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고도 강경한 가르침.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단단히 ‘각오‘하라는 말소리가 뼈를 때린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문학을 떠나면 할 일이 있는지요. 소설을 쓰는 것 외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있는지요. 그날그날 빈둥빈둥 놀며 지내는 한가로움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같은 유형의 인간이 과연 그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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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와 부조리를 진부하게 들먹이며 독후감을 쓰기 전에 이것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자. 너무 유명하여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이 소설 첫 문장 말이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더불어 마지막 문장도 다시 읽어보자.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소설 제목과 화자 말투나 멘탈은 ‘아싸‘임을 천명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은 ‘핵인싸‘ 간지철철 문장을 내세우는 작품.

주인공 뫼르소를 1차원으로만 바라보면 소시오패쓰에 불효막심한 후레자식일 터이나 그리 단순하게 읽으면 안될 것 같다. 뒤로 갈수록 그의 생각에 일부 묘하게 동조하게 된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설을 읽기 전에 이 글을 쓴다. 읽고 나면 왠지 답안지를 보고 감상을 적을 것 같아서이다. 민음사 출간본 ‘이방인‘은 길고 상세한 작가연보를 통해 카뮈를 추모하고 있는 듯하다. 만 46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일찍 등진 카뮈의 생애를 꽤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조만간 ‘페스트‘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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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중반에 이른 학자인 남편은 일기를 쓴다. 그는 일기에 아내를 상대로 하여 꿈꾸는 성적 판타지에 대해 남긴다. 열 살 넘게 어린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욕망과 은밀한 요구를 담는다. 남편은 일부러 아내를 도발해 일기장을 감춰둔 곳의 열쇠를 슬쩍 흘려두기도 한다.

아내도 일기를 쓴다. 남편이 기록한 사건과 다른 관점으로 자기 생각을 적는다. 남편의 괴이한 취향에 대해서도 평한다.

부부는 일기로 심리전을 벌인다. 상대방의 일기를 훔쳐 읽은 척, 안 읽은 척하며.

이탈리아 에로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이 이 소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생존시대와 거주국가를 초월한 두 ‘배운 변태‘(?)의 취향공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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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북에서 내려온 간첩 김기영은 남한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생운동에도 참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며 살다 신분을 숨긴 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작전명령이 오지 않고 그는 윗선을 잊고 지낸다. 그러던 그에게 20년 만에 지령이 떨어진다. 24시간 안에 북으로 귀환하라! 이 소설은 잊혀진 남파 간첩이 겪는 그 당황스런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빛의 제국이 출간된 2016년 여름, 나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짐을 정리해 부산 본가로 내려갔다. 얼마 남지 않은 자유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소설을 부산대 앞 서점 북리브로에서 하루종일 붙잡고 서서 읽었다. 중간에 점심 먹으러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 읽었던 것 같다. 그 무모함과 단순 무식함이란...사서 편한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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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어른입네 하며 더러운 쌍판 내밀던 양아치들을 시원하게 밟아주신 영미 누님.

난수표나 미해독 문자 같은 현대시들을 읽을 때면 자괴감을 느끼곤 했다. 그와 달리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그냥 ‘꽂혔다‘.

기성출판사들이 출간을 꺼려 최영미 시인이 직접 출판사를 세워 펴낸 시집이다. 부디 흥하길!

˝목숨을 걸고 뭘 하진 않았어요
(왜 그래야지요?)
서른다섯이 지나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 밥을 지으며

˝장미넝쿨이 올라온 담벼락에 기대어
소나기 같은 키스를 퍼붓던 너.
...
침대가 작다고 투덜대는 내게 너는 속삭였지

사랑한다면 칼날 위에서도 잘 수 있어˝
- 마지막 여름 장미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밥부터 먹어야겠다.˝
- 독이 묻은 종이

˝보석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너희들은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거라˝
- 여성의 이름으로

˝인생은 낙원이야.
싫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낙원.˝
- 낙원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다만 이 햇살 아래
오래 서 있고 싶다˝
- 1월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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