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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4 -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9년 5월
평점 :

경섬탐정이상 4 :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 (2019년 초판)
저자 - 김재희
출판사 - 시공사
정가 - 14300원
페이지 - 431p
경성바닥을 주름잡는 모던보이들의 네번째 탐정 일지
비정상적 집착과 사랑을 소재로한 비극적 사랑이야기 [표정없는남자]로 처음 만난 '김재희'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실존인물인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 '박태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경성에 위치한 제비 다방을 거점으로 문학가와 탐정업을 병행하는 독특한 상상을 바탕으로 탄생한 [경성 탐정 이상]시리즈가 어느덧 네번째 시리즈로 돌아온 것이다. 서스펜더를 차고 넥타이를 맨 이상과 흰색 셔츠를 입은 구보가 함께 찍은 흑백사진을 모티브로 [경성 탐정 이상]이 출간되었고, 개화기 직후 일본을 통해 밀려오는 서양 문물로 인하여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시대상을 작품에 녹여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작가에게 2012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안겨준다. 그리고 어느덧 네번째 시리즈가 세상에 나왔다. 차근차근 시리즈를 거듭해 오는동안 이야기는 더욱 탄탄해지고, 이상과 구보 콤비의 합은 더욱 견고해 졌다. 한국적 팩션의 대가가 그려낸 역사추리소설 [경성 탐정 이상 4 :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이다.
망자가 예약했던 양복을 헐값에 사고 악몽에 시달리는 구보, 군산 히로스 가옥의 지주가 잃어버린 병풍, 산장에서의 만난 사람들이 구술하는 릴레이 괴담, 고급기생 연쇄살인사건 등등등...경계없는 다양한 소재들과 기상천외한 사건이 여덟가지 이야기속에 가득 차있다. 작가에게 일제치하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경성 탐정이란 무대의 족쇄라기 보단 자유로운 상상의 날개로 작용하나 보다. 실존 장소에서 벌어지는 가공의 사건을 실존 인물이 수사하고, 실존 역사를 통해 실마리를 잡고 해결한다. 리얼과 픽션의 절묘한 조화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그 현실기반의 무게감이 독자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작 [표정없는남자]를 접한 이후 작가의 SNS를 팔로우 했는데, 그때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SNS 사진속 옛장소들이 이 작품속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작품에 대한 열정과 최대한 팩트에 입각하려는 프로페셔널한 작가의식이 빛을 발한다.
일화. 주인 없는 양복
양복점에 걸려있던 이태리 200수의 실크 양복을 헐값에 구매한 구보는 양복을 가져온 직후 부터 악몽에 시달린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상과 구보는 고가양복에 대해 추적하고, 이 양복의 주인이 영화사 대표였으며 권총 오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 현세에 원한이 사무쳤기에 구보의 꿈에 나타나는 거겠지...-_- 대표의 죽음에 의심을 느낀 상과 구보는 사고사 여부에 대해 조사하고...생각지 못한 진실과 마주한다. 싸다고 덜컥 집어오면 귀신들린 물건을 집어올 수도 있다는거....
이화. 군산의 보물창고
군산 히로스 가옥에 거주하는 미곡상 갑부 선경묘는 구보와 상에게 보물창고에 숨겨놓은 고가의 병풍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몇일전 투전판에서 병풍을 걸고 도박을 해서 졌지만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선경묘는 보물창고에서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자신 뒤에 있던 병풍이 사라져있었다는 것. 이에 상과 구보는 투전판을 돌며 병풍에 대해 정보를 케려하는데....
- 단순한 미술품 도난사건인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생각지도 못한 기괴하고 추악한 변태적 성욕이 얽혀 있더라는....이 단편의 배경이 되는 히로스 가옥은 나도 군산 여행을 가서 직접 구경했었다. 이 낡은 가옥으로 이런 기괴한 이야기가 탄생하다니 ㅎㅎ

[요기가 군산 히로스 가옥이다]
삼화. 고래의 꿈
'구보 선생. 이상 선생 살려주시오. 나는 배홍동이란 사람인데 나를 구하고 싶으면 종로의 열대 수족관을 찾아오시오.' 우연히 들른 우편국 화장실에서 자신들을 지목한 낙서를 본 이상과 구보는 수족관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배홍동의 딸을 만나 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낙서를 지우는 우편국의 낙서는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에 쓰인 것이니...이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위해 상과 구보는 배홍동이 자주 찾던 지인이 있는 시골로 향하는데....
- 미스터리한 실종, 사이비 오컬트 교단, 이상 성욕....소재들은 취향이었으나 죄를 짓고 그 죄책감을 발설하고 싶은 욕망?...그 전후관계의 진상은 나로선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부디 드넓은 바다에서 고래의 꿈을 꾸길....
사화. 백운산장의 괴담
상의 제안으로 느닷없이 백운상을 오른 상과 구보는 백운산장에서 하룻밤을 기거하고, 각자의 이유로 산장에 함께 머물던 부보상, 학생, 사투리 사내, 산장주인은 야심한 밤 각자가 아는 괴담을 하나씩 이야기하는데.....
- 스포일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단편을 읽으면서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 첫번째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행봉위!!!! 그들이 이야기하는 괴담도 재미있고 짜여진 판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오화. 조선미인보감 살인사건
명월관의 에이스 기생 두 명이 인력거에서 내린 직후 목졸라 살해당하고, 다른 한명도 살해당할뻔한 위기에서 가까스로 도망친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기위해 상과 구보는 평소 기생들을 스토킹 하는 사람이 없는지 조사하고, 살아남은 기생을 스토킹 하던 청년이 있었음을 알아낸다. 그길로 상과 구보는 스토커의 집을 찾아가는데....
- 이 단편의 팩트 소재는 [조선미인보감]이다. 일제강점시기 1918년에 실제로 출간된 무려 611명의 조선 예기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수록된 기생보감이라니!!! -_-;;; 허허...당시 출간의도는 모르겠고 그냥 지금의 내 상식선으로 생각해 볼땐 약간은 외설적 아스트랄한 책이랄까...머...그건 그렇다 치고...이 단편에서 매력적인 여성 소설가 탐정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다음 다섯 번째 시리즈에 출연을 예약하는듯 하고, 법정재판, 이상적 집착, 포비아 등등 다양한 재미와 반전을 숨겨놓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론 이 단편집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육화 카프 작가의 실종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도주중이던 작가가 경성 차이나타운 청식당에서 실종되고, 사라진 작가를 찾기 위해 상과 구보는 이 청식당을 찾아가는데....
- 아이들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국내던 서양이던 아이들이 부르던 노랫말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청식당의 기구한 사연역시 [놀라운 TV 서프라이즈]에서 접했던 사연이었기 때문이다. (이것 마저도 팩션의 반영인가?!!! ㄷㄷㄷ)
칠화.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
앤티크 접시를 판매하는 사교구락부에서 열린 귀부인 티타임에서 한 노부인이 떡을 먹다 질식해 사망한다. 상과 구보는 이 질식사가 부인들의 파벌에 의한 의도적 사고인지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부인들의 모임에 나가 한명 한명과 대면하는데....
- 허영에 가득찬 귀부인들의 민낯이 가차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당시 돈으로 양반을 사고 갑자기 부자가 된 상인들이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 출신성분을 감추기 위해 외국문물에 돈을 퍼붓는 가식과 허영이 깊게 베어있다. 머...지금이야 다르겠냐만은...불란서 향수로 가려본들 두 손에 깊게 베인 거름냄세가 쉽게 가시겠는가...내면의 성숙을 외면한채 외면만을 가꾸는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 작품이다. 작품속 사망사건의 진실 역시 얼마전 9시 뉴스에서 봤던 기사를 떠올리게 하니...이 모든것이 팩션으로 귀결되는 팩션 마스터 작가의 빅픽처구나!....
팔화. 극장 주임변사의 죽음
단성사에서 변사를 보던 주임변사가 마약을 남용한채 밧줄을 목에 묶고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이 자살을 조사하게 된 상과 구보는 본인의 성별과 반대되는 극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만나며 사건에 근접하는데.....
- 딱 보면서 영화 [패왕별희]가 생각나더라. 흠...이것도 스포성인가?...-_-;;;
경성에서 빠지라면 섭한 세련된 모던보이들의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한 열혈 탐정기였다. 극도로 암울한 일제강점기이자 문인으로선 사회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어 오로지 두문불출 글밖에 쓸 수 없었던 소외된 예술가였지만 이렇게 작품으로나마 순사도 해결하지 못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적 암울함을 상쇄하는 활기찬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게 좋았다. 100년전 과거의 시대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현재의 이슈들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리짝 낡은 옛날옛적 이야기가 아닌 현대의 감각으로 되살아난 경성이 익숙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오는건 바로 그 조화로운 신구의 조합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