거장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br>톨스토이는 평생 자신을 향해 거울을 들이댄 사람이었다고 한다. 욕망과 위선, 신에 대한 회의까지 낱낱이 일기에 적어 내려간 사람. 그가 쓴 &lt;주인과 일꾼&gt;을 읽으며, 살을 에는 겨울밤 길을 잃고 헤매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얼어 죽을 위기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니키타의 태도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죽음마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그 담담함이, 무언가를 놓지 못해 안달하며 살아가던 나에게 작은 숨구멍을 내주었다. 인생이 아무리 가혹해도 그 안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낡은 러시아의 설원 위에서 배웠다. 반면 르누아르는 창문 너머를 바라본 사람이었다. 웃는 여인, 춤추는 연인, 볕이 쏟아지는 오후. 그의 그림 속에는 어둠이 거의 없다. 처음에는 그것이 다소 순진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분명 그늘도 있는데, 왜 이 사람은 밝은 면만 그렸을까. 그러나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환한 색채들이 실은 그가 스스로를 견디기 위해 붙잡은 세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그늘이 있고, 그 그늘을 마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그늘을 파고들어 글로 쓰고, 어떤 이는 애써 빛을 그려 자신을 지탱한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낸 것일 뿐이다.<br>두 사람에게는 세상에 밝히지 못한 같은 비밀이 있었다는 사실도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톨스토이에게는 끝내 인정하지 않은 아들이 있었고, 르누아르에게는 평생 숨겨야 했던 딸이 있었다. 위대한 작품을 남긴 이들도 결국 나약하고 모순된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완벽한 삶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고, 누구나 자기 몫의 실패와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그들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지고 있는 작은 흠들도, 굳이 감추려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어 이 책을 펼치는 시간은, 나에게 일종의 쉼표였다. 스마트폰의 알림음 대신 눈밭을 걷는 말발굽 소리를 상상하고, 회의실의 형광등 대신 르누아르가 그린 오후의 햇살을 떠올리는 시간. 그 잠깐의 멈춤이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배우며 살지만, 가끔은 백 년도 더 전에 살았던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를 다독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br>톨스토이가 거울을 보듯 자신을 파헤쳤던 것처럼, 나도 가끔은 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감추고 있던 나의 못난 부분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그늘들. 그것들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시에 르누아르가 창밖을 바라보며 빛을 그렸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창문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이 힘겨워도, 잠시 눈을 돌려 볕이 드는 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그런 여백 말이다. 책이 나에게 준 것은 거창한 교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작은 허락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그늘이 있어도 그 그늘 안에서 계속 살아가도 된다는 허락, 그리고 가끔은 멈추어 서서 옛사람의 문장과 그림을 들여다보아도 된다는 허락이었다.<br>책을 덮고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을 때, 여전히 알림은 쌓여 있었고 해야 할 일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대하는 내 마음의 온도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조급함 대신 약간의 여유가, 완벽에 대한 강박 대신 나 자신을 향한 작은 관용이 자리 잡았다. 톨스토이의 겨울밤과 르누아르의 오후 햇살은, 그렇게 아주 오래된 시간을 건너와 지금의 나에게 조용한 위안을 건네주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2/15/cover150/k5121306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21531</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55</link><pubDate>Sun, 02 Aug 2026 0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0129&TPaperId=174278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59/coveroff/k8021301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0129&TPaperId=174278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a><br/>페마 초드론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마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살면서 우리는 늘 확실한 것을 원한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언제 끝날지 미리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페마 초드론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반대의 태도, 즉 불확실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오히려 진짜 평온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br>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 감정, 문제를 지나치게 견고한 실체로 여긴다는 지적이었다. 명상 중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하나를 붙잡아 이야기로 엮다 보면, 어느새 그 이야기가 곧 '나'라고 믿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 생각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조차 명확히 짚어낼 수 없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는 순간을 정확히 집어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흐름에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나의 고통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다'라고 굳혀버린다. 이 굳히는 습관이야말로 괴로움을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br>책은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세 가지 독, 즉 갈망과 혐오, 그리고 무지로 설명한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 무언가를 밀어내려는 마음, 그리고 그 둘 다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넘어가는 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세 가지를 없애려고 애쓰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오히려 그 감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의 지혜와 자비가 깨어날 씨앗이 있다고 한다. 힘든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 그것이 이른바 전사(戰士)의 마음, 즉 보디사트바의 길이라는 것이다.<br>또 하나 마음에 남은 개념은 '고독을 대하는 여섯 가지 태도'였다. 우리는 흔히 외로움을 적으로 여기고 그것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책은 그 외로움 안에 가만히 머무르는 법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로 기분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도피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 불필요한 자극을 좇지 않는 것, 매 순간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직접 마주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대화의 동반자를 더 이상 찾지 않는 것. 이 여섯 가지를 읽으며 나는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잠깐의 정적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로 그 틈을 메우려 했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독을 적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날씨처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br>책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축은 '보디치타', 즉 깨어난 자비의 마음이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본래 있는 마음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가 두려움과 방어 때문에 그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통렌 수행, 즉 고통을 들이쉬고 안도감을 내쉬는 훈련은 이 자비의 마음을 실제로 연습하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결국 타인의 아픔을 밀어내지 않고 나의 아픔처럼 받아들이는 훈련이라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인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힘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런데 통렌은 그 반대의 방향, 즉 오히려 그 아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라고 말한다.<br>모든 가르침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삶이 원래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우리는 대개 확실함을 손에 넣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책은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불확실함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유연함과 용기를 요구하는 적극적인 태도에 가깝다.<br>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거창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곧바로 밀어내거나 이야기로 굳히기보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보려는 작은 시도를 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내 감정과 생각을 조금 더 너그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국 이 가르침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거창한 초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불확실함과 조금씩 화해해나가는 아주 소박하고 꾸준한 연습이 아닐까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29/59/cover150/k8021301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295994</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49</link><pubDate>Sun, 02 Aug 2026 08: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407&TPaperId=17427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9/coveroff/k0121304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0407&TPaperId=174278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도대체 왜 눈치를 볼까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원하는 삶을 사는 법</a><br/>케리 올리치.켈리 권터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br>눈치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섬세한 사회적 감각이다. 문제는 이 감각이 방향을 잃을 때 생긴다. 타인의 기대를 읽는 데만 온 신경을 쏟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진다. 부모의 기대, 배우자의 시선,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 이런 것들에 맞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삶과 남들이 기대하는 삶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케리가 심리학 박사 학위를 꿈꾸면서도 오랫동안 지원을 미뤘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이 만들어낸 안전한 선택지에 안주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눈치가 지나치면 그것은 더 이상 생존의 기술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br>책의 목차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들이 눈치 문화를 개인의 소심함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 시스템의 문제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부모, 종교, 성 역할, 출신과 배경, 결혼, 직업, 우리가 눈치를 보는 대상은 놀랍도록 구체적이고 오래된 것들이다. 나 역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선택을 망설일 때 그 뒤에는 늘 특정한 얼굴들이 있었다. "그 나이에 아직도?", "안정적인 직장을 두고 왜?"라는 상상 속의 질문들. 그것들은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던진 말이 아니라, 내가 미리 상상하고 두려워한 반응일 때가 더 많았다. 결국 내가 눈치를 보는 대상은 특정한 타인이라기보다, 내면화된 기대의 총합이었던 셈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가둔 것이 세상 전체가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난 두려움이라면, 적어도 그 두려움과는 협상해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br>마음에 남았던 대목은 "자기 확신은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자신감이란 어느 순간 완성되어 평생 유지되는 상태라고 착각해왔다. 그래서 스스로 흔들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라는 자책에 빠지곤 했다. 하지만 삶의 굴곡마다 자기 신뢰가 흔들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관점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뒤에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자기비판을 과학자처럼 다루라는 조언도 실용적이었다. 근거 없는 자기 의심에 빠질 때,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그동안 이뤄낸 것들을 데이터처럼 하나씩 나열해보는 것. 이는 눈치라는 감정적 반응에 이성적인 제동장치를 다는 방법이기도 하다.<br>돌아보면 내가 가장 눈치를 많이 봤던 영역은 진로와 관계였다. 남들이 인정할 만한 직업, 남들이 이해할 만한 선택을 좇느라, 정작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인터뷰 속 켈리가 테니스를 사랑하지만 프로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이 자기 확신을 꺾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좋은 균형점을 보여준다. 자기 신뢰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무작정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한계를 인식한 채로도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다. 이것이야말로 눈치 문화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라고 생각한다. 남들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는 대신, 나 자신의 데이터로 나를 이해하는 것.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배우는 태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곁에 머무는 것, 그리고 내가 왜 이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 잊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결국 눈치가 아닌 자기 확신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연습이다.<br>눈치를 완전히 버리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관계 속에서 조율하는 감각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그 감각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내 안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이 글을 통해 다시 느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시도하지 않아서 영영 알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 붙잡아도, 오늘의 작은 용기 하나쯤은 낼 수 있을 것 같다. 완벽하게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눈치와 나 자신의 목소리 사이에서 더 자주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9/59/cover150/k0121304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95935</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노력의 종말 - [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39</link><pubDate>Sun, 02 Aug 2026 08: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78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0722&TPaperId=174278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92/coveroff/k0721307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130722&TPaperId=174278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a><br/>올리비에 바보 지음, 이나래 옮김 / 더웨이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올리비에 바보(Olivier Babeau)의 책을 읽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지적하는 "노력의 상실"이라는 진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하루하루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롤 한 번으로 웃음을 얻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영상으로 시간을 채우고, 선택이 어려우면 후기와 별점에 판단을 맡기는 삶. 그것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채은 불편할 만큼 명료하게 보여준다.<br>바보가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력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 생존을 위해서든,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든,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기술 문명은 그 오래된 방정식을 깨뜨렸다. 사냥 없이 포만감을 얻고, 구애 없이 쾌락을 얻고, 공동체의 의례를 거치지 않고도 소속감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보상들이 가짜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애초에 "노력 후에 오는 보상"이라는 회로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노력 없는 보상은 뇌에게는 낯선 신호이고, 그 낯선 신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우리는 서서히 노력할 이유 자체를 망각해간다. 내 스스로의 소비 습관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사기 전에 후기를 열 개쯤 읽고,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확인하고서야 지갑을 연다. 겉보기엔 신중한 소비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판단하는 수고를 남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가깝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누군가에게 영향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는 일이다. 나는 내 취향, 내 기준, 내 실패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얼마나 잃어버렸는가. 선택지가 무한히 늘어난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근육을 잃어가고 있다.<br>이 진단이 개인의 습관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글은 이것이 사회 전체의 현상임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학업을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 하향 평준화된 학교 교육, 예의와 인내심의 퇴조, 감정과 즉흥적 반응이 이성적 숙고를 대체해버린 공적 담론.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물질적 풍요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는 통계였다. 안전과 행복이 반비례한다는 이 역설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발전이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균열을 낸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가 더 이상 그 학생의 사유의 산물이 아니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정보를 찾을 때 도구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도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편리함에 기대어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결과물은 얻되 그 과정에서 마땅히 형성되었어야 할 사고력과 인내심을 잃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처럼 평생을 관찰하고 고쳐 쓰는 대신, 완성된 답을 즉시 손에 쥐는 세대가 과연 무엇을 스스로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br>바보의 논의가 단순한 세대 비판이나 향수 어린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과거가 더 나았던 것이 아니다. 노예제, 신분의 굴레, 짧은 수명, 끝없는 육체노동 속에서 살던 이들의 삶을 우리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노력과 보상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어떻게 의식적으로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태도의 문제다. 노력을 찬양하는 것이 노력하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노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노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는 분명 운과 시대적 조건이 작용한다. 하지만 그 운을 붙잡을 준비, 즉 스스로를 갈고닦는 일만큼은 오롯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복권을 사지 않고는 당첨을 바랄 수 없듯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는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방향의 문제다. 노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방향 없는 노력은 소진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글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 즉 자신만의 열정과 규율, 스스로 세운 목표에서 노력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나에게 노력이란 결국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행위다. 그 거리를 인정하고 견디는 일이야말로, 즉각적인 만족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낸다.<br>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정말로 "애써서" 이룬 것이 있었는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손쉬운 자극과 편리한 대체물로 채우며 흘려보냈는가. 솔직히 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노력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게으름의 시대"라는 진단은 무섭지만, 동시에 하나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에 잠식되지 않을 나만의 영역을 지키자는 초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스크롤 대신 책을, 즉답 대신 스스로의 사유를 선택하는 일. 그 작은 저항에서부터, 잃어버렸던 노력의 감각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92/cover150/k072130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79298</link></image></item><item><author>koogi386</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독성 인간 - [독성 인간 - 그들의 다크 심리를 무력화하는 7가지 심리 전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68</link><pubDate>Sat, 01 Aug 2026 15: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7015249/174268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281&TPaperId=174268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68/coveroff/89013002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300281&TPaperId=174268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독성 인간 - 그들의 다크 심리를 무력화하는 7가지 심리 전략</a><br/>리앤 텐 브링크 지음, 김효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특정한 얼굴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들이었다. 분명 상처를 받았는데도 "내가 예민한 건가" 하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순간, 분명히 무례한 말을 들었는데 상대는 여전히 웃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던 순간들. 레안 텐 브링크는 그런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준다. 심리학은 이런 사람들을 "악한 사람"이라는 도덕적 언어가 아니라, 정신병질성,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가학성이라는 네 가지 특성이 겹쳐진 "다크 테트라드"라는 좀 더 차갑고 분석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특성들이 소수의 특별한 괴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모두 안에 조금씩 있다는 설명은 가장 먼저 나를 멈춰 세운 대목이었다.<br>나는 그동안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누군가를 단정 짓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이 특성들이 외향성이나 개방성처럼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는 성향이라는 설명을 읽으니, 오히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더 정교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분류하고 끝내는 대신, 그 사람의 행동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한 상황에서, 얼마나 일관되게 나타나는지를 살피는 것. 그것이 감정을 앞세운 판단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 글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첫인상과 진짜 성격 사이의 시간차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르시시즘이 높은 사람일수록 처음 만났을 때는 유독 자신감 있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왜 우리가 그렇게 자주 속는지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확신에 찬 태도를 실제 능력과 혼동한다. 취업 면접에서든 연애의 초반이든, 스스로를 확신 있게 포장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저 사람은 뭔가를 아는 사람이구나" 하고 쉽게 믿어 버린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가 존경했던 몇몇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실은 자기 확신만 강할 뿐 다른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경험. 그때 나는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뒤늦게 제대로 보게 된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br>크게 다가온 개념은 단연 "트리클다운 다크니스", 즉 한 사람의 어두운 성향이 조직과 가정으로 흘러내려 가는 현상이었다. 정신병질성이 높은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안고 퇴근해서, 정작 아무 잘못도 없는 배우자와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는 설명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까지 어떤 사람의 나쁜 행동은 그 사람과 직접 부딪힌 사람에게만 영향을 준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피해가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번져 간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성격이 얼마나 넓은 반경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동시에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떤 스트레스를, 누구에게, 왜 흘려보내고 있는가. 그 스트레스의 진짜 근원은 어디인가.<br>현실적으로 다가온 조언은 "그 사람을 사랑으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텐 브링크는 이것을 "너의 문제이지,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로 정리한다. 다크 테트라드 성향이 높은 사람은 대개 자신의 행동으로 원하는 것을 이미 얻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변화할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냉정하게 들리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관계가 어긋날 때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참고 이해해 주면 저 사람도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붙잡고 있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 변화의 동기는 결국 상대방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지, 내 인내심의 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던 죄책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br>책을 다 읽고 나서 남은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자신감과 능력을 혼동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의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나와 무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눈여겨보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리고 나는 어떤 관계에서, 매몰 비용 때문에 이미 답이 나온 결정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텐 브링크의 말대로, 이런 사람들을 알아보는 일은 결국 그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나 자신을 더 잘 아는 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첫인상에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고, 패턴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함께 빌려 오는 것. 그것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오래갈 교훈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7/68/cover150/89013002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7687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