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선방일기”...말 그대로 ‘일기’이다. 특이하게 저자는 지허스님이란 분이다. 스님이란 점이 특이해 저자 소개란을 보니 스님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는 듯하다. 이 글이 OO잡지 논픽션 부문에 당선됐다는 점 이외에는... 아무튼 이 글(일기)은 스님께서 1970년대 오대산 상원사의 선방(禪房)을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선방이란 스님들이 참선을 하는 방을 일컫는데,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일기는 동안거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종교가 불교가 아니라면 동안거란 말이 생소할 수도 있는데 잠깐 덧붙이자면 안거에서 나온 말이다. 안거란 스님들이 일 년의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산문(절) 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하는 기간을 말하며, 하안거는 4월에서 7월에 시작하며, 동안거는 10월에서 1월에 하게 된다.  

이 책은 총2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일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기간은 23일이 아니다. 대략 3개월 보름 정도인데 이때의 눈덮힌 오대산과 상원사 스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스님이 쓴 글들을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책이나 칼럼, 기고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글이 많다. 이 일기의 내용도 구성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절(상원사)과 선방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중요 일과들을 놓치지 않고 있어서 흡사 TV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전해져 오는 생각 혹은 느낌은 ‘인간적’이라는 단어였다. 속세의 삶을 거부한 사람들...속세의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을 잔잔한 미소 한번 띄우며 초개처럼 버린 사람들...그래서 오히려 신비롭고 경외스럽기까지 한, 그런 스님들이지만 그분들이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얻기 위해 3부족(식(食)·의(衣)·수(睡)부족)을 참으며 평생 고뇌하고 고행하는 그리고 더욱더 깨달음에 다가가기 위해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 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고된 세상살이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니 오히려 세상 것을 포기 하고 견성을 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견성 그 자체만도 멀게만 느껴진다는 지허스님과 다른 스님과의 대화는 글을 읽는 본인으로 하여금 큰 한숨을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주적 절차에서 시작해 공산적 마무리로 이어지는 절간의 공사(다수결의 원칙으로 절에서 행해지는 회의), 선방에서조차 고향이나 학력, 공부정도에 따라 유유상종으로 나뉘는 선방의 생태..‘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로 시작하는 뒷방(일종의 휴게실)의 야사(野史) 이야기, 그리고 다 같은 수행의 목적을 향해 다가가지만 생각이 다른 두 스님간의 유물(신체)과 유심(마음)의 논쟁,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를 지니고 이 화두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한 정신적 몸부림...그리고 거기서 오는 스님들의 마음 고생 등..책을 읽는 내내 선방에서 내내 수행하는 스님들의 사람냄새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방일기가 사람냄새나는 스님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 자신만의 생을 살아가야 한다. 어떤 이는 세속적인 것에, 다른 이는 세속 밖의 것에 가치를 둔다. 우리는 각자의 장(場)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 삶이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도 슬픔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과거의 사실만을 위해 서있는 망두석(望頭石)이 아니라 내일을 살려고 어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존재인 것과 같이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절밥만 축내며 나태와 위선을 쌓아 가는 것을 스님들이 두려워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의 나태와 위선을 두려워해야 한다. 견성을 하기 위해 한치도 방심하지 못하는 무서운 절박감 속에서 스님들이 살아가듯이 우리의 삶 또한 그런 절실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생이 진정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허스님이 동안거 해제 전 스님과의 대화이다. “인간은 초월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완성될 수 있고 인간의 조건은 조화될 수 있습니다” 조화된 조건속에서의 완성된 인간...우리의 삶속에서도 가능한 삶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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