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케이스릴러
김달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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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 (2020년 초판)

저자 - 김달리

출판사 - 고즈넉이엔티

정가 - 13500원

페이지 - 324p



그곳엔 뭔가가 있다



한국 스릴러의 자존심. 고즈넉이엔티에서 주최한 케이스릴러 작가 공모전이자 케이스릴러 시즌2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텀블벅 프로젝트가 성공(본인도 참여하여 [마귀] 싸인본을 받은)을 거두면서 무려 일곱 편의 수상작을 한꺼번에 출간하는 기염을 토하며 국내 추리스릴러계에서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그중 이 [이레]는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케이스릴러 시즌2로 다시한번 비상을 노리고 있는 고즈넉에서 엄선한 미스터리 스릴러! [이레]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 비단잉어가 노니는 호수를 끼고 아름다운 고딕풍의 건물이 들어서있다.

샨티. 몸과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뜻하는 인도어 샨티는 

말 그대로 부유층을 위한 요양원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이곳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발을 들인다.

이레. 샨티의 소유주 서경의 아들 도훈이 사랑한 소녀이자

도훈의 아이를 잉태한 십대 소녀.

아들밖에 모르던 서경은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이레가 눈엣가시나 다름없었으니...


7일이 지나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비밀의 샨티.

이레는 일곱번째 날. 축일에 무사히 샨티를 나올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샨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수십명의 요양사가 온 정성을 다해 돌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 우리가 알고 있는 부유층들의 프라이빗 요양원을 떠올렸을때 흔히 생각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곳 샨티도 '대외적'으로는 그런 곳의 분위기를 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더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피투성이가 되어 숲속을 해메는 레크레이션 강사. 교관과 다름없는 요양사의 무시무시한 폭력. 방안까지 설치된 CCTV를 통해 여성 환자를 보며 수음을 일삼는 관리직원. 그리고......불법적 의료행위들.....이토록 비밀에 쌓인 샨티에 신비로운 눈빛을 가진 소녀 이레가 방문하고, 단단하고 육중했던 그들의 성에 커다란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모두의 축복과 보살핌을 받아야 할 소녀가 겪어야 할 고난은 너무나 잔혹했다. 아무래도 임산부를 잔혹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하다 보니 좀 더 마음이 쓰이고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사실 무대가 되는 배경은 여타 작품들의 클리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고어 버번스키'감독의 [더 큐어]와 '조던 필'감독의 [겟 아웃]을 믹스한 듯한 작품이랄까. 다만 아이를 임신한 이레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와 아들을 생각하는 서경의 잔악무도한 폭주. 두 모성의 극렬한 격돌이 익숙한 클리셰를 깨트리는 몰입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뭔가 둘 다 몸서리 처지는 모성이었달까...ㄷㄷㄷ -_-;;;;



신비스러운 고딕 분위기와 결말에 다다를수록 자식을 걸고 폭주하는 여성들의 폭주 걸크러쉬. 신선함 보다는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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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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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 개별 지성을 잃어버린 인류의 뒤틀린 생존극 (2020년 초판)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역자 - 민경욱

출판사 - 하빌리스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50p



말도 안된다고? 그래도 일단 상상해봐!



미친 과학자가 뭘 터트리던,

외계인이 지구에 침공하던,

소행성이 지구에 떨여졌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이 발발하던 간에


일단 가정해 보는 거야.


어느날 갑자기 인류의 기억이 10분 밖에 유지 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인류의 존속은 가능할까?


왜? 말도 안된다고?

말했잖아. 일단 가정해 보라고.

그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거야.

'고바야시 야스미'가 그리는 코믹하고 기묘한 뒤틀린 세상이 말야.



[앨리스 죽이기][기억 파단자]로 매번 누구도 상상치 못 한 독특한 발상의 작품을 선보이는 천재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신작이 출간됐다. 이번 작품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유머가 만발한 미처버린 세상을 그리고 있다. 동화와 현실이 뒤섞인 미쳐버린 세상(앨리스 죽이기 시리즈). 단기 기억상실증의 남자와 기억 조작능력자의 목숨을 건 사투(기억 파단자). 그리고 이번엔 기억이 10분동안만 유지되는 세기말적 SF?!! 



분명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왜 이 글을 쓰고있지?

치매에 걸린 건가? 조금전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지금 시간 10시.


어라? 이거 내가 쓴거야? 왜 전혀 기억나지 않지? 내가 쓴 것도 잊어 버리다니. 큰일이다. 

지금 시간 10시 40분.


뭐지? 정말로 무서워지네. 나도 모르는 사이 다중인격이 글을 쓰는 건가. 지금 시간 11시.


짜증나. 어떻게 된거지? 정말로 다른 세명의 인격이 지나갔나? 그런 나는 네번째 인격인가? 

지금 시간 12시.


다중인격을 고민하던 소녀는 실은 하나의 인격이다. 다만 전인류에게 발생한 장기기억으로의 뇌기능 손실 때문에 자신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뿐. 10분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인류에게는 거대한 위험이 다가온다. 소녀의 아버지가 다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이상 알람이 발생했던 것. 알람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데만도 십분이 넘게 걸리는 일인데, 소녀의 아버지는 어떻게 위기를 해쳐 나가게 될까....



지금의 나를 나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기억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소실됐다. 시간은 흘러 인류는 외부 메모리를 사용하여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컴퓨터의 ROM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메모리는 탈착이 가능하였으니......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갈 혼란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다.



미쳤다. 오로지 설정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간과 기억, 영혼을 생각하게 하는 윤회사상에 입각한 불교의 철학적 요소까지 담아내다니. 이것이야말로 가정을 통해 무한한 사례를 상상하고 사유하는 사고실험의 가장 모범적인 SF가 아닌가. 이 기발한 상상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앨리스 죽이기]에서 본인을 매료 시켰던 말장난 언어유희까지 구사해 주니 책을 읽는 내내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 



굉장히 급진적이고 개별적 단편이 이어지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조금 분절되는 느낌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독특한 발상의 SF를 선호하는 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작품이라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어찌됐던 신박한 이야기임은 부정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고바야시 야스미' 특유의 상상력과 개성넘치는 필체가 어우러진 똘끼 넘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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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쇼팽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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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쇼팽 (2020년 초판)_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3

저자 - 나카야마 시치리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6

정가 - 16000원

페이지 - 408p



손 끝에 실린 감정의 선율이 폭발하다



제 2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 없는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공장장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이 '또' 나왔다. [표정 없는 검사]를 읽은지 보름 남짓 지났는데 벌써 신작이라니....독자가 읽는 속도를 능가하는 집필 속도를 자랑하는 작가의 이번 신작은 '나카야마 시치리'가 선보이고 있는 여러 미스터리 월드중 가장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시리즈. 클래식 탐정 미사키 요스케 세번째 이야기이다. 



눈으로 읽는 클래식이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에도 불구하고 그가 던지는 글자 하나 하나는 마치 악보의 음표와 마찬가지로 음률이 그려지고 마음속에서 단어와 문장의 음악이 흐르게 되는 마법 같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미스터리와 클래식이란 이질적인 장르가 불협화음을 내기 보다는 천상의 선율을 선사하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것 또한 그 때문이리라. 



이번 작품 [언제까지나 쇼팽]은 그동안 출간되었던 [안녕, 드뷔시]와 [잘자요, 라흐마니노프]와는 또다른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앞선 작품들이 일본 내에서 클래식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무려 쇼팽의 나라 폴란드. 게다가 5년에 한번, 전세계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의 관심이 모이는 쇼팽 콩쿠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중심 스토리로 잡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클래식 천재들의 총성 없는 전쟁. 화려한 기교와 끈질긴 열정이 가슴에 불을 지피는 성대하고 화려한 결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클래식의 꽃은 콩쿠르 아니겠는가. ㅎㅎㅎ 일본을 대표하는 27세 최고령 참가자 미사키 요스케와 음악의 신이 선택한 천재 맹인 피아니스트 사카키바 류헤이, 그리고 4대째 이어내려오는 실질적 쇼팽의 후예 폴란드 클래식의 자부심 얀까지....이 3명이 펼치는 열정적인 연주에 심장이 미친 듯 고동친다. 



폴란드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 내부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비행기에 탔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폴란드 내부는 갑작스러운 사고의 충격과 애도에 빠지고 그런 불안감을 쇼팽 콩쿠르로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폴란드에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 얀은 강압적인 아버지와 폴란드 시민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러나 예선이 끝나고 결선이 치뤄지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호텔과 연주장 등등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연이어 발생한 것. 이 테러로 콩쿠르에 참가했던 연주자가 사망하면서 콩쿠르 대회 자체의 강행여부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다. 그러나 집행부는 대회의 강행을 발표하고,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폭탄 테러범을 잡기 위해 클래식 탐정 미사키 요스케가 나서는데......



무대가 폴란드인 만큼 배경도 글로벌라이제이션 하다. 911테러 발생 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탈레반과 격돌을 벌이던 실제 세계정세를 작품에 녹여낸 것이다. 당시 아랍 극단주의자들의 무차별 자살폭탄 테러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는데, 폴란드 역시 그런 종교, 이념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진 것. 나라의 대표로 피아노 건반을 때리는 클래식 전사들과 종교적 사명을 띄고 목숨을 버리는 전사들의 비극. 같은 사명감이지만 한쪽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생명을 살리고 다른 한쪽은 사람의 목숨을 하나라도 더 빼앗아가는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보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소설가의 사명은 책을 통해서 늘 그 순간 그 순간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사명에 가장 걸맞는 이야기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처음으로 접한 클래식 소설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이 많이 떠올랐다. [꿀벌과 천둥]역시 콩쿠르에서 격돌하는 천재들의 치열한 피아노 연주 배틀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음악의 신이 선택한 천재의 숙명. 그리고 천재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범인들의 고뇌. 이제는 공식처럼 떠오르게 되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아마데우스] 처럼.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기에 더욱 멀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이렇게 텍스트로 만나는 건 굉장히 이색적인 경험이고 그것만으로도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웅장한 쇼팽의 음악에 심취한 와중에 비정한 테러범 '피아니스트'를 맞추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으니 여러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중 과연 범인은 누구일지.....결말의 반전에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을지는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시리즈중 가장 애정하는 시리즈이자 이번 [언제까지나 쇼팽]을 클래식 소설이 줄 수 있는 가장 진한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 손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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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 윤자영 장편소설
윤자영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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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일기 (2020년 초판)

저자 - 윤자영

출판사 - 몽실북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34p



소년에게 있어 남아 있는 선택은 오직 파멸 뿐



번뜩이는 트릭으로 남다른 본격 추리의 묘미를 선사하며 한국형 밀실추리 '관'시리즈라 불리는 [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과 [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등을 히트시킨 '윤자영'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사실 '윤자영'작가의 본업은 따로 있다. 바로 현직 고등학교 과학 교사인데 그런 연유로 이번 작품은 굉장히 의미있고 눈여겨 볼만 하다고 생각된다. 이번 작품의 스토리가 학교폭력을 중요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교사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폭력의 실상. 그리고 주기적인 폭력이 낳은 폭력의 연쇄작용과 파멸에 이르는 아이들. 더불어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과 그릇된 부조리가 맞물려 연쇄적 파국을 맞아가는 현실적인 사회파 추리였다. 



[이승민]

마포대교 난간에 올라 선 이승민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한다. 

훌쩍 몸을 날린 소년. 

풍덩.

중력은 소년의 몸뚱아리를 차디찬 강물 속으로 순식간에 집어 삼켰다. 


때마침 지나던 유람선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소년은 최소한의 처치를 받은 뒤 다시 학교에 등교한다. 소년의 친구들이나 선생님 누구도 소년의 자살시도를 모른다. 아니, 평소 존재자체도 모를 정도로 공기 같던 소년의 자살시도 따위는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소년의 자살시도를 기점으로 소년의 인생은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데....


[공승민]

중학교 시절부터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이승민은 눈엣가시였다. 저렇게 음침한 놈과 이름이 같다니,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다. 그래서 괴롭혔다. 집요하고 악질적으로. 절대로 이승민의 학대에 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용의주도하게 괴롭혀왔다. 하루에 한번, 시원하게 이승민의 싸대기를 날리는게 일과가 돼버렸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는 저녁.

야자를 마치고 공원에 모인 친구들과 술한잔을 하고 적당히 오른 취기에 홀로 귀가길에 올랐다. 으슥한 공원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걷고 있는데 어느샌가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인기척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퍽! 

뒷통수를 강타한 강렬한 충격이 전신으로 퍼져갔다...



공승민과 이승민. 이름은 같지만 둘이 걸어온 인생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전혀 달랐다. 이름이 같다는 접점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교차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관계. 절대적 강자 공승민과 절대적 약자 이승민. 그런 둘의 관계가 반전될 단 한번의 기회가 이승민에게 찾아온다. 


지긋지긋한 학대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당신에게 찾아온다면?


비록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일일지라도 그게 당신에게 있어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면 당신은 그 파멸의 동아줄을 잡을 것인가? 작품을 읽으며 이승민이 겪었을 심리적 압박과 고통에 공감했고 그런 소년의 선택에 깊이 탄식했다. 학교와 가족 모두에게서 버림 받은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악마에게 손을 내밀 었던 것이 아닐까? 일산대교에 서서 몸을 날리는 이승민의 절망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학대와 가학에 찌든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교사들의 이야기는 [파멸일기]를 즐기는 또다른 재미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재미를 위한 MSG가 가미되었겠지만 체벌금지 정책이 시행된 후 교사가 겪고 있는 땅에 떨어진 교권의 현주소나 선생님들 간의 위계질서, 학교 밖에서의 이야기들 그리고 항상 무섭게만 보였던 선생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벌거벗은 면모 등등... 그동안 자세히 몰랐던 세계이거니와 현직 교사인 작가이기에 써낼 수 있는 생생한 이야기라고 생각됐다. 



학교와 학생, 폭력과 학대, 변태적 욕망과 애증, 그리고 반전. 축소된 사회라는 학교에서 들끓는 다양한 감정의 폭풍이 오로지 파멸을 향해 치달아 간다. 궁지에 몰린 인간이 변모해가는 심리 묘사가 탁월하여 막힘없이 읽히는 가독성 좋은 작품이었다. 실제로 읽다가 정신차려 보면 분량이 휙휙 넘어가있더라는...ㅎㅎ 사실 결말의 반전을 지난 천호 교보문고에서 열렸던 추리작법강의 자리에서 들어버려 반전의 묘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ㅠ_ㅠ  



마지막으로 충분히 이야미스로 끝낼 수 있음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면서 잔혹한 이야기임에도 학생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진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던 따뜻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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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김도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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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괜찮아 :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2020년 초판)

저자 - 김도윤

출판사 - 아르테(arte)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29p



목 놓아 불러도 그리운 그이름



계실때 잘하라. 떠난뒤엔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그 말. 이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 말의 무게를 체감해 가는 요즘이다. 언제까지고 곁에서 나를 지켜줄 것 같았던 부모님의 어깨가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팽팽하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면서 부모님도 이제 호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버리셨다는걸.... 이제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먹먹한 슬픔과 두려움이 밀려든다. 



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



이 책은 엄마를 떠나 보내고나서야 엄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작가 '김도윤'이 어머니를 그리며 써내려간 수기다. 

우울증을 앓던 형, 그리고 자식의 우울증을 보며 가슴을 태우던 엄마. 결국 마음의 병은 육체를 병들게 했고, 엄마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 살고 있던 집 베란다에서 몸을 던지셨다. 죽음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막내 아들인 작가 역시 형과 엄마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찾아온다. 가족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만든 우울증이란 덫. 작가는 마음의 병을 얻고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동안 그동안 몰랐던, 아니 알았지만 모른척 했던 엄마의 진짜 얼굴을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만 괜찮아'라는 말의 속뜻을. 당신의 썩어가는 가슴을 움켜쥐고 힘겹게 주문을 걸 듯 되뇌이는 말이었음을.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드러내야 하는 나아가 불운한 가족의 역사를 낯낯이 고백하는 에세이라는 장르는 참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런 솔직함에서 묻어나는 진심이 독자들과 함께 공명하여 공감의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강한 영향력을 지닌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내 경우인양 빠져들어 읽었다. 부모님 앞에서 자식은 언제나 죄인 아닌가. 다만 다행인건 난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음에 감사한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언젠간 아물게 마련이다. 죽음 같았던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작가의 변화의 과정이 책을 읽는 내게도 파도처럼 밀려온다. 작가의 인생을 거울삼아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한다. 효도해라!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걸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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