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소설 부는 젤소민아 (젤소민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젤소미나가 원했던 건 한 줌의 공유. 잠파노는 그걸 안 줬다. 그래도 젤소미나는 나팔을 분다. 젤소민아는 소설을 분다. 공감해줄 세상에 대고. 빰빠라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8 Apr 2026 16:25:02 +0900</lastBuildDate><image><title>젤소민아</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056321234774580.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젤소민아</description></image><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읽고 있는 책</category><title>과거와 현재를 ‘easy‘하게 섞는 소설가의 방식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105657</link><pubDate>Sat, 21 Feb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1056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056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056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칠 년 전 어느 아침, 부엌 식탁에서 사과를 깎는데 곁에서 커피를 내리던 헌수가 &lt;러브 허츠&gt;를 틀었다.-어? 나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br>219p<br>방금 전 로버트가 내게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물었을 때&nbsp;저날 헌수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br>222p<br>김애란 소설가가&nbsp;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br>소설에는 '과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소설 전체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과거'는 소설 속 인물에게 '현재'를 만든 근거이기 때문이다.<br>아무리 현재에만 발 딛고 걷는 인물이라 해도어디에서는 반드시 과거가 디뎌지게 마련이다.<br>모르긴 몰라도, 소설가에게 '과거'는 생명줄과 같다.과거 없이 인물의 현재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br>요는, 그런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br>내가 보기에 소설가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이런 정도다.<br>1) 작심하고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br>-그때는 1973년 이른 봄이었다.-5년 전, 여름이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br>2)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br>-오렌지를 먹다 보니 오렌지를 좋아하던 친구가 떠오른다.-아버지는 화가 나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아예 말을 잃던 날이 떠오른다.<br>이 둘에서 아마도 그닥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이런 방식들의 공통점은 '현재'가 먼저란 것이다.<br>인물은 현재에 먼저 살고 있고, 현재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현재와 연결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뛰어들건, 그 지점을 떠올린다.<br>그런데 김애란 소설가의 방식을 보자.<br>확연하게, 과거가 먼저다.칠년 전, 화자가 부엌에서 사과를 깎는데 헌수가 음악을 틀던 그때.그때의 과거.<br>현재는 그 다음이다.<br>방금 전 로버트가 한국어로 '안녕'이 뭐라 묻고 화자는 과거의 그 지점을 떠올린다.<br>위에서 말한 2)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에 속한다.<br>그런데 다르다.<br>아니, 같은 지도 모른다.엄연히 '떠오른다'란 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br>그런데 다르다.아니, 다르게 '느껴진다'.<br>왜냐하면 과거가 먼저 진술되었기 때문이다.현재가 그 다음에 불려온다.과거로부터 현재가 불려오는 방식이다.<br>말하자면 과거가 먼저 나왔기에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것 같은.<br>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렸는데도 말이다.<br>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이 방식을 쓰는 과정의 김애란 소설가가 그려진다.<br>고민했을 것이다.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br>굳이 'easy'란 영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로버트'가 등장하다 보니 이 소설에 영어문장이 좀 나온다.<br>그리고쉽다...는 한글 단어 한 마디로 'easy'를 단언할 수는 없어서다.<br>'easy'의 어원은 'aisier'.여기에는 '쉽다'만 품어있지 않다.'쉽다'가 되기 위해&nbsp;<br>활용하다/가능하게 하다<br>란 의미가 기반이 되었다.<br>다시 앞으로 돌아가서...<br>김애란 같은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소설의 많은 요소(요인)를 '활용'하는 게 무조건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그런 요소가 품은 가능태를 백퍼센트 현실태로 펼쳐놓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br>사실, 개인적으로 나는그 활용을 더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소설가야말로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br>김애란 소설가는&nbsp;이 단편소설의 서두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br>과거를 먼저 배치하고,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식으로,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기존의 방식을 쓰되과거에서 현재가 당겨지는 식으로.<br>이게 철저한 전략 하에 이루어졌는지,&nbsp;워낙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easy 하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br>그러나 독자로서 나는 완전히 설득되었다.<br>'easy'는 14세기 후반부터 '쉽게 양보되는,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이란 뜻이 포함된다.<br>Meaning "readily yielding, not difficult of persuasion" is from 1610s.&nbsp;<br>https://www.etymonline.com/word/easy<br>이렇게 한글소설의 후기를 쓰다가 맥락없이 영어 단어의 어원을 들먹이는 데는이유가 더 있다.<br>-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어떤?-'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br>254p<br>이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해서다.아,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말의 '안녕'과 영어의 'ease'는 통한다.'평안하다'는 의미에서.<br>로버트는 캐나다 퀘벡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자기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었다.<br>223p<br>그 뒤로 소설가는 '더없이 편안하게' 과거로 걸어들어간다.&nbsp;심지어 헌수와 커피를 마시던 그날 아침으로도 다시 간다.<br>그리고 드디어 현재다.<br>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br>232p<br>그리고 결말에서 소설은 다시 소설 서두의 '러브 허츠' 지점으로 돌아간다.<br>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nbsp;엉뚱하게도 우리가 &lt;러브 허츠&gt;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br>252p<br>앞서 화자가 오가던 현재와 과거의 기로들이절묘하게 결말에서 조우한다.<br>서로가 서로를 'easy'하게 불러들인다.<br>이 소설의 엔딩은&nbsp;로버트가 '안녕'이란 단어의 뜻을 묻던 과거로 잠시 돌아갔다가화자가 '안녕'이란 말을 현재에서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br>과거와 현재는 구분된다.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나뉘어진다.<br>김애란 소설가의 손끝에 과거와 현재는 어우러진다.늘 앞서던 소설 속 현재가 사이좋게 과거에 자리를 내어준다.<br>어떤 게 과거고, 현재인지 헛갈리지 않는다.무책임하게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br>과거의 이쪽에서 현재의 저쪽에서&nbsp;과거의 현재가 어깨를 기대고휘파람 한 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정겨움이 있다.&nbsp;<br>그 정겨움 속에서 독자는 소설에 완전히 설득되어어느새 '안녕'해지고 만다.<br>적어도, '나'란 독자는 그랬다.<br>*여기서부터는 나의 사족이다.<br>띠지에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란 평론가의 말이 있다.<br>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다들 알 것이다.좋은 뜻이다.<br>김애란이 그만큼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잘 그려낸다는,사회를 잘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다.<br>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학자가 쓰는 소설은....쩝.<br>나는 김애란이 어떤 '학자'도 되지 말고,더구나 사회학자는 되지 말고,오로지 '소설가로만'더더더더 '소설가로만' 남아주길 간절히 기도할테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다 읽은 책</category><title>사소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 [이처럼 사소한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59241</link><pubDate>Sat, 31 Jan 2026 0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59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6042&TPaperId=17059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8/68/coveroff/k47293604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6042&TPaperId=17059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처럼 사소한 것들</a><br/>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br/></td></tr></table><br/>이 소설을 읽기 전에 두 가지 태도를 접할 수 있었다.<br>1. 재미도 없고 별로인데 왜 좋다는 거죠?2. 엄청 좋은데 뭐가 좋은지 정확히는 모르겠다.<br>이 의문을 머리에 달고 첫 페이지를 폈다.나는 어디에 서게 될까, 하면서.<br>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짧기도 하고.<br>완독 후 3번의 태도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br>3. 사소해서 좋다, 라고.<br>거대 악을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라&nbsp;사소한 선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nbsp;어떻게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같다.<br>어떤 인간이 되려는 소설이라기보다는&nbsp;사소하기 그지없어서 세상 모든 걸 사소하게 보고그렇기에 자기 삶에서 사소하게 남더라도&nbsp;그런 인간이 어째서 우리에게 중요한지.<br>이 소설의 소재인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 착취를 파헤치며고발 소설로 썼다면&nbsp;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긴장감과 자극, 재미를 만들 수는 있었을 지 모른다.<br>독자의 분노와 정의감이란 선명한 공감도 몇 배는 더 쉽게 끌어냈을지 모른다.<br>
하지만 과연 그 방식이 지금의 이 소설보다 더 문학적이었을까.&nbsp;<br>소설가는 철저하게 그 길을 벗어나기로 한다.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사소한 것들을 다루는데 그 방식조차 사소하다.그게 이 소설의 메타적 미학 같다.&nbsp;<br>심지어 펄롱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생부의 존재조차 크게 다루지 않을 정도다.&nbsp;지나치듯,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태도로 흘려보낸다.&nbsp;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태도...<br>출생의 비밀조차 드라마로 만들지 않겠다는 절제.<br>
이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nbsp;소설에는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고,&nbsp;중요해 보이는 장면, 강조하고 싶은 순간이 반드시 등장한다.&nbsp;<br>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오히려 썼던 문장을 땀흘려 지워내는 키건을 느낀다.<br>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대신 덜어내는 쪽을 택한 선택들, 그그 과감함과 노련함이 읽는 내내 느껴진다.<br>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뚜렷하게 남는다.<br>
“아, 사소한데 좋다, 아니, 사소해서 좋다."<br>
알고 보면 이 소설의 바탕에는 막달레나 세탁소라는,&nbsp;무시무시할 정도로 무거운 실화가 깔려 있다.&nbsp;<br>키건은 그 거대한 덩어리를, 마흔도 채 되지 않았고&nbsp;생부의 얼굴도 모르며 어머니마저 잃은 한 소시민, 펄롱에게 조용히 얹어 놓는다.&nbsp;<br>하지만 펄롱은 그 짐을 지고 허우적대지 않는다.&nbsp;<br>세상을 구하려 들지도 않는다.&nbsp;그는 그저 자기에게 딱 맞는 무게만큼,&nbsp;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진다.
그래서 그는 수녀원에 감금된 소녀를 ‘구출’하지 않는다.&nbsp;구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도록, 그냥 데려온다.&nbsp;<br>사람들은 묻는다. 딸이냐고.&nbsp;어느 범죄 집단에서 빼내 온 아이냐고 묻지 않는다.&nbsp;소녀 역시 그 침묵에 조용히 동참한다.&nbsp;<br>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당나귀였다.(119p)<br>광장에서 크리스마스 전등이 켜진 구유 앞에 멈춰 섰을 때도 마찬가지다.&nbsp;요셉의 밝은 옷도, 무릎 꿇은 동정녀도,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도 아니다.&nbsp;크리스마스라면 당연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들은 모두 주변으로 밀려난다.&nbsp;<br>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당나귀다.&nbsp;말 없고, 사소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존재.<br>집요하게 사소해지기로 한 작가의 태도-.<br>
펄롱은 소녀를 구한 게 아니라 곁에 남긴다.<br>단발적&nbsp;'구제'보다&nbsp;사소해 보이지만 지속적이란 면에서 오히려 '구원'에 다가든다.그래서 사소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감동이 와 닿는다.<br>사소해서 좋다.거창하게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대신,&nbsp;사소하게도사람 하나를 인간으로 남겨두는 이야기라 좋다.<br>정말로 사소한데, 그래서 더 좋다.키건은 바로 그걸 해 낸 것 같다.<br>--------------------------------------------------------------<br><br>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nbsp;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nbsp;<br>(중략)<br>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nbsp;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111p)<br>이 부분은 소설 쓰기적 관점에 봤을 때, 시점의 오류처럼 보인다.<br>이 소설 전체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였으나초점 인물은 펄롱이다.&nbsp;화자가 펄롱의 눈을 통해 이야기한다는 뜻이다.&nbsp;<br>전지적 작가(제3의 누구/내포작가)는 펄롱을 내려다보며,&nbsp;혹은 옆에서 동반하며&nbsp;펄롱에 관해 쓴다.&nbsp;펄롱이 보는 것 생각하는 것도 꿰뚫어본다.<br>펄롱이 슬프고 기쁜 때도 알아본다.&nbsp;정확하게, 때로는 일부러 '믿을 수 없는 화자'로 만들어 비뚜름하게.<br>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이 은총이 아니었나.&nbsp;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그런데 여긴 시점이 이상하다.<br>네드의 행동이 은총이 아니었나.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이건 펄롱의 느낌이다.고로, 그 문장의 주체와 화자는 명백히 펄롱인데 펄롱이 타자화되어&nbsp;'펄롱의 곁에서',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br>(나의) 곁에서(나의) 구두를<br>이라고 바꿔서 읽었다. 내 경우는, 더 좋았다.&nbsp;<br>혹시, 자유간접화법으로 전지적 작가가 개입한 것이라면,&nbsp;오류나 실책까진 아니지만 과히&nbsp;설득적이진 않다.&nbsp;왜 갑자기 전지적 작가가 이 모든 걸 정리하려 하는가.거리감 느끼게시리.<br>더구나 그 다음엔 또, 바로 주어도 없이&nbsp;<br>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br>로 이어지지 않나.<br>의도적이라고 하면 그 의도가 잘 읽히지 않는데,물론, 이건 독자인 내쪽의 빈약함일 수도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8/68/cover150/k47293604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38680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