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풀빛 청소년 문학 5
도나 조 나폴리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로베르트는 길지 않은 책입니다.

슬픈 눈망울과 꼭 다문 입술, 그리고 얌전한 고수머리의 소년이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책 표지그림은 이미 이 책의 내용을 짐작케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첫 장을 넘기고 로베르토와 동행이 되려 합니다.

그러나 로베르토와 함께 길을 나서선지 얼마 안 되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한 번 가슴이 울컥해지면 그 날은 로베르토와 함께 하는 시간을 포기합니다.

전철 한 구석에 서서 책을 펼치다가도 어느새 눈이 아른거리고 목이 메어 와 끝내는 책장에 얼룩을 만들어 내고 맙니다.

참 읽기 힘든 책이었습니다.

화려한 수식 없이 간결한 문체로 다 큰 어른의 마음을 이렇게 크게 흔들어 놓는 책은 오랜만입니다.

중간 중간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어 곱씹어 음미해보니 원문도 좋았겠지만 역시 번역도 훌륭한 것이기에 가능했음을 느끼게 합니다.


로베르토는 올 해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보다는 일자리를 찾는 게 우선인 평범한 이태리 소년입니다.

어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 로베르토와 친구들.

아직은 어리다고 할 수 있는 그들 또래에게는 간혹 어른들에게서 전해들은 전쟁이란 것이 그저 영화관에서 보던 미국식 서부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베르토를 읽으면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이태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내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이라는 비극적 소재를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묘사함으로서 비인간적인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고, 어린 조슈아의 눈에 전쟁이라는 공포가 스며들지 않도록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끝까지 우스꽝스런 게임을 가장하는 부정 때문에 많이 웃고 울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싹이 자라나기에 ‘인생은 아름다워’ 였었는데,,,,,,


인생은 아름다워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

출연 로베르토 베니니,니콜레타 브라스치

개봉 1999.03.06 이탈리아, 122분




 

 

 

그런데 로베르토에게는 그 전쟁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차가운 모래바람이 얼굴을 할퀴듯 불어옵니다.

독일군에 의해 끌려 온 수많은 아이들은 처음엔 부모에게 혼이 날것을 염려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낯선 곳에서 살아남기를 몸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말도 통하지 않고 하물며 주먹보다도 총부리가 더 먼저이고, 다른 아이들에게서 우정과 신뢰를 기대하기보다는 그가 가진 것-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단 한장의 담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을 빼앗아 오는 것에 길들여지는 아이들.

인간성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는 극한 상황 속에서 로베르토에게는 사무엘이라는 유대인 친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도 하고 피를 말리는 위험한 뇌관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베네치아에 있는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무엘은 이 전쟁의 성격을 바로 알고 있기에 더욱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 로베르토를 위해 밤마다 이야기를 한 가지씩 들려줍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앞으로 로베르토가 고난에 맞닥뜨릴 때마다 힘이 되어 줄 희망과 용기가 있고 잊지 말아야 할 모국어가 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조차 왜,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를 몰라 회의를 갖고 탈영을 하고 아이들은 계속되는 강제 노역으로 군수물자를 수송할 비행기를 위해 활주로를 닦고 유대인 포로를 가두는 수용소를 만들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갑니다.

이미 너무 많은 고통과 절망을 알아버린 로베르토.

사무엘의 주검을 눈에 묻고 무작정 걸어가는 로베르토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인가는 전쟁 중입니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청소를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조슈아의 아빠처럼 참혹한 현실 속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엔 너무 열려 있는 세상이기에, 각종 총기류와 무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서 사람을 향해 조준하고 피를 보고 마는 인터넷 게임은 이미 전쟁에 대한 두려움 이상의 흥분을 아이들에게 안겨 주고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눈에 띄는대로 무작정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는 사실은 더 이상의 타협이나 관용이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건조한 세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헤매던 로베르토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작은 돌 하나는 로베르토가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에의 예의바름,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돌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네치아처럼 다시 지어질 이상향을 위해 로베르토는 자신도 수많은 돌들 중 하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비상구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로베르트의 곤돌라를 태워주며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집니다.

옛날 옛날에 꼽추 소년이 있었단다. 로 시작되는 이야기.

사무엘이 밤마다 로베르토의 귓가에 들려주던 해피 앤딩으로 끝나게 될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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