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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가 공기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존재가공기 (2019년 초판)
저자 - 나카타 에이이치(오츠이치)
역자 - 주자덕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74p
히어로는 멀리 있는게 아냐
일일이 직접 원서를 읽어보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의 계약을 따낸뒤 직접 번역 편집까지 도맡아 출간하는 궁극의 장르전문 1인 출판사 아프로스미디어에서 전작 [기억 파단자]에 이어 또한번 대박 신작을 출간하였다. 초능력자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사랑?을 다룬 이 단편집은 알만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작가 '오츠이치'의 국내에서 처음 초역되는 단편집이다. 작가는 팬네임 '오츠이치' 외에도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라는 별도의 팬네임으로 작품을 내는데, 이중 '나카타 에이이치'로 발표하는 작품은 주로 잔잔하고 따뜻한 감성의 연애소설을 내놓는 팬네임으로 활용한다. 사실 팬네임을 달리하고 장르를 달리 해도 어쨌던 '오츠이치'는 '오츠이치'이니, 사회파 제왕 '히가시노 게이고'가 수십편의 작품을 써내도 작품사이의 편중은 있을지언정 기본이상은 한다는 공식이 정설이돼었듯 '오츠이치'의 작품들, 특히 그의 단편들 역시 '게이고'와 마찬가지로 기본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작가의 단편집을 전부 읽어보고 하는 말이자만 개인적으로 작가의 장편보다 정말로 '오츠이치'의 진가를 발휘하는건 단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흔하지 않은 독특한 발상과 뚜렷한 기승전결이 수십페이지 안에서 춤을 춘달까...그 필력의 댄스는 이 단편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아프로스미디어의 안목과 '오쓰이치'의 필력이 무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단편집 [나는 존재가 공기]이다.
인비져블, 텔레포테이션, 파이로키네시스, 텔레키네시스... 줄줄이 등장하는 초능력들을 보며 마블 슈퍼 히어로? 혹은 X맨의 뮤턴트들의 능력인가 싶지만 막상 까보면 우리와 다를바 없는 한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능력자들이다.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 직장, 우리 옆집....에서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고 있는 초능력자들이 정말로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랑을 하고있을까?...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여섯 편의 작품을 통해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이들의 사랑역시 조금 독특하지만 아름답다는걸 깨닫게 된다.
1. 소년 점퍼
너무나 못생긴 외모때문에 등교 거부중인 히키코모리 소년은 어느날 아주 우연히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떠올리며 눈뜬 순간 화장실로 점프하는 텔레포테이션 능력을 갖게된다. -_-;;; 그렇게 점프 능력으로 미국과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던 히키코모리 소년은 우연히 전차에 치일뻔한 같은학교 선배를 구하게되고, 그 선배에게 능력을 들키고 마는데....
- 전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히키코모리라니....-_-;;;; 이 역설적 설정이 유쾌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텔레포테이션 능력은 작품 에서 직접 영화 [점프]를 언급하며 동일한 설정의 능력제약을 두고 있어 결말의 소년의 노력을 더욱 부각시키는것 같다. 엄청난 능력이 있음에도 외모의 장벽은 높기만 하구나...ㅠ_ㅠ
2. 나는 존재가 공기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를 피하기 위해 공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버리는 능력을 갖게된 소녀는 이 무존재감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가 짝사랑하는 선배의 정보를 얻기위해 스토킹에 가까운 밀착관찰을 하게된다. 학교에서부터 선배의 집까지 찾아간 소녀는 선배의 집에서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는데......
-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존재감을 지우면 알아볼 수 없는 거의 투명인간급의 막강한 능력설정이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하게 느껴졌달까...-_-;;;
3. 사랑의 교차점
손을 꼭 잡고 걷지만 인파속을 지나기만 하면 생판 처음보는 사람의 손을 잡게 되는 커플...이 커플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끝까지 손을 맞잡고 있다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는 교차로 앞에선 커플은 서로 손을 꽉 쥐는데.......
- 쉬어가는 코너 같은 초단편인데,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좋은 작품이란거....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몰려와도...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면....함께 이겨낼 수 있음을....
4. 스몰 라이트 어드벤처
잘못 배달된 택배상자를 연 엄마는 속에서 이상한 손전등을 꺼낸다. 소년은 호기심에 건전지를 넣고 손전등을 켠뒤 엄마를 비추고, 환하게 빛을 받은 직후 사라져버린 엄마....당황한 소년은 손전등을 아무렇게나 두고 엄마를 찾으려 하지만 전등의 빛을 받은 소년은 순식간에 10cm 이하로 줄어드는데.....
- 역시 쉬어가는 코너 같은 단편이다. 애초부터 [도라에몽]의 작아지는 스몰 라이트 손전등을 염두에두고 쓴 작품으로 작아진 소년이 애완견을 타고 종횡무진 모험을 펼치는 만화같은 이야기이다.
5. 파이어 스타터 유카와 씨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 오래된 아파트를 관리하며 힘겹게 사는 청년은 입주민들가 함께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비어있던 201호에 새로 호리호리한 여성이 입주하고, 여성이 입주하고부터 고장난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부탄이 떨어졌음에도 달궈진 후라이팬으로 요리가 가능한가 하면, 난방을 키지 않았음에도 방에 온기가 가득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 '스티븐 킹'의 [저주받은 천사]속 파이어 스타터인 주인공 소녀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신기한 파이로키네시스의 능력과 범죄조직, 화끈한 총격전, 잔잔한 감정의 교류, 반전 등등등 이 단편집중 가장 흥미있게 읽은 작품인듯.
6. 사이킥 인생
대대로 자신의 실제 손 외에 염력손의 능력을 물려받은 여고생은 한번씩 내뱉는 엉뚱한 말때문에 4차원 소녀로 불리게된다.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인상을 받은 소녀는 친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영매라고 말하고 염력손으로 이상현상을 일으켜 반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데.....
- 4차원 소녀가 아니라 딱 4춘기 소녀의 까탈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초능력자의 히스테리는 이정도 급이라는걸 보여주면서, 영매사라는 거짓말이 죽은 동생을 가진 친구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거짓말로 그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등교를 거부하는 히키코모리, 존재감 제로인 소녀, 독특한 사고를 4차원 취급당하여 무시당하는 소녀 등등 작품속 특별한 능력을 갖게되는 주인공들은 사실 어느 그룹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외된부류 소위 아싸란걸 알 수 있다. 사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초능력을 선물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주변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통해 자연스레 그룹에 어울리게되는 잔잔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과 더불어 다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공기처럼 가볍게 즐기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랄까. 역시 '오츠이치'!! 아니...'나카타 에이이치'!!! 작품을 읽으며 어느새 슬그머니 미소 짓게되는 편안한 힐링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