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날들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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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봄날의 초입에 나를 살리는 것은 오로지 정지아의 이 책뿐이구나.사라지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그런데 정작 무엇으로부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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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왜 죽는가
고바야시 다케히코 지음, 김진아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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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는다.
피할 수 없다.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매일매일을 살면서 과연 죽음에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의식하기란 어렵다.
실제로 살면서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졌구나 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살기도 바쁜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그것도 앎의 영역을 벗어난 어디메쯤 있을 죽음에 대해 어찌 매일 의식하며 살 수 있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어리석음 탓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
이 책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는 답을 주려고 한다.
죽음은 생물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존재의 기본 설정이라는 것. 애초에 아주 아주 우연한 조건과 기회로 생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물질들이 생겼고, 또 어찌어찌 기적적인 조건에 따라, 아니 그 조건에 기적적으로 적응해서 ..또 이 과정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인간이라는 생명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생겨났다는 것, 아니 어쩌면 이 책에 흐르는 일관된 설명에 따르자면, 죽음이라는 단계가 있는 생물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이 올해의 책 중의 하나라는 안내를 알라딘에서 보았던 것 같다. 그 책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삶이 너무도 하찮은 것이라서, 인간의 생명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저 우연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는 자연과학적 사실을 명료한 글자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아버지가 7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딸에게 그렇게 담담하고도 무심하게 한마디 하던 그 장면이야말로 가장 숭고하였다고 기억한다. 그때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이나이에도 나는 운다. 아니 이나이에 더 자주 운다. 그래서 두렵다. 곧 어떤 날이 닥치리라는 자각을 그때마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가 더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적응한 것이다.그래서 슬플 이유는 없다. 다만, 평생토록 왜 인간은 이렇게 태어났을까를 탐구하며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생의 의미가 그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소심한 인간으로서, 인간은 이런 자신의 존재를 이해한 이 우주에서 몇 안되는, 어쩌면 유일한 존재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며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뭐 그게 그리 대수는 아닌 것 같긴 하다, 죽을 인간으로서 말이다. 여튼 이책은, 사생관이 바뀐다는 출판사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그리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준다고 할 수는 없고, 그동안 읽어왔던 생물학책의 요약본이자,쉬운 설명서 정도는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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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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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민음사 <오늘을 잡아라> 중 167쪽)

이 문장은 다시, 폐부를 찌른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페이퍼를 다시 본다....ㅜㅜㅜ

무려14년 전에 쓴 페이퍼다.



<어두운 가로수길>이라니. 얼마나 서정적인가! 먼지가 부옇게 이는 어느 여름날이어도 좋다. 만약 한낮의 지루한 해가 사라진 뒤의 가로수길이라면 열기가 가신 땅거죽으로부터 스멀스멀 어둠은 무한히 피어오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겨울날 차갑게 식어버린 대지 위라면, 가로수들은 텅빈 주변보다 더 비어버린 제몸의 균형을 맞추며 모질게 서 있을 터이다.



모스크바는 명료한 도시다. 6월의 모스크바가 건조한 대기와 그것보다는 조금 윤택한 태양이 명랑하게 빛나던 도시라면 모스크바의 12월은 화끈하다. 그 맛은 에스프레소의 그것만큼 따끔하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다. 검고 가는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는 아파트단지는 또 얼마나 소설적인지. 이즈음 정강이까지 빠지는 희디 흰 눈은 깊이를 척도할 수 없다. 우주의 깊이만큼 심오한 느낌을 준다. 프라스펙트 레닌(레닌대로)은 여전히 길게 죽 뻗어 있을 것이며, 유고자빠드나야역 근처에는 피부색이 짙은 콧수명의 남자들과 코끝이 휜 여인들이 추위도 잊고 바구니를 든 채 혹은 좌판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이반 부닌(1870-1953)의 <어두운 가로수길>은, 딱 이 즈음에 집어들기 좋은 “제목”이다.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사랑 이야기니 술술 읽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3년에 걸쳐 쓴 단편들은 저마다 사랑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표제작인 “어두운 가로수 길”은 “모든 게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라는 문장으로 압축될 것이다. 이 문장은 가혹하리만치 서글픈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마치 얼마 전 마종기 시인의 선집에서 발견한 “전화”라는 시에서 받은 느낌과 닮기도 하였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다시 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마종기/ “전화” 전문)




어려운 시어를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평이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정서는, 사랑의 어떤 측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약간 아찔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어두운 가로수길>에서 부닌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양들도 제각각 사랑의 한 부분들을 건드린다.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초로의 남자에게 사랑이란, 죽음 뒤에서라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전쟁터로 떠나는 남자에게 사랑이란, 변심한 애인에게 한발을 날린 사내에게 사랑이란, 연민일 수도 희생일 수도 질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삶에서 행복은 없지만 그 삶에서 번갯불 같은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로 인해 살아”가는 어떤 것이라는 문장에 우리도 함께 공감하게 된다면 “시간에 대한 희망을 제외하고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듯 깨달은 듯 던지는 문장은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요?”라고.


부닌은 러시아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1933) 인물이긴 하지만 그다지 우리나라 독자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대학 때 처음 접했던 작가라 거의 잊고 살았다. 비대중적인 비영미권의 작품을 펴낼 생각을 한 출판사(지만지)를 다시 고쳐 보지 않을 수 없다(불행히도 이 책은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이라고 정보가 뜬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은 작년에 읽었다가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해 옆에 밀쳐 둔 책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다시 펴들게 된 것이다. 그 계기는 뜻밖에도 올 6월 손창섭 작가의 죽음이라고 해야겠다. 어느 신문에서 “스스로를 지운 사람”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는 이력이 눈길을 끌었던 데다 그가 쓴 그 유명한 “잉여인간”을, 실은 정식으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무엇이 내게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잉여인간”이 실린 단편집 <비 오는 날>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손창섭은 작가가 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을 다니는데 이 때 읽은 작가들 중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있었다. 작가 소개에 따르면 손창섭은 체호프의 작품 중에 “아뉴쉬까”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아뉴쉬까”라니. 아름답지만 서글픈 사랑이야기인 바로 그 “아뉴쉬까”라니 말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모스크바 대학에 다니는 귀족 청년이 방학 때 부모의 영지로 온다. 이 집에는 안나라고 불리는 사랑스런 소녀가 있다. 이 청춘의 귀족 청년은 하녀인 이 소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둘은 눈 내리는 언덕에서 함께 썰매를 탄다.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청년은 소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아뉴쉬까(안나의 애칭)... 아뉴쉬까...”. 방학이 끝날 무렵 청년은 떠난다. 남은 소녀는 생각한다. 청년과 함께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올 때 귓가에 들려오던 그 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이었던가, 바람소리였던가. “안나....아뉴쉬까...아뉴쉬까...사랑해....”.


나에게 “아뉴쉬까”는 이런 줄거리로 남아있다. 혹시 번역이 되어 있나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외국어로 읽었고 소련에서 짧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영어자막과 함께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일깨워진 정서는, 한 옆에 밀쳐둔 부닌의 <어두운 가로수 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나 계기는 별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터이지만, 나에게는 신문의 서평일수도,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신간알림 메일일수도 또는 술자리에서 옆사람들이 주고받은 한마디 품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처럼 한 작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연쇄적으로 반응한 일련의 개인적 추억일 수도 있다.


반면 부닌보다 43년 늦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는 한 건방진 남자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솔 벨로 읽어봤어? ...문체란 그런거지.”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에서 출판사 편집장이란 작자가 부하 직원에게 의기양양하게 한마디 던진다. 특별히 이반 부닌보다 대중적인 면에서 형편이 나아보이진 않는 이 작가는 이렇게 나에게 각인되었다. 문체라..문체라... 영미문학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 역시 번역본이 별로 많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작품이 있을 법하지만, 나에게 그의 책으로는 <오늘을 잡아라>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제목은 무슨 자기 개발서나 주식 거래 지침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 나온 번역서는 “그날을 잡아라”라고 했는데,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 어느 제목이 더 적절한지 나름의 판단이 설 수도 있겠다.


주인공 윌키(토니 윌헬름의 애칭)는, 한마디로 실패한 인간의 조건은 다 갖추었다. 은퇴한 의사 아버지는 소통불능이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소식을 못 듣고 산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에 직장에서 쫒겨났으며, 이혼은 해주지 않고 별거중인 아내는 늘 돈을 요구하며 괴롭힌다. 이것이 윌키의 외부 조건이라면 그 자신의 내면은 어떤가? 사가꾼 브로커에게 속아 헐리우드에 갔으나 단역배우조차 되지 못한 채 10년을 허비했다. 늘 켤코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을 최후에는 선택하고 만다. 이제 마흔 줄을 넘긴 윌키는 자신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어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오늘을 잡을 밖에 도리가 없다. 허나 이런 처지를 자각한다고 해서 나아질 리가 있는 것인가? 실패를 내정한 어리석은 짓이란 걸 잘 알면서도 사기꾼에게 가진 돈 전부를 맡기는 것이 윌키 같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이의 숙명일까? 배반당한 걸 깨닫는 눈간 느닷없이 낯선 사람의 장례식 행렬을 마주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있던가? 그는 실컷 울었고, 눈물은 또 다른 시작의 전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판도라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던 희망이 보일지는. 인생은 바닥이고, 바닥에서 솟구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발구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의식은 우리의 삶을 바닥에서 끄집어 내 주는 실제적 도구는 되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도구를 찾아야 할 구실을 주는 정도는 되겠지만. 종국에는 행동만이 변화로 이끄는 열쇠이리라.


단 하룻동안에도 일생을 산 것 같은 날들이 있는 법이다. 윌키가 단 하루동안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으면서 겪게 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전생애일 수도 있다. 너무 절망적이라 허무감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어떤 날의 ‘오늘’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돌이킬 수 없고,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몸달을 필요가 없다. 다만, 오늘을 잡을 밖에. 하지만 이건 너무 뻔한 교훈 같다. 그래도 어쩌란 말인가, 생각만큼 교훈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167쪽) 다만 이렇게 톡쏘는 구절에서조차 위안을 느낄 수밖에. 이 위안은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안도 같은 감정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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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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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책은 올해의 책 목록에 없는 건가? 왜?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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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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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을 끝냈다.
그런데 한개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건 나의 의식적 지각이겠지?
어떻게 이토록 이해가 안되는지. 따라잡기가 너무 쉽지 않았다.
최재천 교수는 독서는 일삼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오며가며 출근길에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고 인정하더라도, 어떻게 뭐 이렇게 머리가 멍한지.
딱 한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의식이란 지능과는 별개이고, 인간중심적인 사고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에게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면 안된다.
우리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오는 물질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오류를 최소화하여 우리의 생존에 맞게 구성한 것이라는 것. 즉, 여기 빨강 의자가 있는데, 그 의자가 빨강인 것은 우리가 이 사물을 인식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그니까 문어는 빨강의자를 다른 식으로 지각할 수 있다는 것...
..어어..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힘들어졌다.
독서는 빡세게 일하듯 해야 한다는 최재천 선생의 말을 다시 되새긴 아침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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츤도쿠 2023-01-15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만의 관점을 가지고 읽는게 좋지않을까요? 최재천 교수님은 말씀이 이랬다저랬다해요. 여기저기 늘어두고 집히는대로 설렁설렁 읽다 집어던지고 그러라러니 또 빡세게 읽으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