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소설 부는 젤소민아 (젤소민아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젤소미나가 원했던 건 한 줌의 공유. 잠파노는 그걸 안 줬다. 그래도 젤소미나는 나팔을 분다. 젤소민아는 소설을 분다. 공감해줄 세상에 대고. 빰빠라빰.</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8 Apr 2026 13:19:5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젤소민아</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056321234774580.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젤소민아</description></image><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읽고 있는 책</category><title>과거와 현재를 ‘easy‘하게 섞는 소설가의 방식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105657</link><pubDate>Sat, 21 Feb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1056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056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056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칠 년 전 어느 아침, 부엌 식탁에서 사과를 깎는데 곁에서 커피를 내리던 헌수가 &lt;러브 허츠&gt;를 틀었다.-어? 나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br>219p<br>방금 전 로버트가 내게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물었을 때&nbsp;저날 헌수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br>222p<br>김애란 소설가가&nbsp;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다.<br>소설에는 '과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소설 전체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과거'는 소설 속 인물에게 '현재'를 만든 근거이기 때문이다.<br>아무리 현재에만 발 딛고 걷는 인물이라 해도어디에서는 반드시 과거가 디뎌지게 마련이다.<br>모르긴 몰라도, 소설가에게 '과거'는 생명줄과 같다.과거 없이 인물의 현재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br>요는, 그런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br>내가 보기에 소설가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은 이런 정도다.<br>1) 작심하고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br>-그때는 1973년 이른 봄이었다.-5년 전, 여름이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br>2) 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br>-오렌지를 먹다 보니 오렌지를 좋아하던 친구가 떠오른다.-아버지는 화가 나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아예 말을 잃던 날이 떠오른다.<br>이 둘에서 아마도 그닥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이런 방식들의 공통점은 '현재'가 먼저란 것이다.<br>인물은 현재에 먼저 살고 있고, 현재에서 어떤 계기가 있어현재와 연결된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뛰어들건, 그 지점을 떠올린다.<br>그런데 김애란 소설가의 방식을 보자.<br>확연하게, 과거가 먼저다.칠년 전, 화자가 부엌에서 사과를 깎는데 헌수가 음악을 틀던 그때.그때의 과거.<br>현재는 그 다음이다.<br>방금 전 로버트가 한국어로 '안녕'이 뭐라 묻고 화자는 과거의 그 지점을 떠올린다.<br>위에서 말한 2)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린다, 에 속한다.<br>그런데 다르다.<br>아니, 같은 지도 모른다.엄연히 '떠오른다'란 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br>그런데 다르다.아니, 다르게 '느껴진다'.<br>왜냐하면 과거가 먼저 진술되었기 때문이다.현재가 그 다음에 불려온다.과거로부터 현재가 불려오는 방식이다.<br>말하자면 과거가 먼저 나왔기에 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것 같은.<br>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렸는데도 말이다.<br>별 것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이 방식을 쓰는 과정의 김애란 소설가가 그려진다.<br>고민했을 것이다.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br>굳이 'easy'란 영어를 쓰는 이유가 있다.'로버트'가 등장하다 보니 이 소설에 영어문장이 좀 나온다.<br>그리고쉽다...는 한글 단어 한 마디로 'easy'를 단언할 수는 없어서다.<br>'easy'의 어원은 'aisier'.여기에는 '쉽다'만 품어있지 않다.'쉽다'가 되기 위해&nbsp;<br>활용하다/가능하게 하다<br>란 의미가 기반이 되었다.<br>다시 앞으로 돌아가서...<br>김애란 같은 베테랑 소설가라고 해서 모든 게 'easy'하지 않다.소설의 많은 요소(요인)를 '활용'하는 게 무조건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그런 요소가 품은 가능태를 백퍼센트 현실태로 펼쳐놓지는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br>사실, 개인적으로 나는그 활용을 더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소설가야말로 베테랑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br>김애란 소설가는&nbsp;이 단편소설의 서두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br>과거를 먼저 배치하고,과거가 현재를 불러오는 식으로,현재에서 과거를 떠올리는 기존의 방식을 쓰되과거에서 현재가 당겨지는 식으로.<br>이게 철저한 전략 하에 이루어졌는지,&nbsp;워낙 몸에 익어 자연스럽게(easy 하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br>그러나 독자로서 나는 완전히 설득되었다.<br>'easy'는 14세기 후반부터 '쉽게 양보되는, 설득하기 어렵지 않은'이란 뜻이 포함된다.<br>Meaning "readily yielding, not difficult of persuasion" is from 1610s.&nbsp;<br>https://www.etymonline.com/word/easy<br>이렇게 한글소설의 후기를 쓰다가 맥락없이 영어 단어의 어원을 들먹이는 데는이유가 더 있다.<br>-우리말의 '안녕'에는 '반갑다'는 뜻과 '잘 가'라는 뜻 말고도 또다른 의미가 있어.-어떤?-'평안하시냐'는 혹은 '평안하시라'는 뜻.<br>254p<br>이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해서다.아,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우리말의 '안녕'과 영어의 'ease'는 통한다.'평안하다'는 의미에서.<br>로버트는 캐나다 퀘벡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자기 고향을 지키는 사람이었다.<br>223p<br>그 뒤로 소설가는 '더없이 편안하게' 과거로 걸어들어간다.&nbsp;심지어 헌수와 커피를 마시던 그날 아침으로도 다시 간다.<br>그리고 드디어 현재다.<br>수업에 들어오며 로버트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인사했었다.<br>232p<br>그리고 결말에서 소설은 다시 소설 서두의 '러브 허츠' 지점으로 돌아간다.<br>헌수는 내게 두서없는 말을 늘어놓다&nbsp;엉뚱하게도 우리가 &lt;러브 허츠&gt;를 들은 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br>252p<br>앞서 화자가 오가던 현재와 과거의 기로들이절묘하게 결말에서 조우한다.<br>서로가 서로를 'easy'하게 불러들인다.<br>이 소설의 엔딩은&nbsp;로버트가 '안녕'이란 단어의 뜻을 묻던 과거로 잠시 돌아갔다가화자가 '안녕'이란 말을 현재에서 쓰는 것으로 완성된다.<br>과거와 현재는 구분된다.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나뉘어진다.<br>김애란 소설가의 손끝에 과거와 현재는 어우러진다.늘 앞서던 소설 속 현재가 사이좋게 과거에 자리를 내어준다.<br>어떤 게 과거고, 현재인지 헛갈리지 않는다.무책임하게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br>과거의 이쪽에서 현재의 저쪽에서&nbsp;과거의 현재가 어깨를 기대고휘파람 한 줄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정겨움이 있다.&nbsp;<br>그 정겨움 속에서 독자는 소설에 완전히 설득되어어느새 '안녕'해지고 만다.<br>적어도, '나'란 독자는 그랬다.<br>*여기서부터는 나의 사족이다.<br>띠지에 "나는 김애란이 오랫동안 사회학자였고 이제야말로 유감없이 그렇다고 주장할 것이다."란 평론가의 말이 있다.<br>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다들 알 것이다.좋은 뜻이다.<br>김애란이 그만큼 소설 속에서 우리 사회를 잘 그려낸다는,사회를 잘 이해한다는 뜻일 것이다.<br>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학자가 쓰는 소설은....쩝.<br>나는 김애란이 어떤 '학자'도 되지 말고,더구나 사회학자는 되지 말고,오로지 '소설가로만'더더더더 '소설가로만' 남아주길 간절히 기도할테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다 읽은 책</category><title>사소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 [이처럼 사소한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59241</link><pubDate>Sat, 31 Jan 2026 0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592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6042&TPaperId=170592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8/68/coveroff/k47293604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6042&TPaperId=170592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처럼 사소한 것들</a><br/>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br/></td></tr></table><br/>이 소설을 읽기 전에 두 가지 태도를 접할 수 있었다.<br>1. 재미도 없고 별로인데 왜 좋다는 거죠?2. 엄청 좋은데 뭐가 좋은지 정확히는 모르겠다.<br>이 의문을 머리에 달고 첫 페이지를 폈다.나는 어디에 서게 될까, 하면서.<br>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짧기도 하고.<br>완독 후 3번의 태도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br>3. 사소해서 좋다, 라고.<br>거대 악을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라&nbsp;사소한 선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nbsp;어떻게 인간을 인간으로 남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같다.<br>어떤 인간이 되려는 소설이라기보다는&nbsp;사소하기 그지없어서 세상 모든 걸 사소하게 보고그렇기에 자기 삶에서 사소하게 남더라도&nbsp;그런 인간이 어째서 우리에게 중요한지.<br>이 소설의 소재인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 착취를 파헤치며고발 소설로 썼다면&nbsp;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긴장감과 자극, 재미를 만들 수는 있었을 지 모른다.<br>독자의 분노와 정의감이란 선명한 공감도 몇 배는 더 쉽게 끌어냈을지 모른다.<br>
하지만 과연 그 방식이 지금의 이 소설보다 더 문학적이었을까.&nbsp;<br>소설가는 철저하게 그 길을 벗어나기로 한다.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사소한 것들을 다루는데 그 방식조차 사소하다.그게 이 소설의 메타적 미학 같다.&nbsp;<br>심지어 펄롱이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생부의 존재조차 크게 다루지 않을 정도다.&nbsp;지나치듯,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태도로 흘려보낸다.&nbsp;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태도...<br>출생의 비밀조차 드라마로 만들지 않겠다는 절제.<br>
이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nbsp;소설에는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기기 마련이고,&nbsp;중요해 보이는 장면, 강조하고 싶은 순간이 반드시 등장한다.&nbsp;<br>이 소설을 읽는 동안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오히려 썼던 문장을 땀흘려 지워내는 키건을 느낀다.<br>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대신 덜어내는 쪽을 택한 선택들, 그그 과감함과 노련함이 읽는 내내 느껴진다.<br>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뚜렷하게 남는다.<br>
“아, 사소한데 좋다, 아니, 사소해서 좋다."<br>
알고 보면 이 소설의 바탕에는 막달레나 세탁소라는,&nbsp;무시무시할 정도로 무거운 실화가 깔려 있다.&nbsp;<br>키건은 그 거대한 덩어리를, 마흔도 채 되지 않았고&nbsp;생부의 얼굴도 모르며 어머니마저 잃은 한 소시민, 펄롱에게 조용히 얹어 놓는다.&nbsp;<br>하지만 펄롱은 그 짐을 지고 허우적대지 않는다.&nbsp;<br>세상을 구하려 들지도 않는다.&nbsp;그는 그저 자기에게 딱 맞는 무게만큼,&nbsp;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진다.
그래서 그는 수녀원에 감금된 소녀를 ‘구출’하지 않는다.&nbsp;구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도록, 그냥 데려온다.&nbsp;<br>사람들은 묻는다. 딸이냐고.&nbsp;어느 범죄 집단에서 빼내 온 아이냐고 묻지 않는다.&nbsp;소녀 역시 그 침묵에 조용히 동참한다.&nbsp;<br>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당나귀였다.(119p)<br>광장에서 크리스마스 전등이 켜진 구유 앞에 멈춰 섰을 때도 마찬가지다.&nbsp;요셉의 밝은 옷도, 무릎 꿇은 동정녀도,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도 아니다.&nbsp;크리스마스라면 당연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것들은 모두 주변으로 밀려난다.&nbsp;<br>아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당나귀다.&nbsp;말 없고, 사소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존재.<br>집요하게 사소해지기로 한 작가의 태도-.<br>
펄롱은 소녀를 구한 게 아니라 곁에 남긴다.<br>단발적&nbsp;'구제'보다&nbsp;사소해 보이지만 지속적이란 면에서 오히려 '구원'에 다가든다.그래서 사소하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은 감동이 와 닿는다.<br>사소해서 좋다.거창하게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 대신,&nbsp;사소하게도사람 하나를 인간으로 남겨두는 이야기라 좋다.<br>정말로 사소한데, 그래서 더 좋다.키건은 바로 그걸 해 낸 것 같다.<br>--------------------------------------------------------------<br><br>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nbsp;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nbsp;<br>(중략)<br>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nbsp;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111p)<br>이 부분은 소설 쓰기적 관점에 봤을 때, 시점의 오류처럼 보인다.<br>이 소설 전체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였으나초점 인물은 펄롱이다.&nbsp;화자가 펄롱의 눈을 통해 이야기한다는 뜻이다.&nbsp;<br>전지적 작가(제3의 누구/내포작가)는 펄롱을 내려다보며,&nbsp;혹은 옆에서 동반하며&nbsp;펄롱에 관해 쓴다.&nbsp;펄롱이 보는 것 생각하는 것도 꿰뚫어본다.<br>펄롱이 슬프고 기쁜 때도 알아본다.&nbsp;정확하게, 때로는 일부러 '믿을 수 없는 화자'로 만들어 비뚜름하게.<br>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이 은총이 아니었나.&nbsp;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그런데 여긴 시점이 이상하다.<br>네드의 행동이 은총이 아니었나.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br>이건 펄롱의 느낌이다.고로, 그 문장의 주체와 화자는 명백히 펄롱인데 펄롱이 타자화되어&nbsp;'펄롱의 곁에서',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br>(나의) 곁에서(나의) 구두를<br>이라고 바꿔서 읽었다. 내 경우는, 더 좋았다.&nbsp;<br>혹시, 자유간접화법으로 전지적 작가가 개입한 것이라면,&nbsp;오류나 실책까진 아니지만 과히&nbsp;설득적이진 않다.&nbsp;왜 갑자기 전지적 작가가 이 모든 걸 정리하려 하는가.거리감 느끼게시리.<br>더구나 그 다음엔 또, 바로 주어도 없이&nbsp;<br>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br>로 이어지지 않나.<br>의도적이라고 하면 그 의도가 잘 읽히지 않는데,물론, 이건 독자인 내쪽의 빈약함일 수도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38/68/cover150/k47293604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386807</link></image></item><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읽고 있는 책</category><title>80년 동안 글을 쓴다는 것의 힘 -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48977</link><pubDate>Tue, 27 Jan 2026 04: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489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5831&TPaperId=170489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42/56/coveroff/89301058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105831&TPaperId=170489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a><br/>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03월<br/></td></tr></table><br/>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 짧은 글을 쓴다.(7p)<br>존 버거는 1926년 생을 얻고 2017년에 죽음을 얻었다.팔십 년간 글을 썼다면 91세까지 살았으니, 11세부터 글을 썼다고 셈한 것이다.<br>글을 쓴다는 건 많이 쓰는 것보다 '오래' 쓰는 게 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br>어른이 돼서, 할 일 다 하고,&nbsp;시간이 좀 남기 시작하고, 머리에 생각할 여유가 좀 생기고...<br>그럴 때 쓰기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진다.누가 알아주든 말든, 상을 받은 말든, 잘 쓰든 못 쓰든...어렸을 때부터, 그냥 써 온 사람이 조금은 글쓰기에 유리하다는 생각이다.<br>주변에서 보면 그렇다.<br>글 잘 쓰는 사람 치고, '오래' 쓰지 않은 사람이 없다.이미 어렸을 때부터 썼다. 쓰기 시작했다.<br>물론, 나이들어 글 쓸 필요가 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다만, 어렸을 때부터 써서 나중에 80년 간 글을 써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글쓰기에 관해서만큼은 뭔가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다.&nbsp;<br>존 버거가 그렇듯이.<br>번역은 두 언어들 사이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nbsp;삼각형의 세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씌어지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br>(8p)<br>좋은 문장은 결이 많다.그 많은 결은 동일성과 상이성을 모두 품고 있다.이 떄의 '상이성'이나 '이질감' 또한 전체로 보면&nbsp;'맥이 통한다'라고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br>이 문장은 좋은 문장이고-존 버거가 썼으니까-그런 만큼 결이 다층적이다.<br>여기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대입해도 말이 된다.<br>소설,을 한 번 넣어보자.<br>소설은 현실과 언어 사이의 단순한 대응이 아니다.&nbsp;소설을 현실의 모사나 재현으로 이해하는 순간,&nbsp;우리는 이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친다.&nbsp;<br>소설은 현실과 언어의 이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위 인용글처럼).&nbsp;그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nbsp;인물이 말을 하기 전,
세계가 아직 이야기로 굳어지기 전의 어떤 상태가 놓여 있다.&nbsp;<br>감정이 아직 감정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의 상태,&nbsp;의미가 의미로 확정되기 전의 불안정한 떨림이 거기 있다.그래서 소설은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nbsp;<br>소설은 언제나 이미 일어난 일 뒤로 물러나,&nbsp;그것이 일어나기&nbsp;이전의&nbsp;필연을 더듬는다.&nbsp;사건은 결과로 제시되지만,&nbsp;소설이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그 사건이 불가피해지기까지의 시간이다.말해지지 않은 선택들,&nbsp;침묵 속에서 축적된 압력 같은 것들...&nbsp;<br>소설의 문장은 현실을&nbsp;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nbsp;현실이 언어가 되기 전의 상태를 다시 통과하려는 시도다.<br>나는 그래서, 진정한 소설은 언제나 시작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이다.&nbsp;소설은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언제나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지점으로 돌아간다.&nbsp;그래서 첫 문장은 출발선이 아니라 도착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말해질 수 없었던 것,
말해질 필요조차 인식되지 않았던 것에&nbsp;마침내 언어가 닿는 순간,&nbsp;나는 그런 게 소설이 아닐까 한다.&nbsp;<br>많은 경우, 소설은 이야기를 만드는 장르라고 생각한다.아니, 소설은&nbsp;이야기가 되기 이전의 세계를 다시 불러오는 문학이다.그렇게 소설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nbsp;그러나 바로 그 늦음 덕분에 소설은 비로소 명확해진다.<br>소설을 읽고 "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라고 느끼는 것보다"아, 어떤 상태를 통과했다."라고 느낄 때,읽은 소설이 더 좋은 소설일 가능성이 높다.<br>지금, 우리가 베스트셀러 소설, 혹은 인기 소설, 혹은 좋은 소설이라고 하는 게과연 소설다움에 정말 근접해 있는지 묻고 싶다.난해하고 복잡하고 뭔 말인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인기 없다고 해서,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nbsp;아직 언어화되지 못한 어떤 '사건'이나 '감정'이나 '상태가'&nbsp;워낙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그렇다고...그리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br>물론, 그렇다고 무작정 난해한 소설은 나 역시 반기지 않는다.다만, 소설을 덮고 어딘가를 통과한 느낌인데, 온 몸이 고단하고 피곤하긴 해도,달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막연히 느끼는 순간...그게 소설 읽기의 마력같다.&nbsp;<br>일부러 오지만 찾아 다니는 여행가가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사람들이 찾지 않을 만한 곳에 있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긴 의미가 무수하고...<br>닿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nbsp;&nbsp;<br>두 장 읽었는데 이리 길게 쓸 거리가 있다.언제 이렇게 썼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그것만 해도 존 버거는 역시 대단하다.<br>글 잘 쓰는 사람은, 생각할 거리, 글 쓸 거리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법이다.80년 간 글 쓴 사람답다.<br>진짜로 이제&nbsp;겨우&nbsp;두 페이지 읽었는데...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442/56/cover150/89301058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4425657</link></image></item><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다 읽은 책</category><title>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 소설가가 한 일 - [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44439</link><pubDate>Sun, 25 Jan 2026 1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444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2721&TPaperId=170444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9/93/coveroff/k86203272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2721&TPaperId=170444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a><br/>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br/></td></tr></table><br/><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이주란의 &lt;겨울정원&gt;을 읽다가 가장 먼저 감지한 건&nbsp;</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이 소설엔 제스처가 별로 없다는 것-.</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인물은 의미심장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h3>심지어 소설의 시작은 '반복되는 일상'이다.이건 특히 소설의 서두에서 잘 안 쓰는 건데...<h3 style="font-family: ">봄과 여름 내 만개했던 것들이 모두 진 십일월부터,</h3><h3 style="font-family: ">하루 중 가장 볕이 따뜻한 오후 한 시간 동안 난 꼬박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h3>14p)<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br></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지금이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nbsp;</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십일월부터 화자는 한 시간 동안 텅 빈 정원을 바라본다. 아무 것도 없는 정원을.</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이렇게 되면 소설을 끌고 가기 힘들어진다.</h3><br>너무 가라앉았다. 거기서 '동요'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동요없는 소설을, 특히 요즘 독자들은 읽으려 들지 않는다.물론, 소설은 읽히기 위한 게 목적은 아니지만.<br><br><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이 소설은 '제스처'보다는 상태/상황 설명이 위주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작은 행동을 개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그 행동들을 뭉뚱그려 진술한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가라앉은 분위기엔...어울린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분위기는 가라앉았는데, 사소한 움직임이 뚜렷하면 텍스처가 깨진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이 소설에서 삶은 그래서 '장면'으로 존재하기보다</h3><h3 style="font-family: ">점으로 찍히는 편이다.</h3><br><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어제의 점, 오늘의 점, 내일의 점이 이 소설에서는 서로 크게 다르지가 않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독자는 다르길 기대할텐데...읽으면서 걱정이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겨울정원'의 서사는 도통 진행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다.&nbsp;</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그런데 이 반복은 짐짓 독특하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무기력이나 서사적 실패의 결과로 읽히지 않는다.</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아하, 오히려 그것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형식일까.</h3><br><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말하자면, 이 소설은&nbsp;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nbsp;</h3><h3 style="color: rgb(36, 36, 36); font-family: ">소설가가 아주 많은 일을 한 소설 같다.</h3>배제하기-.<br><br>금주 언니가 과메기가 있다면 화자(혜숙)을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만 해도 그렇다.과메기는 이 가라앉은 소설에서 동요를 일으킬 만한 ‘특별함’의 기표다.&nbsp;계절적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야 하며, 일상을 벗어나는 식탁을 암시한다.&nbsp;<br>그러나 혜숙은 그 초대마저 오늘,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다른 날로 미룬다.&nbsp;그 결과 혜숙의 ‘오늘’에는 역시 별 사건이 추가되지 않는다.&nbsp;과메기는 가능성으로만 남고, 실현되지 않는다.&nbsp;<br>치밀한 배제가 다시 일어난다.<br>'겨울정원'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유예한다.이 유예가 반복될수록 독자는 깨닫게 될 것이다.&nbsp;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nbsp;사건이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란&nbsp;것을.<br>난 단순하게 산다. 오피스텔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와서 씻고 밥을 먹고텔레비전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잠을 잔다.(15p)<br>(아...진짜 소설을 얼마나 힘들게 써나가려고 이러시나...)<br>'겨울정원'에서 이룬 또 하나의 놀라운 일은 현재에 대한 집착이다.정말 많은 소설이 오늘을 설명하려 과거를 호출하길 즐긴다.'겨울정원'은 과거를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단 한 번 등장하는 과거—오인환과 함께 용궁사에 갔던 기억—마저도 회상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기억은 설명되지 않고, 의미화되지 않으며, 현재를 변형시키지도 않는다.&nbsp;<br>이주란은 '겨울정원'에서 소설 속 과거의 기능을 새롭게 발견했다.과거는 지금과 그저 조금 다를 뿐이라는-.<br>혜숙에게 오인환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데&nbsp;그 부재 역시 극적인 상실로 처리되지 않는다.또 다시 철저한 배제-.<br>과거를 최소화한 자리에 남는 것은 당연히 현재다.현재의 미세한 흔들림이다.&nbsp;<br>그 미세한 흔들림의 종류는 이러하다.<br>겨울 정원에 까치가 날아든다.초등학교 동창회 단톡방에 보낼 연말 인사말을 ‘교양 있게’ 쓰고 싶어 한다.<br>이런 식이다.이 소설은&nbsp;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연히 걸려드는 작은 변화를&nbsp;붙잡는 방식을 즐겨 쓴다.<br>이 소설에서 가장 큰 떨림은딸 미래에게 찾아온 설렘이다.&nbsp;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혜숙의 감정이다.&nbsp;<br>지금 미래에게 생겨난 저 마음이,&nbsp;언젠가는 내게도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까 생각하면&nbsp;이미 겪은 일도 지금 겪고 있는 일도 아닌데 조금 슬프다.<br>44p<br>혜숙은 그 설렘이 자신의 미래에도 올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그러다 조금 슬퍼진다. 이 슬픔은 설명되지 않는다. 원인도, 결론도 없다. 다만 그날의 일상에 아주 작은 금이 간다. 이 균열은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흡수된다.&nbsp;<br>하지만 독자는 느낀다.이 소설에서 허용된 최대치의 사건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br>'겨울정원'의 미학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삶’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nbsp;그건 너무 지루한 소설이다.<br>이 소설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오히려 굉장히 분주하다.<br>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도록 소설 속 모든 것을 장악한&nbsp;소설가의&nbsp;성실한 자제력 떄문이다.<br>소설가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다.그런데 그 가능성을 하나씩 차단한다.&nbsp;감정이 커질 수 있는 지점에서는 문장을 낮추고,&nbsp;서사가 확장될 수 있는 순간에는 시간을 멈춘다.&nbsp;<br>그 결과 독자는 누군가의 지루한 삶이 아니라,&nbsp;완벽하게 통제된 평온 같은 걸&nbsp;마주하게 된다.<br>이 소설은 묻는다.&nbsp;<br>우리 삶이 반드시 극적으로 변화해야만 의미가 있는가.&nbsp;감정이 꼭 폭발해야만 진짜인가.&nbsp;<br>그리고 소설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nbsp;그렇지 않다고.&nbsp;<br>어떤 삶은 반복되기 때문에 성립하고,&nbsp;어떤 감정은 이름 붙이지 않기 때문에 유지된다고.<br>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남는 것은 감동이라고 할 수 없다.감동 '꺼리'는 없는데, 이상하게 감동적이다.<br>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nbsp;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소설의 형식이 되는 경험.&nbsp;<br>'겨울정원'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소설이다.<br>소설가에게 묻고 싶다.대체, 어떻게 참았느냐고.<br>엄마는 단순한 게 아니라 성실한 거였어.<br>39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9/93/cover150/k8620327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999336</link></image></item><item><author>젤소민아</author><category>다 읽은 책</category><title>내 보기엔, 소설에서 시작해 소설로 끝나는 철학서 - [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37185</link><pubDate>Thu, 22 Jan 2026 0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5632123/170371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43688&TPaperId=170371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05/12/coveroff/893494368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43688&TPaperId=170371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a><br/>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09월<br/></td></tr></table><br/>한병철 철학가는 학부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했다.뮌헨대학교에서 철학, 독일문학,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다.<br>금속공학과 철학/문학/신학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을까.무엇이 징검다리가 되어 한병철을 이끌었을까.<br>그 사이, 한병철의 녹녹치 않았을 고민의 두께가 느껴진다.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금속공학과 철학의 관계를. 물론, 내 멋대로.<br>금속공학은 '물질'을 다룬다.아마도 금속이 어떤 압력과 온도를 거쳐 어떤 성질을 갖게 되는지,&nbsp;외부 힘이 가해질 때 어떻게 변형되고 피로해지는지, 연구하지 않을까 싶다.<br>여기서 얻어지는 단어가 있다.<br>강도내구성피로감변형<br>(그가 '피로사회'를 썼다는 건 다 아는 사실)<br>이 단어들은 언뜻 봐도, 이미 철학으로 고개를 향하고 있다.<br>철학은 인간과 사회를 다룬다.철학 속 인간은&nbsp;지속적인 압력 속에서 닳아가는 존재이다.<br>성과를 요구 받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끝내 피로해지고 마는 현대인.<br>어느새 금속공학과 이어져 버렸다..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금속공학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철학은 “왜 이렇게까지 견뎌야 하는가”를 묻는 것 아닐까.<br>어쩌면 한병철은 금속을 연구하다가 '견딤'에 천착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사실이 뭐든간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br>한병철의 책은 모두 갖고 있다.&nbsp;두께가 얇고 판형이 작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가더라도쏙 넣고 다니기에 딱 좋다. 누군가를,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릴때,즉 '견뎌야 할 때' 동반하기 좋다.<br>한병철의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서사의 위기', 그리고 '사물의 소멸'<br>내가 소설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br>아니나다를까, 이 책의 서문 첫문장은 '소설'로 시작한다.얼마나 반가운지.<br>소설 &lt;은밀한 결정&gt;에서 일보 작가 오가와 요코는 이름 없는 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한다.기이한 사건들이 섬 주민을 불안하게 한다.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물들이 사라진다. (중략) 이 모든 사물이 어떤 좋은 점을 가졌었는지 사람들은 이제 더는 모른다. 사물과 함께 기억도 사라진다.(7p)<br>오늘도 계속해서 사물들이 사라진다.&nbsp;(8p)<br>사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소통 도취와 정보 도취다.(8p)<br>정보 사냥꾼으로서 우리는 고요하고 수수한 사물들을, 곧 평범한 것들,부수적인 것들, 혹은 통상적인 것들을 못 보게 된다. 자극성이 없지만 우리를 존재에&nbsp;정박하는 것들을.&nbsp;(9p)<br>독일어 번역도 기막히게 잘 한 것 같다.한굴로 쓴 책인듯 자연스럽다.한병철의 용어는 아주 특별하다.일상적인 동시에 대단히 적확하다.<br>용어를 굳이 풀이할 필요 없을 정도로 이해가능하면서 강하게 꽂힌다.<br>이 책에서 '사물'은 곧 '자극성이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br>자극성이 없는 것은 지금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폐기 대상 1순위다.세상 모든 것(예술포함)들은 더,더,더, 자극적이지 못해 안달한다.<br>이 책에서 논하는 사물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개인적으로,&lt;연속성&gt;이다.<br>사물을 인간의 삶에 연속성을 제공하는 한에서 삶을 안정화한다.<br>(11p)<br>'연속성'은 다름 아닌, 서사의 핵이다.&nbsp;연결이 없다면 서사는 없고, 서사가 없다면 소설은 성립하지 않는다.<br>이 책에 소설 이야기는 없지만 소설 이야기로 서문을 시작하는 것부터가이 책은 소설을 진하게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br>사물 없는 소설이 어디 있던가.<br>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물을 공전한다. 사물이 인물을 공전하기도 한다.소설은 사물로 인해 사건이 진행된다.&nbsp;겉으로 보기에 사건을 움직이는 게 인물의 선택과 행위처럼 보이지만,&nbsp;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행위는 언제나 사물에 의해 촉발되고, 사물에 의해 방향 지어진다.<br>
이 책의 서문에서 인용된 &lt;은밀한 결정&gt;만 해도 사물이 하나씩 사라진다.<br>사물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고, 인물의 행위는 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다시 말해 소설의 사건은 인물의 의지보다 사물의 배치와 존재 방식에 의해 진행된다고 봐도&nbsp;과언이 아니다. 가만 보면, 인물의 행위 위주로 쓴 소설보다 사물 위주로 쓴 소설이 그래서&nbsp;더 훌륭해 보이는 이유고, 더 가만 보면, 대개의 걸작 소설은 인물보다 사물을 더 잘 활용하고 있다.<br>(전부 분석한 건 아니지만, 진실로 그럴 것 같다)<br>인물은 서사 안에서 움직이고사물이 서사를 움직여 간다...라고 나는 생각한다.<br>이 책으로 다시 돌아가자.<br>그 사물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br>극심한 사물 인플레이션.&nbsp;사물에 대한 무관심의 증가.<br>(이 책에서 따온 표현이다)<br>우리는 사물보다 정보를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어느새 우리는 모두 정보광이 되었다.(12p)<br>diskrete Ding=은은한 사물<br>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띈 단어다.<br>아울러, apprendre par coeur. 심장으로 배우기.<br>이어 붙이면 이렇다. 은은한 사물을 통해 심장으로 배우기.이건 두고 저자는 '충심'이란 단어를 또 사용한다.<br>충심의 사물.<br>하이데거의 집 현관문 위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다."온 정선으로 네 충심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이 나오기 때문이다."(중략) 생텍쥐페리도 생명을 산출하는 충심의 힘을 언급한다.여우는 헤어질 때 떠나는 어린 왕자에게 비밀 하나를 쥐여 준다."아주 간단해. 충심으로 봐야만 잘 보여.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112p)<br>충심이란, '심장'과 연관된다.심장에 아주 가까이 닿은 상태.<br>아마도 본질이, 진심이 거기 있기 때문일 것이다.<br>이 책에는 '고요'의 챕터가 있다.우리 시대의 근본 동사가 '닫다'가 아니라 '열다'라고 말한다.&nbsp;우리 시대는 열려 있다. 열린 곳으로 무언가 쏟아져 들어온다.그게 너무 양이 많아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간다.&nbsp;<br>여기에 다게르의 사진 '탕플대로'가 인용된다.<br><br>다게레오타이스 사진에 전형적인 극도로 긴 노출시간 때문에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nbsp;오로지 고요히 서 있는 것만 보인다. &lt;탕플 대로&gt;가 주는 인상은 작은 마을의 평온함에 가깝다. (중략) 이처럼 길고 느린 것에 대한 지각은 오직 고요한 사물들만 알아본다. (중략) 고요가 구원한다.<br>(124p)<br>사물이 소멸한다 하니 사물에 대한 애도를 배울 때인 것 같다.나는 어디서 '은은한 사물'을 확보할 수 있을까.나는 세상 무엇을 충심으로 느낄 것인가.<br>내겐 가장 손쉬운 방법이 소설이다.이 책 또한 그걸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br>이 책의 서문과 본문에서 소설과 소설가가 간간이 등장하는 이유는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nbsp;<br>내게 한병철은 철학가인 동시에 지극히 문학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05/12/cover150/893494368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05120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