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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9년 2월
평점 :
노아 (2019년 초판)
저자 - 제바스티안 피체크
역자 - 한효정
출판사 - 단숨
정가 - 15800원
페이지 - 619p
인간은 기생충과 같은 존재야. 자신의 숙주와 함께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빨아 먹어버리지.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야....
배부른 사람들의 한끼의 육식을 위해 12억 8천마리의 소들이 전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곡물의 70%를 소를 비롯한 가축이 먹어치우고 있다. 매일 가축들이 마실 물을 위해 수천톤의 물이 소모되고 있다. 12억 8천마리의 가축들이 사료를 먹고 뀌는 방귀 때문에 대기의 메탄가스량이 늘어나는 웃지못할 상황...반면 지구 반대편에서는 1분에 120명의 아이들이 먹지못해 기아로 사망하고 있고, 마실물을 구하기 위해 수 키로미터를 걸어서야 겨우 구정물을 퍼마실 수 있다. 이런 극단적 대비 속에서도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 현재 70억명의 인구가 지구위에서 바글거리고 있고 매 1분마다 156명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석유자원은 이미 고갈상태이고 이상태로 지구의 자원을 모두 소모하고 난뒤엔 남은것은 멸망뿐....
치명적인 전염성과 높은 치사율을 자랑하는 마닐라 독감이 유행단계에 접어들면서 전세계는 방역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코피가 터지며 시작되는 증세는 이후 고열과 기침을 동반하며 수시간 내에 피를 뿜으며 사망에 이르게 만든다. 환자의 기침속 타액을 통해 쉽게 전염되는 강한 전파성에 인류는 공포에 떨고... 급기야 필리핀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공항폐쇄와 의료시설이 열악한 슬럼가의 빈민들을 격리조치 하기에 이른다.
한편 독일 베를린,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남자는 정신을 차린 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팔목에 거칠게 새겨진 '노아'라는 문신을 이름삼아 혼수상태에서 자신을 돌봐준 노숙자 오스카와 함께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해 보호소를 찾아 헤멘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속 천문학적인 가치가 매겨진 그림 한장의 화가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게되고, 그 그림을 통해 잊혀져 있던 기억의 한 단편을 떠올린 노아는 자신이 그 그림을 그린 장본인이라 생각하고 광고속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뉴욕의 잡지사 기자 셀린은 그림의 창작자가 노아임을 확신하고 급히 베를린의 고급 호텔을 예약하여 그곳에서 자신이 도착할때까지 노아가 머물수있도록 조치해준다. 그렇게 노아와 오스카는 호텔에 도착하고, 냄새나는 몸을 씻고 있던 노아에게 기다리던 셀린은 오지 않고 소음기를 부착한 암살용 총을 든 남자가 조용히 문을 여는데...노아와 의문의 킬러와의 대치로 잊혀진 기억과는 달리 몸에 각인되 있던 생존의 본능이 깨어나며 서서히 각성하는 노아...과연 그의 정체는 누구인가?...
치명적 전염병의 창궐...의문의 총상... 기억상실증... 노아의 목숨을 노리는 일급 킬러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천부적 살인센스...-_- 그리고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이 모이고...70억 인류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음모의 한복판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도입부의 설정과 전개되는 과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메던 기억상실 일급요원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던것 같다. 분명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데, 안개속을 헤메이듯 짤막한 기억의 파편들로 감질나게 만드는...그러면서도 시원한 액션과 기억상실을 통해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복합적 스토리는 강렬한 쾌감과 스릴을 선사한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현재 인류는 이미 포화상태이고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중이다. 개인으로서는 도저히 손조차 델 수 없는 곪아 터지기 직전의 문제를 국가던...미치광이 과학자건...어둠의 비밀결사던...누군가는 개입해야 하는것 아닐까?...작품을 통해 그런 의문이 들때쯤 작가는 이 피할 수 없는 전지구적 크라이시스에 전염병과 음모론을 살포시 얹어 놓는다. 우리는 이미 에볼라와 사스를 통해 세계의 허술한 방역정책과 마지막 방어선이 뚫렸을때 축적된 시민들의 공포가 어떻게 대공황으로 이어지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은연중에 대중들의 뇌리엔 전염병의 공포가 각인되 있는 것이다. 이 공포에 실존하는 서방의 극소수 권력 엘리트들로 구성된 국제적 비밀단체 빌더버그 클럽이 모든 사건의 배후로 등장하면서 모든 일들이 치밀하게 짜여진 판이었음을 가늠케 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단체의 궁극적 목표를 통해 극단적이지만 인류 생존의 대안을 제시한다. 사실 [놀라운 TV 서프라이즈]에나 언급되던 '일루미나티', '로스차일드', '바티칸 클럽'....그리고 '빌더버그 클럽'까지...세계경제와 정치를 좌우하는 거대한 규모의 음모론이 막 현실적으로 와닿진 않지만 인구과잉, 기아, 환경오염, 빈부격차 같은 현실적 사회문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내놓는 음모론은 더이상 음모가 아닌 인류 공존공영의 최후의 수단으로 다가오면서 그들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에 힘을 싣는다.
파멸을 향한 인류 종말의 시나리오...지금 인류의 현주소는....
사실 설정 자체는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뤄지던 익숙한 설정이다. 하다못해 [어벤져스]에서 손가락을 튕겨 전 우주의 절반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던 타노스의 의도와도 부합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연...지구...더 나아가 전 우주의 암덩어리 같은 존재..이 인간의 증식에 브레이크를 걸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배후의 조종자, 그리고 인류의 멸망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노아...그리고 밝혀지는 노아의 진짜 의미...익숙한 설정을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건 거대한 음모론 속에 음모론 그리고 또 그속에 음모론이 이어지면서 정신없이 내려치는 반전의 묘미가 작품 전체를 감싸고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스케일의 음모론이 허황되기 보다 진정한 공포로 다가오는건 실제로 인류가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전세계를 공포에 빠트린 전염병으로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의 재미를, 킬러와 킬러, 정보부간의 긴박하고 숨막히는 첩보전과 혈투를 통해 추리 스릴러의 진수를, 세계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 빌더버그 클럽을 통해 음모론의 묘미를 그리고 현존하는 사회문제를 가차없이 파고드는 날카로운 사회비판까지...이 모든 장르적 요소들을 총망라 하면서도 결코 어설프거나 산만하지 않고, 무거운 주제와 반대로 빠른 속도감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장르종합선물세트이다. 그동안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던 환경문제에 경종을 가하려는 작가의 숨은의도가 있는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이있는 메시지와 거침없는 비판의 칼날을 휘두르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작품이었다. 육백여 페이지에 걸친 작가의 촘촘한 구성과 필력에 진심 놀랐다. 작가 이름 기억해 뒀다가 꼭꼭 챙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