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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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데뷔작 하나로 굉장한 입소문을 만든 장본인이다. 원서가 먼저 생겨서 원서로 먼저 읽었다. 그냥 쭉쭉 읽어나갈 정도로 쉽다. 간간이 폴 오스터가 떠오르기도 하고. 쉽지만 다시 돌아가서 되읽게 되는. 쭉쭉 읽어도 빨리 읽는다는 뜻은 아닌. 그러다 보니, 작가가 선택한 단어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번역서를 이제 구했다. 읽다가, 어쩐지 이 느낌이 아니었는데...하는 부분에서 멈춰졌다.

쉬운 표현인데도, 야, 이런 느낌 좋다...하던 부분이어서.


원문은 이렇다.


[It's drought season in Virginia. No rain in two weeks and the temperature is in triple digit, predicted to top out at 105 by evening. The late afternoon air is gauzy, so thick you can feel yourself moving through it and when I squint, I can actually see the heating rising in ripples above the macadamia driveway.] 


이미지의 향연. 그것도 무지하게 평이한 단어들로만. 그러니 대단하다 하는 거겠지.


이미지를 따라가 보자. 

버지니아 가뭄철. 버지니아에선 살아보지 않았지만 미국의 여름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습기가 일도 없다. 그냥 이러다 살이 타겠구나...싶은 지경이다. 버지니아는 습기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2주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단다. 바싹 말랐다. 게다가 뜨겁다.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퐁퐁 피어나는 게 절로 그려진다. 바로, 그런 이미지다


어찌나 뜨거운지, 온도가 세 자리 수란다. 여기서 무작정 '온도가 세 자리 수'라고 하면 한국 독자들은 '으잉?'하지 않을까? 미국의 날씨 온도 단위는 섭씨가 아닌 화씨가 일반적이라 '화씨로' 세 자리 수란 이야기겠지. 그렇다면 번역서에서는 원서에 없는 '화씨로'를 일찌감치 넣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해봤다. 미국에 살면서도 마인드는 한국이라. 쩝.


어쨌든 쨍쨍, 쩍쩍, 메마르게 타들어가는 날씨. 


오후가 되니, 공기가 'gauzy'하단다. 아주 두껍단다(so thick).

그래서 공기 속을 움직여가는 내 몸뚱이를 다 느낀단다.


하...어떤 느낌인지 빡, 감이 온다. 

이러니 대단하다 하는 거겠지. 


그런데 번역서는 이렇게 되어 있지 않다.


[늦은 오후의 공기는 투명하고 가볍고 아주 얇아서 마치 그 속을 움직여 다니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고]




뭐지? 왜 완전 반대지?


'so thick'가 어떤 연고로 '투명하고 가볍고 아주 얇아져' 버린 거지??


다 떠나서...공기가 투명하고 가볍고 얇으면 내가 공기 속을 움직여 다니는 것이 느껴지나???


절대 아니지 않나? 공기가 투명하고 가볍고 얇으면 내 몸은 조절력을 잃고 막 떠다니지 않을까? 막, 갸우뚱하게 된다. 앤드류 포터처럼 깔끔한 작가가 이리 독자를 갸우뚱하게 만들 것 같진 않다. 


그 '연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thick'이 느닷없이 'thin'으로 교체된 이유를.


아하, 앞에 있는 'gauzy'란 형용사 때문이구나.

사전에 보면 이리 되어 있다. '거즈처럼 얇고 투명한'

뭐..좋다. 이 뜻에 충실하기로 했다면. 사실, 영영사전을 봐도 그렇다. 

[resembling gauze; thin and translucent]


그렇다면 번역자는 고민을 했으리라. 

gauzy, so thick


대치되는 두 단어가 'air'를 하나로 수식하고 있으니.

그래서 'thick'를 버렸다. 단, 추측이다.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thick'이 실종된 건 뒤집을 수 없는 사실.


'thick'가 실종되면서 졸지에 '공기'는 두꺼우려다 얇아져 버렸다.

그래서 뒤에 이어지는 표현과 '반목'한다. 


화씨 105도, 즉 섭씨로 40도를 치솟은 열기 속에서 얇아지고 투명해지는 공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공기가 투명하고 얇아질 때는 청명한 봄이나 가을, 아닌가? 여름은 공기가 무거워지고 가라앉아 우리의 숨통을 내리눌러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철, 아닌가? 


'gauzy'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얇고 투명하다'는 1번 뜻 외에도.


Marriam Webster 사전의 뜻이지만 아무 영영사전에 다 있다.

2marked by vagueness, elusiveness, or fuzziness


이 '2번뜻'에 따르면 'gauzy'는 뭔가 분명치 않고, 아른아른한...

즉 '뿌옇다'는 이미지에 가깝다. 

생각하면 '거즈'가 그렇다. 얇지만 그닥 투명하지는 않다.

씨줄과 날줄로 엮여 우리 시야를 가리는 무언가가 있다. 

'see through'하지는 않는 물질이란 소리다. (뭐, 아닐 수도 있고)


그렇게 보면, 다행히, 'gauzy, so thick'은 '반목하지 않는' 수식어다.


'gauzy'하고 'thick'한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뿌옇고 두꺼운 것으로...


모호하고, 뿌옇고, 두껍고, 두터운 공기 속에서 움직이려 하면

내 움직임이 조밀하게 느껴진다.


얇고 투명한 공기 속에서는 '남'의 움직임이 잘 보이는 한편,

두껍고 뿌연 공기 속에서는 '나'의 움직임이 지각된다.


뭐,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런 긴 이야기 낭비일 수 있다. 


그런데 완전히 거꾸로 된 번역이라면...

독자로서, 받을 걸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손해 보는 거라고. 


독자는 저자가 창조한 글의 감상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독자는 저자가 그 저자만의 손끝에서 첨예하게 직조된 문장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보는 낙으로 책을 읽기 때문에. 설사, 그런 독자가 70억 중 단 한 명이라 하더라도. 


*추신/이 책의 제목이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즉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다. 물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이 책 속의 또 다른 단편 제목이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 '빛'과 '물질'의 어떤 속성에 민감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저자가 솎아내고, 저자가 천착한 '빛'과 '물질'의 이론을 알고 싶다. 이왕이면 정확히. 거꾸로, 말고. '공기'는 '빛'이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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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l 2020-05-2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읽었는데..--;; 원서로 다시 읽어보기 도전해야겠네여~번역하신 분 대단히 고민하고 하신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늘 갖고 있으나.. 느낌이 또 완전 색다르네여~

젤소민아 2020-05-29 0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가 워낙 쉬워요 ㅎㅎ 요즘 한국친구들 영어를 너무 잘해서 중학생 수준도 쉽게 읽을 레벨요~쉬운 단어를, 이렇게 이미지화할 수 있게 직조하는 능력이 대단한듯요. 다만, 사유의 깊이는 닿기가 쉽지가 않습니다~즉 리딩 레벨은 낮으나 사유의 깊이가 있어 중학생은 이해 못할 거예요. 저는 저 ‘구멍(Hole)‘이란 단편이 참 좋았어요. 꿈이란 겹현실을 통해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어찌 이리 담담한 척...얼핏, 별 것 아닌 듯 또 하나의 현실로 풀어내는지요..그래서 더 가슴 아프더군요. 그런데 꿈과 현실을 겹쳐 푸는 결말 대목에서 원서는 모두 현재/미래로 풀었는데...이게 또 기막힌 묘미죠. 사실인지, 꿈인지 모호하게...그런데 번역은 덜렁 ‘실렸다‘라고 노골적인 과거형을...원문은 ‘현재형‘도 아니고 무려 ‘미래형(will)‘인데 말이지요. 저도 번역자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솔직히 이 소설의 미학이 웅숭깊게 옮겨지지 못한 듯한 뼈맞는 아쉬움이..ㅠㅠ 물론, 제 개인 생각의 소치입니다만...원서로도 꼭 읽어 보시길요~. 더 놀라실 겁니다.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 7년간 100여 명의 치매 환자를 떠나보내며 생의 끝에서 배운 것들
고재욱 지음, 박정은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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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마지막 기억들의 구경꾼이 되어도 괜찮을까...괜찮지 않으면서 오늘도 괜찮다는 말로 시작하는 울엄마가 보일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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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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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서인가, 했다.

저자가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라 다각적인 작법의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법은커녕, 작법도 없다. 부제에 떡하니 있듯, '문학수첩'이다. 그냥 메모다. 설핏, 속은 기분을 누르지 못하며 읽어 나갔다. 그러다 또 설핏, 묘한 기분. 남의 수첩에 적힌 '메모'보고 이리 울컥한 적이 있던가?


소설가로서 나의 신념은 이것이다.

인간은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며
개별적 인간이 되어야 인간이다.
나는 그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소설가로서의 자유이자, 인간으로서의 자유이다.

아, 깜짝이야. 뭔가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도 이 핍진한 표현력으로 내색 못했던 그거, 그거! 핍진하지 않은 저자가 표현해주었다. 그렇다.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 정녕 이래야 한다. 개별적인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다가 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만나는 사람이고, 들어주는 사람이고, 받아적는 사람이고, 받아적은 것을 또 들려주는 사람이다. 아, 또 표현의 핍진함을 느껴져 저자에게 기대고 싶다.  소설가가 어째야 하는 사람인지, 명징하게 털어놔 준 그에게 감사한다.

주제 모르고 마침, 끼적이고 있는 소설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다.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기로 약속하고 저지른 일이다. 막연하던 내 행위가 단어를 얻고, 문장을 얻어 무언가로 불리어지니 '꽃'이 되는 느낌. 

감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흠. 아닌 줄 알았는데, 작법서,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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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날개 달린 것
맥스 포터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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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디 있어요?˝에서 툭, 솟는 눈물. 저자와 더불어, 황유원시인의 번역 덕이다. 번역은 짧은 문장일수록 노역을 요한다. 번역하는 사람은 안다. 그만큼 이 소설은 문장이 쉽지만, 쉽지않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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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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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아픔의 간극은 어디일까. 슬픔으로 끝내도 좋을 슬픔은 어디까지일까. 슬퍼하기도 전에 아픔이 되어버린 슬픔이 바다가 되어 사는 동안 내내 일렁인다면 어찌될까. 이 소설은 그런 슬픔이 제발로 바다로 걸어들어간 이야기다. 바다처럼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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