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세 평의 행복,연꽃빌라'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다. 

 

일드'수박'으로 시작하여,'카모메식당' '안경' '수영장'으로 이어지다가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거쳐'연꽃 빌라'까지 어슬렁거리며 당도하게 되었다.

 

무심코 작가 무레 요코를 검색해보니 연꽃빌라의 후속작이 나왔다. '일하지 않습니다.'

지긋지긋한 직장을 자발적으로 그만두고  백수가 된 주인공이 다 쓰러져가는 야생(?)적인 거처-책을 읽어보면 왜 야생적인지 알게 된다.- 연꽃빌라에 사뿐히 내려앉아 적응하는 것까지 보았는데 그 후 이 여인네는 어떻게 되었나 한번씩 궁금하곤 했다.

응답처럼 후속작이 나왔으니 얼른 펼쳐볼 밖에.

 

이 두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가사키'가 겹쳐지기도 했다.

인생에 크게 실망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집에 한 여자가 숨어 산다,

그 여자는 사회 적응에 실패하고 아무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돌다가 옛날 자신이 자라난 집, 타인(한 남자)의 집이 되어버린 자신의 옛 집으로 스며들어 벽장에서 숨어 살다가 결국 들켜 교도소로 가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 말이다.

(사실 '나가사키'의 그 여자를 보면서 나와 공통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소름끼쳤었다. 사회성 제로,주변머리 제로, 생활력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말년이 그렇게 될까봐 어린 마음에도 무서워서 밥벌이라도 하려고 이과를 선택했었나보다.-_-;;)

 

어렸을 때는 영웅과 천재와 위인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손오공,삐삐,톰 소여같이 엉뚱하고 유쾌한 괴짜,말썽꾸러기(착한 애들은 가라!)의 모험에 홀딱 빠져들었었고. 그러나 처음에 반짝반짝 빛나던 것도 세월과 세파에 마찰되다 보면 도금인지 순금인지 알게 될 날이 온다.자신이 순금의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는 날이 어른이 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특별한 재능이나 사명이 없다 판단될 때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을 때

사회생활이란 것과 인간관계란 것에 신물이 날 때

남아있는 세월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물론 부양 가족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는 씨알도 안 먹히겠다만)

 

21세기에는 뭘  가지든 뭘 시도하든 독창적이라거나 멋져 보이기 어렵다.아예 아무 것도 안 하고 소유하지 않는 게 제일 radical할지도 모를 일.그런데 유명한 누군가 미리 말했던 대로 인간의 불행은 자기 방에 가만 있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연꽃빌라의 자발적 백수는 3년 후 뭔가 하려고 한다.수를 놓는 것인데 이것도 일종의 예술인 걸까,소일 거리인 걸까. 보통의 일상으로는 무의미를 견디기 힘 드는 걸까? 놀이와 예술의 차이는 무엇인지.

 

예술이 일상보다 우월하다거나  절대적인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뛰어난 예술가와 능력과 인품을 갖춘 보통 사람 중에 골라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굳이 예술이니 창작의 고뇌니 헛소리하지 않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의식주를 때깔 나고 맛깔스럽게 꾸려나갈 수 있으면 족할 것 같다만. 그리고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간사한 인간 세상에서 흔적 없이 탈출할 수 있다면 최상일텐데.

 

 

이 책들과  함께 '세상물정의 사회학'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곁들여 읽어도 괜찮겠다.

 

이젠 특출난 사람의 이야기가 싫증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음악가 알리스의 이야기를 쓴 '백년의 지혜'가 살짝  떠올랐다.거기서 그 '유대인' 여성은 탈렌트를 가진 자였고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잘 써먹었다.  이 '유대인' 여성은 구사일생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남는다. 강인한 성격과 긍정성이 물론 중요했겠지만 이 모자를 살린 나머지 한 기둥은 그녀의 음악적 재능이 아닌가.이 '유대인'(유대인이 저지른,저지르고 있는 죄악을 생각해보면 이 자들이 자기들만 당한 것처럼 홀로코스트 운운하는 것도 역겹다.심기가 불편해서 유대인에 ''를 찍는다.) 여자처럼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곳일까.

 

평범하지만 유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싶다. 자기 식으로 살면 유별나다 소리를 듣는 이 곳에서 어떻게 버티며 존재하고 있는지.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은 그들이다.

 

* 수전 손택의 말, 백 년의 지혜,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집 등등 이 페이퍼에 풀어야 할 내용이 많은데 시간이 없다. 아, 정말 왜 이렇게 쫓기듯 허덕이며 살아야하는지.

 

(이 별 재능없는 존재들의 반대점에 비비안 마이어라는 사진가가 있는데 그녀는 왜 극구 자신의 존재를 감춘 것일까?)

 

*'수전 손택의 말'(p60)에서 인용

 

...전 세상이 주변적인 인간들에게 안전한 곳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좋은 사회의 최우선 요건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주변성을 허락하는 거예요.자칭 공산주의라는 국가들이 그토록 끔찍한 건 그들의 관점이 학교 중퇴자나 주변적인 사람들을 포용할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길바닥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을 두어야만 해요. 예전에 일어났던 멋진 일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이 주변인이 되길 선택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주변인들과 주변 의식 상태를 허락해야 할 뿐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것 역시 포용해야 한다고 봐요. 전 일탈에 대찬성입니다. 물론 모두 함께 일탈을 저지르는 건 불가능하죠. 대다수의 사람은 어떤 중심적인 존재 양식을 선택해야만 하니까요.그래도 점점 더 관료주위적이고 획일적이고 억압적고 권위주의적으로 되어가는 것보다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게 낫지 않나요?

 

*'수전 손택의 말' -뒷표지에 마침 노명우의 글이 실려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책세상은 의외로 좁고 거미줄처럼,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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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8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28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15-05-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안 읽었습니다. 안 읽었어요. 분명히 안 읽었어요! 하니케어 님 페이퍼를 스맛폰으로 읽고 싶진 않아요. 넓은 모니터로 천천히 꼭꼭 씹어 읽어야지. 그래야 어디 허튼 소리 하신 건 없나 눈에 불을 켜고 찾죠 ㅎㅎ

라로 2015-05-29 14:42   좋아요 0 | URL
아마도 하니케어님은 아날로그니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