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어린시절
W. 휴 미실다인 지음, 이석규 외 옮김 / 일므디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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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한강의 소설인 <채식주의자>에서의 ‘영혜’였다. 육식을 거부한 채 점점 말라가는 영혜의 모습 뒤로 어린 시절 영혜에게 가해졌던 아비의 폭력이 오버랩됐다. 사랑 없는 결혼을 통해 주체성을 상실한 영혜의 삶 또한 채식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결국엔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해가는 영혜의 모습이 더해져서 이 책에 더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라는 속담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사건 또한 평생 갈 거라 생각한다. 좋은 기억이면 추억으로 남겠지만 안 좋은 기억이나 공포심은 자신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서 평생 자아을 괴롭힐 것이고 그 중심에《몸에 밴 어린 시절》이 있는 것이다.


《몸에 밴 어린 시절》은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의 과정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 찾아가는 과정 중의 거의 대부분을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에 할애한다. 지금의 내 모습, 결혼생활, 성격, 습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치관, 식습관 등을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서 “어렸을 때 이러이러했기에 지금 이런 모습이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모습과 어린 시절의 인과관계에 대해 풀어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법에서 범죄자가 저지른 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결과 간에 인과 관계가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듯이 이 책에서도 지금의 이런 행동이나 결과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원인 때문에 만들어진 하나의 결과물인 셈인 것이다. 책에서는 내재과거아(內在過去兒)’란 다소 어려운 용어를 통해 지금 우리들이 처한 상황이나 모습을 설명한다. 우리들이 거쳐 온 어린 시절 하나만으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재단하고 평가한다는 거 자체가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묘하게 빠지게 되고, 그 몰입 속에서 어느새 책의 내용을 수긍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몸에 밴 어린 시절》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결혼 생활에는 네 사람이 필요하다(7장)’고 말한 대목이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거지만 상대방 모두 각자의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기에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아닌 네 사람이 서로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남자와 여자의 어린 시절도 품어야 하기에 결혼에는 네 명의 별개의 사람들이 포함된다는 게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두 명도 힘든데 네 명을 품으라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말에 일견 수긍이 갔다. 배우자의 어린 시절 경험했던 기억이나 사건들을 외면한 채 현실에만 충실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머지않아 삐걱거리게 될 것이고, 결혼생활은 늪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반대로 상대의 어린 시절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결혼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이나 난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생활은 정말 녹록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혼 생활의 만족과 성공은 네 사람, 즉 어른 두 사람과 그 두 어른의 내재과거아가 저마다 나머지 세 사람을 존중하는 가운데 잘 적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87쪽 中)


책의 말미에 가서는 우리가 처한 갈등이나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도 함께 제시한다. 나 자신에게 새로운 부모 역할을 맡기라는 것이다. 새로운 부모 역할을 통해 내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병적인 태도를 버리고, 내재과거아에게 도움을 주는 부모 역할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감정들을 확인하고(책에서는 내재과거아의 감정 확인이라고 한다.), 그 알아차린 어린 시절의 감정들을 어른이 된 지금의 감정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적 감정들과 지금의 감정을 분리해서 구별할 수 있다면 어른이 돼서 세운 목적이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쉽게 얘기하자면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 나가 질 수 없다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란 말에서 ‘지피지기’를 ‘우리들의 어린 시절(내재과거아)’로 바꾸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감정들을 확인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어른이 돼서 발생하는 고민과 불행을 좀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배우고,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그만큼 커나가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는 정서적, 교육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너무나도 지나친 태도가 문제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과잉보호하고, 지나치게 방치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화를 내고, 지나치게 요구한다. 이런 부모의 병적인 가르침으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은 시나브로 지치고 병들게 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그들은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도 부모에게 강요된 어린 시절은 지우고 싶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그 행복한 삶이 멀게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몸에 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그 어린 시절을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거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몸에 밴 어린 시절》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책《몸에 밴 어린 시절》이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뚜렷한 처방전은 되지 못 하겠지만 어린 시절 받았던 아픔이나 고통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줄 거라 믿는다. 더불어 지금도 어린 시절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 세상의 많은 영혜들에게《몸에 밴 어린 시절》을 선물해드린다.


한때 당신이 거쳐 온 어린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모든 일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존재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당신의 삶 안에 그대로 남아서 지속되고 있는, 과거에 거쳐 온 어린이의 모습을 ‘내재과거아’라 부른다. 이 책을 통해 당신 자신과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새롭게 살펴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책 뒷면 표지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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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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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 년 전에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인터넷 모 사이트에서 철학 강의를 들을 때 처음 뵈었는데,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모습에 낭낭한 목소리가 더해져 첫눈에 반했었다. 강의할 때 체크무늬 셔츠를 자주 입으셨는데 셔츠 주머니에 담배가 항상 있는 걸로 봐서 담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만 했지 돌아가실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이웃 블로거의 <이별의 푸가>란 리뷰를 읽는데 저자가 김진영 선생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이웃님께 알은체를 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책을 냈다고 해서 구매하려고 검색을 하니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이 황망하고 쓰라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년이 지나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한 나 자신이 밉기도 했고, 이렇게 관심을 끊을 거면 좋아한단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한 자책감이 밀려왔다. 급하게 책 세 권을 주문해서 담배와 함께 그의 책들을 책상에 올려놓고 그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나만의 이별식을 치러드렸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좋아하는 책 많이 읽으시면서 철학적 사유를 주이상스(Jouissance) 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암에 걸린 2017년 7월부터 돌아가신 2018년 8월까지의 기록들이《아침의 피아노》란 책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슬프고 아려온다. 이른 아침 저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 피아노 소리는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도 아니요, 리스트나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곡도 아니었다. 그 아련하면서도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는 철학자 김진영이 그려내는 철학적 아포리즘이었다.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무기력 상태가 아닌 노동을 원했고, 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사랑을 선택한 그였기에 그의 피아노 소리는 희미하지만 선명했고, 약해 보였지만 강했다. 병원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파란 버스에 희망을 실어 보냈고, 하루하루 약해지는 모습이 싫어 신문에 칼럼을 싣고, 아침 차 안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그였다.


분노와 절망은 거꾸로 잡은 칼이다. 그것은 나를 상처 낼 뿐이다.(23쪽)


텅 빈 페이지에서도 그의 숨결이 느껴졌는지 페이지마다 글을 다 못 채워 여백이 많은 걸 보고선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왜 이렇게 세상이 불공평하냐고 외쳐 보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침묵뿐이다. 그 침묵 속에서 그의 아포리즘들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성한 내 살들을 헤집어 놓는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통해선 아픈 자기 자신을 되려 위로하고,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을 통해선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좋아한 프루스트를 통해선 지금은 암으로 고통받지만 곧 구출될 것이고, 그 구출된 문을 통해 구원이 될 것이란 믿음을 갖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를 통해 감정이입을 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울컥해서 계속 읽을 수가 없었다.


날이 너무 덥다. 산책하는 일도 힘들다. 걸으면 고관절 통증이 있기도 하지만 뜨거운 열기 속을 걷는 일이 통 엄두가 안 난다....... (중략) 이 뜨거운 여름, 나도 바람이 지나가는 서늘한 곳이 간절히 그립다. 하지만 병이 아랍 사람처럼 그곳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나는 뫼르소처럼 방아쇠를 당길 필요가 없다. 언젠가 나는 이 아랍 사람을 통과할 것이고, 이방인처럼 어느 낯선 세상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곳은 어디일까, 거기 또한 바람이 지나가는 서늘한 곳일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260쪽)


​그를 만난 건 나에게 큰 행복이었다. 저에게 큰 기쁨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여기에 없다. 하나 그의 책은 살아서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강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그가 쓴 책은 많이 없지만 그 몇 권 안 되는 책과 함께 그의 철학적 사유를 함께 느끼며 한 평생 살아갈 것이다. 저 먼 하늘나라에서 벤야민과 프루스트, 카뮈와 카프카 등과 함께 행복해할 그에게 진정 애도의 마음을 함께 전하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여기에 남겨 둔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꼭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중략) 이 책이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반드시 변명만은 아니리라.(책 마지막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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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낭만이 필요합니다 - 일상예술가의 북카페&서점 이야기
정슬 지음 / SISO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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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주 가던 북카페가 있었다. ‘조르바’란 이름에 끌려 들어갔는데 아담한 크기에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토론 모임도 몇 번 하곤 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를 좋아해서 카페 이름을 ‘조르바’로 지었다는 카페 사장님, 책을 좋아해서인지 카페엔 책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직접 만들어주는 커피와 음료들이 맛있어서 시내에 나가면 꼭 들르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조르바 자리에 다른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방문하던 날 본업인 작가에 충실하기 위해 조르바를 그만해야겠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연신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지금에 와서 사장님이 만들어준 딸기 스무디가 가끔 생각는 걸 보면 그 아쉬움이 그리운 추억이 되어 사뭇 조르바가 그립다.


카페 이름이 ‘헤세처럼’이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더 관심을 기울일 테고, 헤세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커피 한잔하러 들어갈 것이다. 카페 안은 책들로 가득하고, 북카페와 서점을 겸하고 있어서 책을 읽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들려서 책 한 권에 커피 한잔하고 싶은 곳이 바로 ‘헤세처럼’이다. 스트레스가 가득인 날 ‘헤세처럼’을 찾아서 헤세 잔에 커피 한 잔 하면서 사장님이 들려주는 낭만에 대해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 주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헤세처럼’이 친구처럼, 애인처럼 나를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우울한 날 영화도 볼 수 있고, 수다가 떨고 싶다면 아무 때나 편한 시간에 와서 작가와 수다를 떠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고민이 있다면 넌지시 사장님께 상담을 부탁드려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 낭만적 밥벌이는 없는가?’ 저명한 소설가 김훈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이야기했듯이 현실에서 밥벌이는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낙담해서 낭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진정한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돈’보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다. 나 자신이 일상에서 예술적 감성으로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면 그게 바로 ‘낭만’인 것이다.(본문 55쪽 中)


헤르만 헤세가 좋아서 시작한 북카페지만 ‘헤세처럼’은 이제 생활의 전부가 돼버린 듯하다. 그녀에게 있어 ‘헤세처럼’은 단지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다.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 놓으면 미술관이 되고, 직접 찍은 사진들을 걸어 놓으면 갤러리가 된다. 헤세처럼 정원을 가꾸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고, 문화가 결집된 공간에서 우리네 인생의 낭만에 대해 얘기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가 그녀가 건네주는 위로를 선물 받을 수 있다.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울 때 ‘헤세처럼’에 방문해서 그녀가 건네는 커피 한 잔, 책 향기 한 스푼에 취해 보시길. 거기에 ‘헤세처럼’은 조르바처럼 없어지지 말고 우리들 곁에 남아서 낭만을 많은 분들께 선물했으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면서 디지털로 변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LP 판이 돌아가는 턴테이블, 허름한 선술집, 필름 카메라, 영사기가 돌아가는 영화관, 종이책 등 아날로그 감성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 평생을 우리와 함께 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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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세스 에이징 - 노화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뇌과학의 힘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이은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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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간의 몸도 변한다. 그중에서도 피부 노화는 나이 듦의 대표적인 현상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감을 안겨 주는 노화의 강력한 징후다. 노화 방지(anti-aging)를 위해 의학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주름이 생기고,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프며, 결국엔 앓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뇌는 노화에 정말 치명적이다. 뇌 노화의 대표적 증상이 치매인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인지 기능의 장애가 생겨 결국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뇌가 망가져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 꾸준한 운동을 통해 뇌에 자극을 주고, 운동과 함께 견과류, 과일, 채소, 오메가3 등 뇌 기능에 도움이 되는 영양 성분을 챙겨 먹기도 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 노화 방지는 아직까지 의학기술이 정복하지 못한 분야 중 하나다. 늙어가는 뇌를 멈출 순 없겠지만 그 노화과정을 늦출 수만 있다면 인간의 기대수명이 지금보다 배가 되는 날도 꿈이 아닌 현실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석세스 에이징》은 우리에게 디지털 시대에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뒤엉켜버린 뇌의 정리하는 방법을 소개한  <정리하는 뇌>로 잘 알려진 ‘대니얼 J. 레비틴’의 신간이다. <정리하는 뇌>가 뇌의 작동 방식에 따라 머릿속을 정리하는 기술을 우리에게 알려줬다면《석세스 에이징》은 노화로 늙어가는 뇌를 어떻게 하면 늦출 수 있는지를 많은 자료와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다. 뇌 노화에 관여하는 요소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뇌를 건강한 뇌로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이 뇌 노화 방지에 좋고, 더 오래 살기 위해 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그 방법론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화에 따르는 부정적인 영향 일부를 방지하고자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미래, 신경가소성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생 앞날을 써나갈 수 있는 미래, 의료 발전과 건강한 생활방식 선택을 결합함으로써 인생 앞날을 써나갈 수 있는 미래, 의료 발전과 건강한 생활방식 선택을 결합함으로써 오랫동안 노화 과정에 불가피하게 따르기 마련이라고 여겨왔던 인지력 저하와 우울증, 기력 손실의 영향을 완화하거나 되돌릴 수 있는 미래를 보게 됐다. 기꺼이 활용하려는 사람에게 그 미래는 이미 성큼 다가왔다.(본문 529쪽 中)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노화가 되면서 시각뿐 아니라 청각, 촉각, 미각과 후각까지 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노안은 당연히 오는 거라 생각했지만 청각이나 촉각, 미각, 후각은 병에 걸리지 않는 한 별 이상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늙어간다는 건 시각뿐 아니라 청각의 이상으로 인해 노인성 난청과 이명을, 손발에 혈류가 감소하면서 생기는 촉각 수용기의 손상을, 미각과 후각의 노화로 인한 후각 저하증과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는 무취증, 실제 냄새와 전혀 다른 냄새를 맡는 환취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에 늙어간다는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화가 지적 능력은 쇠퇴시키지만 추상적 사고는 발달시킨다는 다소 비 대칭적인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큰 고통을 주는 노화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진행 과정의 노화를 막을 순 없겠지만 책에서는 우선 우리 몸의 생체 시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수면을 촉진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조절해서 우리 몸의 회복 속도를 조절하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잘 시간에 자고,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라는 것인데 잠들기 전 빛을 피하고, 어두운 방에서 수면을 취하며,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것이 수면 위생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먹는 것도 중요한데 반드시 지방을 섭취하되 트랜스 지방은 피하고, 귀리, 보리, 통곡물, 가지, 지방이 풍부한 생선, 견과류, 오메가-3 지방산 등 수용성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고, 염증과 관상 동맥 혈전을 줄이는 알파-리놀렌산과 폴리페놀, 오메가-3 지방산(견과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류, 채소, 지방이 풍부한 생선 등)을 섭취하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잘 자면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며, 평생 운동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뇌는 더 이상 에이징(aging)이 아닌《석세스 에이징》의 길로 들어설 거라 생각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자 행복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을 누구나가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살다가 알츠하이머가 오고, 치매가 오며, 암에 걸려 고통을 느끼다 생을 마감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이렇듯 인간의 운명을 신에 맡기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삶은 분명 우울하고 불행할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갈 때 그 삶은 행복하고 윤택한 삶을 살 거라 생각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소일거리를 통해 신체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명상을 통해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식물성 식품으로 구성된 양질의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 바로《석세스 에이징》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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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도구의 세계 - 행복하고 효율적인 요리 생활을 위한 콤팩트 가이드
이용재 지음, 정이용 그림 / 반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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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열풍이 거세다. 방송에서는 셰프들이 나와 음식 뽐내기에 열심이고, 예전에 한두 개였던 음식 프로그램이 이젠 중요 시간대에 메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SNS에서는 맛집을 돌아다니며 음식 사진 올리는 분들도 부쩍 많아졌고, 유튜브나 브이로그도 먹방이 대세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도 하지만 그만큼 음식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렇듯 배고플 때 한 끼 때우던 시대는 가고, 다양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시대가 왔다. 음식이나 요리를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그렇게 2020년은 우리를 음식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조리 도구는 어쩌면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라면 끓여먹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엔 요리에 필요한 조리 도구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든다. 빵 자르는 칼에서부터 국자, 식기세척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리 도구들이 이 책《조리 도구의 세계》에 들어 있다. 이 책을 쓴 이용재 음식 평론가는 <한식의 품격>이란 책에서 처음 만났었다. 한식 비평이라는 다소 산듯한 문구에 반해 읽은 책이었는데 한국 음식 문화의 적폐 청산을 외치며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한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달고, 짜고, 매운 한식이 자극적으로만 변하는 모습을 빗대 “좁은 멍석 위에서 희미하게 명멸하는 비뚤어진 별, 그게 현재 한국 음식의 맛”이라는 그의 한식에 대한 날카로운 평론이 이번《조리 도구의 세계》에서는 실용성과 친절함을 무기로 우리에게 조리 도구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지난 15년 동안 쌓인 조리 도구 관련 경험을 한데 아우른 책이 바로 이 책《조리 도구의 세계》다. 행복하고 효율적으로 요리하려면 어떤 도구가 필요할까? 나에게 필요한 도구를 찾았다면 어떤 요령으로 많고 많은 제품 가운데에서 골라야 할까? 과연 각 조리도구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며 어떻게 유지 및 관리를 해야 좀 더 좋은 상태로 오래 쓸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처럼 조리 도구와 관련된 질문 대부분에 최대한 효율적인 답을 제공하려는 책이다.(6쪽. 책 서문 中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리에 필요한 도구들이 정말 많구나!에 한번 놀라고, 이런 도구들을 갖고 싶다는 나의 도구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한번 더 놀랐다. 잼은 숟가락으로 발라 먹고, 빵은 과도로 썰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았는데 요리하는데 있어서 조리 도구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주방사우라 불리는 타이머, 저울, 온도계, 계량컵은 조리하는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고, 정확한 계랑과 측정이야말로 요리의 맛을 내는데 있어서 필수이자 실수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여기에 칼(식칼, 과도, 빵 칼, 스테이크 칼, 채칼, 슬라이싱 나이프, 뼈를 바르는 발골도, 감자 깎는 필러)과 가위가 썰어주고 잘라주면서 도마 위에서 음식의 준비가 시작된다. 그리고 요리용 숟가락, 포크, 국자, 집게, 스패출러, 뒤집개, 밥주걱 등 조리 도구의 반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식재료를 혼합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품기, 강판, 재료를 혼합하는 블렌더, 믹서, 음식을 거르는 체와 필터들, 음식을 보관하는 공기, 램킨, 볼(Bowl), 쟁반, 지퍼백 등 열거하기도 힘든 조리 도구들이 이용재 음식 평론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과 함께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 라텍스 장갑보다는 니트릴 장갑을, (예쁘다는 이유로 사게 되는) 아보카도 살을 발라내는 자르개랄지나 삶은 계란틀, 마늘 껍질 벗기는 롤러 등은 단목적 도구들이기에 사는 것을 제고하라고 한다.(조리 도구들도 멀티태스킹이 아니면 도태되는 시대이기에) 또 계량 숟가락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스테인리스 재질로 하고, 도마는 하나만 선택한다면 플라스틱 재질로, 얇아서 말썽인 양은 냄비는 추억 속에 남기고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뭔가에 하나 빠지면 열심인 사람들을 덕후나 ~홀릭(holic)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조리 도구들을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이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고, 이 책《조리 도구의 세계》을 읽고선 조리 도구 덕후, 조리 도구 홀릭들이 많아질 거란 생각이다. 더불어 이 세상의 많은 덕후들이 조리 도구의 세계에 빠질 수 있도록 이 책이 그들을 조리 도구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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