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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닥의 머리카락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1
구로이와 루이코 외 지음, 김계자 옮김 / 이상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세가닥의머리카락 (2018년 초판)_일본추리소설시리즈-1
저자 - 구로이와 루이코, 아에바 고손, 모리타 시켄
역자 - 김계자
출판사 - 이상
정가 - 13000원
페이지 - 340p
일본 최초의 추리소설
신본격, 사회파추리등 다양한 장르의 추리소설들이 해매다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추리소설 시장은 작가층도 상당히 두텁고, 소재나 상상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역사깊은 방대한 시장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오츠이치' 등등 뛰어난 추리작가가 연이어 나올 수 있는건, 이런 유서깊은 탄탄한 밑바탕이 받쳐주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일본 추리소설의 근간이 되는 초기작품들을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첫번째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1889년 일본 최초의 추리소설인 [세 가닥의 머리카락]과 함께 일본에 최초 번역 소개된 서양의 유명 추리소설들을 함께 묶어낸 이 단편집으로 무려 129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넘어서는 일본 추리소설의 역사와 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1908년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인 '이해조'의 [쌍옥적]보다 19년 앞선 일본 최초 추리소설은 무려 시신이 손에 쥐고 있는 머리카락을 통해 범인을 추리하는 요즘의 CSI 과학수사를 떠올리게 하는 탄탄한 증거중심 수사를 펼친다. 지금이야 유전자 검사 하나면 끝나지만 메이지 시대였던 1800년대 말에 이런 발상의 작품을 썼다는게 놀랍게 느껴진다. 그와 함께 '에드거 엘런 포'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와 [모르그가의 살인]을 일본에 번안해 소개한 작품들은 낯선 서양의 이름과 지명등을 일본식으로 각색(?)하여 소개하니 서양의 원작을 보는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해설에서 언급하기로는 당시엔 '호걸역'과 '주밀역' 두가지 번역풍이 있다는데, '호걸역'은 원작을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로 새롭게 창조해 내는 번역을 일컫고, '주밀역'은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예전 1980~90년대 유명SF소설을 번역자 마음대로 내용을 생략하고 챕터까지 마음대로 뒤바꿔버리며 번역했던 악명높은 SF전문 번역자가 있었는데...그가 '호걸역'과 같은것 아닌가?...-_-;;; 근데 이런건 저작권에 위배되는거 아닌가?...[검은 고양이]만 해도 중이 벽속에 시체를 파묻었다는 설을 떠올리고 범인이 아내 시체를 벽에 파묻는다던가, 경찰이 아니라 순사가 나오는등 익히 알고 있는 작품인데도 굉장히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1. 세 가닥의 머리카락 - 구로자와 루이코
등에 수개의 자상과 이마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움푹 파인 시체가 강에서 발견된다. 이에 두 사복형사(탐정)각자의 방법으로 수사를 펼치고, 젊은 탐정 오토모는 시신이 쥐고 있던 세 가닥의 머리카락에 주목하고 자신의 집에서 두문불출 하며 머리카락을 조사한다. 수 일 후....오토모는 머리카락을 범인을 특정하는데....
-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오토모의 재치....[명탐정 김전일]이 떠오르는...이미 최초의 추리소설부터 [김전일]식 추리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사건이나 전개는 올드하지만 출간년도를 본다면 도저히 올드하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었다.
2. 법정의 미인 - 구로자와 루이코 (원작 '프레드릭 존 풀거스'의 [떳떳하지 못한 나날])
런던에서 개인병원 의사로 있는 다쿠조는 미모의 여성 리파에게 반하고 대쉬한다. 하지만 리파에겐 이미 결혼을 약속한 정인이 있었고, 다쿠조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어느날 다쿠조 앞에 나타난 리파는 자신과 결혼한 히라노리가 사실은 본처가 있음에도 자신과 사기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폭설이 내리던 어느 겨울 히라노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말한다. 다쿠조는 리파를 집에 들여놓고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가니 정말로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남성의 시신이 길가에 방치되 있는게 아닌가. 이에 시신을 제방 홈으로 굴러 떨어트리고 권총은 근처에 던져버린뒤 리파와 함께 국외로 도주하려 한다. 운좋게 폭설로 시신위에 눈이 쌓여 도주의 시간을 번 다쿠조와 리파는 과연 무사히 외국으로 피신할 수 있을것인가.....
- 외국의 작품을 번안했다는데, 배경만 런던일뿐...거의 일본작품을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여성의 정절사상과 의존적이고 꽉막힌 사고방식 등등...시대상을 반영하는 답답함의 극치를 보이는 작품
3. 유령 - 구로자와 루이코 (역시 번안 소설이지만 원작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런던의 가로메다 마을에서 패기 없는 남자 나쓰오와 혼기가 꽉찬 오시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다. 형에게 얼마의 돈을 받은 나쓰오는 그돈을 밑천삼아 미국에서 성공하여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오시오와 가로메다를 떠나고...수 년뒤 나쓰오 혼자 가로메다로 돌아온다. 오시오의 소식을 묻는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병을 얻어 혼자 오게 됐다는 말을전한 나쓰오는 가로메다에 이사온 변호사의 동생 오토시와 눈이 맞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토시와 붙어 산다. 얼마뒤 미국에서는 오시오가 병사했다는 통지가 날아오고, 바로 일주일도 안되 나쓰오는 오토시와 혼인을 올린다. 하지만 그뒤부터 점차 쇠약해져가는 나쓰오는 결국 병환으로 사망하고...장례식을 치른뒤부터 마을에는 나쓰오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는데....
- 런던에 가로메다라는 마을이 있는지 부터 번안의 향기를 풍긴다. 역시 배경만 런던일뿐 일본 소설과 다를바 없는 작품이었다. 뻔한 권선징악적 결말을 제외하면 꽤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다.
4. 검은 고양이 - 아에바 고손 (모두가 아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5. 모르그 가의 살인 - 아에바 고손 (역시 모두가 아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6. 탐정 유켄 - 모리타 시켄 (원작 '빅토르 위고'의 [내가 본 것들])
2,3,4,5번은 '호걸역' 작품이고, 6번은 '주밀역'작품이다. 미국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고...그걸 한국어로 재번역 하였으니...이건 악명높은 중역본이 아닌가?!!!! 싶지만, 80~90년대 나온 질떨어지는 중역본과는 비교하기에도 미안할정도로 질적인 차이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 하다. 분명 올드하긴 한데, 익히 알고 있는 명작들을 일본식으로 다시 읽기 같은 색다른 느낌의 클래식한 작품집이었다. 이 단편집을 읽고 조금 검색해보니 이 작품의 다음 시리즈인 일본 추리 소설 시리즈 2편 [단발머리 소녀]가 출간되었더라. 기회되는대로 2편도 감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