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라푼젤> 서평단 알림
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고양이와 잠들다’

‘남자와 잠들다’

‘어린아이와 잠들다’

‘혼자 잠들다’ 의 4개章으로 이루어진 소설 “잠자는 라푼첼”의

주인공 시오미는 20대 후반의 불면증 환자이다.

아이가 없는 단조롭고 무료한 결혼 생활로 인해 그녀의 하루하루는 늘 똑같고

일을 핑계로 사무실에서 살다시피하는 남편이건만 그녀는 불평 한 마디도 없다.

그것은 그녀가 마음이 넓어서도 아니고 남편이 주는 충분한 생활비가 아쉬워서도 아니다.

자신이 남편을 꾀어 결혼 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엔 자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지금 지쳐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소원이 있다면 아주 만족하고 개운한 잠을 자 보는 것 정도인 그녀.

실은 그저 타의에 의해 시간에 떠밀려 가는 지금 이대로의 자신을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오미에게 섬광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이웃 집 아들 ‘루피오’를 볼 때이다.

또 무려 열여섯 살이나 어린 루피오를 볼 수 없기에 때로는 절망하기도 한다.

무의미하고 바짝 마른 결혼 생활을 겨우 유지해 나가는 시오미의 가정이 있는가 하면 이웃 집 루피오네 가정도 좀 이상한 구성이다.

그 비정상적인 가정의 문을 열고 나온 시오미와 루피오, 그리고 루피오의 의붓아버지 ‘대니’가 함께 하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한지 모른다.

세 사람은 시간 날 때마다, 아니 일부러 회사를 빼먹고, 학교를 빼먹고 시오미의 집에 모여 게임도 하고 느긋하게 누워서 TV도 보고 음식도 함께 먹는다.

각자의 집에서는 불행하고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한 공간에 모이게 되면 너무나 자연스레 같은 박자로 숨을 쉬는 것이다.

도시인의 편리한 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 극도의 외로움을 견디는 세 사람의 불안한 조합은 그러나 영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작은 행복을 깨트리기 위해 개입하는 손은 어른이 아닌 루피오의 여동생 ‘주리’이다.


이 소설은 마치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 같다.

동화의 틀을 갖추고 있으면서 교묘하게 그 짜임새를 비틀어 섬뜩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하게 보면 시오미는 아이를 갖지 못하니까 앞 집 남자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 대신 앞 집 남편과 교감을 갖는 것 같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결론은 시오미의 내면이 한참이나 미성숙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불임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치 시오미가 처한 지금의 상황은 불임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할만치...

아랫 층 야나기다씨 역시 불임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녀는 시오미처럼 위험한 일탈을 감행하진 않는다.

처음엔 늘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시오미에게서 위안을 얻으려 했었던 그녀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그녀는 강해지고 어느덧 시오미가 도움을 받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시오미와의 다른 점이라면 야나기다는 문제가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문제 속에서 머물러 괴로워하기보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런 야나기다에 비해 시오미는 이제껏 책임감을 느끼는 일을 해 본적이 없으며, 자신에게 기대려는 주위의 누구도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오로지 루피오에 기대어 잠들고 싶을 뿐이고 마지막까지도 헛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었으나 남편은 생활비를 대주는 통장일 뿐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다.

앞 집 소년은 그녀의 풋사과같은 감정에 피드백을 주고 앞 집 남편은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을 함께 아파하며 충고도 해 주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온전히 그녀를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그녀가 너무 안쓰럽다.


나 역시도 그녀를 온 마음으로 이해하기엔, 탑에 갇힌 그녀의 고독과 소통의 단절을 같이 고민하기엔 내 삶이 너무 바쁜 것이다.

시오미가 스스로 유폐된 라푼첼의 탑에서 나오려면 타인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 또 다른 허상의 탑에 갇혀 살고 있는 그녀에게 주문을 걸어 본다.

 

라푼첼,라푼첼 한 걸음을 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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