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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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변화 (2019년 초판)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역자 - 권일영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410p



나를 나로 규정짓는 조건



사회파 제왕 '히가시노 게이고'가 또 돌아왔다. 안그래도 내는 작품의 속도도 빠르고 출간된 작품도 많은데 2005년 [변신]으로 출간 후 14년만에 출판사를 달리하여 새로운 이름,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되니, '게이고'월드는 끝도 없이 확장되는구나 -_- 어쨌던, 1994년작으로 15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현재의 미스터리 트렌드와 비교하여 위화감이 없고 오히려 '게이고'만의 서스펜스가 폭발하고 있으니 실로 대단한 작가임엔 분명한듯...



부동산에 들이닥친 권충강도는 사람들을 위협하며 돈가방에 돈을 담으라고 종용한다. 우연히 강도사건에 휘말린 청년 나루세는 가만있으라는 강도의 말을 어기고 도망치려는 어린 소녀를 목격한다. 강도 역시 소녀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권총의 총구가 소녀를 향하는 순간....몸을 날려 소녀를 보호한 나루세....탕!.....정신을 차린 나루세는 자신이 병원에 있음을 깨닫는다. 오랜시간 병원에서 의사들의 관심속에 재활치료를 하던 나루세는 자신이 강도가 쏜 총에 머리를 얻어맞아 죽을뻔했고, 가까스로 때마침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청년의 뇌를 이식받아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일부분을 타인의 뇌로 이식받은 나루세의 수술 후 경과는 놀랍도록 좋아졌고, 마침내 퇴원하여 집에 돌아가게 된다. 사고전부터 교재해오던 메구미와의 감격스러운 재회이후 언제나 그렇듯 메구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던 나루세는 전과는 다른 메구미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는데......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이번 작품에서 '게이고'가 던지는 질문은 나를 나로 규정짓는 조건은 무엇인가? 라는 정체성의 탐구이다. 사실 나온지도 오래된 작품이거니와 출판사에서 공개한 플롯만으로도 작품 전반의 줄거리가 충분히 파악되리라. 장르 영화, 소설 등등 매체에서 수없이 사용되었던 장기이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점차 귓가에 들리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를 듣고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당시 작품을 읽고 사람의 영혼이 깃든 곳이 심장이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 생각했었던것 같다. 하물며 심장만 바꿔도 영혼이 바뀌느니 어쩌느니 하는데 사고와 기억과 논리를 관장하는 뇌가 타인의 뇌로 바뀐다니....-_-;;; 외면만 그대로면 뭣하나 내면은 쌩판 남인것을....이건 다른이의 혼령이 씌인 빙의와 다름 없는것 아닌가...



소심하고 평화주의자였던 나루세가 수술 이후 점차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광폭해지고  분노조절장애로 극단적 행동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뇌를 제공한 도너의 정체와 나루세가 겪게 되는 혼란이 불을보듯 뻔하게 예상되는데 이런 진부하다면 진부한 설정임에도 시시각각 더해가는 서스펜스와 페이지를 순삭케 만드는 극강의 가독성은 오히려 '게이고'의 여타 작품들보다 뛰어나니..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인지 모르겠다만, 점차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자의식과 강렬한 폭력성으로 자신을 독점하는 타의식의 대립과 그사이에 휘둘리는 나루세의 혼란스러운 심리가 휘몰아치면서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스토리, 반전, 결말이 전부 예상되면서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이런 경험은 또 처음인듯....



내 머리속을 점거하고 있는 의식의 충동에 의한 행동은 나의 책임인가? 실체 없는 타인의 책임인가?...실제로 실현가능한 이야기인진 모르겠으나 날로 발전해가는 의학기술로 볼때 언젠가는 논란이 될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24인의 인격을 가진 '빌리 밀리건'이 무죄를 선고 받았듯 나루세의 경우도 만약 법정에 서게된다면 무죄를 선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생존을 위한 마지막 방편이었겠지만 누군가가 내머리속을 휘저으며 서서히 주도권을 쥐어간다고 생각했을땐 너무나 불쾌하고 몸서리처지게 싫을것 같다. 이제 14번째로 읽는 '게이고'의 작품인데, 아직도 읽지 않은 수십편의 작품이 남아있으니...ㅎㅎ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덧 - 비슷한 설정으로 인간의 뇌하수체와 생식기를 개에게 이식한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린 러시아 풍자SF '미하일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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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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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2019년 초판)_보리만화방 9

그림 - 이종철

출판사 - 보리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83p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까대라!!



가대기 :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


하루 이틀...아니 반나절 작업만으로도 두손 두발 다 들고 도망쳐버리는 극한의 육체노동. 택배 상하차 알바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만화가 출간되었다. 본인은 택배 상하차 알바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한창 혈기왕성한 20대때 용돈벌이나 할겸 작은 접이식 상이나 CD진열장등을 창고에 내리고 싣는 까대기 알바를 경험한 적이 있다. 40톤짜리 컨테이너안에 빽빽하게 가득 실린 10~20키로짜리 박스들을 까대고 또 창고에 있던 박스들을 실어나르다 보면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팔근육은 찢어질듯 비명을 질러대며 어디라도 당장 도망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셈솟지만,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쉴틈없이 레일을 타고 쏟아지는 박스더미는 사고 자체를 마비시키고 노동하는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ㅠ_ㅠ 결국 이틀만에 사장의 욕을 들어처먹으며 그만뒀는데...-_-;;; 웃긴건 군대에 입대하고 1종 보급병 보직을 받고 한달에 한번씩 4.5톤 트럭에 가득실은 수백가마니의 쌀가마니 까대기를 입소한 그날부터 제대까지 했다는거....허허....꽃같은 청춘에 짙게 드리운 까대기의 그림자여...머...혈기왕성한 청춘시절에 이런저런 이유로 노가다나 까대기 한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요즘은 없을지도 모르려나...;;; 어쨌던...극악의 상하차는 아니지만 나름 까대기 경험자로 이 만화의 출간소식을 접하면서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십수년전의 꿈에 부풀어 있던 청춘시절이 떠오를것 같기도 한 마음에 책을 펴들었다. 



포항에서 태어난 작가는 (배고픈)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성인이 되어 훌쩍 짐싸들고 서울로 향한다. 얼마안되는 가진돈으로 낡디 낡은 셋방을 구하고 만화를 그리려 하지만 다달이 다가오는 월세와 녹록치 않은 생활비에 쪼들리고, 결국 아침일찍 시작하여 오전중에 끝나는 택배 상하차 알바를 구하고 오후에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극한의 까대기 육체노동을 경험하고, (본인과는 달리) 때려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고 하루 하루 까대기를 한지 어언 6년....거쳐간 택배회사가 다섯 군데에 이를 동안 자신이 직접 경험한 땀흘린 노동의 가치와 냉혹하고 냉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택배업계의 실상 그리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족을 위해 '오늘도 참는다'를 되뇌이며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택배기사들과 트럭 운전사들의 모습을 그려내리라 마음먹고 그렇게 이 [까대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옥천 버뮤다, 명절 물량 폭탄, 김장철 절인배추 상자들, 조그만 충격에도 뻥 터져버리는 무시무시한 김장김치 폭탄, 40키로짜리 쌀가마니 무더기, 비올땐 젖을까봐 불안, 눈오면 길이 미끄러워 불안, 촌각을 다투는 배달 시간....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 택배사의 물량 독점으로 기사에게 배정되는 택배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한건당 수수료는 7~8백원 가량....그나마도 배송중 파손을 택배기사가 배상하고 고객의 크레임이 늘면 벌점까지 받게되는 불리하고 열악한 근로조건....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하고 아프다고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이유는 뭐다?....그게 유일한 돈줄이니까...ㅠ_ㅠ 그저 젊었던 청춘시절을 회상해 보고자 집어든 책인데 의도와는 달리 여기에서도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노동의 현실이 날카롭게 훅 치고들어와 폐부를 후벼판다. 



택배 상하차, 배달이 정말로 힘들다는건 얼핏 알고 있었지만 만화에서 펼쳐지는 실상은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한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꿈을 위해 6년의 인고의 시간을 버틴 작가님의 인내심과 열정에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도 피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관계자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하나 하나의 택배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벽을 깐다.

벽을 깐다...'


 

'함께 그 벽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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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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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링미백 (2019년 초판)

저자 - B. A. 패리스

역자 - 황금진

출판사 - 아르테 (arte)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94p



날 가지려면 죽여줘



[비하인드 도어][브레이크 다운] 단 두편으로 메리지 스릴러의 진수를 보여줬던 작가 'B. A. 패리스'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심리스릴러의 여왕답게 이번 작품도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여성의 밀도있는 심리묘사가 펼쳐지는 스릴러 일거라 생각하고 책을 들췄는데,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다. -_-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남친'이었다.



메리지 스릴러에서 언제나 공식처럼 통용되어오던 돈많고 매너좋은 남친 혹은 남편, 하지만 완벽한 외면에 감추고 있는 본성은 그야말로 사악하고 악랄한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을 처음부터 반전시킨 것이다. 사실 심리 스릴러 그중에서도 메리지 스릴러는 캐릭터의 설정만 다를뿐 어느정도 기본틀은 그대로 가져가는 장르이다 보니 여러 작품에서 비슷비슷한 자가복제적 느낌을 지울수가 없는데, 그런면에서 볼때 이번 [브링 미 백]은 메리지/로맨스 스릴러의 기본 공식을 깨는것과 동시에 작가의 전작들과도 다른 성격의 시도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물론 남친을 주인공으로 치명적 악녀와 일전을 벌이는 '피터 스완슨'의 [아낌 없이 뺏는 사랑]도 있지만 어쨌던 이 작품은 결말까지 따져본다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박한 설정의 작품임은 분명한듯 하다.



어쨌던...그래서 우리 주인공 핀의 이야기는 이렇다.


영국에서 펀드매니저로 돈꽤나 만지는 젊고 잘생긴 청년 핀은 1월 1일날 시골에서 막 상경한듯 보이는 촌스러운 매력녀 레일라와 만나고 순박한 매력에 바로 사랑에 빠진다. 어찌저찌 레일라의 마음을 뺏은 핀은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고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여행 내내 시무룩해 보이는 레일라....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이유를 케묻던 핀은 레일라의 고백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녀가 여행전 핀을 두고 다른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이다. 소위 뚝배기 깨지면 이성이 마비되고 폭력성향을 보이던 핀은 레일라의 고백에 뚝배기가 산산조각 나고...차에 타고 있던 레일라를 끌어내려 미친듯이 흔들어댄다. 그리고 주먹으로 치려는 찰나.....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서 마음을 진정하고 가보니......레일라가 없다....-_- 그 어디에도.....



그로부터 12년 뒤....

장기실종에 따른 사망처리가 된 레일라의 장례식장에서 레일라의 언니 앨런과 만난 핀. 동생과는 또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앨런과 사랑에 빠지고....그렇게 (꿩 대신 닭?) 앨런과 교제하던 핀은 주변사람들에게 앨런과의 결혼을 발표한다. 그런데...결혼 발표 이후부터 앨런과 핀이 함께 사는 집 주변에 놓여있는 마트로시카 인형...그 인형은 실종된 레일라가 갖고 있던 인형과 똑같은 인형이 아닌가....처음엔 누군가의 장난일거라 무시하던 핀은 계속되어 발견되는 인형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인형과 함께 날아온 메일 때문에 지독한 혼란에 빠진다.


'레일라와 만나고 싶다면 앨런을 죽여줘!'



12년 전 사라진 레일라....그리고 12년 후 나타난 마트로시카 인형....

사라진 레일라인가? 아니면 그녀의 실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인가?!!!!



12년 만에 나타나 핀을 압박하는 정체불명의 협박범도 스릴의 요소지만 그것 둘째치고 개인적으로 작품에 동화되어 감정이입했던 요소는 바로 이거다. 


12년전 2년동안 미치도록 열광적으로 사랑했던 치명적 매력의 레일라 VS 현재 결혼 예정인 지고지순한 현모양처감 앨런...


당신이 핀이라면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ㅋ 남초 사이트에 가면 이런 류의 VS질문이 많이 올라오는데, 예를들면 이런거다. '한가인 VS 김태희 둘중 사귈 수 있다면 누구와 사귀겠는가?' 떡줄사람은 생각도 않하는데 괜히 진지하게 둘 사이를 고민하고 있는 모태솔로 독거노인들....-_-;; 그런데 본인이 이 작품을 읽으며 어느새 레일라(진짜 레일라 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와 앨런을 밀리그램 단위까지 저울질 하고 있는것 아닌가!!! 친자매를 사이에 두고 이렇다 저렇다 선긋기를 못하고 갈팡질팡 왔다리 갔다리 흔들리는 핀의 모습이 우유부단 혹은 어장관리 하는것 같아 답답하면서도 왠지 은근히 공감되는 미묘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 개인적으론 이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다는...



결말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생각지도 못한 깜놀할 반전을 마련해놓고 있는데, 딱 반전과 마주했을때 쉬이 납득되지는 않았으나 실제적으로 유사 사례가 있는 케이스인 만큼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고 수긍되어졌고 결말의 비극적 안타까움이 더해진듯 하다. 불쌍한 XXX여...ㅠ_ㅠ 'B. A. 패리스'의 팬이라면 실망시키지 않을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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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재가 공기
나카타 에이이치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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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존재가공기 (2019년 초판)

저자 - 나카타 에이이치(오츠이치)

역자 - 주자덕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74p



히어로는 멀리 있는게 아냐



일일이 직접 원서를 읽어보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의 계약을 따낸뒤 직접 번역 편집까지 도맡아 출간하는 궁극의 장르전문 1인 출판사 아프로스미디어에서 전작 [기억 파단자]에 이어 또한번 대박 신작을 출간하였다. 초능력자들의 평범하고 소소한 사랑?을 다룬 이 단편집은 알만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작가 '오츠이치'의 국내에서 처음 초역되는 단편집이다. 작가는 팬네임 '오츠이치' 외에도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라는 별도의 팬네임으로 작품을 내는데, 이중 '나카타 에이이치'로 발표하는 작품은 주로 잔잔하고 따뜻한 감성의 연애소설을 내놓는 팬네임으로 활용한다. 사실 팬네임을 달리하고 장르를 달리 해도 어쨌던 '오츠이치'는 '오츠이치'이니, 사회파 제왕 '히가시노 게이고'가 수십편의 작품을 써내도 작품사이의 편중은 있을지언정 기본이상은 한다는 공식이 정설이돼었듯 '오츠이치'의 작품들, 특히 그의 단편들 역시 '게이고'와 마찬가지로 기본 이상의 재미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작가의 단편집을 전부 읽어보고 하는 말이자만 개인적으로 작가의 장편보다 정말로 '오츠이치'의 진가를 발휘하는건 단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흔하지 않은 독특한 발상과 뚜렷한 기승전결이 수십페이지 안에서 춤을 춘달까...그 필력의 댄스는 이 단편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아프로스미디어의 안목과 '오쓰이치'의 필력이 무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단편집 [나는 존재가 공기]이다. 



인비져블, 텔레포테이션, 파이로키네시스, 텔레키네시스... 줄줄이 등장하는 초능력들을 보며 마블 슈퍼 히어로? 혹은 X맨의 뮤턴트들의 능력인가 싶지만 막상 까보면 우리와 다를바 없는 한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능력자들이다. 우리 동네, 우리 학교, 우리 직장, 우리 옆집....에서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고 있는 초능력자들이 정말로 있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랑을 하고있을까?...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여섯 편의 작품을 통해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고 이들의 사랑역시 조금 독특하지만 아름답다는걸 깨닫게 된다. 



1. 소년 점퍼

너무나 못생긴 외모때문에 등교 거부중인 히키코모리 소년은 어느날 아주 우연히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화장실을 떠올리며 눈뜬 순간 화장실로 점프하는 텔레포테이션 능력을 갖게된다. -_-;;; 그렇게 점프 능력으로 미국과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던 히키코모리 소년은 우연히 전차에 치일뻔한 같은학교 선배를 구하게되고, 그 선배에게 능력을 들키고 마는데....

- 전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히키코모리라니....-_-;;;; 이 역설적 설정이 유쾌하게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텔레포테이션 능력은 작품 에서 직접 영화 [점프]를 언급하며 동일한 설정의 능력제약을 두고 있어 결말의 소년의 노력을 더욱 부각시키는것 같다. 엄청난 능력이 있음에도 외모의 장벽은 높기만 하구나...ㅠ_ㅠ



2. 나는 존재가 공기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빠를 피하기 위해 공간에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버리는 능력을 갖게된 소녀는 이 무존재감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가 짝사랑하는 선배의 정보를 얻기위해 스토킹에 가까운 밀착관찰을 하게된다. 학교에서부터 선배의 집까지 찾아간 소녀는 선배의 집에서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는데......

-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존재감을 지우면 알아볼 수 없는 거의 투명인간급의 막강한 능력설정이 코믹하면서도 으스스하게 느껴졌달까...-_-;;; 



3. 사랑의 교차점

손을 꼭 잡고 걷지만 인파속을 지나기만 하면 생판 처음보는 사람의 손을 잡게 되는 커플...이 커플은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끝까지 손을 맞잡고 있다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는 교차로 앞에선 커플은 서로 손을 꽉 쥐는데.......

- 쉬어가는 코너 같은 초단편인데,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좋은 작품이란거....아무리 고난과 역경이 몰려와도...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면....함께 이겨낼 수 있음을....



4. 스몰 라이트 어드벤처

잘못 배달된 택배상자를 연 엄마는 속에서 이상한 손전등을 꺼낸다. 소년은 호기심에 건전지를 넣고 손전등을 켠뒤 엄마를 비추고, 환하게 빛을 받은 직후 사라져버린 엄마....당황한 소년은 손전등을 아무렇게나 두고 엄마를 찾으려 하지만 전등의 빛을 받은 소년은 순식간에 10cm 이하로 줄어드는데.....

- 역시 쉬어가는 코너 같은 단편이다. 애초부터 [도라에몽]의 작아지는 스몰 라이트 손전등을 염두에두고 쓴 작품으로 작아진 소년이 애완견을 타고 종횡무진 모험을 펼치는 만화같은 이야기이다. 





5. 파이어 스타터 유카와 씨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 오래된 아파트를 관리하며 힘겹게 사는 청년은 입주민들가 함께 좋은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비어있던 201호에 새로 호리호리한 여성이 입주하고, 여성이 입주하고부터 고장난 온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부탄이 떨어졌음에도 달궈진 후라이팬으로 요리가 가능한가 하면, 난방을 키지 않았음에도 방에 온기가 가득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 '스티븐 킹'의 [저주받은 천사]속 파이어 스타터인 주인공 소녀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다. 신기한 파이로키네시스의 능력과 범죄조직, 화끈한 총격전, 잔잔한 감정의 교류, 반전 등등등 이 단편집중 가장 흥미있게 읽은 작품인듯.



6. 사이킥 인생

대대로 자신의 실제 손 외에 염력손의 능력을 물려받은 여고생은 한번씩 내뱉는 엉뚱한 말때문에 4차원 소녀로 불리게된다.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인상을 받은 소녀는 친구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가진 영매라고 말하고 염력손으로 이상현상을 일으켜 반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데.....

- 4차원 소녀가 아니라 딱 4춘기 소녀의 까탈이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초능력자의 히스테리는 이정도 급이라는걸 보여주면서, 영매사라는 거짓말이 죽은 동생을 가진 친구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거짓말로 그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등교를 거부하는 히키코모리, 존재감 제로인 소녀, 독특한 사고를 4차원 취급당하여 무시당하는 소녀 등등 작품속 특별한 능력을 갖게되는 주인공들은 사실 어느 그룹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외된부류 소위 아싸란걸 알 수 있다. 사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에게 초능력을 선물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주변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통해 자연스레 그룹에 어울리게되는 잔잔한 에피소드를 보면서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과 더불어 다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공기처럼 가볍게 즐기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랄까. 역시 '오츠이치'!! 아니...'나카타 에이이치'!!! 작품을 읽으며 어느새 슬그머니 미소 짓게되는 편안한 힐링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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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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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이야기 (2019년 초판)

저자 - 미아키 스가루

역자 - 이기웅

출판사 - 쌤앤파커스

정가 - 12000원

페이지 - 376p



너와 나의 숨겨진 이야기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조종하는 기생충에 감염된 이들의 사랑을 그린 [사랑하는 기생충]으로 독특하면서도 기괴한 SF 로맨스를 선보인 작가 '미아키 스가루'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제40회 요시카와 문학신인상 최종 후보작이자 일본 발매 이틀 만에 4쇄 돌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작품이라고 하니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치는 높아만 갔는데,  확실히 작품을 일독한 지금 드는 느낌은 전작의 독특한 SF 로맨스의 기조는 유지한채 만남과 이별, 기억과 망각이라는 인간 본연의 생리를 남녀 관계에 접목하여 심층적으로 파고드는...'미아키 스가루'식 로맨스의 완성형이란 느낌을 받았다. 연애소설 장르로 분류될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남녀간의 밀당 러브로맨스는 절대, 네버 아니란 말이다..-_-;;;;



전작 기생충에 이어 이번 작품의 SF 요소는 '의억'이란 개념이다. 필요에 따라 임의의 기억을 생성 교체하던 '필립 K 딕'의 [토탈리콜] 혹은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이 '의억'은 자신의 뇌에 새겨지고 습득된 기억과 달리 나노 테크놀러지를 통해 기억대신 프로그램된 기억으로 대체되는 임의기억 즉 '의억'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가슴아픈 기억은 지워버리고, 바라던 기억은 의억으로 대체 시켜버리는 거짓기억의 시대....그 안에서 살고있는 너와 나는 어떻게, 어떤 사랑을 나눌까?.....



가까운 기억부터 잊혀지는 기존의 알츠하이머와는 달리 오래전 기억부터 잊혀지는 신종 알츠하이머의 등장 이후 망각되는 기억을 잡기위한 나노 테크놀러지 기술 개발이 박차를 가한다. 그렇게 의억기술이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신종 알츠하이머에는 별효과가 없음이 입증되고, 대신 일반인들에게 맞춤 서비스로 변형되어 유행하게 된다.


레테 : 기존 기억을 삭제

그린그린 : 청춘시절 가상의 상대와 사랑의 기억을 주입

엔젤 : 가상 자녀에 대한 기억을 주입


부모에겐 엔젤 속 가상의 자식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변변한 친구 한명 없이 영겁의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낸 치히로는 20살 성인이 된 후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의억클리닉에서 상담 후 고독하기만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워줄 레테를 구매한다. 나노기계가 든 레테 약봉지를 물에 푼뒤 단번에 마신 치히로....그리고 몇 분뒤....아무것도 떠오르지 말아야할 유년의 기억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가 있었으니...5살부터 15살까지 언제나 함께했던 소녀 도카였던 것이다. 레테인줄 알고 먹었던 약이 그린그린이었던 것일까?...집에서든, 버스를 타던, 알바를 하던 시든때도 없이 떠오르는 도카와의 의억에 젖어들때쯤....정말로 치히로 앞에 가상의 존재가 아닌 실재하는 도카와 마주치는데.....



잊혀져 있던 실제 기억의 회상?

삽입된 가상의 기억?

기억속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더욱 미궁속으로 빠져가는 그녀의 정체....



자고로 한치앞도 알 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이요, 그중 가장 복잡한 것이 연애의 마음이니. 이 복잡미묘한 마음에 '의억' 한스푼을 떨어트리니 그야말로 폭풍같은 혼돈의 카오스로구나! 세상과 단절된채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이 비록 만들어진 기억일지라도 누군가와의 추억을 간절히 원하는 작품속 배경과 너무나 맞아떨어져 씁쓸하게 만든다. 의억이라는 SF적 요소와 도카의 진짜 정체에 대한 반전의 진실이 어떠한 미스터리보다 더욱 흥미롭게 펼쳐지면서 조작된 기억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 사랑의 감정으로 맞바뀌는 순간 따로 떨어져 있던 한 남자와 한 여자는 강한 인연의 끈으로 묶이고 평생토록 남을 사랑의 기억으로 구원받는다. 비록 두 사람의 관계의 끝이 비극일지라도 말이다.



"레코드판은 A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B면으로 바꿔줘야 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B면으로 바뀐다. _219p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나'와 '너'의 이야기가 만나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오래전 기억부터 망각하는 신종 알츠하이머처럼 이 작품에서 진행되는 사랑의 방식 또한 일반적 사랑과는 다른 역전된 사랑을 이야기한다. 머...그 뒤바뀐 사랑의 방식이 이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요소이겠지만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설령 조작된 기억으로 만들어진 감정일지라도...거짓에서 시작된 감정이라도 사랑은 그 이름 그대로인 사랑이 아닌가....그래서 치히로와 도카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절박하고 애절한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가슴에 와닿았던것도 같다. 청춘, 망각, 사랑, 기억, 상실, 죽음, 고독, 위로, 구원.....이 모두가 오롯이 담긴 차가운 사랑이야기 [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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