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아주 작은 것도 매우 소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알바해서 번 돈으로
너무 갖고 싶었던 캐논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고급디카는 아니고 휴대용이었지만
나름 내가 벌어서 구입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방에 꼭 넣어가지고 다녔다.
집앞에 나서자마자 하늘부터 한번 찍고
괜히 발 밑의 돌도 예뻐보여 찍고
풀밭에 이슬이라도 맺혀있으면
이슬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찍고
찍고 찍고 또 찍고 하며
난 세상이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기주 작가의 신간 그리다가, 뭉클 을 읽으며
그 옛날 아주 소소한 모습도 카메라에 담으며
그리다가, 뭉클은 이기주 작가의 그림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을 낸 이유가
본인의 그림 솜씨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글 솜씨를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라고 한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뭐... 변우석이 얼굴 자랑하기 위해
티비에 나오는게 아니라
그 얼굴에 우리가 위로받는 거랑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이기주의 글과 그림으로
우리가 위로받는거다.
이기주 작가가 그림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건
그가 그간 알게모르게 낸 책들로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책을 넘겨보면서 그린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거 뭐지?
너무 잘 그리잖아.
일상속에서 자주 다니는 서울숲 씨유라는데
여기서 죽치고 있어야 하나 싶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사진을 찍어 집에 가지고 가서
그림을 그렸을까
왠지 저기 서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멋지자나~
(책내용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림을
사진을 찍어 집에와 그리는 듯하다)
저자에게 그림은
하나의 치유의 도구였던것 같다.
해방촌을 그린 그림에는
타이레놀이라고 표현되어있고
다른 페이지에서는 후시딘 같다고 했다.
그가 그림 그리는 행위 그 자체가
고통을 줄여주는 타이레놀이고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후시딘이었다면
나에게는 그 그림이
후시딘과 타이레놀이 되어주었다.
그의 이야기와 그림이 적절히
서로를 돕는 느낌이라
그림이 아쉽지도,
글이 아쉽지도 않은 책
그리다가, 뭉클
가만보면 글을 쓰는 작가나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꽤 많은것 같다.
아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글을 쓰거나
다른 장르의 예술을 한다고 하는게
순서가 맞을려나?
그림을 그리다가 뭉클하는 순간을
한번 느껴본 작가는
자꾸 그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거 같다.
이책 그리다가 뭉클에서
이기주 작가는
그림과 글은
마음을 부지런히 쓰는 일이라고 한다.
마음을 움직여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야하고
그림이나 글의
의미를 찾기 위해
또 마음을 써야하니
꽤 유용한 지혜가 바로
그림이나 글이라고 한다.
마음을 부지런히 쓴다는 표현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기주 작가의 글은
어딘가 오글거려서 안좋다고
매번 말하는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이렇게 계속 챙겨읽는거 보면
오글거리는게 내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다행히도 오글거림은 좀 덜하고
멋짐이 많이 풍겨나온것 같다.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을 찾아보니
당연히 글이나 책에 대한 것이겠지 했는데
그림에 대한 채널이라 좀 놀랐다.
그림에 진심이잖아 이 남자.
지우고 다시 선을 긋는다고
더 나은 선을 그을 확률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저자는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린 선을 지우면
남는건 지우개똥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그 잘못그은 선을 활용해
다음 선을 긋기 위한 길잡이로 삼는다면
더 풍성한 그림이 된다고 한다.
인생도 그렇게 실수했어도
그 실수를 바탕으로 더 성장하면
되는거다.
그는 인생이 그림 같아서
재미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건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리다가, 뭉클 거리는
저자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왜냐 그림을 못그리는 사람도
느끼는 마음은 같기 때문이다.
그 옛날
디카로 세상의 소소한 모습들을
담고 싶었던 젊은시절 내 마음이
그림으로 세상을 담는
이기주 작가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잔잔한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책
그리다가 뭉클.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와
과하지 않은 스킬로
아름답게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책만 제공받아 읽고 직접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