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이데아총서 13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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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주의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역사주의가 단지 그것이 철학적 사조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천철학으로서의 기반을 다지면서 사회적으로 표면화되어 많은 문제를 남기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안에서 불규칙한 변화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에 대해 예측 가능한 결론을 얻으며 미래의 현상에 대해서 예측할 수도 있게 된다. 이것을 K. 포퍼는 '역사주의적 방법'이라고 비난했다. 즉 역사주의적 방법은 현상의 원인을 과거의 基源에서 찾아내며 그것을 未來에 代入하여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K. 포퍼가 이 책의 全部를 통해 역사주의와, 전체주의에 加한 비판은 벌써 세계가 그로 인해서 전쟁의 상처를 얻은 것을 애통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플라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은 역사주의와 전체주의의 폐혜를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플라톤이 그의 대표작 <국가론>에서 계급을 3등분하여 계급에 맞는 교육(기회와 방법적인 측면에서), 생활 영역, 권력 등을 부여한 것은 그가 얼마만큼의 조화와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의 Idea論은 안정되고 조화로운 상태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인간조차도 독립적인 아니 고립적인 존재이다. 한 인간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부여받은 그의 위치에서 떠날 수 없는 운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사고는 역사주의적 방법에 의한 것으로서 전체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될 수 있다.

역사주의는 순수지식의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론일 것이다. 예상 가능한 변화만이 존재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공식은 감각적 세계에서는 많은 오류를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감각적 사물들은 변화하고 遺傳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변하는 순수한 지식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역사주의는 '形而上學的 理想主義'와 매우 흡사하다.

K. 포퍼가 말하는 인간은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과는 대조적이다. 인간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이러한 사고를 그는 '비판적 이원론'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비판적 이원론은 역사 이래로 이루어졌던 사고의 발전과정(소박한 일원론-생물학적 자연주의-윤리적, 법률적 실증주의-심리학적, 정신적 자연주의-비판적 이원론의 順)의 마지막 단계이다. 심리학적, 정신적 자연주의에서의 인간은 사회의 부속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사회의 가치와 동일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비판적 이원론에서의 인간의 가치는 神的인 불꽃으로서의 理性, 진리에 대한 사랑, 인간다움에 대한 사랑, 美와 善에 대한 사랑 등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가치의 실현은 열린사회의 진정한 모습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K. 포퍼가 행했던 위와 같은 비판철학적 思惟는 철학사에 가장 중요했던 업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리적 제한 때문에 형성되었던 닫힌 사회의 종말을 역시 같은 논리로서 지리적 개방과 교류에서 찾는 것은 너무 제한적인 사고였다고 생각된다. 열린사회로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들에 대한 검증의 소홀함은 이 책에서 남는 하나의 아쉬움이다.

나는 많은 책을 필요로 하는 연구물에 대해서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고민이 담긴 思想書를 사랑한다. 바로 K. 포퍼가 썼던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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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론 박영신서 3
플라톤 지음, 이병길 옮김 / 박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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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에 관하여'라는 副題가 붙어있는 '국가론'에서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그는 이 책에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데 그 방법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의 스승이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했던 산파술을 취한다. 그는 '정의'라는 개념을 가지고 그의 철학적 사고를 펼쳐나간다. 그것은 그가 꿈꾸는 理想社會로의 移行을 간절히 바라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神的인 완전함을 말하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 정의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의 例를 들면, ‘트라시마코스’는 완벽한 不正을 정의롭다고 말한다. 그는 그 시대 사람들이 利益을 위해서 몸이 가르키는 대로 사는 모습을 代辯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소크라테스(플라톤)에 의해서 반박된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정의를 한마디로 못박아 말하고 있지 않다. 플라톤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정의를 말하기 위해서 '동굴안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어두운 동굴 안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살고 있다. 그들은 기둥에 부자유스럽게 묶여있어 그들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동굴의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 뿐이다.

그들의 뒤에 眞理가 있어도 그들은 진리의 實體를 보지 못하고 진리의 그림자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靈魂과 肉體로 구분되는데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진리로 認識하고 그것에 그치는데 불과하지만 영혼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데아(동굴밖에 존재하는 빛)-진정한 실체-를 바라보려 한다. 그는 인간의 정의를 직접 설명하는 것을 국가의 정의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국가에는 통치자, 군인, 농민(피지배자)이 존재하는 데 국가가 정의롭기 위해서는 각각의 계층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德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덕이란 '탁월함'을 意味한다. 탁월하다는 의미는 구두공이 구두를 가장 잘 만드는 것을 의미하고 악기가 제기능을 다하여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는 국가론을 통하여 哲人왕을 교육시키는 방법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두고 플라톤이 정치적 야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設도 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그가 이루지 못한 정치적 야심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가 통치자, 군인, 농민 등을 통해서 각각의 탁월함을 덕이라고 보고 그의 正義論을 펼쳤던 것을 주시해야 한다.

플라톤이 말했던 이러한 계층적 분류법은 후에 많은 批判을 받게된다. K.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敵들'이란 저서에서 플라톤을 '열린사회의 적'이라고까지 빗대어 표현한다. 사실 그의 이데아 철학은 理想的 性向을 짙게 띄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정의에 관한 생각은 이후의 哲學史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남기고 특히 그의 이데아 철학은 지금까지 기능적이었든지 갈등적이었든지 어떠한 형태로든 철학의 내용이 되어왔다는 것은 否認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실이 플라톤을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며 부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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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신옥희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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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언제나 우리의 내면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종교(기독교, 이 책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언급을 주로 하고 있다)가 나야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언제나 칸트의 도덕이론의 중심이 되는 準則, 자유의지, 도덕법칙, 선, 악의 개념을 가지고 종교의 근거를 마련한다. 이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제시했던 그의 도덕론을 종교에까지 확대 적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참된 종교에 대한 칸트의 定義는 그것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그는 참된 唯一의 종교는 도덕 법칙들, 즉 실천적인 원리들 밖에는 아무것도 포함하지 않는 이성적 종교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제시한 바 있는 定言命令 '너의 意志의 준칙이 언제나 보편적인 도덕법칙에 맞게 행동하라.'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그는 참된 종교의 근거를 자신의 도덕론에서 찾은 것이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증명되고 있으며 나는 그 증명이 매우 일관성 있고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신의 믿음에 대한 고전적(중세) 입장으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했던 믿음자체의 믿음(그는 논리적인 진리보다는 신의 정신속에 있는 영원한 이념들이 진리의 본질이라고 보았다)으로서의 입장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주장했던 이성적 믿음(그는 인간의 가장 완전한 능력을 이성이라고 보고 신으로 다가가는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서 이성의 사용을 들었다)으로서의 입장인데 아무래도 칸트는 後者에게 손을 들어준 것 같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란 책의 제목이 암시해주듯이 종교가 이성을 벗어나서는 狂信, 우상숭배의 종교에 이른다고 본 것이다.

현재 종교는 전 세계를 걸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배자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기독교 인구만을 따진다고 하더라도 천만명을 훨씬 웃도는 추세이다. 그런 반면, 우리는 聖經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알지 못하며 神이 바라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해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영혼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종교에 대한 맹목적이고도 위험한 잘못된 신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칸트는 不正하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신이 원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신이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잘못된 믿음에 대해서 그저 신의 관용만을 기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異端宗敎의 유형들을 우리주변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칸트를 연구하는 학자만이 접하는 연구서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올바른 종교생활을 원하는 많은 종교인에게 반드시 읽혀져야 할 필독서로 보여진다. 지금 신에 대한 바람직한 봉사와 신앙인에 대한 합당한 은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진정한 종교인으로서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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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최명관 옮김 / 서광사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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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또는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고대로부터 철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존재에 대한 충분한 고찰은 플라톤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인간에게 이데아(Idea)라는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의 멍에를 씌웠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가능성 없는 철학은 절름발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그의 스승과는 다른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그 인간의 존재 근거를 행복에서 찾는다. 그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德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덕이라는 것은 무릇 어떤 존재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태보다 더 좋은 처지에 이르게 하며 그것의 기능도 잘 발휘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덕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中庸이라 한다. 덕을 실천함에 있어서 過度나 부족은 좋은 상태가 못 된다. 이것들은 모두 惡德의 상징이다. 중용이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둘째, 행복의 조건으로 중용과 더불어 절대자에로의 思考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절대자에로의 사고라는 것은 결국 理性을 대변하고 있다. 이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神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습관을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용기나 절제 등이 습관에 의해서 발생될 수 있으며 중용에 의해서 보존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덕에 입각한 정신의 어떤 활동이다.' 이 간단 명료한 정의 속에는 위의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에 대한 그림자이다. 행복은 덕을 실천하는 데서 오고 덕은 모든 것을 가장 좋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그것의 방법은 언제나 중용을 지키는 데 있다.

이 책은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도덕적 해이 현상(moral hazard)에 일침을 가한다. 이제 행복의 기준은 돈, 명예, 性的 쾌락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인간 밖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모르는 듯하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인간적이고 神的인 이성의 계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이성의 계발은 도덕적 덕목들의 습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뒤르케임(E.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인간의 자살은 사회의 아노미(anomie)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아노미 현상은 인간이 인간 외적인 要素에만 치우치고 인간 내적 요소인 이성을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오는 혼란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이제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再考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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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공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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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생활일 것이다. 歷史는 生産의 역사이다. 이제껏 역사가 보여준 몇 단계의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發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발전이라는 단어는 경제적 효율성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물건(어떠한 것이라도 좋다)을 만드는 데 이제 오랜 시간의 手作業과 많은 人力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은 '勞動의 굴레'에서 벗어나 더욱 행복해 지리라고 생각했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 책 내용에 대한 기본 전제가 된다. 이러한 변화를 설득력있게 증명하는 이론이 마르크스의 '史的 唯物論'이다.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적유물론'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되므로 약간의 紙面을 할애하기로 한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上部構造와 土臺로 양분했다. 토대라는 것이 경제 구조인데 이는 다시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분된다. 생산력은 노동력이나 생산수단을 말하고, 생산관계는 노동의 사회적 계급관계나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말한다. 생산력은 歷史以前부터 계속해서 지속적인 발전이 있었다. 이러한 생산력의 발전은 생산관계를 바꾸어 놓는다. 또한 생산관계의 발전은 뒤이어 상부구조의 틀을 뒤바꾸어 놓게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 따라서 현대까지 歷史上 4단계의 경제 발전 과정이 있었다. 첫째 원시공산재, 둘째 고대노예제, 셋째 중세봉건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산업혁명 이후의 근,현대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 체계로서 공산주의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豫言으로 그칠 듯 하다.

이 책에서 비비안느 포레스테가 공포라고 말한 것은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한 잉여노동력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을 말하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것은 고급인력의 필요와 반드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 단순 노동자들은 이제 그들의 힘을 생산에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구조가 발전해왔다는 것은 사회에서의 경제적 의존도가 계속해서 증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제 사회의 가치는 경제 가치와 동일어가 되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가치 인식은 잉여노동력과 맞물려 인간소외현상을 유발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업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만 우리가 또 관심을 갖어야 할 것은 가치론적 측면이다.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수익성을 올리는 데 이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자들의 삶도 과연 유용할까?'라는 질문으로 잉여 존재(사회에 해로운 존재로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가치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두려워해야 하는 까닭은 국가가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국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斷言하지만 계속해서 실업률은 증가하고 있으며 생산수단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실업문제가 끝없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국가는 끝없이 실업자들을 흡수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간은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不幸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노동을 신성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가? 비비안느 포레스테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그녀는 노동이 추상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이제 노동이 無價値하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IMF 경제위기 속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의 한국 실업자들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과 놀라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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