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를 읽고 싶어 어린 시절 읽었던 <고리오 영감>을 재독하려고 한다.

번역본이 여러 개라 어느 것을 고를까요.

민음사와 문학동네 번역본을 미리보기로 미리보기했다.
그런데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른 거 아닌가?

이 정도면 다른 책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번엔 문학동네






둘 중 택하라면

더 자세한 쪽이 끌린다.


물론, 자세하다 함에는 '의역'의 개입을 배제 못한다.

그러나 그런 의역이라도 없는 '정보'를 만들어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같을 내용을 필요 이상 친절하게 푸는 경우는 많아도.


-존경할 만한 이 하숙집의 풍속을 험담하는 사람이 없다

-이 하숙집은 (남녀노소 다 받아도) 그간 풍기가 문란하다는 비방 한 번 없다


이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나?


그리고 두 번역본은

'이 하숙집에 지난 30년간 묵은 적 없는 사람'의 종류가 다르다.


민음사는 그냥 젊은이,

문학동네는 젊은 여자다.


소설이란 문학에서는 이 둘의 차이가 엄청나다. 

안 그런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프랑스 원문을 찾아보기로 했다.



뭐, 프랑스어는 한 글자도 읽을 줄 아는 게 없으니 그림의 떡이나

지금은 '번역기'란 첨단의 장치가 있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이렇게 나온다.


번역기가 꼭 정답만은 아니겠으나.

일단 어떤 번역기는 이렇게 나온다.


바우케르 부인(본명 드 콩플랑스)은 파리의 라틴 지구와 생마르소 교외 사이에 위치한 생트제네비에브 신가(rue NeuveSainte-Geneviève)에 40년간 부르주아 기숙사를 운영해 온 노파입니다. 이 펜션은 '바우케르 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녀노소 모두를 수용하지만, 이 존경받는 시설의 도덕성에 대한 비방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러나 30년 동안 젊은이가 머문 적이 없었으며, 젊은 남자가 머물려면 가족이 매우 적은 생활비를 보내야 했습니다. 

(구글번역기)

원어로는 '그냥 젊은이'로 나온다.


혹시나 싶어 이번엔 영문판을 번역기에 돌려보았다.

영문판은 이걸 찾았다.



번역기에 넣어보자.


바우케르 부인(본명 드 콩플랑)은 지난 40년간 라틴 지구와 생마르셀 외곽 사이에 위치한 누브-생트-제네비에브 거리에서 여관을 운영해 온 노파입니다. 그녀의 집(동네에서 _Maison Vauquer_로 알려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녀의 존경받는 숙소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실 30년 동안 그녀의 집에는 젊은 여성이 한 명도 머문 적이 없으며, 만약 젊은 남자가 장기간 머문다면 그의 생활비가 매우 적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구글번역기)


흠...

영어 번역도 번역이니 번역한 사람에 따라 또 결과물이 다를 것이라...

무조건 이 번역문에 의지할 순 없지만,

아무튼 이 영어 번역문에는 '젊은 여성'으로 되어 있다.


기계 번역이 사람보다 못하다 하나,

프랑스어에서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를 분간 못할 정도는 아니겠지, 하고 믿어줄 때


원서로는 '젊은이'(남녀 굳이 구분없이)가 맞지 않나 싶은데,

정확한 건 오로지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들의 몫이겠다.


비단, 30년 동안 이 하숙집에 묵지 않은 존재가 그냥 젊은이이냐,

젊은 여자이냐를 떠나 

<고리오 영감>의 한글 번역본은 서두부터 몹시 다르다.

뭐, 문투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다르니까 말이다. 


독자로선, 뭘 골라야 하느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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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까지 비교를 하시는군요. 젤소민아님이 짱입니다. 비교해주신 결과를 볼 때 저라면 문학동네요. 훨씬 매끄럽게 읽혀요. 그리고 프랑스어판 서문에 나오는 jeune는 여성형 관사인가 형용사인가 그랬어요. 오랜 옛날 고등학교때 배운 프랑스어 기억으로.... ㅎㅎ 그래서 젊은 여성이 맞는듯요

젤소민아 2025-08-08 01:19   좋아요 1 | URL
앗, 바람돌이님~~불어가 되시는군요!! 전 고등학교 때 독어! ㅎㅎ 그럼 이 하숙집엔 30년 동안 ‘젊은 여자‘가 온 적이 없는 것이로군요! 젊은 여자와 그냥 젊은이는 굉장히 다른데 말이죠. 발자크 이전엔 인물들이 ‘각자도생‘하고 발자크 이후부터 유기적으로 얽히기 시작했다죠! 기념비적인 작품이니 어린 시절, 줄거리 위주로 읽었던 것에서 좀 발전해봐야겠어요! 고마워요 바람돌이님~

오늘은 다른 글이 이달의 당선적으로 뽑힌 날이라 기분이 더 좋네요~ㅎㅎ

Forgettable. 2025-08-08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eune personne (young person) 가 젊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여성형 명사이지만 남자일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거든요. 영문판에서 뭔가 꼬였고 거기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는지 의역인지 모르겠네요..

ycon 2025-10-1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rsonne는 문법적 성이 여성이고 일반적으로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을 가리키지만 예전에는, 그러니까 18-19세기에는 jeune personne가 젊은 여자라는 뜻으로 종종 쓰였습니다. 요즘도 옛투를 흉내내 그렇게 쓰기도 합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젊은 남자jeune homme와 구별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을 보면 이 하숙집에는 근처 대학에 다니는 젊은 남자들이 오래전부터 하숙생으로 드나들었습니다. 스캔들이 없었다는 것은 스캔들을 일으킬 상대, 곧 젊은 여자가 없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전후 문맥을 고려해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이저
노나 페르난데스 지음, 조영실 옮김 / 가망서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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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정치상은 우리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래서 두 민중의 삶도 거의 겹친다. 독재정권이 빚은 칠레의 상흔은 디스파레시도, ‘실종‘이다. 우리의 것은 무엇일까. 그 혼곤한 시간을 살아내고 또 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거기다, 어머니 이야기라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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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기담총서 1
헨리 제임스 지음, 임명익 옮김 / 크로노텍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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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설을 이미 이종의 번역본으로 2권 갖고 있다. 그런데 또 이걸 사는 이유는 ‘~습니다‘체로 옮겨져서다. 종결어를 이렇게 바꾼다고? <나사의 회전>을? 다시 생각해 보니, 오호~. 어울린다. 세밀한 역주도 눈에 띈다. 어쩐지 적절할 것 같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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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
팀 잉골드 지음, 차은정 외 옮김 / 포도밭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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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부족해, 뭔가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의 종류. 물론, 소설 다음으로. 배울 게 많고, 생각할 게 많고, 건질 게 많고, 외울 게 많고, 놀랄 게 많은. 이런 게 다 기대되는 책. 그러고 보니, 소설과 참 많이 닮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소설이 잘 써질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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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글쓰기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차윤진 옮김 / 북뱅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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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년 전 여름, 윌리스 스테그너의 <안전으로 넘어가다(Crossing to Safetry)를 읽었다. 나는 그의 이전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명만함, 그 형식의 자유로움에 깜짝 놀랐다. 그는 어떤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먹혔다. 나는 소설의 가능성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개연성이 있었고, 끝에 가서는 한층 더 힘을 얻었다.


길을 따라서 맹목적으로 돌진하다가 그의 이야기가 갑자기 엉뚱한 내용으로 휙 넘어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이 꺾일 뻔했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1년간 베니스로 보내버린 것이다. 나는 그럴 순 없어! 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아파트 발코니에 서서 낭만적인 도시에서 새어 나오는 부드러운 불빛을 응시하는 장면은 뭔가 깨달음을 줬다. 대양을 건너면 기다리는 끔찍한 운명을 마주치기 전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은혜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소설을 읽고 나서 석 달 동안이나 충격에 휩싸여 뜨거운 여름의 타오스를 거닐었다.


스테그너는 단 한 번 주춤하지도 않고 창조의 불씨 속에 있었다. 나는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사주면서 읽으라고 잔소리를 해 댔다. 그만큼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는 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


오래 전, 사 놓고 눈팅만 하던 나탈리 골드버그의 '버리는 글쓰기'를 읽고 있다.

이 책에 인용문이나 소개 책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하게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윌리스 스테그너의 '안전으로 넘어가다'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흥분하는 소설이다.


석달 동안이나 충격에 빠뜨렸다니!


윌리스 스테그너의 거의 마지막 소설.

이걸 쓰고 6년후 84세의 스테그너는 교통사고를 당해 장 파열로 사망했다고.


찾아보니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다.


충격적인 소설의 가능성이 궁금해서 못살겠다.


한글 번역본은 없는 것 같으니 원서로 읽을 수밖엔 없지만...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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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2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꼬리에 꼬리를 물죠. 전 최근에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 읽다가 호라이즌 이란 책이 또 궁금해졌어요. 황정은 작가가 단 한권의 책만 가진다면 이 책이라고 했거든요. 이렇게 책의 꼬리를 물고 새로운 작가를 알아가는가 너무 좋아요. 물론 그렇더라도 저는 원서는 사양입니다만... ^^

젤소민아 2025-07-29 22:39   좋아요 1 | URL
아, 바람돌이님, 그책 저도 샀어요~. 벽돌책이라 야금야금 나눠 읽고 있어요. 이야기가 드글드글한 논픽션은 참 매력적이죠. 말씀대로 꼬꼬무 독서 재밌어요~. 앞으로 꼬꼬무로 책 발견하심 귀띔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