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역사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 배국원, 유지황 옮김 / 동연출판사 / 1999년 2월
평점 :
절판


군대 동기 중에 신학생이 있었다. 군대에 있을 때 서로 많은 말을 했었는데 그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중세에 고명한 수도승이 있었다. 어느 날 지나다 그 수도승이 기도하는 것을 들으니 이런 내용이더라는 것이다. “신이시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같은 말만 계속 반복되는 기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친구가 신앙의 길을 걷고 잇는지는 모르겠다.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질문은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17살에 수녀가 된 저자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기도 했다.

“나는 결코 선지자와 신비주의자들이 묘사하였던 그 신을 만나지 못하였다. ‘신’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언급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도 내게는 고대 말기와 밀접하게 연된 전적으로 역사적인 인물로만 생각되엇다. 나침내 나는 아쉬워하며 수녀원 생활을 떠나야 했고 좌절과 부적응이라는 짐을 벗어버리자 신에 대한 신념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수녀원을 떠난 이후 저자는 인간은 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을, 종교는 인류에게 자연적이라는 것을, 신이란 인간 스스로 언제나 다시 창조되어온 잠정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을 삼십여년 전 내가 수녀원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의 탁월한 신앙가들로부터 하늘 위에서 세상으로 강림하는 신을 기다리는 대신 내 자신을 위하여 신에 대한 감각을 의식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더라면 나는 많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토록 감동을 선사하는 시나 음악처럼 신이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종교는 극히 실용적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느 특정한 신 개념이 논리적, 과학적으로 건전한 것인지보다 얼마나 유용한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더 이상 효능이 없어지자마자 신 개념은 변화하며 어떤 때는 아주 급진적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시대 이전의 대부분 유일신론자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진의 신 관념들이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잠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잇었기 때문이다. 신 관념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관념들이 상징하는 표현불가능한 실재와는 전혀 분리된 것이다.”

이책은 그 관념의 역사이다. 아브라함과 모세 그 후의 선지자들의 신 그리고 예수의 신은 모두 다른 신이엇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신은 인간으로선 표현불가능한 것이기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초월을 경험한다는 것은 삶의 진리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주요 종교는 이 초월성을 일반적인 언어 개념으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유일신론자들은 이 초월성을 ‘신’이라고 부르면서도 중요한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유대교는 신의 신성한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금했고 이슬람은 신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을 금했다. 이러한 규율은 곧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는 실재가 인간의 모든 표현을 초월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징표였다.”

저자는 묻는다. “미국인의 99%가 ‘신을 믿는다’고 답했다. 문제는 과연 그들이 믿는다는 신이 어떤 ‘신’인가 하는 점이다. 신들을 창조하는 작업은 인간이 항상 해 왔던 일인 듯하다. 어떤 종교적 관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면 곧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왔다.” 그 예가 지고신 또는 천신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 예는 저자의 이후 저서에도 반복되어 언급된다) 그러나 만물의 창조자로 여겨진 그 신은 인간에겐 너무 먼 존재였다 (중국의 天, 한국의 하느님도 그 예라 생각된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신은 너무나 소원하고 너무 고귀한 탓에 결과적으로 열등한 영들과 더 접근가능한 신들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화를 만들고 신들을 경배했던 것은 자연현상에 대한 어떤 실제적인 설명을 찾고자 함이 아니다. 상징적 이야기나 동굴 속의 벽화나 조각들은 그들이 경험한 경탄을 표현하고 이 압도적인 신비를 자신들의 삶과 연결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종교는 거룩함(聖)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신화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너무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워 다른 방법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실재를 묘사하기 위한 비유적 노력이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신적인 삶에 참가함으로써만 자신이 진정으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같다.”

그러나 하늘님이나 天 또는 고대 팔레스타인의 만신전에 기록된 최고신 엘은 너무 먼 존재였다. 팔레스타인에 널리 받아들여진 신은 그보다 실제적인 힘을 가진 더 낮은 위계의 얌-나하르(바다와 강의 신)나 바알(비를 내리는 폭풍의 신) 등이었다.

“가나안에서 엘은 결국 최고신 대부분과 같은 운명을 맞아 기원전 14세기에 엘 숭배는 시들해지기 시작햇다. 대신 사람들은 역동적인 폭풍의 신이자 신성한 전사인 바알을 섬기기 시작했다. 기원전 6세기까지 이스라엘의 종교가 사실상 이 지역의 다른 민족들이 섬기는 종교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축의시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실용적이어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 같은 사변적인 구체적 사항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들의 신을 믿었으리라 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초기 족장이었던 아브라함, 그의 아들 이삭, 그의 손자 야곱이 단 하나의 신을 섬긴 유일신론자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같다. 실제로 이들 초기 히브리인은 차라리 가나안의 이웃들과 여러 종교적 신념을 같이 나눈 ‘이방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욱 정확할 것같다. 그들은 분명히 마루둑, 바알, 아나트 등과 같은 신의 존재를 믿었다. 혹은 그들이 모두 동일한 신을 섬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무서운 자’나 친족’, 야곱의 ‘전능한 자’는 모두 다른 세명의 신이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아마도 아브라함의 신은 가나안의 최고신인 엘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엘은 최고신일 뿐이므로 하위신인 바알 등의 다른 신을 배척할 필요가 없다. “이 신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을 엘 샤다이(산악의 신)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엘의 전통적 칭호 중 하나다. 엘은 그들에게 족장이나 두목처럼 자상한 충고를 하고 방랑생활을 인도했으며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를 말해주며 꿈속에 나타나 계시했다. 가끔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을 보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는 훗날 이스라엘인에게 저주받을 관념이 되고 만다.” 후대 8세기 무렵의 성서기자들이은 “그 누구도 신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이 충격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은 족장들이 신과 가까웠다는 옛날 이야기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현현에 담긴 의미는 신과의 은밀한 접촉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던 후대 유대교의 유일신론보다는 오히려 일리아드의 정신과 더 가깝다고 할 수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에 더 가까웠던 아브라함의 신은 출애굽의 신과 다르다. “출애굽의 신은 잔인하고 편파적이며 살인적인 신이며 ‘야웨 사바오트(군대의 신)’라고 알려지게 될 전쟁의 신이기도 하다. 이 신은 심히 편협한 성격이어서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단적으로 부족적인 신이다. 오늘날의 일부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이집트의 (팔레스타인) 종주권과 가나안의 그 동맹자들에게 대항하여 일으킨 농민들의 성공적인 반란을 신화적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애굽에 대한 이런 해석은 저자의 이후 저작에 반복된다.

저자는 ‘축의 시대’에서 엘에서 전쟁의 신 야웨로 신도 신의 성격도 바뀐 이유를 암흑시대 때문이라 본다 (암흑시대에 대해선 ‘축의 시대’ 리뷰에서 상세히 다루었다). “암흑시대에는 축의 시대 민족 가운데 둘이 나타났다. 미케네의 폐허에서는 새로운 그리스 문명이 탄생했으며 가나안의 고지대에서는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부족 동맹체가 나타났다. 가나안의 붕괴는 매우 점진적이었다. 기원전 15세기 이후 이집트 제국의 일부였던 해안 지대 평원의 넓은 도시 국가들은 이집트가 물러나면서 하나씩 붕괴했다. 이 도시들의 몰락으로 기원전 1200년 직전 고지대에 새로운 정착지 네트웤이 형성된다. 이 네트웤은 북쪽으로 갈릴리 남부, 남쪽으로 베르셰바까지 뻗어있었다.” (축의 시대)

출애굽은 이집트 땅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단지 이집트가 가나안에서 물러나는 과정을 그렇게 신화화했을 뿐이라는 것이며 이스라엘인은 해안지대의 혼란을 피해 고원지대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집트 대탈출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대체로 합의를 보았다. 성경의 가장 오래된 부분들은 야훼가 원래 남쪽 산들의 신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다른 부족들이 남쪽에서 고지대로 이주하면서 야훼를 데려왔을 가능성이 있다. 해안의 도시 국가들에서 이집트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이스라엘인은 자신들이 실제로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인이 원래 가나안 원주민이면서 외지인이라 주장한 것은 그들이 가나안 사회에서 주변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라 저자는 추측한다. “고고학자들은 고지대에서 상당한 사회경제적 분열, 심한 인구변화, 경쟁하는 종족집단들이 200년에 걸쳐 펼친 사활을 건 투쟁의 증거를 발견했다.” 이스라엘인을 만든 집단과 부족들은 “모두 숙고 끝에 가나안의 오래된 도시 문화에 등을 돌리겠다는 용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진실로 외부인들이었으며 주변부에서 산 경험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외부 기원설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반가나안 논쟁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가족에서 신참자였으며 (암흑시대의) 트라우마와 격변의 산물이었고 늘 주변으로 밀려날 위협에 시달렸다. 이스라엘인은 이에 반발하는 정체성과 서사를 발전시켜 나갔다.” (축의 시대)

그들이 이주한 고원의 삶은 그들이 떠나온 해안지대만큼이나 폭력적이엇다. “초기의 정착자들은 자신들이 식민지로 만들려는 땅을 차지하려고 싸워야 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요르단 강변에서 거둔 위대한 승리의 기억이 보존되어 있다. 남쪽으로부터 이주하여 모압의 영토를 통과하려던 부족들은 그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저지하려던 현지의 집단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정착민들은 일단 한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 이웃들과 공존하려고 노력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갓 태어난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단결해야 했다. 포위를 당한 상태에서 늘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전쟁을 준비하며 살게 된 사람들은 전투적 믿음을 발전시켯다.” (축의 시대)

이런 환경에서 그들이 섬긴 야훼는 당시 가나안에서 유행했던 바알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당시 인도로 침입한 아리아인들이 그랬고 그리스인들이 그랫듯이 폭력이 난무하는 영웅시대(또는 암시대)의 신은 힘과 전쟁의 신이엇다. 폭풍의 신인 바알은 “전차를 타고 하늘의 구름 위를 돌아다녔으며 다른 신들과 싸움을 했고 생명을 주는 비를 내렸다. 초기에 야훼 숭배는 바알 숭배와 아주 흡사햇다. 성경의 아주 오래된 텍스트에서는 야훼도 바알처럼 신성한 전사로 등장한다. 이 시절 부족들은 폭력적이고 위험한 삶을 살았으며 그들의 신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축의 시대) 그렇기에 야훼는 그 당시의 다른 신들처럼 잔인하고 편협한 신이었다.

“유월절 축제는 예리코 공격에서 시작된 약속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성전을 준비하는 행사였다. 예리코의 성벽은 기적적으로 허물어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야훼는 전쟁의 신이었다.” (축의 시대) “야훼가 진정 아브라함의 신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신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친구처럼 마주 앉아 함께 음식을 나눴던 신과는 다른 모습이다. 야훼는 공포를 자아내게 하고 인간과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고대의 천신들이 인간의 관심사를 돌보기에는 너무 멀리 잇는 듯 여겨졌기에 새로운 신들인 바알, 마르둑, 대지의 여신은 인간과 친근하도록 개념화되었는데 이제 야훼는 다시 한 번 인간과 신의 간극을 벌려 놓은 것이다.” 이스라엘인이 아직 일신교도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야훼는 특별한 신이었지만 그들은 다른 신들의 존재도 인정하고 그들을 섬겼다. 야훼가 유일한 신이 되는 것은 기원전 6세기 말이다. 최기에 야훼는 신들의 모임에 속한 ‘신성한 자들’ 또는 ‘엘의 아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축의 시대) “그들은 전쟁 때 야훼의 능숙한 군사적 보호가 필요할 때는 그 언약을 기억했으나 평온한 시절에는 옛 관습을 쫓아 바알, 아나트, 아쉐라를 섬겼다.” “초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신성함을 하나의 신적인 존재에만 한정짓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다수는 다른 형태의 신성함도 원했다. 이는 결국 야훼만을 섬기고 싶어하는 소수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스라엘과 인도에서도 새로운 적대적 땅에서 하나의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일의 불안정성과 어려움 때문에 믿음에 폭력과 호전적 이미지가 들어왔다. 그러나 사람이란 높은 수준의 긴장을 무한히 유지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축의 시대)

미치광이 율법학자 엘리야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야훼 종교가 결국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이방종교에 흡수될 위험이 언제나 존재했다.” “야훼는 전사신이었다. 그는 농업이나 다산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년을 보장받으려고 당연하게 바알과 아나트의 고대제의를 거행했다. 바알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신이엇기 때문이다.” (축의 시대)

엘리야가 바알과 야훼의 신성력 대결에서 바알의 사제 450명을 학살한 사건은 유명하다. 미치광이 율법학자라 불릴 충분한 이유이다. 엘리야가 대표한 것은 ‘야훼 유일 운동’이었다. 그가 바알을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페니키아의 신이지 이스라엘의 신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엘리야가 만난 신은 어떤 신이었는가? 저자는 그것을 ‘감추어진 신성’이라 부른다. “’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깨서 계시지 않았다. 그 바람이 지나고 난 뒤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서도 주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엘이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룩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광충과 노도와 같은 거친 자연 현상 속에 거한다고 여겼던 이교의 신들과 달리 야훼는 초연한 영역에 거하는 신이었다. 즉 야훼는 말로 표현되 ㄴ침묵이라는 역석처럼 거의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바람 소리를 통해 경험되엇다.” “이것은 초월의 순간이다. 야훼는 자연 세계에 내재한 신성을 드러내는 대신 분리되어 다른 존재가 되었다.”

저자는 엘리야의 신은 당시 달라진 사회조건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번영이 구가되면서 상인계급이 출현했다. 왕과 사제, 신전과 왕궁으로부터 시장으로 권력이 이동했다. 새로 형성된 부는 지성적 문화적 융성으로 이어졌고 개인 양심의 발달로도 이어졌다. 도시에서 변화의 행보가 가속화됨에 따라 불평등과 착취가 더욱 두르러졌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던 흐름이 축의 시대를 형성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야훼 유일 운동은 그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엘리야의 야훼는 “다른 신들이 사회적 정의라는 근본적 의무를 게을리 했다고 비난햇다. 엘리야도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배려를 강조햇다.” 그러나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발전도 아니었으며 이스라엘과 유다에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약자 보호는 오래 전부터 고대 근동 전역의 공통된 정책이었다. 중동 전역에 걸쳐 정의는 종교의 핵심적인 기둥이었다.” 오히려 엘리야의 야훼는 그 초월성 때문에 구분된다. 이는 저자가 축의 시대의 ‘초월적 돌파’라 말하는 성격을 선취하는 것이다.

“오늘날 거룩이란 말을 도덕적으로 탁월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카도쉬는 도덕성 그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타자성 곧 철저한 분리를 의미한다. 시나이산에 나타난 야훼의 현현은 인간과 신적 세계 사이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엄청난 간극을 강조했다. 이제 천사들은 ‘야훼는 다르시다! 다르시다! 다르시다!’라고 외쳤다. 이사야는 인간에게 주기적으로 강림하여 황홀과 두려움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바로 그 초자연적 감정을 경험했다. 이러한 전율하는 경험은 ‘두렵고 황홀한 신비’이다. 두려운 것이란 그것이 일상적인 위안으로부터 우리를 갈라 놓는 심각한 충격으로서 찾아오기 때문이고 황홀한 것이란 그것이 역설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이 압도적인 경험은 음악이나 성적인 것에 비교되며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될 수 없다. 실재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인 도식에 기초하지 않는 ‘전적인 타자’에 대한 이런 감각은 어떻게 보면 있다고 표현될 수조차 없다. 축의 시대에 새롭게 정립된 야훼는 아직도 군대의 신이엇지만 더 이상 단순히 전쟁의 신은 아니었다. 또한 야훼는 이스라엘만을 열정적으로 편애하는 단순한 부족신도 아니었다. 이제 야훼의 영광은 더 이상 약속의 땅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초월해야 할 대상인 탐욕, 증오, 자기 중심주의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초월해서 나아가야 할 목표인 신을 규정하는 데 집중하면 공격성과 호전적인 배외주의를 드러낼 위험이 생긴다. 자유는 축의 시대의 핵심 가치였다. 따라서 훗날 축의 시대 현자들 가운데는 엘리야의 고압적 전술을 ‘해롭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도 않은 영성응ㄹ 강요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았다. 본진적으로 규정불가능한 초월을 두고 교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축의 시대)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인은 이러한 신을 받아들였고 그들은 신의 실재에 대한 “아주 독창적인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것은 이 신과의 경험이 곧 한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타자성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말을 건네고 이사야는 대답할 수있었다. ‘우파니샤드’의 현인들에게는 이런 일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대화를 나눈다거나 만난다는 생각은 신을 지나치게 의인화하는 부적절한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야훼와의 계약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재정의된다. 그리고 “일신숭배는 예배협정이엇다. 야훼유일운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훼에게만 희생을 드리고 다른 신들에 대한 신앙은 무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신성한 자원이 축소되고 친숙하고 사랑하던 신성한 의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중동의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합의와 단절하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여행을 떠나는 길에 나설 참이엇다.” (축의 시대)

그리고 그렇게 외로운 길로 그들을 이끈 야훼는 이전의 야훼가 아니었다. 헤브라이 예언자들은 “신을 파열, 뿌리 뽑기, 박살내는 타격으로 경험하고 한다. 아모스는 신을 자신에게 익숙한 모든 것을 낚아채 가는 파괴적인 힘으로 경험햇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데 겁내지 않을 자 있겠느냐? 주 야훼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 전하지 않을 자 있겠느냐? 헤브라이 예언자들은 신비주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도의 현자들처럼) 스스로 시작한 규율잡힌 오랜 탐구 끝에 내부로부터 깨달음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아모스의 경험은 인도나 중국의 축의 시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잇는 깨달음과는 매우 달랐다. 그는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힘에 사로잡힌 느낌을 받았다. 이힘은 그의 의식적인 삶의 정상적인 질서를 헝클어놓앗다. 이제 그는 자기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엇다. 야훼가 목적을 가지고 통제하는 에고의 자리를 차지하여 아모스를 완전히 다른 세계에 던져버린 것이다.” (축의 시대)

그렇게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야훼의 말을 해야 했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불의”에 분노했다. “이사야는 외면적으로 제의를 준수하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스라엘인은 그들 종교의 내면적 의미를 발견해야만 했다. 야훼는 희생보다도 공감(compassion)을 더 원한다. 선지자들은 스스로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하는 공감이라는 의무를 발견했다. 바로 이것이 축의 시대에 형성된 모든 주요 종교의 특징이 된다.

아모스는 사회정의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최초의 선지자였다. 아모스의 계시를 통해 야훼는 억눌린 이들을 위해 대변하며 말 못하고 무기력하고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아모스 예언의 첫째 줄에서 야훼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도 모든 나라의 고통을 생각함녀서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에서 사자후를 발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만큼이나 사악했다. 그들은 잔혹함이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압제를 모른 척했으나 야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계약은 신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음과 따라서 모두가 온당하게 취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잇다. 신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하여 역사에 개입하신 것이다.” 그래서 야훼는 이스라엘을 부수기로 결정한다.

“아모스와 호세아는 둘 다 이스라엘 종교에 중요한 새로운 영역을 도입햇다. 그들은 올바른 윤리적 행동이 없으면 제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참지 않는 야훼의 분노와 함께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축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도 변화의 촉매는 걷잡을 수 없는 충격적인 폭력의 경험이엇다. 새로운 축의 시대 전망을 창조한 사람들은 처음으로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사람들이엇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공허를 들여다보앗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었기에 몇몇 사람은 슬픔, 상실 모욕의 경험에서 새로운 전망을 창조할 수 있었다.” (축의 시대)

이 시대의 예언자는 예레미야이다. “그는 선지자가 되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을 저주해야 하는 것에 심히 부담을 느꼈다. 예레미아는 아모스나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자신을 장악했다고 느꼈다. 관절을 마비시키고 심장을 쪼개고 마치 주정뱅이마냥 비틀거리게 만드는 고통으로서 신을 채험했다. 선지자가 느꼈던 두렵고 황홀한 신비라는 이중적 체험은 동시에 거친 폭력과 달콤한 유혹으로 경험된다. 선지자들의 신은 이스라엘인에게 중동의 신화적인 사고 방식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하고 당시 주류적 흐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것을 종용했다. 예레미야의 고뇌를 통하여 우리는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충격과 혼란을 의미햇는지 볼 수 있다. 야훼의 종교는 아직 내재적인 신적 원리인 아트만과 비교할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앗다. 야훼는 외부의 초월적인 실재로 경험되었던 탓에 덜 이질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인간화될 필요가 있었다.”

“예레미야는 뒤에 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기원전 597년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시련의 시기를 견디면 그들은 더 내적인 영성을 얻게 될 터였다. 야훼는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이다. 이번에는 모세와 맺은 낡은 언약처럼 언약이 돌판에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면으로 향했다. 각 개인은 자신을 책임져야 했다. 그들은 축의 시대의 더 내적이고 직접적인 앎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욥기가 이 당시에 쓰여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유없이 잔인해지는 신, 단지 재미삼아 내기 승부를 위해 인간을 갖고 노는 신, 그 신은 무엇인가?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유대인 중 상당수가 믿음을 잃엇다. 그들에게 신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에스겔의 환상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건네진 두루마리에는 ‘신명기’ 저자들의 율법의 서와는 달리 분명한 지침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전혀 없고 정리되지 않은 슬픔과 고통의 외침뿐이엇다.

성전 신앙에서 피는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에스켈은 피를 살인, 무법, 사회적 불의의 상징으로 바꾸엇다. 제의는 이제 축의 시대의 새로운 도덕적 의무에 따라 해석되었다. 이 사회적 범죄들은 우상숭배만큼이나 심각했으며 이스라엘은 임박한 재난을 두고 남을 탓할 수 없었다. 에스겔이 그리고 아마도 추방당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도 고통을 소화하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심장이 부서지는 것을 감수했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제 성전은 사라졋지만 이스라엘은 세계 나머지 땅과 다른 삶을 살아 여전히 신성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회복된 공동체를 보여주는 이환상은 미래를 위한 세밀한 청사진도 아니고 설계도도 아니었다. 인도 사람들이라면 만다라, 즉 명상응ㄹ 위한 이콘이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서 신을 중심에 둔 제대로 질서 잡힌 생활의 이미지였다. 야훼는 자신의 백성이 추방당했을 대도 함께 있었다. 따라서 이 백성은 이교도와 구분되어 마치 여전히 성전 옆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이교도와 친하게 사귀거나 동화되지 말고 영적으로 야훼 주위에 모여야 한다. 성전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내적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추방당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이 다시 돌아와 머물 수 잇는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엇다. 그들 모두가 고대 제사장의 율럽을 따라 삶으로써 가능한 일이엇다. 이것은 놀라운 혁신이었다. 민족의 성전이 파괴된 이스라엘은 사제들의 나라다. 모든 사람이 성전에서 신성한 존재를 섬기듯 살아야 한다. 아느님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P 기자의 율법은 삶 전체를 제의화하는 것이엇지만 그는 이 고대의 성전 율법을 이용하여 추방의 경험에 기초한 새로운 윤리적 혁명을 개시했다.

삶의 모든 세세한 면에서 하느님의 다름을 모방하면 야훼가 신성한 만큼 신성해질 수있으며 하느님이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신성한 삶을 살지 않았으며 그것이 그들이 지금 추방을 당한 이유다. 하지만 회개를 하면 야훼는 적의 땅에서도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공감에 기초한 율법이었다.” (축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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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1 - 이집트·이스라엘 초기기독교 성지순례기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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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기행문인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에서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예수상과 간다라미술의 불상을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예수의 모습과 싯달타의 모습의 이러한 차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관념의 차이를 나타내준다. 보다 신적인 예수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반면, 보다 인간적인 싯달타는 우리에게 신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기실 역사적으로 대승불교가 우리에게 끼친 해악 중의 하나다. 싯달타라는 인간이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붓다의 신적 이미지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싯달타가 붓다가 되었을 때 이미 그는 인간이라 보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3권에서 달라이 라마는 해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해탈을 원하지 않습니다. 해탈이 마음의 모든 것의 완전한 종지이며 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윤회가 더 좋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요!”
“그럼 붓다는 재미없는 사람이겠네요?”
“ 그렇습니다. 붓다는 이미 다르마 자체입니다. 어떤 구체적 형상으로는 다시 구현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붓다의 깨달음에 있다. 붓다가 깨달은 것은 無我였다. 무아는 말 그대로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며 항상 그렇게 있는 ‘나’란 인격은 없다는 말이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제자들의 다채로운 초상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서양의 독자들은 초기 불교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아난다와 데바닷타는 빅쿠들의 무리 가운데 두르러졌지만 그들의 초상은 복음서의 생생한 성격 연구에 비하면 여전히 상징적이고 양식화되어 잇다. 심지어 붓다의 최고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도 언뜻 보기에는 인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인물들로 제시된다. 붓다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감동적인 삽화도 없더. 우리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지만 얻게 된다.

붓다는 서구인들이 그들의 영웅에게서 높이 사는 독특한 자질이나 개성을 소멸시킴으로써 해방을 얻었다.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붓다와 빅쿠들은 잘 구별되지 않으며 빅쿠들 역시 모두 작은 붓다로 묘사되고 있다. 빅쿠들 역시 붓다와 마찬가지로 인격이 사라지며 따라서 개인으로서의 특성도 사라진다.

경전의 텍스트들은 빅쿠들의 마음속에 묻힌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거부하여 이런 익명성을 유지한다. 또 깨달음의 성취 이전에 그들에게 있었을 만한 성격상의 기벽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서 예외적인 사람들이 데바닷타와 아난다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데바닷타는 자기중심주의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상냥한 아난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서구인들이 이런 식의 인격 상실을 비난한다면 빅쿠들은 아마 자아의 포기는 닙바나라는 내적 평화를 얻기 위해 얼마든지 치를 수 잇는 대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닙바나는 자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그렇기에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에게 깨달은 자란 (인간같지 않은) 신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싯달타의 형상이 신적으로 그려진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형상을 만든다는 자체이다.

아잔타 석굴 가이드가 “저보고 묻더군요. ‘소승과 대승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상의 유무지요. 소승에는 불상이 없고 대승에는 불상이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붓다를 사람의 형상으로 시각화할 때 그것은 불교의 무아론의 근본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붓다를 하나의 실체로서 신격화하고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그러기 때문에 붓다는 제자들이 진리만에 의거하여 살 것이며 자기라는 인간의 형상에는 집착치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불상이란 1세기말경 대승운동이 태동되면서 생겨난 것이며 불교사에서 매우 이질적인 것이엇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2’)

“대승불교는 불상을 도입하면서부터 엄청난 대중운동으로 발전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그러한 계기를 통해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고도 말할 수 잇다. 즉 불교의 진면목은 무신론이었는데 불상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유신론으로 전락해버렸다. 불상숭배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대한 일반재가신도들의 불교이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천당에 가고자 하는 유일신관과 별 차이가 없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저자는 기독교에서도 동일한 전락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그 전락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독교는 아시아의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관복음서가 말하는 예수의 생애는 사실이 아니라 신화로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티머시 프레케와 피터 갠디는 ‘예수 미스터리야 명제’란 가설을 세웠다. 이들의 가설에 의하면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이집트, 지중해연안, 근동지역에 광범하게 유포되어 있었던 미스테리아 비교의 신화적 운동의 유대인적 버전 속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神人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역사적 실체가 아니라 신화운동의 한 가상적 주체이다. 이 가상적 주체야말로 우리 자신이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을 가지는 신화적 운동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미스터리야 비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들의 골자를 간추려내면 곹 예수의 신화적 삶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1.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肉化된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2.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동정녀이다.
3.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25일 동굴이나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4. 그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세례의식을 통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잇는 기회를 준다.
5. 그는 결손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이적을 행한다.
6. 그가 나귀를 타고 읍내로 의기양양하게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를 찬양한다.
7. 그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여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8. 죽은 직후에는 지옥으로 떨어졌다가 사흘 후에는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 광영 속에 하늘로 올라간다.
9. 그를 따른 자들은 그가 최후심판의 날에 심판관으로서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10.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써 기념된다.
이것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공통된 이집트, 근동지역 신화의 매우 보편적인 설화양식이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이야기의 골력은 당대에 유행하고 있던 흔해빠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미스테리아 가설은 예수의 부활과 동일한 구조의 신화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희랍에서는 디오니수스,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 이탈리아에서는 바카스,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에서 반복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신인들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이며 이 신화는 기전원 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조셉 캠벨이 말한대로 이러한 신화들은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를 갖는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그러나 복음서 내러티브가 해부학적 구조를 공유하는 다른 신화들과 다른 점은 “뮈토스적 세계와 로고스적 세계를 혼융하는 기묘한 신념체계를 자신의 실존적 삶의 의미로서 받아들이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고대인은 신들이 하늘에 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 어느 신을 하늘에서 보았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시간 문제에서도 고대인이 하는 이야기를 액면 그래도 받아들여 헤파이스토스가 얼마전에 재혼을 했다거나 아테네가 근래에 몹시 늙엇다고 알려주면 그는 마찬가지로 아연해 앳으리라. 그러면서 신화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 사이에는 그 자신이 보기에도 막연한 유추적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일종의 정신적 혼수 상태에서 그 이질성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현실화’시켰을 것이다.” (폴 벤느)

1세기의 헬레니즘 세계는 지금 우리와 그리 큰 차이가 없이 개명된 합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것은 그들은 신화의 언어를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신화의 언어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 언어가 말하는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근대 이전 문명에는 생각하고 말하고 배우는 두가지 인정된 방식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뮈토스와 로고스라고 불렀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 다 중요했고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둘은 상충관계가 아닌 상보관계로 각각의 고유한 기능이 있었고 둘을 뒤섞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엇다. 신화는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했다. 신화가 신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실은 로고스의 소관 밖에 잇는 인간적 곤경의 좀더 비극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신화는 심리학의 원시적 형태로 일컬어져왔다. 신화가 실을 잡고 미궁을 빠져나가거나 지하세계로 내려가거나 괴물과 싸우는 영웅을 그렸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한 신화는 우리가 접근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알 수 없는 마음의 영역과 타협하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 속의 미궁으로 들어가서 자기 안의 괴물들과 싸워야만 했다. 프로이트와 융이 인간정신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계획했을 때 본능적으로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옛 신화엿다. 신화는 역사적 사건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화는 본래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신화는 우리가 올바른 영적 혹은 심리적 자세를 갖게 할 수는 있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 신화의 ‘진실’을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려 있었다.” (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붓다의 본생담이 그 좋은 예이다. “불교도들은 예나 지금이나 본생담의 이야기를 싯달타 전새으이 다양한 전기문학장르로 파악하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이야기하거나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본생담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다. 자기헌신이며 희생이며 자비며 사랑이다. 역사적 싯달타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거친 자비행을 통하여 해탈을 이룩할 수 있었나 하는 대승정신의 드라마틱 프리젠테이션인 것이다. 즉 자타카는 사실적 스토리로서의 역사성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의 메시지를 구현하기 위한 신화적 선포로서 그 일차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

“예수의 전기도 자타카와도 같은 하나의 문학적 양식으로서 초대교회에 유행했던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 현상의 의미는 죽음에서 드러나며 그 죽음의 의미는 당시 헬레니즘 문명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아주 이성적인 철학자로만 생각하며 그가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켯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이나 예수가 바리새인의 율법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성전을 뒤엎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혁명을 꾀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에 동일한 스토리의 구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아테ㅐ네의 준법정신 때문에 사형을 달게 받은 것이 아니라 사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종교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는 사형을 오히려 자초했다고 하는 그러한 과정이 예수의 스토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만남 3’)이다.

예수는 소크라테스와 달리 부활함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완성한다. “복음서 내러티브의 대전제는 이미 부활로 확정되어 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며 죽기 위해서는 수난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난에 이르기 위해서는 체제를 뒤흔드는 많은 혁명적 언행을 해야 한다. 그 혁명적 언행 속에 또 우리의 인과적 상식을 뛰어넘는 이적이 점철되어 잇다.”

그런 내러티브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바울의 말대로 우리의 삶과 무관한 객관적 물리적 사태로서 믿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죽음과 부활을 나의 실존적 고통의 심연에서 직접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죽고 내가 부활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6~7) 죽어서 천당 가기 위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의 주된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잇지 않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한 끊임업없는 몸부림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부활의 전제가 없는 예수는 예수가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예수는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인 것이다. 다시 말해 죽었다 부활한 예수로서 묘사된 예수가 바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인의 신상속의 예수일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분명 초대교회의 케리그마의 소산인 것이다. 선포 즉 케리그마의 대상이 되는 예수는 예수의 색신이 아닌 예수의 법신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법신과 색신을 분리하지 않으며 예수의 법신이 곧 색신이라 믿는다.”

이것이 문제라고, 원시기독교가 대승기독교로 전락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에게 인성을 부여해야만 가현론의 픽션을 벗어날 수 잇다고 한다면 그 인성은 매우 정직한 보편적 인성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부활의 예수가 될 수가 없다. 역사적 예수는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는 없다. 예수에게 그러한 이적과 부활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예수가 아닌 그리스도일 뿐이며 이성의 논의를 벗어나는 불합리한 신앙의 특수상황에 속해버릴 뿐이다. 부활의 예수는 기독론의 핵심이며 초대교회의 프로라간다이다. 기독론으로 예수에 접근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화운동의 ㅎ산 고리를 캐는 작업일 뿐이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의 모든 신화의 전형적 양식이며 그것은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한 아키타입일 뿐이다. 예수의 신성만을 고집하며 인성을 왜곡한다면 그러한 예수는 신화적 예수가 되고 말 뿐이다.

과연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 있는가? 나는 당당히 외친다: 오히려 기독교에서 그러한 신화적 요소를 배제할 때만이 기독교는 진정한 기독교가 된다! 이적과 부활이 없이도 예수는 예수일 수 잇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예수의 참모습이다.”

저자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도마복음이 ‘또 다른 예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헌비평에 따르면 도마복음은 바울의 서신들 그리고 공관복음보다 선행한다. 그리고 공관복음이 도마복음과 상당량을 공유하는 자료들을 비교하면 도마복음의 내용이 공관복음의 원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잇다. 그리고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의 공통자료인 “Q자료 속의 예수에게는 탄생설화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어떠한 이야기도 없다. 예수는 과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견하고 산 사람이었을까? Q자료 속의 예수는 전혀 그러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공고나복음서의 사실이다. 따라서 최후의 만찬이니 하는 그럴싸한 드라마도 없다. 나의 피니 살이니 하는 죽음과 부활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를 갖는 그런 언어가 그림자도 없다. 자신의 이해에 있어서도 ‘하나님과 자신’을 아버지와 아들의 친근한 관계로 파악하는 언어는 있지만 아버지가 파견하여 천상(빛)에서 지상(어둠)으로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자라는 식의 그리스도(메시아)적 이해가 전무하다. 예수는 오직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을 뿐이다. 천국은 천당이 아니다. 천국이란 하늘구름 위에 붕 떠 있는 어느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포한 것은 로마의 지배나 율법의 지배나 바리새인 대제사장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 무매개적 지배엿다. 그것은 이 땅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였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하늘에 구현된 그런 질서가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청이다. 바로 이 말씀의 주인공이 예수인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실상인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저자는 견유학파의 현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예수가 살았던 갈리리 지방은 “그 아이덴티티가 남방의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대지역보다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개방적 선진문명에 더 근접해 있엇고 더 동화되어 잇었다. 당시 두로와 시돈의 찬란한 역사에 예루살렘을 비교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적 관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갈릴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예루살렘은 변방의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예수의 입장에서 이 도시들을 감지하는 느낌을 말한다면 주변의 고라신과 벳새다가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 비유된다면 두로와 시돈은 뉴욕 맨해튼의 느낌이었다. 당시 지중해연안 최대의 도시였다. 최근의 스칼라십은 예수운동이 당대에 이미 페니키아문명권에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숙지한다.” 예수 자신도 페니키아문명권과 같은 아람어를 사용했다.”

당시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였고 우주의 원질에 대한 통찰이기보다는 인생의 아타락시아의 체득이엇다. 아타락시아란 과도한 쾌락이나 고통 그 어느 것에 의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이었다. 그것은 도마복음에서 안식(rest)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으로부터의 해탈이엇다. 이 해탈을 가장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견유학파였다. 예수야말로 디오게네스의 제자엿다는 역사적 아이러니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견유학퍼족 리얼리즘을 철저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그의 운동에 가담하는 제자들에게 돈을 담은 전대는 물론 지팡이나 가죽샌달도 그리고 속옷조차도 지니지 못하게 햇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문안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견유학파의 덕목은 최소한의 질박한 삶이엇고 모든 세속적 가치에 대한 절제였다. 예수가 비유를 잘 들기로 유명한데 견유학파의 사람들이야말로 비유의 천재엿다. 역사적 예수는 갈릴리의 견유였다.” (2권)

도마복음의 예수는 철저히 현자였다. 현자로서 예수는 종말론적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수공동체는 철저히 지혜담론의 공동체였으며 그 지혜담론적 성격이 후대에 내려오면서 점차 묵시담론적 틀 속에서 재해석되어 갔다. 묵시담론은 물론 기독론의 형성과 관련되며 그것은 유대국가의 멸망이라는 긴박한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의 성격을 띤다. 묵시담론은 선택된 자들의 폐쇄적 사유에서 기인되는 것이며 지혜담론에 어떤 긴장감과 긴박감을 부여한다.

불트만은 말한다: ‘종말론적 분위기라는 것은 기대나 계산이나 희망이나 염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선민이라는 의식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민의식은 선택된 자들과 선책되지 않은 자들의 분별을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별은 선택된 자들은 하늘에 속하고 선택되지 않은 자들은 땅 즉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은 곧바로 하늘은 빛이고 세계는 어둠이라는 이원적 사유로 연결된다. 여기에 플라톤적 사유가 결합되면 하늘이라는 이데아만이 실재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림자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멸절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도덕적 이원론까지 더하면 선택된 자들만이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들이며 선택되지 못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악의 구현체가 된다. 그러니 이 세계는 멸절의 종말로 치닫지 않을 수 업6t다. 그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공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 세대’라는 표현은 바로 이런 종말론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심층구조적 언이다.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눅 11:29, 마 12:39 막 8:12)

그러나 예수는 유대인의 선민의식을 거부한 갈릴리 사람이엇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그에게는 철저한 인간평등사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저주 아닌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지혜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의 핵심사상이었다. 묵시담론은 후대 기독교공동체의 성격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수는 오히려 묵시담론을 거부한 사상가엿다. 도마복음서에는 묵시담론이 없다. 이것이 바로 도마복음서의 성격이 Q복음서보다도 더 오리지널한 예수의 담론을 드러내고 있다고 추론케 만드는 한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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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3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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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도올에게 던진 질문이다.

유럽에서 기독교는 멸종 직전이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생명력은 그나마 미국에서 살아남았지만 “미국에서도 상류층이나 지식인이나 지도층보다는 흑인이나 소외된 보수세력의 지지기반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샤머니즘적 성향이 강렬한 제3세계나 기독교 전통을 새롭게 수용한 신생국가에서 오히려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개화된 상류층의 트레이드 마크가 기독교일 수는 있어도 불교이기는 어렵다. 그런데 미국사회에서는 오히려 하층부의 사람들은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잔뜩 먹고 뚱뚱하며 기독교의 영성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개명한 상층부의 사람들은 비만형의 인간들이 별로 없고 채식주의자들이 많으며 불교도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 일본 스시집에를 잘 간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달라이 라마가 나타나면 잔디밭을 “메우는 업숙한 수만의 군중은 75%가 대학원 졸업생들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불교도의 60%가 박사며 의사며 변호사며 회사고위간부 등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달라이 라마는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올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사회의 인텔리겐챠들은 더 이상 기독교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젖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여유로운 정상적 생활의 루틴을 가진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신문화를 갈망한다.” 사람은 어쨌든 의미를 찾는 동물이고 그 의미를 영성이라 한다. 더 이상 기독교는 그 영성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의 보편화이다.

현대인의 종교는 과학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과학은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의미는 과학의 대상이 아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책 다른 부분에서 언급되는 중국의 상황이 과학으로 인한 의미의 공허와 유사한 예이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진정한 문제를 문화와 도덕이라 말한다. “그것은 중국문명의 총체적 위기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국공산당은 맑스주의에 대한 완벽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있었습니다. 더 이상 유교적, 불교적, 도교적 가치가 새로운 사회건설에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50여년동안 계급투쟁만을 가르쳤고 전통적 가치의 타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증오’였습니다. 전통적 仁의 가치,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할 줄 알며 약한 자를 도와줄 줄 아는 마음씨, 온유와 사랑, 양보와 희생, 이런 것들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되고 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홍위병과 같은 어린애들 장난의 파괴적 광대짓을 보면 얼마나 그 가치전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공산주의의 모든 실험, 무계급사회의 건설은 하나의 춘몽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여실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목표 그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면 그 이데올로기의 정당성 그 자체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갑자기 모든 가치관을 잃어버렷다. 문제는 “아시아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최대의 의미는 저는 전통문화의 보존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창조적 혼돈이라 생각합니다. 중국은 여태까지 그러한 창조적 혼돈이 허용되지 않는 50여년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생긴 정신적 공백을 메꿀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정신적 공백 때문에 범죄, 마약,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 관료들의 부패, 도덕적 해이, 이러한 문화의 총체적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구의 문제는 과학혁명의 충격으로 기독교가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도덕을 정당화해주는 종교가 무력화되면서 중국처럼 정신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과학은 도덕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근세과학은 인류에게 무신론과 상식에 대한 무한한 신념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초월적인 창조주에로의 복속을 거부하게 되었다. 기독교로부터 불교에로의 세계사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과학의 보편화란 정신적 토양을 전제로 해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싯달타의 정신혁명은 2500년후에나 세계 기독교가 성취해놓은 과학문명의 새로운 정신적 토대를 계기로 겨우 드러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학과 호환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불교이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들에게는 무신론의 종교가 필요하다. 무신론 자체가 과학이라는 인과세계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영성을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에 21세기 인류사의 정신적 패러다임 쉬프트가 불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That’s right” 달라이 라마의 말이다. “불교는 신이 없이도 인간에게 무한한 영성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교는 엄연한 종교입니다.”

불교의 교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緣起이다.

“시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연기론에서는 인정이 안됩니까?”
“인정될 수 없습니다.”
“연기는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심리학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심리학이라 말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답변은 단호하고 간결하다.

“과학적 진리도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성하께서는 절대적 진리가 잇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물론 불경에 보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 이 따위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불타의 깨달음이 연기인 한 절대적인 진리는 없습니다.”

불교에는 기독교처럼 절대진리를 선포하는 교리가 없다. “마치 절대적 진리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리고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공포감이나 중압감의 포로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기독교 일신론 사유가 지어낸 서구적 발상의 일대오류라 생각합니다.” 연기론을 확장한 空은 이러한 사유를 절대를 실체로 만든 유아론이라 말한다.

불교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지혜와 지식은 같이 가야만 한다. “저는 감정과 본능에 치우친 신앙심과 자비심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누누이 역설해왔습니다. 궁극적으로 감정과 이성은 인간에게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의식쳬게의 소산이며 영적 수행에 지성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비낟. 그리고 물론 지혜와 지식은 이분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를 증가시키지 않는 지식은 결코 지식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한다. “지식이 곧 지혜라는 신념은 나의 체험적 소산이며 그러한 생각에는 동요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현상적 일원론입니까?”
“물론입니다. 모든 일원론은 현상론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양철학의 한계는 현상 그 자체를 무시하고 들어간다는데 있습니다. 이것또한 기독교와 관련된 사유체계가 파생시킨 뿌리 깊은 오류이지요. 우리가 살고 잇는 현상은 허깨비 같은 것이며 가치없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뿌리깊은 경시가 모든 오류를 파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원론은 현상적 일원론밖에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不二입니다.”

명쾌하다.

“불교를 심리학이라 하셨는데 그 심리학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평화입니다.”

여기서부터 달라이 라마와 도올의 논쟁이 시작된다. 마음의 평화는 열반을 쉽게 말해준 것이다. 문제는 윤회이다.

“”열반이 마음의 상태라 하신다면 우리가 열반적정의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번뇌도 곧 보리가 되는 것이르므로 윤회도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의 상태에 이르든지 그 마음의 상태가 윤회하는 것입니다. 윤회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윤회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해탈이라 구분한다. 그러면서 “윤회는 사실입니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장시간에 걸쳐 불교교리사에 등장하는 윤회에 대한 복잡한 논쟁이 둘 사이에 재연된다.

도올의 마지막 질문은 깨달음에 관한 것이다. “성하 당신은 정말 깨달으셨습니까? 정말 깨달으셨다면 그것을 저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모두 궁금해할 질문이다.

“지금 내 몸은 예순하고도 일곱해가 된 몸입니다. 그런데 나의 정신, 나의 생각은 항상 맑고 깨끗합니다. 저는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엔가 空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갑자기 세계가 넓어지더군요. 뭔가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조금 알듯햇습니다. 그러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공이라는 진리는 내가 살아가는 데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물 전제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을 물으신다면 이 공과 자비를 통해 무엇인가 조금 이 우주와 인생에 대해 통찰을 얻었다는 것, 그런 것으 말씀드릴 수 있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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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 지금 미국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 52
김광기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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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 인근의 이스트포인트. 실직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이엇다. 35도가 넘는 더위에도 3만명이 넘는 시민이 북새통을 이뤘다. 혹시라도 앞으로 나올 공간을 위해 단지 신청서만 배부하는데도 소동이 벌어졋다. 이날 62명이 부상했고 20명은 입원했다. “이날 신청서를 얻으려 모인 사람은 시 인구의 2/3가 넘는다. 신청서를 거머쥔 한 시민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입주 당첨권도 아닌데 말이다. 그것만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났거나 곧 쫓겨날 처지가 대부분이다.” 금융위기가 불거지고 미국의 노숙자는 30% 늘었다. 미국인 200명 가운데 1명이 노숙자이다.

미국은 중산층의 나라였다. 인구의 60% 이상이 중산층이엇고 “중산층이 두껍기에 너도 나도 기회만 닿으면 미국에서 살고 싶어아는 아메리칸 드림을 양산햇다. 그러나 그 명성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지난 한세대 동안 미국의 중산층은 녹아내렷다. “2009년 미국인의 61% ‘항상, 또는 늘’ 하루벌어 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실직하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한다.” 임대주택 신청서가 유일한 희망이 된 이유이다. 하루하루 연명하며 “사는 이들이 2007년 43$%, 2008년 49%였는데 2009년에는 더욱 상승했다.” 미국인 대다수가 “벼랑 끝 생활을 하는” 것이다.

구직포기자는 제외하는 공식실업률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업자를 모두 포함하는 U-6 실업률은 2009년 16.2%, 2010년 16.7였다. 게다가 “새직장을 얻었다 해도 절반 정도는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노동직임”에 불과하다. “40%가 넘는 미국인이 지금 최저임금을 받는 단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한다.” 실업률이 높을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경력이 없는 청년들이다. “청년실업률은 53.4%로 2차대전 이래 최악이다.”

“워싱턴총영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어강사 취업을 위해 한국비자를 신청한 사람은 380명으로 이 가운데 68명이 미국의 100대 대학 안에 포함되는 명문대 출신이엇다. 하버드대와 뉴욕대, 듀크대, 등 일류대학 출신도 포함돼 있었다. 예전엔 아무리 번듯한 직장을 준다고 해도 한국행은 그들에겐 한 치도 고려할 가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현재 미국의 처절한 경기 침체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실업률과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2009년에 미국인 8명 가운데 1명이 먹을 것을 위해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으며 그중 600만명이 수입이 없어 푸드 스탬프만으로 연명하고 있다.”

미국인에게 식량이란 고기이다. 최소한 미국에선 “먹을거리 그것도 육류 값이 무척 싸서 아무 지장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잇엇다.” 그러나 이젠 먹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고기를 먹지 않을 수는 없으니) “대신 스팸 소비가 늘었다. 스팸 제조회사의 주가는 연일 상종가다. 그나마 유사육류인 스팸으로라도 고기맛을 보는 사람은 다행이다. 그마저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은? 그래서 지금 미국인들은 닭을 키운다.

여기저기서 닭을 키우는 바람에 닭들이 시도때도 없이 울어대 참을 수 없는 소음을 자아내고 닭들이 싸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는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되자 한 가구당 한마리만 키우는 조례가 발동된 곳도 있다. 2009년 9월 LA 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이다.

그런데 이런 추세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이 있다. 가정에서 닭을 치는 것이 반드시 비용절감만은 아니다. 비용을 생각하면 병아리 사육은 그렇게 큰 경제적 이득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미국인은 지금 다른 것은 몰라도 총과 닭 그리고 씨앗을 사려고 안달이다. 그것들은 미국인들이 유사시에 의지할 최상의 방책이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리적, 물질적 위기는 도를 넘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닭을 키우는 것은 생존을 위한 자립심의 발로라는 상징적 의미이다. 여기서 자립심이란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않는 생존능력을 말한다. 닭을 키우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의 그물망이 해체되고 타인의 도움을 유기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택한 최후의 전략이다.

이런 위기감은 기분 나쁜 징조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에서 쫓겨났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날 수 있으며 호주머니와 은행에 모아둔 돈도 없다. 이럴 때 나를 도와주고 지원해줄 국가도 빈털터리다. 내가 믿고 의지할 이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비상식량부터 챙기자.”

“경제적인 실패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만이 가진 그리고 미국인만이 소유한 소중한 무엇이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유학시절 주유소에서 겪은 일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아무리 지갑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당황한 필자는 주유소 직원에게 시계와 운전면허증을 건네주며 사정햇다. 그리고 곧 가지고 오마했다. 그랬더니 주유소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 시계와 면허증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지불하면 되고 이런 것은 필요없단다. 단골 주유소도 아니라 안면도 없었다. 그런데 필자를 믿어준 것이다.

그랫던 미국이다. 정직, 정의, 공평성을 바탕으로 신용이 미덕이 되는 신뢰사회가 미국의 자랑이엇고 힘이엇다.”

저자는 미국의 위기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본다. “진정한 위기는 바로 신뢰 증발의 위기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는 대규모 사회에서 남을 믿을 수 없다면 그 사회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이든 사회가 돌아가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저자는 사회적 신뢰를 두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중국, 일본, 한국 사회의 신뢰는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맺어지는 신뢰다. 그러한 기준으로 나누어지는 집단 구성원들끼리 지닌 신뢰다.” 그예로 저자는 한국 대학들의 자기대학 출신 교수(여기선 학부가 중요하다) 비율이 높은 것을 든다. 자기 대학 출신을 뽑는 것은 밥그릇 싸움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큰 이유를 신뢰의 문제라 본다. “자기 대학 출신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당파싸움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지연, 학연으로 뭉쳐 밥그릇 싸움을 한 당파싸움이나 교수자리의 밥그릇 싸움이나 다를 것은 없다. “아담 셀리그만은” 이런 신뢰를 “확신(confidence)”라 말하며 저자가 미국 주유소에서 경험한 신뢰를 “신뢰(trust)라고 부르며 명확히 구분하다.”

확신의 전형적인 예는 일본의 ‘이에(家)’이다. 나카네 지에는 '우리'란 말의 의미는 두가지 원리에 의해 말들어진다고 말한다: 자격(attribute)와 場(frame).

자격은 혈연, 지연, 학연, 직업, 계급, 계층 등과 같은 개인이 가진 속성을 말하며 場은 공간적 테두리를 집단을 만드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두가지 원리 모두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이다. 그러나 두 기준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두 기준이 어느 정도로 섞이는가에 따라 사회를 구분할 수 있다고 나카네 지에는 말한다.

자격과 장의 두 기준으로 사회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보면 인도와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다른 사회들은 그 중간에 있다고 나카네 지에는 말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자격을 기준으로 한 집단구성의 전형적인 예이다.

"인도의 농촌에서는 친정집에 가서 장기간 머무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시로 형제가 방문을 하고 원조를 받기도 하며, 고부간의 싸움을 옆집에 들릴 정도로 크게 하여 그것을 듣고 같은 카스트에 있는 옆집의 시어머니나 며느리가 응원을 오기도 한다. 다른 마을에서 시집 온 며느리끼리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은 일본의 여성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돈독한 것이어서 부러울 정도였다.. 이것은 며느리라는 같은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기능이 발휘되어 '이에'라는 테두리와 교착하면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아이들 싸움에 부모가 나선다'는 식으로 완전히 반대의 경향이 존재한다." (나카네 지에)

일본에선 며느리나 카스트같은 자격은 시집을 오면 사라진다. 같은 공간에 살면서 경제적 공동체가 되면 일본에선 '우리'의 한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데릴사위제도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며느리는 고달프다. "일본에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문제는 '이에' 안에서만 해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학대받는 며느리는 자시의 친형제, 친척 내지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원조를 받지 못하고 혼자서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집을 갔으면 이전에 속했던 '이에'에선 탈퇴하고 다른 '이에'에 속하게 된 것이므로 다른 '이에'일 뿐인 친정사람들은 도와줄 이유도 없고 도와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주유소에서 경험한 신뢰는 확신과는 다르다. 이 신뢰는 ‘우리’란 말이 붙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주어진다. “낯선 이들끼리 일단 믿어주고 시작하는 신뢰를 말한다. 따라서 이 신뢰는 아슬아슬한 신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신뢰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과거 전통사회에서 보이던 끈끈한 집단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사 그런 것들이 존재할지라도 그들만 서로 위하면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넓어졌고 복잡해졋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회학자들은 동양사회를 저신뢰 사회, 즉 신뢰할 수 없는 사회로 규정했었다 맞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자 우리 사회가 이렇지 앟은가. 얼마나 연줄을 좋아하면 연줄의 대명사인 대학 간판을 따려고 젊은 시절을 그토록 허비하고 잇지 않은가.”

저자는 미국의 진정한 힘은 바로 신뢰엿다고 말한다. “필자가 걱정하는 바가 이것이다. 미국인들 사이의 믿음은 후자의 신뢰엿다. 학연, 혈연, 지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지는 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많은 인종과 민족을 바탕으로 하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신뢰가 사라진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피부색, 말, 밥 먹는 문화도 각양각색이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곳에 과연 사회가 남아날까?”

학계에 더 널리 쓰이는 말로 하자면 저자는 사회적 자본의 고갈을 언급한 것이다.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바닥났다는 지적은 퍼트넘의 ‘Bowling Alone’이란 책으로 대중화되엇다. “사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웤의 특성은 그 속의 사람들이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자본은 접촉의 스포츠와 같다. 하회적 자본을 가진 네트웤의 전형적인 예로서 주민모임, 자선단체, 종교단체, 스포츠팀, 사교클럽, 시민단체,동호인 모임, 볼링 리그 등이 있다. 회사와 직장 역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의 원천이다.” (에릭 바인하커)

사회적 자본의 예로 많이 인용되는 퍼트넘의 이탈리아 남부 연구를 보자.퍼트넘은 남부 이탈리아의 푸글리아 지역 관공서 방문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침침한 대기실에 몇몇 나태한 공무원들이 서성대고 있다. 그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출근하지 않지만 민원인의 요구에 대응하지도 않는다. 자주 가는 민원인들은 건너편 사무실에 놓인 텅 빈 책상만 보게 된다. 이러한 지방 공무원을 일하도록 만들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개탄한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엿다. ‘그들은 편지에 회신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퍼트넘은 북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의 관청을 이렇게 소개했다: “유리벽으로 되어 있는 자방관청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현대식 첨단 기업을 방문하는 것과 같았다. 활달하고 예의바른 안내원이 방문자들을 사무실로 안내하였고 공무원들은 전산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지역의 문제나 정책에 대해 잘 설명했다. 많은 분야에서 입법을 선도한 에밀리아 정부는 약속을 실천에 옮겼으며 정부정책의 효과는 수십개에 달하는 어린이 보육센터, 산업단지 공연장, 직업훈련원 등으로 설명된다.”

퍼트넘은 두 관청의 차이를 그 지역의 사회적 자본의 차이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대규모 협력을 실행할 수 없는 낮은 신뢰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사회는 극도로 원자화되어 있어 모든 협력적 노력이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인 가족에서만 이루어진다. 사촌 같은 친족과의 관계는 물론 때로는 성인이 된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도 신뢰와 협력을 찾아볼 수 없다. 공동체 차원의 협력적 노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밴필드는 이런 유형의 사회를 ‘무도덕한 가족주의’라고 부르고 그 기본 철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핵가족이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잇는 물질적 이익을 최대한 얻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하라.’ 이것은 악당의 철학이다. 사회가 사회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사회라고 부르는 것조차 사태를 오도할 수있다. 그것은 사실 원자화된 핵가족의 집합체다.” (피터 터친)

그에 비해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은 훤씬 많이 네트웍화되어 잇다. 합창단과 산악회, 문학 서클, 사냥 클럽 같은 시민들의 모임이 훨씬 촘촘하게 짜여잇다. 공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공적인 원인에 대한 헌신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시칠리아의 마치아와 자매 조직인 나폴리의 카모라는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북부에는 그와 비슷한 것이 없다. 마피아는 만연한 신뢰 부족에 대한 사회적 대응으로 생긴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부족한 곳에는 보호에 대한 수요가 많다. 마피아는 보호를 젝5ㅗㅇ해주는 개인 사업가이다. 메초조르노에서는 절대 기업을 할 수없다. 잠재적 파트너도 기회만 있으면 속이려 들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위험에 자신을 노출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마피아에 의존해 계약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마피아는 그런 역할을 했다.” (피터 터친)

그러나 북부 이탈리아에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탈리아에서 “성공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가족이 소유하고 직원이 100명쯤 되고 밀라노나 볼로냐에 있다. 그런 기업들은 패션에서 정밀기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틈새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국제시장에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규모의 이점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북부에서도 중간규모의 집단에서만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터친)

피터 터친은 그 원인을 로마제국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터 터친은 서로마제국은 사회적 자본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사회적 협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멸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사회적 자본의 “블랙홀이 로마제국의 핵심지역에서 발생했다. 제국이 붕괴된 두에 이탈리아 북부에는 6세기의 랑고바르드족을 비롯해 몇 차예나 게르만족이 밀려들었다. 이 이주민들은 아사비야(피터 터친이 사회적 자본 대신 쓰는 이븐 할둔의 용어)가 높은 사회에서 왔고 따라서 이들의 유입은 제국 때 생긴 남북의 차이를 더욱 강화햇다.”

퍼트넘은 ‘Bowling Alone’에서 미국의 상황이 이탈리아 남부를 닮아간다고 우려한다. “’우리는 갈수록 가족과 친구, 이웃, 사회조직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회조직은 학부모회든, 교회든, 레크레이션 클럽이든, 정당이든, 볼링연맹이든 마찬가지다.’ 30년전에는 지금보다 두 배는 자주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햇다. ㅎ사회적 신ㄹ회도 감소하는 것같다. 분명히 워싱턴에 있는 정부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계속 줄엇다. 1950년대에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70%에서 80%였는데 1990년대는 30%에서 40%였다. 미국사람들은 45%가 신문을 거의 또는 전혀 믿지 않아 20년 전의 16^에서 크게 증가햇다. 퍼트넘이 하고자 하는 말은 개인이 갈수록 고립된다는 것이다. 차에서도 혼자 잇고 일도 혼자 하고 이혼하고 형광등 불빛 아래서 혼자 볼링을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어떤 사회에서나 위험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피터 터친)

퍼트넘과 후쿠야마는 상당히 복합적인 이유들을 들고 있다. 피터 터친은 그 이유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불평등의 증가를 말한다.

퍼트넘과 후쿠야마는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기 시작한 시점을 1960년대로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불평등 역시 “1960년대가 분기점이다. 그전에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줄어들고 잇엇는데 그 뒤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몇십년동안은 일반 노동자의 봉급과 CEO의 보수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970년부터 하위 20% 노동자의 봉급은 그대로여서 사실상 줄어들고 있다. 마태원리가 풀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은 모든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사려면 큰돈이 들어가는 많은 것들, 그중에서도 특히 집값과 교육비, 의료비는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피터 터친은 제국의 붕괴를 사회적 자본(그의 용어로는 아사비야)의 고갈이 원인이라 말한다.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제국이 만들어지도록 했던 사회적 협력이 사회적 경쟁으로 바뀌면서 집단협력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무너지면서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기 때문이라 말한다.

피터 터친은 미국의 학벌사회화를 그 예로 든다. “교육에서 나타나는 경향들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엘리트증 내부의 경쟁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이기때문이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증가햇다. 20세기 말에는 대학을 졸업하는 것만으로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일자리 시장을 뚫고 들어가기에 충분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따는 대학 졸업자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햇다. 박사 학위 값은 박사 학위를 마치는데 걸리는 햇수로 치면 더욱 빠르게 증가햇다. 1967년부터 1995년까지 박사학위를 마치는 데 드는 평균 시간이 자연과학은 6년에서 8.4년으로 사회과학은 7.7년에서 10.5년으로 인문학은 12년, 교육학에서는 무려 19.9년이다.

이런 흐름들은 위기가 오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이며 엘리트층 내부의 경쟁이 심해지고 잇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인들이 익숙한 수준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갈수록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피터 터친)

조선후기의 당쟁은 엘리트 내부의 경쟁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준다. 마찬가지 현상이 미국에서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앵커맨과 앵커우먼들의 학력을 보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 출신이 대다수이고 고졸, 중퇴자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가능한 곳이 미국이엇다. 우리처럼 번듯한 학교 간판 하나만 가지면 실제 능력 없이도 행세하는 나라가 아니엇다.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자나 능력에 맞게 케이크를 적당히 나누어 가질 수 잇는 곳이 미국이엇다. 이런 풍토가 요즘 급격히 바뀌엇다. 나눠 먹을 케이크를 소수가독점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 소수는 죄다 동부의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이런 와중에 나온 것이 학벌주의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또는 그런 곳으로 많이 보내는 명문고교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없던 풍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보인다는 것은 미국이 그만큼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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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 - 원시의 뇌가 지배하는 리더십의 탄생과 진화
마크 판 퓌흐트 & 안자나 아후자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학’이란 이름이 붙는 수많은 분야가 있다. 그중에는 과연 이게 학문의 대상이긴 한가 싶은 것이 많다. 행복학이라든가 대통령학 같은 것이 그런 것인데 이게 정말 학문일 수 있는가, 란 의문이 드는 것은 그 대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는 실체가 있는가? 어찌어찌해서 행복이란 대상이 정의될 수 있더라도 행복이란 대상은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리더십도 그런 분야이다. 과연 이게 학문일 수 있는가란 질문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책의 저자가 분류하는) 주요학파만 해도 10개(학자에 따라서는 이보다도 더많다)가 나온다. 당연히 학파마다 리더십에 대한 정의도 다르다. 말만 리더십이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러다 보니 리더십이란 말이 실체가 있기는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 지경이다.

따져보면 리더십이란 신생분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이 다 그 모양이다: 두리뭉실, 애매모호.

그나마 역사가 짧디 짧은 리더십 분야는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게 실용적 분야이다 보니 그 피해는 경제학이 양산하는 그 많은 착각과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사내정치 또는 조직내 권력현상에 대한 권위자인 제프리 페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다음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리더십에 관한 글들이다. 유명한 경영전문가들이 쓴 책이나 리더십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강의는 일단 요주의 대상으로 보고 경계해야 한다. 이런 이론들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리더십 교육 내용을 봐도 마음의 나침반을 따르라, 진실해져라, 속내를 보여줘라, 함부로 나서지 말고 겸손하라, 억지나 행패를 부리지 말라는 등 근거 없는 처방으로 가득하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먼저 마음을 쓰고 그들에게 늘 진지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고 변함없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좋고 인간적인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전문가들이 권력을 얻는 방법이라고 추천하는 주장들은 하나같이 문제가 있다. 권력을 향해 걸어가는 길은 그들이 제시하는 주장과는 별로 닮은 점이 없다.

리더십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세상은 공정하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어떤 리더나 조직이 성공하면 기계적으로 갖가지 긍정적인 자질과 행동을 그 개인이나 기업의 특성으로 간주한다. 일단 누군가 성공하면 좋은 리더가 되게 해준다는 긍정적인 특징에 관련된 내용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그런 특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제프리 페퍼) 페퍼는 자칭 리더십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런 긍정적인 특성과 현실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는 것은 이미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보여주기 위해 화장한 얼굴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 잘난 맛에 하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순진한 앵무새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리더십이란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이 하려는 일이다.

거창하게 들릴 것이다. 사실 거창하다. 그것이 제대로만 된다면 노벨상감이다. 뭐 노벨상은 인문학에는 주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리더십은 그리고 그 짝인 팔로워십은 심리학적(더 정확히는 진화심리학적) 현상으로 분명한 메커니즘이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리더십은 뱀에 대한 공포나 비만의 원인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고열량 음식을 어디서나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는 서구 사회에서 증가하는 비만을 생각해보라. 조상들의 시대에는 식량이 귀했으므로 식량이 확보되면 최대한 먹어두엇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조상들의 습성을 여전히 갖고 있는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지방과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치운다.”

저자들은 스티븐 핑커의 말을 빌려 이를 진화의 헛점 또는 ‘부조화 가설’이라 부른다. “우리의 시련은 진화의 역사에서 우리가 가졌던 열망의 근원과 오늘날 우리가 정한 목표 사이의 부조화에서 비롯된다.”

또 다른 예는 뱀이나 거미에 대한 공포이다. “많은 사람들이 뱀, 거미, 전갈 같은 기어 다니는 동물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극심한 공포까지 느낀다. 조상들의 환경에서 뱀과 거미는 흔히 마주치는 적이었다. 오지에 사는 수렵채집인 부족의 경우 지금도 뱀과 거미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 뱀이나 거미에 물려 죽는 사람은 1년에 20명도 안되며 대개의 경우 희생자는 이 동물들의 주인이다. 우리는 거미가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개 본능적 두려움을 갖는다.”

저자들은 우리가 그렇게도 많은 무능하고 형편없는 리더를 뽑아왔고 뽑는 이유를 부조화라 정리한다.

“인간의 두뇌는 작고 평등한 구조의 공동체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상들이 내렸던 것과 같은 종류의 본능적 판단을 내리곤 한다. 우리는 카리스마가 능력을 보증하는 상징물이라 여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을 따른다. 그러나 때때로 카리스마를 풍기는 외모 뒤에 멍청함이나 심지어 악한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곤혹스러워한다. 우리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는데 그것은 우리 조상이 부족을 보호하고자 그런 사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여성(부족사회에서 주로 집안을 돌보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으므로)과 소수민족(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므로)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키, 나이, 몸무게, 인종, 성별이 특정한 직업이나 직위를 맡기 위한 자격 요건이 되어야 할 아무런 합리적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사바나에서부터 갖게 된 본능 때문에 우리는 특정한 자리에 앉힐 최상의 적임자를 선택ㅎ는데 종종 실패하며 이는 많은 기업에 잘못된 경영자나 관리자가 들어앉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자들은 리더십에 대한 자신의 이런 입장을 사바나 가설이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리더십 메커니즘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아프리카 초원이란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려면 ‘왜’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된 것은 집단을 이루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집단이 만들어지면 리더가 있는 것이 집단의 효율성을 높인다. 사냥을 하든 전쟁을 하든 집단을 목표로 이끌 자가 있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리더가 되려는 것일까? 집단 전체로선 리더가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리더에게도 좋은가? 꼭 그렇지가 않다.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우리 친척들에게도 리더는 있다. 그런 리더들은 “싸움을 말리고 더 강한 라이벌에게서 약자들을 보호하는 등 중재자의 역할을 한다. 집단의 분열을 막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알파메일은 종종 집단의 이동을 이끌고 포식동물이나 라이벌 집단 등의 외부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집단을 보호한다.” 그 보호는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보면 “리더의 지위는 힘들고 보함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런데 알파가 굳이 리더의 역할을 맡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지위이다. 그리고 그 지위에 따라오는 특권때문이다. “진화의 최종 목적은 번식의 성공이고 그러려면 섹스를 해야 하고 섹스를 하려면 섹스 파트너의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러려면 지위가 높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연봉이다. 따라서 진화 리더십 이론 덕분에 우리는 돈을 권력과 엮고 권력을 섹스와 엮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저자들은 이것을 “연봉(salary)과 지위(status), 섹스의 머리 글자를 따서 3S”라 부른다.

대단한 특권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팔로워를 주저없이 선택한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진화 리더십 이론의 기본 전제는 200만여년전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녹록하지 않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는 수가 많은 편이 안전했다는 것이다. 팔로워십 인지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번성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지능력은 필요할 때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따르도록 부추기는 인련의 내장된 ‘만약 ~라면’ 규칙을 말한다. 이런 팔로워십 두뇌는 우리 조상들로 하여금 특정한 상황에서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신속하고 자동적인 결정을 내리게 해주었다. 예컨데 만약 배가 고프다면 최고의 사냥꾼을 따라야 한다. 만약 나의 집단이 공격을 받는다면 가장 힘센 사람을 따라야 한다.”

좀더 쉽게 말해보자. 왜 취직을 하는가? 돈을 벌기는 고용주가 더 버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주는 돈 보다 돈을 더 벌어주지 않는 직원을 계속 떠안고 있을 고용주는 없다. 그러면 왜 자신의 노동보다 더 적은 대가를 받으면서 남의 밑에 있는 서러움까지 당하며 버티는가? 답은 간단하다. 리스크의 문제이다. 고용주는 공짜로 차액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리스크를 떠안는 것이고 그 리스크는 의외로 크다. 사장들은 오히려 월급쟁이를 부러워한다. 자신도 꼬박꼬박 돈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모든 손실은 고용주가 부담하지만 고용계약에 따라 월급을 주지 않으면 구속된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바나에서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얼룩말 같은 수준의 느슨한 집단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사냥이라든가 집단의 방어라든가 다음 야영지를 선택한다든가 집단 전체가 동원되는 목표가 있을 때 리더가 있는 집단은 효율이 높아진다. 리더는 있다는 것 자체로 집단을 뭉치게 하는 인간접착체이다. 그뿐만 아니라 리더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에서 리더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능력은 그에게 권위를 주었고 권위는 지위를 주었다. 인류학에서 그런 사람을 빅맨이라 한다.

“임시로 만들어진 집단이 어떤 특정작업(이를 테면 라디오 조립하기)을 완수하는 상황을 관찰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 기술을 재빨리 파악하고 문제문제해결에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 같은 사람을 따른다. 낯선 이들로 이루어진 집단도 대단히 발리 그리고 본능적으로 협동하여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도출하는데 이는 분명히 팔로워십의 이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에서 관찰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실질적으로 얻는 보상의 차원에서 리더는 팔로워들에 비해 적은 이익을 누리는 경향이 있엇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적 리더십이 섬김 리더십 성향을 띤다는 점을 시사한다.”

고인류학의 사례연구를 보면 서비스가 제시했던 밴드에서 군장사회를 거쳐 원시국가로 진화하는 선형적 진화는 매우 드물다. 마이클 만은 실제 역사를 검토해보면 빅맨 단계에서 군장사회(chiefdom)로 넘어갔다 다시 빅맨 단계로 후퇴하고 다시 군장으로 진화하는 evolution/devolution의 사이클이 관찰된다. 군장에서 원시국가, 문명으로 넘어가는 선형적 진화는 극히 드문 경우이며 우리가 아는 한 4개에서 6개가 전부엿다. 그리고 그렇게 진전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이클 만은 권위에서 권력으로 넘어가는 것은 특정 지역의 특이한 조건이 있어야만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이책의 저자들은 사바나에서 형성된 우리의 리더십/팔로워십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원시부족사회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은 지정된 부족 리더나 공식적인 계급제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빅맨이라 불릴 수 잇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빅맨의 권위는 “전문기술이라는 매우 좁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예컨데 최고의 사냥군은 사냥 지역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만 가장 뛰어난 전사는 전투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만 가장 유능한 챡초 채집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문제에서만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개인들이 그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집단을 지배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죄로 여겨졌다.”

물론 우리는 영장류이고 우리 친척 고릴라나 침팬지처럼 권위가 아닌 권력을 가지려는 본능이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5분만 지켜보면 다른 친구들을 지배하고 장난감을 빼앗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남의 지배를 거부하는 성향도 있다. 권위를 권력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빅맨은 언제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권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뒷담화를 한다거나 공개집회에서 집단으로 힘으로 리더의 횡포를 누른다거나(지금의 의회, 주주쵱회) 풍자를 한다거나(왕궁의 어릿광대), 그래도 안되면 리더를 추방하거나 암살하는 방법을 써왔다. 그래도 할 수 없으면 Vote by foot, 발로 하는 투표를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다.

사바나에서 우리 조상들은 좋은 리더에 대한 이미지를 본능으로 갖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를 사바나 가설이라 부른다. “사바나 가설에 따름녀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사바나에서 공격자와 약탈자에게서 우리를 보호해줄 빅맨을 선택할 때와 유사한 기준으로 리더를 선택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특성(키, 연령, 남성다운 외모, 성별, 평판 등)은 리더들의 사바나 특성으로 간주할 수 잇다.

리더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62개 문화권ㅇ르 연구한 결과 리더에 대한 사람드르이 인식에 놀랍게도 일관성이 있었다. 청렴(신뢰할 수 있어야 함), 관대함(아량을 베풀줄 알아야 함), 공정함(공명정대해야 함0, 외교적 수완(갈등을 잘 다뤄야 함), 결단력(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함), 지성과 능력(집단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기여해야 함), 비전(이상적인 미래를 그려야 함) 등이었다. 이러한 리더의 원형은 원시 부족사회에서 존경받던 빅맨에 대한 인식과 거의 일치한다.”

문제는 조상들의 사회와 우리의 사회가 다른 리더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우리는 리더십 실패를 겪고 있다고 저자는 본다. “만약 당신이 무능력함에 관해 연구하고자 한다면 기업체의 사무실을 연구 장소로 택해도 괜찮을 것이다. 경영자들 중 약 60~75%가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에 훨신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는 직원들의 2/3 가 상사를 가장 큰 골칫거리로 꼽았는데 다른나라에서도 이 참담한 수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상들의 사바나와 우리의 메트로폴리스의 차이가 이런 실패의 원인 중 하나라고 저자들은 말하며 부조화 가설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잘 생기고 키가 큰 사람이 단연 유리하다. 사바나에선 분명 그런 사람이 좋은 리더감이엇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힘이 세다는 말이니까. 그러나 머리를 써야 되는 정치가에게 우리는 초원의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본능이다. “선거 후보들의 사진을 본 어린아이들은 외모만 보고도 상당히 정확하게 숭자를 예상한다.” 신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를 선호한다. 많아야 150명이 넘지 않는 사바나에선 개인적인 매력으로 인간자석 역할을 하는 그런 리더가 당연히 선호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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