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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ㅣ 아셰트클래식 4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리스 포미에 그림 / 작가정신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허먼 멜빌. 1819년 8월 1일생. 1891년 9월 28일 사망. <모비 딕>의 저자. 그는 무지 큰 흰 고래가 나오는 좀 이상한, 그리고 쓸데없이 무지 두꺼운 소설을 1851년, 그의 나이 만 서른둘에 출간한다.
멜빌은 <모비 딕>을 쓰기 전에도 많은 소설들을 썼다. 데뷔작인 <타이피>(1846)나 <오무>(1847), <마디>(1849), <흰 재킷>(1850) 등. 모두 선원 경험을 토대로 한 모험 소설들이었다. 이렇게 제목과 출간년도를 써놓아도 구해서 볼 길도 딱히 볼 일도 없는 이 소설들은 출간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모비 딕>은 아니었다.
서른셋의 나이에 그는 끝장났다고 느꼈다. 그 자신이 특별한 것이 되리라 믿었던 책은 망했다. 미국과 영국의 평자들의 혹평을 받은 <모비 딕>은 출간 후 18개월 동안 2,300부가 팔렸다. 후속작 <피에르>는 출판된 후 35년 동안 단 2030부가 팔렸고, 평자들의 조롱을 받았다. 죽기 전까지 이 책으로 멜빌이 번 돈은 157달러에 불과했다.
그는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돈이란 세계가 작가의 작품에 보내는 편지와도 같은 것일진대, 멜빌은 자신의 의심스러운 어두운 비전을 독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예상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51년—아마도 <모비 딕> 출간 직후에—호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멜빌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돈은 날 엿먹이고 있고, 악마는 날 비웃고 있어요. … 전 지쳐 쓰러지고 말겁니다. 너무 오래 써서 너덜너덜해진 육두구 강판처럼 말입니다. 제가 가장 쓰고 싶은 건 돈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쓸 수가 없어요. 제 작품들은 잡동사니 범벅이고 제 모든 책들은 이리저리 짜깁기한 누더기죠.” - <빌리 버드 외>, 펭귄판 ‘인트로덕션’에서
생전에 멜빌이 얻은 문학적 명성은 초라했다. <모비 딕> 이후 그의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1857년부터 그는 실질적인 절필 상태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35년 동안, 그는 지방 세관에서 일용직(=일당을 받는 날품팔이)으로 근무하면서 생계를 꾸린다. 독자의 계속된 외면 속에서 그는 독자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하지만 글쓰기를 완전히 그만 두지는 않는다. 멜빌은 세관에서 근무하는 틈틈이 장편 서사시 <클라렐>을 썼다(난해하고 방대하다고 알려져 있다), 1891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중편 소설 <빌리 버드>의 초고가 발견되었다. 죽기 직전까지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셋의 나이에 끝장났다고 느꼈다”라고 했는데, 멜빌의 나이 서른 셋이면 1852년이다. <모비 딕>이 출판되고 1년이 지난 시점인 것이다. <모비 딕>보다 한 해 앞서 출판된 것은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였다.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두 권의 작품이 1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연달아 쓰여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두 작품이 받은 대우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1804년 생인 호손은 멜빌보다 15살 연상인데, 멜빌은 그를 문학적 스승이자 친구로 생각했다. 호손 역시 상당 기간 동안 경제적 궁핍에 시달렸고, 그래서 젊은 시절에는 세관에서 몇 년 간 근무하기도 했지만, 나이 마흔여섯에 출간한 첫 장편소설 <주홍글자>의 출간과 성공 이후 나름 일이 잘 풀린다.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주홍글자>는 잘 팔리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화제작이 되었고, 호손 역시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이다. 1853년 호손은 영국 영사로 임명되어 리버풀에서 4년 간 머물렀으며, 이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멜빌과 호손의 관계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멜빌은 호손을 경애해마지 않았지만 호손은 그만큼의 경애를 멜빌에게 표현했던 것 같지 않다. <빌리 버드 외>의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들은 이웃이었고 만나기도 했지만 멜빌이 바란 것만큼 자주는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호손은 (유럽으로) 떠나버리고 둘은 편지와 작품(<블라이드데일 로맨스>와 <피에르>)을 서로 주고 받았다.”
요컨대 멜빌과 호손은 이웃이었지만 돈독한 이웃은 아니었던 듯하다.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땠는지를 알려면 서간집을 보면 될 일이겠지만, 그것까지 구해서 살펴볼 여력은 없다... 해서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호손은 자신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틈나는 대로 경의와 애정을 표하는 멜빌을, 자신이 분류하기에 애송이 대중 소설 작가에 지나지 않은 멜빌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부유한 외가 덕택에 (생활은 어려웠으나) 나름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좋은 교육을 받은 호손이 보기에 멜빌은 “바다와 적도의 섬들에서 제멋대로 굴러 먹다가 그 경험담을 팔아 작가랍시고 설치는 놈” 쯤으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른다. 멜빌은 호손의 소설들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고, 호손 소설들이 내뿜는 '다크 포스'에 감동했고, 그런 감동을 호손에게 어필했고, 나아가 호손을 셰익스피어와 비견하기도 하는 등, 최고의 찬사를 보냈고 어떻게 보면 호들갑을 떨었지만, 호손은 멜빌을 그냥 ‘친구’ 정도로만 생각했지 ‘친한 친구’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홍 글자>를 읽고, 또 책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고 <모비 딕>을 써내려가는, “나도 뭔가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에 불타 종이 위에 글씨를 휘갈기는 멜빌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멜빌은 <모비 딕>을 쓰는 동안 셰익스피어를 탐독했으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고 또 묘사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대중들이 멜빌에게 기대한 것은 ‘해양모험소설’이었다. (그가 이전의 소설들에서 아직 써먹지 않은 소재인) 포경선에서의 생활을 다룬 <모비 딕>은 개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의 모험담과는 다른 기묘한 작품으로 변모했는데, 여기에 평자들과 독자들은 모두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이해할만도 한 것이 만약 <삼총사>를 읽는데, 갑자기 검술의 방식과 규칙에 대한 긴 설명이 튀어나오고 그게 또 다시 형이상학적 고찰로 이어진다고 한다면, 독자들은 십중팔구 이 부분을 건너뛰거나 책을 펴든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포경과 고래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물론, 그에 대한 형이상학적 고찰이 길게 이어지는 <모비 딕>은 당대 독자들이 보기에는 처음 몇 챕터를 읽다가 덮어두기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멜빌은 <모비 딕>에 대한 확신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상업적 성공은 장담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작품을 허투로 쓰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작품을 허투로 썼는지 정말 공들여 썼는지는, 다른 누군가가 말해주기 전에 작가 스스로 알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모비 딕>을 외면했고 멜빌은 대중작가로서 자신의 입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작은 건물은 처음에 공사를 맡은 건축가들이 완성할 수 있지만, 웅장하고 참된 건물은 최후의 마무리를 후세의 손에 맡겨두는 법이다.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소서! 이 책도 초고, 아니,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 오오, 시간과 체력과 돈과 인내를! (220)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도록 보살펴주소서!”라고 멜빌은 <모비 딕>에서 쓰고 있다. “초고의 초고일 뿐이다”라는 이슈메일의 말은 소설 <모비 딕>이 대중들 앞에서 처할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비 딕>을 두고, 이게 과연 소설인지, 그리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미심쩍어 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걸작 <모비 딕>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읽은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모비 딕>이 고등학교 과정 필수 도서라고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미국의 학생들 대부분은 이 작품을 지겨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결국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시달리면서도 멜빌은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으리라. <모비 딕>에서 멜빌은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기대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게는 그 흰 고래가 바로 내 코앞까지 닥쳐온 벽일세. 때로는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 녀석은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괴롭히고 있어. 나는 녀석한테서 …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 (246)
오오, 남들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남에게 불을 붙이려면 성냥 자체도 파괴되어야 한다! 나는 과감하게 내가 원하는 일을 했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이다. (252)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반문하는 것, 그리고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를 인식하고 증오하는 것, 이것이 멜빌이 죽기 직전까지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흰 고래=모비 딕을 “코앞까지 닥쳐온 벽”으로 느끼고 그것을 넘어서려는/넘어선다기 보다 정면으로 마주하고 꿰뚫으려는 저 절실한 마음, 곧바로 광기어린 집착과 증오로 이어지는 그 절실함은, 그러나 동시대 독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또 다른 ‘집착남들’인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가, 멜빌이 붙들린 것과 유사한 광기에 불들려, 분량이나 밀도 면에서 <모비 딕>에 뒤지지 않는 길고 긴 글을 써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절감했고 쉬지 않고 뭔가를 써댐으로써,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것을 자기 식대로 묘사하고 표현하고 또 주장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다. 아니 최소한 견뎌내고자 했다. 차이가 있다면 러시아의 집착남들은 결국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한 미국의 외로운 집착남보다는 동시대인들, 그리고 나아가 후세인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아마도 짐작건대, '덜 외로웠을' 거란 점이다.
오늘날에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노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많지만 멜빌의 영향을 받았노라고 자처하는 소설가나 문학인들은 거의 없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모비 딕>이 화제에 오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만약 <모비 딕>은 거대한 괴물 흰 고래를 추적하고 잡는 모험이야기가 아니라, ‘포경과 고래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를 통해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훌륭한 고찰’이라고 설명한다하더라도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고작 ‘포경수술’ 운운하는 시답잖은 농담을 시도할 것이다.
끝장났다고 느낀 1852년을 멜빌은 어떻게 보냈을까. 2013년 현재, 1852년의 멜빌과 비슷한 나이이며, 역시 “나는/우리는/우리 모두는 끝장났다”고 선언하고 싶은 유혹에 자주 시달리는 요즘의 나로서는 그게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멜빌이 서른셋에 느꼈을, 그 이후에 점점 자주 느꼈을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할 말을 잃게 된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멜빌들을 떠올리면 더욱 할 말을 잃게 된다.
<모비 딕>의 비평적, 대중적 실패는 그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장났다고 생각한 바로 다음 해인 1853년, 그는 <필경사 바틀비>라는 비극적이지만 유머로 가득 찬, 종잡을 수 없는, 그러나 꽤 매력적인 중편소설을 쓴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백오십 여 년이 지난 후에서야 재조명된다. 1857년, 마침내 그는 모든 대외적인 글쓰기 활동을 포기하고 절필 상태에 들어간다. 포기한 이후에도 그는 35년을 더 살았고 혼자서 글을 썼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내게 멜빌은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인 <모비 딕>과 <필경사 바틀비>의 작가가 아니라 모든 것이 끝장나고 모든 것을 포기한 후에도 ‘생의 말년 35년 동안을 무명작가로 산 사람’으로, '세계의 종말 이후를 담담히 살아간 사람'으로서 더 각별해졌다. 멜빌이 몸소 실행하고 보여준 '종말 이후의 삶과 글쓰기'를, 종말론적 서사와 공멸의 상상력이 널리 퍼진 이 시대에 어찌 각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