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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2월
평점 :

결혼상대는추첨으로 (2019년 초판)
저자 - 가키야 미우
역자 - 이소담
출판사 - 지금이책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02p
추첨맞선결혼법 : 대상은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전적과 자녀와 전과가 없는 미혼 남녀로 본인의 나이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세 범위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2회까지는 거절할 수 있고, 3회까지 모두 거절할 경우 테러박멸대에서 2년간 복무해야 한다.
70세 노인은 죽어야만 하는 충격적 법안이 통과된 극단적 설정으로 3대가 함께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던 전작 [70세 사망법안, 가결]의 작가 '가키야 미우'의 신작장편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독자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법안은 추첨맞선결혼법...점차 결혼연령이 늦어지면서 저출산, 고령화 같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던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체 미혼남녀에게 강제 맞선을 보게하고...혼기 꽉찬 청춘남녀들은 집단멘붕에 빠져든다...-_-;; 일단 작가의 작품을 두 편째 읽다보니 뭔가 작가의 스타일이 보이는것 같다. 노령화, 저출산, 만혼화 같은 일본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문제에 말도안되는 극단적이고 강제적인 해결법을 실제상황으로 상정하고 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받는 일반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자연스럽게 예민한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궁리하게 만든다.
어쨌던, 이번엔 강제맞선이다. 인권, 프라이버시...이따위거 다 제쳐두고...직업, 성향, 재산정도 이따위거 다 상관없이 오로지 추첨기를 돌려 맞선상대를 정해주고 데이트를 강제하는 사회...-_- 더군다나 3번 퇴짜를 놓을 시 2년간의 강제입대라는 초강수 패널티!!!....이 추첨맞선결혼법의 대상이 된 4명의 남녀가 겪게되는 기구한 사연이 펼쳐진다....
[요시미]
알콜의존증에 툭하면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던 아빠가 죽은지 몇 년이 되지 않았다. 아빠의 억압에서 벗어난 엄마는 생각과 달리 딸인 요시미에게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간호사로 근무하는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참견하려고 한다. 지루한 시골생활에 엄마의 간섭에 지친 요시미는 자연스레 결혼법을 떠올리고 시골과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무리하여 도쿄에 단칸방을 얻고 이직한다. 숨막히던 그녀에게 결혼법은 숨통을 틔어줄 산소호흡기 같은 법인 것이다.....
[나나]
빼어난 미모로 남자위를 군림하던 나나는 얼마전 오래사귄 남친 란보에게 이별통보를 받는다. 잘생기고 부유한집의 아들인 란보와 결혼을 꿈꾸던 나나에겐 충격이었고, 이유를 묻는 나나에게 란보는 월급을 버는 족족 해외여행과 쇼핑으로 전부 탕진하고, 허영심에 가득차 있으며, 엄마없인 아무일도 할 수 없는 마마걸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제 결혼법 시행은 얼마 남지 않았고, 자존심때문에 맞선을 통해 남자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나는 혼란스럽기만 한데....
[란보]
유명교수 아빠와 기모노 장인 엄마를 둔 부유하고 잘생긴 란보는 출신성분과는 다르게 검소한 생활을 추구한다. 하지만 허영심만 가득했던 여자친구 나나에게 실망하여 이별을 통보하고, 결혼법으로 맞선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의 맞선 후....이번에 자리에 나온 맞선 상대는 예쁘지는 않지만 소박한 차림에 홀로 도쿄에서 간호사를 하고 있는 생활력 강한 여성이라 호감이 간다. 그녀는 자신을 요시미라고 소개하는데....
[다쓰히코]
27살의 다쓰히코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여자와 사귀어보지 못한 모태솔로이다. 언제나 자신감이 부족한 그는 이번 말도안되는 결혼법이 자신의 솔로생활을 청산시켜줄 일종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기다리던 맞선일은 다가오고....모처럼 백화점에서 구매한 쌔끈한 정장을 빼입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청난 미모의 아가씨가 다쓰히코의 맞은편에 자리잡고...처음 겪는 상황에 가슴이 방망이질치고 정신을 혼미해진다. 인사를하고 그가 예약한 식당으로 에스코트 하려는 찰나......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복통을 호소하며 자리를 피하는 여성...-_-;;;; 그렇게 다쓰히코의 첫맞선날은 끝이 나는데....
음...이걸 민감한 사회문제를 다루는 SF라고 봐야할지...아니면 가상연애소설이라고 봐야할지 모르겠다...-_-;; 하지만 독특한 작품임엔 분명하다.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지금의 세상에서는 실현가능성이 1도 없는 다소 무리하고 허황된 설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웃픈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건, 정말로 이 무리한 초강수를 둘만큼 현실의 벽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매해 취업문은 바늘구멍보다 좁아지고, 미친듯이 스펙을 쌓고 수백번의 이력서와 면접을 거쳐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에 들어서면 어느새 서른에 가까운 나이...그때부터 학자금 대출을 갚다보면 서른을 넘기고...모아둔 돈은 없고....집도절도 없이 어느누가 결혼을 할 수 있겠는가...-_-;;; 이러니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출산도 포기해버리지...이래놓고 출산율 낮다고 매일 떠들어대는건 대체 어쩌라는 말인가..-_-;;; 오죽하면 이런 작품이 나왔겠는가 싶어 우울해진다.
더럽게 암울한 현실보단 차라리 작품속 4명의 남녀가 결혼법을 통해 방황을 그치고 자신의 신념으로 인생의 발걸음을 내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것이 좀더 생산적인건지도 모르겠다...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콧대 높은 여성이 수십번의 맞선으로 자신의 껍데기 같던 삶을 되돌아보고, 모태솔로였던 남성이 수차례 맞선을 통해 경직된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매력을 찾게되는 과정들이 남의 맞선을 지켜보는 TV프로그램 [짝]을 보는듯한 재미를 주는 동시에 극단적이지만 참신한 설정과 현실의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비판적 사고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거운듯 하면서도 가볍고, 가벼운듯 하면서도 무겁다. 참고로 모태솔로 다쓰히코의 줄기찬 퇴짜 에피소드는 웃픔 그 자체라서 본인은 절대 모솔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하게 만들더라... ㅠ_ㅠ
강제적 맞선을 통해 결혼해야 하는 세상...누군가에겐 디스토피아일 것이요, 모태솔로들에겐 유토피아일 것인가?....
유독 과장적인 설정을 선호하는 일본과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원작을 바탕으로 TV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허무맹랑한 법을 들고나와 우리의 폐부를 찌를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