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덫 걷어차기
딘 칼란 & 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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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은 전에 리뷰한 세계 절반 구하기와 같은 문제를 다룬다. “서구 세계가 지난 50년간 대외 원조로 2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말라리아 치사율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기 위한 12센트에 불과한 약품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 3000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가난한 가정에 4달러짜리 모기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세계는 2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500만건의 어린이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3달러를 초보엄마 들에게 지급하지 못하고 잇다, 서구 세계는 2 3000억달러를 지출했지만 아마레치는 여전히 나무를 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선의의 동정심을 가지고도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이다. (이스털리)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스털리는 그 이유를 원조계획의 패러다임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이책은 원조 프로그램의 디테일이 문제라는 관점이다.

 

이스털리의 책은 이 분야에선 상당한 지명도를 얻었다. 저자의 전공이 개발경제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세계은행 고위직에서 오랜 실무를 거치면서 얻은 결론을 구체적이면서 체계적으로 말한다. 책 자체의 급으로 보자면 이책보다 몇수 위이다.

 

그러나 이스털리의 책은 내부자의 관점이다. 다시 말해 원조를 주는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한다. 원조기관에서 오래 근무한 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왜 문제가 일어나는가를 원조를 받는 입장에서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책의 가치는 그 관점에 있다.

 

이책의 내용은 잡다하다 하겠다. 행동경제학 서적들이 원래 그렇듯이 다양한 사례들이 나열되지 그 사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시스템은 없다.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어 뭐가 있었지 뭐가 있었지 하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어쩌다 책에서 읽었던 경우와 연결되는 일을 겪을 때 아 하고 떠오르면 다행인행동경제학 책이 원래 그렇다. 이책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책은 행동경제학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을 어떻게 실제 현장에서 응용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이책이 원조를 받는 입장의 시점을 취할 수 있는 것은 행동경제학이란 관점의 힘이다.

 

이 책의 내용은 잡다하지만 기본 골격은 모두 동일하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실제 효과가 있는가? 효과가 있는가는 확인해봐야 할 문제이다. 그럼 어떻게? 현장에 가봐야 안다. 문제는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이다. 저자들은 그 답을 행동경제학에서 찾는다.

 

이책의 내용은 저자들이 실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데 참여했거나 프로그램을 검증해본 것들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단지 그 검증의 방법론이 행동경제학이라는 것이 이책의 특징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봤자 이책이 무슨 내용일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사실 이책이 말하는 프로그램의 검증방법은 굳이 행동경제학이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자들이 하려는 말은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 경제학의 호모 이코노미쿠스 모델에서 벗어나 실제 현장의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가를 가서 확인하자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의의는 주류경제학의 편협한 관점을 버리자는(또는 확장하자는) 것 이상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이 실제 말하는 내용은 심리학이나 사회학, 정치학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단지 그 연구자의 월급이 나오는 곳이 경제학과이기 때문에 경제학이란 말이 붙었을 뿐이다.

 

이책의 구체적 내용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사회과학 어느 과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책의 의미는 사실 방법론에 있지 않다. 행동경제학이 경제학에선 새로울지 모르지만 다른 분과에선 언제나 하던 일일 뿐이다. 아마도 이책의 작업은 인류학자들이 더 잘했을 것같다. 이책의 의의는 저자들이 보여주는 프로그램 검증의 방법론보다는 실제 저자들이 해온 작업을 책으로 엮었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이책의 반 이상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효과를 검증하는 것에 할애되는데 이책을 읽어가다보면 막연하게 좋은 것이라 알고 있던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실제와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책의 의미는 저자들이 실제 했던 필드워크라는 점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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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땀 성왕의 피 -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대우학술총서 신간 - 문학/인문(논저) 603
김상준 지음 / 아카넷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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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 속의 한국많이 들어본 말이고 많이 해온 말이다. 그러나 그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난 한 세기 그말을 할 때 우리는 한 없이 작아졌다. 세계의 변방에 불과한, 별볼일 없는 나라. 세계지도를 펴놓으면 한 없이 작아질 뿐인 나라. 스스로는 호랑이라 우기지만 사실은 겁많고 별볼일 없는 토끼일 뿐이라 속으로 되뇌이던 나라.세계 속의 한국을 정의하던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지도의 중심은 태평양이 아니라 대서양이었으니까.

 

우리는 가운데에 태평양이 그려진 세계지도를 보고 자랐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을 가본 사람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보는 세계지도는 영국 그리니치가 중앙에 온다. 세계의 중심은 대서양이다. 그런 지도에서 한국은 쉬렉의 대사처럼 far far far away (‘겁나 먼이라 번역되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far east 어디에 처박힌 변방이라 부르기도 힘든 나라일 뿐이다. 그들로서야 당연한 지도이고 당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우끼는 것은 우리 스스로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야 우리는 far east에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왜 그말을 그대로 번역해 극동이라 말했는가? 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인정하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초가집도 없애고~~’ 과거는 부정하고 잊어야 할 무엇일 뿐이었다. 단군 이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자던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과거를 청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새마을운동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풍물놀이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그런 전통문화가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그런 과거를 부정하고 경멸하며 없어져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사라진 것은 초가집만이 아니라 초가집에 살던 문화도 함께였다. 그때 없어진 것이 식민지 시절 없어진 것을 월등히 넘어선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는 과거는 부정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시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이제는 떳떳하게 세계 속의 한국을 외치고 나아가 한국 속의 세계를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자신감을 보이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이다.

 

한세대 전만 해도 ‘Japan as No.1’이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세계제일은 커녕 세계의 병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흔히 비전의 상실을 말한다. No.1이란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따라가지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다 따라잡고(catching up) 나니 방향을 잃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비전을 잃어버렸기에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고 어쩌면 30년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성장동력이 바닥났다,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10년을 허송세월했다. 흔히 하는 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이겠지만 일본처럼 비전의 상실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서쪽을 보아봤자 무엇을 할 것인가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답을 찾을 때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가? 오직 동아시아만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따라갈 길이 남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근대화(솔직치는 서구화)의 길은 사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그 길은 13세기 중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화의 핵심어인 근대란 개념은 거의 베버의 정의를 따른다. 베버에 따르면 근대성은 합리성이며 근대화는 합리화의 과정이다. 베버가 여기서 말하는 합리화의 내용은 보통 도구적 합리성으로 이해된다. “한 마디로 집약하면 전 사회의 합리화이고 그 기본축은 1. 합리적 자본주의, 2. 합리적 법-행정체계 3. 합리적 사회분화이다.”

 

베버에 따르면 그러한 합리화는 서구, 오직 서구에서만(in the West, in the West only)’만 일어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합리화의 과정으로서 근대화를 도구적 합리성이 관철되는 과정으로만 보지 않는다. 저자는 근대성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도구적 합리성과 가치 합리성, 베버의 두가지 합리성 모두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보더라도 근대화 과정은 서구, 오직 서구에서만일어난 것도 아니고 서구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구에서 근대화가 일어난 것은 먼저 송제국에서 일어난 합리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는 후발자의 이점을 이용하여 다른 문명의 근대적 요소를 빠르게 흡수하였고 특정한 역사적 국면(여기서 저자는 리오리엔트에서 프랭크가 지적한 시점을 염두에 두는 것같다)을 이용하여 특정한 역사적 국면을 이용해 본격근대로 진입하는 계기를 앞서 포착하였을 뿐이다.’

 

물론 본격근대(High Modernity)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함께였다. 그러나 근대성의 시작은 서구가 아닌 13세기 중국이었다. 이 시기를 본격근대가 시동하는 장기16세기와 대비해 초기근대(early modernities)가 시동한 장기12세기라 부른다.

 

초기근대의 최초 표출양상은 서유럽이 아니라 중국 송원 연간의 사회경제적, 정치문화적 전개 양상에서 풍부하게 발견된다. 그 특징은 정대주의적 통치권의 확립과 비판적 권위를 확보한 학인-관료집단의 형성,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농촌수공업의 성장, 수력양수기, 수력풀무, 대형방적기 등의 기계발명과 코크스 (강철) 제련 등 철강 부문에서의 혁신 등에서 보이는 다양한 기술혁명과 초기공업화, 도시, 교통, 화폐 및 무역 영역의 인프라 발전이다. 그 기반은 송대에 이루어졌고 몽골제국은 그 성취를 흡수하여 당시로는 가공할 수준의 전쟁, 행정, 건설, 교역 역량을 갖춘 세계체제를 구축했다.”

 

대원제국과 함께 처음으로 실제적인 세계화가 시작된다. “’ 16세기의 결과 팍스 브리태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가 출현했다면 유라시아의 12세기의 결과는 몽골세계제국, 즉 팍스 몽골리카였다. 유럽의 긴 16세기가 그렇듯 송원 연간의 긴 12세기 역시 세계적인 변화의 시대였다.”

 

팍스 브리태니카와 팍스 아메리카나가 본격근대를 전 세계로 확장했듯이 팍스 몽골리카 역시 송조에서 시작된 초기근대를 전세계로 확장했고 그 바탕 위에서 장기 16세기가 가능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 몽골리카는 분명 닮아있다. 몽골 전통의 초원의 군사력에 유라시아 세계 최대 중화의 경제력을 합체시키고 게다가 종래부터 몽골과 공생에 가까운 관계에 있었던 무슬림의 상업권을 전면적으로 활용한 경제 지배하는 신방식이었다. 현대풍으로 말을 바꾸면 쿠빌라이의 신국가는 군사 초대국이며 경제 초대국임과 동시에 초대형의 통상입국이 된다.”

 

본격근대만 폭력으로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초기근대 역시 폭력으로 세계화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세계화가 그랬듯이 팍스 몽골리카 역시 하드웨어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역시 강했기에 가능했다. 그 소프트웨어는 송조에서 시작된 근대성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그 초기근대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장기 12세기와 장기 16세기의 결과인 세계화는 베버의 도구적 합리성 개념만으로도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 12세기가 왜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장기 12세기를 설명하기 위해선 근대성이란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베버를 깨기 위해선 다시 베버로 돌아가야 한다. Return to Weber!

 

저자는 지금까지 베버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고 본다. 베버 이론체계가 해결하려는 모순을 파악한 경우가 드물다고 저자는 본다.

 

TRIZ 이론에 따르면 혁신은 모순의 극복이다. 예를 들어보자. 90년대초 까지만 해도 하드 디스크의 용량은 80MB가 최대였다. 어느 업체에서 “200MB를 상용화하겠다고 했다. 3-4개월이 지난 후 연구원은 열심히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기록용량을 올리려면 기록이 정확해지지 않는다. 데이터 저장 시 에러가 너무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러를 줄여 기록의 정확성을 높이면 용량이 작아진다. 그래서 하드디스크의 헤드부분의 길이를 조절하거나 하드디스크의 기록 플래터 모양을 최적화 하는 등 각 부분의 개선과 최적화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해 8“IBM 왓슨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하드디스크 저장 원리를 개발하여 년말까지 1GB 하드디스크 양산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다음 날 연구원은 인터넷에 발표된 IBM의 새로운 저장방식을 이해할 수있었다. IBM의 방식은 정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저장용량을 10GB까지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이후 이 방식은 업계의 표준이 되었고 수많은 업체들이 로열티를 주고 그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원은 이렇게 되뇌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김효준)

 

IBM의 방식은 플래터를 여러장 쓴다는 아주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러면 용량과 정확성의 기술적 모순은 간단하게 해결된다. 모순을 해결한 IBM의 방식이 업계 표준(dominant design)이 되었듯이 학계의 표준(dominant design) 역시 모순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론은 공학과는 다르다. 공학의 현장이 모순의 해결이라면 이론은 모순의 파악과 관련이 있다. 현실의 근본 모순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것이 이론이다. 그 모순이 근본적이고 화해불가능할수록 이론의 힘은 강력하다. 저자는 베버의 이론체계 역시 모순과의 대결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모순이 무엇이엇는지 베버의 사후 잊혀졌다고 저자는 본다.

 

베버의 사회적 행위이론의 핵심은 행위 동기의 이원성, 그 이원성의 화해불가능한 대립성을 강조한 점에 있다. 그 대립이란 행위의 수단합리적 성격과 가치합리적 성격 간의 대립이며 물질적 이해와 이념적 이해 간의 대립이다. 이러한 행위 동기의 적대적 이원성에 관한 이론은 베버 사회이론의 또 다른 특징인 정치와 윤리 간의 영원한 갈등이라는 문제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베버에게 물질적 이해(또는 수단합리성)와 이념적 히애(또는 가치합리성)는 근본적으로 화해불가능한 동기이다. 그 근원에서 볼 때 전자는 현세적 이해추구인 반면, 후자는 구원의 이해, 즉 피안적 이해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전자는 경제-정치 영역과 후자는 종교-윤리 영역과 관렫된다. 이 양 가치의 대립이 화해부가능한 이유는 종교-윤리적 정의는 현세 존재 자체의 부정의한 성격과 근본적으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베버의 모순은 물론 베버가 발견한 것은 아니다. 이성과 오성을 분리한 칸트의 발견이었다. 칸트에게 도덕은 현실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요청되어야 한다. “베버의 이념적 이해 개념은 칸트가 말한 도덕적 이해관심 또는 실천이성의 진정한 동기에 준하는 개념이다. 칸트는 정념의 경향성과 무관한 요청인 도덕성이 또 하나의 이해관심과 옹기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철학적으로 풀이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주학의 개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유학을 풍미했던 理氣論을 베버의 전철수(switchman)’ 이론이나 칸트의 도덕동기론으로 풀이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왜 윤리적 요구인 가 현세적 인과고리의 논리인 의 형상을 빌려 또는 기를 타고() 나타나는가에 있었다. 칸트 역시 욕구능력이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성의 원환에 갇힌 인간존재에게 도덕적 동기가 경향성으로 드러나는 난제를 풀기 위해 고심했다. 칸트에게 도덕동기란 기를 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와 기, 성과 속, 양자는 항상 얽혀 있었다.”

 

베버라면 떠오르는 말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일 것이다. 베버의 이론체계에서 그책은 종교사회학이란 거대한 프라젝트의 작은 사례연구일 뿐이었다. “베버 종교사회학의 주제는 다양한 가치합리성의 존재양식에 관한 분석이다.” 이는 기의 세계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기의 초월이기 때문이다. 기 즉 속, 또는 차안에 대해 이 즉 성은 피안이다. 베버는 성이 어떻게 속의 세계에서 태어날 수 있었는가를 파고들었고 속의 세계, 차안에서 태어난 피안, 성의 세계를 세계윤리종교라 불렀다. “세계윤리종교의 탄생과 함께 의식과 제도의 차원에서 세계성과 초월성이 출현하고 그 결과 현존 질서가 최초로 의문에 부쳐졌다. 이러한 점들은 세계윤리종교의 공통된 특징이다.”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는 베버의 종교사회학 연구에 기초한다. 저자는 축의 시대에 근대성의 원형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근대는 성과 속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가의 문제라 말한다.

 

저자는 축의 시대를 성이 속을 통섭(encompass)하는 세계로의의 전환이라 요약한다. “통섭이란 원리에 의한 통괄적 포섭을 의미한다. “유럽 중세 카톨릭의 교황정치, 유교의 성인 정치, 불교의 전륜성왕정치, 힌두교의 브라만-푸로히다 정치, 이슬람의 이맘-울라마 정치는 역사적으로 각각 다르게 현상하지만 성이 속을 통섭했다는 구조에 있어서는 상동이다. 성이 속을 통섭하는 세계질서의 기원은 막스 베버가 말하는 고대 세계윤리종교의 출현과 맞물린다. 세계윤리종교의 탄생과 함께 의식과 제도의 차원에서 세계성과 초월성이 출현하고 그 결과 현존질서가 최초로 의문에 부쳐졌다. 이러한 점들은 세계윤리종교의 공통된 특징이다.”

 

물론 이때 처음 종교가 출현한 것도 성이 탄생한 것도 아니다. 보편종교는 성의 위기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 에덴동산이나 노자의 소국과민은 모두 고대도시, 고대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의 상황을 말한다. 도시와 국가는 예나 지금이나 고도의 인위와 작위의 산물이다. 착취와 전쟁이 체계화, 대규모화한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방법론들이 고도화된다. 고대과학, 고대재정, 고대행정, 고대병참의 술과 학이 발전한다. 이러한 연상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세속화라 불러야 마땅하다. 마술적 힘으로 가득한 신화적 세계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세속적 힘과 이해관계, 욕망의 계량학과 함수관계가 새로운 군주로 등극하기 때문이다. 기축시대를 전후했던 상황은 근대가 출현했던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이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결과가 보편윤리, 세계종교엿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초월의 탄생이란 점에서 이 시기를 원형근대성이 태어난 시기라 말한다. 세속화, 즉 근대는 (내용은 다를지라도) 보편성의 합리화, 즉 기를 초월한 이가 기를 압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들어 기든스는 근대성의 본질을 구체성을 탈피한 추상체계의 운동으로 본다. 그가 근대성의 핵심으로 보는 시공간 거리화는 power가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disembedding되는 abstraction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시공간 거리화로 나타나는 권력은 구체적 의 세계에서 추상된 로서, 초월로서 작동한다. 기로부터 독립한 이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과정이다. “근대성이 해방시킨 과학기술과 물질적 생산력은 애초에 혁명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역시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는 비전과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돌파가 없다면 불가능했다.”

 

저자가 고대 윤리종교에서 읽어낸 근대의 원형은 초월이다. 그리고 축의 시대에 탄생한 초월 즉 성의 본질은 폭력이 촉발한 윤리의식이엇다. “야스퍼스는 이 시기에 인류가 최초로 윤리적 감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윤리란 주어진 현세의 현상과 힘 자체를 회의하고 초월하는 반성력이다(기든스는 reflecxivity를 근대성의 핵심으로 본다). 이러한 윤리적 각성은 현세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이러한 각성 이후에는 현세적 사실과 윤리적 초월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한다.” 칸트가 말했듯이 윤리는 현실에서 주어지 않는다. 윤리는 현실을 초월한다. 저자가 말하는 근대의원형이란 눈 앞의 주어진 시공 안의 현실과 시간 밖의 시간’, ‘공간 밖의 공간에서 오는 이념 사이의 윤리적 긴장관계였다.”

 

유교를 유교답게 하는 근본적 안티노미는 폭력과 성스러움의 화해할 수 없는 긴장이었고 그 긴장의 집약은 성왕론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스러운 임금의 교의 즉 성왕론은 유교이념의 핵심일 뿐 아니라 유교정치체제의 근간이다. 유교의 예란 이러한 이념과 체제를 작동시키는 행동원리다. 성스러운 임금이라는 교의에는 강한 역설이 배어 있다. 어떻게 권력투쟁의 중심에 서 있는 현세의 군주가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있는가?” 성왕론은 성과 속의 긴장이며 나쁘게 말해 반사실적인 픽션일 수 밖에 없다. 성왕론의 근거 자체가 픽션이었다.

 

성왕론의 근거는 요순이다. “서경의 요임금 묘사에서 우리는 전쟁, 질투, 패륜, 음모, 갈등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한 점 폭력의 티끌조차 존재하지 않는 션세의 군주에 대한 묘사는 참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유교적 안티노미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모아진다. 요순이 성스러운 이유는 신화적 영웅들의 성스러움과 정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한없이 선하고 한없이 부드럽고 한없이 검약하고 한없이 백성과 혈육을 사랑한다. 이것이 유교의 창건자들이 바라던 군주의 모습이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폭력의 흔적을 유자들이 제거한 결과일 뿐 실제 역사는 어디서나 그랬듯 폭력의 역사였다. 고대국가가 성립하던 시절 중국 역시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영웅시대였고(영웅시대에 대해선 축의 시대리뷰 참조) 전쟁귀족의 시대였다. “회남자에서 요임금의 모습은 무인 군주에 가깝다. 여씨춘추에는 요임금의 모습은 여러 종족들 간의 치열한 투쟁의 존재와 이 투쟁에서의 최종적 승자로서 나타나고 있다.”

 

성왕론의 요순은 조작된 이미지이다. “유교의 창건자들은 폭력에 대한 윤리적 혐오감이라는 전혀 새로운 감성을 중국 문명에 최초로 이념적으로 체계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념은 현실에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다. “공자는 요순을 주자는 공맹을 보았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아브라함을 보았고 루터와 칼뱅은 다시 구약의 예언자들을 보았다. 인도의 개혁 사상가들은 늘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로 돌아갔다. 그들은 현재에 없는 현재., 즉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에 업는 것이므로 과거를 빌려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았던 까닭은 그들이 살고 잇는 현재가 너무나 많은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없는 현재를 보는 그들의 비전은 현존하는 시공의 인과 안에서는 탄생할 수 없다. 현실 질서의 인과의 밖, 시간의 밖의 시간의 차원이 없다면 인류문명의 결정적인 톨파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이념의 탄생이야말로 윤리적 각성, 초월적 긴장의 탄생을 말해준다. 무엇인가 부당하고 잘못되었다는 의식이 내포되어 있다면 초월적 계기가 싹트고 있는 것이다.”

 

세계윤리종교들은 성과 속의 대립 위에 태어났다: “불의가 존재하는 무질서의 우주와 어떤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 질서의 우주그러나 유교는 특이하게도 그 성과 속이 모두 현세에 있다. 다른 종교들이 내세적 초월주의였다면 현세적 초월주의인 유교는 정치종교였다. “유학자들은 정치현실을 떠날 수 없다. 그들의 성인 군주는 하늘이 아닌 현실에 있었던 것으로 상정되어 있고 그들이 살아가는 당대의 현실군주의 모습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왕응ㄴ 비현ㅅ길이자 당위적 현실이다. 그들의 군주를 성왕에 가깝게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엄숙하고 신성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이행하는 일은 현실과 당위 사이의 끝없는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다.” 그 긴장의 핵심은 왕권의 폭력성과 비도덕성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였다.”

 

막스 메버의 말마따나 모든 국가의 본질은 폭력의 합법적 독점에 있다. 더 줄여 이야기하면 국가문제의 핵심은 폭력이다. 유교 성왕론 안에는 국가에 대항하는 국가라는 유토피아적 신화가 감추어져 있다. 유교는 국가폭력의 주인인 현실 군주를 절대적으로 평화로운 무결점의 요순 임금이라는 신화로 꽁꽁 묶었다. 유교의 국가 이념이 잇다면 그것은 폭력 없는 구가다. 폭력 없는 국가체제, 그리고 국가간 체제가 가능한가? 그것은 이미 국가 너머의 국가요 국가 간 체제일 것이다.”

 

카톨릭 교회가 그랬고 유교가 성왕론으로 그랬듯이 현실을 초월한 성의 이름으로 속을 컨트롤한 시기를 저자는 통섭 I의 시대라 부른다. “통섭 I의 세계에서는 성의 영역이 물적 현상계를 물샐틈없이 감싸면서 통섭하고 경고하고 계도하고 잇다고 믿었다. 물적 현상계는 그를 통섭하는 성의 영역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단계에서 성과 속은 비록 분별되지만 같은 거소, 같은 시공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물론 성의 압도적 위에서였다. 그래서 높은 곳, 하늘의 공간적 이미지가 어느 문명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햇다.”

 

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근대성은 통섭I의 세계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축의 시대와 함께 인류는 고등문명의 세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근대성의 세계를 통섭II의 질서라 부른다.

 

통섭I의 질서는 막대한 긴장을 수반했다. 그 진장의 근본적 원천은 베버가 통찰했던 바와 같이 현세적 질서가 초월적 질서에 의해 상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즉 성속 통섭의 틀 자체가 강한 긴장의 원천이 되엇다. 그 긴장의 내가 결과 통섭II의 질서가 출현했다. 베버의 종교사회학과 역사사회학은 그러한 통섭관계에서 비롯한 역사적 제도적 긴장응ㄹ 강조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유럽에서 발생한 통섭 전환(통섭I에서 통섭II로의 역적)에 대한 하나의 뛰어난 사례분석이다. 통섭전환의 예는 유럽의 종교개혁이다. 중세 카톨릭 교황정치는 성이 속을 통섭하는 전근대 모럴폴리틱의 유럽적 표현형태였다. 개신교는 현세의 질서 자체를 신성화한 중세 카톨릭 교리에 반발했다. 예정설은 현세 인과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중립화했다. 그 결과 신성함의 근거는 내면화된다.”

 

저자는 그러한 통섭전환이 중국에선 장기12세기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송원연간에 관찰되는 초기근대의 증거들은 이 시기가 한당으로 이어졌던 중구의 고대제국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던 시기였다는 점에 있다.” 위진남북조와 510국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세습귀족체제는 무너지고 사대부 계층이 등장한다. “성의 구현이었던 황실, 조정의 질서는 더 이상 절대적인 신성함의 지위를 독점하지 못한다. 조정만이 아닌 재야가 공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공 개념의 함의 자체가 현실 체제의 황통의 정당성을 초월하는 보다 높은 수준의 보편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기서 하버마스가 말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의 유교적 표현 형태를 읽을 수 잇다. 아니 근대적 公觀은 중국에서 일찍이 선취되었다공권력을 분점하던 귀족의 몰락하면서 송 이래 중국에서 성립한 절대주의적 황권이란 바로 이러한 황제 아래 전 인민의 평등(月印千江 萬川明月)이라는 새로운 신분적 상황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 절대주의란 16세기경 유럽에 등장하는 절대주의 체제와 비견된다. 근대주권의 초기 형태 역시 동아시아에서 선행하고 있었다.”

 

주자학은 이런 시대의 이념이었다. 주자학의 이기론은 이와 기를 나눈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한당 시기까지 중국적 사유에서 이 양자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 세계는 (유교), (불교) (도교)의 신성함 속에 잠겨 있었다. 즉 성이 속을 통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주학에서 세계는 기로 이루어지고 기에서 가 분리된다. 정주학에서 이는 내면화된 윤리 개념이다. 이제 이는 기의 바다 속에서 힘써 탐구하여 찾아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 자연과 사회질서가 그 자체로 성스러운 것으로 표상되지 않고 그 곳에서 작동되어야 할 이의 원리가 발견되고 구성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이후 신이 인간의 내면으로 숨었듯이(Hidden God) 이는 기의 바다에 숨어 버렸다. 숨은 신이 찾아야 할 대상이듯 이는 기의 바다에서 찾아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초기근대는 어느날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장기12세기의 오랜 결과가 누적된 것이었다. “이슬람과 당 제국이 흥기했던 7,8세기는 주요 문명권을 연결하는 세계교역망이 사상 최초로 전면화된 시기다. 광대한 이슬람권의 형성으로 중국과의 교역통로가 안정되었고 동남아의 번영으로 바닷길 무역로 역시 안정되었다. 송대의 도약은 당대에 형성된 세계교역망의 임팩트에서 탄생한 것이다. 당시 세계화의 네트웤에서 당제국은 7세기 이후 번성했던 이슬람 제국과 함께 당대에 가장 거대했을 뿐 아니라 잘 조직되고 효율적인 정치체였고 대외문명교류에도 열린 태도와 자신감으로 적극적이엇다. 당시로는 최상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구비하고 있었다. 그 결과 세계 도처의 최선의 주요 문명적 문화적 자양분들이 국제적 네트웤의 여러 매듭들을 따라 그 핵심 허브인 중국으로 모여들 수 있었고 그것이 송대에 집중적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런 자양분이 뿌려진 토양이 귀족이 몰락한 신분적 상황이었기 송대의 초기근대혁명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제 아래 모두 평등한 상황은 사회적 잠재력의 해방을 불렀고 이러한 변화는 후일 유럽의 15-16세기 초기근대와유사했다. 이 시대의 이념이었던 주자학은 대원제국이 과거의 필수과목으로 만들었다. 보편성을 갖춘 세계제국으로서 초기근대라는 시대에 맞는 주자학의 보편성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미조구치 선생은 북송 시대 정명도의 天卽理라는 언명의 혁명성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하늘(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초월적이거나 혹은 알 수 없는 힘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신의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는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사건이라 했다.” 천즉리 이전 중국의 세계관인 “‘주재자적인, 운명론적인 하늘에서 법칙적인 하늘로의 변화였다. 송대 이전 고대의 중국인은 하늘을 도(天卽道)라고 생각했고 그 도를 주재자적인 그래서 만물의 밖에 있는 초월적 실체로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은 각각 초월적인 그 도에 운명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고고 한다. 반면 정명도의 천즉리는 인간세계의 일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현상이 어떤 법칙성 가운데 있고 그 법칙성은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보는 새로운 우주자연관이다라고 풀이했다. 정주학은 기즉 속 우선의 교의였다. 따라서 정주학이 최초로 정립한 이기론은 통섭I이 아니라 통섭II와 원리가 같다.”

 

저자는 주자학의 천즉리 또는 이기론이 태어나기까지의 배경을 이렇게 정리한다. “통섭II의 질서란 일종의 세속ㅎ솨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세속화한 통섭I의 질서가 뿌리에서부터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중국의 경우에는 앞서 설명했던 유라시아의 세계화 상황이 그런 것이었다. 당연히 믿어왔던 신성한 질서의 체계가 흔들리고 이내 거침없이 무너져갔다. 이미 남북조시대에 천즉도의 확고한 믿음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와 쾌락주의, 허무주의가 만연했다. 천은 다만 물질적 세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 뿐이라는 사상도확산되었다 여기서 속을 물샐틈없이 통섭하던 성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이어 조각나기 시작한다. 속의 세계가 성의 통제를 벗어나 꿈틀러기고 올라온다. 이러한 혼란과 방황의 이행기에 다른 문명의 종교와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든다. 夷狄은 군주가 되고 세상은 蠻戎의 가르침을 따른다. 이러한 상황인식에서 정주학은 정초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명은 조각나 흩어진 성의 체계를 다시 이어 보다 견고한 형태로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과업이엇다.”

 

이상에서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 하는 근대성의 재정의를 살펴보았다. 이후에도 저자는 유교적 근대성의 완성형으로서 조선후기의 유교정치를 자세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이책의 기본적인 요점은 이상에서 제시되었다고 보므로 여기서 줄일까 한다.

 

개인적으로 이책은 올해 읽었던 책중에서 최고의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의미있게 보았던 프랭크, 아리기, 암스트롱 등의 논의를 종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틀로 마감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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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Beach House - Teen Dream (2LP+DVD)
Beach House / Sub Pop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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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후반 북미팝의 흐름 중 하나는 드림팝의 부활이다. 80년대 콕튜 트윈이 선봉을 서면서 등장한 드림팝이란 장르는 미국에선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사운드스케이프를 중시하는 드림팝의 기법은 따라부를 수 있는 가사를 중시하는 주류팝의 소비자에겐 그다지 매력이 없다. 가사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드림팝의 선구인 콕튜 트윈의 경우 아무 의미없는 단어를 만들어 가사에 나열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집중해 들을 것을 요구한다. 그냥 딴일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즐기는 대다수 소비자의 청취태도에는 맞지 않는 요구이다. 더군다나 워크맨 또는 아이팝에 이어폰이나 꼽아 듣는 열악한 장비에서 드림팝의 사운드는 노이즈에 불과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드림팝을 선택한 아티스트들이 인디에 머물러야 했고 평단과 매니아의 격찬을 받으면서 사라져야 했다. 그런 좋은 예가 Trespassers Williams이다. 설득력있는 수준높은 음악을 선보였고 그에 걸맞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 실패를 이기지 못하고 10년이 넘도록 겨우 앨범 3장을 내고 사실상 해체 상태이다.

 

Trespassers Williams 정도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없다면 드림팝이란 장르의 음악은 미국에선 발붙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2008년을 전후해 이변이 일어난다. 일군의 드림팝 밴드들이 평단의 격찬을 넘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다. 이 리뷰에서 다루는 비치 하우스가 그중의 하나이다.

 

드림팝의 원동력은 안티락이다. 70년대 이후 사실상 음악운동으로서 락의 창조성이 남아있는가 의문이 제기되었고 드림팝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락이 무엇인가는 애매하게 되었다. 워낙 많은 분파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락의 사운드가, 대표적인 이미지로서의 사운드가 무엇인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전자기타의 리프이다. 대중음악의 장르가 다 그렇듯이 락도 10대들의 댄스음악으로 시작했지 감상용의 고급음악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락의 상징은 그런 시작을 반영하듯 춤의 리듬을 만드는 기타 리프이다. 그런 이미지는 지금도 락의 소비자들에게 유효하고 그런 소비패턴은 락의 창조성이 고갈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드림팝은 그런 락의 화석화에 저항하는 흐름의 하나였다.

 

드림팝의 사운드를 규정하는 것은 리듬이 아닌 사운드스케이프의 텍스쳐이며 그 텍스쳐가 만드는 무드이다. 귀로 스치는 소리에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사운드가 아니라 앉아서 차분하게 사운드를 찬찬히 뜯어보며 들어야 하는 감상용 음악이란 말이다. 클래식이 그렇듯 음악적 논리에 따라 사운드의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운드의 음역을 넓히려는경향이 있고 멜로디라인의 음역을 높게 잡을 수록 그 음역은 넓어진다. 남성들이 장악한 락판과 달리 드림팝에선 자연스럽게 여성보컬이 줄류가 된다.

 

그렇기에 드림팝은 모든 면에서 락과는 다른 길을 가려는 음악가에게 선택받는 장르가 되었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 역시 주류팝/락과는 대척점에 자리한다.

 

우선 이들의 음악에선 보컬이 탈중심화된다. 감상용 팝의 경우 보컬이 중심이 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청자와 보컬의 감정적 동일시를 위해서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 자신을 일치시키듯이 팝의 문법은 보컬이 표현하는 감정이 청자의 감정에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팝에서 보컬이 모든 인기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비치 하우스는 그런 문법을 깬다. 고전이 된 콕튜 트윈의 Treaure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중심엔 보컬이 아닌 드럼이 놓인다. 보컬은 그 드럼 주위를 부유하는 유령이다. 더군다나 그 보컬이 부르는 가사도 별 의미가 없다. 비치 하우스는 데뷔 앨범에서 그런 기법을 따른다.

 

3번째 앨범인 Teen Dream에서는 그런 기법을 따르지는 않는다. 보컬은 무대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그 위치는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게 뒤로 또는 옆으로 샌다.

 

보컬의 위치만 아니다. 보컬의 감정표현 역시 어딘지 모르게 자신의 감정을 일치할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무기질의 보컬이라 할까.

 

보컬의 위치와 감정은 보컬을 하나의 악기로 만든다. 그것도 주악기라기 보다 다른 악기와 공존하는. 이러한 장치의 목적은 콕튜 트윈과 같다. 보컬이 아니라 음악 전체가 그리는 사운드스케이프를 듣도록, 음악의 한 곳에 포커스를 줌인하는 것이 아니라 줌 아웃하여 사운드 전체를 보도록, 브레히트 식으로 말하자면 distanciating(거리두기)할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들의 사운드는 앞에서 말했듯 새롭다고 하기는 힘들다. 단지 장르의 논리를 충실히, 타협없이 따를 뿐이다. 그러나 그 비타협 자체가, 그리고 그 비타협으로 만들어진 사운드 자체가 이들의 음악에서 훌륭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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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문화사
이원희 지음 / 말글빛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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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평론가도 그렇다고 음대를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일개 감상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사람이 쓴 재즈책을 보게 된 이유는 그런 저자가 썼음에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이나 되었다는 의외의 결과때문이다.

 

재즈는 어렵다. 적당히 멜로디라인만 따라갈 수 있으면 즐길 수 있는 팝과 다르기 때문이다. 클래식만 하더라도 듣는 것만으로 무슨 코드인지 알아듣고 복잡하게 변주된 모티브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며 조바꿈이라든지 변박자등을 알아챌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보다 후에 성장한 재즈는 그보다 훠~~얼씬 복잡하다. 하다못해 기타라도 칠줄 알아야, 악기를 연주하고 악기의 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배경과는 동떨어진 저자가 쓴 이책이 정부의 추천씩이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책이 자신의 소개대로 감상자로서의 의문에 답하는 저자 자신의 탐색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록에 익숙해서인지 군데군데 대책없이 비워놓은 듯한 사운드에 당혹했다. 동양화도 아니면서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듯했다. 그랬던 재즈가 조선시대 색시처럼 내게 다가왔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수줍게 웃어보였다. 조용히 흐르던 음이 부드럽게 내 마음을 녹였다.” 그러나 재즈는 다가가면 갈수록 얼굴을 바꿔댔다. “이해하기 어려운 음으로 가득 찬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재즈의 속도에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나는 말 많고 독똑한 여자의 또렷한 대응에 쉽게 토라져버리는 속 좁은 조선시대 남자였다. 재즈는 현학적 취향을 지닌 학구파 여성이었다.”

 

결국 저자는 오기로 버틴다. 열번찍으면 넘어간다. 그렇게 버틴 저자는 또 얼굴을 바꿔댄 재즈를 만난다. “이 음악에 과연 여성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아무리 양보해도 선이 굵고 거침없었다. 그건 남성의 소리였다. 당시까지 내게 재즈는 록과 달랐다. 그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여성일 뿐이었는데 학구파 신여성으로 돌변하더니 이내 굵은 목소리의 남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얼굴이 진짜일까? 결론은 그 모두이다. 어떤 이름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재즈는 정의하려 덤비면 그 정의를 하는 순간 바뀌어 버리는 살아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스윙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재즈 입문서를 보면 스윙을 느낄 수 없으면 재즈가 아니라 한다. 스윙의 정의는 복잡하다. 들으면 안다, 보다 더 정확한 정의는 불가능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하자면 들으면 손을 까딱이고 몸을 흔들고 싶은 느낌이 있다면 스윙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예는 Emily-Claire Barlow Tribute 앨범 1번 트랙이다 스윙 외에도 고전적인 재즈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좋은 보컬 재즈곡이다)

 

그러나 스윙을 느낌으로가 아니라 말로 정의하자면 난감해진다. 권위있는 책인 재즈북에서조차 스윙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음악가와 비평가 혹은 음악학자들이 정의한 스윙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그 정의의 부족한 면을 지적할 뿐이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스윙에 대해서조차 일관되게 규정해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은 블루노트, 엇박자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장르의 정의조차 애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볼 때마다 재즈의 얼굴이 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블루노트로 연주되지 않은 재즈는 재즈라 말할 수 없다. 이토록 중요한 블루노트는 유럽음악의 기준으로 반음화된 3도와 7도를 말한다.” 문제는 이 반음이 반 정도이지 딱 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음악에서 보자면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연주해야만 블루노트는 제대로 연주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이 재즈의 본질이다.”

 

그러면 왜 이런 모호함이 생겼는가?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자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현상은 흑인음악을 서양음악체계에 적용하면서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은 가해자의 음계를 바탕에 두고 자신들의 음악을 표현해야 햇다. 흑인노예들이 그들의 5음계를 서양의 7음계에 적용해야 했을 때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반음 내려야 했다,”

 

맞지 않는 틀에 억지로 맞춰졌기에 블루노트는 엄밀할 수 없었다. 그 부정확은 미학의 지위로 올려진다. 악보로 표현할 수 없기에 연주자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블루노트 감각을 익혀야 한다. 그 감각을 체득하지 못한 연주자는 자신의 재즈를 표현할 수 없다. 이런 미묘함을 재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훌륭한 재즈 연주가는 블루노트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가면 약간씩 빗나가는 아슬아슬한 연출을 통해 음악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재즈에서 그것은 나름대로 까다로우며 훌륭한 연주다. 이를 유럽음악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가급적 정확함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부정확해질 뿐이다.’”

 

블루노트의 특징처럼 저자는 재즈를 모순의 미학이란 말로 정리한다. 블루노트가 태어난 이유처럼 재즈는 흑인노예와 백인이 만났을 때의 긴장감에서 태어났다.

 

주인의 음악에 억지로 끼워 맞춰 만들어진 재즈는 서양음악도 아프리카 음악도 아닌 미국의, 흑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미학은 음악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정의했다.

 

노예에서 해방된 후에도 흑인은 자신이 사는 사회에 끼어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야 햇다. 빌리 홀리데이는 ‘44년의 짧은 생애동안 굶주림, 노동, 성폭행, 매춘, 인종차별, 수감생활, 이혼 등 한 사람이 겪기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았다. 블루스 여제 베시 스미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흑인이라는 이유로 앰불런스를 얻어타지 못해 죽어야만 했던 것만큼이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노예의 후손이 사는 법은 간단하지 않았다. 맞지 않는 사회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맞춰가야 했던 그들은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죽어나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흑인들에게 이상적인 미래는 멀기만 했고 당장 살아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백인의 견고한 사회에서 버텨야 햇다. 타협이 미덕일 수 밖에 없었다.

 

블루노트란 말은 블루스의 음계란 뜻이었다. 블루스를 정의하는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이다. ‘블루스는 흑인노예들과 그 후손들의 한을 잘 담아낸 음악으로 그들의 아리랑이었다. 지금도 블루스의 음인 블루노트는 재즈의 핵심음적이며 블루스 정서는 재즈인들이 체득해야 할 중요한 감성이다. 재즈 3대 디바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그리고 사라 본 중 빌리 홀리데이느,ㄴ 기술적인 면에서 자신을 강렬히 드러낼 장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스캣의 현란함을 자랑하는 엘라 피츠제럴드나 폭넓은 음역의 사라 본보다 높은 위상을 지닌다. 그것은 독보적이라 할 블루스 감성 때문이다. 그녀는 블루스 특유의 끈덕지고 미묘한 느낌을 곡 전면에 갈면서 재즈의 묘미를 연출한다. 마치 자신의 슬픔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노래했다. 그 노래는 묘한 흥과 한이 있는 마성을 띠었다. 빨려든다고 해야 할까. 블루스 감성은 빌리에게나 다른 미국흑인들에게나 자연스럽게 체득된 삶 자체였다.” (블루스 감성의 요즘 예로는 Otis Taylor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아야도 치에가 추천할만 하다)

 

그러나 노예의 음악은 주인의 음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재즈의 긴장감은 아프리카적인 감성이 유럽적 이성을 만나면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 재즈에는 두 문화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묘한 긴장과 생동감이 살아 있다.”

 

제대로 된 일을 가질 수 없었던 흑인들에게 음악가는 성공이었다. 1급 운동선수에 흑인이 많은 이유와 마찬가지이다. 흑인이 특별히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변인일 뿐이었던 흑인에게 음악가는 출세였다.

 

그러나 흑인인 재즈인들도 사회의 주변인어야 했다. 흑인이 예술을 한다는 자체가 저항일 수 밖에 없었다. 초기재즈인들은 주로 백인전용 술집에서 연주를 했지만 늘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다. 백인이 사용하는 술잔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빌리 홀리데이도 인기에 걸맞지 않은 부당한 대우에 동료와 고용주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카운트 베시 악단과 같은 거물급 집단조차 12장의 음반에 대해 그들이 받은 돈은 선불금 750달러가 전부였으며 그돈조차 밴드 멤버 26명이 나누어 가져야 했다. 백인악단을 이처럼 부당하게 대우하는게 가능했을까. 재즈의 씨앗은 인종 간의 긴장을 에너지로 삼아 발아했다.”

 

차별은 음악인 뿐 아니라 음악 자체에도 더해졌다. “원래 재즈는 흑인 빈민층을 대변하는 가난한 음악이었다. 뉴올리언스의 초기재즈는 길거리 음악으로 대중과 함께 진흙탕을 뒹굴었다. 비록 흥행을 위해 춤곡으로 치장되어 화려한 모양새를 띠게 되었고 이론과 지성까지 버무러져 고급화되었지만 재즈의 본질은 그 삼류성에 있다.”

 

사창가의 음악이었던 재즈가 시카고와 뉴욕으로 흘러갔을 때 재즈는 술집의 배경음악이 되었고 댄스음악이 되었다. 20년대 금주법의 시대에 재즈는 손님들의 여흥을 돋우는 춤곡에 불과했다ㅓ. 또한 불법인 주류업의 호객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범죄에 이용된 오락거리였다. 술집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편성 악단을 고용했고 재즈 음악가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 시대는 재즈에 여흥의 역할을 주엇고 재즈 음악가들은 그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3류성이 재즈의 긴장을 만든다.

 

스윙재즈가 대성공을 하면서 대편성이 재즈가 갈 방향인 것처럼 보였다. 너나할 것없이 현란하고 커다란 음을 내기 위해 단원을 늘렸다. 큰 것이 아름다운 시대였다. 스윙에는 빅밴드가 제격이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음의 물결을 타며 사람들은 춤의 서핑을 즐겼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강렬한 춤곡이었다.”

 

그러나 음악가에겐 불편했다. 주류백인사회에선 3류 딴따라일 뿐이지만 흑인들에게 허용된 몇안되는 성공의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그런 3류성은 참을 수 없었다. 음악가로서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런 분위기는 개성적이고 복잡한 연주를 하고 싶은 바람과 상치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음악을 갈망하는 음악가에게 그것은 족쇄와도 같은 작용을 했다. 사실 젊은 스윙재즈 음악가들 중ㅇ 일부는 관객의 춤에 반주를 넣는다는 자체에 불만을 품엇다.”

 

2차대전의 전시상황은 유흥가의 쇠퇴를 불렀고 스윙재즈도 쇠퇴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밥이 탄생한다. “비밥음악가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춤추지 못하는 음악을 연주하려 했을 뿐이다. 그런 의도였다면 완벽히 성공했다. 그들은 스윙재즈 악단에서 연주하면서 당시의 음악유행을 좇을 수 밖에 없었다. 젊은 음악도들 중 일부가 당대음악의 문제점에 통감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밥이 탄생했다.

 

비밥재즈는 까다로운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는음악처럼 들린다.  :당시의 비밥은 마치 요즘 스래시메탈이나 데스메탈 같은 과격한 음악이 받아야 할 평가를 받았다. 물론 비밥의 소리는 메탈의 금속성 굉음과는 다르다. 그것은 무수히 제시되는 현란한 비트와 즉흥선율의 음표들을 잘게 부순 후 관객의 귀를 향해 밥풀 묻은 이쑤시개를 날리듯 음표를 소아댔다. 게다가 비밥은 주제에 새로운 옷을 입힌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파격적인 즉흥연주를 선보인 최초의 장르였다. 심한 경우 원곡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대중에게 폭력이었다. ‘삐리리사운드로 들리는 비밥의 불친절한 선율은 사람들의 귀를 고문했다.”

 

이때부터 재즈는 딴따라가 아닌 예술의 길을 간다. “소수의 음악이 될지언정 소비되지 않겠다는 비밥 혁신가들의 열망이 비밥을 전위음악으로 이끌었다. 비밥은 자의식 과잉의 음악이었다. 비밥의 혁신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려고 그에 걸맞은 표현양식을 고민했다. 예술가로 대접받고 싶던 피 끊는 젊은 혁신가들을 만족하는데 스윙재즈는 부족햇다. 비밥을 연주하는 연주하는 흑인이라면 누구나 천대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이려는 욕구를 지녔다.”

 

재즈 자체가 모순의 음악이지만 특히 비밥은 재즈의 중요한 미학이 확립되어 모순이 극대화되엇다. 또한 그것은 모순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오히려 모순 자체를 온전히 품어냈기에 비밥은 위대해질 수 있었다. 우선 음악외적으로 그것은 흑인으로서 백인과 동화되기를 바라는 타협적인 자세와 흑인이고자 하는 열망이 상존하는 장르이며 음악내적으로 유럽고전음악에 크게 빚을 지면서도 흑인감각을 극대화한 음악이다.”

 

연주가들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경박하게 인식되는 춤곡을 지양하면서 아무나 쉽게 따라할 수없는 연주를 구사했다. 그 연주는 분명 흑인적이엇다ㅓ. 그들은 흑인감각을 극대화하면서도 유럽적인 의미의 예술가를 꿈구었다.”

 

음악내적으로도 비밥은 모순의 음악이다. 화성적인 면을 살필 때 비밥은 분명 흑인의 음악이 아니다. 비밥의 화성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다. 비밥 음악가들은 유럽고전음악의 유산인 화성에 깊이 천착했다. 찰리 파커 등은 늘 유럽음악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화성을 세밀히 발전시키는 단계 후 그것에서 탈피하는 순으로 재즈화성학은 변화했다. 그리고 재즈화성의 무게중심이 화음에서 선법(모드)과 자유조성으로 얾겨가면서 재즈화성학은 더욱 발전했다. 재즈음악가들은 단 한 세기 동안 수세기에 걸쳐 화성개념을 발전시킨 유럽음악의 성과를 흡수했다. 그들이 당대음악의 패권을 쥐고 있던 유럽음악을 철저히 고민하지 않았다면 재즈는 그저 흑인만의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저자는 비밥이 쿨, 하드밥, 소울재즈로 발전하고 그 논리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돌파구를 찾는 노력으로 프리재즈와 모달재즈가 발전하고 프리재즈가 다시 극한에 도달해 자멸한 다음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을 나머지에서 다룬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반적인 입문서에 나오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 더 이상 다루지는 않겠다.

 

이책의 특징은 위에서 본 것처럼 재즈의 발전사를 음악내적논리에서 파악하면서 그 논리를 자극한 사회사적 맥락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다른 재즈책들과는 구분된다. 이책에서 스윙이 무엇이고 블루노트가 무엇이고 등 기초적인 입문내용을 기대한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재즈가 왜 그렇게 발전했는가, 살아있는 재즈로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제대로 선택한 것이다. 정부에서 추천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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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ly Sweet - We Are One
켈리 스위트 (Kelly Sweet)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켈리 스위트란 가수를 알게된 것은 Best Audiophile Voices란 컴필레이션에서다. 10여년 동안 매년 발행되어온 이 시리즈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미성의, 가창력이 뛰어난 여성보컬이 선정된다. 여성 보컬로서 이 시리즈에 등장한다는 것은 명예라 할 수 있겠다.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첫번째 곡부터 그 명예는 허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Best Audiophile Voices에 편집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가창력은 검증되었다는 말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음역이 넓다는 점이다. 팝에선 그리 흔하지 않은 제대로된 소프라노이며 제대로 다져진 기본기가 눈에 띈다.

 

기술적 능력만 아니다. 위키에 보면 아직 24, 앨범 녹음 당시 2007년엔 이제 20살 정도 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감정표현이 능숙하며 감정의 완급을 조절하는 타이밍이 뛰어나다. 오랜만에 발견한 제대로 된 가수.

 

그러나 이 앨범에 점수를 어떻게 줄 것인지 난감하다. 가수 자체로 보자면 별 다섯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앨범의 구성이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싱어송라이터들을 좋아하는데 분명한 개성이 있고 자신의 세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일관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관성은 하나의 앨범을 통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일관성과 수준의 일정함을 만든다.

 

그러나 켈리 스위트는 자신이 자신이 부를 곡을 쓰지 않는다. 이 앨범은 남의 곡을 부르는 가수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우선 앨범의 긴장감이 뒤로 갈수록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곡에 의존하기 때문에 앨범이 하나의 단위로서 그리는 세계를 컨트롤할 통제력이 가수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가수의 수준이 그런 통제 자체를 못할 정도인 경우가 잇지만 켈리 스위트의 경우를 보자면 그런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 보인다.

 

물론 프로듀서가 그런 통제력을 발휘한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이 앨범은 그런 통제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통제력의 부재는 편곡에서도 드러난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클래식의 장점은 절제에 있다. 음 하나 하나가 모두 의미가 있고 쓸데없는 중복이 없으며 장식을 기피한다. 그러나 팝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이것은 그 음악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미 싱어송라이터 전통에선 그런 과잉의 문제가 덜한데 통제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음반의 경우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여분이 뒤로 갈수록 많아진다. 얼핏 듣기에는 즐거운 음으로 들리지만 음반을 여러 번 듣다보면 질리게 만드는 과잉이다. 이런 문제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음반을 만들 때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우선 띄워놓고 보자는 계산에서 그렇게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이 정도 실력의 가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나오는 앨범에 그런 문제들이 나타나도록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며 이 앨범의 제작에 통제권의 문제가 있었다고 짐작하는 이유이다. 위키에는 다음 앨범이 2012년에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5년의 공백이다. 긴 공백의 이유가 아마도 데뷔 앨범의 문제들이 나타난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다음 앨범에선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싶다. 앞으로 계속 들을 가치가 충분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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