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베이니 가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민승남 옮김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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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하고, <멀베이니 가족>이 매력적인 것은, 모든 훌륭한 소설이 그렇듯, 중층적이고 양가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멀베이니 가족이었다"라는, 긍지와 상실감이 섞인 과거형의 첫 문장부터 그렇습니다. <멀베이니 가족>을 한 가족이 끝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내는 이야기로 읽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다른 중요한 점들이 간과되고 맙니다. <멀베이니 가족>은 거꾸로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편드는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멀베이니 가족이 십수 년의 고난 끝에 돌아간 자리를 보면 그렇습니다. 멀베이니 가족은 폭력적 가부장인 마이클 멀베이니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어머니가 주재한 행복한 가족 상봉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사실 멀베이니 가족이 아니라 하우스먼 가족, 멀베이니 가족, 웨스트 가족, 밀즈 가족 등으로 이루어진 확대 유사 가족이고, 그 중심에는 가부장 남성이 빠진, 어머니 코린 멀베이니와 그녀의 여자친구 쎄이블 밀즈 커플(가족)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라는 자리 때문에 그 확대 유사 가족을 멀베이니 가족으로 오인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멀베이니 가족>은 무언가를 '멀베이니 가족'으로 오인하려는 우리의, 또는 그들의 욕망을 되비추어주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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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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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다독가가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달마다 비싼 돈을 들여 책을 사모으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서가에 쌓인 책의 등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독서를 대신하고 마는 것이 사실일 텐데,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로서 책은 '양'보다 '질'이라고 힘주어 설파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니 쌓아만 두고 있는 책들 때문에 느끼는 일종의 죄책감을 위로받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 저자가 무어라든 덩달아 내 말이 그 말이라고 얼른 속으로 동의하고 싶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물론 그가 말하는 독서법이라는 것이 한 권을 읽어도 천천히 읽는 게 빨리 읽는 것보다 더 좋다는 식의 충고로 간단히 정리되어버릴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거니와, 이런 책이 반갑고 좋은 것은 방법이나 기술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차원이 아니라 '책'에 대한 저자의 진지하고 우직하고 고지식한 태도가 반갑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에 관한 책은 웬만한 책이면 무릇 독서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오랜만에 다시 해보게 만드는 즐거운 효용을 가진 것이어서 그건 또 그것대로 좋기야 하지만 책읽기 자체를 지식이든 즐거움이든 뭐가 됐든 무언가를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은연중에 상정하고 있는 책은 아무래도 비인간적인 데가 있어 썩 정이 가지 않는데, 이 책은 '천천히' 보면 실용서의 틀을 모범적으로 따라주고 있으면서도 실용서라고만은 할 수 없는 작가스러운 목소리가 곳곳에 배어나와 있어 그게 또 '책'으로서도 즐거운 것이다. 책을 읽는 방법을 얻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방법만 얻거나 말거나 할 뿐이겠지만, 그러라고 나온 책이기야 하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이 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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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나카무라 코우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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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아주 재미있었달까 그렇다.
정말이지 소소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남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누나의 남동생이 되고,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이력서를 쓰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호신술 연습을 하고, 수수께끼의 소녀를 만난다.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고 산뜻하고, 주인공은 늘 차분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이고, 주인공의 말과 행동은 꼭 아기처럼 귀엽기만 하다. 그것도 좋다.

그렇지만 내가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그보다는 주인공이 품고 있는, 끝내 털어놓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사실 그야말로 이건 '리셋 증후군'이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란 '리셋'의 다른 말이다. 그러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당연하다. 이력서의 한 줄 한 줄을 채우는 일이, 지하철역 즉석사진기에서 사진을 찍는 일이, 새 재떨이를 사오는 일이, 심지어는 다림질까지, 모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동작 하나하나, 감각 하나하나 모두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나가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게 좋다. (과장이지만) 죽음 이후, 멸망 이후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생활. 차마 말할 수 없는 캄캄함 없이는 시작되지 않는 행복.

리셋 이전에 대해 주인공이 이야기한 것은 단 세 마디였다. 그나마 둘은 "아니에요"와 "그런 것하고는 달라요"다. 어쩌면 별것 아닌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새로 시작했고, 앞으로도 수수께끼의 소녀와 데이트를 하고, 우산고양이 노래를 부르고, 다림질을 할 것이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한자와 료의 일생이 앞으로도 행복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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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팀 버튼 지음, 윤태영 옮김 / 새터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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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소년, 로봇 소년, 유독 소년, 미라 소년, 쓰레기 소녀, 숯 소년...... 이 많은 소년소녀들의 출생은 한결같이 기괴하다. 그 기괴한 출생이 이들에게 비극 또는 죽음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기괴하거나 비극적이지만은 않다. 이들의 생을 작동시키는 것이 바로 '놀이'이기 때문이다. 팀 버튼의 이야기들에는 (그의 영화까지 포함해서) 이런 출생-놀이-죽음의 3요소가 절묘하게 섞여 있다. 굴 소년의 일생이 모두 그의 태생 탓이었다고 해도 되고, 굴 소년의 일생이 모두 즐거운 장난이었다고 해도 되고, 굴 소년의 일생이 완전히 비극이었다고 해도 된다. 그런 게 팀 버튼의 매력이다.

나는 특히 검댕 소년과 굴 소년이 좋다. 걔네들의, 특히 크리스마스-할로윈 에피소드에는 장난과 비극이 결합한 빛나는 페이소스가 있다. 그림과 함께 이 책을 끝까지 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 예컨대 이런 부분. "할로윈 날에 / 굴 소년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굴 소년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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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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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은 읽지 않았다.) 사실 나는 협동합시다 아저씨가 좋다. 정확하게는, 협동합시다 아저씨에 대한 영원의 태도가 좋다. 영원은 춘미, 왕눈이, 깜뎅이, 머저리를 자신의 이복형제들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들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형제애가 아니다. 춘미, 왕눈이, 깜뎅이, 머저리 각각에 대한 영원의 태도는 동형적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이복형제의 형제애라고 부를 수 있다면, 협동합시다 아저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 어디쯤에 영원이 시장 상인들 사이의 독특한 형제애에 대해 정확히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복형제의 형제애는 그것과는 다를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과 선을 긋고 있지는 않다. 그들 역시 영등포시장을 아버지로 둔 이복형제인 게 아닌가(사실 아버지는 누구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질서와 어긋나는 어머니의 태생이고, 이복형제들의 형제애는 주로 그것에 바탕할 것이다. 그래서 그, 다른 어머니들을 대하는 영원의 단순하지 않은 태도가, 자꾸 마음을 끈다. (<삼오식당>도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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