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 -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요코다 마스오 지음, 양영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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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장엔 유니클로 책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책더미에 이 책을 한권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달리 말해 이책은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른 점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책의 목적은 유니클로를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어떤 책은 그렇지 않은가? 물론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주겠다는 저자는 드물다. 책 한권 쓰는 데 들어가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책을 엉터리로 내려는 저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문제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경영서는 그 정보를 대상인 회사에서 얻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 이미 사라진 회사인 경우는 다르지만 어느 회사가 어느 홍보부 직원이 기업의 평판을 깎아내릴 정보를 자발적으로 내놓겠는가? 대부분의 경영서가, 주례사가 되는 이유이고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방법은 있다. 정보의 소스를 저자 스스로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자인 저자가 정보를 얻은 방법이다. 저자는 발로 뛰면서 내부 사정을 알기 위해 유니클로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고향까지 쫓아가 그의 성장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유니클로의 사업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의 하청공장들도 쫓아다닌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로 만들어진 그림은 홍보부에서 말하는 것과,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자신의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연히 더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유니클로를 비판하기 위해 또는 비난하기 위해 이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유니클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유니클로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를 알기 위해 그런 노력을 들였다. 그는 유니클로를 폄하할 생각이 없다. 물류 전문기자인 저자는 유니클로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1960년대 들어 백화점에서는 의류를 중심으로 풍부하고 다채롭게 상품을 진열하는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 일본 의류업계의 1차 유통혁명이라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는 다이에, 이토요카도 같은 GMS(종합소매업)로 인해 의류의 가격이 내려갔다. 이것을 제2차 유통혁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1990년대의 주된 흐름은 의류 전문점의 등장이었고 200년대 에는 이른바 SPA(제조소매)의 시대가 도래햇다. 이것이 3차 유통혁명이다. 그리고 유니클로는 제3차 유통혁명인 SPA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의류에서 원가는 얼마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부가가치가 아니라 유통비용이다. 유통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인데 유통과정이 복잡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의류는 상품의 특성상 뭐가 얼마나 팔릴지 예측이 쉽지 않다. 그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 유통구조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탁판매제도란 상품이 적중하거나 빗나갈 우려가 매우 큰 의류업계에서 재고부담을 각 유통단계로 분산하기 위한 제도다. 따라서 여기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이익은 줄어들지만 업계전체가 안정적으로 상품을 회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러나 그 리스크는 결국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높은 가격을 패션과 브랜드란 포장을 씌워 가릴 뿐이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작은 소매점을 할 때부터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패션 상품이 다른 상품과 달리 부가가치 상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필수품도 패션 요소를 뺄 수 없을 텐데 의류만 다른 것에 비해 과도하게 패션을 강조합니다. 저는 여기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니클로 같은 캐주얼 중에서 1500엔 정도 하는 상품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는 것처럼 혹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사는 것처럼 구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의문을 증명한 것은 1980년대 유니클로 1호점을 냈을 때였다. 당시는 거품경제의 영향으로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나 캐릭터 브랜드의 전성기였다. 그런 업계에서 그는 역주행을 감행한다. “나는 오히려 10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류점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 의류점이지만 유행에도 신경을 쓰고 가격은 저렴한 캐주얼웨어를 셀프서비스로 제공하고 싶었다.” 그의 말처럼 주간지를 사듯 가벼운 마음으로 캐주얼웨어를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품을 1000엔과 1900엔짜리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야나이는 훗날 손님으로 넘쳐나는 매장을 보면서 광맥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엇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유니클로의 시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니클로는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브랜드이다. ‘한 전직 유니클로 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유니클로에는 오리지널 콘셉트가 없다. 바꿔 말하면 옷을 만드는 데 근본이 되는 콘셉트, 즉 본질이 없다. 유니클로의 히트 상품인 플리스, 히트테크, 브라 톱만 봐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 기업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유니클로에서 일할 당시 항상 일류 짝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유니클로가 있게 된 것은 유니클로 1호점의 성공에서 얻은 야나이의 결론 때문이다. “첫째 캐주얼 의류의 수요는 연령이나 성별과 상관이 없다. 둘째 유행하는 상품보다 기본적인 상품의 수요가 더 많다. 셋째 NB가 아닌 PB라도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포착한 상품은 충분히 수요가 있다. 유니클로의 독창성은 캐주얼 의류의 개념을 바꾼 데 있다. 기존의 캐주얼=, 트렌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바꾸었다. 새로운 캐주얼 이미지는 캐주얼 컨비니언스즉 가까운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생필품이라는 것이다. 유니클로는 기존의 캐주얼이라는 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도록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유니클로가 GAP 이 개척한 SPA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할 수 있게 했다. GAP은 복잡한 유통구조가 효율은 물론 이익도 떨어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료 조달에서 제조, 소매까지 한 회사가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1990년대에 미국 캐주얼 의류시장을 석권했다.” SPA 모델은 당시 일어난 물류혁명 즉 SCM(공급망관리)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물류는 전체 상품유통 중 제조업체에서 도매, 도매에서 소매라는 부분에만 한정해 생각했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의 개선이 아닌 일정한 부분의 최적화에만 골몰했다. 그러나 SCM은 원재료조달부터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상품유통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것을 말한다. 요컨테 이것이야말로 기업 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이라 여기는 사고체계로 진화한 것이다. SPA는 유통의 시작부터 끝가지 커다란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전체적으로 관리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유행상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캐주얼을 재정의하면서 품목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유행보다 기본 수요에 집중하면서 만든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통만 아닌라 원료부터 생산까지 통제하면서 품질을 일정하게 할 수 있었고 저렴하게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상품을 100% 판매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재고를 감당할 수 있다. 즉 재고관리가 용이하다. 자사에서 개발해 판매하는 상품이 잘 안 팔릴 경우에는 다 팔릴 때까지 가격을 내릴 수도 잇다. 또 다른 장점은 유통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한 회사가 총괄함으로써 히트상품관련 정보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낭비를 없애 저가로 고품질을 구현하는 SPA 모델은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시장을 유니클로를 위한 것으로 바꾸어놓앗고 소비자를 바꾸어놓았다. “소비자들은 이제까지 정적가격이라 생각해온 의류가 불필요한 유통과정 때문에 가격에 거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는 젊은 사람들도 경쟁하듯 고급 브랜드를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패션에 돈을 들인다고 멋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유니클로는 의류업계에 만연했던 겉치레의 허울을 벗겨냈다. 이것이야만로 유니클로가 SPA를 확립함으로써 가져온 가장 큰 변화이다.  

 

그러나 유니클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니클로가 야나이 상점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니클로가 따라했던 GAP의 몰락원인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GAP의 약진을 이끈 주역은 1980년대 전반 GAP 사장이 되고 그 후 CEO를 겸한 미키 드렉슬러였다. 드렉슬러는 고객의 추향을 읽어내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할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의 능력은 GAP 급성자으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GAP의 성장은 2000년부터 오랫동안 하락세를 면치 못햇다.” 그 이유는 이렇다. “GAP처럼 생산을 해외 공장에 맡기면 어쩔 수 없이 리드 타임이 길어지기 때문에 판매 시점보다 수개월이나 앞서 고객의 취향을 예측해야 하는 위험을 항상 안을 수 밖에 없다. 소매업체, 특히 패션 관련 소매업체 사이에는 ‘(불량)재고=죽음이라는 표현이 있다. 불량 재고가 많이 쌓이면 어쩔 수 없이 할인 판매를 하게 되고 따라서 이익률 또한 낮아진다. GAP의 경우 몇 년동안 매장이 떠안고 있는 불량재고를 판매해왔다.” 불량재고가 늘어난 더 결정적 이유는 “200년대 들어 드랙슬러의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리드타임이 수개월이 아니라 2주 정도로 짧은 ZARA에게 패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원 맨 경영이 GAP의 몰락을 불렀듯이 언제든 유니클로 역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행히 발열 내의나 브라 톱 같은 대히트 상품 덕분에 아직 GAP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계속해서 적은 종류의 상품만을 가지고 어림짐작한 수치로 발주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는 한 언젠가 야나이 회장의 센스가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날이 오면 제2 GAP이 될 수 있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책의 내용은 그보다는 야나이 회장의 원맨경영이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 실제 회사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고 잇는지, 야나이 회장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구조가 되면서 회사의 문화가 어떻게 경직되었는지 등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그리고 저비용구조를 위해 직원들이 어떻게 소모되는지 등을 다루는데도 상당 지면이 할애된다. 실제 읽는 재미는 그 부분들이 더 크다. 그러나 전체적인 논리 흐름을 요약하기 위해 그런 내용들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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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 새로운 몰락의 시작, 금융위기와 부채의 복수
마이클 루이스 지음, 김정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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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집은 고만고만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집은 가지가지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구절이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이책이 다루는 불행한 나라들의 모습은 가지가지이다.

 

아이슬란드, 그리스,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의 지자체들,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은 모두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들이다. 금융위기라는 불행은 언제나 부채의 문제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은행이든 간에 부책 누적을 통한 과도한 외부 자본의 유입은 곧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다한 부채 자금의 유입은 때때로 경제성장과 호황의 혜택보다 더욱 큰 체계적 위험을 불러온다. 민간부문에서 부채가 과다하게 차입될 경우 주택과 주식의 가격은 장기적 균형안정 수준 이상으로 크게 부풀 것이며 은행들은 자신들이 가진 생산 능력보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높다고 착각할 것이다. 특히 과도하게 차입한 부채는 신뢰의 위기를 가져오고 경제를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부채의 과다 차입을 통한 경기 호황은 정부의 정책 의사결정에 그릇된 확신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수익 뻥튀기와 국민생활의 수준이 향상됐다는 착시현상을 유발한다. 이러한 경기호황은 대부분으로 불행으로 막을 내린다.” (케네스 르고프, 카르멘 라인하트)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의 모습은 이렇게 요약된다.

 

금융위기는 언제나 똑같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전의 위기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다르지 않은 결말로 끝나게 마련이다. 이번 금융위기도 다를 것이 없다. 언제나 탐욕으로 시작해 탐욕에 대한 징벌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탐욕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이책이 다루는 나라들의 탐욕은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자산 거품이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의 경우인데 자산거품의 과정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 과정을 소로스는 이렇게 정리한다.

 

1.     시장 참여자들이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 같은 관심으로 인해 트렌드 자체와 그에 대한 해석이 모두 심화된다. 이 해석에는 인식의 오류가 수반되낟.

2.     어떤 이유에서든 트렌드가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인식의 오류에 위협이 된다. 인식의 오류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버블은 확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렌드가 중단되어도 인식의 오류가 계속 존재하게 된다면 트렌드와 인식의 오류는 더욱 힘을 얻는다.

3.     참여자들의 인식이 점차 기저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어 참여자들이 서서히 모순을 인식하게 된다. 마침내 확신하는 참여자들보다 회의적인 참여자들이 많아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이르게 되낟.

4.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에는 관성으로 인해 잠시 동안은 트렌드가 지속될 수 있다.

5.     그럼에도 트렌드가 역전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6.     그런 다음에는 불신이 만연해 트렌드가 반대방향으로 강화된다.

7.     어떤 형태이든 항상 신용이나 레버리지가 존재하므로 버블은 비대칭적 형태로 발전하여 서서히 확대되다 급격히 붕괴하며 결국 사라진다.

8.     이러한 과정을 형성하는 다양한 단계들은 그 순서만 사전에 정해져 잇다. 버블의 규모와 지속 기간은 예측할 수 없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중단될 수 있다. 버블이 최대규모로 확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모든 버블의 형태는 똑같다. 단지 그 버블의 내용, 즉 트렌드가 가지가지일 뿐이다. 이책이 다루는 아이슬랜드와 아일랜드는 금융자산과 부동산이란 내용이 달랐을 뿐 버블을 키우고 버블을 터트린 사람들의 탐욕과 무지, 공포는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탐욕의 결과는 사회화되어 국가를 파산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이책이 다루는 그리스와 미국 지자체의 경우는 다르다. 부채로 인한 금융위기이고 그 부채를 부른 것이 탐욕이라는 점에서도 같지만 그 내용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닌 정치경제학의 대상이다.

 

그리스와 미국의 지자체들이 공식적인 파산만 기다리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세입보다 세출이 많은 재정구조 때문이다. 재정구조가 그렇게 이유는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rent-seeking politics 때문이다. 정치를 돈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분배의 문제이다. 국가의 자원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란 말이다. 그 과정이 공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불공평이 과도할 때가 문제이다.

 

그리스인은 일단 불이 꺼지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정부를 어마어마한 돈 보따리로 만들어 가급적 많은 시민들에게 한몫씩 안겨주고 싶어했다. 물론 정부를 돈 보따리로 만든 것은 막대한 대출자금이었다. 그리고 지난 12년동안 그리스의 공공부문 실질 임금은 두배나 올랐다. 이는 공무원들이 챙기는 뇌물은 계산에 넣지 않은 수치다. 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부분의 거의 세배나 된다.” 미국 지자체들이 빚더미에 올라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그리스가 빚더미에 올라선 이유는 선심성 지출과 약속을 남발해 표를 사고 모자라는 돈은 부채로 채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뿌려대는 돈이 비생산적인 곳에 낭비된다는 것이며 너도나도 국가를 터는 rent-seeking politics을 맊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세금이라도 제대로 들어온다면 그나마 문제가 아니지만 그리스는 온 국민이 탈세범인 나라라는 문제가 있다. “세금을 내는 그리스인은 납세를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즉 급여에서 세금을 공제당하는 샐러리맨뿐이다. 의사에서부터 가판대 운영자까지 자영업자들은 갖은 속임수로 거액의 탈세를 일삼았다. 이는 그리스가 모든 유럽국가들 중 자영업자 비율이 가장 높은 결정적인 이유기도 하다. 세무원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런 것이 문화적인 특징이 되어버렸어요. 그리스인은 세금 내는 법을 배우지 못햇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이제까지 탈세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스인의 탈세 규모와 범위는 정말 놀라었다. 그리스 의사들 중 약 2/3 1년 소득을 12000유로( 1700만원) 미만으로 신고했다 12000유로 미만은 과세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을 집행하면 그리스의 모든 의사가 감옥에 갈 겁니다.’ 그리스 경제에서 소득세 대상 중 30-40%는 공식적으로 신고를 하지 않는다. 반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은 이 비율이 평균 약 18%에 지나지 않는다. 소득에 대한 조직적인 속임수 때문에 탈세가 어려운 세금 즉 부동산세와 판매세에 대한 정부의 의존도는 점점 높아졌다. 그러자 그리스 시민들은 매매가 이루어진 가격대로 보고하지 않고 허위가격을 보고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에 대응했다.” 사회적 자본 또는 신뢰가 낮은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책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미국 지자체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에 파산에 직면해 있다. 이 경우엔 공무원들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선 로저 로웬스타인의 복지전쟁을 볼 것을 권한다. 이책에선 그 책에서 다루지 않는 캘리포니아 주를 전 주지사 아놀드 슈워츠제네거의 임기를 조명하면서 다룬다는 점이 색다르지만 전체적인 프로세스는 복지전쟁이 더 잘 되어 있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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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 고빛샘.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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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체제론의 핵심논지는 자본주의는 세계체제로서 존재해왔고 세계체제로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계체제론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시장은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세계체제론의 실질적인 아버지인 브로델이 보여주었듯이 자본은 시장을 그리고 시공간을 재편한다. 시공간을 재편하는 하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 한다. 자본은 권력이기에 시장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세계체제론의 요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중상주의자의 담론은 국가와 기업이 서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기반으로 한다. 경제가 정치의 도구요, 정치는 곧 경제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선 거래비용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시장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가 시장을 위한 게임의 규칙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애플과 중국의 하청업체가 협력하려면 먼저 쌍방이 엄청난 양의 약속이 담긴 두툼한 계약서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의 하청업체가 아이폰 디자인을 경쟁업체에 넘긴다든 하는 문제가 생긴다면 피해를 입은 편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거래의 가장 큰 방해물이다. 경제학자들의 말로 하자면 거래비용이 꽤 높은 무역이하 할 수 있다. 제도, 특히 적어도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는 그러한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적 합의다.” 이러한 제도는 시장이 대체로 국지적이고 규모가 작을 때 그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분명하고 폭넓은 규칙과 더 믿을만한 강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부유해진 곳은 시장을 다스리는 공식제도를 만든 나라들뿐이다. 국방과 기반시설 같은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세금 체제, 재산권을 확립하고 보호하는 법적 제도, 계약 집행을 강제하는 법정, 경제학자들 말로는 3자의 강재제도들이다. 시장은 튼튼한 정부 제도의 뒷받침을 받을 때 더 높은 효율성을 발휘하며 결과적으로 부를 창출한다.”

 

시장은 국가의 권력과 연합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논점을 제기한다. “1870년대 오늘날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국가들의 정부지출비중은 약 11%였다. 그러다가 1920년까지 이 비중은 거의 두배가 되어 20%가 된다. 1960년에는 한층 더 늘어 2*%에 이르렀다. 지금은 40%가 넘었으며 정부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무역의 비중이라 말한다. “국제 시장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의 정부규모가 가장 컸다. 경제가 국제 경제라는 강력한 힘에 노출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리스크에 보상을 요구하는 법이다. 리스크와 불안정한 시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시장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정부는 필요하다. 실업수당,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노동시장 개입, 건강보험, 가족수당 등의 장치를 마련해놓아 이제는 높은 관세 장벽 뒤로 자국시장을 숨기는 식의 서툰 보호가 필요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복지국가는 개방경제의 이면이다. 시장과 국가는 여러 면에서 서로 보완한다.”

 

복지국가는 무역에 대한 보호비용이란 말이다. 그런 비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시장을 지지하는 제도들은 일정한 지역에 한정돼 있으며 국가에 따라 편차가 가 크다. 그 결과 국제무역과 금융은 국내거래보다 훨씬 높은 거래비용을 유발할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전반적인 제도적 틀의 부재와 국가별로 상이한 제도의 지배를 받는 시장이 발생시키는 긴장은 경제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무역의 근본문제는 어떻게 하면 국제무역과 금융을 저렴하고 안전하게 만들 것인가?”이다. 아리기는 이 문제를 보호비용의 문제라 말하며 국가와 자본의 관계는 이 보호비용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말한다. “National economy-making brought to perfection on a greatly enlarged scale the practice of making wars pay for themselves by turning protection costs into revenues, which the Italian city-states had pioneered three centuries earlier. Partly through commands to state bureaucracies and partly through incentives to private enterprise, the rulers of France and of the United Kingdom internalized within their domains as many of the growing number of activities that, directly or indirectly, entered as inputs in war-making and state-making as was feasible. In this way they managed to turn into tax revenues a much larger share of protection costs that the Italian city-states, or for that matter the United Provinces, ever did of could have done.” (Arrighi 1994) 새로울 것은 없는 내용이다. 거래비용을 보호비용으로 바꿔도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내 경찰력, 사법권 형식의 보호비용이 아니라 war-making, state-making(식민지건설이 예이다)을 보호비용에 결합한 것이다. “What was happening was that wars were ‘paying for themselves’”

 

“The Genoese and Dutch cycles must be completed by a brief examination of the ‘organizational revolution’. The Dutch regime of accumulation ‘internalized protection costs.’” 대표적인 예로 아리기는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든다. 그 클론인 영국의 동인도회사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회사의 활동은 단순한 무역 이상이었다. “그들은 상비군을 갖추고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으며, 조약을 맺고 화폐를 주조했으며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굴제국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는 한편 지역별 통치자들과 연합하며 권력을 인도전체로 넓혀갔다. 이러한 기업들은 그들만의 깃발, 군대, 판사, 화폐가 있었지만 고국의 주주들에게 배당금도 지불했다. 무역과 통치가 그리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날에는 시대착오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과 국가의 이분법은 옳지 않다. 시장거래 특히 장거리 무역은 누군가 정해놓은 규제와 제약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왜 일개 회사가 국가와 같은 권력을 가져야 했을까? 더 구체적인 예를 보자. 1680년 영국 노예무역회사인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는 자신의 독점권을 변호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노예 무역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 서부해안을 따라 세운 요새들에는 개인 무역상들이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이 무역을 하려면 다른 국가들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며 요새와 군함의 유지와 관리에는 독점적 통제가 필요하다.” 국내시장이건 국제시장이건 거래를 위해서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환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무력이 뒷받침된 법률과 규제가 필요하다. 달리 말해 그들은 실제 무역이 발생하기까지 교통, 물류, 통신, 신뢰, 법과 질서, 계약 이행 같은 거래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했다.상인-모험가들은 국가 못지 않은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지 않으면 무역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인도회사나 노예 무역회사의 예는 권력과 경제교역의 밀접한 고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신과 교역하고 싶으니 내가 정한 규칙을 따르라!’ 이 시기 이후의 세계화는 국가규제나 권력에서 조금 분리되어 있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권력은 행사되어야 한다. 다만 조금 다르게, 그리고 조금 덜 눈에 띄게 행사되어야 한다. 세계화에는 반드시 규칙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규칙이 무엇이냐 그리고 누가, 어떻게 그것을 정하느냐다.”

 

“By being self-sufficient and competitive in the use and control of violence, these companies ‘produced’ their own protection.” war-making, state-making는 규칙을 정해 공간을 재편하는 문제이다. 세계화란 그 규칙을 정하는 문제가 일개 국가가 아닌 세계로 확대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확대의 결과 하나의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그 공간 자체를 만드는 war-making, state-making이란 폭력이 개입되어야만 한다.

 

일단 폭력으로 세계라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더 이상 폭력이 표면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19세기의 세계화가 가능했다. 그 세계화를 떠받친 것은 두 가지 제도였다.

 

첫번째는 신념 체계의 수렴이다. 경제 자유주의와 금본위제는 서로 다른 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을 연결해주었으며 무역과 금융에서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는 관행을 중심으로 그들을 연합했다. 두번째는 바로 제국주의였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국주의는 무역에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제국주의는 또한 강대국 정부가 집행자 역할을 하는 일종의 3자 강제집행이라 할 수 있다. 강대국들은 필요한 때면 언제든 제국주의 정책을 이용하고 정치적, 군사적 힘을 전략적으로 배치하여 나머지 국가들을 조종했다.”

 

두가지 모두 영국과 관련이 있다. 네델란드가 그랬듯이 패권국으로서 영국은 세계체제의 규칙을 정했다. 이 체제를 아리기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라 부른다. 유럽국가들에게 자유무역이란 이데올로기는 강요되지는 않았다. 단지 영국의 것이라는 후광에 힘입어 쉽게 받아들여졌을 뿐이며 강자의 것이기에 증명은 끝났다고 이해되었을 뿐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그랫듯이. 그러나 나머지 국가에서는 대부분 외부의 압력으로 자유무역이 성립했다. 아시아에서는 유럽 제국주의 때문에 외국인의 권리가 보호되고 계약집행이 강제되었으며 분쟁이 생기면 유럽 국가의 규칙에 따라 판결이 났다. 국제무역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거래비용이 무력화된 것이다.”

 

자유무역을 가능하게 했던 제국주의와 공통의 신념체계란 제도는 자유로운 자본의 흐름을 지탱하는 데 또다시 중요한 역할을 햇다. 자본의 경우 그 신념체계는 금본위제였다. 이것 역시 영국의 것이란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공통의 기준이 마련되면서 자본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었고 금과 동가로 정해진 고정환율에 따라 다른 나라 화폐로 바꿀 수 있었다.” 달리 말해 금본위제는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금본위제에서는 국가별 여건을 이리저리 조정할 재량권이 각국 정부에 부여되지 않는다. 순전히 국경을 넘어 유입되는 금과 자본으로 국가별 통화공급량이 결정되고 이자율이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본위제는 분명하고 보편적이며 독단적인 원칙이었다.” 금본위제가 가능하려면 신축적인 임금으로 뒷받침된 개별적이고 분산화된 노동시장이 있어야 한다. 국내산업이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으면 임금과 다른 비용들이 감소해 이 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되찾도록 도울 것이다. 저렴한 노동력은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것은 실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노동자가 조직화되고 노조의 힘이 세어지면서 훨씬 더 환상에 가깝게 변해버렷다.” 그리고 “1930년대 중앙은행과 정치가들은 경제불황과 높은 실업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더는 무관심할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이제 투표권을 가졌다. 대량실업의 결과로 정치적 재앙을 맞느냐 금본위제를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금본위제와 함께 자유무역도 끝났다.

 

금본위제가 끝장난 이유는 이렇다. 상품과 자본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면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듯 무역에는 엄청난 혜택이 있다. 그러나 무역으로 얻는 이득에는 소득 재분배라는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을 실시할 경우 일부 집단은 반드시 장기적인 소득감소를 겪는다. 미국처럼 부유한 국가에서는 고교중퇴자처럼 숙련기술이 없는 노동자가 이런 집단에 속할 개연성이 높다. 무역은 같은 사람에게 반복해 영향을 미친다. 당신이 기술이 부족하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기동성도 떨어진다면 국제무역은 평생 당신에게 악영향만 미칠 것이다. 무역은 첨예한 분배갈등을 초래한다. 고통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 그리고 무역의 자유도가 높아질 수록 무역의 혜택은 빠르게 체감하지만 비용은 그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

 

결국 무역정책과 정치는 언제나 같은 말일 수 밖에 없다. “조건 없는 자유무역은 획일적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으로 무장된 엄격한 기술관료 사회에서만 실행할 수 있다. 국민의 요구가 국제경제기준과 충돌할 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쪽은 국내적 요구였다.” 대공황은 각국 정부가 개방경제체제에서 경영자, 노동자, 농민들의 불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공황을 경험한 케인스와 화이트는 현실을 무시한 채 전면 붕괴를 맞이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설계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국제질서를 유지하면서 무역자유화를 진전시킴으로써 국제교역을 활성화하면서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국정부가 자국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엇다. 각국의 대외경제정책은 완전고용 실현, 경제성장 목표달성, 빈부격차 해소, 사회보험과 복지제도정비등을 아우르는 전반적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보조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각국의 목표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아닌 적정수준의 세계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목표는 전반적인 자유무역이 아닌 제한된 자유무역이었다.”

 

그러나 제한된 자유무역은 오히려 세계경제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엇고 세계화를 촉진했다. “1948~90년 국제 교역량은 연평균 7% 증가했다. 그 어느 시기와 견주어도 유래없는 성장세였다. 총생산 또한 선진국, 빈곤국 할 것없이 전례 없이 확대일로를 걸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금본위 시대, 19세기 자유무역 시대를 뛰어 넘어 폭얿은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ㅎ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배하던 시기는 세계화의 황금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성공은 국가 경제가 건전하다면 약간의 무역 제재나 통제가 있어라도 세계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자유무역은 각국의 분배정책, 경제정책, 가치와 상충하지 않을 때만 실현가능하다.”

 

그러나 “1990년 무렵 금융세계화가 시작되면서 WTO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추구했던 바와 상반되는 새로운 세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그것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이 성립하려면 각국 정부는 국제무역과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경제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제 세계화 즉 (노동시장을 제외한) 재화와 자본시장의 국제통합은 최종목적으로서 국가별 정책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선다.정책 논의에 이러한 변화가 점점 반영되기 시작했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그것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또 모든 국가가 법인세를 낮추고 긴축재정정책을 펼치고 규제를 완화하고 노조를 약화시키는 등의 세계화 물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엇다. 브레튼우즈 체제처럼 얕은 통합을 추구하는 무역체제는 각국의 내부 정책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면 깊은 통합을 추구하는 체제에서는 각국의 내부 정책과 무역정책 사이에 경계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내부 정책이나 규제를 임의로 변경한 경우, 거래 비용을 상승시켜 국제무역을 방해했다고 비난받을 수 있다. 즉 국제 규범은 곧 각국으 내부 규범이 된다.”

 

저자는 이를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라 요약한다. “우리에게는 세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이따금 세계경제로 비롯되는 경제적 사회적 충격을 무시하고 국제거래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둘째, 국내에 민주적 정통성이 확립되기를 기대하며 세계화를 제한하는 것이 있다. 셋째 국가주권을 희생하면서 세계화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잇다. 이 세가지 대안은 세계경제의 정치적 트릴레마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즉 우리는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 민주주의, 민족자결권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 잘해야 두가지를 잡을 수 있을 뿐이다.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과 민주주의를 잡으려면 민족국가를 포기해야 한다. 민족국가를 유지하면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을 추구하려면 민주주의를 잊어야 한다. 민족국가에 민주주의를 결합하고 싶다면 깊은 세계화에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세가지 대안이 이렇게 가혹할 정도로 서로 상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령 세계경제가 완전히 세계화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모든 거래비용이 사라지고 국경은 상품, 서비스, 자본의 교환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민족국가가 이런 세상을 버텨낼 수 있을까?민족국가들은 경제적 세계화와 상인 및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데만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국내규제와 조세정책은 국제표준에 일치시키고 가능한한 세계경제통합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조화될 것이다.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서비스는 국제시장의 원활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이 세계경제의 요구에 휘둘리면 국가경제에 관한 정책결정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션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합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글로벌 경제의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

 

그러면 브레튼우즈 체제의 제한된 세계화에서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제한된 세계화의 성공 자체가 세계화의 심화에 대한 증명이 되엇다는 점이다. 그리고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신념체계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무역이 아니라 금융이었다. 자본 이동의 자유를 위해선 얕은 통합이 아닌 깊은 통합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했다. “1996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타이에 유입된 민간 자본은 총 930억 달러였다. 그러나 1997년 들어 120억 달러가 순식간에 빠져나가서 기업회생을 위해 단 한 해 만에 1050억 달러가 필요했다. 이것은 다섯 나라 GDP 총합의 10%를 넘는 금액이었다. 이 정도 축격이라면 제아무리 견실한 국가다로 쑥대밭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경제위기는 다른 지역국가들에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던 러시아와 아르헨티나가 각각 1998년과 1999-2000년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국가에 만연한 비리와 정경유착으로 과도한 대출과 비효율적 투자가 나타났고 이로써 경제위기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토록 기적적인 경제성장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리고 “1998년 이후 신속하게 경제안정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세 국가의 경제기반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들이 겪은 금융위기는 아시아국가들이 저지른 잘못이 아닌 금융시장에 내재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국가는 bank run당했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강경식도 회고록(‘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같은 말을 한다. 그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주력했던 일은 금융개혁법안이엇다. 당시 한국경제는 10년마다 터졌던 거품이 붕괴하던 상태엿다. 그런 시점에서 그가 주력한 것은 채권자들, 즉 외국인들에게 한국정부는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문제를 고칠 능력이 잇다, 그러니 너희 빚을 떼먹는 일은 없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엇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국내정치는 선거정국에 들어가 마비된 상태에서 이익집단의 알력을 조정할 능력이 사라진 상태엿다. 정치권의 조정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면서 한보와 기아 사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금융개혁법안에 관련된 이익집단인 한국은행노조의 실력행사에 끌려다니면서 외국에 보여주기 위해 마련했던 금융개혁법안도 무산되면서 신뢰를 잃었고 외환위기를 당했다고 강경식은 설명한다. bank run에 당했다는 말이다.

 

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글로벌 시스템의 변방에 있던 나라들이 위기로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이 그들 탓ㅎ이라고, 그들이 이 세계의 준엄한 법칙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고 나서 금융 세계 중심에 있는 국가들이 비슷하게 쓰러졌을 때는 체제 자체를 비난하며 이제 이것을 고칠 때가 되엇다고 입을 모았다.”

 

저자는 금융세계화는 바보짓이었다고 결론내린다. 2차대전은 자본통제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입장변화는 양차대전을 거치는 동안 겪은 국제금융시자으이 불안과 혼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20-30년대에 민간자본흐름은 금융시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케인스는 근본 문제를 지적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금융시장의 안정성뿐 아니라 거시적 균형을 저해한다.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거시경제의 가지조정능력 덕분에 특별한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이 없어도 된다는 대공황 이후 암흑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케인스는 고용 및 생산 부문과 금융시장이 확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금융시장은 도박장에 가까우며 경제적 복지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다. 따라서 자본이동자유화는 버림받고 자본통제가 득세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각국정부에 완전고용과 경제성장을 추구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통제를 거부하고 자본이동자유화를 옹호하는 담론이 득세한다. 이후 전 세계는 금융위기 124차례 외환위기 208차례, 국가부채위기 63차례를 겪었다. 1800년 이후 발행한 모든 금융위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금융위기 시기와 자본이동 시기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익히 잘 알고 있는 1990년대의 금융위기 때뿐 아니라 그전에도 국제자본 이동성이 높아질 때마다 국제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면 왜 미국과 IMF는 금융세계화를 밀어붙였던 것일까? 아리기는 자본축적의 사이클 때문이라 말한다.

 

자본이 시공간을 재편하는 논리는 축적의 논리이다. 아리기는 축적의 사이클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축적의 사이클은 trade expansion부터 시작된다. 시장의 확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본의 공간은 쌓여가는 자본의 양에 비해 좁아진다.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아리기의 해석이다. trade expansion에선 이윤이 자본으로 재투자된다. 그러나 자본의 절대량에 비해 공간이 좁아지면서 자본의 이윤율은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경쟁이 치열해진다. 경쟁은 경쟁자를 제거하여 좁아진 공간을 넓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도시국가들간의 치열한 전쟁(이탈리아 100년 전쟁이라 불린다) 19세기말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를 아리기는 이 단계로 해석한다. 말 그대로 cut-throat competition이다.

 

trade expansion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축적의 논리는 방향을 바꾼다. 더 이상 실물로는적정이윤을 올릴 수 없다. 이때부터 financial expansion이 시작된다. 돈을 물건으로 바꿔 물건을 다시 돈으로 바꾸는 축적의 논리는 돈을 바로 돈으로 바꾸는 금융의 논리로 바뀐다. “The diminishing returns and increasing risks of its employment in trade and production engender the overabundance of money capital and this drives the world-economy comes into the phase of finanacial expansion.” 메디치 가문이 그 좋은 예이다. 메디치가 돈을 불린 시장은 전쟁터였고 그들은 high finanace를 창조했다. 메디치가가 개척한 이 시장에 스페인 제국을 고객으로 제노바인들이 뛰어들었고 스페인제국과 제노바인의 연합은 대항해시대를 열어 시장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 주기의 trade expansion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이클의 trade expansion은 스페인-제노바 연합이 아닌 네델란드에 의해 이루어진다. 더 넓은 공간을 재편할 논리는 기존의 패자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a systemic cycle of accumulation.’ First established by the Genoese capitalist class in the 16th century, it was repeated three more times under the successive leadership and dominance of the Dutch, British and US capitalist classes. In this succession, financial expansions have always been the initial and concluding moments of systemic cycles.” (Arrighi 1994)

 

1970년대가 그런 순간이었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아리기는 1970년대 이후 미국, 일본, 독일 간의 경쟁은 과잉축적, 또는 이윤율저하 경향의 증상이었고 그 이후 미국의 산업공동화 역시 동일한 증상이었다고 해석한다. “Its very unfolding resulted in a major intensification of competitive pressures on each and every governmental and business organizat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and in a consequent massive withdrawal of money capital from trade and production. The switch occurred in the critical years of 1968-73. It was during these years that deposits on the so called Eurodollar market experienced a sudden upward jump followed by twenty years of explosive growth. By the mid-1970s the volume of purely monetary transactions carried out in offshore money markets already exceeded the value of world trade many times over. From then on the financial expansion became unstoppable.” (Arrighi 1994)

 

이 시기는 영국의 Belle Epoche와 너무나 닮았기에 아리기는 70년대 이후의 금융확장기을 미국의 Belle Epoche라 부른다. 그러나 금융확장기의 문제는 축적 사이클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보류될 뿐이라는 것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위기의 해결보다는 위기의 심화 덕분에 가능했다. “The striking similarities can be detected between the cumulative influence of finance on the US in the 1980s, on Britain in the Edwardian era, on Holland in the periwig era, and on Spain in the Age of the Genoese. Excessive preoccupation with finance and tolerance of debt are apparently typical of great economic powers in their late stages. They foreshadow economic decline. The costs of financialization concentrated to the lower and middle strata of the economic power. Finance cannot nurture a large middle class, because only a small elite portion of any national population. Manufacturing, transportation and trade supremacies, by contrast, provide a broader national prosperity” (Arrighi 1994)

 

80년대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양극화는 역사의 반복일 뿐이며 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라 불리던 것은 그 양극화를 이념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Belle Epoche의 아름다움은 역진적 재분배에 의해 가능한 덧없는 아름다움이며 지속가능한 축적논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에드워드 시대 즉 영국의 Belle Epoche처럼 레이건 이후 미국의 Belle Epoche 역시 세계화의 시대엿다. 그러나 그 세계화는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세계화였다. 금융화가 반드시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영국도 미국도 금융의 주도로 경제의 재편이 가능했고 그 재편은 경제의 생산성을 회복해 이윤율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그러한 재편은 다음 단계의 trade expansio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기 이윤율의 회복은 역진적 재분배가 큰 이유였다. 금융은 생산하지 않는다. 분배할 뿐이다. 다시 trade expansion이 가능하려면 시공간의 새로운 조직논리가 필요하지만 금융은 그런 논리를 제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재분배는 무한하게 가능하지 않다. 어느 순간 더 이상 분배할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단계에 도달해 제 무덤을 팔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The historical record shows that in the phases of financ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two different kinds of concentration of capital have occurred simultanously. One kind has occurred within the organizational structures of the cycle of accumulation that was drawing to a close. As a rule, this kind of concentration has been associated with a final ‘wonderful moment’ of revival of the still dominant but increasingly volatile regime of accumulation. But this wonderful moment has never been the expression of renewed capabilities of that regime to generate a new round of material expansion of the capitalist world-economy. On the contrary, it has always been the expression of an escalating competitive and power struggle that was about to precipitate the terminal cirisis of the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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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몰락 - 내 집 마련이 절실한 3040세대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
남우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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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에 한국판 잃어버린 10을 맞을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 시작은 코앞까지 다가온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일 것이다.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우리나라 부동산의 미래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난 7년의 부동산 잔치는 끝났다. 그 동안의 불패신롸는 완전히 잊힐 정도의 극심한 7년에 걸친 흉년이 시작될 것이다. (최윤식, 정우석)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기고 있다. 언론에선 지금이 바닥이니 다시 오르기 전에 사두어야할 절호의 기회라 한다. 그러나 그럴까?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자본은 일찌감치 빠져나간 상태이다. 배가 침몰하기 전 쥐들이 알아차리듯 언론이 뭐라 떠들건 그 바닥의 프로들은 손을 털었다.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몰락은 몇 년전부터 부동산 전문가들이면 예견하던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단지 그 시점이 언제인가, 시작이 어떤 식일까가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몰락은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본의 버블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마찬가지로 버블을 키웠던 부채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뚜렷한 소득증가는 없었다. 오히려 양극화가 시작되면서 소득은 감소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부동산은 잔치판이었다. 이유가 뭔가? 단순하다. 일본도 그랫고 미국도 그랬듯이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돈은 대출이었다.

 

“1998년 가계대출은 166조원으로 GDP 대비 33% 수준이었지만 1998년 이후 가계대출이 계속 증가해 2010년에 4.5 746조원으로 늘어 64%까지 증가했다.” 빚잔치는 가계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부채 역시 “1997 63000억원에서 2009 3596000억원으로 500%나 증가했다.” 대출이 증가하면 물가는 당연히 오른다. 그런데 통화량 증가는 일반소비재보다 자산의 가격을 더 크게 끌어올린다. 부동산의 7년 호황은 단순한 이유였다고 저자는 본다.

 

그러면 왜 그렇게 돈이 풀렸던 것일까? 저성장때문이다.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엇다. “국가부채의 GDP 기여도를 계산하면 약 4.8%가 된다. 결국 국가부채의 GDP 기여도를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제 자력에 따른 GDP 성장률은 -1%. 우리나라 경제는 지난 10년간 양적으로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가 채무 증가에 따른 것일 뿐 경제 자체의 성장은 대단히 미약한 수준이다.”

 

저자는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게 된 메커니즘이나 한국의 지난 10년동안 부동산 호황을 겪은 이유나 마찬가지라 본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은 이번 금융위기로 죽을 쑤고 있지만 한국은 그 위기를 견뎌낸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엇다고 본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대응으로 ㅅ건진국들과 공조해 공적자금 투입 외에도 금리를 사상 최저로 인하해 개인의 대출 확대를 유도했다.” 그러나 미국등 선진국은 버블의 붕괴기에 있었지만 한국은 형성기에 있었다는 차이점 때문에 한국은 위기를 비켜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완화 정책은 거품이 빠진 이후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대출 축소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엇다. 그러나 국내의 금융완화정책은 이미 금증하고 있던 대출에 기금을 부었고 이 정책의 실행으로 거품이 더욱 팽창했다. 이것이 2009냔 우리나라만 금융위기를 비캬갈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버블 붕괴기에 들어섰다고 저자는 말한다. 버블붕괴기에 나타나는 거래량 축소가 그 증거이다. 거래량이 축소되면서 더 이상 버블은 커지지 않고 시장은 정체된다. 그리고 가격도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은 이미 붕괴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집값 하락에 다른 대출축소, 그리고 대출축소가 다시 집값 하락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본격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그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인데 그 시작은 일본과 미국에서 그랫듯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될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저자는 본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 등의 출구전략때문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렸는데 우리나라가 낮은 금리를 유지할 경우 국내에 있는 달러가 미국으로 유출된다. 달러가 급속히 유출되면 지난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원화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을 유지가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국가는 정책자유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정부는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면 서브프라임 사태와 동일한 메커니즘이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의 가계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진 빚의 원금과 이자를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으로 감당해내지 못한 데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펼쳤고 동시에 은행이 공격적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은행들 역시 미국과 동일한 정책을 취했고 국내 가계 역시 대출을 받아 아파트 투자에 열을 올렸다. 이 열기는 결코 미국에 뒤짖 않았다. 문제는 가계가 부채를 상환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에 있다. 이 수치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작 시점인 2007년 말 미국은 136%였는데 2010년 우리나라는 무려 146%를 기록했다.”

 

물론 아직 정부는 금리인상의 시동을 걸지 않았다. 이유는 선거때문이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재정적자(재정적자의 상당부분은 부양효과가 좋은 건설업으로 흘러들어가 부동산시장을 떠받친다)를 버틸 수 밖에 없고 금리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틴다. 그러나 이미 한계다. 본격적인 버블 붕괴는 선거 이후일 것이라는 게 보편적인 예상들이다.

 

그러면 거품이 터진 후이다. 거품 붕괴 후 한국의 상황은 아마 일본 못지 않을 것이다. 이책에선 그런 논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논의는 앞에서 인용한 부의 정석이 좋은 예이다) 이책에선 아파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한다. 한마디로 아파트의 몰락이 저자의 결론이다.

 

지금까지 아파트는 부동산의 꽃이었다. 선진국에선 저소득층을 위한 별볼일 없는 주거가 왜? 이유는 정부가 아파트를 밀었기 때문이지만 헌집 줄게 새집다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바로 재개발 때문에. 아파트가 재개발되면 용적율을 올리면서 더 넓은 새집을 공짜로 얻을 수 있엇다. 그러므로 아파트 가격에는 그 미래가치가 반영되었고 다른 주거형식보다 아파트의 가치는 더 높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몰락한 후에는 그런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일본의 버블이 터진 시점이나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점은 인구의 고령화 시점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 주택수요층의 감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수요층의 감소는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더 심각해지고 고착화될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미래가 없는 시장에서 헌집 줄게 새집다오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현재 입주한 아파트가 재개발되어야 하는 시점이 문제이다. 과거처럼 공짜로 새집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분담금을 내고 사야된다. 아마도 현재 집값보다 더 비싸게 먹힐 것이다. 그럴 때 아파트가 여젼히 주도적인 주거공간이 될 수 있을까? 아파트의 몰락이다. 그 시점은 일산등에 1차 신도시에 건설된 아파트들이 재건축 연한에 들어갈 때가 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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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메가트렌드 인 코리아
한국트렌드연구소 엮음 / 중요한현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연말연시가 되면 트렌드 서적이 쏟아진다. 이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 책들이 다 그렇듯이 이책도 경제경영서로 분류되고 이런 책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바라는 내용대로 주로 경영관련 트렌드가 주내용이다. 소셜익스피리언스와 다이렉트 서비스(디지털과 모바일에 관한 내용), 신뢰(기업의 사회적 책임), 칩시크(소비층의 성향변화) 등은 이름은 다르지만 다른 트렌드 서적에도 나올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책은 다른 트렌드 서적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우선 다른 책들보다 거시적이고 세계적인 트렌드에 더 비중이 가있다. 앞에서 예를 든 것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고령화라든가 아시아 중산층, 철도 르네상스 등이 그런 예이다. 이책이 다른 트렌드 서적들과 다른 점은 그런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예가 사회적 소요의 세계화이다.

 

작년 한해 시끄러웠던 반값 등록금 시위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위의 의미는 런던 폭동과 반월가 시위, 그리고 아랍권을 뒤흔든 민주화 바람과 연결해 볼 때 분명해진다. 저자는 작년 한해를 뒤흔든 그 소요들의 의미를 세계화의 정당성 상실이라 본다.

 

등록금 시위부터 보자. 천만원에 육박하는, OECD 2위의 등록금. 비싸다. 그러나 문제는 등록금의 액수가 아니다. 등록금을 내고 따는 졸업장의 가치가 문제이다. “대졸자의 취업률이 51%에 불과하다. 그중 28%는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전체 취업자의 40%는 월급이 150만원 이하이다. 이러니 졸업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88만원 세대의 현실이다. 말만 다르지 1000유로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란 말은 모두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런던폭동도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정부가 등록금을 인상하면서 터졌다. 아랍권의 민주화바람도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점 밖에 할 수 없었던 청년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 문제들의 원인은 3가지이다. “첫째 세계화가 원흉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세계화와 함께했다. 모든 것을 시장 자율에 맡기자며 사실상 소수가 부를 독접하도록 밀어주는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전파에 힘을 실어준 것이 세계화 메가트렌드다. 소수는 부자가 되었고 나머지 대닷는 부뚜막 고양이가 나날이 살찌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볼 자유를 얻었다. 한국에서 빈부격차가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이 세계화라는 기치를 내걸면서부터다.

 

둘째, 디지털화/자동화다. 1990년대 이후 모든 노동이 디지털 도구들로 자동화되었갔다. 디지털 기술이 노동과 고용을 대신하는 흐름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면서 노동력이 덜 필요해졌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스마트워크가 선진기업의 생산성을 20-30% 향상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는데 고용이란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인력이 덜 필요해졌다는 의미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청년 세대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면 왜 지금인가? 세계화와 정보화는 지난 한 세대를 지배한 메가트렌드였고 양극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화의 정당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1 9월에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순식간에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라. 월가가 목표가 된 것은 하는 일도 없이(사회적으로 보면 금융은 부를 나눠먹지 부를 만들지는 않는다) 세계화의 열매를 폭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들이 그런 몫을 차지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계화(정확히는 금융의 세계화)의 정당성이 흔들린 것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겪었던 그 위기는 유동성 위기였지 우리가 그렇게 떠들었던 것처럼 구조적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당시 위기를 겪었던 나라들은 경기주기 상 거품의 붕괴기에 있었고 그 거품이 터지면서 불황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국면이긴 했다. 그러나 그 불황을 위기로 키운 것은 금융자유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는 세계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일어났을 뿐이었고 금융세계화를 뒤흔들 위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중심에서 일어난 위기는 그 정당성을 완전히 날려버렷다.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그 위기에 대한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것이 문제이다. “진지한 모색이 가시화되지 않는 다면 2012년에 예상되는 상황은 하나뿐이다. 충돌! 분노와 좌절! 그리고 충돌! 비싼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받아도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하기만 한 시대가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한국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인 것이 2012년 두 번의 선거가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사회의 갈등의 원인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 의사를 점검하는 사회적 의사결정의 장이다. 이 기회조차 놓친다면 한국은 향후 몇 년간 그동안 응축되어온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고 폭력적인 해결책으로 치닫는 길고 긴 조정 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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