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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보는 북한
헨리 마르 지음, 조경연 옮김, 닐 테일러 / 넥서스BOOKS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북한과의 통일은 찬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역사적, 민족적 차원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저출산, 저성장의 늪에 빠진 현재 우리나라에게 반드시 지향해야할 필수불가결한 목표임에는 분명한 일이다. 이를 위한 첫걸음 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의 북한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북한을 이해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북한의 현재 모습을 직접 살펴보는 것일텐데,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 북한과 물리적으로 가깝지만 허가된 경우를 제외하고선 특히 일반인이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소위 햇볕정책을 통해 금강산 여행이 가능했던 적도 있었으나 북한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사건으로 우리 국민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기에 금강산 관광은 정부로서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지금까지 이 사업이 재개될 수 있을 지는 요원한 상태이다. 더군다나 북한으로 유입되는 관광수익이 군사력에 이용되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며 사실상 우리가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헌법상 우리가 회복하지 못한 영토의 일부로서 우리 역사가 담겨 있는 친숙한 곳이 많고 훗날 우리가 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과 더불어 북한의 곳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리 가 보는 북한’이라는 이 책은 제목처럼 우리가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북한의 전 지역을 구석구석 꾸준히 여행해온 외국인 저자가 기록한 북한의 모습을 미리 살펴보면서 우리가 잘 몰랐던 북한의 모습들에 대해 눈으로나마 확인하고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북한에 대해 선입견과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어 즐거웠다. 생각보다 우리와 비슷한 건물들이 있음에 놀라기도 하면서 그 장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우리와의 절대적인 차이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어 어쩌면 가깝고도 먼 나라는 북한이 아닐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여행안내서이기 때문에 흔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관광지를 소개해주는 포맷을 유지하면서도 북한이기 때문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서문에서 ‘이 책을 북한에 가져가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북한은 외부에 보이고 평가되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세관 직원이 알게 되면 북한 도착 5분만에 여행이 무산될 수 있다.’ 말하듯 정작 북한에서는 이 여행서를 참고할 수는 없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책의 구성은 간단하게 북한의 대표적인 볼거리와 음식, 그리고 국경일이나 기후 등을 소개하는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여행준비물 등과 더불어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주의사항 또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가령 사진촬영에서 ‘북한 기준으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촬영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 현장이나 빈곤이 드러나는 모습은 촬영금지다.’ ‘지도자들의 이미지는 접거나 구기거나 표시해서는 안 된다.’ , ‘관광객은 질문을 받지 않은 이상 북한 사람과 종교에 대해서 논해서 안 되고, 종교적인 글, 전단 또는 비슷한 것을 보여주거나 배포하거나 북한에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체포된 많은 서양인은 기독교 개종과 관련 있었다.’ 라는 말에서 사실상 북한 여행은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달리 개인이 자유롭게 그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불가하기에 북한이 자신들의 사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면은 숨기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외부에 선전하려는 방식에 이용되는 형태로만 가능하다는 게 새삼 놀랍지도 않지만 아직까지 이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가 않는다.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사상, 단 하나의 존엄만이 존재할 수 있는 나라.
북한의 전 지역을 모두 소개하지만 아무래도 평양에 대한 설명이 가장 분량이 많고 자세하다. 흔히 런던이나 파리를 구역별로 소개하듯 평양 또한 중, 모란봉, 평천, 보통강, 서성, 대동강, 만경대 구역 등으로 세세하게 나뉘어 구역별로 볼 만한 장소를 소개하고 코스를 안내한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장소가 김일성광장인데 ‘이곳을 기점으로 국가에 있는 모든 도로의 거리가 측정된다.’며 양쪽으로 노동당 본부 청사와 국무위원회, 외무성 등이 위치해 있는데 우리의 광화문광장과 어쩌면 형태는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 성격은 정반대라는 사실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이 역설이 아닐까. 국민의 목소리를 표출하는 곳과 국민의 모습을 억누르는 곳. 익히 뉴스를 통해 많이 접해본 건물도 있었지만 의외로 시설은 낙후되었을 지언정 제법 문화시설들이 있어 놀랐다. 동물원, 식물원은 물론이고 만경대유희장과 같은 놀이공원, 각종 수영장, 탁구장, 클라이밍 등 체육시설을 갖춘 문수유희장, 롤러스케이트장, 실내사격장에 교회와 성당까지 있을 정도. 물론 놀라웠던 건 잠시, 북한 내부에서도 평양에서만 이 또한 소수의 상류층 북한 간부들의 가족들에게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냉소가 나올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책을 넘기다보면 분명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 사상이 가득한 동상, 벽화, 기념품들을 보면 아직도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한 모습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가까이 볼 수 없어 어쩌면 잊혀진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동명왕릉, 고려의 선죽교 등 고구려와 고려의 문화재를 가까이서 직접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구월산, 묘향산 트래킹과 절경의 금강산과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양강도의 고원과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는 백두산의 천지까지.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역사를 공유하는 우리 땅인데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자연경관을 가진 모습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가볼 수 있을까. 평안북도에서 라진선봉경제특구까지 교통편과 머물 수 있는 숙소, 음식, 가볼만한 곳까지 북한 여행에 대해 이보다 자세한 정보를 담은 여행안내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읽는 동안 재밌었다. 통일이 빠른 시일 내에 어렵다면 북한이 폐쇄적인 국가에서 벗어나 핵을 포기하고 세계와 교류에 나설 때, 우리에게도 이 여행안내서를 실제적인 북한을 여행하는 데 있어 꼭 써먹게 될 날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