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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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恥の多い生涯を送っ て来ました。


주 인물인 '요조'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민음사의 번역은 이러하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허.....................................


번역자는 독자와 다르다.

이미 책을 다 읽은 사람이다.

독자는 이제, 읽는 사람이다.


번역자는 다 아는 사람이다.

독자는 이제부터 알아갈 사람이다.


출발부터가 다르다.


'인간실격의 '출발'은 '화자(narrator)'의 말하기부터 시작된다.

요조의 수기(노트)를 얻었고 그 수기를 읽기 전인지, 후인지는 모르나

그 수기를 쓴 남자(요조)에 대한 인물 감상을 '서문'에 담고 

그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 서문이 끝나면 요조의 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 て来ました。


이게 그 수기의 첫문장이요, 요조의 첫 고백이다.

독자와 만나는 지점이다.


독자는 앞서 화자의 '서문'에서 어느 정도 요조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석 장의 사진으로.

저마다 다른 나이의 사진 속에서, 웃기는 웃는데 그 웃음의 분위기가 각각 다른 사내.

그게 요조의 '남'이 본 요조의 첫인상이다.


독자는 이제, 요조가 생각하는 요조를 만나러 갈 참이다.


恥の多い生涯を送っ て来ました。


요조는 스스로를 이렇게 우리에게 고백한다.

27년을 살아본 현재의 고백.

스물 일곱밖에 안됐지만 머리도 희끗하고 누구나 사십대로 비치는 자신이 표피에 대한

역사도 녹아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나'다.


그렇다면 부끄럽게 만든 이는 누구인가?

'바깥'이다.


'나'가 부끄러우면 '바깥'은 죄가 있는가?

('죄'는 '인간실격'의 주요 모티프다)


없다.


바깥은 온당한데 '나'가 죄를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다자이 오사무가 선택한 단어를 보자.


부끄럽다

수치스럽다


이런 뜻이다.

역자는 이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것이다. 


역자는 '부끄럽다'를 선택했다.

요조의 선택과 일치하는가?


스물 일곱살(현재)이 되기 전의 요조라면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바깥은 법이요, 요조는 죄였으니까.

그 죄를 무마할 요량으로 '익살(이 또한 민음사 번역어지만 아쉬운 단어)'을 선택했으니까.


스물 일곱살이 되기 전의 요조는 부끄러운 인간이었다.

바깥은 죄가 없고, 자신은 죗덩어리였던.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저런 여자들의 정부 노릇이나 하고 야한 그림을 그리고

여자들 물건을 팔아 술이나 사먹고 자살 시도에

모르핀 중독으로 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 지금은?


지금도 여전히 요조가 부끄러운가?


'인간실격'의 첫문장은 소설에서 대단히 독특한 첫문장이다.

이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가 아니다.


이야기는 사실, 첫문장에서 다 끝났다.


이미 나름대로는 살만큼 살아본 요조의, 

회한섞인 대갈일성(大喝一聲)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대갈일성-.


지금의 요조는 부끄럽지 않다.

죗성 없다고 착각했던 바깥의 실체를 죄다 알아 버렸다.


정신병원에 갇힌 요조가 인간실격자인가?

정신병원 밖의 바깥이 인간실격임을 다사이 오자무는 자신의 아바타같은

요조를 통해 우리에게 대갈일성하고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당연히 독자는 아직 모른다.


그러니 요조가 '부끄럽다'고 해도 넘어갈 수 있을 지 모른다.

모르니까.

그러나 지금의 요조가 '부끄럽다'고 고백한 기억을 소설의 끝까지 가져가야 한다.


마지막에서 만난 요조는 부끄럽지 않다.

수치스러울 뿐. 


뒷문장을 보자.


저는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부끄럽다?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을유출판사의 번역자는 '수치스럽다'를 택했다.


스물 일곱의 요조는 지금, 돌아본 자신의 삶(생애)가 부끄러울까, 수치스러울까?


'인간실격'이란 명작을 끝까지 읽어본 이는 알 것이다.


바깥을 이해할 수 없어, 인간을 이해할 수 없어,

당신의 생애는 부끄러운지,

당신의 생애는 수치스러운지...


당신은 뭘 그리 잘못했나 말이다.

바깥은 뭘 그리 잘했나 말이다. 


잘 나지도 못한 바깥이 온당한 줄로만 알고 

'광대짓('익살'보다 '광대짓'이 슬픔이 개입되어 더 적절하다)을 하며

살아온 우리의 생애는,


부끄럽기보다 수치스러워야 하리라.


더는 수치스럽게 살지 않기 위해서.


부끄러움은 오로지 당신만이 책임져야 할 감정이다.

수치스러움은 바깥의 몫도 기여된 단어다.


요조는 이제 안다.

자신의 생애는 부끄러웠던 게 아니라

수치스러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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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1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독서 모임 회원 분이
다자이 오사무의 지독할
정도의 우울함에 팬이 되
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
습니다.

대표작인 <인간 실격>은
분명 읽었는데 기억이 하
나도 나지 않네요.

젤소민아 2022-07-21 12:01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고전이나 명작의 다른 말은 ‘읽었는데 생각나지 않‘거나, ‘읽은 줄 알지만 사실을 읽지 않‘은 책과 동의어라는 말이 있더군요~ㅎㅎ 저도 그래서 재독하고 있습니다. 읽는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책이 되는 게 특히 이런 명작소설 같아요.

요조의 인간실격화보다는 요조를 인간실격자라고 생각하게끔 만든 주변인과 세상이 인간실격화...

이제사 발견하게 됐습니다. 읽으시면 리뷰 공유해주세요~

다자이 오사무의 우울에 더해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를 가하고 거기에 오에 겐자부로의 사유(성적인 메타포의 특이성까지)를 추가하면 한동안은 좀 넋이 나가게 돼서...일본소설은 좀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