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그럼에도 친구가 되는 여자들
서한나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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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숨어서, 이 사람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야지, 하고 맘먹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들 알아서 살 것 같은 책 말고. 내겐 그 사람이 서한나, 이다. 그(녀)에 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누가 지적하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하는 애들]이란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건 안다. 서한나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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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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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좀 보자.

'좀 보자'는 물론, '틀린' 곳이 있다는 뜻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이고

'좋은 사람은 드물다'이다.


원제는

A Good Man is Hard to Find


164쪽의 번역이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는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에 올랐다. 할머니는 한쪽 모퉁이에 하마 머리 장식이 있는 검은색의 큰 여행 가방을 챙겼고, 그 밑에 고양이 피티싱이 든 바구니를 숨겼다.


원문이다.


The next morning the grandmother was the first one in the car, ready to go. 

She had her big black valise that looked like the head of a hippopotamus in one corner, and underneath it she was hiding a basket with Pitty Sing, the cat, in it. 


플래너리 오코너의 강점은 '치밀함'과 '집요함'이다.

오코너의 단어와 문장은 어느 것 하나 설계되지 않은 게 없다.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강도 및 밀도가 더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코너의 소설은 한 문장을 너댓번은 재독하게 된다.


고로, 오코너가 배치한 단어와 문장을 오독하는 순간,

오코너의 소설은 특히, 완독할 수 없다.

명작 소설들이 그렇지만, 좋은 소설의 핵은 서사가 아니니까.

서사를 가능케 한 것은 치밀하고 집요한 직조에 있으니까.


원문은 '할머니'가 차에 제일 먼저 올라탔다는 뜻이다.

제일 먼저 준비를 마치고 차에 탔다...가 아니고.


제일 먼저 준비를 마쳐도 차에 나중에 탈 수도 있다.

원문은 'first one in the car'이다.

차에 제일 먼저 오른 사람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뒷문장이다.


She had her big black valise that looked like the head of a hippopotamus in one corner,


번역문/할머니는 한쪽 모퉁이에 하마 머리 장식이 있는 검은색의 큰 여행 가방을 챙겼고,


명백한 오류다


할머니는 검은색 큰 가방을 챙긴 건 맞다.

그런데 원문 어디에도 '장식'이란 말이 없다.


아마도 'in one corner'를 가방의 구석(corner)'이라고 착각한 듯.


'in one corner'는 자동차 안 구석을 말한다.

'하마 머리'는 'valise(가방)' 자체의 모양이다.


올바른 의미/할머니는 검은색 큰 가방을 챙겼는데 자동차 한 구석에 놓으니 하마 대가리 같았다.


제대로 비교해 보자.


She had her big black valise that looked like the head of a hippopotamus in one corner,


-출판사 번역/할머니는 한쪽 모퉁이에 하마 머리 장식이 있는 검은색의 큰 여행 가방을 챙겼고,


-올바른 의미/할머니는 검은색 큰 여행 가방을 챙겼는데 자동차 한 구석에 놓으니 하마 대가리 같았다.


하마 머리 장식이 있는 검은색 큰 여행 가방

하마 대가리 같은 큰 여행 가방


이건 이 정도쯤이야..하고 넘어갈 만한 오류가 아니다.


오코너가 소설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정교하게 직조한 

태피스트리의  파란 색 올 하나를 붉은 색과 바꿔낀 것과 다름 없다.


왜 하필 하마 대가리일까?


'하마'는 '할머니'의 분신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이 할머니다.


결말에서 'Misfit'과 대적하게 되는 인물이다.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 할머니가 이 소설의 결말에서 해내야 하는 역할이 바로 '하마'와 관련있다.

그래서 '하마'이다. 


오코너가 어떤 이미지를 투영하고자 '하마'를 선택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영미권에서 전반적으로 '하마'에 갖는 '용기'?)


오코너가 할머니에 대해 '하마'를 선택한 이유는

할머니의 며느리에 대해 '녹색 두건'을 선택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마 장식'과 '하마 대가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가방에 대롱거리는 예쁜 하마 머리 장식을 단 가방과 

자동차 안 한구석에 웅크린 거대한 하마 대가리 같은 가방은 

한 마디로, 차원 다른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underneath it she was hiding a basket with Pitty Sing, the cat, in it. 


출판사 번역/그 밑에 고양이 피티싱이 든 바구니를 숨겼다.


고양이 이름은 '피티 싱(Pitty Sing)'

번역문에는 '피티싱'으로만 되어 있다.


피티싱?


피티 싱(Pitty Sing)으로 띄어쓰기도 하고, 영어병기도 해 줘야 했다.


왜냐하면, 이 고양이 또한 전체 태피스트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개의 '올'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이름이 'Pitty'일까?


(영영사전)


pitty=the feeling of sorrow and compassion caused by the suffering and misfortunes of others.


할머니는 이 소설의 '안티히어로'이자 주제를 구현해내는 '부적응자(Misfit)'에 의해 자행된 'misfortune'을 겪는다. 바로, 'pitty'란 단어가 의미하는 데피니션(definition), 그 자체가 할머니가 겪는 감정의 곡절인 것이다. 


the feeling of sorrow and compassion


할머니가 고양이, '피티 싱'이다.


그런데 띄어쓰기도, 영어도 없이 덜렁 '피티싱'이라고만 하면

과연, 이 고양이가 할머니의 '아바타'임을 분간할 수 있을 만한 독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단 한 사람도 없다.


어떤 책이든 오역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플래너리 오코너의 걸작 '좋은 사람은 드물다'란 태피스트리를

올 풀린 채 감상하고 싶어할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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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9-0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래너리 오코너‘ 작가가 단편 소설의 거장이라고 해서 이 책 구매했고
기대가 큰 데 번역의 오류가 있으니 좀 그러네요.
원문으로 읽을 영어 실력이 안되고요
ㅠㅠ

젤소민아 2024-09-09 05:45   좋아요 1 | URL
플래너리 오코너는 ‘천재‘라고 공히 인정받지요~. 말씀드린 대로, 어느 정도 오역이 없는 번역이 가능할 지 모르겠어요...문제는, 그렇다고 오역을 정당화하면 안될 것 같긴 합니다. 오코너의 단어는 평이한 편이어서 원서로 읽으시는데 무리 없으실 거예요~~. 저도 번역서 보다가 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려운 단어가 진짜 없습니다~. 문장이 약간 길긴 한데..어려운 구조는 아닙니다. 원서로 읽으시면 오코너의 ‘천재성‘을 더 느낄 수 있어요~. 올려드린 오역 부분만 해도 그렇죠? ㅎㅎ 지금 이 단편집을 원서와 같이 보기 시작했으니 보이는 대로 찬찬히 올려드릴게요.
 
복사뼈
알베르틴 사라쟁 지음, 이수진 옮김 / 미행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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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싶다, 읽고싶다, 읽고...싶다! 패티 스미스의 추천이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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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이 - 찢어진 예술, 흩어진 문학, 남겨진 사유
최정우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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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우님, [사유의 악보] 이후로 문학을 보다 들이파 주길 기다렸어요. 보람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정우님 덕분에 알튀세르에 다가듭니다. 원서 자체보다 ‘최정우 번역‘을 검색합니다. 그걸 그냥 다 읽으면 되니, 전 참 수월합니다. 여러모루 감사합니다. 꺅, 소리 한 번 지르고 구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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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삶의 기술 - 즐거움을 잃어버린 시대의 행복 되찾기
로베르트 팔러 지음, 나유신 옮김 / 사월의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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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확 눈에 들어오는데, 리뷰가 하나도 없다는.

아마존 가보니 독일어버전만 있고, 독일어로 호불호가 갈리고.

번역기에 돌려보니 불호 리뷰에는 '근거없이 혼자 떠든다'고 화내고.


책 소개만 보더라도 '지젝스럽다'고 이미 고백하는 듯한 바.

오스트리아의 좌파지식인이라...


현란한 지적유희

번뜩이는 통찰


저자소개에 보이는 구절들이다.


'유희'에는 주저되지만 '통찰'을 믿고 가봐??


비행기 탑승객이라면 요즘의 여행이 보안검색대의 공개 스트립쇼와 함께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발을 벗고 허리띠를 풀어야 한다. 빈의 철학자 로베르트 팔러는 생존을 위해 품위를 내던져버린 현대 문화, 오늘의 문화를 ‘빼기’의 문화로 만들어버린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디카페인 커피, 무알코올 맥주, 욕설이 없어진 축구, 신체접촉 없는 섹스… 지금 우리는 삶의 기쁨을 내주고 이런 빼기를 구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추천글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있다.


디카페인 커피.


나는 카페인 한 드롭이면 날밤 새야한다.

하루종일 수전증에 시달린다.

나는 '생존'을 위해 디카페인을 마신다.


무알콜 맥주.

나는 논알콜의 virgin cocktail을 마신다.

알콜 다섯 스푼이면 몸에 붉은 반점이 돋기 때문이다.


이게 생존을 위해 품위와 즐거움을 내던져 버렸다는...건가?

거꾸로, 생존을 위해 그나마 그만큼의 즐거움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로는

볼 수 없을까.


물론, 이건 추천글에 불과한 것이지 책 내용 전반이 아니다.


출판사 책 소개를 보자.


이런 탐색을 통해 저자가 도달하는 지점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옥타브 마노니가 말한 ‘잘 알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듯이’ 행동하는 삶의 차원이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에 갇힌 존재로서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마치 너무나 즐거운 듯이” 즐기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대의 축제나 오늘날의 파티에서 보듯이, 일상의 금기를 잘 알고 있지만 놀이와 축제 때는 금기를 깨뜨리라는 가상의 명령도 수행할 수 있는 지혜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의 쾌락에서 함께 더 큰 즐거움을 얻는 ‘공모자’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의 쾌락은 사회적 차원에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이다. 로베르트 팔러는 결국 개인을 낱낱이 흐트러뜨려서 각자도생의 불행한 자아로 살게 하는 이 시대에 저항하여, ‘함께 즐거움을 향유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런 책들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잘 안 읽힌다.

세 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명백히는 모르겠다. 

특히, 세번째 문장.

번역의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이거-.


우리는 현실의 조건에 갇힌 존재로서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마치 너무나 즐거운 듯이” 즐기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겹쳤다.

이건...쿤데라가 온갖 저서에서 그리도 천착하던 '키치'가 아닌가...



우리는 현실의 조건에 갇힌 존재로서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마치 너무나 즐거운 듯이” 즐기는 삶-.


이거 말이다.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또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치 너무나 즐거운 듯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그 무엇-.


그게 쿤데라의 '키치' 같은데...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팔러는 '키치적인 삶', 즉, '함께 마치 너무나 즐거운 듯이 즐기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거??


쿤데라가 제안한 건 '반(anti)-키치'인 것 같은데...

'똥' 때문에 전기철망에 감전사하는 선택을 한 스탈린 아들을 제시하면서...

스탈린 아들의 키치적 삶에는 '똥'을 허용할 수 없어서.

가만..이 사람은 '똥'을 허용하자는 소리니까, 맥이 같은 건가?

와....이거, 읽어봐야것네.


물론, 내 좁은 이해 폭에서 불거진 오류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의 말이든 앞뒤옆 문맥을 잘 따져보고 결론지어야 한다.

쿤데라를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볼 용의가 있다.


혹시 아나.

쿤데라보다 더 좋아지게 될지! ^^


*그만 쓸려다가...

리뷰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구매결심을 하게 했다.

어지간하면 요새는 출판사 직원이나 관계자들이 계정 만들어서 찬양 일색의 리뷰를 올리는 게 관행이 된 지 오래 같아서...거기다 책도 안 나왔는데 '구매' 표식까지 딱! 그런 책은 더 안 사게 된다는 걸 좀 알아주면 좋겠는데.

'구매' 표시가 없는 리뷰는 다른 곳에서 책을 사 읽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희한하게 그런 리뷰는 찬양 일색. 다른 곳에서 책을 사 읽고 여기 와서 별 다섯개 리뷰를 굳이, 굳이, 굳이, 왜 다는 걸까. 시간 나서 다른 서점도 찾아보면 거기도 다 똑같이 올라왔다는. 


리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의 서브텍스트는,

전적으로 독자, 당신에게 맡긴다, 는 출판사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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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06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4-09-07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디오니소스네요^^
화가는 카라바조인듯 하고...
아닐 수도!
왜 이런 표지를 썼는지 알듯 하네요

젤소민아 2024-09-08 12:30   좋아요 1 | URL
와, 이런 거 척보고 그림, 화가 다 알아맞히는 그레이스님, 리스펙트! 비결이 뭔지요.. 그림 많이 보기? 심플한데 어려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