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데이비드 무어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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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 책을 살 때, 원칙이 하나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과 같이 인류의 역사를 혁명적으로 재창조한 작품과 같은 책이 아닌 이상, 최신 발간 책을 산다는 것이다. 과학 연구가 지금 이 시각에도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가설은 이론이 되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고, 어제의 진실이 오늘은 잘못된 오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한 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2023년 9월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후성유전학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최근(아닐 수도 있으나 내가 접한 것이 2017년이니까)에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어서 당연히 최근에 출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런데 책이 배달되고 확인해 보니, 아뿔사 2015년...에 원서가 나온 것...그래서 이미 7년 전의 연구라면, 그 사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거나, 기존의 가설이 뒤집혀 졌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은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어떤 주장이나 이론을 읽는 것일테고 , 혹여 후성유전에 대해 오해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책상 위에 방치해 두었더랬다.
그러다가 읽을 책이 더 이상 없어서, 마지못해 집어들었다. 이상한 주장을 하면, 확 집어 던져버릴테다..하는 심정으로.
그런데....읽기 시작하자 마자 이 책이 그런 대접을 받을 섣부른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가 뛰어날 뿐 아니라 후성유전학의 복잡한 발견을 역사를 거슬러올라가서 뿐 아니라 최신(당시 2010년대 초반까지)의 연구 성과를 자세히 그러나 일반 대중이 알기 쉽게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왜 현재의 우리가 되었는지, 왜 우리가 이런 모양인지를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다양한 방식이 관여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여기서 끝나면, 안되지..
그럼에도 태아 때 또는 생애초기의 경험, 후성유전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이야기 역시 유전자 결정론과 같이 경계해야 할 태도임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 다만, 유전자만이 우리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는 점과 여기에 후성유전적 요인들이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동안의 후성유전학의 발전이 주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마지막까지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게 펼쳐 놓는다.

그러니까 후성유전학이 무엇인지, 이것이 왜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열쇠 중에 하나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너무도 선명하고 아름다운 해답 중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이런 책을 놓칠 뻔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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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캐럴라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5
위니프리드 홀트비 지음, 정주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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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내눈엔 여전히 늙은 사람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고, 평소 내가 갖고 있던 어떤 편견에서 그다지 많이 벗어나지는 않는 노인여자, 캐롤라인.
어찌보면, 70대 노인여자이면서도 여전히 어린시절의 그녀에게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꿈을 가지고 있어서, 차라리 더 나이에 어울리잖게 꿈을 꾸고,실은 그꿈은 몽상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여전히 운이 나빴고, 여전히 가난했으며, 빅토리아시대의 한물 간 노인 여자로서 시대의 행운- 교육과 기회, 직업-을 누리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는, 그래서 자신의 조카 엘리너에게 화를 내며 너가 내 운명에서 살아봤어? 라고 훈계할 수 있기도 했겠다만, 어쩐지 나는, 자신의 신념이든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듯하고, 주변 친척들에게 갚을 수 있을 법하지 않으면서 돈을 빌리고, 조카의 앞날을 사실상 가로막아(미국으로 갈 기회를 놓쳐버리게 했으니, 결과적으로 사랑을 찾도록 한 것인가?그러나 그건 이 책의 기조로 봐서는 더 나은 선택인지 의문) 자신이 저지른 형편없는 사업장을 처리하게 만든, 그야말로 전형적인 막무가내 노인네로 보였다(나 좀 꼬였음).
자신은 돈 한푼 없으면서 크리스천키네마를 만들어서 투자자를 만나기만 하면 성공할 듯한 망상이라니...물론 거기에 꼬여든 사람들 모두 손해를 본 것 같진 않지만, 엘리너 빼곤, 물론 인생사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긴 하지만.
뭐 그렇다는 이야기.
엘리너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이 아니었을까? 과학을 배웠고, 다른 여자들처럼 그저 상대방의 말에 웃으며 네네 거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관습적인 것에 냉담하니,
그나저나 불쌍한 캐럴라인....좀만 운이 따라줬더라면, 그녀 역시 진취적인 여성으로 나에게서 후한 점수를 받았을 수도.뭐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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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착각 - 몸과 마음에 대한 통념을 부수는 에이징 심리학
베카 레비 지음, 김효정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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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치 금단현상처럼 마음이 떨렸다..앗, 이제 읽을 책이 없네...왜 아직 주문을 안했지? 하다가, 참..'불쌍한 캐럴라인'이 있었지하면서 안도했다.


그러나, 밤에 자기 전 읽을 책과 출근하면서 잠깐 전철에서 읽을 책은 다르므로, 책을 고른다.

나는 사 놓고 안 읽는 책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화가 나서 되도록 읽을 만큼만 사는 축이다. 그러다보니 가끔, 이런 사태가 벌어지네.

두권의 책 사이에서 망설인다..

창조적 유전자와 진보와 빈곤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중


이 문장을 발견하고 나서 진보와 빈곤을 장바구니에 안 넣을 수가 없었다. 

현재의 상황을 이토록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책이라면, 당장이라도 사서 봐야지 싶은 마음.

헨리 조지는 토지공산주의자라고 알고 있었고, 그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아주 아주 오래 전, 부활의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토지를 포기하는 장면에서 헨리 조지의 논문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그의 이름을 들었고, 찾아본 기억이 있다. 사실 너무 오래 전의 이상적 가치이거니, 그래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낡은 이상주의적 관념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런데...이 대목을 읽으면서..아니, 이건 지금의 현실에 너무 딱 맞는 진단이 아닌가...무릎을 쳤다.

너무 답답하던 차에, 누군가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의 부패야..하고 답을 딱 가르쳐준 격이랄까?


어제 저녁에 다 읽은 나이가 든다는 착각은, 사실 큰 임팩트는 없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남는다. 

나이가 든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세포가 제 기능을 조금씩 잃어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않는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 저자가 하는 말이라고 이해했다. 물론 다양한 실험과 연구결과를 언급하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내 주름살이 주름살이 아닌건 아니다. 다만, 늙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부정적인 것이 아닌 긍정적인 것, 이를테면, 연륜이 쌓이면 메타인지는 더 좋아지고, 뇌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나이가 들면 패턴 인식은 더 좋아지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운동능력이 쇠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기억력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진짜인가? 의심이 드는 나도 연령차별주의자이겠지? 

일본의 노인에 대한 존경 문화가 장수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아닌가하고 제시하는 증거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정도의 동의는 되지만,확신을 주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생각해 보니, 정년을 늘이는 것에 프랑스 사회는 반대한다지? 그건 노동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의미일까? 

그런데 미국의 노인차별반대 운동진영은 정년을 폐지하라고 하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대상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는데...일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 나라에 살면서 이런 상반된 이야기를 들으면, 혼란스럽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인간이 점점 더 오래 사는 시대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 노인으로 살아야 하는 기간이 더 길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숙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내 삶은, 그동안 어땠는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남을 것인지.

그리고 노인이 되어서도 삶을 여전히 활력있게,자발적으로 일하면서..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도 가지게 되고..연령차별..이라는 용어도 알게 되었고..

주변에 존경하거나 롤모델이 되는 노인을 떠올려보라고 한다. 긍정적 나이 인식에 도움이 될 것라면서...아무리 생각해도 없다..이게 문제다..나의 인간관계가 내 또래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심갖고 볼 만한 노인이 없기도 하고, 노인 하면, 뭔가 잘 흘리고, 잘 안씻고, 젊은애들 훈계나 하려들고, 자신의 생각을 마구 강요하고, ...어버이연합 같은.....그런 노인들만 떠오른다.

하지만, 또 궁리해 보니, 최재천 같은 노인학자도 있다. 그 분의 생활은 내가 모르지만, 적어도 언행일치의 모습,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 약한 존재에 대한 배려, 자연과 우주에 대한 폭넓은 사유 그리고 사회에서 받은 것을 다시 되돌려 주려고 하는 선한 영향력, 무엇보다 조곤조곤하고 설득력있게 말하는 솜씨.....(ㅋㅋ 최재천 샘 광팬인가 싶을 정도군...)

그리고 또 없나? 없네..ㅜㅜㅜ일단 롤모델이 될 만한 노인 한명 더 생각해 보기를 나에게 숙제로 준다...고 하면서 이 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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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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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이전의 책들보다 이 책이 내겐 가장 좋았다. 딱히 꼬집어서 뭐 이런 점? 하고 묻는다면, 음...음..하고 머뭇거리겠지만, 그냥 좋네...비로소 트레버라는 작가를 알게 된 듯한 느낌이랄까. 왜 그런거 있잖아..말로 할 수 없지만, 어 이거 괜찮네 싶은.말은 늘 느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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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정확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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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가 결국 죽게 될지 어떻게 될지, 때문에 끝까지 읽다보니, 밤이 깊었다. 처음부터 계속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이 시절에 꼭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싶을 정도로, 우울한 날이라서. 후쿠시마 원자핵 오염수는 사정없이 방류되는데, 우리는 뭐하나, 뭐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서...집회를 다녀온 날 저녁이었다.
그런데 안드레아스는 드디어 폴란드 땅으로 들어갔고..마침내...렘베르크에 도착한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에서 하루 전, 그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기도를 ? 잠을?
폴란드인 모두가 스파이가 되어서 독일군에 대항하지만, 결국 그들이 죽이는 건 죄없는 사람들, 안드레아스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독일군 역시 죄없는 폴란드인, 러시안인, 프랑스인...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전쟁이란, 몇명의 잘난 척하는 정치인이 다수의 죄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 역시 죄없는 다수의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다..라는 뼈아픈 진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어느때보다 우리 주변의 정세가 불안하다.
우리같은 조그만 나라, 초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는 외교는 곧 평화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인데,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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