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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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저자의 뉴기니인 친구의 말이다.

인류학 개론서면 빠지지 않는 소재가 화물숭배(Cargo Cult)이다. 태평양전쟁 때 뉴기니는 미군의 주요거점이었다. 미군 수송기가 자주 드나들 수 밖에 없었고 비행기가 와 화물(cargo)을 내려놓고 떠나면 온갖 좋은 음식과 물건이 나오는 것을 보고 원주민들은 종교를 만들었다. 미군처럼 차려 입고 가짜 관제소에 가짜 활주로를 만들어 의식을 거행하면 비행기가 친히 화물을 “내려주신다”고 믿는 종교이다.

화물숭배는 서구의 물질적 부를 처음 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 부를 얻을 수 잇을까 고민한 결과이다. 예전처럼 마술과 종교적 의례를 행하면 신들과 조상님이 그 부를 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화물숭배는 사라졌다. 종교가 사라진 곳에 의문이 남았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부를 갖게 된 것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있었다. 많은 설명들은 결국 ‘백인님들’이 너무 잘나서 그렇다는 말의 동어반복일 뿐이었다.

그러나 정말 백인들이 잘난 것일까? 조류학자로서 뉴기니의 자주 드나들었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뉴기니인들의 사회에서 33년 동안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뉴기니이들과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그들이 평균적인 유럽인이나 미국인보다 지능도 높고 빈틈없고 표현력도 풍부하고 주변의 사물이나 사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고 느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흔히 두뇌의 기능을 나타낸다고 판단되는 일, 이를테면 낯선 곳에 가서도 그곳의 전체 모습을 금방 파악하는 능력 등에서 그들은 서구인들보다 상당히 능숙해 보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서구에서 사산되지 않고 태어난 신생아들은 자신의 지능이나 유전자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는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 무사히 성장하여 자식을 낳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뉴기니인들은 살인, 만성적인 부족 전쟁, 각종 사고, 먹거리 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높은 사망률을 감수해야 했다. 지능이 낮은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이 그런 높은 사망률의 각종 원인들을 무사히 피하기가 쉽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서구인들이 바보 상자 앞에 매달려 보내는 시간에 뉴기니의 “어린이들은 다른 어린디들이나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노는 등 어떤 능동적인 일을 하면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

개인들의 능력으로는 두 사회의 차이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뉴기니인 친구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 저자는 ‘운’이라 말한다. 서구인들이 아니 유라시아인들이 더 유리한 환경을 타고난 운이라 저자는 말한다.

“애덤 스미스에게 자본이란 ‘필요한 경우 미래의 언젠가 사용하기 위해 비축, 저장한 일정량의 노동’을 뜻한다.” 비축할 것이 없는 수렵채집 사회에선 자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잉여를 낳는 농업은 자본을 만들 수 있다. “일단 자본이 등장하자 혁신의 속도가 곧바로 빨라졌다. 초기 수익이 전혀 없는 프로잭트에 시간과 자산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렵채집인을 보자. 용광로를 건설하고 도끼 한 개를 만들 만큼의 구리를 힘들여 천천히 제련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굶어죽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그렇게 만든 도끼를 판매할 시장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매트 리들리) 농업이 있었기에 ‘화물’을 만들어낼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농업만으로 뉴기니인들이 ‘화물’을 못 만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뉴기니는 중동, 중국, 인도와 함께 독자적으로 농업이 시작된 지역이다. 뉴기니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은 뉴기니와 (화물을 만들어낸) 유라시아 지역의 농업이 어떻게 달랐는가, 이어야 한다.

“식량 생산은 많은 지역에서 토종 곡류와 콩류가 결합된 형태의 작물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낯익은 예들을 찾는다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밀 보리와 완두콩 렌즈콩의 결합, 중앙아메리카에서 옥수수와 몇 가지 완두류의 결합, 그리고 중국에서 벼 기장류와 메주콩을 비롯한 잠두류의 결합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유라시아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다른 지역들과 달랐다. 이 지역에서 작물화된 밀 보리 등은 작물화되기 전의 조상식물 때부터 “이미 먹을 수 있었으며 야생 상태에서도 수확량이 많았다. 재배하기도 쉬워서 그냥 뿌리거나 심는 것으로 충분했다. 성장속도도 빨랐으므로 뿌린 후 몇 달 만에 추수가 가능했다.” 밀 보리에 필적할만한 작물은 중국에서 작물화된 벼 뿐이다.

중동지역은 이런 식물군의 잇점 덕분에 농업이 빨리 시작될 수 있었고 처음부터 경제적이었기 때문에 기술혁신이 빨랐다. 그리고 잉여를 기반으로 정치조직의 혁신도 빨랐다.

“밀과 보리의 신속한 진화를 신세계의 중심 곡류인 옥수수와 비교해보자. 옥수수의 조상일지도 모르는 야생 식물은 돼지 옥수수이다. 식량으로서 돼지옥수수는 수렵 채집인들에게 별다른 매력이 없었다. 야생 상태에서 야생 밀에 비해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는 거기서 발전된 옥수수보다 훨씬 조금 열렸고 그나마도 먹을 수 없는 딱딱한 껍질에 사여 있었다. 그러므로 돼지옥수수가 쓸모 있는 농작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생식 생태에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종자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그 돌 같은 껍질은 떼어버려야 했다. 적어도 그 크기로부터 현대의 크기까지 다시 수천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는 것만은 명백하다. 밀과 보리의 즉각적인 장점들과 돼지 옥수수의 문제점들 사이의 이 대조적인 차이는 곧 신세계와 유라시아에서 인간 사회의 발전 양상이 서로 달라졌던 일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중동지역은 쉽게 작물화할 수 있으면서 생산성도 높은 식물이 유난히 많았다. “블루믈러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 종의 야생 벼과 식물 중에서 종자가 가장 큰 56종을 가려내어 일람표를 작성햇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는 이 종들은 모든 벼과 식물의 중간값에 해당하는 종자보다 적어도 열배 이상 무거운 종자를 가진 것들이었다.

이 식물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하여 유라시아의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하는 몇 지역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어 그곳의 초기 농경민들에게는 선택 폭이 엄청나게 넓었던 셈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벼과 식물 중에서 자그마치 32종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식물만이 아니다. 소와 말같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가축이 될 수 있는 대형포유류 역시 유라시아에서만 존재했다. “가축화된 포유류의 중요성은 대형 육서 초식동물의 종수가 놀라울 만큼 적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대형’이라는 말을 체중 45Kg 이상이라고 정의한다면 20세기 이전에 가축화된 대형종은 모두 14종에 불과하다. 고대 14종의 야생 조상들은 지구상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았다. 남미에는 1종 밖에 없었다. 북미, 호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단 1종도 없었다. 고대 14종 중에서 13종의 야생 조상은 모두 유라시아에 국한되어 있었다.”

유라시아 환경의 이런 장점은 가장 넓은 땅덩어리란 점 때문이다. 그러나 유라시아의 장점은 땅이 커서 다양성이 높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땅의 방향도 문제엿다.

“일부 지역은 다른 지역들보다 식량 생산이 시작되기에 더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듯이 식량 생산 전차의 난이도 역시 세계적으로 크게 달랐다. 식량 생산이 가장 신속하게 전파되었던 경우는 동서 축 방향이다. 그와 반대로 식량 생산이 가장 느린 속도로 전파되었던 것은 남북 축 방향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축은 동서 방향이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남북 축이다. 동서축이 유리한 이유는 비슷한 위도를 따라 동식물이 전파되기 쉽기 때문이다. 위도가 비슷하면 환경도 비슷하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깥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 군계 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

“가축과 농작물이 전해진 뒤에는 역시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그 부근에서 생겨난 발명품들도 따라왔다. 그 속에는 바퀴, 문자. 금속 기술, 젖짜기, 과실수, 그리고 맥주와 포도주 제조 기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농업의 힘은 식량 생산으로 인구가 훨씬 조밀해지기 때문에 생겨났다. 열 명의 비무장 농경민이 한명의 비무장 수렵채집민과 싸운다면 분명 농경민이 유리ㅗ하다. 또 농업의 힘은 결코 비무장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농경민들은 더 나은 무기와 갑옷을 가졌으며 일반적으로 더 강력한 기술을 소유했다. 또한 그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에는 문자를 알고 정복전쟁에 더 유능한 엘리트 계급이 있었다. 그리고 농경민들은 더 지독한 병원균을 내뿜었다.”

이책의 제목이 정해진 이유이다. 농경은 총과 쇠란 군사적 우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뿐 만이 아니었다.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에서 보듯이 그보다 질병이 (핵폭탄보다) 더 강력한 무기엿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거의 대부분의 전염병은 농경과 함게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니 전염병이 만들어질 좋은 조건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력한 이유는 가축이라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전염병은 우리가 가축화한 다른 사회적 동물의 병균에서 진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농경과 전염병의 역사는 같다.

병균과 함께 “기술은 무기와 운송이라는 형태로 일부 민족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다른 민족들을 정복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은 역사에 있어서 가장 광범위한 경향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 총포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 철제 기계류 따 따위 발명한 사람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니라 유럽인들었을까? 이러한 불균형은 인쇄기에서 유리, 중기 기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중요한 기술적 진보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째서 그 많은 발명품들이 모두 유라시아에서 만들어졌을까?" 이 역시 유라시아의 동서축과 유관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확산을 통해 발명품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잇었던 사회는 주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엿다. 기술은 이들 사회에서 가장 신속하게 발달했다. 직접 만든 발명품뿐 아니라 다른 사회의 발명품까지 흡수하여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중세 이슬람은 유라시아의 중앙부에 위치해있었으므로 인도와 중국의 발명품들을 입수했고 고대 그리스의 지식도 물려받았다.”

역사는 “기술의 혁신에서 지리와 확산이 담당하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 적어지고 기존의 기술을 잃어버리는 일은 많아진다. 각 지역의 기술들이 새로 생기거나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발명품 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부터 확산되어 들어오는 각종 기술도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가장 신속하게 발전한 대륙은 확산에 대한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적은 대륙들이었다.”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이 같은 차이에 따라 기술 발전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왜냐하면 기술은 자가 촉매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더욱 엄청나게 앞서가고 있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거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인들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뉴기니인들 중에는 잠재적인 에디슨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 천재성을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겷하는데 활용했다. 즉 축음기를 발명하는 문제도다는 뉴기니의 정글에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살아남는 문제에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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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에 대비하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김현구 옮김, 남상구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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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책자는 저자의 전작인 ‘블랙 스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쓰여졌다. “’블랙 스완’은 중대한 인식론적 한계, 즉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지식에 대한 심리적 철학적 한계를 다룬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전작에서 자신을 소개하라면 ‘한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으른 독서가’라고 할 것이라 했다. 저자가 말하는 ‘한 가지 문제’가 바로 그가 말하는 인식론적 한계이고 검은 백조는 그 상징이다.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알자는 것이고 저자는 철학전통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회의적 경험주의’라 말한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계 이론을 동원해 자신의 입장과 대립하는 전통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열심히 보았지 손가락이 가리킨 달은 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책은 저자의 답답함 때문에 쓰여졌다.

“나는 전문가들이 ‘블랙 스완’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 직면하는 어려움을 간략히 언급할 것이다. 놀랍게도 평범한 독자, 아마추어, 내 친구들은 어려움을 덜 겼었다.” 전문가들은 “전문 용어들을 살펴보고 선입견들과 재빨리 연결시키면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블랙 스완’에서 표현된 생각들을 기존 틀에 구겨 넣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의 입장이 회의론, 경험론, 본질론, 실용주의, 포퍼적인 반증주의, 나이트적 불확실성, 행동경제학, 지수법칙, 카오스 이론 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블랙 스완’의 내용은 분명 그런 용어들로 설명된다. 그러나 저자가 그런 내용들을 동원한 것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지 입장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세계가 존재론적으로 불확실하고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그 불확실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실천론이 저자의 관심이다. ‘블랙 스완’에서 저자의 입장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을 고르라면 여기저기서 동원된 이론들이 아니라 그 이론들의 의미랄 수 있는 ‘바벨 전략’이 오히려 적당하다.

월스트리트의 현자라 불리는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론이 아니다. 세상이 어떠하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블랙 스완’을 과학 서적도, 사회과학 서적도, 경제서적도 아닌 철학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요즘 우리가 보는 강단의 무기력한 공론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철학이란 렐레니즘 시대의 스토아 학파와 같이 삶에 대해 묻는 철학이다.

그러므로 이 소책자는 ‘블랙 스완’ 이후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잇지 않다. 단지 자신의 주저가 오해받고 잇다는 답답함이 이책을 쓴 이유이다.

이책의 목적이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책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이책에는 블랙 스완의 몇장에서 말한 내용이 어쩌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말한 내용이 어떻다.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블랙 스완’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별 의미는 없다. 그러나 블랙 스완을다시 읽어봐야 겠다거나 블랙 스완의 내용이 가물가물 하다거나 다시 그책의 내용을 되새기겠다는 사람에겐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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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전쟁 - 연금제도가 밝히지 않는 진실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손성동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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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79년 “1월 22일, 전국 공공부문 근로자 노동조합의 주도로 대규모 연대파업이 시작되었다. 그날 150만 노동자가 하루 총파업에 동원되었는데 이것은 1926년 이래 최대 규모엿다. 건물관리인, 세탁원, 미화원 등이 일손을 놓자 2~3주 동안 전국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었다. 도로 운송이 마비되면서 사람들은 발이 묶여 일터에 나갈 수 없었고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생겼고, 수출이 큰 타격을 받았으며,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 악취를 풍겼다. 게다가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난방 제한과 병원 폐쇄로 노인들은 살아서 이 겨울을 넘길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다. 불만의 겨울은 리버풀에서 장례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체가 방치되자 정점에 달했다. 죽은 사람들이 매장되지 못하고 중환자들이 시위대에 저지당해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났을 때, 1945년 이후 유지되어 오던 ‘합의’와 ‘하나의 국민’이라는 환상은 철저히 깨져 버렸다.” (박지향)

불만의 겨울이라 불린 그해의 사건은 대처를 낳았다. 후에 신자유주의라 불리기도 한 대처리즘은 전후 영국의 사회적 합의가 환상에 불과했다는 영국인들의 깨달음을 정책으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레이거노믹스 역시 대처리즘과 동일했다. 물론 미국의 상황은 유럽과는 달랐다. 유럽과 같은 노동운동의 역사가 결여된 미국에선 유럽식 사민주의가 이야기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만의 사회적 합의를 갖고 있었다. 루즈벨트 이후 뉴딜은 미국의 사회적 합의가 되었고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는 그 합의의 절정이었다. 대처리즘과 마찬가지로 레이거노믹스는 그 ‘위대한’ 전후시절의 감당할 수 없는 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 유산이 감당할 수 없었다는 증명은 이번 위기로 파산한 GM이다. GM의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원인이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그 많은 원인들의 조건이 된 것은 소위 ‘유산비용(legacy cost)’였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았”던 시절 흥청망청 써준 백지수표 때문이었다.

자동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장치산업이다. 비용에서 자본의 비중이 노동보다 높은 산업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업체면 한대당 비용은 대부분 비슷하게 마련이다. 무슨 대단한 독자적 기술이 없는 한은.

그러나 자동차 산업을 만들어낸 미국의 빅3는 어찌 된 것인지 가격대 성능비가 비참한 수준이다. 일본차에 안방을 내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GM에서 생산하는 자돛차 한 대당 들어가는 건강보험 비용은 1,525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도요타가 자동차 한 대에서 얻는 이윤은 대략 GM의 건강보험 비용만큼 많았다.” 그 비용 중 상당 부분은 자동차를 만드는 일과는 이제 상관이 없어진 퇴직자를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퇴직자에게 꼬박 꼬박 다달이 줘야 하는 연금도 막대했다. “GM은 퇴직연금에서 발생한 적립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야 햇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두개의 우량 자회사를 매각하고 미니밴과 SUV와 같은 매우 인기 있는 제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GM의 막대한 부는 회사에서 퇴직연금기금으로 이동되었다. 이 결과 주주들은 회사의 이익에서 영원히 격리되었다.”

문제는 회사의 이익이 퇴직자에게 흘러간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퇴직자에게 능력 이상의 돈을 주어야 하다보니 “막상 제품설계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 더 좋은 차를 생산하고자 하는 GM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GM의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퇴직연금과 제품개발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좋은 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퇴직연금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하이브리드카에 대한 투자도 늦어지고 말았다. 이것은 GM이 놓쳐버린 많은 기회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경에 GM이 퇴직연금기금에 쏟아부은 자금은 도요타 자동차 주식의 반을 사들일만한 규모였다.”

퇴직자에 대한 부채로 인한 경쟁력 상실은 자동차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철강, 항공업, 광업과 같이 노조의 역사가 오래된 산업은 모두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고 디트로이트보다 먼저 무너졌다.

퇴직자 부채라는 문제는 민간부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책의 2부는 뉴욕시 공무원의 사례를 다루며 3부는 샌디에이고 시의 문제를 다룬다. 2부와 3부에서 다루어지는 예에서도 문제는 동일했다. 퇴직자 부채가 능력 이상이 되면서 동일한 문제가 나타났다.

퇴직자에게 예산의 큰 부분이 돌아가면서 투자재원이 고갈되었다. 그 결과 뉴욕 지하철의 “서비스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연착은 다반사엿고 설비는 노후화되었으며 역사는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샌디에이고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시의 서비스는 바닥을 기었다. 세 경우 모두 증상은 재정위기이다. 그리고 그 원인도 같았다.

노동자는 그리 장기적으로 보지 않는다. 회사(또는 지자체, 정부)의 능력이 되는지 안되는지 알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단지 나에게 이익인지 아닌지만 중요하다. 그런 노동자의 표를 노동자의 표를 얻어야 되는 노조는 당연히 과도한 요구를 할 수 밖에 없고 뭔가 보여주어야 되는 노조의 입장에선 강성화될 수 밖에 없다. 강성노조의 과격함은 경영진(또는 정치가) 역시 근시안으로 만든다. 당장 눈앞의 강성노조를 달래기 위해 장기적 이익을 희생하고 단기적 평화를 살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GM과 뉴욕시, 샌디에이고시의 사례는 모두 수십년 동안 문제를 뒤로 미루면서 쌓인 결과들이다.

“모든 재정적 실패 뒤에는 탐욕, 자기기만,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한 부정행위 등과 같은 인간적 면모가 관련되어 있다. 현재 연금시스템은 당장의 불편함을 뒤로 미루고자 하는 기본적인 인간 본성의 희생양이 되었다.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나는 익숙한 일상인데, 자식에게 숙제를 하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밥 먹은 뒤에’, ‘게임이 끝난 뒤에’ 하겠다며 뒤로 미루려고 한다. (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한) 기여금 납입을 뒤로 미루는 사용자들의 행위도 이와 마찬가지다. 뒤로 미루기에 퇴직연금만큼 적합한 수단은 없다. 금융세계에서 퇴직연금은 현존하는 계약 중 가장 긴 기간에 걸친 약속이다.” 수십년 뒤에 갚아야 할 부채일 뿐이다. 내 뒤에 앉을 후임자의 문제일 뿐이다. 먼 미래의 문제일 뿐인데 당장의 불편함을 위해 희생되어도 알 게 뭔가?

이책은 탐욕과 어리석음, 근시안이 어떻게 GM을 침몰시켰는가, 뉴욕시를 포함한 지자체들이 GM과 같은 운명을 기다리게 만들었는가를 다룬다.

없는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아무리 계약이라도 없는 돈을 만들어내 능력 이상으로 줄 수는 없다. 간단한, 너무나 분명한 산수의 문제이다. 이책을 읽다보면 그 자명한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잇는가 의아해진다. 그러나 수십년을 한권에 책으로 한눈에 훑어보기에 그런 생각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좀더 장기적인 시야를 가질 수 있는 노조는 왜 그랬을까? 결국 GM이 파산하면서 수십년동안 투쟁해 얻은 모든 것이 날라갔다. 없는 돈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결과를 내다보지 못했던 것일까?

인간은 결코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지금 눈앞의 문제가 당장의 탐욕이 우선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면서 제 무덤을 파는 것이 인간이다. 대처가 구원투수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영국에서도 노조들은 제 무덤을 팠다. 지나친 요구를 하면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실력행사를 해대며 그런 요구가 가능하게 한 사회적 합의를 조금씩 무너트렸다. 그 결과는 그 사회적 합의의 정반대인 신자유주의로 나타났다.

레이거노믹스 역시 마찬가지 배경에서 등장햇다. 레이건 이후 GM의 문제를 키운 확정급여형 연금은 민간부문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 이전에 제도가 만들어졌고 약속되었던 전통산업에서만 유산으로 남앗고 그 유산이 그 산업들을 죽였다. 공공부문에서도 마찬가지 방향전환이 한 세대 동안 진행되었다.

이책이 다루는 것은 대처와 레이건 이전에 째깍이기 시작한 시한폭탄들이 어떻게 터졋고 어떻게 터지기를 기다리고 잇는가이다. 그러나 이책이 다루는 문제는 과거형이 아니다.

중각은 없는가? 이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처음 떠오른 생각은 신자유주의가 이대로 기각되어야 하는가? 였다. 이책에서 다루는 문제들을 공격했던 신자유주의는 이번 금융위기로 동네북이 되었다. 그러나 한 세대 전 신자유주의가 시대정신이 된 이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이유였고 신자유주의가 싸웠던 그 이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들이 들린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극단적이었다는 점이었다. 시장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까지 시장이 해답이라 주장했고 그 결과는 이번의 재앙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역시 그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 이전의 극단으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해답이라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냄비란 생각이 든다. 냉탕 아니면 열탕 이외에 온탕은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전의 극단을 경험한 역사가 없는 한국에서 그 시절을 말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말이다. 이책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시절에 대한 환상이 실제는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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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역사
랜디 체르베니 지음, 김정은 옮김 / 반디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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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년 전에는 따뜻한 날보다는 추운 날이 훨씬 더 많았다. 1500~1850년까지의 소빙하기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동부에 걸쳐 지속적으로 대단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역사학에서 이 시기의 소빙하기는 중요하게 언급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 소빙하기는 태양흑점의 감소 때문이다. 태양흑점이 감소하면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복사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17세기 후반에 걸쳐(기본적으로 1645-1715년까지) 흑점의 활동이 대단히 분명하게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사라졌다.”

기후학에서 1645-1715년 사이의 기간을 마운더 극소기라 부른다. 흑점활동에 따른 기온의 냉각이 중요한 이유는 농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7세기 소빙하기 이전 흑점주기로는 1400-1510년의 슈뢰퍼 극소기, 1280-1340년의 볼프 극소기가 있다.

볼프 극소기 직전에 중세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2세기 르네상스가 있었다. 이 시기가 끝난 것은 보통 흑사병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저자는 흑사병의 유행보다 볼프 극소기로 들어선 것이 12세기 르네상스의 종식의 더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슈뢰퍼 극소기 역시 중요한 시기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겹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경제의 장기순환에서 하강기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낮은 이윤율에 시달린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로 돌려지지 않고 과시적인 소비에 돌려졌으며 그 소비가 르네상스의 자금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같은 전란의 시기였다.

마운더 극소기에 “지구의 기온은 오늘날에 비해 1.5도 정도 더 낮았다. 혹독하게 추었고 서구문명에서 전쟁과 혁명이 많이 일어났던 시기와 맞물린’다.

당시는 대항해시대이기도 햇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폭력의 일반화 혹은 폭력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이전 시대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이상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군사기술과 무기가 더 발달하고 군사력이 훨씬 강력해졌으며 또 그렇게 강화된 군사력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소위 ‘군사혁명’이 일어난 유럽의 근대는 전쟁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한 폭력은 곧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세계 여러 문명의 조우는 불행하게도 평화적이시보다는 대개 폭력적이었다. 유럽의 팽창 자체가 우선 무력 사용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대륙의 이질적인 문명권 안으로 뚫고 들어가기 위새서 무엇보다도 강한 무력을 갖추어야 한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고아에 거주했던 포르투갈 인의 보고에 의하면 1502년 바스코 다 가마가 캘리컷에 도착했을 때부터 벌서 가공할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는 무슬림 선단을 격침한 다음 800명의 귀와 코 손을 잘라서 캘리컷의 지배자에게 보내면서 카레라이스를 해먹으라고 말햇다고 한다. 그의 선단의 한 선장은 무슬림 상인을 채찍질하여 그가 실신하자 입에 오물을 넣고 돼지고기 조각으로 입을 막음으로써 종교적인 모욕을 가했다. 유럽인과 아시아 인 사이의 거의 첫번째 접촉부터 유럽 인들은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앞세워 그들이 찾아간 해외 지역의 현지인을 지배 정복하거나 약탈과 해적 행위를 통해 직접 부를 취하기도 했으며 교역 행위를 할 때에도 무력 위협을 통해 유리한 위치를 점하였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여러 학자들은 전산업화 시대에 유럽 인들이 전 세계에 수출한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주경철)

유럽인들은 왜 그렇게 폭력적이엇을까? 지금의 유럽인들을 생각하면 떠오르기 힘든 이미지이다. 저자는 소빙하기가 그 일부를 설명할 수있다고 말한다. “소빙하기(1550-1850) 기간은 오늘날 보다 상당히 추웠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 걸맞게 당시 유럽 문명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요란하고 열광적이어서 식민지 확장, 혁명, 전쟁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기후는 어떤 외부적인 변화에 하나의 단위처럼 반응하는 일이 대단히 드물다. 유럽 서부와 북아메리카 동부는 소빙하기 동안 오늘날보다 확실히 추었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은 오늘날보다 비도 많았고 훨씬 습했다.” 그리고 아시아 대부분이 지금보다 온난다습했었다. 그 기간 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는 “폭동이나 반란이 거의 없었다.”

이 시기는 청나라의 통치기간과 일치한다. “소빙화기 5기간 동안 유럽의 혹독한 날씨와 대조적으로 중국에서는 여름과 겨울 모두 강수량이 오늘날의 평균 강수량보다 확실히 높았다. 소빙하기 동안 중국에 내린 풍부한 비는 특히 겨울에 많이 집중되었는데 그로 인해 계속 풍작을 이뤘고 그 결과 더욱 풍족하고 편안한 사회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강희제로부터 시작된 한세기 반의 태평성대는 그런 기후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 비옥한 땅에서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에 갑자기 비가 내리지 않으면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잇었다.” 1850년 소빙하기가 끝날 때 중국의 기후는 건조해지기 시작햇다. 19세기 후반의 끔찍한 가뭄과 홍수는 청나라를 무너트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청나라의 지도자들은 소빙하기 이후의 잇따른 환경 재해와 씨름하는 동안 갑작스럽게 증가한 서양의 영향도 감당해야 했다. 유럽국가들은 소빙하기를 거치면서 식민화와 산업화를 통해 성장햇다. 1550-1850년 동안 상대적으로 혹독했던 북미와 유럽의 기후 조건은 환경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었던 기계의 발달을 촉진하는 데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서구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대체로 중국에까ㅓ지는 이르지 않았다. 대신 소빙하기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이어지는 가뭄과 기근으로 황폐해진 시기를 겪으면서 청나라의 지도자들은 유럽 열강들과 대단히 불평등한 조약을 연달하 체결해야 했고 중국은 식민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청나라는 소빙하기 동안 상대적으로 다습한 환경에서 태평성대를 누렸다. 그러나 이후 환경조건이 바뀌면서 이 다습ㅂ한 시기가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의 존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런 환경 변화 추세는 20세기에도 계속 이어졋다.”

이상은 이책의 자료를 근거로 소빙하기의 유럽과 중국사를 정리해본 것이다. 물론 위에서 정리한 내용은 이책에 소개된 것과는 다르다. 이책의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기후학자이기에 과학자로서 통계자료를 많이 제시하고(과도하지는 않고 쉽게 이해되는 수준이다) 기후학의 모델에 따라 당시의 기후를 재구성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그러나 위에서 정리해본 내용에서 이책의 성격을 짐작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책은 공룡의 멸종부터 원시시대 인류가 멸종의 위기까지 갔던 화산폭발, 그리고 인도의 인더스 문명, 마야문명,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 등을 기후학의 시각에서 설명하고 가까운 시대에는 1930년대 더스트 볼이라 불리는 미국 대평원의 혹독한 가뭄 등을 다루고 앞으로 다가올 빙하기등에 대해 다룬다.

잡다하게 들릴 것이다. 이책이 얇은 책은 아니지만 그 많은 내용을 한권에서 다루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겠다. 그러나 이책은 전문서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소빙하기를 정리하면서 이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사실들을 다수 삽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책은 교양서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다양한 케이스들을 다루면서 기후학의 기초개념들을 이야기 속에서 쉽게 쉽게 이해하게 하는 것이 이책의 기본 의도라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성공적이다. 이책은 아주 쉽게 재미있게 읽힌다. 기후학이란 분야에 거의 지식이 없는데도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게 쉽게 잘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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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벤 셔우드 지음, 강대은 옮김 / 민음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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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친구가 쥐돌이를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당시 학교에서 심리학과를 밀어주는 편이어서 교양관 한 층을 심리학과의 실험실로 할당해주었고 예산도 상당히 할당을 해주었었다. 생리심리학이 강세였기 때문에 실험재료로 꼭 필요한 흰쥐를 키웠다. 그 쥐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쥐돌이라 했었다.

이 친구가 게으른 편이라 쥐들을 굶겨죽이는 일이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한참 잊고 잇다 시체나 치워야지 하고 가보면 우리마다 꼭 한 마리가 살아있는 것이다. 친구의 설명은 이렇다. 먹이가 없으면 그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 강함은 꼭 물리적 강함이 아니었다. 먹이가 없으면 하나 둘 죽어간다. 죽어가는 순서는 살려는 의지가 약한 순서부터이다. 마지막에 남는 강자는 그 의지가 강한 놈이라는 것이다. 다른 놈들은 그 의지에 굴복해 죽어가면서 강자의 먹이가 되어준다는 설명이엇다. 쥐들만 그럴까? 인간도 그렇다는 것이 이책의 주제이다.

“살아남는 사람과 죽는 사람이 있는 것은 왜일까? 극도로 힘든 시련을 만났을 때 왜 일부 사람들만 극복하는 것일까? 극도의 압박에 노출되어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히고 긴장의 끈이 끊어질 때에도 오애 몇몇은 침착성을 잃지 않고 집중력을 발휘할까? 왜 어떤 사람들은 역경에서 다시 일어서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쓰러지고 굴복할까?” 이책의 질문이다.

이 책은 여러가지 경우들을 다룬다. 넘어지다 뜨개질 바늘에 심장을 찔리고도 살아남은 중년여성, 73미터나 되는 금문교에서 뛰어내리고도 살아남은 남자, 비상탈출 시 오른팔을 빼고 왼팔과 두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바다에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F-15기 조종사,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 9/11 사태 때 세계무역센터의 생존자, 여객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 등 이책에 소개되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사람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제각각이다. 사람이 다르다는 문제를 떠나서 상황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사례마다 생존의 이유에 대한 설명도 제각각이다.

그 설명 중 하나는 이렇다. 여객선 침몰의 생존자인 “폴 바니의 이야기는 생존의 노골적인 현실을 도러낸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지 않아도 될 때에 죽는다는 사실이다. 행동에 나서야 할 때 그들은 돌처럼 굳어버린다.” 이런 예는 몇 년 전 일어났던 대구지하철역 방화사건과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눈앞의 일이 설마 현실일리 없다는 ‘불신 반응’이라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잇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런던의 가장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화재가 발생할 리 없다고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이건 현실의 일이 아니야. 그래서 평소대로 계속 행동해 정산 편애라 불리는 성향에 빠져든다. 아무 문제도 없는 듯 행동하고 위험의 심각함을 과소평가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것을 분석마비라 부른다. 위기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중요한 부분이 작동하지 않는다.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조각상처럼 정지해버린다. 현실을 부인하고 행동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희생자와 시체 역할을 맡게 될 확률이 높다.”

이책은 얼어붙는 경우가 대다수의 정상적인 반응이라 말하며 ‘10-80-10 이론’이라 정리한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10%의 사람들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한다. “격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도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주로 생존자가 된다.

대다수 80%는 그냥 놀라고 당황한다. 화재가 일어난 런던의 “킹스 크로스 역의 통근자들이 불길과 연기를 보고도 평소처럼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경우이다. “거대한 압박에 노출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식은땀을 흘린다. 기분이 나빠진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지각 협착 이른바 터널 시야를 경험한다.”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반응이고 오래가는 반응도 아니다. 문제는 뇌가 마비상태에서 벗어나는 그 짧은 순간이 생존을 가른다는 것이다.

여객선이나 비행기 사고, 지하철이나 건물의 화재 같은 상황에서 여유시간은 길지 않다.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생존자와 시체를 나누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남은 10%는 “잘못된 행동을 한다. 부적절한 행동을 해 종종 역효과를 일으키고 상황을 악화시킨다. 당황하여 머리가 돌아버리는 사람들이다.”

이 10%의 반응을 보통 패닉이라 한다. “패닉은 생존의 큰 적이다.” 그러나 패닉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제2차 대전의 런던 대공습, 1995년의 고베 대지진, 9.11 테러 등의 공통점 없는 위기들을 검토해본 결과 완전히 자제력을 잃고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뭔가 지시가 있을 때까지 꼼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 사람은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하고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다. 대화재와 같은 재난에서 사회규범이 무너지고 ‘인간 본래의 동물적’ 측면이 나타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오해이다.

오히려 재난 상황에서 문제는 얼어버리는 현상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전두엽은 비행기 날개가 불타는 광경을 처리할 때 그 정보와 과거 유사한 상황의 기억을 합치시키려고 한다. 비행기 사고의 경험이 축적되어 잇지 않다면 뇌는 합치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고 적절한 반응을 생각하려 시도하고 실패하는 순환 고리에 빠진다. 그 결과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군에서는 이런 과정을 예측 혼란이라고 부른다. 이런 반응은 두려움과 혼란보다도 ‘상황의 새로움과 리더십의 결여’와 관계가 있다. 뭔가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예측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종종 목숨을 잃는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저자가 응급실의 수수께끼라 부르는 경우이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생존 사례들의 이유를 의사들은 몇가지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성격 특성은 크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냉혹하고 완고한 사람’은 무기력한 겁쟁이보다 더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끝까지 싸웁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질적 낙천주의도 생존률을 높인다. “또 하나의 미지의 요인은 가족과 친구들의 지지이다. 수치화는 불가능하지만 대기실에 있는 사람의 숫자와 호나자가 회복하는 가능성에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잇다.” 그리고 “신앙이다. “

“사람들의 정신력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폭이 있다. 어떤 장애도 극복하는 엄청난 의지력과 능력을 유전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고 절대적이고 예리한 생존 본능 같은 것을 타고난다. 또 유전적 심리적인 강점을 가지고 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위기에 대처할 내면적 자질이 부족하다. 종교적 믿음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특히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치가 잇다. 신앙에 거의 전부 의지하는 사람은 흔히 달리 의지할 것이 없거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질도 가지고 잇지 않다. 이런 약한 사람들도 신앙이 있으면 도저히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은 고난도 이겨 낼 수 잇다.”

이책의 내용이 어떤지 이제 짐작이 갈 것이다. 비행기 참사나 대형화재와 같은 경우의 생존자와 응급실의 생존자는 이름만 같은 생존자이지 생존의 이유는 다르다. 방송인이 쓴 책답게 이책은 생존에 대한 어떤 이론을 세우거나 ‘생존학’을 세우려는 목표로 쓰인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런 전런 ‘생존’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사례들을 모아 소개하고 보여주는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목표였다고 생각된다. 저자의 목표가 그랫다면 이책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꽤 재미잇게 쉽게 읽히니. 그러나 어떤 이론을 원한다든가 교훈을 얻으려 한다면 권할만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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