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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팔레스타인
홍미정.서정환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리아 리바넨시스 혹은 마운트 레바논이라 불리는 지중해 동부 해안은 천년이 넘도록 12개 이상의 종파와 인종과 신조의 온실 노릇을 해왔다. 마치 마법이 지해하는 듯한 완벽한 온상이엇다. 레반트의 도시들은 기본적으로 상업에 중심을 두고 잇었다. 거래는 명료한 계약서에 기초하여 이루어졋고 상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평화를 숭상했다. 서로 다른 사회집단들 사이에도 긴밀한 소통이 유지되었다. 온갖 종파의 기독교도들, 모슬렘, 드루즈교도, 소수의 유대교도 등이 이 지방이 품고 잇는 종파들이다. 이곳에서는 서로 관용적 태도를 베푸는 것이 극히 당연하게 여겨졌다. 발칸 지방 사람들은 목욕하길 꺼리며 툭하면 싸움질이니 우리는 얼마나 개명한 사람들이냐고 나도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 이 평평상태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듯햇고 역사는 개선과 관용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이 여겨졌다.
이 지역은 세계 모든 곳을 향해 열려 있었고 극히 세련된 생활양식과 활발한 경제, 오늘날의 캘리포니아처럼 온화한 기후를 자랑했으며 지중해 저 멀리 높은 곳의 눈 쌓인 풍경도 볼만했다. 스파이, (금발) 창부, 작각, 시인, 마약상, 모험가, 도박 중독자, 테니스 선수, 아프레 스키 애호가, 상인 등등 온갖 인간들이 모여들어 이곳의 문화를 형성햇다. 이 지역은 ‘낙원’일 뿐 아니라 흔히 하는 말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기적의 교차점이기도 햇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유대인들이 몰려오기 전 이웃인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그런 문화에서 살았고 아직도 그들은 그런 문화를 지키며 산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슬람이란 이성과 갈등하는 신화도 아니엇고 욕망과 갈등하는 도덕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권해야 할 선도 아니고 스스로를 옭아매야 할 규범도 아니었다. 하루 다섯번 꼬박꼬박 기도하고 금식하는 이가 있었는가 하면 이런 것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도 있다. 사마라 아버지가 전자의 경우라면 사마라는 후자다. 사마라는 무신론자다. 라마단 기간에도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가 하면 술과 여자를 두루 좋아했다. 그러나 종교 문제로 아버지와 약간이라도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햇고 아들과 맞담배를 피우면서 밤 늦도록 아들의 결혼에 관해 얘기를 나누곤 했다. (레바논에서처럼)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도 공존한다. 종교가 문제시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용의 문화는 레바논처럼 높은 교양수준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도 그런 전통은 높은 교육수준으로 나타난다. “팔레스타인의 교육수준은 주변 아랍국보다 훨씬 높다. 세계문맹률 순위에서 시리아, 이집트 등은 모두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문맹률 8.9%로 79위를 차지한다. 팔레스타인에는 비르제이트, 알쿠즈, 알나자, 베들레헴, 헤브론 대학 등 여러 대학이 있는데 이중 비르제이트와 알쿠즈 대학은 각종 순위조사에서 중동지역 10대 대학에 들 정도로 학술적 성과가 높은 곳이다.”
0%에 가까운 문맹률을 자랑하는 한국사람들에겐 그리 대수롭지 않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를 생각하면 이는 위업이다.
“헤브론 공업지대를 지나면서 그곳에서 가장 큰 공장이 어디인지 수소문한 끝에 노동자 47명을 고용하는 알샤르크 전기회사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전선과 철사, 용접봉 따위를 제조하는 이 소박한 공장의 관계자는 ‘우리 공장이 2008년에 무려 800만 셰켈(약 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자랑했다. 이 정도면 팔레스타인에서는 대기업에 속한다.
2009년 현재 국내총생산이 128억 달러, 1인당 GDP는 2,900달러 정도다. 공장도 없고 중동에서는 흔한 석유도 나지 않는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살까. 가장 정확한 표현은 딱히 먹고살게 없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경제가 이 모양인 것은 이스라엘 때문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이후 서안과 가자지구의 경제적 통제권은 이스라엘이 쥐게 되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공장 하나를 짖는다든지 원료와 완성품을 수입, 추술하는 데 일일이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국의 안보를 이유로 거의 허가를 해주지 않았고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경제가 악화되었다.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후 3년 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 실업률이 2배 가까이 늘었고 1인당 소득도 20%나 줄었다. 지금 팔레스타인 경제는 더 나빠졌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농지를 강제로 수용하여 점령촌을 확장하는가 하면 수원지마저 독차지했다. 팔레스타인과 외국, 가자-서안, 서안-동예루살렘 간의 사람과 물자 이동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저자들은 말하지 않지만 이스라엘의 경제파괴는 오슬로 협정 이전으로 올라간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어떤 자원도 인프라도 없는 가자의 좁은 땅으로 쫓겨간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미래는 밝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낸 것으로도 부족한지 그들이 쫓겨간 곳까지 쫓아가 그들의 어두운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성경구절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을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사람”으로 만들어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했고 이스라엘 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지역산업의 발전을 방해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들었고 정치적 독립의 경제적 기반을 제거했다.
가자는 제국주의의 식민지배가 사라진 세계에서 고전적인 식민착취가 부활한 예이다. 점령지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착취의 도구이자 상징이었다. 2005년 가자 인구 140만 중에서 8천명에 불과한 유대인들은 토지의 25%, 경작지의 40%를 차지했고 수자원의 대부분을 통제했다. (이상 The Economist의 기사 요약)
“그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촌 보호’를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전 지역에 분리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다. ‘Settlement’를 정착촌으로 옮겨 싣는 언론도 있는데 그보다는 정령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점렴촌에 사는 유대인들은 쉽게 말해 극우주의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0.1%나 될까 말까 한 이들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자신들의 땅으로 믿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옛날부터 서안지구의 아무 곳에서나 막무가내로 컨테이너 같은 것을 가져다 놓고 먹고 자기 시작했어요. 이스라엘 정부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하고요. 이스라엘 정부가 군대를 보내 경비를 서 줍니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짜 집과 기반시서을 건설하게 되죠. 기왕에 군대가 있으니 군사시실도 만들고요. 그러다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접근이 금지되는 겁니다. 혹시 그쪽을 취재하실거라면 점령촌 사람들을 아주 조심하셔야 합니다. 외국인들도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가용자원이 안 그래도 적은 곳에서 생산수단을 뺏긴 팔레스타인인들은 절대적 빈곤과 상상할 수 없는 궁핍에서 살아야 했다. 80%는 하루 2달러가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야 했다. 아직도 가자의 생활조건은 문명에 대한 모욕으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지배가 끝나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의 미래는 없다.
경제의 목을 죈 이스라엘의 지배 덕분에 “팔레스타인 역제는 원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잇다. 팔레스타인 난민구호시구, 유엔개발계획 같은 유엔 산하원조기구와 세계은행, 적신월사 등 각종 경제, 인도주의기관에서 팔레스타인에 지원하는 돈은 매해 10억달러를 넘는다. 예르ㅜㄹ 들어 팔레스타인의 교사와 의사들은 난민구호사업기구가 아니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설립한 학교나 의료원에 출근한다.유엔기구와 유엔산하기관 외에도 라말라 시에만 약 1700개의 정치, 사회, 교육, 여성, 문화 등 각 분야 NGO들이 설립되어 있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기여한다. 팔레스타인에서 NGO는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대기업만큼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장이다.”
그러나 원조는 팔레스타인의 자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원조는 “기간산업 대신 식량, 의료, 교육 부분에만 직접적으로 편중되게 지원함으로써 그 자원의 배분을 놓고 팔레스타인 내부가 분열되게 조장했다. 또한 원조 이후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책임감있게 감시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자치정부의 부패를 눈감아줌으로써 하마스 정권이 등장하는데 일조햇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경제를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바로 사망하는 원조경제체제로 묶어두었고 정치 군사 외교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이런 현실에서 ‘교육은 받아서 무엇 하나’하는 뿌리 깊은 회의와 무기력감에 젖어 있다. 팔레스타인 교육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한 팔레스타인 교사가 쓴 글을 발견하고는 먹먹했던 일이 떠오른다. ‘학생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잇다는 ‘희망’을 말해야 할 때 교사로서 가장 힘들다.’”
이런 현실에서 저항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최소한의 몸부림이며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최소한의 생존을 말할 뿐이다. 여전히 그들에겐 레반트의 전통인 관용은 살아있다.
“나는 팔레스타인이 이슬람 근본주의가 성장할 수 잇는 폐쇄적인 곳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듯이 그 신이 창조한 모든 다른 사람, 다른 종교도 종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했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유대인이라고 예외로 두지 않았다. 내가 만난 대다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쫓아낸 뒤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이슬람교도든 기독교인이든 ‘형제처럼 같이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주었노라 계속 우기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공연하게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라고 선언하고 다닌다. 이처럼 오히려 자신들의 종교가 정통이고 우월하다는 쪽,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없다는 쪽, 자신의 국민들이 타인을 핍박하는 데 마약과 같은 종교적 동기를 활용하는 쪽 국가 전체가 종교적 근본주의에 기운 쪽은 이스라엘이 아닐까.”
구약에서 말하는 신이 약속한 땅이란 주장 자체도 문헌비평학적으로 보면 의심스런 주장이다 (신의 역사 1 리뷰를 참조) 그러나 그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시온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유대인이 그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온주의는 그야말로 신화에 불과하다. 현재 유대인 대다수는 바빌론 시대나 로마제국 기대에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했다고 전해지는 유대인과는 혈통적으로 관련이 없다. 현대 유대인들은 중세시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즉 기원후 6세기에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힘야르 제국의 힘야르족과 8세기 중반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카자르제국의 카자르족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특히 카자르 후손인 유대인들은 현재 세계 유대인들의 약 80% 이상을 구성하는 아슈케나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 이스라엘의 히브리어는 이디시어의 파생어이며 성서 히브리어의 어휘 일부만 사용한다. 이디시어는 독일어가 혼합되기는 했지만 문장과 음운체계에서 슬라브어족에 속한다. 더 나아가 기원후 1세기에 로마가 점령하던 팔레스타인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대규모 이민자가 없었다.”
시온주의 자체가 근거없는 신화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이 신화가 아니더라도 1000년 이상 그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쫓아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시온주의는 독선일 뿐이다. 그것도 억지의 독선일 뿐이다. 그리고 그 독선의 실체는 미국의 전략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이스라엘 없는 중동’을 가정해보자. 2차대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양분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자리한 나라들은 어떻게든 이 질서에 편입되었고 이집트,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등 근대적 국가로 거듭나던 중동 각국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중동에서는 민족주의나 이슬람주의가 점점 더 힘을 얻었는데 이런 중동이 서장세계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질서에 호의적으로 재편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도 교두보가 된 것이 이스라엘이다.”
바로 이스라엘의 이런 성격이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결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평화란 본질적으로 힘의 균형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 폭력적인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을 지배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받쳐주는 한 미국에서 수입한 성능이 뛰어난 무기로 무장하는 한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잇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고 있다. 중동을 “더는 힘으로 제압할 수없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군사적인 것보다는 정치적 해법을 찾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이후 중동의 변화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정치, 외교적으로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상상력을 가능한 넓힌다면 ‘더 먼 미래에 과연 이스라엘은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짋문에 이전처럼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는 없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마침내 평화롭게 살 수있을까’라는 물음에는 이전보다 더 쉽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