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장은 총사령관의 얼굴에 두 눈을 못박은 채 허리를 반듯이 펴고조심스럽게 다가가 경례를 하는 태도나,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그 몸을 흔드는 걸음걸이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장군들 뒤에서 대열 사이를돌아다니는 모습이나, 총사령관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굽실거리며뛰어가는 품으로 보아 분명 상관으로서보다는 부하로서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연대장의 엄격함과 노력 덕택에 연대는 브라우나우 쪽에 같이 도착한 다른 연대에 비해 상태가 훨씬 양호했다. 낙오병과 부상병은 217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구두를 빼놓고는 모든 것이 정비되어 있었다. 쿠투조프는 대열 사이를 다니면서 이따금 발을 멈추고 터키 전쟁 때얼굴을 익힌 장교나 때로는 병사에게까지 몇 마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그는 병사들의 구두를 바라보고 몇 번인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으나 딱히 누구를 나무라지는 않고, 이 비참한 상태가 눈에 걸린다는 표정으로 오스트리아 장군에게 구두를 가리켜 보였다. - P229
다. 총사령관 가장 가까이에는 잘생긴 부관이 따르고 있었다. 그는 불하주 뚱뚱하고, 키가 훤칠한데다 호인답게 늘 웃는 잘생긴 얼굴에 콕콘스키 공작이었다. 그와 나란히 가는 사람은 동료인 네스비츠키로. 촉한 눈을 가진 영관이었다. 네스비츠키는 자기 옆에 있는 가무잡잡한 경기병 장교가 유발하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경기병장교가 연대장의 등에 눈을 고정한 채 웃지도 표정을 바꾸지도 않고 정책한 얼굴로 그의 몸짓을 일일이 흉내내고 있었던 것이다. 연대장이몸을 흔들고 앞으로 구부릴 때마다 그도 똑같이 몸을 흔들고 앞으로구부렸다. 네스비츠키는 킥킥거리면서 이 익살맞은 인간을 보라는 듯이 다른 사람을 쿡쿡 찔렀다. 쿠투조프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상관을 지켜보는 수천 개의 눈앞을 느릿느릿 활기 없이 걸어갔다. 제3중대 앞까지 오자 그는 문득걸음을 멈췄다. 이 정지를 예상하지 못했던 수행원들은 총사령관에게부딪힐 뻔했다. "오, 티모힌!" 푸르스름한 외투 때문에 야단을 맞았던 코가 빨간 대위를 알아보고 쿠투조프가 말했다. 조금 전 연대장이 주의를 주었을 때, 티모힌은 그 이상 꼿꼿할 수 없을 만큼 몸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총사령관이 그에게 말을 걸자, 만약 총사령관이 조금 더 바라보았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만큼 그는몸을 곧추세웠다. 쿠투조프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 대위를 편하게해주려는 듯 얼른 얼굴을 돌렸고, 부은데다가 부상 때문에 흉한 쿠투조프의 얼굴에는 보일락 말락 미소가 스쳤다. "이즈마일* 공격 때 전우야." 쿠투조프는 말했다. "용감한 장교지 - P230
"무슨 청원이라도 있나?"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쿠투조프는 물었다. "이 사람이 돌로호프입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아!" 쿠투조프는 말했다. "이번 일의 교훈이 자네를 바로잡아줄 거라 기대하네. 충실히 근무하도록. 황제 폐하는 자비로우신 분이다. 자네가 공적을 세운다면 나도 결코 자네를 잊지 않겠네." 밝은 파란색 눈은 연대장을 바라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담하게총사령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마치 그 표정으로 병사인 자신과 총사령관을 멀리 떼어놓고 있는 계급의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것 같았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각하." 그는 잘 울리는 목소리로 단호하고침착하게 말했다. "제 과오를 씻고, 황제 폐하와 러시아에 대한 충성을증명할 기회를 베풀어주십시오." 쿠투조프는 얼굴을 돌렸다. 아까 티모힌 대위에게서 얼굴을 돌렸을때와 똑같은 미소가 그의 눈에 스쳤다. 그는 얼굴을 돌리고 미간을 찌푸렸는데, 지금 돌로호프가 자기에게 한 말도, 또 자기가 돌로호프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모두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며, 이제 그런 것에는 넌더리가 나고 또 전혀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그 표정으로 나타내려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을 돌려 포장마차 쪽으로걸어갔다. - P232
첫 냉담한 대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 상관과는 사이가 어때?" 제르코프는 물었다. "아무 문제 없어. 좋은 사람들이야.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참모부로가게 됐나?" "파견된 거야. 당직을 하고 있네."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매를 날려보낸 오른쪽 소매에서." 어느덧 군가 소리는 활기차고 즐•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군가 소리 속에서 이야기하지않았다면 그들의 대화는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인가. 오스트리아군이 당했다는 것이?" 돌로호프는 물었다. "알게 뭐야. 그렇다는 소문이야." "통쾌하군." 돌로호프는 군가가 요구하듯이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어떤가, 언제 밤에 한번 오지 않겠나? 파라온이라도 하자고." 제르코프는 말했다. "돈깨나 모았나?" "오게." "안 돼, 맹세했거든. 복관될 때까지는 술도 노름도 않겠다고." "그럼 할 수 없군, 첫 공을 세울 때까지는....... "뭐 이제 알게 되겠지." 다시 침묵이 흘렀다. - P238
안드레이 공작은 처음의 두세 마디로, 쿠투조프가 이야기한 것뿐만아니라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까지도 이해했다는 듯이 머리를숙였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한 번 절하고 서류를 모아 들고조용히 융단 위를 걸어 응접실로 나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러시아를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많이 변했다. 표정이나 동작, 걸음걸이에서 예전과 같은 가장한 구석이나 피로, 나태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남들에게 어떤인상을 주는지 따위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즐겁고 재미있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얼굴에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만족감이 보였다. 그리고 미소와 눈빛은 전보다 밝고 매력적이었다. - P243
작은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평판을 듣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은 안드레이 공작을 자기를 비롯한모든 사람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가 앞으로 크게 출세할거라 기대하며 그의 말을 따르고, 그에게 감탄하고, 그를 따라했다. 이사람들에게 안드레이 공작은 담백하고 유쾌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드레이 공작을 좋아하지 않았고, 거만하고냉담하고 불쾌한 사람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도 안드레이공작은 자신에 대한 존경심과 심지어 두려움까지 품도록 처신할 수 있었다. - P244
"흥이 날 게 없잖아." 볼콘스키는 대답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네스비츠키와 제르코프를 만난 바로 그때, 복도 다른 편에서 러시아군의 식량 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쿠투조프의 참모부로 편입되었던 오스트리아 장군 슈트라우흐와 전날 도착한 군사위원회의원이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넓은 복도는 두 장군이 세 장교 옆을지나갈 만큼 공간이 충분했지만, 제르코프는 한 손으로 네스비츠키를밀면서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신다! 오신다!... 길을 비켜주시오, 길을! 자, 길을!" 장군들은 귀찮은 경례 교환을 피하고 싶은 표정으로 그대로 지나가려고 했다. 익살꾼 제르코프의 얼굴에 갑자기 억누를 수 없는 듯한 바보스러운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각하." 그는 앞으로 나아가 오스트리아 장군에게 독일어로 말했다. "삼가 축하드립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춤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처럼 어색하게 한발 한발 뒤로 미끄러뜨리며 비벼댔다. 군사위원회 의원인 장군은 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는데, 그 바보스러운 미소에 담긴 진지함을 알아채자 잠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듣고 있다는 표시로 실눈을 떴다. "삼가 축하드립니다. 마크 장군도 무사히 도착하셨습니다. 다만 여길좀 다치셨을 뿐" 하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자기 이마를 가리켰다. 장군은 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돌리더니 그대로걸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유치한 놈이로군!" 몇 걸음 떨어지자 그는 화가 난 듯이 말했다. - P247
네스비츠키는 낄낄대며 안드레이 공작을 껴안았으나, 볼콘스키는 한충더 창백해지고 증오의 표정을 띠며 그를 밀어젖히고 제르코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크의 모습, 패배 소식, 러시아군을 기다리는 운명에대한 생각 등이 불러일으킨 신경질적인 초조함이 때와 장소를 분간 못하는 제르코프의 익살에 대한 분개 속에서 배출구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봐, 친절한 나라." 아래턱을 가볍게 떨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안드레이 공작은 말하기 시작했다. "만약 당신이 광대가 되고 싶다면, 난 방해할 생각 없어.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지만, 만약 당신이 다음에도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광대 짓을 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행동거지라는 걸 가르쳐주겠네." 네스비츠키와 제르코프는 이 말에 어리둥절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없이 볼콘스키를 바라보았다. "뭐, 난 그저 축하의 말을 건넸을 뿐인데." 제르코프는 말했다. "난 당신하고 농담하는 게 아니야, 입 다물어주시게." 볼콘스키는이렇게 소리친 후 네스비츠키의 손을 끌고, 말문이 막혀 멍하니 서 있는 제르코프의 옆을 떠났다. "이봐 형제, 대체 왜 이러나?" 네스비츠키는 달래듯이 말했다. "왜 이러느냐고?" 안드레이 공작은 흥분해서 발을 멈추고 말했다. "생각해보게, 우리는 황제와 국가에 봉사하고 우군 전체의 성공에 기뻐하고 실패에 슬퍼하는 장교들인가, 아니면 주인의 일에는 아무런 상관없는 단순한 하인들인가? 4만의 우군이 죽고 우리 연합군이 섬멸됐다는데 자네들은 어떻게 그걸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말하고 이 프랑스어로 의견을 뒷받침하려는 듯이 말했다. "자네 친구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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